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1. 제국의 실세가 된 오드리아
라미엘이 결심한 순간 모든 것은 일사천리였다. 그 과정의 부속물처럼 황태자의 처분 역시 결정되었다. 그의 마지막 몸부림은 소용없었다.
결국 황태자가 폐위당했다.
그는 목숨만은 부지하여 먼 곳으로 유배를 갔지만 그곳에서 몇 날 며칠이고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저택을 지키는 병사들에게 패악질을 하다가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평생 가장 귀하게 자라 온 그가 제 비참한 처지를 인정하는 것은 죽음보다도 끔찍한 일이었으리라.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이는 아무도 없는 죽음이었다.
“황태자가 죽은 건 제국의 축복입니다.”
심지어는 이런 표현을 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최악의 존재로 사라졌다.
라미엘은 황태자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황제와의 관계가 회복된 것은 아니었다.
황제는 라미엘을 볼 때마다 언제나 미소를 지으며 반겼지만 라미엘은 그를 아버지가 아닌 황제로 대했다. 그저 필요한 만큼 예를 다할 뿐 그 이상 마음을 열지 않았다.
“라미엘에게 든든한 배경이 되어 줘서 고맙구나.”
황제는 인사를 올리러 온 오드리아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녀라면 황제인 자신보다 더 단단하고 흔들리지 않는 힘이 되어 줄 것이다.
“덕분에 내가 마음을 놓을 수가 있어.”
황태자의 세가 죽었다고 해도 라미엘을 얕잡아 보는 세력들이 아직은 많았다. 하지만 황제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언제나 한계가 있었다.
“걱정 마십시오. 폐하.”
오드리아는 황제에게 믿음을 주었다. 또한 그 약속을 지킬 것이다.
라미엘이 그 누구보다 훌륭한 황제가 되도록 오드리아가 그의 곁을 지킬 것이다.
* * *
“언제 황궁으로 가는 거야?”
쥬아나가 오드리아에게 물었다. 라미엘이 실질적인 황태자의 대접을 받고 교육을 받고 있지만 아직 트루디 공작가에서 머물고 있었다.
하지만 임시일 뿐 준비가 되는 대로 약식으로 마련될 예정인 황태자 즉위식을 치르고 황궁으로 들어갈 예정이었다.
“이제 곧 갈 것 같아요.”
“그럼 이제 곧 오드리아도 저택에 없겠네. 허전하겠다.”
갑자기 제레미아가 침울해졌다.
사실 황궁으로 떠날 준비가 조금씩 지연되는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이 바로 제레미아였다. 그는 오드리아가 더 이상 공작가에 없다는 사실에 침울해했다.
“만약 황제가 되었다고 해서 우리 리아를 조금이라도 무시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황제의 자리에서 끌어내려 주마.”
“황제의 자리는 얼마든지 가져가셔도 됩니다. 하지만 오드리아는 절대 안 됩니다.”
라미엘이 단호하게 말했다.
“웃기는군. 네게 문제가 생기면 바로 리아부터 다시 데려올 거야.”
이런 말도 안 되는 가정을 두고 진지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오드리아는 아직도 어려웠다.
차라리 쥬아나처럼 마음 편하게 구경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오드리아는 그렇게는 되지 않았다.
“저는 황후가 되어도 트루디 공작가의 가족이에요. 그건 변할 수 없는 거잖아요.”
“……리아.”
제레미아의 얼굴이 감동으로 일렁였다.
“그러니 문제가 생긴다면 바로 오빠에게 달려올게요.”
“오드리아! 내가 그럴 리가!”
라미엘이 억울함에 언성을 높였을 때였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요.”
라미엘이 서운함을 토로하기 직전에 오드리아가 그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모두를 녹이는 듯한 미소였다.
“그러니 오빠가 대신 황궁에 자주 와 주세요.”
오드리아는 두 사람을 달래고 합의점을 찾아 제안했다. 그에 제레미아는 오드리아의 상냥함에 다시 한번 감동했다.
“시간 날 때마다 갈게.”
제레미아가 오드리아에게 몇 번이고 약속했다.
