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드디어 결혼식까지 하루가 남았다.
공작가의 모든 고용인들은 결혼식 막바지 준비에 매달렸다. 플로렌스 홀을 점검하고 내일 준비해야 할 음식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고 내일 해야 할 일들을 시뮬레이션했다.
마지막 날이니만큼 푹 쉬어야 한다고 해서 오드리아는 고용인들이 특별히 준비한 음식과 차를 마시고 마사지를 받고 일찍 잠들었다.
하지만 라미엘은 결혼식 전날에도 일찍 잠들 수 없었다.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가 붙잡고 놔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하루만 지나면 라미엘과 가족이 된다.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는 가족이 되기 전, 마지막 심술을 부리고 있었다.
“한잔하지.”
“…….”
라미엘은 고개를 들어 한 입에 술을 삼켰다. 생각보다 독한 술에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내가 주는 것도 마셔.”
라미엘은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가 주는 대로 받아 마셨다. 단 한 잔도 거절하지 않았다.
이제 정말 오드리아가 결혼을 한다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헛헛했다. 결혼해도 함께 사는 건데 어째서 싱숭생숭한 건지. 그럴수록 라미엘을 노려보는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연거푸 마신 술 때문에 힘들어 보이는데도 라미엘은 꿋꿋하게 버티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레미아가 낮게 중얼거렸다.
“역시 마음에 안 들어.”
그 말을 들은 라미엘이 반쯤 감긴 눈으로 제레미아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의 입꼬리가 천천히, 하지만 분명하게 위로 올라갔다. 마치 기분이 좋은 듯이.
“저는 두 분이 좋습니다.”
라미엘의 기습 고백에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가 뻣뻣해졌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제레미아가 사레에 들린 것처럼 당황했다. 갑자기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제레미아가 의심스런 눈빛으로 라미엘을 쳐다보았다.
이건 분명 진심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하고 결혼식 전날인 오늘도 이렇게 라미엘을 붙잡고 늘어졌다. 그런데 좋아할 리가. 우리를 놀리는 거다. 그렇게 두 사람이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제레미아가 버럭, 화를 내려고 할 때였다. 라미엘은 평온한 모습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심지어 미소까지 곁들인 채.
“두 분이 오드리아의 가족이어서, 다행입니다.”
“…….”
이번에도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는 할 말을 잃었다. 대체 무슨 의도로 말하는 것인지 점점 알 수 없었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제가 옆에 있어도 두 분이 있으니까 아무도 오드리아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좋습니다.”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의 얼굴이 복잡 미묘하게 변해 갔다. 일그러졌다가 흉흉해졌다가 처졌다가를 반복하면서.
하지만 라미엘은 여전히 평온한 얼굴로 말을 이어 나갔다.
“오드리아에게 꿈쩍도 못하는 두 분이라, 가문의 이익을 위한 결혼이 아닌 오드리아의 선택을 존중해 주시는 두 분이라 좋습니다.”
“…….”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는 할 말을 잃었다. 그저 멍하니 라미엘이 하는 말을 듣는 것 외에는.
“그런 두 분 덕분에 제가 오드리아와 결혼하는 것이니까요.”
‘읏’ 순간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는 혀를 깨물 뻔했다. 허를 찔렸다.
라미엘은 두 사람을 향해 고마움을 표현하는 거였지만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는 한 방 먹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 오늘은 두 분이 만족하실 때까지 마시겠습니다.”
라미엘이 결연하게 말했다.
그 순간 두 사람은 깨달았다. ‘만만찮구나.’ 라미엘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오드리아의 곁에 이런 놈이 생기다니. 두 부자의 사랑에 또 한 명의 거대한 장벽이 생겼다.
결국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는 흥미를 잃고 자리를 끝냈다. 심술을 부리려고 했는데 오히려 감사와 좋아한다는 고백을 듣고 말았다.
그 기분이 오묘해서 웃을 수도 화를 낼 수도 없었다.
결혼식이 다가오는 새벽 내내 밤잠을 설친 것은 라미엘이 아니라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였다.
‘결국 내일이 오는군.’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달이 지면 태양이 뜨듯이 너무도 당연하게 내일이 찾아왔다.
