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최근 라미엘은 훈련을 하다가도 그냥 걷다가도 심지어는 잠을 자다가도 갑자기 발작처럼 헤실헤실 웃음을 터트렸다.
“라미엘이 너한테도 웃었어?”
“어. 그것도 무지 상냥하게.”
“차라리 화를 내지. 이게 더 무서워.”
“맞아. 오히려 다른 의미로 위험해 보여.”
함께 훈련하던 기사들이 웅성거렸다.
“쟤 왜 저래.”
연무장을 찾은 제레미아 역시 계속 웃음을 흘리고 있는 라미엘을 발견하고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실성한 놈처럼 웃고 있어.”
제레미아가 비아냥거리는데도 라미엘은 그게 무슨 말이든 여전히 웃고 있었다.
“오늘…… 훈련하기 참 좋은 날인 거 같아서 기분이 좋아서 말입니다.”
누가 들어도 전혀 믿지 않을 말이었지만, 라미엘은 그렇게 말하며 또 웃음을 터트렸다. 굉장히 기분이 좋다는 듯이.
“이상해…….”
결국 제레미아가 고개를 저으며 돌아갔다.
모두가 라미엘을 이상한 눈으로 보며 슬금슬금 멀리 돌아서 피해 다녔다. 하지만 라미엘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실실 웃음을 지었다.
늦은 밤, 오드리아가 혼자서 후원을 산책했다. 걷고 있다 보니 자연스레 라미엘이 그녀의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었다.
오드리아는 놀라지 않고 자연스럽게 계속 걸음을 내디뎠다.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지만 표면적으로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여전히 오드리아와 라미엘은 아가씨와 호위 기사였다.
하지만 단둘이 있을 시간이 필요했고 그래서 찾은 방법이 늦은 밤에 인적이 드문 후원에서 만나는 것이었다.
“라미엘. 이유도 없이 갑자기 웃는다고 사람들이 너 이상하게 봐.”
오드리아가 오늘 제레미아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리며 말하자 라미엘이 당황하며 움찔했다.
“그게, 참아 보려고 하는데…….”
사실 라미엘이 왜 그러는지 모르지 않았다. 오드리아는 그런 라미엘이 좀 귀엽다는 생각도 들었다.
“너무 좋아서 자제가 안 됩니다.”
라미엘의 얼굴이 붉어지고 입꼬리가 올라갔다. 불가항력으로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믿기지가 않아서 혹시 꿈은 아닐까 싶다가도 모두 현실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아, 정말 어떡하지.
어느새 오드리아의 얼굴도 붉어졌다.
오드리아와 라미엘이 오필리아 숍으로 외출하려는데 아이작과 만났다.
“오필리아 숍에 가십니까.”
“응.”
“저도 동행할까요.”
“아냐. 라미엘하고 다녀오면 돼.”
아이작의 말에 오드리아가 단호하게 거절했다.
“라미엘…….”
“걱정 마십시오. 제가 잘 지키겠습니다.”
아이작이 아쉬워하며 라미엘을 바라보자 그 역시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두 사람은 혹시라도 아이작이 붙잡을까 봐 서둘러 현관을 나섰다.
마차를 타자마자 서로 잰걸음으로 도망치듯 나온 모습이 떠올라 동시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오필리아 숍에 도착하자마자 페이지가 사무실에 차와 간단한 다과를 준비했다.
“저는 나가 있을게요.”
“고마워, 페이지.”
페이지는 오드리아와 라미엘의 관계를 유일하게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오드리아는 라미엘과 마음 편하게 시간을 보내기 위해 오필리아 숍을 매일 같이 찾아왔고 그럴 때마다 페이지가 그녀의 사무실을 비워 주었다.
“별말씀을요. 저야 오드리아 님이 행복한 게 보람인걸요.”
페이지가 오드리아를 향해 상냥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 돌아섰다.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멈칫, 뒤를 돌아 오드리아를 향해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부디 이 모습을 대공 각하나 제레미아님께 들키지 마세요.”
“어……?”
“오드리아 님의 결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반대하시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분명 무슨 일이든 벌어질 테니까요.”
페이지가 조언했다. 그 말에 오드리아와 라미엘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눈앞의 현실을 깨달았다.
* * *
오드리아는 라미엘과 함께하기로 마음을 굳히자마자 깨달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로 결혼을 못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는 오드리아의 결혼 상대로 누구를 데려와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건 곤란한데.’
