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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을 책임져 (73)화 (73/88)

특별 외전 2화

바짝 약이 오른 수인은 임신 5개월 치고는 좀 나온 배를 내밀며 건물 안으로 뒤따라 들어갔다. 샤워를 하는 소리가 들려오기에 수인은 씩씩거렸다. 이윽고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에 털며 시후가 나왔다. 

“배고프지? 아침 먹고 오늘은 숙소에서 쉴까?”

은근히 야한 웃음을 지어가며 시후가 다가왔다. 이미 전투력을 잃어버린 수인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내밀었다. 

진하게 달라붙는 시후의 입술이 뜨겁고 짜릿했다. 어느새 시후의 손은 젤리와 푸딩이를 어루만지며 수인을 점점 침대로 몰아갔다. 

“내 이럴 줄 알았어. 다 자기만 믿으라더니. 이번에도 또 침대에서만 있겠다고요?”

수인은 부른 배를 안고 펄쩍 뛰었다. 혼인신고를 하고 나름 신혼여행이라 생각하며 서울 호텔에 갔던 날이 떠올랐다. 온종일 침대에서 떨어질 줄 모르고 보냈던 기억밖에 없는 여행이었다. 

정신없이 수인의 몸을 어루만지던 시후가 등짝을 한 대 맞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다고 너 지금 나 때렸냐?”

“이봐. 암튼 선수야. 내 옷 다 어디 갔어요?”

잠깐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속도였다. 머쓱하고 또 야릇하게 웃던 시후가 수인을 끌어안았다.

“옷 벗기기 세계 선수권 대회 있으면 내가 1등 할 수 있는데.”

“또 한 대 맞아야 정신 차리죠?”

수인은 그 말을 해놓고 자기도 어이가 없어서 웃어버렸다. 그렇게나 어렵던 선배, 저 멀리 철벽을 철옹성처럼 쳐 놓았던 남자. 장대높이뛰기를 해도 닿을 수 없던 선배 현시후를 이리 대하다니.

웃고 있는데 배가 간질거려서 내려다보니 시후가 수인의 배에 얼굴을 붙이고 대화 중이었다. 

“잘 잤어? 우리 주니어, 모닝 인사 깜빡했네? 아빠는 엄마한테 이제 맞고 산다. 나 어떡하지?”

“뭘 어떡해요? 잘 해요. 쫌!”

“아아~ 잘하라는 그 말이었구나. 알았어. 잘 해볼게.”

어느새 얼굴까지 다시 올라온 시후는 29금 버금가는 키스를 막 퍼부어댔다. 수인은 얼마나 살아야 시후를 제대로 한번 이겨볼 수 있을까, 그 생각을 하며 시후의 허리를 꽉 움켜잡았다. 

연신 시후가 퍼부어대는 키스 소리가 요란했다. 아침 해가 뜬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수인은 벌써 기진맥진했다. 

“나 배고파.”

“아. 그래. 이런. 우리 수인이 배고프면 안 되지. 어서 일어나자.”

시후는 옷 벗기기 세계 선수권 챔피언처럼 옷을 입히는 속도도 엄청 빨랐다. 수인을 다 입혀 놓고 시후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조식을 주문하고 다시 돌아와 수인의 상태를 살폈다. 

“바이탈 사인 체크하겠습니다.”

시후는 그렇게 말하고는 이상한 방법으로 건강 상태를 체크해 나갔다. 수인의 가슴 한복판에 얼굴을 묻어 비비적거렸다.

“체온 정상입니다.”

그러더니 이번엔 입술에 입술을 붙였다.

“호흡 정상입니다.

수인은 기가 막혀서 어디까지 하나 보려고 기다렸다. 이제 맥박을 재는 듯 시후의 이마를 수인의 목덜미에 붙였다. 

“맥박도 정상입니다.”

“이마로 맥박 재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수인이 항변을 하는데도 시후는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다음 행동으로 옮겨갔다. 

“자 이번엔 혈압 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수인을 꼭 끌어안았다. 수인은 기가 막혀 시후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지만 눈은 이미 찢어져 올라붙었다. 

“혈압은 좀 높으시네요.”