* * *
올 듯 말 듯하던 결혼식 당일이 드디어 찾아왔다.
두 사람의 결혼식 날 오전 내내 안절부절못하는 것은 오드리아도 라미엘도 아닌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였다.
“오드리아 괜찮니? 혹시 어디 불편한 곳은 없어?”
“불편한 곳 하나 없이 괜찮아요.”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오드리아는 아름다웠다. 플로렌스 홀이라는 장소에 어울리는 꽃잎을 연상시키는 드레스는 오드리아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했다.
“오늘 정말 아름다우세요.”
페이지가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신시아는 이른 아침부터 바빴다. 트루디 공작가에 와서 치르는 큰일이었다. 게다가 오드리아의 결혼식. 시녀들에게 맡기면 되는 일도 신시아는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챙겼다. 그러다 보니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처럼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마님. 잠시 좀 와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메릴이 신시아를 찾아왔다. 그 이유는 당연하게도 트루디 대공의 주책을 말려 줄 사람이 신시아밖에 없기 때문이다.
신시아는 온갖 걱정에 사로잡혀 있는 트루디 대공을 오드리아로부터 떼어 냈다. 그리고 결혼식이 시작되기 전까지 이곳에 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라미엘은 하얀색 예복을 차려입은 채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결혼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행복하게 살기 바라요.”
“트루디 공작가에는 축복할 일의 연속이네요.”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결혼 후에도 공작가에서 계속 살 예정이라고 들었어요.”
“라미엘 트루디가 된다고…….”
사람들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지 소문의 데릴사위가 사실인지 확인했다.
“네. 맞습니다.”
라미엘은 시원하게 웃으며 그들의 궁금증을 확인시켜 주었다.
하객들은 포장된 미소 뒤로 모두 놀라고 있었다.
“정말이지 예상 밖이네요.”
“그러게요. 설마 오드리아 영애의 결혼 상대가 라미엘 남작일 줄이야.”
오드리아와 라미엘의 결혼식은 갑작스럽게 발표되었다. 그것도 대단한 상대와 결혼하게 될 거라던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데릴사위라니. 모두가 놀랐다.
사실 귀족의 결혼이란 대부분 가문간의 결탁이었다. 가문끼리의 이해관계에 의해 발생하는 것.
하지만 트루디 대공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들에게는 부도 명예도 권력도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으니까.
“축하드립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결혼식이라니 두고두고 회자될 듯싶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언제 떠들었냐는 듯 트루디 대공을 보자마자 다가가 축하했다.
“고맙네.”
이제 곧 결혼식이 시작될 것이다. 서로에게 맹세를 하고 서약을 하고 모두의 앞에서 인정을 받을 것이다.
트루디 대공이 오드리아의 손을 잡고 라미엘이 기다리는 곳으로 걸어갔다. 한 걸음 두 걸음, 걸음이 쌓일 때마다 트루디 대공의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이제 라미엘에게 오드리아를 맡겨야 하는데, 차마 손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라미엘이 트루디 대공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와 함께 오드리아의 손이 라미엘의 손에 맞닿았다.
이제 서로 손을 맞잡은 두 사람이 앞으로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하면 그때부터 결혼이 인정된다.
트루디 대공은 오드리아와 라미엘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느새 두 사람을 축복하는 주례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서로에게 평생 사랑하겠다는 서약을 할 때였다.
트루디 대공이 오드리아를 보며 잔잔한 호수에 파문을 일으키듯 눈물 한 방울을 뚝 떨어트렸다.
그 눈물 한 방울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결혼을 축하하는 마음, 이제 정말 떠난다는 슬픔, 지금까지 오드리아와 함께했던 추억, 그리움까지.
그의 눈물을 모두가 보았다. 적들로부터 포위를 당해도 약해지지 않을 것 같은 트루디 대공의 그런 모습에 모두가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제국 역사상 절대 잊을 수 없으며 두고두고 회자될 장면이었다.
트루디 대공이 모두의 앞에서 눈물을 흘린 결혼식으로.
‘정말 대단한 사랑을 받고 있구나.’
‘부럽다……. 눈물을 흘릴 정도로 생각해 주는 가족이 있다는 게.’
