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날 밤을 책임져 (51)화 (51/88)

51화

왕 부장은 뜸을 들이는 척하다 심각한 얼굴로 겨우 입을 열었다.

“응급 수술실에 현시후 과장이 누워있어.”

조심스럽게 왕 부장이 말하는데 수인은 온몸에 피가 싹 가시고 손바닥이 따끔거릴 정도로 이상 신호가 왔다. 그녀는 격양된 목소리로 물었다. 

“왜 현 과장님이 수술실에 있어요? 부장님, 현 과장님 지금 서울에 계실 텐데요. 현 과장님 자동차도 없던데요.”

믿을 수 없다는 듯 수인이 계속 중얼거렸다. 그의 전화를 무시하기는 했지만 분명 문자를 받았다. 그의 모친이 다쳤다는 이유로 서울에 간다고 했다. 그러니까 지금 여긴 그가 있어서는 안 될 곳이었다. 정신이 반쯤 나간 수인을 보고 안타까운 얼굴로 왕 부장이 콕 찍어서 말했다. 

“저기 김 과장. 너무 놀란 것 같은데. 내 말은 현 과장이 환자로 누워있다고.”

환자라면 너무 익숙한 단어이고, 그 단어만 수억 만 번쯤 듣고 말했다. 그 뜻을 모를 리 없는데, 도무지 현시후와 환자가 매치할 수가 없었다. 멍청한 사람처럼 수인이 되물었다.

“예? 환자요?”

이미 수인의 발걸음이 응급 수술실로 향했는데, 왕 부장이 수인을 막아섰다. 급해진 수인은 왕 부장을 밀어내었다.

“아니. 김 과장. 내말 듣고 가.”

“많이 다쳤어요? 그런 거예요? TA라고 하셨잖아요. 현 과장님이 사고가 났다는 그 말씀인 거예요?”

목소리가 떨리고 왕 부장을 밀어내던 손에 힘이 스르륵 빠져버렸다. 환자라는 이름으로 하루 수십 명을 매일 보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터지고 깨진 환자도 척척 보는 강심장의 수인이었다. 

그런데 지금 다리가 떨려왔다. 그 모습은 필시 가족이 사고를 당해서 쫓아온 보호자의 모습이었다. 함께 일해온 지 벌써 2년이 넘었다. 이리 당황하여 떨고 있는 수인을 본 적 없는 왕 부장는 사실 좀 놀라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침착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좀 많이 다친 건 맞아. 김 과장이 좀 맡아주면 좋겠는데 할 수 있겠나?”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수인은 응급 수술실로 달려갔다. 그 앞에 간호사가 링거액을 준비중에 있었고, 수인은 수술실 버튼을 다급하게 눌러대고서 안으로 들어섰다. 

수술실 침상에 누워있는 시후의 모습이 보였다. 온통 얼굴부터 피를 뒤집어쓰고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만으로도 수인을 기절시키기에 충분했다. 벌벌 떨면서 수술실에 들어섰지만, 수인은 침착하고 싶었다. 속으로 외쳤다. 

‘나는 외과 의사다. 나는 외과 의사다.’ 

별의별 죽음의 문턱을 넘는 환자들을 봐오며 사는 수인이었다. 평소보다 이성을 잃기는 했으나 속으로 외쳤던 게 도움이 되었는지 좀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수인의 다급한 발소리도 듣지 못하는지 시후는 눈을 감고 있었다. 

수인이 다가가 시후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얼굴에 긁힌 자국이 많이 보였고, 피는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얼굴과 목덜미에 잔뜩 묻어 있었다. 그리고 기계, 의식적으로 환자 몸에 부착되는 기계를 쳐다보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선배.”

수인이 불렀고, 시후는 여전히 눈을 뜨지 않았다. 수인은 손을 뻗어 시후의 목덜미에 가져다 댔다. 팔짝팔짝 맥박이 뛰고 있었다. 피가 잔뜩 묻은 시후의 손을 잡았다.

“선배.”