오드리아는 물론 제레미아가 황궁에 자주 찾아와 주면 좋았다. 하지만 그곳에 라미엘도 함께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어쩐지 왜 내가 피곤해질 것 같지.’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그래도 뭐 어때. 이렇게 즐거운데.’
피곤해도 즐거웠고 머리가 아파도 행복했다. 결국 모두가 오드리아를 좋아해서 생기는 일들이었고 사랑은 받으면 받을수록 충만함으로 넘쳐 났다.
황궁으로 갈 준비가 마무리되었다. 그동안은 공작가에 살면서 황궁을 오고 갔지만 더 끌 수는 없었다.
라미엘은 이제 황태자가 되었고 황태자궁에서 지내야 했다. 당연히 오드리아 역시 함께였다.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에게서 아쉬움이 묻어났다. 오드리아도 정든 공작가를 떠나는 것이 아쉬웠다. 멀리 떠나는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이곳에서는 살 수 없었다.
“앞으로 황궁에 자주 와 주세요.”
오드리아는 서운해하는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에게 미소를 지으며 몇 번이고 말했다.
마지막까지 서운해하는 제레미아와는 달리 트루디 대공은 담담하게 오드리아와 라미엘을 떠나보냈다.
오드리아는 떠나는 내내 저택을 몇 번이고 되돌아보았다.
트루디 공작가에서 살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저곳에서 넘치는 사랑을 처음 받아 보았고 가족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비록 황궁으로 떠나지만 오드리아의 마음속에는 트루디 공작가의 저택이 영원한 집일 것이다.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집, 휴식이 필요할 때 찾아갈 수 있는 집.
그게 오드리아의 마음에 따뜻한 온기가 감돌게 해 주었다.
오드리아와 라미엘이 황궁으로 떠난 뒤.
신시아는 시녀들을 모두 멀리 물리고 방문을 닫았다. 방 안에는 트루디 대공이 등을 돌린 채 소파에 앉아 있었다.
신시아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강하고 든든하기만 한 그의 어깨가 아래로 처져 있었다. 트루디 대공의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하지만 눈물이 아래로 떨어지지는 않았다.
신시아는 마음이 복잡했다. 그가 눈물을 흘리니 당연히 마음이 아파야 하는 게 맞는데도 이상하게 자꾸만 마음속에서는 행복이라는 감정이 올라오려고 했다. 지극히 이기적인 마음이었다.
그런데도 이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어서 결국 미소가 새어 나왔다.
트루디 대공이 자신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 준다는 사실에, 그만큼 자신에게 마음을 열었다는 사실에.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새 신시아는 온전한 트루디 공작가의 가족이자 그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
* * *
오드리아는 그녀가 떠나고 난 공작가가 어떨지 알았다. 분명 당분간은 침울해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모습을 떠올리면서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트루디 대공의 곁에는 신시아가, 제레미아의 곁에는 쥬아나가 있으니까. 두 사람이 침울해하는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를 웃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떠난 슬픔은 모두 잊을 것이다.
처음에 새엄마와 새언니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건 오드리아에게만 집중된 관심을 분산시킬 생각이었다. 하지만 막상 라미엘과 함께 황궁으로 떠나는 순간이 오니 다른 의미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어디로 떠나더라도 두 사람의 곁을 지켜 줄 사람들이 있어 안심이었다. 덕분에 가벼운 마음으로 떠날 수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황태자 전하, 황태자비 전하.”
두 사람이 황궁에 도착했다.
황태자 즉위식은 약식으로 치러졌다. 황제의 병세가 위독하고 바로 얼마 전 폐태자의 불미스러운 일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즉위식은 엄중하면서도 위엄 있게 진행되었다. 라미엘은 황태자가 되자마자 정신없이 바빴다.
짧은 기간에 많은 교육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황제를 대신해서 정무를 돌봐야 했다.
황제의 병세는 하루가 갈수록 심각해졌다.
이제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게 되었다. 그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라미엘은 한눈에 알아보았다.
라미엘은 하루 일과가 마무리가 될 때면 황제를 찾아갔다.