그 모습을 본 수많은 영애들이 오드리아를 부러워했다.
모두가 축복하는 결혼식. 그중에서도 가족의 절대적인 축하 속에서 진행되는 결혼식은 그 무엇보다도 빛났다.
오드리아와 라미엘이 트루디 대공과 신시아의 앞에 섰다. 신시아는 말없이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앞으로의 인생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두 사람이 함께하는 시간들이 웃음으로 가득 차길 바랄게요.”
“감사해요. 어머니.”
“그 말씀 잊지 않고 살겠습니다, 어머님.”
“어머. 우리 사위가 저한테 어머님이래요.”
신시아가 발그레한 미소를 지으며 트루디 대공을 향해 말했다. 그의 눈은 이미 잔뜩 힘이 들어가 인상을 쓰고 있었다.
“아빠. 저 잘 살게요.”
오드리아가 그의 손을 꼭 붙잡으며 해사하게 미소 지었다. 그 모습을 보고 어떻게 계속 얼굴을 찌푸릴 수 있을까. 단단하게 얼었던 그의 얼굴 근육이 해동된 것처럼 흐물흐물해졌다.
“리아…….”
그의 눈가에는 또다시 눈물이 글썽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행복해야 한다.”
그는 당장이라도 오드리아를 영영 보지 못할 것처럼 애달프게 말했다.
“네. 그럴게요.”
오드리아가 라미엘의 팔짱을 끼며 그와 함께 상체를 살짝 숙였다.
“라미엘이랑도 아빠랑도, 오빠랑도 다 함께 행복할게요.”
결국, 트루디 대공의 눈에서 눈물이 줄기를 이루며 흘러내렸다. 그 모습에 하객들은 턱이 빠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지만 트루디 공작가의 사람들은 주위의 반응 따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제레미아와 쥬아나도 오드리아와 라미엘에게 행복을 빌어 주었다.
예식이 끝나고 오드리아와 라미엘은 서로의 손을 잡고 플로렌스 홀을 나왔다. 두 사람이 가는 곳곳에 꽃잎이 흩날렸다.
두 사람의 결혼식은 그렇게 일주일이나 계속될 예정이었다. 끊임없이 나오는 음식과 술, 그리고 음악이 쉬지 않고 이어졌다.
사실 오드리아는 이렇게까지 화려한 결혼식을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린 것은 다름 아닌 신시아였다.
드러내 놓고 얘기하는 사람은 없지만 알게 모르게 라미엘의 출신 성분에 대해 언급하며 오드리아를 깎아내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신시아는 그런 자들에게 제대로 보여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누구보다도 화려하고 성대한 결혼식으로, 혹시라도 오드리아와 라미엘을 낮잡아 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경고를 해야 한다고. 그녀의 말에 오드리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오드리아 본인이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도 사람들의 입방아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처음부터 확실하게 모두에게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라미엘 역시 트루디 공작가의 일원이라는 것을.
지금까지의 라미엘을 생각해서 그를 무시하거나 얕잡아 본다면 그건 트루디 공작가를 무시하는 것과 똑같은 행위라는 것을.
신시아가 작정하고 준비한 결혼식은 지금까지 화려한 것만 보고 누리던 귀족들이 보기에도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사치스러우면서도 화려했다.
하다못해 결혼식과 별로 상관없는 정원에 있는 장식품들마저도 전부 새로 준비했다.
그중에는 돈이 있다고 해도 손에 넣을 수 없는 것들, 황제조차 갖지 못하는 것들도 있었다.
오드리아와 라미엘은 결혼식의 주인공인 만큼 모두의 이목을 끌며 춤을 췄다. 그 모습이 마치 그림처럼 잘 어울려서 공작가의 영애와 호위 기사 출신의 결혼에 내심 비죽거리던 이들까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만큼 화려하지만 고단한 하루이기도 했다. 결혼식을 진행하고 함께 춤을 추고 모두가 다가와서 건네는 축하 인사를 받고 라미엘은 축하 인사와 함께 건네주는 술까지 끊임없이 마셔야만 했다.
일주일간의 피로연이 끝나면 오드리아와 라미엘은 트루디 공작가의 영지로 신혼여행을 떠날 예정이었다.
