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화 (26/48)

* * *

에이미의 사치스러운 연회로 분위기가 쏠려 있을 때, 많은 영애들의 시선을 끄는 초대장이 도착했다.

평소 직접 연회를 주최하는 경우가 별로 없는 신시아 후작 영애가 주최하는 티 파티 초대장이었다.

확실히 신시아의 티 파티는 우아했다. 어느 것 하나 그냥 세팅되어 있지 않았다.

티 파티에 참석한 에이미는 그 어느 때보다 얼굴이 환했다. 온몸에서 윤기가 흐르고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게다가 이전에는 오드리아를 보면 반가워하며 다가오던 영애들의 발걸음이 모두 에이미를 향했다.

에이미는 종종 오드리아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일부러 턱을 살짝 들어 오드리아를 무시하는 듯한 미소를 흘렸다.

“모두 와 줘서 고마워요.”

신시아가 참석한 영애들을 향해 인사했다. 이번 티 파티에 참석하기 전, 에이미는 신시아 영애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았다.

그녀는 언제나 사교계의 각종 모임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별다른 존재감을 내보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녀의 눈치를 본다는 것쯤은 눈치로 알 수 있었다.

에이미는 어쩐지 신시아가 불편했다. 그래서 사교계에서 입지를 다지는 와중에도 신시아와 부딪치는 것을 최대한 피해 왔었다.

하지만 자신의 말이라면 모든지 따를 것 같던 영애들이 신시아의 앞에서는 모두 몸을 사렸다.

에이미는 자신이 오드리아를 확실히 누르기 위해서는 신시아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티 파티라는 명목으로 모일 뿐 사실상 연회와 비슷한 규모인 다른 티 파티와는 달리 신시아의 티 파티는 말 그대로 다 함께 차를 마시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기에 초대한 인원 역시 많지 않았다.

거기에 왜 그동안 교류가 거의 없었던 에이미를 초대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에이미로서는 이번이 기회였다.

“지금 오웬가에서 만들고 있는 것이랍니다.”

에이미는 다 함께 있을 때 보란 듯이 신시아에게 선물을 건넸다.

“고마워요. 잘 받을게요.”

분명 이걸 쓰면 신시아 역시도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게 될 것이다. 에이미는 자신했다.

하지만 신시아의 태도는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그녀가 호감을 보이는 사람은 오로지 오드리아뿐이었다.

“한번 사용해 보세요. 향기도 나서 기분이 좋아진답니다.”

아직 제대로 사용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 에이미는 신시아에게 지금 사용해 볼 것을 권했다.

“향기가 난다니, 기대되네요.”

신시아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대답했다. 하지만 바로 사용하지는 않았다. 에이미는 신시아가 지금 사용해 볼 생각이 없는 것 같자 초조해졌다.

이번에 신시아의 마음을 붙잡아야 한다. 에이미는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신시아에게 다시 한번 제안했다.

“지금 영애들이 쓰고 있는 것과는 꽤 달라서 보여 드리고 싶은데, 아직 생산량이 많지 않아서 선물을 더 가져오지 못했어요.”

에이미는 먼저 영애들을 향해 안타깝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피부에 닿았을 때 감촉이 더 좋아졌고 특히 향이 굉장히 좋답니다.”

“어떤 향이죠?”

에이미의 말을 듣던 중에 결국 궁금함을 참지 못한 영애가 물었다. 그때 에이미는 걸렸다, 싶었다.

“어쩌죠. 이걸 말로 설명하기가 굉장히 힘드네요.”

에이미는 곤란한 척하며 영애들의 관심을 유발했다. 그녀들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재촉하도록.

“대체 어떤 향이죠. 너무 궁금해요.”

역시나 영애들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상황에 에이미가 의미심장하게 미소를 지었을 때였다.

신시아가 입가에 가져갔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잔이 부딪치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유려한 움직임이었다.

신시아는 천천히 시선을 움직여 에이미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마주한 에이미는 순간 흠칫, 하고 놀랐다. 신시아의 눈빛이 이제껏 본 적 없을 정도로 싸늘했기 때문에.

신시아가 천천히 입술을 뗐다. 모두가 그녀의 작은 움직임에 집중했다.

“오웬 자작 부인은 장사꾼인가 보네요.”

