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외전 3화
수인은 남자의 목덜미를 더듬어 맥박을 확인했다. 손가락 끝에 맥박이 잡히는 걸로 봐서 급성 심장마비나 심근경색으로 보였다. 시후는 남자의 가슴에 귀를 붙였다가 고개를 들었다.
“PR은 잡혀요.”
시후는 심폐소생술을 하기 시작했다. 깍지를 끼고 남자의 가슴 부근을 거세게 압박했다.
“기도 확보해봐.”
시후는 중동인으로 보이는 남자를 위해 작열하는 태양 아래 땀을 비 오듯 쏟았다. 어떤 원인으로 온 심정지인지는 모르지만 골든타임을 놓칠까 전력 질주했다.
그사이 수인은 남자의 호흡을 돕기 위해 목을 붙잡았다.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몰려들었다.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남자와 일행인 여자의 울부짖는 소리가 더욱 격해지고 있었다. 평화로웠던 바다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군집해 있는 사람들 틈으로 리조트 직원들이 달려왔고, 그 남자의 수행원인 남자들이 분주히 주변을 정리했다. 들것이 당도해 남자를 들것에 옮길 준비가 한참이었다.
시후는 남자의 몸을 잡는 사람들을 저지했다. 그리고는 영어로 다급하게 외쳤다.
「잠깐! 이대로 옮기면 더 위험합니다!」
시후는 연신 가슴 압박을 하며 외쳤다. 시후는 남자의 가슴을 마치 고무풍선이 눌러지듯 센 힘으로 눌러댔다. 보는 사람마다 손에 땀을 쥐었다. 시후는 굵은 땀을 이마에서 뚝뚝 흘려대며 초집중이었다.
몇 분이 흘렀을까. 초조하고 긴박한 시간이 흘렀고, 남자는 머금었던 바닷물을 토악질 해 댔다.
수인은 남자가 토하기 쉽게 목을 잡았고, 시후는 다시금 남자의 호흡을 확인했다. 남자는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이었지만, 살아난 건 확실했다.
고통스러운지 남자는 연신 인상을 구기며 몸부림을 쳐댔다. 이 남자의 일행인 여자는 오열하며 다시 살아난 남자를 끌어안았다.
시후는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는 남자에게 큰 소리로 물었다.
「내 말 들립니까?」
죽다 살아난 남자는 시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안도의 숨을 내어 쉬었다. 시후는 대기 중인 사람들에게 영어로 지시했다.
「이제 병원으로 옮기세요. 또 언제 숨이 멎을 수 있으니 엠브백. 달고.」
병원에서 지시하듯 말하다 문득 이곳이 바다임을 깨달은 시후의 얼굴에 걱정이 드리워졌다. 간신히 의식은 찾았지만, 자가 호흡이 불안한 상태였다.
시후는 이대로 이 남자를 옮기게 둘 수 없어서 들것을 함께 들어 올렸다. 수인은 시후가 그럴 거라 당연히 예상을 한 일이라 들 것을 따라 같이 걸었다. 몇 발자국 걷던 시후가 급하게 따라오고 있는 수인을 쳐다보았다.
“수인아.”
“알았어요. 걱정 마.”
수인을 두고 가야 하기에 고민하는 목소리였다. 수인은 그런 시후를 얼른 환자에게 보냈다. 아마 수인이 지금 임신 중이 아니었다면 저 들것의 한 귀퉁이를 함께 잡고 갔을 거다. 그렇지만 지금은 시후를 걱정 없이 환자에 보내주는 게 더 중요해 보였다.
시후는 그렇게 쓰러진 남자를 데리고 해변을 빠져나갔다.
수인은 짐을 챙기며 시후가 사라진 방향으로 따라 걸었다. 리조트 내에 처치가 가능한 병원시설이 있지 않을 테고, 인근 병원까지 함께 간 건지 알 수 없어 답답했다. 그렇지만 시후라면 이보다 더한 위급 상황도 거뜬하게 해결할 남자이기에 수인은 믿었다.
갑자기 닥친 일이라 진행 상황을 알 수 없고, 휴대전화나 지갑조차 가지고 가지 않은 시후가 걱정이 되어 초조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환자가 발생한 긴급 상황인데 함께 달려갈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수인은 지금 의사이기 이전에 주니어 1호를 품은 엄마로서 아기를 지키는 일이 먼저였다.
“병원으로 출발했겠지?”
리조트 리셉션 건물 인근에서 앰블런스 소리가 들려왔다. 분명히 저 안에 시후가 환자를 직접 데리고 병원으로 향하고 있을 것 같았다. 역시나 그랬는지, 리조트 직원 하나가 수인에게 다가왔다. 수인은 긴장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환자와 함께 닥터 현은 앰뷸런스를 타고 갔습니다.」
「네. 그렇군요. 저는 여기서 기다릴게요.」
그리고 얼마나 기다렸을까. 대략 2시간은 족히 넘은 것 같았다. 수인은 의자에 앉아 있다가 일어나며 서성이다가 걸려오지 않을 게 뻔하지만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멍하니 리조트 정문을 향해 앉아 있는데 택시 하나가 리조트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수인은 혹시나 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택시로 걸음을 옮겼다. 곧 택시 문이 열리고 사정 이야기를 하는 시후가 보였다. 수인은 시후를 큰 소리로 불러가며 조금 더 다가갔다.
“오빠~”
“아. 수인아~”
수인은 얼른 시후의 지갑을 건넸고, 시후는 택시비를 지불하고는 안도하는 얼굴로 수인을 돌아보았다.
“택시비도 없이 간도 크네요?”