사실 그동안 오드리아는 공작가의 영지에 한 번도 간 적이 없었기에 굉장히 기대하고 있었다.
피로연은 앞으로도 계속 진행되지만 오늘이 바로 결혼 첫날밤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을 위해 준비된 방에 들어오자마자 오드리아와 라미엘은 동시에 뻗었다. 꼼짝도 할 수 없을 만큼 온몸이 무거웠다.
다음 날이 되어도 두 사람의 강행군은 여전했다. 첫날만큼은 아니었지만 어제 보지 못한 손님들이 결혼을 축복하는 파티는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신혼여행을 떠나기 전날, 마지막 밤. 라미엘은 방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결국 새벽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그것도 잔뜩 술에 취한 채로.
라미엘은 오드리아와 제레미아를 두고 방으로 돌아가던 길에 사람들에게 붙잡혀 그대로 연회장으로 끌려갔던 것이다.
‘정말이지 도움이 안 되네.’
오드리아는 눈치 없이 라미엘을 데려가 끊임없이 술을 퍼부은 자들을 원망했다.
결혼식 첫날밤이 마치 복선인 것처럼 성대한 결혼식이 진행되는 일주일 동안, 결국 오드리아와 라미엘의 오붓한 시간은 성사되지 않았다.
이것은 오드리아를 빼앗아 간 라미엘에 대한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의 마지막 뒤끝이었다.
그로 인해 오드리아의 불만이 늘어났지만 결혼식이 끝나면 신혼여행을 떠나니까. 그때 지금 하지 못하는 것들을 마음껏 하면 되니까. 라미엘은 그렇게 생각했다.
일주일간의 피로연은 성대하게 이뤄졌고 마지막까지 완벽했다. 사실 이번 결혼식에서 존재감을 확실하게 보인 사람은 신시아였다.
그녀는 확실한 트루디 공작가의 안주인으로서 활약했다. 수많은 시녀와 시종들을 거느리고 이번 결혼식과 파티를 진두지휘했다.
그녀가 트루디 공작가의 일원으로서 모두에게 인정받고 존경받는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사실 신시아가 결혼을 할 때 많은 사람들이 반신반의했다.
유스티오 후작가의 후계자로서 가문의 주인이 될 예정이었던 그녀가 오랜 시간 트루디 대공을 짝사랑한 것을 알고 있지만 과연 대공 부인이 되는 것이 좋은 선택일까?
트루디 대공의 레이첼 사랑은 끔찍할 만큼 유명했고 그의 장성한 자녀들이 둘이나 있었다. 그런 곳에서 신시아는 반쪽짜리 존재에 불과할 것이라는 의견 역시 팽배했다. 그것이 진심 어린 걱정이든 단순한 시기와 질투이든.
하지만 신시아는 보란 듯이 그런 평가를 우아하게 짓밟아 주었다. 그녀는 장성한 자녀들로부터 존경받고 남편인 트루디 대공으로부터 사랑받으며 고용인들이 충성하는 공작가의 안주인이었다.
신혼여행을 떠나기 전 마지막 날 밤에는 가족들끼리만 오붓이 시간을 보냈다.
어차피 신혼여행 후에 공작가로 돌아온다. 그래도 결혼식이 끝나 갈수록 가슴 한편에 구멍이 생긴 것 같았다. 맛있는 음식과 잘 어울리는 와인, 그리고 촛불과 함께하는 식사는 그 어느 때보다 충만했다.
“앞으로도 함께할 거잖아요.”
오드리아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앞으로는 트루디 대공과 신시아, 제레미아와 쥬아나, 그리고 오드리아와 라미엘까지 여섯 명이 한 가족이 된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다 같이 모여 함께 식사를 하게 될 것이다.
지극히 당연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우리 마지막으로 함께 춤출까요?”
오드리아가 제안했다. 모두가 플로렌스 홀로 이동했다.
바로 전날까지 이어졌던 화려한 파티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 넓고 고요한 홀 안.
오로지 하나의 리듬이 흘렀다.
오드리아는 트루디 대공과도, 제레미아와도, 라미엘과도 춤을 췄다.
작게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와 함께 밤은 저물어 갔다.