불러도 또 대답이 없기에 수인은 호흡을 확인하려 몸을 굽혔다. 콧구멍으로 숨 쉬는 게 느껴졌다. 산소마스크에 하얀 김이 서리고 있고 가슴통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걸로 봐서 자가 호흡은 하고 있는 걸로 보였다. 

혹시 의식이 없는데 이리 혼자 누워있는 게 아닌지 걱정이 되어 그의 가슴께에 귀를 붙였다. 그렇게 귀를 가슴에 바짝 붙이고 심장 소리를 듣는데 시후가 눈을 떠서 두 사람의 시선이 딱 마주쳤다. 화들짝 놀라서 수인이 얼굴을 떼어냈다.

“뭐하는 거예요? 어떻게 된 거냐고요.”

산소마스크 때문에 쌕쌕 소리만 날 뿐 시후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때, 간호사가 링거를 꽃을 준비를 하러 들어왔다. 수인은 간호사를 돌아보며 물었다. 

“저. 김쌤. 현 과장님 어떻게 된 거예요?”

“TA로 ER로 들어오셨어요. 립 프랙쳐예요. 김 과장님께서 티어 사이트 보시는 거죠?”

이렇게 피를 온통 뒤집어쓰고 죽은 것처럼 누워있는 시후는 갈비뼈 골절에, 얼굴과 목덜미 가슴부위에 자잘하게 찢어진 상처가 있는 환자였다. 

이 응급 수술실에 들어서기까지 피가 온몸에서 다 빠져나가는 느낌으로 달려온 수인은 허탈해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나오는 건 한숨뿐이 아니고 눈물도 함께 나와버렸다.

“왜 사람 놀래켜요? 왜? 왜?”

목소리를 한껏 올려 말하는 수인의 상태가 이상했다. 시후는 울고 있는 수인을 보려고 갈비뼈의 통증을 간신히 참아가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통곡처럼 울음을 터트리는 수인을 보고 시후는 산소마스크를 아예 빼버렸다. 

갈비뼈 통증에 큰 소리도 못 내지만 쥐어짜듯 시후가 입을 열었다.

“수인아.”

“왜 놀라게 하냐고요. 왜요? 왜!”

그 사이 간호사가 피식피식 웃으며 시후의 얼굴에서 피를 닦아 내었다. 피를 닦고 보니 이곳저곳 깨진 유리창과 자동차의 파편들에 얼굴이 제법 긁히고 터져 보였다. 시후는 간호사의 손길을 정지시켰다. 

“저. 김 간호사 미안한데 자리 좀.”

“네. 그럴게요.”

간호사는 마지막으로 시후의 얼굴에 알콜솜을 살뜰하게 문질러 대며 또 피식 웃었다. 수인은 뒤돌아서서 눈물을 거칠게 막 닦아 내었다. 

김 간호사가 나가고 시후는 수인의 손목을 확 잡아당겼다. 그리곤 말했다.

“내 걱정 했어?”

걱정했냐고? 수술실까지 어떻게 들어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만치 놀랬다면 믿을 수 있을까. 수인은 야속하게 말하는 시후를 노려보았다. 멀쩡하게 서울 간다던 사람이 왜 여기 이러고 누워서 사람 놀래키는 지 정말 미워 죽을 것 같았다. 

“이게 뭐예요? 왜 사람 놀래키는데요?”

“김수인.”

수인은 흐르는 눈물을 다른 손으로 닦으며 시후를 바라보았다. 가슴에 통증이 오는지 일그러진 얼굴을 보는데 또 한 번 수인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나 죽을 뻔했어.”

“미쳤어. 미쳤어!”

시후는 손을 빼내려는 수인의 손목을 더 꽉 움켜잡았다. 사고가 나던 그 순간에도 수인이 보고 싶었다. 

“보고 싶었어.”

“지금 그런 말이 나와요? 미쳤어, 진짜.”

눈을 흘기며 울고 있는 수인이 이리도 예뻐 보일 수가 있을까. 시후는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정말 그 순간에도 너만 보고 싶더라. 나 미친 거 맞나봐.”

