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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을 책임져 (2)화 (2/88)

2화

이미 만취 상태가 되어 지금 자신의 손이 바지춤 근처를 더듬고 있는 줄도 모르는 것 같았다. 시후는 당황한 기색으로 턱 아래 수인을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수인의 적나라한 앞부분이 신경 쓰였고, 수인의 붉고 탱탱하게 부풀어 오른 입술이 더 잘 보이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수인의 손이 자신의 몸을 거침없이 더듬어가자 시후는 더욱 당황해버렸다. 

“야. 김수인!”

와인을 이미 두 병째 나눠 마셨기에 호흡은 거칠어졌고 빨라진 심박동에 취기가 더 빨리 오르는 것 같았다. 제 몸이 사정없이 수인에게 반응하는 통에 시후는 뇌에 산소가 부족해진 느낌이었다. 수인은 더더욱 과감하게 밀어 밀어붙였다.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나는 샴푸 냄새에 시후는 금방이라도 굴복당할 것 같았다. 

“어. 어. 너.”

“말 좀 그만해요.”

수인은 시후의 목덜미를 끌어당겨 꼭 껴안았다. 허리가 앞으로 숙여지며 맞닿은 그녀의 얼굴에 시후는 심장이 금방이라도 탈출할 것처럼 날뛰었다.

“오늘 아니면 안 돼.”

“……?”

귀속을 간질이며 들려오는 말을 심장 떨며 듣고 있는데, 그녀의 입술이 시후의 뺨에 닿더니  입술로 다가왔다. 완벽한 암전이었다. 

머릿속의 생각은 정지했고, 뜨고 있는 눈에는 자극만이 가득했다. 그녀의 입술 감촉이 찌리릿 전기를 타듯 시후의 입술로 전해졌다. 어느새 벌어진 입술 사이로 서로의 뜨거운 숨이 오고 갔다. 

와인의 텁텁하지만 달큼한 향기가 더해져 두 사람의 키스는 점점 더 농밀하고 격렬해졌다. 그녀가 시후의 바지 버클을 풀고 지퍼를 내렸다. 지퍼까지 열린 시후의 반바지는 힘없이 주르륵 발아래로 흘러내렸다. 

수인은 시후의 배꼽 언저리에서부터 복근을 더듬어 옆구리로 향했고, 시후의 얇은 티셔츠를 들어 올렸다. 시후는 머리 위로 팔을 뻗어 티셔츠를 벗어 던졌다. 이제 수인과 시후의 몸에 남은 건 천 쪼가리 하나씩뿐이었고 시후가 수인의 슬립을 먼저 벗겨내었다. 

12년 그녀를 알고 지냈다. 그녀에 대한 시후의 생각은 명료했다. 착하고 성실하고 예쁜 여자 후배 김수인. 그런데 살결이 맞닿은 지금 시후의 생각은 달라져 버렸다. 

늘 수술복에 감춰져 있던 몸은 완벽한 여자의 몸이었다. 매끄러운 피부, 남다른 볼륨의 몸매, 도발적인 도톰한 입술, 지금 김수인이 여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도 거부할 수 없는 새빨간 매력의 여자.

“수인아.”

“쉿!”

수인은 시후의 침대 위에 머리카락을 사방으로 흩날리며 누웠다. 긴 머리카락과 빛나는 나신이 시후의 침대 위에 펼쳐졌다. 수인은 두 팔을 교차해 몸을 가리듯 모았다가 탄성에 튕기듯 팔을 풀어내었다. 시각이 이미 마비된 남자에게 그 출렁임은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자극이었다. 

둘 사이에 높게 높게 쌓아 올렸던 선후배로서의 경계와 거리 따위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당겨진 방아쇠였고, 이제 정확하게 표적지에 날아가 박힐 일만 남은 듯했다. 남자는 하나의 총알이 되어 수인의 몸을 향해 빠른 속도로 박혀 들었다. 

***

알람 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알람 소리였지만 시후는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온몸이 타버릴 것 같던 지난밤의 그 열감 속에 폭 빠진 채 조금만 더 침대 속에 있고 싶었다. 하지만 마지막 경고 같은 알람 소리에 억지로 눈을 떴다. 