오드리아는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가 좋았다. 두 사람과 평생 함께 살 수 있으면 분명 좋을 것이다. 하지만 오드리아는 결혼이 하고 싶었다.
‘이게 두 번째 인생인데 두 번 다 결혼도 못하는 건 억울하잖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도 밝히지 못한다는 것은 사실 서글픈 일이었다.
‘그렇다고 당장 결혼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오드리아의 나이가 되면 벌써 결혼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하지만 오드리아는 당장 그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금 상황만 봐서는 그 누구를 데리고 와도 오드리아의 결혼을 허락해 줄 리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만약 라미엘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게다가 오드리아는 결혼만큼은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의 축복을 받으면서 하고 싶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가족들의 축하. 결혼 때문에 두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싶지도 않았다.
‘어떻게 하면 좋지.’
다른 이들에게는 배부른 고민일 수도 있지만 오드리아에게는 심각한 일이었다.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가 상처받지 않으면서도 결혼을 허락하게 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오드리아는 고민했다.
“이번에 영지에서 괜찮은 물건이 들어왔는데 네가 생각나 가져왔단다.”
트루디 대공은 좋은 물건이 있을 때마다 항상 오드리아에게 가져왔다.
“잠시 시간이 나서. 마침 산책 중이라기에.”
바쁘게 일을 하다가도 잠시 쉴 수 있는 시간이 날 때면 당연하게 오드리아가 있는 곳을 찾아왔다. 다른 휴식의 방법은 모르는 사람처럼.
일을 할 때도 일상 속에서도 특별한 순간에도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는 오드리아를 생각했다.
“나와 춤을 춰 주겠니?”
“이번에는 제가 먼저입니다.”
연회에 참석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와 춤을 추고 싶어 하는 영애들의 눈빛이 강렬하게 느껴지는 와중에도 두 사람은 오드리아와만 춤을 췄다.
그게 당연하고 다른 사람과 춤을 춘다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것처럼.
두 사람은 일상의 사소함부터 특별한 순간까지 모두 오드리아와 함께하기를 바랐다.
물론 그 시간들이 오드리아도 즐겁고 행복했지만 서서히 불안해지기 시작한 것 역시 사실이었다. 너무 사랑받아서 곤란하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오드리아 님을 너무 아끼셔서 그런 거니, 오드리아 님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낮아지면 괜찮아지지 않을까요?”
최근에 생긴 오드리아의 민망한 고민을 듣고 있던 페이지가 말했다.
‘관심이 낮아져?’
오드리아는 그 말이 일리 있는 것 같았다.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의 최우선순위는 언제나 오드리아였다. 모든 관심이 그녀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더더욱 헤어지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우울해했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오드리아에게 쓰는 관심이 상대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그러면 결혼도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른다.
오드리아가 결혼을 해도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와는 계속 가족이었다. 다만 더 이상 함께 살 수는 없을 뿐.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생각해 보면…….’
오드리아가 그동안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렸다.
연회에서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는 오드리아 외에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었다. 트루디 대공은 레이첼이라는 잊을 수 없는 존재가 있어서라고 하지만.
“오빠도 결혼 시기가 한참 지났잖아?”
제레미아는 어째서 결혼에는 관심이 없는 거지?
상대적으로 남자들의 결혼 적령기는 꽤 폭넓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레미아는 약혼자도 없는 상태였다. 분명 늦은 편이었다.
“오빠가 결혼을 하면…….”
그럼 나와 라미엘의 관계도 이해해주지 않을까.
바로 옆에 소중한 사람이 생기는 거니까. 관심이 그녀에게 향할 것이다.
대공 또한 사랑스런 며느리를 보느라 자신을 향한 관심이 줄어들지도 모른다. 오드리아의 입꼬리가 기분 좋게 올라갔다.
하지만 제레미아는 결혼은커녕 정혼에 대해 오가는 상대도 없었다. 오드리아는 제레미아에게 슬쩍 물어봐서 그의 마음을 확인할 생각이었다.
“오빠는 결혼 언제 해요?”
“결혼?”
제레미아는 끔찍한 말을 들은 것처럼 머리를 흔들었다.
“나는 이대로가 좋아.”
처음부터 막혔다. 제레미아는 전혀 결혼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공작가의 후계자인데.
트루디 대공은 아들의 결혼에 관심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 역시 전혀 아니었다.
