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9. 외전
라엘
라미엘에게 어린 시절은 절대 좋은 기억일 수 없었다.
어린 시절 그의 세상은 황궁 안이 전부였다. 태어나 보니 황궁 정치에서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는 황비의 아들이었다. 그리고 힘없는 후궁이란 존재는 시종보다도 못한 삶을 산다. 라미엘이 그러했다.
평민 출신의 황비. 황제의 사랑을 받지만 그뿐일 뿐, 세력도 스스로를 지킬 힘도 없는 여자.
라미엘에게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상냥하고 다정한 엄마였지만 그녀의 무력함은 그의 삶도 고단하게 만들었다.
그의 황궁에 대한 기억이란 언제나 극도의 긴장감과 불안해하던 것밖에 없었다.
황제는 황비를 사랑했지만 그녀를 지켜 주지 못했다. 차라리 황궁이 아니라 어느 시골의 평범한 집에서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어린 라미엘은 종종 생각하곤 했다.
라미엘은 결국 황궁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살 수 없었다. 그전에 자신의 어머니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에.
황비는 나날이 약해지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시작한 기침이 멈추지를 않았고 점점 얼굴색이 어두워지더니 어느 순간부터인가 침상에서 잘 일어나지도 못했다.
황궁의가 와서 계속해서 진찰을 하고 처방을 해 주었지만 나아지기는커녕 더욱 심해질 뿐이었다.
“어머니. 오늘은 기분이 좋아 보이세요.”
“우리 라엘 얼굴을 보니 건강해지는 것 같구나.”
라미엘의 진짜 이름은 라엘이었다. 황비가 라엘의 손을 꼭 붙잡았다.
황비의 말에 라엘이 환하게 웃었다.
“그럼 더 자주 와야겠어요!”
“그래. 자주 와 주렴.”
황비와 라엘 모두 서로를 보며 웃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을 뿐 알고 있었다. 황비의 죽음이 머지않았다는 것을.
그리고 그녀가 죽고 나면 라엘의 목숨 역시 위험해질 거라는 것을.
그녀는 말없이 라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알고 있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 황궁의 냉혹함이었다.
라엘은 황비의 침상 곁을 하루 종일 지켰다. 아무도 찾지 않는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괜히 황궁을 돌아다니다가 황태자를 만나서 수모를 당할 바에야 이곳에 있는 것이 차라리 나았기 때문이다.
황비는 하루의 대부분을 잠들어 있었다. 그녀가 눈을 뜰 때마다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따뜻한 온기가 가장 먼저 느껴지고는 했다.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
그를 몹시 사랑했지만 자신이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차라리 이 황궁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자신의 아이를 볼 때마다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라엘…….’
황비의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지켜 주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지금까지도 제대로 지켜 주지 못했다. 그런데 자신이 죽으면 아무런 힘도 없는 아이는 어떻게 될까.
자신의 죽음이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럴수록 혼자 남아야 할 아이의 존재가 눈에 밟혔다. 엄혹한 황궁에서 혼자 살아남을 수 있을까.
차라리 별 볼 일 없는 존재라고 여기며 무시해 준다면 좋을 텐데, 황후나 황태자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방해된다 여겨진다면 절대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어째서 오늘은 안 오는 거지.”
항상 눈을 뜰 때면 있던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황비는 곁에 있는 시녀에게 물었다. 그러자 시녀는 뭔가 말하기 곤란한 듯 우물쭈물했다.
“무슨 일이야.”
순간 불안이 엄습해 왔다. 황비의 재촉에 시녀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게 감기에 걸리셔서…….”
“…….”
단순한 감기인데 시녀가 이렇게 눈치를 볼 이유가 없다. 감기에 걸리기까지 뭔가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황비가 시녀를 아무 말 없이 한참을 바라보자 시녀는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황태자 전하께서 직접 나서셔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황비는 질끈 눈을 감았다. 우려하던 일이었다. 황태자가 라엘을 괴롭힌 것이다. 힘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황자가 황태자의 말에 반항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억울해도 당하는 수밖에.
황태자는 라엘을 근처에 있는 연못에 빠트렸다. 그러고는 그 앞에서 구경하며 조롱했다. 황자는 황태자가 자리를 뜨고 나서야 연못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황비는 저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입술을 꽉 깨물었다.
“라엘에게 가 봐야겠다.”