* * *
오드리아와 라미엘은 공작가의 영지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마차 안에는 오드리아와 라미엘만이 있었다. 결혼식 전후로 정신없이 바빴다 보니 단둘이 있는 시간은 무척 오랜만이었다.
“피곤할 텐데 좀 쉬어.”
라미엘이 오드리아에게 말했다. 오드리아는 괜찮다고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이 감겼다.
어느새 오드리아의 고개가 라미엘의 어깨에서 그의 무릎 위에 놓였다. 새근새근, 규칙적인 숨을 쉬는 소리가 기분 좋게 울렸다.
마차는 그렇게 반나절을 더 달린 후에 공작가의 영지에 도착했다. 오드리아와 라미엘이 마차에서 내렸을 때 하늘은 노을이 지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두 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영지를 관리하는 집사가 오드리아와 라미엘을 맞이했다.
“이곳에서 머무는 동안 모실 앤서니라고 합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잘 부탁해요.”
“두 분을 모실 수 있어 영광입니다.”
그는 오랜 시간 이곳 영지를 관리해 온 베테랑 집사였다. 오드리아 역시 실제로 만나는 것이 처음일 뿐 그에 대해서는 종종 들어 왔다.
앤서니가 두 사람에게 성에서 쓰게 될 방을 안내해 주었다.
성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방은 두 사람을 위해 따로 준비를 했는지 침대 위에는 꽃잎이 흩날리고 있었다.
“부족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럴게요.”
“저녁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방에서 간단하게 먹고 싶은데.”
오늘만큼은 오드리아와 라미엘 모두 단둘이 조용히 쉬고 싶었다.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그럼 저는 내일 아침에 다시 오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앤서니는 그렇게 말하고 돌아갔다. 얼마 있지 않아 하녀 두 사람이 저녁 식사를 가져와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나갔다.
오드리아와 라미엘은 식사를 하고 하녀들이 미리 준비해 놓은 곳으로 가서 목욕했다. 오늘 하루는 물론이고 지난 며칠간의 피로가 한순간에 풀리는 것 같았다.
신혼여행을 오면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았다. 그동안 정신없이 바빠서 두 사람이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드디어 가진 여유였다.
마차를 타고 오는 내내 도착하면 무엇을 할지 행복한 상상을 했다.
오드리아와 라미엘은 침대에 함께 누웠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고 얼굴이 가까이 다가갈 때였다.
점점 몸 안에 온기가 감돌면서 몸이 나른해졌다. 안 되는데, 이렇게 잠들면 안 되는데. 오드리아는 가까스로 자꾸만 감기려고 하는 눈을 떴다.
그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외부의 소리에 오드리아와 라미엘의 행동이 멈췄다. 라미엘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문을 향해 다가갔다.
문을 열어 보니 시종장이었다. 그와 라미엘이 뭔가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 오드리아의 무거워진 눈꺼풀 사이로 흐릿하게 보였다.
얘기가 끝났는지 문이 닫히고 라미엘이 돌아섰다.
라미엘이 침대로 돌아왔을 때였다.
오드리아는 어느새 잠이 들어 있었다. 결국 피로가 이기고 만 듯 오드리아는 새근거리며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라미엘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술을 맞대고는 세상 곤하게 자고 있는 오드리아의 이불을 끌어올려 자신도 그 옆에 나란히 누웠다.
그렇게 두 사람의 첫날밤은 숙면을 취하는 것으로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 눈을 뜬 오드리아는 그 사실을 깨닫고 황당함에 한동안 넋이 나갔다.
“나 잔 거야……?”
자신이 무슨 짓을 한 건지 후회하면서.
“말도 안 돼…….”
믿고 싶지 않지만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 봐도 잠든 게 맞았다.
‘어떻게 첫날밤에 잠들 수가 있지?’
오드리아가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충동에 손을 머리 위에 얹었을 때였다.
똑똑―, 노크와 함께 집사가 아침 식사가 준비되었음을 알렸다.
“오늘 일정이 따로 있으십니까?”
아침 식사가 끝나 갈 무렵 집사가 물었다.