신시아가 한마디 툭 던졌다. 그 말에 한순간에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하지만 신시아는 태연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나는 장사꾼이 아니라 분명 오웬 자작가의 귀부인을 초대했을 텐데.”

“네?”

“뭔가 착오가 있었나 보네요.”

에이미가 당황해서 입만 뻐끔거렸다. 하지만 신시아는 그런 에이미를 무시하고 가까운 곳에 있는 시녀를 향해 말했다.

“티 파티에 잡상인은 참석할 수 없을 텐데.”

“죄송합니다!”

신시아의 말은 거침없었다. 시녀가 그녀의 말에 고개를 조아리며 사과했다.

자신이 사람을 잘못 들였다는 뜻이었다.

신시아가 에이미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녀의 은근한 압박에 에이미가 주위를 돌아봤다. 그녀들 중 누구도 에이미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신시아를 상대로 에이미를 편들어 줄 사람은 없었다.

“제가 실수했나 보네요. 죄송합니다.”

에이미는 드레스를 부여잡으며 꾸역꾸역 말했다.

결국 티 파티 내내 분위기는 얼어붙었고 얼마 가지 않아 영애들이 차례로 각자 핑계를 대며 조용히 물러났다.

신시아의 저택에서 있었던 티 파티가 끝난 후, 에이미는 한동안 잠잠했다. 그럴 수밖에. 거기서 신시아에게 망신을 당한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티 파티가 끝나고 며칠이 지난 지금 오드리아는 신시아의 초대로 다시 유스티오 후작저를 방문했다. 그곳에는 쥬아나가 먼저 와 있었다.

“다시는 신시아 님을 찾아오지 않겠네요.”

쥬아나가 웃으며 말했다.

“그때 선물은 어떻게 하셨어요?”

“관심 있나요? 그렇다면 드릴게요.”

쥬아나의 물음에 신시아가 말했다. 자신은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하지만 쥬아나 역시 그 화장품에는 관심 없었다. 다만, 신시아가 어떻게 했을지 하는 부분에 관심이 있었을 뿐.

“그럼, 제가 받아도 될까요?”

그런데 가만히 듣고만 있던 오드리아가 화장품에 관심을 보였다. 그녀의 반응에 놀란 것은 신시아와 쥬아나였다.

“오드리아 영애가 이걸요?”

“네.”

신시아 영애가 되물었지만 오드리아는 분명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오드리아는 신시아로부터 화장품을 받았다.

* * *

쥬아나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후작저를 나왔을 때였다. 마차를 타려고 하는데 그녀의 시야를 어지럽히는 게 있었다.

그녀는 마차를 타려다 말고 마부에게 조금 더 기다리라고 지시한 후 저택의 맞은편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역시나 근처에서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쥬아나.”

그녀를 부른 사람은 제레미아였다.

“거기서 뭐 해?”

제레미아는 어울리지 않게 몸을 웅크린 채 수풀 사이에 숨어 있었다. 제레미아가 바쁘게 손짓을 하자 쥬아나는 어리둥절해하면서도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리아는?”

제레미아는 남몰래 오드리아를 지켜보았다.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가서 얘기해.”

쥬아나가 오드리아에게 다가가려고 할 때였다. 제레미아가 쥬아나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잠깐만!”

제레미아의 격렬한 거부에 쥬아나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리아가 믿어 달라고 했어.”

“뭐?”

제레미아는 매우 심각하게 말했다. 그 모습이 너무 진지해서 오히려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리아가 혼자 하겠다고 했는데 내가 이러면 못 믿어서 그러는 것 같잖아.”

“……그래서 그런 거 아냐?”

“아냐! 나는 단지, 걱정이 돼서…… 그래서 그런 거야. 사람 일은 혹시 모르잖아.”

그게 그거야. 쥬아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제레미아의 얼굴은 이미 충분히 붉으니까. 여기서 더 빨개지면 얼굴이 터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참았다.

제레미아는 안절부절못하면서도 오드리아를 지켜만 보았다.

“그래서, 어땠어?”

“뭐가?”

제레미아의 밑도 끝도 없는 물음에 쥬아나가 되물었다. 제레미아는 그것도 못 알아듣느냐는 듯이 답답해하며 다시 말했다.

“리아 괜찮냐고! 누가 이상한 짓하거나 괴롭히거나 그러지는 않았어?”

“……오드리아를?”

