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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청혼을 거절하지 않은건 (41)화 (41/120)

41화. 각자의 시선

귀족 부인이 시녀가 되는 건 흔한 일이었다. 시녀라고 하지만 궂은일을 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모시는 사람의 말벗이 되어 주고 몇 가지 일을 대신하는 정도가 다였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고위 귀족은 누군가의 시녀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들은 따로 자신만의 시녀를 두기도 했다.

그런데 에일린의 상황이 모호했다. 에일린은 이제 대공비로 고위 귀족이 되었는데 그 어머니가 황비의 시녀였다고 한다.

“문제가 될까요?”

에일린이 전혀 문제를 모르겠다는 시선을 보냈다. 그녀로서는 제 어머니가 시녀로 살았던 것을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아니요. 한때 황후 폐하를 모시려 공작 부인이 시녀로 들어간 일화도 있었잖아요. 특별한 경우가 아니니 상관없지만 조금 걸려요.”

클로에의 설명에 에바 부인이 살을 붙였다.

“모두가 마마께 호의적이라면 상관없습니다.”

“그러니까 그걸 이용하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다는 거네요.”

“그렇지요.”

그녀들은 모임에서 오가는 기 싸움을 잘 알았기에 걱정하는 것이다. 클로에와 에바 부인의 심각한 분위기를 읽고 에일린이 가만히 있었다. 하늘을 바라보고 시원한 물을 마시고 있으니 클로에가 에일린을 보았다.

“왜요?”

에일린이 순진하게 물어보니 클로에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녀는 뭔가 의심스러운 듯 에일린을 보았다. 왜 이렇게 아무렇지 않지? 싶어 보던 클로에가 운을 띄웠다.

“그러고 보니 새언니가 결혼 전에 어떻게 살았는질 모르네요.”

“평범했어요. 오빠가 오메가로 발현해서 둘이 같이 집에 있었어요. 그리고 책을 읽는 일이 많았고요.”

“모임은요?”

에일린이 살짝 미소를 띠며 고개를 저었다.

“안 나갔어요.”

기회는 있었다. 그러나 에단을 두고 혼자 나가고 싶지 않았다.

“한 번도요?”

“있긴 한데 상황이 달랐어요.”

패트릭의 부인으로 참여한 적이 있었지만, 그땐 그의 옆에 있어야 했다. 패트릭은 에일린이 혼자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더불어 다른 이와 인사를 나눠도 안부가 대부분이었고.

“그래서 몰랐구나.”

그제야 에일린이 왜 이렇게 걱정하지 않는지 알았다.

“혹시 단단히 마음 붙잡고 가야 할까요?”

“음…… 아니요. 그냥 평소대로 하는 게 좋겠어요.”

클로에가 방금 느낀 감정을 떠올렸다. 에일린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보니 전부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에바 부인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황후께서 작은 연회를 여신다고 합니다.”

래즐 부인이 알아 온 소식에 케이트 황비는 심드렁히 반응했다. 황후가 연회를 연다고 해서 딱히 끌리지 않았다. 케이트 황비는 여러모로 황후와 부딪혔다.

황후에겐 15살의 알파 아들이 있고 케이트에게는 알파로 각성할 게 분명한 11살의 아들이 있었다. 그뿐 아니라 황후와 나이도 엇비슷해서 평소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다. 케이트 황비의 반응을 보던 래즐 부인이 흥미를 가질만한 말을 꺼냈다.

“그리고 대공비가 황후 폐하의 초대를 받아들였다 하고요.”

“대공비가 초대에 응했다고?”

달칵 찻잔을 내려놓은 것도 잠시 날카로운 음성이 그 자리를 메웠다. 눈꼬리가 올라간 매서운 느낌의 여성이었다. 그러자 옆에 앉은 래즐 부인이 잔을 제자리에 올려두며 대답했다.

“그렇다고 합니다.”

“도도하기가 하늘을 찌르는구나.”

황비, 케이트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저도 초대장을 보냈는데 그건 다 거절해왔지요. 처음부터 황후 폐하의 초대가 아니라면 응할 생각이 없던 게 분명해요.”

부인의 말에 다른 부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들은 케이트 황비의 시녀이면서 귀족가의 여성들이었다. 그리고 전부 한 번씩 대공비에게 초대장을 보냈었다.

“듣자 하니 귀부인들의 초대장은 다 되돌려보낸 모양이에요.”

“어쩜, 대공비가 되어 축하를 해 주려는데 그리 야멸차게 굴까요.”

“그전엔 누구도 찾아주지 않았던 그저 그런 아가씨였잖아요. 그러니 얼마나 좋겠어요.”

“하긴…….”

부인들은 저마다 대공비에게 가진 불만을 은근하게 표현했다. 조금이라도 친분을 만들어보려고 했는데 거절당했으니 대공비에게 좋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가 더 있었다. 서로의 눈치를 보던 래즐 부인이 눈치를 보다 넌지시 말했다.

“어쩌면 마마께서 보냈어도 거절했을지도 몰라요.”