새벽까지 몇 번이고 지치지 않고 끌어안았던 그녀, 그녀가 분명 품 안에 잠든 걸 확인했는데 눈을 떠보니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

시후는 이불을 걷어내었다. 벌거벗은 그의 몸이 그녀의 존재를 확인해주었다. 온통 그녀가 남긴 붉은 키스 마크가 선명했다.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왜 그동안 수인을 못 알아봤을까. 심장을 사정없이 후려칠 만큼 이렇게 도발적이고 강렬한 몸의 대화가 가능한 여자일 줄이야. 자꾸만 지난 밤이 떠올라 혼자 볼까지 빨개져 버렸다. 

이 앙큼한 김수인, 부끄러워서 내빼 버린 게 분명해 보였다. 얼른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오늘따라 출근이 왜 이리 하고 싶은지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시후는 20분 거리에 있는 자신들이 근무하는 수성의료원으로 미친 듯이 달려갔다. 조금 더 서두르면 수인의 얼굴을 한 5분가량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서 빨리 할 일을 해치우자며 5층 입원실로 달려드는데, 웬일인지 시후가 수술했던 환자들 모두 드레싱까지 말끔하게 끝난 상태였다.

“김 과장님이 해주셨어요.”

입원실 담당 간호사가 환자들의 수술 부위를 보고 있는 시후에게 귀띔을 해주었다. 어젯밤 온몸을 던져 유혹해 놓고 많이 부끄러웠나, 온다 간다 말 없이 사라져 놓고 출근은 또 언제 한건지, 생각할수록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왜 이리 이쁜 짓을 다할까. 

시후는 피식거리며 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어디에 있는지 어서 빨리 찾아내어 꽉 끌어 안고 싶었다. 꼭 끌어안고 입술에 피가 쏠리도록 키스를 해주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시후는 입원실에서 내려와 외래 진료실 복도를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자신의 진료실 바로 맞은편 수인의 진료실을 보는데 문짝만 보아도 미소가 지어졌다. 앙큼하고 귀여운 김수인, 지금 어떤 표정인지 너무 보고 싶어 수인의 진료실로 접근하는데, 시후의 담당 간호사가 서류 뭉치를 한 아름 끌어안고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시후의 평상시보다 더 활기찬 인사에 담당 간호사가 조금 놀란 눈으로 시후를 보았다. 사랑에 빠진 남자의 얼굴은 하룻밤 사이 달라도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자기를 빤히 쳐다보는 눈빛이 부담스러웠던 시후는 머쓱하게 한번 웃은 뒤 재빨리 자신의 진료실로 방향을 틀어 들어가 버렸다. 

한편 사랑을 끝내려는 여자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도 어둡고 침울했다. 쾌활명랑함이 트레이드마크인 그녀가 세상 다 산 얼굴로 오전 외래 진료를 보고 있었다. 

머리가 복잡하면 몸이라도 혹사하자, 그렇게 생각한 수인은 좀 더 빠른 속력으로 진료를 보고 처방전을 더 꼼꼼하게 쓰고 있었다. 그때, 병원 내 응급실 호출 소리가 들려왔다. 전화벨도 연신 울렸다. 수인은 벌떡 일어나 응급실로 달려갔다. 

다중 교통사고가 발생해 이미 응급실 배드는 경중의 환자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먼저 당도해 있던 시후가 제일 상태가 안 좋은 환자를 확인하고 수술실 스케줄을 잡고 있었다. 수인은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앞에서 복잡한 감정과 생각은 잠시 잊고 환자들만 생각하며 시후와 손발을 맞추기 시작하였다. 

“이 환자 먼저 2번 OR로 옮겨요. 이 환자 오피 랩 빨리해주고요.”

시후의 지시에 간호사는 수술전 검사에 필요한 행동을 재빨리 했고, 환자의 침대가 수술실 방향으로 움직였다. 

수인은 재빨리 옮겨지는 침대 끝을 밀었다. 

“내가 어시할게요.”

“오케이. 삽관하고 CT먼저 찍자.”

“네.”

수인과 시후는 한시가 급한 일이라 거의 뛰다시피 침대를 밀고 함께 수술방으로 들어섰다.

수인과 시후가 이렇게 수술실에서 손발이 맞춰 온 지도 어느새 6년째였다. 중간에 시후가 군의관으로 군에 다녀온 3년을 빼고 수인이 본과 2학년 무렵부터 지금까지 둘의 인연의 세월만 해도 올해로 12년째였다. 

