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화 (33/48)

chapter 15. 새엄마와 예비 새언니에게 사랑받는 오드리아

오드리아는 사교계에서 그녀만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알렸다. 트루디 공작가의 영애여서가 아닌 오로지 오드리아라는 그녀만의 존재감으로.

가족들과는 언제나처럼 식사를 하고 있었다. 트루디 대공이 말했다.

“이번 주말에 결혼식에 참석할 예정인데 같이 갈 수 있겠니?”

“결혼식이요?”

누가 결혼하나? 오드리아가 눈을 깜박였다. 오드리아는 트루디 대공이 그녀의 일이 아닌 다른 일 때문에 함께 외출하자고 하는 경우도, 그가 다른 가문의 일에 참여하는 것도 처음 봤다.

“샌더스 후작가에서 결혼식을 한다는구나.”

샌더스 후작, 오드리아의 고개가 갸우뚱 기울어졌다. 이전에 들어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잘 생각나지 않았다.

“샌더스 후작께서 아버지와 사이가 좋았거든.”

제레미아가 트루디 대공의 말에 덧붙였다. 그 말에 오드리아의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 트루디 대공과 친한 사이라니.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 것이다.

“같이 가겠니?”

“네. 꼭 갈게요.”

트루디 대공의 물음에 오드리아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 보고 싶었다. 트루디 대공과 친하다는 분도, 결혼식도 궁금했다.

그래서 오드리아는 이번 주말에 트루디 대공, 제레미아와 함께 결혼식에 참석하기로 했다.

샌더스 후작가의 결혼식에 대해서는 식사가 끝난 후, 메릴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정확히는 샌더스 후작이 뒤늦게 얻은 딸, 사라 샌더스의 결혼식이었다.

결혼 상대는 에단 헤이워드. 제국의 국경에 있는 지역이 기반인 헤이워드 백작가의 영식이었다.

어린 시절 에단 헤이워드가 수도에서 지낸 시기에 사라 샌더스와 친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가문의 영지로 돌아가야 했고 그 후에는 서신을 통해서 연락을 하면서 서로 좋아하게 됐다고 한다.

샌더스 후작가와 헤이워드 백작가는 매우 사이가 좋았지만 결혼을 하게 되면 먼 곳으로 떠나야 하기 때문에 샌더스 후작은 둘의 관계를 쉽게 찬성하지 못했다.

그래서 에단 역시 사라에게 다가가지 못했는데 그때 사라가 먼저 청혼을 했다고 한다.

“멋지다…….”

오드리아는 메릴이 말해 주는 흥미진진한 얘기에 어느새 몰입했다. 그 어느 이야기책에 나오는 러브스토리보다 재밌었다.

“사라 영애께서 먼저 청혼서를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샌더스 후작께서 격노하셨습니다. 허락도 받지 않고 멋대로 보낸 청혼서는 인정할 수 없다면서요.”

“그래서?”

“게다가 헤이워드 백작가로부터 어떤 연락도 없었기에 사라 영애께서 무시를 당했다고 생각해서 더더욱 분노하셨죠.”

오드리아의 시선이 메릴에게 고정되었다. 어느새 메릴은 거리의 이야기꾼처럼 이야기에 강약을 넣으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런데 사실은 에단 경께서 청혼서를 받자마자 바로 샌더스 후작가까지 말을 타고 달려오신 거였죠.”

“와아…….”

오드리아가 감탄했다.

“에단 경께서는 사라 영애께 무릎을 꿇으며 먼저 용기를 내지 못한 것을 사죄하며 청혼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샌더스 후작께서 보시고는…….”

“허락하셨구나.”

오드리아의 눈에는 이미 별이 몇백 개는 박혀 있었다.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그 모습을 상상했다. 그런 두 사람의 결혼식이라니. 오드리아는 어쩐지 두근거렸다.

“부러우세요?”

메릴이 오드리아에게 얘기하는 동안 뒤에서 지키고 있던 라미엘이 물었다. 오드리아는 라미엘을 흘낏 바라보고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좋잖아.”