황비는 아픈 몸을 이끌고 억지로 일어났다. 시녀가 곁에서 안절부절못했다.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몸에 무리가 갑니다.”
“여기서, 더 망가질 몸이 있던가…….”
황비의 얼굴이 처연했다. 이미 최악의 몸이었다. 조금 더 무리한다고 해서 얼마나 달라질까. 시녀 역시 더 이상 황비를 붙잡을 수 없었다.
라엘은 열이 펄펄 끓고 있었다. 얼굴이 발갛게 익어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황비가 왔는데도 라엘은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어린아이가 무슨 수모를 당했을지 너무 선해서, 황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언제…… 이런 거지…….”
황비의 목소리가 갈라지고 다리에 힘이 풀릴 것만 같았다.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혼자 끙끙 앓고 있었던 거지.
역시나 황비도 모르는 사이에 황자궁의 시녀들이 모두 바뀌었다. 황자를 위해야 하는 황자궁 안에서 정작 황자가 고립되었다. 기본적인 식사조차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궁을 나가 황비궁으로 향하는 것마저도 시녀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황자는 그 무엇도 자신의 어머니에게 고하지 않았다. 이미 시름시름 앓는 사람에게 괜한 걱정을 씌우고 싶지 않아서.
여기서 그녀가 괜히 나섰다가는 황자를 더 고립시킬 수 있었다.
속상함과 분노, 근심 때문에 황비의 몸이 급속도로 나빠졌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녀의 정신만은 또렷해졌다.
자신이 죽음은 어찌할 수 없는 문제였지만 황자는 달랐다. 아직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은 아이였다. 그것만큼은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라엘만은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황비는 당장 오늘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로 꾸역꾸역 생명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아이를 살릴 수 있을까.’
황비는 권력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평민으로 태어나 뜻밖에도 황비가 되었다. 황후가 되기 위해 평생을 산 그녀와 상대가 될 리 없었다.
그저 조용히 거슬리지 않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황후는 자신의 존재 자체를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그러니 자신이 사라지면 황후는 결코 황자를 살려 두지 않을 것이다.
황제가 오랜만에 황비궁을 찾아왔다. 급속도로 몸이 나빠진 그녀의 상태를 보러 온 것이다.
황제는 그녀를 걱정하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것이다.
“몸은 좀 괜찮은가.”
“덕분에 많이 괜찮아졌습니다.”
황비의 안색만 봐도 전혀 괜찮지 않은 것이 보이는데도 그녀는 형식적인 대답 이상을 하지 않았다.
황궁에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황자를 안전하게 맡기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
황비는 자신이 죽음의 순간에 놓이자 냉철하게 상황을 파악해 나갔다. 결국 아이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황궁 밖으로 내보내자.’
황자가 황궁에 있어도 죽은 목숨이지만 황궁 밖으로 나가면 그야말로 언제 죽을지 모른다. 그러니 황자를 황궁 밖에서도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황비는 모든 것을 침대에 누운 채 계획했다. 아주 가끔씩 필요한 것들을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시녀에게 부탁한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준비가 됐다. 황비는 감기 몸살이 낫자마자 매일같이 자신을 찾아와 지금도 침대 맡에서 잠들어 있는 라엘의 손을 잡았다.
“라엘. 어미가 할 말이 있어.”
“뭔데요?”
라엘이 졸린 눈을 비비며 웅얼거렸다.
황비는 그 모습을 애틋하게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녀는 라엘을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없었다.
자신이 걱정할까 봐 힘들어도 말하지 않는 가련하고 안쓰러운 아이. 그 아이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도망치거라.”
“네……?”
황비의 단호한 말에 라엘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그녀는 흔들림이 없었다. 황궁은 황자를 버리지 않는다. 훗날 어떤 식으로 되돌아올지 알 수 없기에. 방해가 된다고 여겨질 때는 오로지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 버릴 뿐이었다.
그러니 라엘이 먼저 황궁을 버려야 했다. 황자로서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도망쳐야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너를 죽은 사람으로 만들어 줄 테니…… 도망쳐.”
“어머니…… 그게 무슨…….”
라엘은 황비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불안해졌다. 그래서 무조건 고개를 저었다. 절대 그럴 수 없다며,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린 채로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애써 참으면서.
“라엘!”
그러자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큰소리를 낸 적 없는 황비가 처음으로 라엘을 향해 단호하게 외쳤다.
“어미 말 듣거라!”
“…….”