그에게 오늘 하루 있었던 일에 대해 보고했다. 그렇다고 해서 황제가 그에게 충고나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실 황제는 지독한 고통과 싸우는 하루 중 라미엘이 찾아오는 시간을 가장 고대하며 기다렸다.
라미엘은 단순히 사무적인 목소리로 보고할 뿐이지만 황제는 누구의 방해도 없이 온전히 아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황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으면서도 무엇이나 해서는 안 되었다. 그래서 황비를 지켜 주지 못했다. 그게 언제나 마음 한쪽에 걸려 있었다.
황태자가 된 라미엘은 여전히 자신을 원망하고 있으리라. 어머니를 지켜 주지 않은 매정한 아버지를.
황제는 자신의 숨이 머지않아 끊길 것을 예감했다. 간신히 끌어올린 마지막 한마디.
황제는 라미엘에게 가장 해 주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쇳소리 가득한 목을 울렸다.
“그저 행복하거라.”
황제는 마지막 순간만큼은 황제가 아닌 아버지로서 말했다.
라미엘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미동도 않는 황제를 보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마지막 한마디에 이상하게 가슴이 울려서.
그가 이대로 숨이 멎은 것이 아니라 그저 고요하게 잠에 든 것 같아서 건들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황제가 다시 숨을 쉬고 눈을 뜰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황제의 붕어.
황제가 세상을 떠났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모두 다했다는 듯 미련 없이 후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국상을 치르는 내내 라미엘은 담담했다. 그는 소리를 내 울지도 식음을 전폐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황태자로서 해야 할 의무를 묵묵하게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가 땅속에 묻히는 순간 오드리아에게는 전달됐다. 꼭 붙잡고 있는 손이 떨리고 있다는 것을. 라미엘은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라미엘은 짧은 기간의 황태자 자리를 거쳐 황제가 되었다. 자연스레 오드리아도 황후가 되었다. 두 사람은 황궁에서 먼저 지내면서 대관식을 준비했다.
제국 모든 백성의 이목이 집중되는 대관식이 거행되는 날이 찾아왔다.
라미엘의 대관식은 이례적으로 황후가 된 오드리아와 함께 치르게 되었다. 그녀 없는 대관식은 의미 없다는 라미엘의 확고한 의지 때문이다.
가장 빛나는 왕관을 쓴 라미엘과 오드리아.
동시에 치러지는 대관식은 그 어느 때보다 성대하게 진행되었다. 갑자기 나타난 새로운 황제의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해 황궁에서 준비한 것도 있었지만 오드리아의 대관식에 무엇 하나 부족함 없게 하겠다는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의 전폭적인 지원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나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대관식에서 황제가 황후보다 더 낮은 자세를 취했다는 것이다. 대관식 내내 라미엘은 오드리아가 불편한 것이 없는지 살피고 뭐든지 그녀에게 먼저 양보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지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나마 이성적인 오드리아가 그런 라미엘에게 눈치를 주며 말려 보았지만, 나중에는 그것마저도 포기하고 라미엘이 하는 대로 그대로 따랐다.
라미엘이 직접 오드리아의 머리 위에 황후의 관을 씌워 주었다. 그리고 라미엘이 쓰게 될 왕관이 오드리아에게 내밀어졌다.
그녀에게서 왕관을 받고 싶은 그가 준비한 것이다.
그 모습을 목격한 순간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왕관을 황제의 머리에 씌우는 것.
누가 어떻게 씌워 주는지에는 그 어느 것 하나 ‘그냥’이란 것이 없었다. 모든 것에는 그 의미와 상징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역대 황제 중 그 누구도 황후로부터 왕관을 받은 사람은 없었다.
“라미엘…… 스스로 써.”
오드리아가 라미엘을 향해 스스로 쓰라고 속삭였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향해 방긋방긋 미소만 지을 뿐 미동조차 없었다.
“씌워 줘.”
라미엘은 그녀가 머리에 왕관을 씌워 줄 때까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꼼짝하지 않을 생각인 것 같았다.
오드리아는 옅은 한숨을 쉬며 하는 수 없이 왕관을 집었다. 조심스럽게 왕관을 든 손을 뻗어 그의 머리 위에 씌워 주었다.