오드리아는 쉽지 않겠다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 * *
라미엘과의 관계는 아직 비밀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숨길 수는 없다.
‘일단 하나씩 해결해 나가자.’
오드리아는 의지를 불태웠지만 오드리아의 결혼까지 장벽이 너무도 많았다.
게다가 라미엘은 귀족이 아니었다. 기사라고 하더라도 귀족들과는 다른 신분이었다.
“그거라면…… 방법이 있습니다.”
라미엘이 그건 걱정하지 말라며 자신 있게 말했다. 오드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법?”
“네.”
라미엘이 오드리아의 얼굴 옆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말했다. 사실 이 방법에 대해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해 왔다.
“공을 세울 겁니다. 기사는 업적에 따라 얼마든지 작위를 받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위험하잖아.”
오드리아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가장 빨리 공을 세우는 방법은 전쟁에 나가는 것이다.
“대공 각하와 제레미아 님을 상대하는 데 비하면 안전합니다.”
라미엘이 단호하게 말했다. 특히 제레미아에게 혹독한 훈련을 받은 그였다. 그의 밑에서도 버텼는데 못할 것이 없었다.
“신분은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그의 의지는 확고했다. 오드리아는 그런 라미엘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라미엘은 분명히 해낼 것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문제는, 그래도 절대 허락하시지 않을 거라는 겁니다.”
라미엘이 무겁게 말했다. 오드리아 역시 그가 걱정하는 게 무엇인지 잘 알았다. 상대가 누구든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오드리아는 라미엘에게 자신만만하게 선언했다.
“나만 믿어.”
“네?”
오드리아는 나름대로 앞으로 라미엘과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웠다. 그와 함께하기 위해서라면 오드리아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라미엘은 오드리아의 호언장담에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그녀의 당찬 자신감에 다시 한번 반할 뻔했다.
하지만 모든 걸 그녀에게 맡길 수 없다. 그러니 그는 호언장담한 대로 신분 문제는 반드시 자신이 해결하기로 다짐했다.
하지만 오드리아는 생각이 달랐다.
어차피 그녀의 아빠와 오빠는 아무리 대단한 사람을 데려와도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두 사람의 눈에 차는 상대가 있을 리 없었다.
라미엘이 많이 힘들어질 것이 뻔하다. 그러니 자신이 지켜 줘야 한다고 오드리아는 이미 각오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함께할 거니까.”
오드리아가 라미엘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다짜고짜 자신을 믿으라고 하는 그녀의 모습에 무슨 생각이라도 있는 것인가 싶었다.
“나 기다릴 수 있지?”
“……네.”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지만 라미엘은 일단 대답했다. 그게 무엇이든 라미엘은 오드리아를 기다릴 테니까.
“그럼 오래 걸리더라도 기다려.”
오드리아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 오드리아를 라미엘은 흔들림 없이 바라보았다.
“아빠랑 오빠는 내가 해결할 테니까.”
하지만 오드리아는 구체적인 설명대신 라미엘의 어깨를 두세 번 두드렸다.
라미엘은 오드리아가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것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를 믿었다.
오드리아는 라미엘의 마음을 확인했겠다, 이제는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 * *
그녀에게는 야심찬 계획이 있었다. 페이지의 조언에서 영감을 얻은 방법이.
오드리아는 마음먹었다.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에게 짝을 찾아 주기로.
그건 라미엘과 결혼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사라와 에단의 결혼을 보고 나서 깨달은 것이기도 했다.
‘역시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좋겠어.’
두 사람에게도 평생을 함께할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오드리아는 진심으로 기원했다.
물론, 그 영향으로 자신에 대한 애정이 분산되면 더더욱 좋고. 그렇게 하면 분명 오드리아의 결혼을 응원해 줄 것이다.
‘할 수 있어!’
오드리아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문제는 어떻게 두 사람의 상대를 찾을지였다. 제레미아를 갑자기 결혼하게 하는 것은 힘들었다.
그에게는 그 흔한 정혼자도 없었으니까. 게다가 제레미아는 결혼은커녕 여자들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오드리아는 한동안 제레미아를 관찰했다.
하지만 관찰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제레미아의 행동 패턴은 단순했다.
아침 일찍 연무장에 가서 훈련을 하고 오전이 되면 집무실에서 일을 한다. 그러다 시간이 남으면 오드리아를 찾아와 함께 산책을 하거나 차를 마시고 난 후, 다시 일을 했다. 저녁에는 다시 연무장에 가서 훈련을 하고.