라엘의 어깨가 떨렸다. 하지만 황비는 더욱 강하게 쏘아붙였다. 태어날 때부터 순하고 착한 아이였다. 단 한 번도 소리를 높일 만한 일을 한 적 없었다.
그런 아이에게 처음으로 윽박지르는 것이 이런 말이라서 가슴이 미어졌다. 하지만 황비는 그런 속내를 숨기고 무서운 얼굴로 라엘에게 대답을 재촉했다.
“황궁을 나가. 황궁 밖은 이곳과는 다르게 또 힘든 일투성이겠지만 그래도 이곳보다는 나을 거야.”
“……제가 어떻게 어머니를 두고 떠나요.”
“라엘. 나는 곧 죽는단다.”
“……!”
처음으로 입 밖으로 꺼냈다. 자신의 죽음을. 라엘 역시 침작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입으로 직접 듣는 것은 또 달랐다. 하지만 황비는 약해지려는 마음을 붙잡고 냉정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내가 너마저 지키지 못한다면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할 것이야!”
“……어머니.”
“내가 죽으면 이곳에서 널 지켜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
“…….”
공포와 불안에 휩싸인 라엘의 몸이 떨렸다. 라엘의 어깨를 붙잡은 손을 통해 그 불안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네가 살아 줬으면 좋겠구나.”
황비의 목소리가 애달팠다. 마치 자신의 목숨에 미련 없는 라엘의 마음을 눈치채고 하는 말 같아서 뜨끔할 정도로.
“그 삶이 편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살아 주었으면 해.”
분명 힘들 것이다. 황궁에서 아무리 힘들었다고 해도 삶에 필요한 것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충족되었다. 그런 삶을 살다가 황궁 밖으로 나가게 된다면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힘겨울 것이다.
하지만…… 황비는 자신의 아이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꿋꿋이 살다 보면 분명, 힘든 날을 보상해 줄 만큼 따뜻하고 행복한 순간이 찾아올 거란다.”
황비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너무나도 희미해서 눈을 깜박였다 뜨면 사라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미소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라엘은 그것을 놓치고 싶지 않아 눈을 부릅떴다. 그녀의 미소에 담긴 소망, 기대, 희망, 그리고 먼 미래를 그리는 듯한 미미한 행복함.
“나는 네가 그것을 꼭 누렸으면 한단다.”
황비는 라엘의 어깨를 잡고 있던 손을 끌어당겨 자신의 아이를 품에 넣었다. 아직은 너무 작은 몸이었다. 이런 작은 몸으로 과연 앞으로 많은 나날을 잘 견딜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이 몸이 자신보다 더 커지고 어떤 힘든 순간도 견딜 수 있을 만큼 단단해지기를, 황비는 소원했다.
“그러니 제발…… 살아만 다오.”
그녀의 음성에 물기가 가득했다. 그는 아들의 어깨에 자신의 얼굴을 묻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라엘은 그녀의 눈물이 자신의 옷을 적시는 것을 느끼면서도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내가 너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게 전부이니.”
그렇게 말하는 황비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지독할 정도로 서글픈 미소를. 그녀의 처연한 얼굴은 라엘이 더 이상 거절할 수 없게 했다. 라엘은 힘겹게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라엘은 황비의 말을 믿지 않았다.
태어나자마자 황궁에서 버림받은 것과 다름없는 생활을 해 왔다. 차라리 없는 사람인 듯 무시하는 게 나았다. 황태자를 잘못 만나기라도 하는 날에는 언제나 몸져누워야 할 만큼 수모를 당했다.
그를 좋아해 주는 사람은 황비밖에 없었다.
그녀마저 떠나게 되면 자신은 오로지 혼자다. 앞으로 그 누구도 자신을 사랑해 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라엘은 황비를 안심시켜 주기 위해 고개를 끄덕였다.
라엘은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도저히 어머니의 죽음을 이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사실 그녀가 왜 아픈지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그 병을 낫게 할 방법이 없을 뿐.
라엘은 자신의 아버지, 황제를 태어나서 지금까지 채 열 번도 만나 본 적이 없었다. 그중의 몇 번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갓난아기일 때였기 때문에 사실상 그의 기억 속에 황제는 채 세 번도 만난 적 없었다.