그제야 라미엘이 환하게 웃으며 일어나 그녀의 입에 살짝 자신의 입을 맞췄다. 제국 역사상 처음 있는 대관식이었다.
두 사람의 대관식은 궁정 화가들에 의해 하나하나 기록되었다. 그렇게 오늘 있었던 일은 황제와 황후가 서로에게 왕관을 씌워 준 대관식으로 제국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 * *
라미엘이 황제가 되고 오드리아가 황후가 되고 그렇게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로 끝났으면 좋았겠지만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
황제와 황후가 되어 보니 트루디 공작가에서와는 모든 것이 달랐다. 익숙한 습관들을 황가에 맞게 바꿔야 했다.
갑자기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라미엘과 오드리아 모두에게 낯설고 어려운 일이었지만 곧 익숙해졌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바로 ‘책임진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자신이 하지 않은 일에도, 예고 없이 일어난 불운도 모두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지금처럼 제국에 재난과도 같은 일이 갑작스럽게 벌어질 때 말이다.
라미엘이 황제가 되고 오드리아가 황후가 된 후 제국에 처음으로 닥친 시련이었다.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천재지변.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쏟아진 폭우가 사람들의 살림을 모두 쓸어갔다. 수도 인근에서 산사태까지 일어나 그 피해는 더욱 막대했다.
비는 그쳤지만 백성들의 일상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비와 바람을 막아 주고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집이 사라지고 천재지변에 휩쓸려 가족을 잃고, 재산을 잃고 병을 얻은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자연스레 사람들의 원망은 황제로 향했다.
황궁 안에서는 며칠 동안 비상사태로 모두가 새벽 늦게까지 대책 마련을 논의하고 있었다. 오드리아는 며칠 동안 상황을 살피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직접 나서야겠어.”
“황후마마께서 말이십니까.”
메릴이 놀라며 물었다. 하지만 오드리아는 이미 결심한 후였다.
“내가 직접 백성들을 만나 위로라도 하며 얘기를 들어야지.”
오드리아는 황궁 밖으로 나가 백성들을 직접 만나겠다고 하고 있었다. 그녀의 말에 메릴과 시녀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황궁 밖의 분위기가 심상찮았다. 괜히 잘못 나섰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다.
“하지만…… 지금 분위기가 너무 안 좋습니다.”
“차라리 사람을 보내 살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오드리아를 말리기 위해 애를 썼지만 정작 그녀의 마음은 전혀 변화가 없었다.
“그러니까 더 나빠지기 전에 손을 써야 돼.”
이런 일일수록 대처가 빨라야 한다. 바로잡을 수 있는 마음도 늦어지면 영영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오드리아는 메릴과 시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직접 황궁 밖으로 나갔다.
사는 게 힘들어지면 사람들의 마음도 날카로워진다. 그런 상황에서 오드리아를 보고 흥분하고 달려드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럴 만큼 지금 분위기가 심상찮았다.
하지만 오드리아 역시 모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기에 더더욱 직접 나서려고 하는 것이다. 오드리아는 모두의 만류에도 황궁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미리 연락을 해 놓았던 페이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드리아는 속전속결로 움직였다.
“내가 부탁한 건?”
“준비해 놨어요.”
갑작스런 결정이 아니었다. 이미 며칠 전부터 페이지를 통해 준비하고 있었다.
“그럼 얼른 출발하자.”
“네.”
오드리아가 페이지에게 부탁한 것은 사람들에게 나눠 줄 따뜻한 옷을 준비해 달라는 것이다.
“지금 준비한 것은 대략 오백여 벌 정도 돼요. 물론 지금도 추가로 계속 만들고 있고요.”
“고마워. 계속 수고해 줘.”
“얼마든지요.”
사람들에게 오필리아 숍으로 가면 따뜻한 겨울옷을 나눠 준다고 알리도록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벌써 오필리아 숍에서 옷을 받기 위한 사람들의 줄이 끊이지 않았다.
혹시라도 누군가 오드리아에게 해코지를 하려 하지 않을까 하는 시녀들의 걱정을 허무하게 만들 만큼 사람들은 그녀를 반겼다.
