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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 제발 좀 망하세요 (33)화 (33/130)

33화

“예, 각하.”

라이오넬이 말해 보라고 눈짓했다.

“작게나마 환영회를 하려고 했답니다.”

“누구의?”

“관리인 넬리 페퍼입니다.”

레반스의 대답에 라이오넬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마치 알고 있었냐고 묻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고개를 젓기도 전에 아저씨가 소리쳤다.

“관리인님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저희가 받은 게 많아서 그, 모, 몰래 감사의 인사를 전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공용 화덕을 사용하면 들킬까 봐…….”

라이오넬의 시선이 다시 아저씨에게로 향했다.

“왜 개인 화덕에서 고기 굽는 걸 금지하는지 알 텐데.”

고기 냄새를 맡고 굶주린 짐승이 내려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공용 화덕은 강 주변에 있어 냄새가 빨리 빠진다. 숲과 멀고 주변에 민가가 많아 짐승이 내려올 확률이 낮은 반면에 개인 화덕은 위치에 따라 지금처럼 산짐승이 냄새를 맡고 내려올 위험이 있었다.

몇몇에게만 개인 화덕을 허락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기에 전면적으로 금지했다.

게다가 몇 달 전부터 늑대가 목초지에 자주 나타났었다.

라이오넬은 늑대를 조심하라고 주민들에게도 경고했었다. 광장에 공지한 지 몇 달이나 되었으니 아저씨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며, 몇 달 전 일이라 괜찮을 줄 알고…….”

“흐음…….”

라이오넬은 다리를 꼬고 팔걸이에 몸을 삐딱하게 기댔다. 그대로 한참이나 아저씨를 내려다봤다.

“누가 다쳤다고 들었는데.”

“옆집의 딜런이, 조금. ……다쳤습니다.”

입안이 바싹 말랐다.

나에게 깜짝파티를 해 주려고 하다가 벌어진 일이라니.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잖아.

어쩔 줄 모르고 손가락만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라이오넬이 레반스에게 물었다.

“법을 어겨 이웃을 위험에 빠트리게 했으니, 어떤 벌을 받아야 하지?”

레반스가 팔에 끼고 있던 법전을 펼쳤다.

“손목을 잘라야 합니다.”

아저씨는 예상했다는 듯 눈을 질끈 감았다.

가장 흔한 처벌이긴 했다. 너무 흔해서 전쟁에서 다친 사람들조차 범법자로 의심받는 일이 비일비재할 정도였다.

오죽하면 자신이 범법자가 아니라는 문서를 발급받아 소지하고 다니겠는가.

하지만 결코 가벼운 처벌은 아니었다.

특히 아저씨처럼 나이가 있는 분은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었다.

레반스가 사색이 된 내 얼굴을 보더니 말을 덧붙였다.

“아니면 벌금으로 대체할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는 아저씨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벌금으로 대체할 경우 천문학적인 비용을 부담해야 했다.

“차, 차라리 손목을…….”

“잠깐만요!”

일단 칼슨 아저씨 앞을 가로막았다.

라이오넬은 어디 한번 변호해 보라는 표정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같이 파티를 준비했는데 아저씨 혼자 벌을 감당하는 건 불공평하다고 생각해요.”

“그건 공범들의 손목을 전부 자르라는 뜻인가?”

“아니요! 벌금형을 내리시되, 금액을 나눠서 부담하게 하는 건…….”

치마 밑단을 잡아당기는 느낌에 뒤를 보았다.

아저씨가 고개를 젓고 있었다.

라이오넬이 그 모습을 보고는 허리를 바로 세웠다.

“본인은 원하지 않는 모양이군.”

“아니면 이웃을 다치게 했다는 죄목만이라도 빼 주세요.”

라이오넬은 일단 내 말을 들어 보려는 것 같았다.

“엄밀히 따지자면 사람을 다치게 한 건 늑대지 아저씨가 아니에요.”

“하지만 늑대를 불러들였지.”

“말했듯이 혼자 준비한 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좀 이상해요. 보통 야생동물은 사람을 보면 도망치지 공격하지 않아요. 게다가 아주 경미한 상처라고 했는걸요.”

