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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을 책임져 (35)화 (35/88)

35화

고개를 뒤로 젖히는 것뿐 할수 있는 게 없었다. 그의 깊어진 키스를 고스란히 받아내며 수인은 울음을 터트렸다. 깊은 키스에 무아지경이던 시후가 번쩍 눈을 뜨고 울음을 터트린 수인을 보았다.

“왜? 수인아. 왜 그래? 키스가 싫었어? 내가 키스해서 싫어? 그럼 미안해.”

싫지 않았다. 늘 좋아서 문제였다. 수인은 시후의 걱정을 듣지 못한 사람처럼 그냥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너무 좋았다. 

자신을 원하는 시후만큼 수인 또한 그의 넓은 가슴에 안기고 싶었다. 사실 처음엔 장난 섞인 그의 농담에 기겁을 하긴 했었다. 하지만 뒤늦게 그런 상상도 해보았다. 

만일 그때 피임을 안 해서 덜컥 아기가 생긴다면 어디론가 숨어들어서라도 혼자 낳아서 키워볼까. 그 생각을 했던 수인이었다. 

그런데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그날 밤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첫 경험이었지만 너무 좋았다. 처음임을 밝히지 않았지만 시후의 배려는 너무도 달콤하고 깊었다. 

늘 완벽하다고 생각하던 선배 시후는 남자로서도 완벽하고 완벽했기에 더 좋아졌다. 그 커진 마음을 감추며 수인도 너무 아팠다. 억지로 밀어내기에도 이젠 진이 다 빠진 것 같았다. 그냥 이대로 흘러가 볼까. 

큰 폭풍우 앞에 종이배를 탄 신세겠지만, 사랑 하나 의지하고 사는 것도 행복하지 않을까. 바보같이 생각해보던 수인이었다. 지금도 나풀거리며 흔들리는 수인은 시후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수인아. 울지 마라.”

“자꾸 선배가 울리잖아요.”

다시 한 번 수인을 끌어안고 시후는 깊은 키스를 해주었다. 그의 달콤하고 완벽한 키스가 눈물 나게 좋아서 이대로 그를 끌어안고 모래 바닥에라도 쓰러지고 싶었다. 이대로 누가 말릴 틈도 없이 무아지경에 빠져들어 버리고 싶은 충동에 수인은 몸이 뜨거웠다. 

시후 역시 이미 달아오른 몸에서 열꽃을 터트리고 있었지만 그들의 달콤한 시간을 사정없이 깨어버리는 전화벨이 자꾸만 울려댔다. 그것도 동시에 두 사람의 전화가 경쟁을 하듯 죽어라 울어댔다. 

“전화 왔어요.”

“응?”

시후는 아득해진 정신을 겨우 잡은 채 눈치 없이 계속 울어대는 원수 같은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다. 수인도 슬그머니 바지 뒷주머니에 꽂아준 휴대전화를 끄집어내었다.

“누구야?”

시후가 먼저 수인의 휴대전화를 함께 내려다보며 물었다. 수인은 좀 난처해진 얼굴로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가 되어 말했다.

“진창욱 간호사요.”

“이 새끼. 죽고 싶나.”

난데없는 욕설에 수인이 화들짝 놀라서 시후를 올려다보았다. 큰 키의 시후가 승모근을 쫙 펴서 화를 그리로 다 보냈는지 덩치가 커다란 북극곰 같았다. 

“아니 왜 안 하던 욕은 하고 그래요?”

“욕 안 하게 생겼어? 너한테 찝쩍대잖아. 내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동갑이라 친하게 지내는 것뿐이에요. 알잖아요.”

알긴 개코를 아나. 질투에 눈이 먼 남자의 눈에는 그저 같은 수컷으로 보일 뿐이었다. 그 와중에 수인은 부르르 떨고 있는 시후의 휴대전화를 확 빼앗았다.

“이건 뭐라고 설명할 거예요?”

눈을 내리깔고 시후의 휴대전화를 확인하고는 손에 다시 돌려줬다. 시후는 그제야 제게도 걸려 온 전화를 확인하였다. 오늘 처음 의료봉사에 합류한 최나리였다. 

“어린데다 글래머잖아. 현시후 좋다고 아주 정열적이던데. 아주.”

수인의 그 말에 시후가 고개를 살짝 비틀었고, 입은 꾹 다물었다. 수인을 노려보는 건 아닌데 시선이 좀 따끔거렸다. 수인은 삐진 듯 돌렸던 시선을 시후에게 딱 맞추었다.

