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외전 14화
백주 대낮에 호텔에 투숙하는 남자과 여자, 수인은 마치 뉴스에 눈만 가리고 나오는 사람처럼 시후 뒤에 숨어들었다.
“우린 부부야. 왜 이렇게 겁을 내고 그래?”
“백주 대낮이잖아요. 이러다 우리 아는 사람이라도 마주치면 난처하잖아요.”
그러거나 말거나 시후는 이미 수인과의 달콤한 시간밖에 보이지 않았다. 철컥, 하고 카드키로 스위트룸문을 열었다. 시후는 수인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섰다.
“샤워 먼저 할까? 난 땀이 좀 났는데.”
시후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수인도 시원한 샤워가 간절했다.
“오빠 먼저 샤워해요”
“나만?”
시후가 묘하게 미소를 지으며 수인을 보기에 수인은 반사작용처럼 고개가 쓱 돌아갔다. 시후는 벌써 수인의 팔을 끌어당겼다.
“우리 같이 할까. 샤워?”
시후의 얼굴이 다가옴에 수인은 점점 고개가 아래로 떨어졌다.
“이게 대답이야? 어딜 보는 거야?”
“아. 부끄럽게.”
밤이면 밤마다 마주하는 맨살인데 부끄럽다 말하는 수인이 귀여워서 시후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시후의 따뜻한 손바닥이 수인의 얼굴을 감쌌다. 고개를 살짝 꺾어 내려온 시후의 입술이 수인의 입술에 바짝 붙었다.
그것도 잠시, 뜨거운 숨결이 두 입안을 분주하게 오고 갔다. 더더욱 깊어지는 키스에 수인은 눈꺼풀이 예쁘게 파르르 떨렸다.
“오빠, 샤워.”
잠시 입술이 떨어진 사이 수인이 다급하게 샤워를 외쳤다. 시후는 수인을 번쩍 들어 안고 욕실로 향했다. 적당한 곳에 수인을 내려놓은 시후가 급하게 탈의를 했다.
수술을 하며 다져진 아름다운 근육들이 땀에 번들거렸다. 수인은 고개를 돌려 딴짓을 하는 척 시후의 몸을 대놓고 감상하는 모드로 들어갔다.
“이거 불공평한데? 나만 벗었잖아?”
장난꾸러기가 되어 시후가 수인의 옷을 단숨에 벗겨내었다. 옷 벗기기 세계 챔피언이라며 자화자찬을 하던 솜씨는 여전했다.
“김수인, 눈빛이 아주 위험하군.”
“치!”
“치?”
간신히 자제시켜 놓았던 야수의 버튼이 ‘치’라는 외마디에 다시 작동을 시작했다. 수인은 재빨리 샤워 수전을 열었다. 해바라기 모양의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져 나왔다.
물은 도체로서 전기가 통한다고 배웠다. 그게 사람이 만들어내는 전기에도 적용되는 이론이었던지, 샤워기로 흘러내린 물로 인해 두 사람의 몸은 빠르게 흥분 상태로 빠져들었다.
“어우, 김수인 야해가지고.”
“딱 걸렸어. 이리 와요. 얼른. 이거 누가 다 들이부었어요?”
수인의 몸에 바디용품을 있는 대로 쏟아붓고 문질러 댔는지 거품이 끝도 없이 흘러내렸다.
그 모습이 어찌나 관능적인지 시후는 지금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았다. 푸딩과 젤리는 뽀얀 거품으로 포장을 예쁘게 하고 있어서 시후의 시각을 더욱 미치게 만들었다.
“깜찍한 것들, 얘네 너무 예쁘지 않아?”
“그만 만져요. 아파.”
“아파? 아프면 안 되지. 자. 이리와.”
이번엔 한가득 거품이 풀어진 욕조에 수인을 안고 들어갔다.
“아. 좋다.”
“좋긴 하네요.”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앉아 여유롭게 목욕을 하고 있자니 행복한 기분은 배가 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욕조 안에서도 강력한 스파크가 쉼 없이 튀었다. 시후가 큼직하고 긴 팔로 수인을 꼭 끌어안았다.