“그죠? 누가 혈압을 자꾸 슬슬 올려 대서요.”

찢어진 수인의 눈을 힐끔 쳐다본 시후는 큼, 하고 기침 소리를 낸 뒤 아주 근엄하게 처방전을 내리고 있었다. 

“임신 중기니만큼 각별하게 건강에 신경 쓰십시오. 그러나 남편과 사랑은 자주 나누실수록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오니 자주 하시길 바랍니다.”

짝!

수인은 저도 모르게 시후의 허벅지를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아!”

“조식 왔어요.”

시후는 허벅지를 문질러 대며 식사를 받으러 출입문으로 뛰어갔다. 

얻어 맞은 것도 다 까먹은 얼굴로 시후는 연신 수인의 입에 음식을 들이밀었다.

“맛있어?”

“오빠도 얼른 먹어요.”

그렇게 서로를 챙기며 행복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수인은 샐러드를 한입 가득 우물거리며 신혼여행 일정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나 꼭 하고 싶은 것 있단 말이에요.”

“뭔데?”

시후는 고기를 포크로 찍어 수인의 입에 넣어주었다.

“스노클링이요. 다른 건 못해도 그건 할 수 있잖아요.”

“배도 타야 하고, 힘들면 어쩌려고?”

물론 수인이 걱정되어서 하는 말이었지만 수인은 입을 삐죽거렸다.

“희윤이가 자랑할 때 눈물 나게 부러웠다고요.”

“그랬어? 그러자 그럼. 아침 먹고 스노클링 알아보자.”

“진짜죠? 이번 여행도 침대에만 붙어 있으면 나 진짜 울어버릴 거야.”

“좋아서 우는 건 아니지?”

이미 수인의 손이 시후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리조트에서 아침을 맛있게 먹고 거기서 운영하는 스노클링 체험을 나섰다. 꽤 큰 배에 여러 명의 직원과 체험을 신청한 사람들이 배에 탑승했다. 시후는 너무 들떠 있는 수인을 걱정해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멀미 안 나겠어? 배에 충격은? 주니어 1호 이상무?”

“괜찮아요. 저기 저분도 임산부네요.”

수인이 앞쪽에 앉은 백인 여성을 가리켰다. 정말 그녀는 수인보다 배가 더 많이 나와서 누가 봐도 임산부였다. 시후는 그래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조금만 이상이 느껴지면 무조건 그만두는 거야. 알겠어?”

“아이참. 나도 의사야. 나도 안다고요.”

시후는 이번엔 선블럭을 꺼내 수인의 다리며 팔에 꼼꼼하게 발라댔다.

“아이참. 누가 발가락까지 선블럭을 발라요? 그만 해~”

“발가락도 타지. 이건 스킨 아니냐?”

하나 틀린 말은 없지만 무릎까지 꿇어가며 수인에게 선블럭을 발라대는데, 함께 하는 일행들이 자꾸 웃어댔다. 

“다 웃잖아요.”

“웃으라고 그래. 그래도 내 와이프 발가락 햇볕에 타는 꼴은 못 보니까.”

현시후를 누가 말릴 수 있을까. 수인은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자신만 보고 있는 시후 때문에 웃음이 나서 참기가 곤란했다.

“현시후 씨. 바다 좀 봐요. 왜 나만 보고 있어요?”

“어떻게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지?”

수인은 느끼한 시후의 말에 그냥 입을 가리고 눈을 가렸다. 그러자 팔불출 시후는 수인의 손을 내리려고 장난을 걸어왔다. 

“와. 국제적으로 부끄러워 미치겠다. 나는요. 정말 예전의 현시후 선배님이 그렇게 보고 싶네요. 냉기가 사르르 흐르던 냉미남 우리 현시후 선배님.”

“그 사람 다신 못 만난다고 했잖아. 한번 익어버린 달걀 같은 거야. 김수인의 새빨간 유혹에 넘어간 그 날 밤을 기점으로.”

두 손 두 발을 다 들어버렸다. 한 마디를 꺼내 놓으면 두 마디로 사람 기를 깔딱 넘게 하는데, 현시후를 누가 이길 수 있으랴. 