가끔 사적인 외출을 하지만 그때도 다른 사람을 만나거나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오드리아는 슬슬 불안해졌다.
‘설마…… 아니겠지?’
오드리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서.
제레미아가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 거면 어떡하지.
오드리아를 좋아하는 건 오빠가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가 오드리아를 제외한 다른 여자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유일한 이성 친구가 있기는 하지만 그저 어릴 때부터 알고 지냈기 때문에 가능한 관계였다.
에이, 아닐 거야.
오드리아는 자신의 머릿속을 부정하기 위해 열심히 고개를 흔들었다.
조금만 깊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제레미아는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에게도 관심이 없었다.
유일하게 관심을 보이는 상대가 라미엘이지만 그 역시 오드리아 때문에 생긴 관심이고 분류를 하자면 싫어하는 쪽이었다.
어쩐지 제대로 시작한 것도 없는데 벌써부터 험난한 기분이 들었다.
다른 것엔 전혀 관심이 없는 제레미아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길까? 오드리아는 자신이 없었다.
상대에게 별달리 관심이 없는 것은 트루디 대공 역시 마찬가지지만 제레미아와는 상황이 달랐다. 그에게는 오래전부터 그를 짝사랑해 온 사람이 있었으니까.
이제는 오드리아와도 각별한 사이가 된 신시아 유스티오, 바로 그녀였다. 그녀는 오랜 시간 동안 트루디 대공을 짝사랑하고 있었다.
만약 두 사람이 잘된다면 분명 좋을 것이다. 그건 이전부터 오랫동안 생각해 온 것이기도 했다.
‘게다가 황궁 연회 때의 일을 보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닌 거 같았는데.’
그때 본 트루디 대공은 여전히 무뚝뚝했지만 그래도 좀 달라 보였다. 헛된 희망일지라도 희망은 희망이다. 오드리아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때마침 트루디 대공이 유스티오 후작가를 방문해 식사한다고 한다. 지난 사건 때 오드리아를 도와준 고마움의 대가로 황궁 연회 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이 분명했다.
오드리아는 이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의 관계를 이어 나가기 위한.
오드리아가 유스티오 후작가를 찾아갔다.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신시아는 그녀를 반가이 맞았다. 차와 디저트가 준비되고 두 사람이 가벼운 담소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아버지와 식사를 한다고 들었어요.”
“아…… 그거요…….”
신시아가 말을 아꼈다. 그녀의 얼굴이 살짝 붉어지는 게 느껴졌다.
“지난 일에 대해 성의를 표시하시겠다고 하셔서…….”
그녀답지 않게 말끝이 흐려졌다. 애써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기대가 되는 것을 숨길 수 없는 것처럼.
오드리아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저는 신시아 님을 응원해요.”
“응원이라뇨?”
오드리아의 말에 놀란 신시아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신시아 님과 저희 아버지가 잘되기를요.”
오드리아는 돌려 말하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확실하게 응원하고 싶었다. 그녀의 말에 신시아가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며 얼굴이 붉어졌다.
“신시아 님께 저는 너무 큰 아이이긴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면.”
“무슨 말이에요. 저는 오드리아도 제레미아도 모두 좋아한답니다.”
오드리아의 걱정이 담긴 말에 신시아가 정색하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의 확신 가득한 말에 오드리아의 입가에 미소가 담겼다. 역시 이 사람이 좋다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그러면 부디 제가 도울 수 있게 해 주세요.”
“……!”
사실 이 말을 하기 위해 온 것이다. 오드리아의 말에 신시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기쁜 듯 커졌던 그녀의 눈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곧이어 그녀가 고개를 떨궜다. 신시아의 어깨가 잘게 떨렸다. 순간 오드리아가 당황해서 그녀를 불렀다.
“신시아 님? 왜 그러세요? 혹시 제가 실수라도?”
혹시 너무 자신의 입장에서만 말을 한 건가. 오드리아가 신시아의 반응에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아뇨.”
신시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무래도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곧 진정이 됐는지 따스한 미소를 지은 채 오드리아를 바라보았다. 눈물은 지웠지만 그녀의 붉게 충혈된 눈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고마워요.”
신시아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오드리아를 바라보았다. 오드리아는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깨달았다. 그녀가 눈물을 흘린 의미를.
“제가 할 수 있는 건 뭐든 도울 수 있게 해 주세요.”