오드리아가 미소를 지었다. 처음에는 트루디 대공이 직접 챙기는 가문의 결혼식이라는 이유 때문에 호기심이 생겼던 것이었는데, 지금은 오로지 결혼하는 사라 샌더스와 에단 헤이워드 두 사람을 축복해 주고 싶었다.

* * *

샌더스 후작가의 결혼식은 수도에서 살짝 벗어난 외곽 지역에 있는 성당에서 진행되었다. 샌더스 후작가가 외곽 지역을 관리, 감독하는 가문이기 때문에 그랬다.

후작가에 도착하자마자 결혼식 분위기가 한껏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택 앞부터 화사한 꽃들이 늘어져 있었고 그 앞에는 좋은 날을 기념하기 위해 일반 백성들에게도 음식을 나눠 주었다.

오드리아와 제레미아, 그리고 트루디 대공이 도착하자 샌더스 후작이 직접 나왔다.

“축하하네.”

“하하. 와 줘서 고맙네.”

샌더스 후작. 그는 트루디 대공과는 분위기가 정반대였다. 호탕하고 유쾌한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흘렀다.

그가 주로 말을 하며 화제를 만들면 트루디 대공은 아무 말 없이 듣다가 간혹 고개를 끄덕이거나 대답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도 서로가 어색하지 않고 편해 보이는 분위기라 정말 오래된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오드리아 트루디입니다.”

“그 유명한 영애군. 와 주어 고맙네.”

오드리아가 트루디 대공의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천천히 인사를 건넸다. 그는 그녀를 보더니 반갑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간단한 축하 인사를 건네고 두 사람이 대화를 더 나누도록 제레미아와 오드리아는 자리를 피해 주었다.

“리아. 잠깐만 에단에게 다녀올게.”

제레미아가 신랑인 에단에게 다가갔다. 에단 헤이워드는 제레미아의 친구이기도 했다.

“결혼 축하한다.”

제레미아가 에단의 어깨를 툭 치며 인사했다.

“고맙다. 나중에 한번 놀러 와.”

“결국 사라 영애와 결혼을 하는군.”

에단과 사라의 관계를 잘 알고 있던 제레미아의 말에 에단이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곧 웃음을 멈추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샌더스 후작께 죄송한 일을 했지. 백작 부인께서도 돌아가시고 혼자인데 유일한 딸인 사라까지 멀리 떠나게 됐으니까.”

“…….”

“후작께서 쓸쓸해하는 모습을 보면 죄송스럽지.”

에단이 기쁨 한편에 있는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했다. 그 순간 제레미아의 얼굴이 조금씩이지만 딱딱하게 굳어 갔다.

“멀리 떠나……?”

제레미아는 멍한 상태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에단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헤이워드 백작가의 영지가 먼 곳에 있으니 어쩔 수 없지.”

“…….”

제레미아는 여전히 생각에 빠진 채 말이 없었다. 사실 에단의 말이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에단의 말에 지금껏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사실을 깨달아 버렸기 때문에.

에단의 결혼 상대인 사라 샌더스. 그녀는 오드리아와 동갑이었다. 그러니 오드리아 역시 결혼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오드리아가 사라처럼 먼 곳에 사는 사람과 결혼을 한다면.’

더 이상 같이 살지 못하는 것만이 아니라 얼굴도 제대로 보기 힘들어지게 된다.

‘말도 안 돼…….’

제레미아는 할 말을 잃었다. 에단은 사라를 잠시 보고 오겠다고 하며 자리를 비웠다. 하지만 제레미아는 여전히 우두커니 자리에 남은 채 굳었다.

트루디 대공과 샌더스 후작이 대화를 나눌 때였다.

“드디어 가는군.”

후작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앞으로 쓸쓸하겠군.”

“…….”

“트루디. 그대는 지금부터라도 영애를 보낼 준비를 하도록 해. 그러지 않으면 분명 힘들 테니까.”