오히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불행에 지쳐 가던 사람들은 오드리아가 보이자 마치 구세주라도 나타난 것처럼 열광했다.
그녀는 황후가 된 후에도 줄곧 빈민 구휼에 힘썼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뜻을 존중해 트루디 공작가에서도 매년 큰 성금을 보내 주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와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황후마마께서 오시다니!”
“이제 저희에게도 빛이 보이려나 봅니다.”
“저희 정말 이러다 죽겠습니다.”
그들의 하소연을 오드리아는 인내심 있게 들어 주었다.
평생을 고귀하게만 살아온 그녀가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시녀들은 신기하게 그 상황을 지켜볼 뿐이었지만.
하지만 오드리아는 이들이 말하는 고충을 모두 경험해 본 적 있었다.
굶어 죽는다는 말의 무게가 어떤 것인지, 그렇게 죽는 것이 얼마나 비통한 일인지.
“내가 당장 여러분들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 줄 수는 없어요.”
하지만 그들에게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할 수도 없었다.
그들은 오드리아의 말만 믿고 끈질기게 기다릴 테니까. 그녀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말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정하지 못했을 뿐 곧 여러 가지 방안들이 나올 거예요. 그때까지는 내가 도울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할게요.”
오드리아가 진심으로 말했지만 그래도 실망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역력했다.
“감사합니다.”
“……?!”
뒤에서 나타난 목소리에 오드리아가 고개를 돌렸다.
“혹시 저 기억하십니까? 황후마마께서 불이 났을 때 저를 구해 주셨습니다.”
“아…… 그때…….”
지금은 세상을 떠난 전 황태자가 화재 사건을 일으켰을 때 오드리아가 구했던 사람이었다. 어렴풋하게나마 기억이 났다.
“그런데 여기까지 또 와 주시다니, 이런 마음을 보여 주시는 황후마마가 어디 계신단 말입니까.”
“저희도 힘을 내겠습니다.”
사람들이 하나같이 모두 오드리아를 향해 ‘감사합니다’, ‘저희도 힘을 내겠습니다’, ‘저희는 괜찮으니 너무 마음 쓰지 마십시오’라는 말을 쏟아 냈다.
“저도 힘낼게요.”
오드리아가 사람들을 향해 사르르 눈을 접었다. 그 미소가 너무 환해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상황이 모두 나아진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착각은 조금은 사실이었다. 오드리아가 다녀간 후로 오필리아 숍은 물론이고 트루디 공작가에서 적극적으로 백성들을 구제하는 데 나섰다.
그리고 그녀의 약속대로 오래 걸리지 않아 황궁에서도 공식적인 해결방안은 물론이고 황가 자체에서의 구휼을 약속했다.
수도의 평범한 백성들 반 이상이 피해를 본 이번 사고가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빠르게 복구되고 있었다.
사람들의 생활이 점차 안정적으로 돌아왔고 마음이 편해지자 사람들은 스스로 복구가 늦어지는 쪽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입에 웃음이 걸리기 시작하자 불안정하던 치안 역시도 돌아오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황후마마 덕분이라고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이번 일에 힘을 보탠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중에서 가장 먼저 나서고 약속을 지켜 준 사람은 그녀뿐이었다.
* * *
한 가게가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손님이 밥을 먹던 테이블이 엎어지자 그릇이 바닥에 떨어지며 와장창-!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졌다.
더 황당한 것은 이 일을 벌인 사람이 바로 식당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너 어디서 굴러먹다 들어온 놈이야!”
“아니! 이 사람이 장사할 생각이 없는 건가!”
갑자기 자신이 식사를 하던 자리가 난장판이 되자 열 받은 손님이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주인은 전혀 물러날 기색이 없었다.
“너 같은 놈한테 음식 안 팔아! 당장 꺼져!”
“뭐?! 진짜 뭐 이런 가게가 다 있어!”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막무가내인 주인을 이상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 응원하면서 다 함께 손님을 끌어낸다는 것이다.
다른 손님들에게 팔을 붙잡혀 억지로 끌려 나가는 손님은 기가 막히고 화가 나서 어이가 없었다.