아무리 영리하고 생각이 깊다고 해도 라엘은 고작 일곱 살에 불과했다.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생각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가 황제를 절대 찾아가면 안 된다는 것을 라엘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지금 황비를 살려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황제라는 것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라엘에게는 한없이 멀기만 한 존재.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희망을 걸 존재 또한 그뿐이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무모한 짓을 해 보았다. 바로 황제를 찾아가는 것.
“아바마마!”
라엘은 처음으로 황제를 아바마마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런 거에 감동을 느끼기에는 지금 너무나 절박했다.
“무슨 일이냐.”
황제는 담담했다. 갑작스런 라엘의 방문에 전혀 놀라지도 반갑지도 않은 듯이. 그 순간 어깨가 움찔하고 굳었지만 이런 일로 망설일 수는 없었다.
“제 어머니를 지켜 주십시오!”
“어미를 지키고 싶은 마음은 갸륵하나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아니구나.”
“……!”
어찌해 줄 수 없다니! 황제가 어찌할 수 없다면 누가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라엘의 눈동자가 일렁였다.
처음부터 대단한 기대를 품고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단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단호하게 안 된다고 할 줄은 몰랐다. 그래도 한때 자신이 사랑한 사람이고 부인이 아닌가!
라엘은 무기력하게 자신의 처소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리고 황비는 이미 자신이 어디에 다녀온지 알고 있었다.
“다신 그러지 말거라.”
황비는 라엘을 나무라며 경고했다.
“하지만……!”
라엘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아무리 그래도 폐하께서 너무하지 않으냐고 하소연하고 싶었다. 하지만 말할 수 없었다. 가장 속상한 것은 어머니일 테니까.
황비는 이제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칫 잘못하면 라엘을 밖으로 못 보낼지도 모른다.
“준비해 줘.”
황비는 라엘이 황궁에서 나갈 수 있도록 시녀에게 부탁했다. 그녀 외엔 아무도 믿을 수 없었으니까.
“라엘을 부탁할게…….”
황비의 부탁에 시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시녀가 힘겹게 대답했다.
황비가 라엘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아들이 죽은 사람인 것처럼 위장하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이것밖에 해 줄 수 있는 게 없는 자신의 신세가 비참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앞으로 라엘의 앞에 기다리고 있는 미래가 너무 힘들지 않기만을 바랐다.
황비궁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불은 안쪽에서부터 궁 전체를 집어삼킬 듯이 커지고 있었다. 황비는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황비궁 밖이 아닌 안에서.
“당장 불을 꺼라!”
“어서 서둘러!”
시종들이 불을 끄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어차피 죽으면 땅에 묻힐 육신, 재가 되어 사라진다고 뭐가 다를까.’
황비는 불을 보면서도 웃을 수 있었다. 자신의 아이가 이 난리로 정신없는 통에 무사히 황궁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잘 가고 있을까.’
황비의 걱정은 단 하나였다.
라엘은 이곳에서 자신과 함께 죽은 것으로 될 것이다.
라엘이 죽은 사람이 된다면 황후와 황태자 역시 그를 찾지 않을 것이다. 황궁 밖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어, 어머니…….”
하지만 황비가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라엘이 황궁 밖으로 완전히 떠나기 전 황비궁의 불길을 본 것이다.
“이대로 갈 순 없어…… 어머니가!”
라엘이 당장이라도 황비궁으로 뛰어가려고 할 때였다. 두 눈이 붉게 충혈된 시녀가 그를 붙잡았다.
“황비마마의 결심을 잊지 마세요.”
“…….”
시녀가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린 라엘은 이해했다. 모든 것을 새까만 재로 만들어 버릴 기세로 타오르는 불길이 라엘을 위해 황비가 직접 저지른 일이라는 뜻이었다.
“가셔야 합니다.”
시녀가 단호하게 그를 재촉했다. 라엘은 입을 꾹 닫고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 황궁 밖으로 나가는 문을 향해서. 하지만 라엘은 그 불길을 두 눈에, 심장에 새겼다.
저 불길 속에 어머니가 있다. 자신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존재가. 하지만 자신은 그녀의 희생으로 도망가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때 라엘은 세상의 비정함을 깨달았다.
‘꼭 돌아올 거야.’
라엘은 그렇게 결심했다. 하지만 막상 나와서 바라본 황궁은 다시는 넘을 수 없을 만큼 높아 보였다. 자신이 저 안에서 살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그리고 그럴수록 라엘의 분노는 깊어졌다.
“이건 황비마마께서 전하라고 하신 겁니다.”