“그 말만으로도 너무 고마워요.”
언제나 우아하고 기품이 넘치는 신시아 유스티오. 조용하지만 흔들리지 않고 주위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처음으로 가녀려 보였다.
신시아는 오드리아의 말에 순간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혼자서 품은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버텨 온 시간들이었다. 이제는 너무 오래돼 그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기억나지 않을 만큼.
모두가 그녀에게 포기하라고 했다. 너라면 더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신시아 역시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어차피 그와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고 자신을 걱정해 주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이 마음을 접는 것이 맞다고.
하지만 자신의 것인데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마음이었다. 어쩌면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이어 오던 것이다.
그런데 처음으로 오드리아가 응원한다는 말을 해 주자 지난한 시간들이 떠오르며 눈물이 차올랐다.
오드리아는 자신이 처음에 생각했던 목적을 잊어버릴 만큼 진심으로 신시아를 도와주고 싶었다. 분명 이런 사람과 함께라면 트루디 대공 역시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마음에 달린 문제였다. 신시아는 오드리아가 응원해 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난다며 고맙다고 할 뿐이었다.
오드리아는 그동안 궁금해한 적 없던 오드리아 트루디의 어머니이자 전 공작 부인인 레이첼의 존재가 궁금해졌다. 레이첼에게 양해를 부탁해야 할 것만 같았다.
“메릴. 엄마의 초상화가 보고 싶어.”
오드리아가 지금까지 입 밖으로 꺼내 본 적 없는 말을 했다. 메릴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당황하는 모습이 얼핏 보였지만 곧 미소 지었다.
더 이상 레이첼의 존재는 금기가 아니었다. 오드리아 역시 레이첼의 존재에 대해 자세히 알 필요가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이니까.
“바로 가져오겠습니다.”
메릴이 대답했다. 오드리아는 메릴이 초상화를 가져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여러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오드리아는 지금까지 레이첼 트루디의 존재에 대해 묻어 두고 있었다. 괜히 그녀의 존재를 잘못 꺼내 들었다가 지금의 평화를 잃을까 봐.
하지만 이제는 새로운 시작을 위해 지금까지 덮어 오던 일을 꺼낼 때였다.
생전의 레이첼이 사용하던 방에 걸려 있는 초상화를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오드리아는 초상화 속 레이첼을 바라보며 양해를 구했다.
“부디, 이해해 주시길 바랄게요.”
오드리아는 레이첼의 초상화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는 온화한 인상이었다. 그러면서도 미소에 강한 힘이 느껴졌다.
분명 레이첼 트루디는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에게 많은 사랑을 주었을 것이다. 만약 살아 있었다면…… 오드리아 트루디에게도.
“……엄마.”
오드리아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순간 초상화 속 레이첼이 오드리아를 향해 미소 짓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착각이겠지만 어쩐지 그게 허락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오드리아는 힘이 났다.
* * *
대공이 유스티오 후작가에서 저녁 식사를 하기로 한 날이었다.
사실 유스티오 후작은 이번 저녁 식사가 썩 유쾌하지 않았다. 가문을 위해서는 분명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신시아를 생각하면 단순히 좋아할 수 없었다.
유스티오 후작은 자신의 소중한 딸, 신시아가 트루디 대공을 포기했으면 했다.
신시아는 유스티오 후작의 자랑이었다. 어릴 적부터 아름답고 지혜로웠다. 나중에 커서 결혼할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아쉬워할 만큼.
그런데 그런 신시아가 제국에서도 대단한 애처가로 유명했던 트루디 대공을 좋아하게 되었다.
공작 부인이 세상을 떠나 혼자가 되었어도 그는 결코 신시아를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처음부터 신시아를 정략 결혼시킬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누구를 데려와도 아쉬우리라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심지어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고 죽은 부인을 잊지 못하는 남자를 짝사랑하다니.
유스티오 후작이 그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는 마음이 후벼 파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어차피 안 되는 상대, 시간이 지나면 포기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십여 년 동안 신시아의 마음은 한결같았다. 유스티오 후작에게는 불행하게도.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유스티오 후작은 신시아의 결혼을 포기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가문의 후계자로서 꿋꿋하기를 바랐다.
언젠가 트루디 대공을 포기하는 날에 버틸 뭔가가 생기기를.
“약속해 다오.”
유스티오 후작이 신시아에게 무거운 마음으로 말했다
“정말 안 되겠다고 생각할 때, 포기하겠다고.”