“내가 좋아하는 글래머는 김수인 하나뿐인데.”

“어머!”

“말 나온 김에, 물어봐야겠다. 너무 궁금해서 내가 몇 날 며칠을 못 잤거든. 나 궁금한 거 못 참는 거 알지? 이 상황에서 이상할 수도 있는데, 아 도저히 안 되겠다. 이거 하나만 묻자.”

대체 뭘 물어보려는지 감을 못 잡은 수인이 눈을 반짝였다.

“대답해줘.”

“뭘요?” 

진지한 시후의 모습이 완벽하게 나타났다. 마치 수술환자를 앞에 두고 어느 방향으로 어떤 술기로 수술을 해나가야 하는지 고심하는 학자 같은 표정이었다. 

“너 글래머 맞잖아. 그동안 어떻게 이 가슴을 숨기고 다녔던 거야?”

말문이 터진 사람처럼 시후의 말은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수인은 슬그머니 고개를 숙여 제 가슴을 내려다보고는 얼른 손으로 가슴을 가렸다. 

“미쳤어! 어머?”

“내 말이 그 말이야. 너 어떻게 그동안 감추고 살았냐? 아무리 생각해도 풀리지 않잖아.”

이제야 예전의 시후로 돌아온 것 같았다. 비록 야한 말이나 하고 이상한 말을 하는 게 시후답다는 건 아니지만 그에게는 특유의 유들거리는 말투가 있었다. 

어지간한 말싸움에도 결코 지지않을 것 같은 안정감과 어떤 감정 공격에도 끄떡하지 않을 자신감이 그의 말속에 숨어 있었다.

“속옷으로 숨겨지는 거였어? 아님 뭐 다른 장치가 있나?”

“어머 뭐래? 미쳤어. 현시후!”

수인이 도망치듯 걸었고, 시후는 고개를 계속 갸웃거리면서 웃었다.

“아. 대답 좀 해줘. 너 디컵은 되지? 근데 겉으론 비컵도 안 돼 보인단 말이지.”

중얼거리며 따라오는 시후 앞에 수인이 딱 멈추었다. 그리고 사정없이 그를 째려보았다. 

“여자 많이 만져봤나 봐? 성형외과 전공도 아니면서?”

“어? 내. 내가? 내가 어디서 만져봐? 너 몰라? 나 일반외과 전공이야. 주로 그것도 소장 대장 전문.”

누가 그걸 모르나? 현시후라면 퀴즈 문제를 풀어도 백 점 만점에 백 점 맞을 자신이 있는 수인이었다. 그 긴 세월 수인에게 축적된 현시후에 대한 정보가 얼마나 방대한데. 설마 현시후를 모를까. 여자라고 해봐야 꿈에서도 만나기 싫은 장예원 선배 하나라는 걸 수인은 너무 잘 알아서 탈이었다. 

그러나 또 한 여자가 현시후 앞에 어른거리는 게 지금 문제라면 문제였다. 꿈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절대로 만나고 싶은 않은 여자 이도희였다. 

“저리 가요!”

“대답 안 해줄 거야? 만지지도 못하게 하니까 더 궁금해.”

“남자가 왜 이렇게 질척거려요?”

수인은 그를 밀어내면서도 그의 장난기 어린 얼굴이 좋아서 웃음이 났다. 이렇게 웃고 사는 게 시후에게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가 다시 웃고 있어서 수인은 지금 장난이 짓궂다고 해도 용서가 다 될 것 같았다. 

“아. 미치게 궁금하네.”

“저리 좀 가요! 은근슬쩍 또 왜 이래요?”

수인은 어느새 자신을 끌어안고 있는 시후를 밀어내었다. 그의 몸이 닿으니 좋아서 죽겠는 감정을 억지로 숨기고 자꾸 밀어내었다. 수인이 민다고 밀릴 덩치도 아닌 시후가 계속 껄껄 웃으며 밀리는 척했다. 

“뭘 저리 가? 이리 안 와? 나 이제 너한테 간다. 안 받아주면 울며불며 아주 쌩쑈를 다 해버릴 거니까 말리지 마.”

“안 돼!”