시녀가 내민 것은 펜던트 목걸이였다. 황비가 라엘의 이니셜을 새겨 놓고 언제나 가지고 다니던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몸에 지니셔야 합니다.”
시녀가 신신당부를 하면서 라엘의 목에 걸어 주었다. 그건 곧 정말 이별이라는 뜻이었다.
더 이상 황비가 가지고 있어 봤자 소용이 없으니 라엘에게 대신 간직하라고 전달한 것이다. 유품이었다.
참았던 눈물이 폭발했다. 도저히 이대로는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라엘이 땅에 뿌리를 박은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자 초조해진 시녀가 그를 재촉했다.
“빨리 황궁을 나가야 합니다.”
이제는 정말 시간이 없었다. 여기서 시간을 지체했다가 황궁을 빠져나가지 못하면 황비의 희생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보다 더 최악의 상황은 없었다.
“라엘 님. 어서요!”
라엘도 알고 있었다. 그가 황궁을 떠나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라엘이 고개를 돌려 멀리서 불이 타오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불길은 엄청난 속도로 황비궁을 집어삼키고 그 위용을 자랑하듯 연기가 하늘 위로 솟구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어머니가 있었다.
라엘이 황비궁을 외면하고 눈을 매섭게 떴다. 이제부터는 각오해야 했다.
황궁을 나가면 오로지 시녀와 라엘 둘뿐이었다. 누군가에게 의탁할 수도 없었다.
라엘은 완전히 죽은 사람으로 위장해야 했으니까.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황비는 오로지 라엘의 목숨만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믿을 곳 하나 없이 황궁을 벗어나 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긴 여정이 될 것이다. 하지만 보란 듯이 살아남으리라. 그리고 절대 잊지 않으리라. 불타오르는 황비궁을 뒤로한 라엘은 다짐했다.
* * *
하지만 황궁 밖으로 나온 라엘은 더 이상 황자가 아닌 고아에 몸을 의탁할 곳도 없는 어린 소년에 불과했다.
라엘과 함께 황궁을 떠나온 시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을 노린 불한당에게서 황비의 패물을 지키려다 목숨을 잃었다.
지금껏 황궁에서 피 말리는 신경전 속에 벌어지던 싸움과는 전혀 달랐다.
라엘은 그들에게 황비가 남겨 준 패물을 비롯하여 시녀마저도 잃고 말았다.
하지만 라엘은 슬퍼할 틈도 없었다. 혼자가 된 라엘은 또 다른 위험을 맞닥뜨렸다. 황궁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데 그친 그의 외모가 황궁 밖에서는 그를 끊임없이 위협했다.
결국, 라엘은 어느 순간부터 머리를 길게 기르고 그것도 부족하다고 여겨 로브를 구해 얼굴을 가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로브를 걸친 어린 소년은 더욱 눈에 띄었고 가끔 로브가 벗겨질 때마다 시선이 쏠리는 것이 적나라할 정도로 느껴져 라엘은 사면초가에 빠졌다.
그런 나날이 이어지다 보니 마음 편하게 휴식을 취한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너 고아니?”
“…….”
라엘을 향한 목소리였다. 순간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라엘은 이제 안다. 다정한 목소리로 묻는 저 말이 얼마나 위험한지.
“얘야. 어른이 물어보면 대답을 해야지.”
이건 동정심 때문에 묻는 것이 아니었다. 아름다운 외모를 소유하고 있지만 보호자가 없는 고아. 그런 아이들은 인기가 많았다. 마음껏 이용해도 뒤탈이 없으니까.
“……꺼져.”
라엘은 자신에게 음흉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남자를 노려보며 말했다. 순간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건방진 꼬맹이가…….”
남자가 라엘에게 한 발짝 다가왔다. 위험하다. 라엘은 그동안의 경험으로 인해 지금 잡히면 얼마나 위험한지 알 것 같았다.
라엘은 그대로 돌아서 달아났다. 어린 소년이 달릴 수 있는 최대치로. 죽어라 달렸다.
“저게! 저놈 잡아!”
“잡아!”
남자의 말 한마디에 주위에 있던 자들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역시, 라엘을 어딘가로 끌고 가려고 한 것이 맞았다.
라엘은 어른을 따돌릴 수 있을 만큼 빠르게 달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아직 어리기에 숨을 곳이 많았다.