“……네.”
신시아는 약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기나긴 고집 때문에 유스티오 후작이 곁에서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신시아 역시도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다. 만약 이번에도 전혀 달라지는 것이 없다면 그땐 정말 끝일 거라고. 그러면 다시는 이 마음을 드러내지 않겠다고.
“그럴게요.”
신시아는 약속했다. 그러니까 더더욱 후회가 남지 않도록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고 결심했다.
그녀는 저녁 식사를 위해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챙겼다. 트루디 대공이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하고 그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여기기를 바라면서 식사 장소를 준비했다.
그러면서도 너무 부담스럽지 않게, 자신의 마음이 노골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도록 조심하면서.
트루디 대공은 약속대로 유스티오 후작가를 방문했다. 트루디 대공이 도착하자마자 신시아가 직접 맞이했다.
“오늘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미소를 짓고 있지만 사실 얼마나 긴장하고 심장이 두근거리는지 모른다.
오늘 하루는 그녀에게 굉장히 중요한 날이었다. 혹시 실수하지 않을까 표정 하나, 말 한 마디에도 신경 썼다.
“유스티오 후작은?”
식사 전 트루디 대공은 유스티오 후작을 먼저 찾았다. 유스티오 후작은 응접실에서 트루디 대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최근 들어 걷는 것이 힘들어서 대부분의 생활을 목발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몸은 좀 괜찮아지셨습니까.”
트루디 대공은 유스티오 후작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비록 작위는 자신이 더 높지만 유스티오 후작은 트루디 대공의 아버지뻘로 나이가 지긋한 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예를 갖춘 것이다.
“오늘 와 줘서 고맙군. 그런데 어쩌지. 미안하게도 나는 식사를 같이하는 건 힘들 듯하네.”
유스티오 후작이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트루디 대공과 신시아가 단둘이 식사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사실, 지독한 외사랑을 하고 있는 딸의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다.
“아쉽군요.”
트루디 대공은 유스티오 후작에게 몸에 좋은 선물을 가져왔다며 함께 동행한 그의 보좌관을 통해 유스티오 후작가의 집사에게 선물을 건넸다. 주로 제국에서는 구하기 힘든 약재들인데 기력 회복에 좋은 것들이었다.
결국, 식사는 트루디 대공과 신시아 단둘이서 하게 되었다. 트루디 대공과 신시아는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오늘 저녁 식사 메뉴를 정하는 데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모른다. 트루디 대공의 입에 들어갈 거라고 생각하니 메뉴 선정부터 식재료 준비까지 신시아가 모두 직접 챙길 수밖에 없었다.
사실 메뉴 선정은 오드리아에게 조언을 받았다. 그녀가 트루디 대공이 즐겨 먹는 음식들을 신시아에게 알려 주었다. 덕분에 그의 사소한 취향까지 알게 되었다.
식사 내내 신시아는 트루디 대공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그의 작은 표정 변화 하나까지 시선이 갔다.
“식사는 입에 맞으신가요?”
“맛있군.”
별말 아닌 단순히 형식적인 말 한마디인데도 신시아는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네요.”
신시아는 그 어느 때보다 이번 저녁 식사에 공을 들였다. 지금까지는 그와 연회나 공식적인 자리에서 마주하는 것이 전부였다. 사적인 공간에서 식사를 함께하는 것은 처음이었고 그만큼 특별했다.
“지난번 일은 고마웠어. 그에 대한 보답을 제대로 해 주고 싶은데.”
“지금 이 식사가, 그 보답이 아니었나요?”
트루디 대공의 말에 그녀의 입가에 씁쓸함이 감돌았다.
“저 역시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뭔가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니에요.”
뭔가를 보답받고 싶다는 계산적인 마음으로 한 행동이 아니었다. 오드리아를 돕고 싶었을 뿐이고 그러다 보니 정말로 잘못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도 보답을 하고 싶은데.”
조금이라도 빚을 졌다는 느낌을 남기고 싶지 않은 걸까? 그래서 이렇게까지 되돌려주려고 하는 건지. 신시아의 마음이 차갑게 식어 갔다.
“오드리아는 사랑스러운 영애예요.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오로지 오드리아를 위해 한 일이라고, 신시아는 다시 한번 명확하게 말했다.
그와 함께 그녀는 마음을 접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모든 친절은 오드리아를 위한 것이니까.