“잠깐만!”
손님이 붙잡힌 팔을 억지로 뿌리치며 주인을 돌아보았다.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지 이유나 좀 압시다!”
자신은 그저 밥을 먹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식탁이 뒤집어지지를 않나 같이 먹던 일행은 모른 척하지를 않나 다른 손님들은 자신을 쫓아내려 하고 있지를 않나. 이대로라면 억울해서 미칠 것 같았다.
“아직도 이유를 모르다니.”
“뻔뻔한 놈.”
사람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겁니까!”
손님이 울분을 토하자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이 동시에 외쳤다.
“황후마마를 욕했잖아!”
이곳 수도에서는 황제의 욕을 할 자유는 있어도 황후의 욕을 할 자유는 없었다.
* * *
라미엘은 유능한 기사였던 시절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보여 줬다. 수많은 귀족들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제국의 폐단을 뿌리 뽑았으며 불안정한 체계를 안정화시켰다.
그는 뛰어난 정치가이며 유능한 행정가인 동시에 압도적인 실력을 지닌 기사였다.
심지어 오드리아는 역사상 그 어느 황후보다도 황후의 역할을 잘해 내었다.
황제에게 사랑받는 황후에 머무는 것이 아닌 황제와 동등한 위치에서 황후로서 해낼 수 있는 한계 그 이상을 해내었다.
특히나 오드리아는 백성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그녀는 두 번의 인생을 살았다.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서 오필리아 숍의 마담이 된 첫 번째 인생과 오드리아 트루디가 되어 귀족 사회에서도 가장 귀하고 사랑받는 존재로서의 두 번째 인생.
덕분에 오드리아는 백성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고 직접 황궁 밖으로 나서 그들을 도왔다. 성녀가 돌아왔다는 칭송을 받는 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오드리아가 칭송받는 것은 귀족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백성들을 구휼하다 보면 귀족들에게 반발을 사는 것이 당연한데도. 그녀는 귀족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
그건 오로지 오드리아 트루디로서의 인생 덕분이었다. 귀족들 사이에서 나올 불만은 사전에 차단하고 그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 주었다.
게다가 여전히 트루디 공작가가 뒤에서 버티고 있는 그녀에게 함부로 행동할 수 있는 귀족이 있을 리 없었다.
당연히 그녀를 향한 칭송은 하늘을 찌를 듯 높아져 갔고 역사상 가장 훌륭한 황후이자 사랑받는 황후가 되었다.
“황후 마마가 체질에 맞으신가 봅니다.”
페이지는 황후 전속 디자이너로, 오드리아가 황후가 된 후에도 꾸준히 황궁에 드나들었다. 오드리아가 봉사를 나갈 때도, 몰래 황궁을 빠져나갈 때도.
“그러게. 깜짝 놀랐어.”
사실 오드리아 자신도 스스로에게 놀라고 있었다.
오드리아는 황후로서의 생활이 너무나도 잘 맞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사랑받는 것도 좋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애정을 나눠 주는 것이 더 좋았다.
“너무 적성에 잘 맞아서.”
오드리아가 씨익,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돌이켜 보면 오드리아 트루디가 되어서 처음 가진 목표가 오로지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다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가족들을 위해 정신없이 움직이고 지금은 제국을 위해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하지만 과거와 지금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사랑받고 있다는 것. 오드리아에게는 그 사실 하나면 세상 모두를 얻은 것과도 같았다.
* * *
라미엘이 황제가 된 지도 벌써 삼 년이 지났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사이에 제국은 놀라울 정도로 평화로워졌다.
그사이에 제레미아와 쥬아나 역시 결혼을 했다. 두 사람의 결혼식이 화제였던 것은 쥬아나가 가문의 후계자만이 받을 수 있는 비급을 전수받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였다.
그녀가 결혼하기 전, 오드리아에게 승리자의 얼굴을 하고선 말했다. 자신이 바로 결혼하지 않은 것 역시 그것을 받아 내기 위해서였다고.