라엘은 골목에 있는 쓰레기 더미 안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밤이 될 때까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코를 찌르는 썩은 내가 온몸에 진동할 때까지.
그리고 이런 날이면 어느 곳에서도 라엘에게 방을 내주지 않았다. 썩은 내가 진동하는 아이를 자신의 객잔에 들여 놓고 싶은 자는 없을 테니까. 라엘은 바람을 피해 쪽잠을 자야만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쳐만 갔다. 소년의 작은 몸 하나 의지할 곳이 없는 세상이었다. 차라리 언제나 불안해했던 황궁이 살기 편했다고 느껴질 만큼.
너무 고단해서였을까. 언제 쓰러진 것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인적이 끊길 때쯤 밖으로 나와서 돌아가려고 했던 것 같은데, 정신을 차려 보니 여전히 칠흑 같은 밤처럼 어두웠다.
하지만 하늘이 어두운 것과는 다른 음침함이었다. 퀴퀴한 냄새에 축축한 공기, 창문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곳이었다.
거리에 쓰러지듯 잠들어 있는 사이에 누군가 끌고 온 것이 분명했다. 라엘은 순간적으로 위기감을 느끼고 정신을 바짝 차렸다. 주위에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로 보이는 아이들이 있었다. 라엘은 이곳이 어디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노예 시장!’
최근 노예 시장이 성행하고 있었다. 특히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막대한 빚을 지었거나 아니면 가난한 부모가 돈을 받고 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거리를 떠돌아다니면서 그런 식으로 사라진 경우를 몇 번이고 봤었다.
라엘은 자신을 풀어 달라고 몇 번이고 항의했다. 자신을 이렇게 억지로 끌고 온 것이 알려지면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지만 라엘의 항의는 묵살당하거나 오히려 처벌받았다. 그럴수록 라엘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갔다.
언제 팔려 나갈지 모른다. 그전에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대로 포기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라엘은 스스로의 몸을 지켜야만 했다. 하지만 그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라엘은 너무나도 무력했다.
그들은 잡혀 있는 아이들에게 언제 팔려 나갈지 알려 주지 않았다.
하지만 곧 팔려 갈 아이들을 데려가 특별히 씻기고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정상적인 음식을 주었기 때문에 다들 때가 되면 자신이 팔려 갈 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가 라엘에게도 찾아왔다. 그들은 라엘을 억지로 끌고 가 욕탕에 집어넣었다. 라엘은 씻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들이 손을 대기만 해도 물고 다리를 휘저었다. 그들은 당황하며 라엘을 억지로 붙잡으려고 했지만 위험 앞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의 힘이 나온 라엘을 막을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은 씻기는 걸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씻기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욕탕에 한번 들어갔다 나온 몸이었다.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만큼 더러운 때가 반 이상 씻겨졌다. 그들은 씻기다 만 라엘의 모습에서 그들이 확신하지 못하던 사실을 확인했다.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운 외모. 우수에 찬 눈빛은 어린 소년의 것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깊었다. 그들은 바쁘게 셈을 치기 시작했다.
“이런 상등품은 돈이 있어도 쉽게 구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반항이 심한 걸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죠.”
“분명 부르는 게 값일 겁니다.”
하나의 장식품처럼 대해지고 있었다. 라엘의 외모에 가격을 매기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결국 이렇게 끝나는 건가.’
라엘은 자신이 팔려 가게 되면 목숨을 끊기로 결심했다.
처음 각오했던 복수는 요원한 일이 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노예로 살 수는 없었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자존심이었으니까.
이대로 죽더라도 할 수 있는 것은 전부 다 해 보자. 어차피 이게 마지막이니까. 그렇게 라엘은 습하고 쿰쿰한 곳에서 자신의 마지막을 기다렸다. 이곳에서 죽기로.
노예 시장의 무대. 모두에게 상품을 선보이며 그들의 값어치를 확인시켜 주어 값을 높이기 위한 장소. 그곳에 오르며 라엘은 이게 자신의 마지막 무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상상도 못한 존재가 나타나기 전까지. 그리고 그녀가 노예 시장은 물론 자신의 인생까지 송두리째 뽑아 달라지게 만들 거라고는 전혀 알지 못했다.
“일단 여기서 클 때까지 있어.”
라엘의 인생은 또래의 소녀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일한 만큼 먹고 쉬고 자. 그리고 어른이 되면 원하는 대로 해 줄게.”
소녀의 단호한 말에 라엘은 어리둥절했다.