아직 오드리아와 라미엘은 이곳에서 무엇을 할지 얘기하지 않았다. 오드리아는 내심 이곳에서 머무르는 동안 라미엘과 단둘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아직 정해지신 것이 없으면 영지를 둘러보시는 게 어떠신가요.”
오드리아가 조심스럽게 말하려고 할 때였다. 집사가 한발 더 빨랐다. 집사의 눈빛이 기대감으로 반짝였다.
“……그럴까.”
오드리아가 어색한 얼굴로 미소 지었다. 수도와 영지 사이에 거리가 있다 보니 자주 오지 못했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오드리아의 첫 방문이었다. 집사가 이것저것 신경 쓰는 것이 당연했다. 오늘은 영지를 돌고 내일부터는 라미엘과 시간을 보내면 되겠지.
성을 나서자마자 두 사람이 나올 것을 알고 있었는지 영지민들이 오드리아와 라미엘을 열렬히 환영했다.
“결혼 축하드립니다!”
“영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세요!”
영지민들의 맹목적인 사랑을 받는 존재가 오드리아였다.
그녀는 영지에 방문한 적은 없었지만 영지민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그녀가 트루디 대공에게 얘기해서 구휼 농작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편의를 봐준 덕분에 영지민들의 생활이 한층 높아졌기 때문이다.
영지민들은 자신의 평안한 생활이 오드리아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결혼하고 이곳으로 온다는 소식에 모든 영지민들이 두 사람을 맞을 준비를 했다.
끊임없이 몰려드는 환영 인파에 오드리아와 라미엘은 영지를 제대로 둘러보기는커녕 앞으로 나아가는 것조차 어려울 지경이었다.
“생각보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죄송합니다. 괜히 피곤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아니에요. 저도 즐거웠어요.”
“맞습니다. 게다가 사람들의 얼굴만 봐도 영지가 어떤지는 굳이 둘러보지 않아도 알 것 같더군요.”
“하하. 그것이야말로 저희 영지의 자랑이지요.”
라미엘의 말에 앤서니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이곳에선 굶어 죽는 사람이 없었다. 그 해에 농사가 망한다고 해도 그동안의 철저한 준비 덕분에 얼마든지 대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염병이나 흉작이 심할 때는 한 해의 세금을 일절 받지 않아 영지민들의 부담을 덜어 주었다. 사람들이 이곳에 산다는 사실만으로도 자부심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모여든 영지민들을 뚫고 마차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앤서니는 영지를 한 바퀴 돌아본 후 영지의 중요한 곳들이 잘 보이는 높은 언덕 위에서 멈췄다.
“여깁니다. 이곳에서는 영지가 한눈에 보이지요.”
마차에서 내려 아래를 보니 그의 말대로 공작가의 성을 비롯하여 영지민들의 삶의 터전이 한눈에 보였다.
“저쪽에 보이는 곳은 영지민들의 대다수가 일하는 농지입니다.”
그의 안내에 따라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광활한 농지가 펼쳐져 있었다.
“왼쪽에 보이는 저 길에는 시장이 열리는데 한 달에 한 번씩 큰 장이 열릴 때는 굉장하답니다.”
지금은 한산해 보이지만 길게 늘어서 있는 거리만 봐도 얼마나 큰 장이 열리는지 알 것 같았다.
“저희 영지처럼 모두가 잘사는 곳은 흔치 않죠. 모두 대공 각하와 제레미아 님, 오드리아 님 덕분입니다.”
앤서니의 설명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영지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다양한 사업과 상업이 공존하고 거리는 활기로 가득 찼다.
그 모습을 보니 오늘 하루 라미엘과 단둘이 있지 않은 아쉬움이 전부 사라졌다. 오드리아의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걸렸다.
영지민들의 환영을 받고 밤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오드리아와 라미엘은 방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첫날밤처럼 너무 피곤한 나머지 그대로 잠들어 버리고 싶었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가 쨍쨍하게 빛나고 있는 것을 발견한 오드리아는 눈을 찡그렸다.
오드리아는 오늘만큼은 조용히 단둘이서 지내고 싶었다. 그래서 오드리아와 라미엘은 오늘 영지 외곽으로 단둘이 나들이를 다녀오기로 했다.