쥬아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레미아는 오드리아가 무슨 큰일이라도 당할 것처럼 얘기를 하고 있었다.

‘오드리아가 어디 가서 무슨 일을 당할 타입인가?’

그 정반대 같은데. 쥬아나는 제레미아의 걱정이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생각했다.

그때였다. 바로 옆에서 낮게 울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뭐 하십니까?”

“네가 왜 여기에…….”

제레미아가 당황해서 뒷걸음질을 칠 때였다.

“오빠, 여기서 뭐 해요?”

제레미아의 바로 등 뒤에서 오드리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드리아 님께서 돌아가신다고 하니 나와 있었습니다.”

제레미아는 혼비백산, 정신이 뒤죽박죽이었다. 그것을 지켜보는 쥬아나까지 어지러울 정도로.

“그, 그게…….”

결국 오드리아에게 들켰다. 오드리아의 동그란 눈동자가 자신을 빤히 보고 있었다.

그럴수록 제레미아는 당황해서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렸다. 그 모습을 보던 쥬아나가 결국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내가 불렀어.”

쥬아나가 대신 해명해 주었다.

“그, 그래. 쥬아나가 와 달라고 사정을 해서.”

“사정……?”

쥬아나가 ‘도와줬더니 이게 무슨 무례지?’ 하는 눈빛으로 제레미아를 노려보았다.

순간 제레미아는 당황해서 고개를 돌려 버렸다. 쥬아나가 욱하는 마음에 오드리아를 향해 뭐라 말하려고 할 때였다.

제레미아가 쥬아나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겼다. 미안하다는 듯, 이번 한 번만 도와 달라는 듯. 고개를 돌린 뒤통수에서 간절함과 미안함이 느껴졌다. 쥬아나는 피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연회가 끝나면 다 함께 차라도 마시면 어떨까 해서 이때쯤에 와 달라고 했는데, 오늘 티 파티도 그렇고 그냥 돌아가는 게 좋겠다.”

쥬아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제레미아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치 구세주를 보는 것처럼.

“그럼 나는 먼저 갈게.”

그녀는 이왕 도와주는 거 마지막까지 깔끔하게 퇴장하려고 했다. 그때였다. 오드리아가 그녀를 불렀다.

“여기까지 왔는데 같이 산책이라도 해요.”

“산책?”

“최근에 다리가 생겼는데 거기 경치가 좋다고 하더라고요.”

쥬아나는 제레미아를 바라보았다. 그는 어느새 오드리아의 뒤에서 그녀를 지키는 기사처럼 서 있었다.

거기다 연회에서는 트루디 대공과 제레미아 사이에 있는 오드리아만 봐서 몰랐는데 오드리아를 사이에 두고 서 있는 제레미아와 라미엘을 보니 어쩐지 경쟁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긴. 라미엘의 외모는 원래도 영애들 사이에서 유명했지.’

최근 라미엘의 외모는 영애들 사이에서 수차례 언급되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쥬아나가 묻자 제레미아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도 갈까.”

쥬아나가 오드리아를 향해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오드리아 역시 환하게 미소를 지었고, 네 사람은 함께 이동했다.

오드리아가 얘기한 새로 지어진 다리란 수도에 있는 큰 연못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였다. 아래에는 연꽃이 가득하고 위에는 시원한 그늘이 되어 주는 나무가 우거졌다.

제레미아와 라미엘은 멀찌감치 앞서 걷고 있었다. 마치 누가 더 빨리 걷는지 경쟁하는 것처럼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

오드리아와 쥬아나는 그 두 사람을 뒤에서 지켜보며 천천히 걷고 있었다. 티 파티에서 못다 한 대화를 나누면서.

“가족들의 사랑이 대단하단 소문이 진짜였구나.”

쥬아나가 감탄하며 말했다. 오드리아는 쥬아나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오빠가 걱정 많이 했어요?”

“어……? 제레미아가 왜 왔는지 알아?”

“네.”

오드리아가 눈을 찡긋했다. 오드리아는 쥬아나가 제레미아를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제레미아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 역시. 그런데도 아무것도 모르는 척해 준 것이다.

‘역시 어디서 당하고 다닐 타입은 아니라니까.’

그래서 쥬아나는 오드리아가 더더욱 마음에 들었다.