“그래서?”

“딜런 씨의 부주의로 다친 걸 수도 있다는 뜻이에요.”

만약 그런 거면 아저씨의 죄목이 하나 줄어든다.

“딜런 씨를 통해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보시는 게 어떨까요?”

조심스럽게 묻자 라이오넬이 고개를 끄덕였다.

“데려와.”

그의 명령에 아레트가 짧게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홀은 침묵에 잠겼다. 아저씨는 자신의 손목을 연신 주무르며 떨고 있었다.

나는 라이오넬의 표정을 살폈다. 기분이 그리 나빠 보이진 않았다.

“그리고 손목을 자르는 건 너무 잔혹해요. 출혈을 막지 못해서 사망하는 경우도 많잖아요. 그러면 그게 사형과 뭐가 다르죠?”

라이오넬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

지금 웃은 건가?

하지만 자세히 보기도 전에 치맛단을 잡아당기는 손길에 몸을 돌렸다.

“관리인님, 나 때문에 그러지 마세요. 그러다 노여움이라도 사면 어쩌려고.”

“맞는 말로 화내는 분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도 아저씨는 불안한지 연신 라이오넬을 힐끔거렸다.

그러던 중 홀의 문이 열렸다.

아레트의 뒤로 딜런 씨가 따라 들어왔다. 그는 모자를 벗고 라이오넬에게 허리를 숙였다.

아레트가 자리로 돌아가자 라이오넬이 명령했다.

“오면서 들었겠지. 설명해.”

“제 탓이 맞습니다. 다른 분들이 말렸는데 제가 늑대를 막아서는 바람에, 도망치려고 문 것 같습니다.”

딜런 씨가 벌벌 떨면서 상황을 설명했다.

라이오넬은 이야기를 들은 뒤 딜런을 내보냈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아레트에게 손짓했다.

“감옥에 가두고 물 한 모금도 주지 마. 그리고 이틀 뒤에 풀어 주도록.”

구금형은 신분이 높은 사람이나 포로들에게나 내려지는 형벌이었다.

물론 음식을 주지 않는 건 다르지만 말이다. 그래도 파격적일 정도로 가벼운 처벌이었다.

“공작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저씨가 아레트에게 연행되며 소리쳤다.

라이오넬은 표정 없는 얼굴로 앉아 있다가 홀이 조용해지고 나자 나를 보았다.

“늑대가 나타난 곳 근처에 당나귀를 풀어놓으라고 해.”

“당나귀를요?”

라이오넬이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머릿속에 꽈당이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당나귀가 위험하지 않을까요?”

“안 위험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당나귀는 늑대의 아침이나, 점심이나, 저녁거리일 것 같은데.

꽈당이를 생각하니 차마 그러겠다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가만히 있자 레반스가 내 쪽으로 걸어오며 라이오넬 대신 설명했다.

“당나귀는 생각보다 무서운 동물입니다. 말보다 겁도 없고, 신중하고, 무엇보다 어지간해서는 도망치지 않죠.”

“정말요?”

“네. 애당초 목초지에 있는 당나귀는 전부 늑대를 막으려고 키우는 겁니다.”

그냥 귀여운 줄만 알았는데, 우리 꽈당이 강하구나. 어쩐지 여유롭다 했어. 체력도 좋고.

그나저나 의외다.

늑대가 사람을 공격했으니 몰살하라고 할 줄 알았는데.

새삼스러운 눈으로 라이오넬을 보고 있자 그가 왼쪽 눈썹을 까딱였다.

“왜 그런 눈으로 보지?”

“그냥, 늑대를 사냥하라고 하지 않는 게 의외라서요.”

라이오넬이 코웃음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게 좋았으면 아직 전쟁터에 있었겠지.”

자조적인 목소리에 괜히 마음이 무거워졌다. 건들면 안 되는 부분을 건든 것 같았다.

입을 꾹 다물고 있는데 레반스가 괜찮다는 듯 내 어깨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가 라이오넬을 따라갔다.

“다른 사람들의 처벌은 어떡할까요?”

아까 내가 언급한 마을 사람들에 관한 처벌인가 보다!