샌더스 후작이 이제 헤어져야 하는 딸을 멀리서 지켜보며 말했다. 트루디 대공은 그의 말에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지만 내심 이미 동요하고 있었다.

“트루디?”

“…….”

“갑자기 왜 그러는가?”

샌더스 후작이 트루디 대공을 불렀다. 하지만 트루디 대공은 미동도 없었다.

혼란에 빠진 두 사람의 마음을 모르는 오드리아는 사라 샌더스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그녀는 따로 준비된 곳에서 허리 아래로 쫙 퍼지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머리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면사포가 그녀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충분히 느껴졌다. 그녀가 얼마나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지.

“오드리아 트루디예요.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고마워요.”

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는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시선을 끄는 것은 한눈에 봐도 행복으로 가득한 그녀의 표정이었다.

새로운 곳으로 떠나야 한다는 불안함보다는 사랑하는 사람과 앞으로 함께한다는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드리아는 그 모습에 빨려 들었다.

“이제 변경으로 떠나신다고 들었어요.”

“네. 헤이워드 백작가는 오랜 시간 변경을 지켜온 가문이니까요.”

“아쉽네요. 좀 더 일찍 만났다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오드리아는 오늘 처음 본 게 전부인 사라가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 친해질 시간이 없다는 것이 아쉬울 만큼.

“제가 사교계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요.”

“어머, 저도예요. 재작년 전쯤에 조금 일찍, 열넷에 데뷔 무도회를 치르고 제대로 된 활동을 못했어요.”

이 년 전에 열넷이었다면, 사라는 오드리아와 동갑이었다. 그렇다면 서로 얼마든지 만나서 친분을 쌓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저도 아쉽네요. 오드리아 영애와 친해질 기회가 없어서.”

사라는 사교계 활동을 하지 못했다고만 말했지만 오드리아는 그 말에 숨겨진 뜻을 알았다.

늦건 빠르건 데뷔 무도회는 곧 결혼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는 의미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라는 에단을 마음에 두고 있었으니 일부러 사교계 활동을 피해 온 것이겠지. 그러니 최근 오드리아가 사교계 활동을 하면서도 사라와 마주친 적이 없었던 것이다.

“나중에 수도에 방문할 일이 있으면 저한테 알려 주세요.”

“네. 꼭 그럴게요.”

서로 호감을 느낀 오드리아와 사라가 약속할 때였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에단이 사라를 보기 위해 찾아왔다. 순간 사라의 얼굴이 환해졌다. 신랑과 신부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한 소꿉친구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한없이 다정하고 달콤했다.

“그럼 저는 가 볼게요.”

“오늘 와 주셔서 감사해요.”

사라가 마지막까지 오드리아를 향해 감사를 표했다. 에단도 덩달아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했다.

오드리아는 두 사람을 향해 방긋 웃어 보이고 돌아섰다.

“두 사람 잘 어울린다.”

사라와 에단이 서로를 바라보던 눈빛이 떠올랐다.

‘부러워.’

서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다니. 그건 다시없을 축복이자 행운이었다.

“이제 곧 결혼식이 시작됩니다.”

라미엘의 말에 생각에 잠겨 있던 오드리아가 걸음을 옮겨 자리로 이동했다.

그런데 정작 라미엘은 걸음을 멈추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오드리아의 등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 본 사라와 에단의 모습이 떠올랐다.

두 사람처럼 라미엘도 오드리아의 옆에 당당하게 있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오드리아의 뒤를 쫓을 뿐이다.

“라미엘. 안 오고 뭐해?”

라미엘이 오지 않자 오드리아가 뒤돌아 그를 불렀다.

그제야 라미엘이 걸음을 옮기자 오드리아는 그가 옆에 올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하지만 오드리아의 옆에 설 수 있는 건 호위 기사이기 때문이다. 그 사실에 자꾸만 갈증이 났다.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는 결혼식 내내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 채 다른 생각에 빠져서 우울해졌다.

에단 헤이워드와 사라 샌더스의 결혼이 오드리아의 결혼식과 겹쳐 보였기 때문에.