* * *

오드리아의 예상대로 다시 활동을 시작한 에이미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여러 의미로 대단하네요.”

페이지가 그런 에이미를 보며 말했다.

티 파티 이후 잠적할 때까지만 해도 에이미의 입지가 위태로워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놀랍게도 에이미는 여전히 건재했다.

“신시아 님께 선물했다가 망신을 당했던 제품 역시 지금 인기가 대단하다고 합니다.”

“……열풍인가 보네.”

“사람들이 광적으로 좋아하고 있으니까요.”

“그러게.”

오드리아는 페이지의 말을 들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동안 에이미의 유명세 덕에 화장품이 인기를 끌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았다.

‘화장품에 특별한 게 있나.’

화장품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오드리아 님. 화장품에 관해 드릴 말씀이 더 있습니다.”

페이지가 목소리를 살짝 낮추며 말했다.

“뭔데?”

“잠시 이쪽으로.”

페이지를 따라 사무실에 들어갔다. 그러자 페이지가 사무실의 밖을 살피고 난 뒤 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오드리아에게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드리아 님. 이상한 소문이 하나 있습니다.”

“소문?”

“소문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이상한 말을 하는 사람이 찾아왔었습니다.”

아무래도 은밀한 말인 것 같았다. 페이지는 목소리를 낮게 유지한 채 말을 이어 나갔다. 그녀의 목소리가 심각했다.

“그냥 무시할 만한 내용이기는 한데 조금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어서요.”

“그게 뭔데?”

페이지는 아무래도 말을 꺼내기가 망설여지는지 본론을 꺼내지 않고 말을 늘였다. 오드리아는 페이지가 하려는 말이 에이미와 관련된 일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웬 자작 부인이 파는 화장품이 수상하다고 합니다.”

“수상하다니?”

역시나 페이지가 꺼낸 말은 에이미에 관한 것이 맞았다. 정확히는 그녀가 팔고 있는 화장품.

“저도 자세한 건 알 수 없지만 화장품에 들어간 성분 중에…….”

페이지가 말을 잠시 멈췄다가 다시 이어 나갔다. 그녀의 목소리가 더욱 낮아졌다.

“있어서는 안 되는 게 들어 있다고 합니다.”

“…….”

페이지의 말은 모두 소문에 불과했다. 근거도 증거도 없었다. 하지만 오드리아는 신중하게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이지가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는 것은 뭔가 심증에 불과하더라도 걸리는 것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있어서는 안 되는 것.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가벼운 문제는 아닐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래도 아무 증거도 없이 문제를 제기할 수는 없어.”

“네.”

“일단 좀 더 생각하고 답을 줄게.”

“기다리겠습니다.”

페이지는 평소와는 다르게 오드리아를 재촉했다. 그녀의 기다리겠다는 말은 빠른 대답을 원한다는 것이다.

페이지는 신중한 사람이다. 정보의 출처가 의심스럽거나 허무맹랑하다면 자신에게 전하지도 않았을 터.

오드리아는 우선 공작가로 돌아갔다. 페이지가 말을 할 때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사실은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화장품이 수상하다니.

오드리아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 * *

오드리아는 얼마 전 신시아가 준 화장품이 떠올랐다. 에이미가 신시아에게 써 보도록 무리해서 권유하는 것을 보고 신경 쓰여서 받아 온 것이다.

이 화장품은 지금까지 많은 영애들이 사용하고 있었다. 심지어 에이미 그녀가 직접 사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한두 번 사용해서 문제가 드러나지는 않을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사용해야만 문제가 드러나겠지. 그게 정확히 언제쯤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때가 되면 늦어 버릴 것이다.

생각해 보면 오웬 부티크의 화장품에 대한 반응은 조금 유별나다 싶을 정도로 선풍적이었다. 한번 사용하기 시작한 사람은 화장품의 매력에 빠져 헤어나지 못했다. 일종의 중독처럼.

오드리아는 화장품의 뚜껑을 열었다. 코를 가까이 가져가서 향을 맡아보았다. 장미향이 은은하게 났다. 살짝 손등 위에 발라 보았다. 크림 같은 느낌이었다. 피부에 밀착되어 곧바로 흡수되는 느낌이었다.

오드리아는 손등 위에 발랐던 것을 닦거나 씻어 내지 않았다. 오히려 수시로 화장품을 덧발랐다. 며칠 동안 이 상태로 지낼 생각이었다.