어떡하지? 봐 달라고 해야 하나?

다 가둬 버리진 않겠지? 어쩌면 이번엔 진짜로 손목을 자를지도 몰라.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는 게 느껴졌다.

순간, 라이오넬이 걸음을 멈추고 몸을 틀었다.

허공에서 눈이 마주쳤다.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다시 몸을 돌렸다.

“그냥 숲에 풀어 둔 당나귀를 돌아가며 관리하는 거로 마무리해. 목장지기가 내려와 있긴 힘들 테니.”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그대로 홀을 빠져나갔다.

* * *

로만이 선술집으로 들어섰다.

늦지 않은 시간이었음에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그들을 힐끔 본 로만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첫째로 쓸데없는 말만 늘어놓으며 제 옆에 붙어 있으려는 파우트를 피하기 위함이었다.

둘째로는 우연히라도 넬리 페퍼를 만나 뭔가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러나 넬리는 없었다. 대신 사람들이 로만을 알아보고 손짓했다.

“로만! 이리 와 봐. 같이 축하주나 한잔하자고.”

축하주라는 말에 로만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한 남자에게로 향했다.

그는 법을 어겨 놓고도 고작 이틀간 감금당하고 풀려난, 행운의 사나이 칼슨이었다.

냉혹하기로 유명한 ‘그’ 라이오넬 알터우드 공작에게서 말이다.

흥미가 생긴 로만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그러자 잠시 끊어졌던 대화가 이어졌다.

“진짜 너는 관리인님께 절이라도 해야 돼.”

“그래서 파티라도 열어 드리려다가 이 사달이 난 거 아니야.”

로만은 맥주를 마시며 물었다.

“무슨 일 있었습니까?”

“아. 로만은 모르겠구나.”

옆에 있던 남자가 로만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그리고 칼슨에게 있었던 일을 짧게 설명했다.

늑대를 민가로 내려오게 했는데 구금형으로 끝내다니. 로만은 라이오넬의 처벌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손목은 멀쩡하십니까?”

“그럼. 넬리 님 덕분에 멀쩡하지!”

칼슨은 제 손목을 이리저리 돌려 댔다.

가만히 지켜보던 로만이 제 턱을 쓸었다. 그가 알기로 라이오넬은 군법을 어긴 동료를 제 손으로 직접 사형했다.

그렇게 손속에 자비가 없는 사람이 관리인의 말을 따랐다고?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십시오.”

로만이 흥미를 보이자 뒤에서 한 여자가 불쑥 끼어들었다.

“글쎄, 원래는 손목이 잘릴 뻔했는데 넬리 님이 논리정연하게 따져서 감형해 줬다더라고.”

“그래! 맞아! 내 앞을 딱, 막아서더니, ‘손목을 자르는 건 너무 잔혹해요. 출혈을 막지 못해 사망하는 일도 많잖아요. 그게 사형과 뭐가 다르죠?’ 이러시는 거야!”

“크으…….”

누군가 감탄하고는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그러고 보면 참 대단한 분이셔. 아직 어린데 말이야. 영지 망나니들도 싹 다 갱생시켜 놓고.”

“그뿐이야? 사람 보는 눈은 또 얼마나 좋은데. 나는 리지 걔가 모자란 앤 줄 알았다니까?”

“거기다가 얼마나 다정하고 주민들을 위하시는지…….”

“어휴. 나는 관리인님이 파우트 챙겨 준 일만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나.”

그러고 나서도 넬리를 칭찬하는 말을 끊이질 않았다.

로만은 관리인 넬리 페퍼를 떠올렸다.

옅은 갈색 머리 덕분에 표독스러워 보이진 않았으나 다정한 이미지는 아니었다. 맑고 커다란 초록색 눈동자는 길고양이처럼 항상 의심과 경계로 가득 차 있었다.

유능하고 자신만만한 사람 특유의 여유로운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운 좋게 관리인 자리를 꿰찬 줄 알았는데.’

로만은 넬리 페퍼에 대한 인상을 조금 수정했다. 그러는 도중에 말하던 남자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췄다.

“그런데 칼슨. 그건 안 들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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