수인은 그냥 포기한 얼굴로 입술을 말아 물었다. 다행스러운 건 배는 이미 스노클링 포인트에 도착해 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수인아. 조금이라도 이상 있으면 바로 소리 질러. 알았지? 응?”

“알았어요. 오빠도 얼른 수경 써요.”

수인은 너무 즐거워하며 바다를 헤엄쳐 다녔다. 오색 찬란 바다 속 풍경은 환상적이었다. 에메랄드빛 바다에 일부분이 된 것처럼 수인은 물고기를 쫓아 신나게 헤엄쳤다. 

하지만 시후는 수인을 지키느라 애간장이 바닷물에 다 풀어질 듯 안절부절못했다. 

“오빠! 오빠!”

“왜? 수인아. 나 여기 있어. 왜? 어디 아파? 응?”

“오빠. 너무 멋지다. 저거 봤어요? 거북이?”

시후는 수인이만 쫓아다니느라 바다 속은 구경조차 해보지 못할 지경이었다. 배로 돌아와서도 수인은 바다 속 풍경이 멋지다며 이야기하는데, 시후는 그저 수인의 까만 머리만 따라 다녔던 기억만 남은 것 같았다. 

“섬에 도착하면 오빠가 스노클링해요. 나는 쉴 거야.”

“그래?”

시후는 이제야 안도하며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노심초사하느라 바다를 즐기지 못한 시후는 섬에 돌아오니 이제 살 것 같았다. 

그렇게 시후가 기대하는 섬에 도착하고, 곧바로 점심 식사 시간이 주어졌다. 고기와 빵, 열대 과일들이 제공되었고, 모두가 즐겁게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조금 뒤 리조트와 가까운 곳에서 스노클링을 자유롭게 하라는 시간이 주어졌다. 

수인은 제 걱정에 아무것도 못 하는 시후에게 미안해서 파라솔 아래 해변에 앉아 쉬었다. 신난 아이처럼 발에는 오리발을 끼고 스노클링 장비를 착용하고 시후가 바다로 달려갔다. 

“멋지다. 내 남자.”

떡 벌어진 어깨와 가슴, 길고 긴 다리, 매일 고된 수술로 단련된 잔 근육이 너무도 멋졌다. 이 바다에 있는 웬만한 남자들 중에 제일 건장한 것 같았다. 

물개가 따로 없었다. 온 바다를 왕복할 것처럼 활기차게 바다를 누볐다. 저렇게 수영을 좋아하면서 수인 걱정에 졸졸 따라만 다녔다니, 미안한 마음에 수인은 코끝이 찡했다. 

저 멀리 바다에서도 수인에게 손을 흔드는 시후였다.

“걱정 마요~”

수인도 잘 쉬고 있다며 수건을 흔들어댔다. 시후는 긴 두 팔로 하트를 만들며 바다에 풍덩. 하고 누워버렸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기도 하고 사랑스러운지 수인은 연신 사진을 찍으며 웃어댔다. 

그렇게 바다속에서 물개가 되어 스노클링을 즐기나보다 하는데, 시후가 스노클링 장비와 오리발을 다 내던졌다. 

“어? 뭐야?”

수인이 배를 감싸며 파라솔에서 일어나 시후를 보는데, 시후가 웬 덩치 커다란 남자 하나를 바다에서 끌어내고 있었다. 딱 봐도 응급상황이 틀림없었다. 남자는 축 처져서 백사장에 길게 흔적을 남기며 시후에게 끌려 나오고 있었다. 

수인은 좀 빠른 걸음으로 바다로 다가갔다. 시후가 남자를 끌자, 주변에서 하나둘 모여들어 시후를 거들었다. 

언제 달려왔는지 쓰러진 남자의 일행인 듯한 여자는 남자를 보고 울음을 터트렸다. 모래사장 위로 쓰러진 남자를 옮기자마자 시후가 다급한 듯 그 남자의 가슴에 귀를 붙여보고는 곧장 심폐소생술을 하기 시작했다. 

“뭐에요?”

“어레스트”

남자는 자가 호흡이 없고 심장도 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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