수인이 냅다 도망치듯 방향을 틀어 파라다이스 펜션 쪽으로 뛰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여기서 날아간다 해도 시후의 몇 걸음이면 잡힐 수인이었지만 이쯤에서 내빼는 게 상책인 것 같았다.

“뭐가 안 돼? 너야말로 안 돼. 키스가 오늘 증거야. 나 너한테 침 발랐다.”

“어머어머. 미쳤어. 이 남자. 못하는 소리가 없네?”

“침만 발랐나? 아 안 되겠다. 너 이리와.”

갑자기 수인을 확 잡아당겼다. 워낙 힘도 좋은 그라서 수인의 몸이 그저 스카프 하나 휘날리듯 펄럭거렸다. 그리곤 다짜고짜 수인의 입술에 물집이 잡힐 만큼 흡입 키스를 쪼옥 빨아들이고는 목덜미로 입술이 내려갔다.

“뭐 하는 거예요? 뭐야~”

“침 바른 걸로는 안 되겠어. 도장 찍어야지. 그 새끼 때문에 신경 쓰여.”

수인은 너무 놀라서 시후를 냅다 밀어내었다. 장난인데도 찌릿해서 술이 다 깨어버렸다. 

“미쳤어요? 아버지도 계신 데 뭐하자는 거야? 모쏠이라고 제 입으로 고백한 딸내미가 목덜미에 키스 마크 떡하니 달고 다니면 참도 좋아라 하시겠어요? 네? 말씀 좀 해보세요. 현시후 선생님?”

수인의 아주 구구절절 다 옳은 소리에 시후가 머리를 긁적였다. 미안해져서는 또 반해 죽을 것 같은 미소를 대방출하고 있었다. 저 얼굴에 더는 뭐라 할 수도 없어서 수인은 토라진 척했다. 

그러자 시후는 수인을 번쩍 들어 안았다. 그때 수인의 휴대전화가 또다시 죽어라 울어댔다. 

“누구야? 그 새끼야?”

시후의 눈이 매섭게 찢어져 올라갔다. 수인은 휴대전화를 조심스레 내려다보고는 큰소리를 쳤다. 

“아버지요!”

“아~ 얼른 받아.”

“이러고 받으라고요? 남자한테 안겨서? 모쏠이라고 제 입으로 고백한 딸내미가 야밤에 남자 품에 안겨서 전화 받으면 참도 좋아라 하시겠네요.”

수인의 말에 큭큭 웃으며 시후가 살며시 수인을 내려놓았다. 갑자기 사라진 수인 때문에 김정수 원장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아버지. 저 잠깐 바다 보러 나왔는데요.”

- 아. 그랬구나. 진창욱 간호사가 너 어디 갔냐고 묻길래. 시후하고 같이 간 거야?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순간 당황하였다. 예전이라면 그게 뭐 대수롭지도 않거니와 너무 당당한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상하게 조심스러워진 느낌이랄까. 대 놓고 말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네. 걷다 보니 여기 있네요. 현시후 선배가요.”

거짓은 적어도 없었다. 정말로 무작정 바다를 보며 걷다 보니 시커멓게 먼저 나와 서 있던 시후를 만난 거니까. 시후는 연신 웃어댔다. 전화를 끊고 손을 꼭 잡는 시후의 손을 밀어내었다.

“아직 아무것도 바뀐 건 없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접촉하는 거 금지.”

“아직? 얼마나 더 기다려?”

또 주눅 든 아기 고양이처럼 덩치는 북극곰 같은 시후가 수인의 눈치를 살폈다. 축 처진 눈매를 보면 야멸치게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수인은 고개를 돌렸다.

“선배 후배였던 그때로 돌아가요. 나는 그러고 싶어요.”

불가능한 일이란 걸 수인은 잘 알고 있었다. 한번 넘은 선을 어떻게 안 넘은 척 할 수 있을까. 

“우리 그럼 스킨십은 해도 되는 거지?”

“선배 후배일 때 우리가 언제 스킨십을 했어요?”

“그랬나? 했던 것 같은데.”

억지를 부려 보려 해도 이만큼 수인이 양보하는 것 같아서 더는 조를 수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 해요. 딱 선배 후배인 그 상태까지 만이예요.”

“그래. 알았어. 그런데 수인아. 다리 아프지 않아? 선배가 좀 안아주면 안 될까?”

이 남자 현시후 때문에 딱 미칠 것 같았다. 수인은 괜스레 밤하늘에 둥실 떠 있는 달을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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