갑자기 오드리아가 언젠간 결혼을 하게 된다는 사실이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아이는 자라면 떠난다. 그것이 당연한 순서다.

그런데 지금까지 외면하고 있던 사실들이 결혼식을 계기로 터지고야 말았다.

‘리아가 결혼을 한다니.’

‘리아와 헤어져야만 한다니.’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는 인정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단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지만 같은 뜻을 품었다.

‘그 결혼 무조건 반대야.’

‘절대 인정 못 해!’

그 누구도 두 사람의 눈에 차지 않겠지만 그중에서도 먼 영지에 터를 잡고 사는 놈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두 사람은 행복한 결혼식을 보며 맹세했다.

한편, 오드리아는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는 사라를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사라의 나이를 떠올렸다.

‘나랑 나이가 같구나.’

오드리아와 동갑인 사라는 벌써 평생을 함께할 사람을 만나 결혼했다.

사라와 에단이 행진하는 동안 두 사람을 축복하기 위한 꽃잎이 뿌려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오드리아는 문득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자신의 결혼식을, 그리고 자신의 옆에 설 남편을. 그때 오드리아를 부르는 목소리가 가까이 들렸다.

“오드리아 님.”

어느새 라미엘이 옆자리에 다가와 있었다.

“뭘 그렇게 보십니까.”

라미엘이 오드리아가 보고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그 앞에는 당연히 행진을 하고 있는 신랑과 신부가 있었다.

“두 사람이 너무 잘 어울려서. 보기 좋지?”

오드리아는 라미엘과 함께 나란히 서 있는 지금,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어떻게 보일지 궁금해졌다.

* * *

결혼식이 끝나고 공작저로 돌아가는 길,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는 우울해졌다. 오드리아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지만 도대체 왜 갑자기 기분이 안 좋아졌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였다. 어색한 분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그웬이 입을 열었다.

“정말 행복해 보이는 결혼식이었습니다.”

역시 오드리아뿐만 아니라 그 모습을 지켜본 모두가 같은 생각을 했다. 그웬이 황홀하다는 듯 결혼식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제 곧이겠군요.”

그웬이 말에 순간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의 행동이 멈췄다.

“뭐가……?”

이미 뭔지 충분히 짐작하고 있으면서 현실을 부정하려는 듯 물었다. 그런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웬은 막힘없이 말했다.

“제레미아 님께서도 곧 결혼을 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그 순간 두 사람의 어깨가 축 내려갔다. 얼핏 안도의 한숨이 들렸다. 그웬의 말은 끝나지 않고 이어졌다.

“그리고 오드리아 님께서도요.”

“……!”

“분명 오드리아 님께서 결혼하실 때는 오늘보다 더 아름다우실 겁니다.”

그웬은 상상만으로도 흐뭇해하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의 말에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왜, 왜 그러십니까?”

그리고 그웬은 공포에 떨게 되었다.

그웬은 눈치 없다는 이유만으로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로부터 분풀이를 당해야만 했다. 그웬은 마지막까지 억울했지만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에게는 당할 짓을 한 괘씸한 놈이었다.

두 사람은 어떻게든 오드리아를 결혼시키고 싶지 않았다. 평생 같이 살고 싶었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가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트루디 공작가에서 트루디 대공이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유일한 것, 그것이 바로 오드리아였으니까.

오드리아의 마음을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녀가 결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그런데 오드리아는 결혼식을 다녀온 후 너무 좋아했다. 결혼식 이야기를 하며 들뜨고는 했다. 그럴수록 두 사람은 불안해졌다.

“정말 보기 좋았어요. 마치 그림책에서나 볼 것 같은 모습이었어요.”

오드리아는 감탄하며 말했다. 황홀하다는 듯이 결혼식을 떠올리는 모습을 보며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는 직접 물어보는 것은 포기했다.

대신 메릴과 페이지에게 오드리아의 반응을 확인해 보라고 지시했다. 오드리아가 어떻게 말하는지 빠짐없이 보고하도록.