그녀는 욕심이 많았다. 가문에서 맡고 있는 일에 자부심이 있었고 그것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약혼 기간 동안 남몰래 실력을 갈고닦은 것이다. 오드리아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두 사람은 결혼 후에 다른 저택을 구할 수도 있었지만 제레미아와 쥬아나 누구도 원하지 않았다. 그녀는 신시아가 있는 공작가가 더 좋았다.
이제 모두에게 완전한 짝이 생겼다. 결혼 전과 후의 관계가 많이 달라진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도 모두 행복한 얼굴이었다.
오랜만에 트루디 대공과 신시아, 그리고 제레미아와 쥬아나까지 와서 티타임을 가졌다. 그때가 되면 황후궁은 언제나 시끌벅적해지고는 했다.
보고 싶을 때마다 황궁에 오고 싶지만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 모두 정신없이 바쁜 몸이었다. 갈 수는 있어도 시간이 없어서 못 만나고는 했다.
가족들과 다 함께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오드리아의 표정이 조금씩 이상했다. 조심스럽게 가슴 아래를 누르며 참았다.
‘왜 이렇게 속이 안 좋지.’
사실 오늘 일어났을 때부터 몸이 별로 좋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히는 며칠 전부터 속이 메슥거리고 음식을 잘 넘길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오늘따라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속이 뒤집혔다. 시간이 지날수록 식은땀이 흐르고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디저트가 역하게 느껴졌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가족이 다 같이 모이는 티타임은 한 달에 한 번밖에 가지지 못하는 시간이었다. 오드리아는 이 시간을 자신 때문에 망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읍!”
결국 참지 못하고 갑자기 헛구역질이 났다. 그와 동시에 모두의 시선이 오드리아를 향해 쏠렸다. 걱정과 불안, 그리고 두려움까지. 혹시나 오드리아에게 문제가 있는 걸까?
“리아!”
“황궁의! 당장 황궁의를 불러와!”
“갑자기 왜 그래? 어디가 아픈 거야?”
“괜찮…… 읍…… 으윽!”
오드리아가 괜찮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다시 올라오는 토기 때문에 할 수 없었다. 그럴수록 라미엘을 비롯한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 쥬아나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지금까지 리아의 상태도 모르고 뭐 한 거야!”
트루디 대공이 분노에 떨며 라미엘을 향해 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라미엘에게 트루디 대공의 분노는 중요하지 않았다. 스스로도 오드리아의 몸 상태를 몰랐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중에 한 사람. 신시아만이 놀라지도 당황하지도 않은 채 오드리아의 상태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황궁의는 언제 오는 거야!”
이미 시녀가 황궁의를 부르러 달려갔다. 하지만 순간이동을 하지 않는 한 벌써 도착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한데도 라미엘은 속이 타들어 갔다.
그때였다. 그 누구보다도 빨리 신시아가 오드리아의 손을 살포시 잡았다. 갑작스런 그녀의 움직임에 모두들 행동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신시아는 오드리아를 향해 설핏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괴로워하는 오드리아에 모두가 걱정하는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표정이었다.
“오드리아. 혹시…….”
“네……?”
“짐작 가는 거 없니?”
신시아는 빙그레 웃음만 지은 채 오드리아에게 물었다.
그녀의 말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어리둥절했다. 지금 상황에 짐작 가는 거라니, 설마 전부터 아팠던 건가!
오드리아 역시 신시아의 말뜻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짐작 가는 거라니. 지금 가족들의 반응이 과장되었을 뿐 그저 속이 좀 안 좋을 뿐이었다. 그것 말고 뭐가 더 있나, 곰곰이 생각을 하던 오드리아의 눈이 서서히 커졌다.
“설마……?”
오드리아의 목소리가 기대로 인해 들떴다. 갑자기 오드리아의 얼굴이 환해지자 나머지 가족들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
“신시아. 오드리아의 상태가 뭐지?”
답답함을 견디지 못한 트루디 대공이 물었다. 그러자 신시아가 그를 향해 방긋 미소를 짓고는 시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여기 디저트들을 치우는 게 좋겠구나.”
“네, 알겠습니다.”
“황손이 태어날지도 모르니 산부 쪽 황궁의도 같이 부르도록 해라.”