오드리아는 오랜만에 작업실에 갔다. 메릴이 그 앞에서 오드리아가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오드리아 님!”

라미엘이 갑자기 오드리아의 손목을 붙잡았다.

“왜 그래?”

깜짝 놀란 오드리아가 작업을 멈추고 라미엘을 바라보았다.

“오드리아 님, 피부가 이상합니다!”

라미엘이 심각한 얼굴을 하며 다급하게 말했다.

“내 피부……?”

오드리아가 의아해하며 라미엘이 잡은 손을 응시했다.

“……?!”

오드리아의 손등이 울긋불긋했다. 피부가 붉어져 있었다. 그제야 그녀는 손등이 따갑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거…….”

정확히 화장품을 바른 부분이었다. 오드리아가 눈매가 깊어졌다.

“바로 주치의를 부르겠습니다!”

라미엘은 오드리아의 손등에 생긴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당장이라도 의사를 부르러 뛰쳐나가려는데,

“잠깐만!”

오드리아가 그를 붙잡자 라미엘이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왜 그러세요?”

“지금 거기로 가면 아빠랑 오빠가 달려올 거야.”

“그거야 당연히 그러겠죠!”

오드리아가 다치면 바로 두 사람에게 보고된다. 그럼 두 사람은 만사를 제쳐 놓고 오드리아에게로 달려왔다.

하지만 지금은 두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생각을 눈치챈 라미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바로 치료받으셔야 합니다.”

하지만 라미엘 역시 물러나지 않았다.

“고작 피부가 붉어진 거야. 심각한 거 아니니까 괜찮아.”

오드리아가 라미엘을 진정시키기 위해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하지만 며칠 안 돼서 이렇게 된 거 아닙니까.”

라미엘은 가라앉지 않는 걱정 때문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정말 괜찮은 겁니까.”

오드리아의 피부는 무척 민감했다. 남들은 아무 문제없이 쓰는 것들도 언제나 오드리아에게는 문제가 나타났었다.

그래서 오드리아는 직접 화장품을 사용해서 며칠 동안 지켜보려고 했었던 것이다.

극소량을 사용했다면 오드리아에게도 아무런 반응이 없을 수도 있지만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역시나, 오드리아의 손등에 이상 반응이 나타났다.

“이미 약도 따로 챙겨 놨어.”

이럴 것을 예상한 오드리아는 주치의에게 다른 핑계를 대고 미리 연고를 받아 놓았다.

“……그래도 치료는 제대로 받으셔야 합니다.”

“그럴게. 주치의 말고 다른 사람한테.”

“……알겠습니다.”

라미엘은 오드리아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생각에 결국 한발 물러났다.

그를 설득한 오드리아는 그 길로 작업실을 나와 오필리아 숍으로 향했다.

의사 역시 오필리아 숍으로 따로 불러서 치료를 받았다. 오드리아가 치료를 받는 내내 옆에서 지켜보는 페이지와 메릴의 표정이 험악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의사가 돌아가자마자 페이지가 오드리아를 추궁했다. 오드리아는 치료를 받는 내내 어쩌다가 다쳤는지 이유를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속이 타들어 갔다.

오드리아는 그제야 화장품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페이지는 화장품과 오드리아를 몇 번이나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상상력을 사용해서 무슨 일인지 유추했다. 그럴수록 페이지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오드리아 님…… 설마…….”

“응.”

오드리아는 차마 페이지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시선을 회피한 채 대답했다. 페이지는 순간 고성을 지를 뻔했다. ‘대체 무슨 생각이신 겁니까! 생각이 있는 겁니까, 없는 겁니까!’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은 모두 목 뒤로 삼켰다. 제가 한 말 때문에 오드리아가 자신의 몸에 직접 시험해 본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페이지.”

“네, 오드리아 님.”

오드리아는 진지한 목소리로 화장품을 가리키며 페이지에게 말했다.

“이거 성분을 알아볼 수 있을까?”

“한번 시도는 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이건 저도 어려울 수 있어요.”

페이지가 곤란해하며 말했다. 그녀는 오드리아의 부탁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언제나 자신 있게 대답하고는 했다.

그런 페이지가 이 정도로 머뭇거린다는 건 그만큼 힘든 일이라는 것이다.