시후의 입술이 수인의 목덜미에 둥그런 원을 그렸다. 수인이 황홀한 표정으로 시후를 돌아보았다. 서로의 끈적끈적한 시선과 뜨거운 입술이 단숨에 달라붙었다.
그리고 수인은 과감하게 시후를 향해 돌려 앉았다. 서로의 다리가 포개졌고, 시후는 수인의 다리를 쓰다듬으며 제 위로 뻗게 만들었다.
“야해.”
“더 야한 건 김수인이거든.”
두 사람은 서로의 입술을 지그시 문 채로 대화를 주고받다가 킥킥거리며 웃어버렸다.
“왜 웃어?”
“그러는 오빠는 왜 웃어요?”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하는 일에 이유가 딱히 필요할까. 그저 함께 있고, 함께 체온을 나누는 일에 거창한 이유는 없지만 이 또한 자연스럽게 스며 나오는 감정 같았다.
행복하니 웃음이 나왔고, 웃음을 나누니 더욱 행복한 기분이었다.
웃던 입술 사이로 키스는 더없이 깊어갔다. 맛보는 서로의 타액이 달고 달았다. 시후가 물 안에 잠겨 있는 수인의 허리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리고 점점 더 과감하고 대범하게 범위를 넓혀갔다. 시후가 어루만지고 지나가는 피부마다 물 안에서도 뜨겁게 느껴졌다.
현키스라고 자칭하던 대로, 시후의 입술은 정신없이 제 몫을 넘치게 달성해 갔다. 그리고 손길은 손길대로 수인의 전체를 장악해 나갔다.
수인은 시후의 매끄러운 등 근육을 조각가처럼 더듬어 나갔다.
“오빠 근육은 만질 때마다 감탄이 절로 나와요.”
“그래?”
그 말 한마디에 시후는 헐벗은 것도 잊은 채 보디빌더 같은 동작을 보였다. 수인의 깔깔 웃는 소리가 욕실에 울려 퍼졌다.
“안 되겠다. 이제 그만 나가자. 서론이 너무 길었다.”
어쩐지 샤워가 길어진다 했다. 시후는 목말라 다 죽어가는 사막의 야수 같은 모습으로 수인을 번쩍 들어 안았다.
여름이었지만 실내에는 에어컨이 작동 중이라 이대로는 추울 것 같아서 시후는 수인의 등에 샤워가운을 덮었다.
“우리 수인이 감기 걸리면 안 되니까.”
보드랍기가 솜털같이 보들보들한 배려였다. 아기를 안 듯 폭 안아 올리고 시후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침대를 향해 걸었다.
사뿐하게 침대에 올려놓고 시후는 무릎을 꿇어가며 수인의 몸에 물기를 닦아 주었다. 젖은 머리카락도 꼼꼼하게 닦아준 뒤, 물도 한잔 권했다.
“최상의 서비스로 모시겠습니다.~”
수인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대체 최상의 서비스라는 말과 어울리지도 않게 나체인 모습으로 절도 있게 한팔을 구부려 인사를 하는 건 또 뭐람.
수인은 괜히 손으로 눈을 가리며 깔깔 웃어댔다.
그러나 이내 시후의 입술이 수인을 덮었으므로 더 이상 웃음소리가 나올 틈이 없었다. 현키스의 현란의 키스로 호텔 룸에 야릇한 입맞춤 소리가 가득 채워졌다.
수인의 뒷머리를 받쳐 든 시후가 가만히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 팔을 짚고 내려다보는 시후의 모습이 눈부시게 멋졌다.
막 샤워를 끝낸 시후의 모습을 혼자만 감상하는 것이 아까울 지경이었다.
“오빠. 너무 멋져요. 머리카락이 젖어 있어서 너무 섹시해.”
또 한 번, 시후의 어깨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승천하고 있었지만, 수인의 말엔 거짓이 1%도 들어있지 않았다.
수인이 시후와 선배 후배로 지낼 때에도 샤워를 막 마친 모습의 시후를 볼 때가 간혹 있었다. 그때마다 수인은 자신에게 음흉한 관음증이 있는 게 아닌지 의심을 했었다. 젖은 머리카락이 곧게 펴져 있고, 사이사이 물방울이 빛을 받아 반짝이는 순간은 마치 만화를 찢고 곧장 나온 남자 같게 보였다.