그런 수인이 제 앞에서 제 걱정으로 눈물을 짓고 있음에 감격을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우느라 시후의 얼굴도 제대로 볼 정신이 없는 수인에게 시후가 나긋하게 말했다. 

“나 좀 봐.”

“보긴 뭘 봐요?”

너무 미웠다. 왜 이런 사고를 당하고 이렇게 누워있는건데. 너무 미운 감정에 수인은 눈물을 훔쳐내던 손으로 시후의 가슴을 통하고 내리쳤다. 

“억!”

야무지게 한 대 맞고 시후는 입을 벌린 채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엄살 같지 않은 소리에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수인은 갈비뼈 골절이라는 생각이 퍼뜩 떠올라서 미안한 마음으로 가슴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손바닥에 느껴지는 이 체온이 얼마나 감사한지, 수인은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미안해요.”

“나 립 두 개나 나갔어. 숨쉬기도 힘들다고.”

그의 넓은 가슴을 수인은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성질대로 아픈 그를 때린 걸 금세 후회했다. 

“미안해요.”

그 말을 하는 수인을 시후가 아픈 갈비뼈를 불사하고 잡아당겼다. 훅하고 끌려간 수인은 시후의 얼굴 앞에 멈춰 섰다. 두 눈이 딱 마주한 순간, 수인은 이 남자 현시후를 거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머리에 정확하게 박혀버렸다. 

그건 시후도 마찬가지였다. 죽을뻔했던 그 순간에도 보고 싶었던 여자, 이젠 그녀 없는 삶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시후였다. 그리고 확신했다. 이제 둘은 서로를 절대로 밀어낼 수 없다는 것을.

“키스해줘. 살아왔으니까.”

“나 두고 죽으려고 했어요?”

“절대 못 죽지. 너 두고.”

두 사람은 이곳이 그들이 매일 같이 구슬땀을 흘려가며 환자들을 구해내던 공간이라는 것도 잊은 채 서로에게 빠져들어 키스를 나누었다. 수인은 더 이상 그를 거부할 수 없었다. 아니, 이제는 거부하기 싫었다. 

더는 그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기 싫었고, 더는 그를 밀어내고 아파하기 싫었다. 이젠 모든 게 끝난 것 같았다. 이제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사는 수밖에 없었다. 

한없이 이어질 것 같던 두 사람의 진하고 진한 키스에서 수인이 먼저 입술을 떼어내었다. 둘의 입술에서 만들어진 야릇한 소리가 경건한 수술실에 야하게 울려 퍼졌다. 부끄러워진 수인이 붉어진 귀를 두 손으로 감쌌다. 그리곤 시후를 바라보았다. 

아련한 표정의 시후가 꿈을 꾸는 듯 미소를 지었다. 이제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마음 가는 그대로 보고 있었다. 잘생긴 시후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수인의 시선에 시후의 상처들이 보였다. 여기저기 터진 상처를 하나하나 확인하기 시작했다. 

꽤 깊은 상처가 쇄골 부위에 하나 있었고, 천만다행스러운 일은 얼굴에는 깊은 상처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쇄골 부위에서 임시로 덮어 두었던 거즈에서 피가 제법 스며 나오고 있었다. 

“먼저 수처부터 해요. 이게 뭐야.”

“얼굴 많이 다쳤지?”

시후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 보이니 수인은 기가 막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다 살아났다며 키스를 해달라던 남자가 장난꾸러기같이 눈을 뜨고 수인을 보고 있었다.

“그러네요. 얼굴이 아주 엉망이 됐네.”

자꾸 껴안으려는 시후를 밀어내고 수인이 출입문 쪽에 놓인 수술 도구를 챙기려고 일어났다. 그런데, 아뿔싸! 수술실 문 앞에 꽤 많은 사람들의 머리가 막 움직였다. 

수인이 출입문 쪽으로 다가가자 머리통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눈앞에서 사라졌다. 입을 손으로 가리고 출입문의 유리 부분을 까치발로 해서 내다보니 응급실 직원들이 죄다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중에 왕 부장도 있어서 수인은 그냥 이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고 싶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