수인은 시후의 눈빛만 보아도 어떤 방향으로 길을 잡아갈지 훤히 알았고, 손끝만 보아도 이번엔 어떤 수술 도구가 필요할지 알았다. 그렇게 잘 맞춰 오늘도 다발성 장기 출혈이 있는 환자를 무사히 구해내었다. 4시간에 걸친 수술이어서 힘은 들었지만 만족스러운 수술이었다. 

“고생했어.”

평소와 다름없는 인사였지만 수인은 그의 미소를 볼 수가 없었다. 인사를 건네는 시후의 눈을 피해 수술복을 수거함에 말아 던지며 수술실을 먼저 나가버렸다. 그녀에게 찬바람이 느껴지기는 하였으나 너무 과민할 필요는 없었다. 

그녀와 보낸 뜨겁던 밤이 엄연히 존재했고, 무엇보다 처음인 그녀가 수줍어한다면 남자로서 큰 품으로 안아 줄 생각이었다. 적어도 공과 사를 구분하려는 그녀의 태도라고 생각하니 더욱 마음이 끌렸다. 그리고 지금은 애가 타게 기다릴 환자 보호자에게 수술상황을 설명해야 하는 집도의 입장이 먼저였다. 

급한 일을 먼저 처리하고 계속된 진료를 한 후에 시후는 수인을 찾아 그녀의 진료실 앞을 서성였다. 벌써 점심을 먹으러 갔는지, 진료실은 텅 비어 있고 담당 간호사마저 보이지 않았다. 

보통 때 같으면 점심 먹자고 웃으며 들이치는 수인인데, 어젯밤이 무척이나 수줍기는 한 모양이었다. 그 생각을 하니 그의 심장이 떨려왔다. 왜 진작 그녀를 몰라봤을까. 왜 김수인을 여자로 보지 못했을까. 

그 긴 세월 자신의 곁에 있던 그녀인데. 사랑에 데인 남자라 스스로 눈을 감고 살았던 자기 탓이지만 이제라도 그녀를 제대로 볼 수 있어 다행이었고, 이제 제대로 그녀를 여자로 대하고 싶었다. 그녀를 찾아 식당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이 급해졌다. 

그러다 직원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 수인이 드디어 시후의 시선에 가득 들어찼다. 확인만으로도 배꼽 언저리가 찌릿한 게 이 얼마 만에 느껴보는 몽글몽글한 사랑 감정인지 모른다. 아마 지금 누군가 자신을 한 대 때린다 해도 아픈 줄도 모를 것 같았다. 

배식을 받아든 시후는 한 마리의 나비라도 된 듯 수인 곁에 찾아 들었다. 밥 먹는 모습마저 예뻐 죽겠는데, 어서 빨리 눈이라도 맞추고 싶은데 수인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애가 타는 남자는 긴 다리를 뻗어 그녀의 다리를 건드리며 비밀스럽게 아는 척을 해댔다. 그제야 수인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쳐다보니 현시후가 수인을 보는 눈에 꿀이 뚝뚝 떨어졌다. 

“괜찮아?”

키가 188센티에 거구인 남자가 첫사랑에 빠진 사춘기 소년처럼 볼에 홍조를 띠고 물었다.

“……!”

젓가락을 물고 있던 수인이 인상을 구기며 시후를 쳐다보았다.

“새벽까지 내가 좀 심했나? 너 처음인데 내가 좀 과했지?”

눈치 없는 사춘기 소년은 나름 작게 말하고는 있었지만 마주 앉은 수인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흠!”

수인은 헛기침을 크게 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 남자의 눈에는 수인밖에 보이지 않는 듯 했다. 시원스럽게 커다란 두 눈이 웃음기를 띠고서 둥그렇게 휘었다.

반면 수인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이 사태를 어쩌면 좋을지 고민하는 눈빛이었다. 

기다리다 지친 시후가 테이블 밑으로 은근히 다리를 뻗었다. 비밀스럽게 다가온 다리가 수인의 다리를 슬쩍 건드리며 비벼왔고, 부드럽게 휘어진 눈으로는 수인을 녹여낼 듯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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