그런데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데 앤서니가 두 사람의 눈치를 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늘 영지민들이 두 분을 위해 준비한 것이 있다고 합니다. 괜찮으시면 잠시 들러 주실 수 있을까요.”
그들은 오드리아를 자주 보는 것이 아니었다. 이곳 영지에는 오드리아로 인해 알게 모르게 도움을 받은 이들이 많이 있었다.
그렇기에 처음으로 영지에 오는 오드리아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어 몇 날 며칠을 밤새도록 준비한 것들이었다.
오드리아는 난처했다. 하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 일부러 정성스레 준비했다는데 제 욕심만 챙길 수는 없었다.
라미엘과는 앞으로도 함께이지만 이곳은 곧 떠나야 하니까, 아쉽지만 참을 수밖에.
“그럴게요.”
결국 오드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트루디 공작가의 영지는 특수했다.
영지민들에게 성주는 어렵고 무섭고 싫은 존재다. 그들의 세금과 노동력을 착취당하니까. 하지만 트루디 공작가는 영지민들이 더 잘살 수 있도록 했다.
그 차이가 영지민들에게는 트루디 공작가라고 하면 자랑스러워하고 동경하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오드리아가 결혼을 하고 이곳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녀를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뭔가를 해 주고 싶었다. 그동안 최선을 다해 준비한 것들이었다.
이곳의 명물인 축제.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고 흉내를 내는 자들도 있고 연인끼리 서로의 옷을 바꿔 입은 이들도 있었다. 귀족들의 파티처럼 품위를 유지하고 우아한 것이 아닌 천박해 보일 정도로 자유롭고 웃음이 터질 것 같은 분위기의 축제였다.
오드리아와 라미엘 역시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두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로지 오드리아와 라미엘을 위한 축제였다. 하지만 모두가 즐기고 있는 분위기가 자연스레 기분을 들뜨게 만들었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밌었지만 중간중간 퍼레이드처럼 여러 사람들이 한데 모여 춤을 추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오드리아와 라미엘의 입이 떡하니 벌어질 정도였다.
그렇게 파티를 한창 즐기고 있을 때였다. 앤서니가 다른 곳으로 안내했다. 조용한 식당이었다.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밖에서 나는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전부였다.
식당 안에는 오드리아를 기다리고 있던 노인과 몇몇의 영지민들이 있었다.
“오드리아 님. 이건 저희가 준비한 선물입니다.”
영지민들은 오드리아와 라미엘을 위해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
“이게 뭐죠……?”
“열어 보십시오.”
선물을 내민 노인이 달뜬 목소리를 애써 누르며 말했다. 오드리아는 정성스레 포장된 것을 천천히 뜯었다. 오드리아의 팔뚝만 한 크기의 물건이었다.
“이건……!”
포장을 뜯어 안에 담긴 물건을 확인한 오드리아의 눈이 커졌다.
“제가 가지고 있던 것입니다.”
선물은 오드리아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오드리아를 품에 안은 레이첼의 모습이 담긴 초상화였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 혼란스러웠다.
“임신을 하셨을 때 요양차 이곳에 오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마님께서 이곳의 화가를 불러 마님과 곧 태어날 예정인 오드리아 님의 모습을 상상하여 그려 달라 하셨습니다.”
“…….”
“그런데…… 결국 이 그림을 전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오드리아를 낳고 레이첼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노인은 그 뒷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들고 있는 그림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째서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와 함께 있는 그림을 그려 달라고 한 것일까.
레이첼은 자신의 몸이 회복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어쩌면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일부러 멀리 있는 공작가 전속 화가를 부르지 않고 이곳에서 따로 화가를 불러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그녀와 함께 있는 모습을 그리게 한 것이겠지.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레이첼이 이런 그림을 굳이 남기려 한 이유는, 그녀가 떠나고 마음의 짐을 가지게 될 오드리아에게 그녀의 뜻을 남기기 위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엄마는 너를 낳아서 행복하단다. 너도 많이 웃으렴.’ 그림 속에서 그녀가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걸 드릴 수 있다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노인이 말에 오드리아는 말이 없었다. 사실 그간 오드리아는 레이첼의 존재를 제대로 느낀 적이 없었다. 그저 그녀의 이름을 가끔 떠올릴 뿐.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녀임에도 어쩐지 ‘엄마의 마음’이 느껴져 눈시울이 붉어졌다.