“라…… 미엘.”
소녀가 그의 이름을 물어보았을 때 라엘은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아주 살짝 이름을 바꾸었다. 라미엘이라고.
라엘은 라미엘이라는 이름으로 공작가에서 지내기로 했다. 오드리아의 말대로 힘을 기를 때까지는.
라미엘은 고용인들의 지시에 따라 방을 배정받고 공작가에서의 생활에 조금씩 적응해 나갔다.
음식을 열심히 먹고 깨끗하게 씻고 시키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했다.
라미엘은 오드리아에게 보란 듯이 잘 적응하고 싶었다. 그래서 일이 고단하고 힘들어도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러다 보니 황궁을 나온 이후 처음으로 안정적인 시간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안전하다고 느끼다가도 언제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그럴 때면 갑자기 주위를 경계하며 신경을 곤두세우기를 반복했다.
이곳에서 지내는 시간에 익숙해지면 안 된다. 힘을 얻을 때까지 잠시 머무르는 것뿐이니까.
라미엘은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다짐했다.
무슨 목적인지 오드리아는 라미엘이 강해질 수 있도록 그녀의 호위로 만들어 주었다. 그녀는 라미엘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안다는 얼굴을 했다.
‘나랑 나이도 비슷하면서.’
왠지 오드리아의 손아귀에 있는 것 같아서 라미엘은 더 까칠하게 행동했다.
그런데 오드리아를 따라 오필리아 숍을 방문했다가 그곳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다.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
라미엘이 자신에게만 생기는 불운에 절망할 때였다. 오드리아가 그를 찾은 것뿐만 아니라 라미엘을 구하려다 위험에 휘말리고 말았다.
라미엘은 그날 이후로 오드리아에게 빚을 갚기로 마음먹었다. 공작가에서 지내는 동안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늘어난 것이다. 그리고 강해져야 하는 이유 역시도.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킬 것이다. 임종을 지켜보지도 못한 어머니를 대신해서라도.
그렇게 몇 년이 흘렀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라미엘이 사는 세상의 중심이 오드리아가 되어 있었다. 그녀가 빠지면 세상이 없어지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오드리아가 데뷔 무도회를 치러야 하는 시기가 오자 그동안 외면하고 있던 현실을 직면해야만 했다. 자신은 그녀에게 절대 닿을 수 없다는 것을.
“그만 좀 따라와!”
“안 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떨어질 수 없습니다.”
라미엘은 오드리아의 곁에서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았다.
“진짜 괜찮다니까!”
“제가 안 괜찮습니다.”
라미엘은 오드리아의 말이라면 죽은 척이 아니라 진짜로 죽기라도 할 기세로 따랐지만 호위에 관해서만큼은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다.
결국 참다못한 오드리아가 라미엘로부터 도망치고 숨기를 반복했지만 그럴 때마다 라미엘은 그녀가 있는 곳을 정확하게 찾아냈다.
그의 호위가 끝나는 것은 그녀가 잠에 들 때였다. 그제야 라미엘은 물러나 휴식을 취했다.
그렇게 항상 그녀의 뒤만 따라다니다 보니 세상의 중심이 오드리아가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가 없으면 세상이 없어지는 것과 같았다.
황궁을 나온 날부터 분노와 저주로 가득 찼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지독한 마음들이 사라졌다. 어느새 라미엘의 심장이 따듯해지고 마음은 편안해졌다.
그것이 모두 오드리아 덕분이라는 것을 어린 라미엘도 알았다.
당연히 지금 라미엘에게 중요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이 있는 한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황태자를 향한 복수심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머니가 자신에게 했던 말이 무엇인지 이제는 알았다. 아무리 힘든 시간들도 잊게 해 줄 만큼 행복한 시간. 그게 지금이었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소중한 것, 지키고 싶은 것, 영원히 함께하고 싶은 것 모두 오드리아였으니까.
하지만 오드리아는 라미엘이 닿기에는 너무 멀리 있는 존재였다. 트루디 공작가의 사랑받는 영애. 그런 그녀를 지켜만 봐야 한다는 무력감이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러다 오드리아도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녀와 함께 있는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희망을.
공을 세워야 한다. 그래서 오드리아의 곁에 있을 자격을 가져야만 했다. 라미엘은 자신이 공을 세울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을 찾았다.
비록 그녀와 떨어져 지내야 하는 것은 죽기보다도 싫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