“혹시 모르니 알아볼 수 있는 데까지만이라도 확인해 줘. 나도 다른 방법을 찾아볼게.”

“네. 저도 최선을 다해 볼게요.”

하지만 두 사람의 예상대로 시간이 꽤 지났지만 화장품에 들어간 성분을 알아내는 것은 무리였다.

* * *

오드리아는 페이지가 성분을 조사하는 동안에 다른 한편으로는 오웬 자작가에 대한 정보를 비롯하여 부티크와 화장품에 대한 정보 역시 최대한 모아 보려고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그거라면 신시아 님과 쥬아나 영애님께 부탁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오드리아의 고민을 들은 메릴이 말했다. 하지만 오드리아는 그럴 수 없었다. 두 사람에게 이미 충분히 도움을 받고 있었다.

게다가 부탁을 하려면 에이미에 대해 얘기를 해야만 했다. 메릴은 오드리아의 그런 고민을 알고 있다는 듯이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오드리아 님과 오웬 자작 부인의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은 두 분도 알고 있을 겁니다.”

“뭐? 어떻게?”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모두 지켜봤으니까요. 분명 신시아 님께서는 오드리아 님께 힘을 실어 주기 위해서 티 파티도 열었던 걸 겁니다.”

오드리아의 입이 벌어졌다. 메릴도 알고 있는 걸 왜 나만 몰랐지 싶어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오드리아는 곧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렇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지. 오드리아는 신시아와 쥬아나를 찾아갔다.

“도움을 요청할 일이 있어 연락을 드렸어요.”

“도움? 오드리아가 도움을 요청할 일이 있다니 신기한데.”

쥬아나가 눈동자를 반짝이며 오드리아를 바라보았다.

“일단 들어 볼까요?”

신시아는 그런 쥬아나를 말리며 오드리아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오웬 자작 부인이 운영하는 부티크에 관한 일이에요.”

오드리아는 지난번에 신시아에게서 받아 갔던 화장품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얼마 전에 이 화장품을 제 손등 위에 바르고 생활을 했는데 피부에 열꽃이 생겼어요.”

“화장품 때문에요?!”

쥬아나가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네. 화장품 때문에요.”

“그래서요. 얘기를 계속해 봐요.”

신시아의 말에 오드리아는 에이미에 대한 약간의 설명과 함께 정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런 거라면 내가 알아봐 줄게요.”

오드리아의 말이 끝날 때까지 잠자코 들은 신시아는 곧바로 알겠다고 대답했다.

아직 별다른 작위를 받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신시아는 유스티오 후작가의 비공식 후계자였다. 그녀가 다른 가문에 대해 알아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잠깐만, 오드리아 너 손등……. 이게 방금 말한 그거야?”

쥬아나가 아직 다 낫지 않은 오드리아의 손등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네. 맞아요.”

“이건…….”

쥬아나는 뭔가 고심하는 듯 심각한 얼굴을 하고서 오드리아의 상처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몇 번 갸웃거리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거…… 단순한 열꽃이 아니라 독성이 닿았을 때 나타나는 증상 같은데?”

“네……?”

쥬아나의 말에 오드리아가 깜짝 놀라며 자신의 손등을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열꽃이 잘 사라지지 않기는 했다. 하지만 독성이라니.

“혹시 이것도 방금 전 부탁이랑 관련된 일이야?”

쥬아나가 뭔가 감이 잡힌 듯 물었다. 오드리아는 잠시 고민 끝에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건 내가 알아봐 줄게.”

“네?”

쥬아나의 말에 오드리아가 당황해서 물었다.

“마약이나 독이라면 우리 가문의 특기거든.”

쥬아나가 찡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해답을 풀 열쇠는 쥬아나가 가지고 있었다.

오드리아는 머뭇거렸지만 결국 쥬아나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쥬아나는 흔쾌히 승낙했다.

“좋아. 도와줄게.”

“감사해요.”

“괜찮아. 나중에 내가 너한테 부탁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쥬아나는 마지막까지 시원했다.

“아, 그리고…….”

오드리아가 쥬아나를 보며 머뭇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쥬아나는 오드리아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아차렸다.

“걱정 마. 제레미아한테는 말 안 할 테니까.”

“감사해요.”

쥬아나의 시원한 확답에 오드리아가 미소를 지으며 안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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