* * *

공작가에는 알 수 없는 긴장감이 흘렀다. 차마 누구도 먼저 말하지 못하고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 모든 현상은 결혼식에 다녀오고 나서부터 생긴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나?”

오드리아는 주변의 공기가 예민하게 서 있는 것을 눈치채고 말했다. 오드리아는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가 살짝 걱정이 되었다.

어릴 적부터 이런 일은 종종 있어 왔다. 이유를 알 수 없이 갑자기 상태가 이상해지는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

하지만 오드리아는 언제나 두 사람이 그러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챘고 해결하고는 했다.

만약 그 이유를 정말 모를 때에도 두 사람을 다시 돌려놓는 방법이 있었다. 오드리아의 손가락 마디마디가 오그라들 정도로 애교를 부리는 것.

그런데 지금까지 없었던 패턴이 나타났다. 오드리아가 애교를 부릴 때마다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의 얼굴이 점점 더 어두워지는 것이다.

오드리아의 애교가 두 사람에게 역효과를 보이고 있었다.

‘대체 왜 그러는 거지?’

오드리아는 전혀 알지 못했지만 사실 메릴과 페이지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의 고민은 오드리아가 결혼해서 떠날까 봐 하는 것이다.

그러니 오드리아가 옆에서 사랑스러운 행동을 하면 할수록 그 걱정이 심해져서 더더욱 어두워질 뿐이었다.

메릴과 페이지가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메릴이 오드리아를 위해 자연스럽게 물었다.

“결혼식 어떠셨어요?”

“진짜 좋았어!”

오드리아가 감탄하며 말했다. 몇 번을 생각해도 질리지 않을 만큼 결혼식은 정말 좋았다.

모든 사람들이 축하해 주고 신랑 신부가 서로 사랑하는 게 한눈에 보이는 결혼식이었다. 마치 햇살마저도 그 결혼식을 축복해 주는 것 같이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두 사람이 정말 좋아 보이더라. 맞다, 페이지. 두 사람에게 선물을 보낼까 하는데 좀 만들어 줘.”

“네. 알겠습니다.”

오드리아는 에단과 사라에게 결혼 선물을 따로 보낼 생각이었다. 페이지는 흔쾌히 웃으며 답했다.

“어떤 선물이 좋을까요?”

“북쪽은 추우니 코트 같은 게 좋지 않을까?”

“그럼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페이지는 에단과 사라에게 보낼 선물에 대해 꼼꼼하게 체크하면서 자연스럽게 물었다.

“그럼, 오드리아 님께서도 그런 결혼을 하고 싶으세요?”

“결혼……?”

페이지가 모두를 대표해서 물었다. 물어보고도 오드리아가 무슨 대답을 할까 페이지와 메릴은 긴장됐다. 침조차도 마음 편하게 삼키지 못할 만큼.

오드리아는 페이지의 물음에 생각에 잠긴 듯 몇 번이나 고개를 갸웃거렸다.

“결혼, 하고 싶으세요?”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자 페이지가 다시 한번 물었다. 오드리아가 페이지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뗐다.

“그야, 하고 싶지.”

오드리아는 저절로 기분 좋은 미소를 그렸다. 그림 같은 결혼식을 떠올리면서.

“특히 그런 결혼이라면 너무 좋을 것 같아.”

좋아하는 사람과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하는 결혼식. 그건 화려하고 소박하고 따위는 신경도 쓰이지 않을 만큼 그 어느 결혼식보다 부러운 결혼식이었다.

오드리아가 갑자기 생각에 잠긴 얼굴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온 얼굴로 페이지와 메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흔들림 없이 한결같은 눈빛을 하고서 말했다.

“결혼을 한다면…… 꼭 그런 결혼이었으면 좋겠어.”

오드리아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자신이 한 말이지만 정말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은 채. 오드리아 트루디, 이래 봬도 결혼에 대한 낭만이 있는 열여섯이었다.

“저희가 오드리아 님 결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책임질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만 믿으세요.”