면도까지 말끔하게 해서 수염이 있던 자리까지 지운 듯 깨끗할 때면 그 턱에 손을 올리고 만져보는 상상도 하던 수인이었다.
“내가 좀 멋지긴 하지.”
수인이 너무도 반했던 모습 그대로 시후가 그윽하게 수인을 내려다보았다. 깊고 짙은 시후의 눈동자 안에 수인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사랑해요.”
“사랑해. 수인아.”
하루에도 몇 번씩 주고받는 말인데 이 순간만은 처음처럼 두 가슴을 설레게 했다.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수인의 심장은, 시후의 심장은 서로에게 보여주고 싶은 듯했다.
더는 시간을 끌며 서로를 애태울 마음이 없기에 사랑의 속도는 빨라졌다.
시후가 수인의 안으로 힘차게 들어갔다. 그녀를 가득 채운 시후의 뜨거운 사랑은 열꽃을 뿜으며 폭약이 터지듯 거침없이 터졌다. 시후에 매달린 수인도 사랑스럽게 그를 끌어안고 어루만졌다.
시후가 말했듯, 선배 후배, 직장동료보다 월등한 부부만이 나눌 수 있는 행위에 미친 듯이 빨려 들어갔다.
백미터 달리기를 할 때보다 더 숨이 찼고, 온몸으로 뜨거운 피를 뿜어내는 심장은 더 크게 요동쳤다. 이대로라면 밤이 깊을 때까지 서로를 탐닉할 것만 같았다.
“수인아. 한 번만 더 해도 돼?”
갈증이 가득 든 눈으로 시후가 물어보니, 수인은 웃음이 나왔다.
“오빠가 언제 한 번만 한 적 있어요?”
“그렇지?”
대낮인데 호텔에 있는 상황이 시후에게도 살짝 부담이었나. 또 한 번 시후는 백미터 달리기를 하는 사람처럼 전력 질주했다. 그러다 스르륵 수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쓰러졌다.
“푸딩이와 젤리, 고생했다.”
흔들리는 푸딩이와 젤리를 끌어안고 마지막으로 진한 입맞춤을 하며 시후가 웃었다.
“암튼 야해. 현시후.”
“그래. 나 야해. 김수인 만난 뒤로는 나도 내가 왜 야해졌는지 모르겠다.”
***
시후와 수인은 가벼운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오늘 의료봉사 목적지는 농촌에 가까운 행정 구역상 군에 속하는 곳이었다. 인구가 계속 줄기 때문에 있던 병원도 하나둘 큰 도시로 가버려서 겨우 보건소 하나 의지하며 사는 곳이었다.
자선 의원 앞은 이미 이삿짐 수준의 물품이 나와 있었다. 시후는 얼른 주차를 하고 짐을 자선 의원 밴에 옮겨 싣는 양 선생을 도와주러 뛰어갔다.
“안녕하세요~”
“아. 어서 와요.”
양 선생은 웃으며 뛰어오는 시후를 보고 반겼다.
“이것만 실으면 됩니까?”
“내가 해도 되는데, 매번 힘쓰는 일을 시켜서 어떡해.”
제일 젊은 데다 건장한 시후였기에 이런 일쯤은 마다하지 않고 나서서 했다. 자선 의원 김정수 원장부터 간호사와 실장도 이미 환갑을 다 넘은 나이라 시후가 힘을 써주면 무척이나 고마워했다.
“오빠. 희윤이랑 재건 선배도 벌써 출발했대요. 우리도 빨리 출발해요.”
오늘 의료봉사는 시후, 수인, 그리고 재건과 희윤이 함께 하는 봉사였다. 자선 의원 팀도 시후가 운전을 자처하며 밴에 올랐다. 목적지에 가는 동안 밴 안에는 웃음꽃이 떠나질 않았다. 시후의 농담에 수인이 장단을 맞추었고, 김정수 원장과 박 간호사, 양 실장은 방청객 모드로 열과 성을 다해 리액션을 취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