그러니 더는 미련을 갖지 않도록 이 식사를 마지막으로 끝내고 싶었다.
트루디 대공은 그녀의 말에 잠시 말이 없었다. 침묵이 길어지고 식기가 부딪치는 소리밖에 나지 않는데 그의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
“역시 그렇지.”
트루디 대공이 중얼거렸다. 깊이 공감하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이기까지 했다.
“우리 리아가 존재 자체만으로도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지.”
그는 무심한 얼굴로 당연하다는 듯이 오드리아에 대한 찬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앞으로 잘 부탁해.”
“네?”
“리아가 그대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더군. 그대라면 리아의 좋은 롤 모델이 될 만해.”
“……!”
신시아의 가슴이 일렁였다.
트루디 대공이 애정 어린 말을 해 준 것도 아닌데, 고작 인간으로서 그녀를 인정해 주고 신뢰해 준 것뿐이지만 신시아는 그 어떤 말보다 설렜다.
그가 오드리아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알기 때문에 더더욱 소중했다.
“나는 유스티오 후작가와 관계가 좋다고 생각해.”
“네?”
뜻밖의 말에 신시아가 놀랐다. 트루디 대공의 갑작스러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는 데 잠시 시간이 걸렸다.
신시아가 그를 초대했을 때 다른 가문에 두 가문이 친밀한 관계라는 것을 보여 주기식으로라도 드러내고 싶다고 했던 말에 대한 대답을 한 것이다. 보여 주기가 아니라 그는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관계가 좋다고…….’
가문 간의 얘기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신시아는 그녀에게 하는 말처럼 들려서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한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뭐, 지난 사업도 결과가 좋았고 일 처리가 깔끔하니까.”
착각하면 안 된다. 신시아는 마음을 다잡았다.
이미 십여 년 전에도 감정적으로 행동했다가 가문을 위험하게 만든 적이 있었다. 그의 시선을 한 번이라도 끌고 싶어서 절대 불러서는 안 되는 그의 이름을 불러 버려서.
“감사합니다. 저희 역시 트루디 공작가와 함께하는 일은 언제나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똑같은 실수를 할 수 없었다. 신시아는 침착하게 이성적으로 답했다.
“……그렇군.”
이상하게 침묵이 중간중간 감돌았다. 대화를 잘 이어 나가다가도 갑자기 끊기기도 했다.
“부디 불편한 점이 없으셨으면 좋겠네요.”
“무척 즐거웠네.”
트루디 대공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모든 시간이 끝난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차를 함께 마신 뒤 트루디 대공은 밤이 되기 전에 돌아갔다. 신시아는 그를 배웅하고 나서 돌아서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굳은 듯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마치 한낮의 꿈같았다. 어쩌면 정말 꿈은 아니었을까 싶은 마음이 몇 번이고 들었다. 그럴 때마다 남몰래 팔을 꼬집어서 손목 안쪽이 전부 붉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시간들은 끝났다.
몇 번이고 고민하고 망설였는지 모른다. 식사를 하기 전에 말하면 어떨까. 그러면 그와 한자리에 앉기도 전에 그가 돌아가 버릴지도 모른다.
그래, 식사가 마무리될 때쯤에 하자. 하지만 식사를 하다 보니 이 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욕심이 들었다.
차를 마시면서 그때 얘기하자. 신시아는 그렇게 몇 번이나 미루다가 결국 그가 돌아갈 때까지 어젯밤 몇 번이고 연습했던 말을 한 마디도 꺼내지 못했다.
‘혹시…… 아십니까. 저는 아직도 대공 각하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녀의 고백은 혼잣말에서마저 부정적으로 흔들렸다.
‘저는 정말 가망이 없는 건가요? 제게 남는 건 포기밖에 없나요…….’
오늘 같은 순간이 또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일에 절대라는 표현을 쓸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절대’ 트루디 대공과 단둘이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생기지 않을 것을 장담할 수 있었다.
트루디 대공은 오드리아를 도와준 신시아가 고마운 것이다. 신시아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그것을 신시아는 이제 인정해야만 했다.
‘그 이상일 리 없지.’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이 자꾸만 고개를 드는 건 그를 좋아한 시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겠지. 신시아의 입가에 쓸쓸함이 맴돌았다.
언제나 닿을 리 없던 그가 닿을 듯 말 듯했던 지난 며칠만이라도 넘치도록 행복했다. 그걸로 만족하자. 신시아는 체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