그리고 메릴과 페이지는 다짐했다.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가 어떤 생각을 하든 자신들은 오드리아가 원하는 결혼식을 위해서 무엇이든 하겠다고. 못할 일이 절대로 없다고.

* * *

결혼식에 다녀온 이후로,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는 기분이 계속 우울했다. 그동안 외면하고 있던 사실이 그들의 머릿속을 휘젓고 있었다.

사실 지금까지 오드리아를 향한 청혼서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상대할 가치가 없어 쓰레기통으로 향할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청혼서들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었다. 이게 곧 머지않아 미래가 된다면. 트루디 대공의 눈가에 벌써부터 눈물이 고이려고 했다.

벌써 결혼이 현실로 다가오다니.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직도 해 주지 못한 것이 너무 많은데. 오드리아를 하루라도 보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역시, 앞으로는 확실히 해야겠어.’

그때부터 오드리아에게 청혼서를 보낸 가문은 트루디 대공의 무시무시한 내용이 담긴 답장을 받게 되었다.

한편, 제레미아는 어릴 적 습관이 또다시 발동했다. 오드리아의 일정을 꿰고 그녀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다녔다.

“오빠? 혹시 무슨 일 있어요?”

갑자기 제레미아를 만나는 빈도가 많아지자 오드리아 역시 이상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오랜만에 같이 산책이나 좀 할까 싶어서.”

“저야 좋죠.”

오드리아가 해맑게 웃으며 걸음을 나란히 했다. 그러자 점점 더 울적해졌다. 그녀가 떠나고 나면 상실감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오늘따라 유난히 조용한 저녁 식사였다.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는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테이블만 보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리아.”

“네. 아빠.”

오드리아는 트루디 대공이 무슨 말을 할지 기다렸다. 하지만 트루디 대공은 한참이고 망설였다. 평소의 트루디 대공을 생각한다면 결코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오드리아가 먼저 걱정스럽게 물었다. 오드리아가 트루디 대공을 빤히 바라보자 힘겹게 입을 뗐다.

“그냥 이대로 평생 같이 살자.”

“네……?”

“여기서, 결혼하지 말고 계속 사는 건 어떤가 해서.”

식사 도중 트루디 대공이 갑자기 한 말에 오드리아는 대답 대신 활짝 웃었다. 그 순간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오드리아는 깨달았다. 두 사람이 그동안 우울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내가 결혼해서 떠날까 봐 그런 거구나.’

오드리아는 한편으로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만큼 자신을 사랑하는 것 같아서. 그리고 오드리아 역시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와 다르지 않았다. 두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결혼은 하고 싶었다. 그건 오드리아가 지금까지 남몰래 품어오던 꿈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그녀만의 가족이 생기는 것.

오로지 동생들을 챙기느라 정신없이 바쁜 나머지 오드리아 그녀만을 위한 인생을 제대로 살아 보지 못했다.

그래서 과거에는 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번에는 이루고 싶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말없이 오드리아의 뒤를 따라오던 라미엘이 어느새 바로 옆으로 다가와 있었다.

그런데 오드리아를 바라보는 라미엘의 표정이 이상했다. 일그러진 얼굴이 고통스러워 보였다.

“혹시…….”

라미엘의 목소리가 여기저기 긁힌 것처럼 상해 있었다.

“결혼이…… 하고 싶으십니까?”

힘겹게 말을 꺼내는 그의 모습은 극도로 불안해 보였다.

“오드리아 님도 그럴 때가 되시긴 했죠.”

결혼식을 다녀온 이후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의 반응 때문에 더욱 싱숭생숭했다. 그 모습이 라미엘 눈에도 보였나 보다.

“하아…….”

라미엘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마른세수를 했다. 그가 오드리아를 짙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럴 때는 지독히도 제 위치가 싫어지다가도.”

“…….”

“그래도 제가 오드리아 님의 호위 기사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라미엘의 목소리는 점점 가라앉았다. 그가 힘들어하는 게 느껴져서 오드리아도 덩달아 마음이 아팠다.