신시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녀의 말에 한 박자씩 느리게 곳곳에서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뭐어?!”
“그게 무슨 소리야!”
“이, 이…… 임신이라니?”
라미엘을 비롯하여 트루디 대공, 제레미아는 모두 체통을 지키기는커녕 의자 뒤로 넘어가지 않는 것이 용할 지경이었다.
“그게 정말이야?!”
“임신이라니…… 리아가 임신이라니…… 그럼 아이가……!”
너무 기쁜 나머지 패닉 상태가 되었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뭐든 말하거라!”
“방금 보고도 그런 말을 하세요? 입덧 때문에 당분간 아무거나 못 먹어요.”
“그러니까 더 잘 먹어야지! 리아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나올 때까지 전부 가져오마!”
트루디 대공이 위엄이고 뭐고 전부 잊고 허둥거렸다. 하고 싶은 것이 넘쳐 나서 정리가 안 되는 것 같았다. 옆에서 신시아가 그를 달래 봤지만 겨우 폭주하는 것을 막을 뿐 진정시키는 것은 무리였다.
“조카가…… 생긴다는 거지.”
제레미아가 마치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앞으로 뭐가 필요하지.”
“아기 옷, 아기 신발, 아기 장난감 전부 내게 맡기도록 해. 하나도 부족하지 않게 미리 준비해 놔야겠어.”
제레미아가 의욕이 넘쳤다. 오드리아에게 그런 것들이 부족할 리 없을 텐데도.
제레미아는 새로 태어날 조카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자신이 챙겨 주고 싶었다.
“당장 황궁의 식량을 백성들에게 나눠 주거라. 오늘 같은 날 황후와 배 속의 아이가 모두의 축복을 받아야지.”
라미엘은 곧장 제국 전체에 이 사실을 알리며 황궁의 식량을 나눠 주었다. 백성들은 그 식량을 다 같이 나눠 먹고 파티를 하며 황후마마의 임신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황후 오드리아의 임신.
그녀가 낳을 아이가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었다. 분명 그녀의 아이는 황궁은 물론이고 제국민 모두에게 사랑받을 것이다.
한때는 공작가의 버려진 영애에서 공작가의 실세가 된 그녀는 이제 제국에서 사랑받는 황후이자 제국의 실세가 되었다.
<아주 작은 에필로그>
오드리아가 임신을 한 사실을 알게 되고 며칠이 지난 후였다.
임신을 하고부터 잠이 많아진 오드리아가 늦잠을 자고 뒤늦게 일어났을 때였다. 평소에는 오드리아가 일어날 때까지 곁에 있던 라미엘이 보이지 않았다.
일하러 갔나. 그렇게 생각하며 방을 나오자 방문 앞까지 이어진 복도에는 오드리아를 중심으로 라미엘과 트루디 대공, 신시아, 제레미아, 쥬아나까지 모두가 함께 그려진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이제는 또 어떤 가족의 모습이 될까. 황궁 복도에 전시장처럼 쭉 이어진 가족들의 그림. 그 안에 한 명의 가족이 추가될 것이다.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늘어날 것이다.
그렇게 문 앞까지 오자 황후궁 앞이 소란스러웠다.
“무슨 일이야?”
복도를 따라 정원으로 나오는데 그곳에는 황당한 표정을 하고 있는 라미엘이 있었다. 일 때문에 먼저 간 게 아니었다는 사실에 아주 살짝 서운했던 감정이 사르르 녹았다.
“무슨 일 있어……?”
라미엘을 향해 다시 물어보며 정원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마자 오드리아는 할 말을 잃었다. 두 개의 작은 산을 만들 기세로 수많은 선물들이 양쪽으로 나뉘어 쌓여 있었다.
“오늘 아침 일찍부터 선물들이 왔어요.”
메릴이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확실히 선물이 양옆으로 경쟁하듯 쌓여 있는 모습은 웃음이 나왔다. 굉장히 익숙한 그림이어서.
“이거…… 그리운 광경인데.”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가 경쟁하듯이 쌓아 올린 선물들이었다. 선물은 전부 오드리아와 아기를 위한 것들이었다.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