오드리아가 복잡 미묘한 감정에 혼란스러워하는데 노인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지난번 대공 각하와 마님께서 오셨을 때 드리려고 했는데, 마님께서 나중에 오드리아 님이 오면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랬군요.”
목 안이 뜨거워졌다.
라미엘이 그런 그녀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손등을 어루만지며 오드리아를 위로했다. 오드리아가 고개를 돌려 라미엘을 바라보자 그가 따뜻한 시선으로 그녀를 지그시 바라봐 주었다.
그의 미소에 빠르게 뛰던 심장이 조금씩 침착해졌다.
“……고마워요.”
오드리아는 목 끝까지 차오르는 울음을 겨우 참으며 말했다.
레이첼은 모두로부터 사랑받았구나.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트루디 대공과 신시아가 서로 함께한다고 해서 레이첼이 잊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모두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으니까. 오드리아는 마음 편하게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 * *
대장정에 가까웠던 결혼식에 신혼여행지에서의 격한 환영에 축제, 거기에 전혀 생각하지 못한 선물까지. 성에 돌아온 오드리아와 라미엘은 온몸이 노곤했다.
이제 하룻밤만 지나면 공작가로 돌아가야 한다. 결국 단둘이 쉰다는 계획은 이루지 못한 채 자고 일어나면 수도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 온 것이다.
‘결국 이렇게 됐네.’
오드리아는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일부러 오드리아와 라미엘을 방해하는 것처럼 계속해서 어긋났다. 그리고 결국 두 사람은 단둘이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그래도 뭐.’
오드리아가 입꼬리를 올렸다.
‘즐거웠어.’
비록 단둘이 있지는 못했지만 영지에서 보낸 며칠간의 시간은 평생 잊지 못할 만큼 즐겁고 소중했다. 라미엘과는 앞으로 얼마든지 함께할 수 있다. 그러니까 초조해할 필요는 없었다.
물론 라미엘과 단둘이 있을 수 있는 기회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것은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오드리아는 그렇게 생각하며 내일 이동할 것을 생각해 일찍 쉬려고 했다.
“벌써 자려고?”
“응. 안 그러면 진짜 병날 것 같아.”
엄살이 아니었다. 마지막 밤이라도 특별하게 보내고 싶다는 마음이 힘을 쓰지 못할 만큼 온몸이 무거웠다.
계속해서 피로가 쌓여 이러다가는 몸살이 나서 앓을 것 같았다.
그런데 라미엘이 오드리아의 옆이 아닌 위에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가까워진 거리에 오드리아의 눈이 커졌다
“뭐야?”
갑자기 왜 이러지. 오드리아의 동그랗게 커진 눈이 바쁘게 움직였다. 하지만 라미엘은 흔들리지 않고 오드리아의 양어깨 옆으로 손을 가져가 중심을 잡았다.
“만약 아프면 내가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간호할게.”
라미엘의 다정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아플 것 같아서 쉬겠다고 하는데, 아프면 간호를 해 주겠다니. 이게 무슨 소리지.
“감기에 걸린다면 나한테 옮겨도 좋아.”
“……?”
그렇게 말한 라미엘이 팔을 굽혔다. 자연스레 그의 얼굴이 아래로 내려가 오드리아의 코끝에 닿았다.
“내일 못 일어날 거 같으면 내가 가는 내내 안아 줄게.”
순간 아찔했다. 그 순간 입 안이 미치도록 달았다. 라미엘과 맞닿은 시선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여기서 제대로 한 게 아무것도 없잖아.”
“…….”
라미엘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순간 오드리아의 심장이 뛰었다. 터질 만큼 빠른 속도로.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 두 사람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단 한 순간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았다.
어느새 라미엘과 오드리아는 닿지 않은 곳을 찾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가까워졌다. 숨소리가 서로 섞이고 이상하게 뜨거운 열기가 났다.
이상하게 계속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고 꼬이기만 한 신혼여행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밤만큼은 오로지 두 사람만을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이제 진짜 부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