“그러게. 택시를 타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내리려니까 생각났어. 돈이 없잖아. 와. 우리 김수인 아니었으면 오늘 현지 경찰서 잡혀갈 뻔했다. 하하하.”
시후는 환자를 무사히 현지 병원에 이송하고 돌아왔다고 했다. 수인은 미소를 지으며 시후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힘들었죠? 고생했어요.”
“심근경색이었어.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지.”
시후는 이제야 하얗게 압박을 받은 손가락을 주무르며 웃어 보였다.
“오늘 저 남자 완전 행운아네요.”
“그렇지? 어떻게 내 눈에 딱 띄냐고.”
수인과 시후는 사람 하나 또 살려내고 서로를 칭찬하고 있었다.
“나 씻어야겠다.”
시후는 하얗게 말라붙어 버린 소금기를 비비적거리며 웃었다. 얼마나 급했던지 수영복 트렁크 하나 입고 병원을 다녀온 길이었다.
“진짜 현시후 씨. 못 말려. 이렇게 섹시하게 다 벗고 병원을 갔던 거예요?”
“그러게. 그래도 얼마나 다행이야. 트렁크 하나는 입었잖아.”
“아. 뭐야. 이 멋진 몸 사람들이 다 봤을 거 아니야?”
수인의 농담에 시후는 또 멋진 척 머리를 쓸어 올리며 웃어댔다.
룸에 들어온 시후가 샤워를 하는 동안, 수인은 과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초인종이 울렸다. 수인은 손을 닦고 누굴까 싶어서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현시후씨 계십니까?」
리조트 직원이 아니었고, 검은 선글라스를 낀 건장한 남자가 시후를 찾고 있었다. 때마침 샤워를 마치고 나온 시후가 이 상황을 보고 좀 놀란 표정으로 다가왔다.
“수인아. 무슨 일이야?”
“이분이 오빠를 찾아서요.”
「현시후씨 되십니까?」
영어 발음으로 시후의 이름이 어려운지 영 어색한 말투로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물었다. 시후는 누군지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내가 현시후입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남자는 시후가 본인이라고 밝히자 다시 한번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찾아온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조금 전 현시후씨가 살려내신 분은 모하메드 왕자십니다. 왕의 12번째 동생이시며 외교장관이십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시후도 수인도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뉴스나 인터넷 기사로 접했던 산유국의 어마어마한 갑부에다가 신분이 왕자님이란 말인가. 수인은 놀라서 시후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현시후가 누구인가. 놀란 수인에 비해 여기서 기죽거나 쫄릴 시후는 아니었다.
심부름을 온 남자는 시후를 찾아온 진짜 이유를 말했다.
「왕자님께서 건강을 회복하는 대로 인사를 따로 할 예정입니다.」
차후 일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남자에게 시후는 웃으며 말했다.
「저는 대한민국의 일반외과 의사입니다. 의사로서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건강 잘 챙기시라고 전해주십시오.」
그렇게 시후는 인사를 대신 온 남자에게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남자도 시후의 뜻을 존중하기로 하였는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을 하라며 금색 명함을 하나 건네주었다. 시후는 예의상 명함을 받아들었지만 부탁할 마음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 시후는 그렇게 예의를 다해 찾아온 남자를 돌려보냈다.
옆에서 여유롭게 대처하는 시후를 지그시 바라보던 수인은 시후의 팔뚝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어떻게 이 남자는 뭘 해도 이렇게 멋지지?”
“그치? 내가 생각해도 그렇다.”
수인의 어깨에 팔을 두르는 시후에게 수인이 말했다.
“아랍 왕자라는데 안 떨렸어요?”
“내가? 나 현시후야.”
수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방으로 왕자 아니라 왕자 할애비가 와도 절대 떨 시후가 아님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런 시후가 자신을 떨게 하는 유일한 사람, 수인을 내려다보며 웃었다.
“난 오직 김수인 앞에서만 떨지. 이렇게.”
시후는 치아를 닥닥 부닥쳐 가며 떠는 척을 했다. 수인에게는 이렇게 장난을 쳐도 너무 사랑스러운 시후였다. 꼭 껴안고 장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장해. 현시후 씨, 왜 이렇게 멋있어? 너무 멋져.”
“그래? 더 멋진 거 해줘?”
수인의 멋지다는 칭찬 한마디면 시후를 금세 팔색조로 둔갑시켰다. 시후는 수인 앞에서는 삐에로가 되어도 좋았다.
아니, 그보다 더한 뭐가 되어도 수인을 웃게 할 수 있다면 더한 것도 할 수 있는 남자가 현시후였다. 벌써 시동을 걸고 있는 시후에게 수인이 안 해도 될 질문을 해댔다.
“뭔데요?”
눈을 깜빡거리며 묻는 수인을 어느새 침대로 몰아간 시후는 눈썹을 실룩이며 스르륵 다가왔다. 그제야 수인은 예전에 시후 선배에게 홀딱 반해있던 후배 모드에서 확 깨어났다.
“이리와! 멋진 거 하러.”
시후의 목소리부터가 벌써 돌변해 있었다. 수인은 웃으면서 시후를 막 밀어내었다.
“꺄~ 미쳤어. 아직 해도 안 떨어졌어요!”
“핑계 댈 생각 하지 마. 나 현시후야.”
누가 모르나. 이렇게 속은 속대로 멋지고, 겉은 겉대로 멋진 남자가 현시후임을 수인은 이 세상 어떤 사람보다 잘 알았다. 그렇지만 무거운 몸을 해서 슬슬 도망치는 수인에게 완벽하게 미쳐있는 시후는 수인을 포박하듯 끌어안고 침대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