“여기서 더 멀어지면 아마 버티지 못할 테니까요.”

“라미엘…….”

“너무 멀어지지만 말아 주세요.”

라미엘의 표정도 목소리도 살짝 뻗는 손도 모두 애절했다.

오드리아가 라미엘과의 결혼식을 떠올리고 있는 동안 라미엘은 오드리아가 다른 사람과 결혼식을 하는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오드리아는 지금까지 라미엘을 향한 감정이 특별하지 않다고 애써 외면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라미엘은 사실 처음부터 특별한 존재였다.

오필리아 숍 지하에 있던 노예 시장에서 라미엘을 본 순간 느꼈던 동질감을 오드리아는 다른 사람에게서 느껴 본 적이 없었다.

라미엘을 공작가에서 지내도록 하고 무리를 하면서까지 호위 기사로 만든 것. 그 무엇 하나 특별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오드리아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마음을 숨길 수 없다고.

오드리아의 머릿속에 내내 맴돌던 라미엘과의 결혼은 서로를 보며 미소 짓는 모습이 반짝일 만큼 아름다웠다.

결혼식을 보고 나니 오드리아의 마음에 확신이 생겼다. 그동안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던 미래 역시도.

‘모른 척하지 말자. 방법은 어떻게든 있겠지.’

오드리아는 라미엘과 함께하는 미래를 그렸다.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찾으면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믿기로 했다.

오드리아의 오랜 고민이 끝났다. 라미엘을 볼 때마다 머뭇거리던 마음이 깔끔해졌다.

마음을 먹은 이상 오드리아는 더 이상 미루지 않았다. 그녀는 라미엘을 빤히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라미엘. 내가 웨딩드레스를 입으면 어떨 것 같아?”

“네……? 그게 무슨…….”

라미엘이 눈에 띄게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오드리아는 라미엘의 반응을 하나하나 모두 지켜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결혼식 때 내 옆에 서 있는 사람은 누굴 것 같아?”

“…….”

오드리아의 말에 라미엘의 얼굴이 굳었다. 그녀가 한 말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자신에게 포기하라고 돌려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혹시 결혼 상대가 있는 겁니까?”

라미엘의 표정이 심상찮았다.

“저는 오드리아 님이 다른 놈과 함께 있는 모습만큼은 참을 수 없습니다.”

“알아.”

라미엘의 단호한 말에 오드리아가 피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라미엘이 그렇게 나올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라미엘. 네가 내 옆에 있으면 어떨 것 같냐는 뜻이었어.”

“……!”

라미엘은 방금 전과는 다른 의미로 딱딱하게 굳었다.

그동안 집요하게 마음을 표현하는 자신을 끈질기게 외면해서 조바심이 날 지경이었다.

그런데 오드리아가 지금 그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은 물론이고 화답하고 있었다.

‘이거 꿈…… 아니지……?’

라미엘은 이게 꿈이라면 차라리 꿈속에서 평생 살고 싶었다. 이 꿈에서 깨어나면 버틸 자신이 없었다. 그건 너무 잔인하다.

“라미엘.”

하지만 오드리아의 생생하게 느껴지는 목소리가 이게 현실이라고 알려 주었다.

“부디 제가 울고 있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한참이나 고민한 끝에 분에 넘치는 행복에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라미엘이 머쓱해하며 말했다. 그의 대답에 오드리아가 미소를 지었다.

“열심히 참아 봐.”

“…….”

“그래도 결혼식인데 웃어야지.”

오드리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녀의 눈에 행복이 묻어났다. 그와의 미래를 떠올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

라미엘은 혼란스러웠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지금 오드리아의 말이 마치 청혼처럼 들려서. 혹시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의심부터 들었다.

하지만 오드리아는 모두 진심이었다. 그녀는 정말로 그와의 미래를 얘기하고 있었다.

“……울어?”

오드리아가 당황하며 물었다.

그만 라미엘의 눈에서 눈물이 똑, 하고 떨어졌다. 오드리아는 웃어야지, 라고 말했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도저히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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