그녀는 케이트의 분위기가 가라앉자 재빨리 말을 붙였다.

“대공비의 친모가 제이나 황비의 시녀로 있었잖아요. 그런데 케이트 황비 마마의 초대에 응할까요?”

래즐 백작 부인은 평소 클라우디아 백작 부인을 눈엣가시로 여겼다. 같은 백작가에 똑같이 시녀로 있는데 클라우디아 백작 부인의 딸이 대공비가 되었다. 래즐 부인이 케이트 황비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며 은근히 이간질했다.

“래즐 부인, 나는 대공비를 초대할 마음이 없어 지켜봤어요. 그런데 부인의 말을 들으면 내가 거절당할까 초대장을 보내지 않은 것처럼 들리네요?”

“제 뜻은 그게 아니고…… 죄송합니다. 황비 마마.”

“조심하세요.”

케이트 황비의 차가운 언사에 래즐 부인이 더욱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케이트 황비의 눈동자엔 일절 자비가 비치지 않았다. 귀족 부인이라 해도 자신은 황족이었다. 그런데 주제도 모르고 자신까지 함부로 재단했다.

냉담한 눈길을 보낸 것도 잠시 케이트 황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부인의 말도 틀리지 않아요.”

래즐 부인이 잘못 들었나 싶어 케이트 황비를 보았다. 그녀는 느릿하게 고갯짓을 하며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드러냈다.

“과연 내가 보내면 왔을까 싶단 말이죠.”

케이트 황비가 의문을 내비치지만 그 말엔 부정적인 마음이 섞여 있었다. 래즐 부인은 황비에게 한 소리를 들었지만 말하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황비의 마음에 의심의 싹을 심어줬으니까.

“연회에 참석할 테니 알아서 준비해놓으세요.”

“알겠습니다.”

래즐 부인이 고개를 숙였다. 케이트 황비로부터 원하는 답을 들었으니 더 할 말이 없었다.

***

“황후께서 이번 연회에 참석하면 좋겠다네요.”

제이나 황비의 말에 함께 티타임을 보내던 부인들이 저마다 반응을 내보였다.

“황후께선 늘 황비 마마를 챙겨주시네요.”

“이리 사이가 좋은 것도 다 두 분의 성품이 온화하니 잘 맞으셔서 그렇죠.”

부인들의 세워주는 말에 제이나 황비가 얼굴을 붉혔다.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저는 황후 폐하의 성품을 따라갈 수 없다고요.”

“하지만 사실인걸요?”

“그렇게 나를 띄워서 무얼 얻으려고 하나요.”

제이나 황비의 앓는 소리에 부인들의 웃음소리가 커져 갔다. 그녀들은 제이나가 황비가 되기 전부터 친분을 유지해온 사람들이었다. 제이나 황비가 잘게 웃다가 여태껏 한마디도 꺼내지 않은 브리스를 보았다. 그녀는 고민이 가득 담긴 듯 표정이 좋지 않았다.

“브리스, 무슨 일이 있나요?”

“그게…….”

제이나 황비보다 10살은 많아 보이는 브리스가 무거운 한숨을 삼키며 말했다.

“제 아이에게도 초대장이 간 모양입니다.”

“브리스의 아이라면 대공비를 말하는 거죠?”

“네.”

브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껏 어디에도 응하지 않다가 이번 황후 폐하의 연회에 온다니 걱정이 앞선답니다.”

“하긴 대공비가 워낙 나오질 않았죠.”

제이나 황비도 브리스의 일이라 관심이 많았었다. 브리스의 딸 에일린의 이야기는 종종 들어왔다. 이번에 대공비가 된다고 할 때 정말 놀랐고 그때 정략결혼에 관한 것도 알았다.

브리스가 못내 답답한 마음에 황비의 앞인 것도 잊고 걱정을 쏟아냈다.

“어릴 적부터 밖에 돌아다니지 않았던 아이랍니다. 제 오빠가 발현하고 나서 외로울까 봐 옆을 지켜주던 아이였거든요. 그때는 그저 착하다고 여기기만 했는데 이리될 줄 알았다면 제가 나서서 데리고 다녔을 겁니다.”

브리스의 말에 다른 부인들이 숨죽여 그녀를 지켜보았다. 옆에 앉은 이는 브리스의 식은 차를 따뜻한 것으로 바꿔주기도 했다.

“그래서 대공비가 되어서도 쉽게 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이제 말 한마디도 조심해야 할 위치가 되었으니 얼마나 걱정이 될까요. 어머나, 제가 쓸데없는 말을 했네요. 죄송해요.”

브리스가 뒤늦게 자신이 한 짓을 떠올리며 안절부절못했다. 좋은 이야기를 나누어도 모자란 자리에서 잔뜩 푸념이나 내뱉고 있으니 미안해서 어쩔 줄 몰랐다.

에일린의 결혼을 기점으로 브리스는 시녀를 그만두었다. 지금은 시녀가 아닌 오랜 친분을 나눈 사이로 온 것인데 눈치 없이 분위기를 다 망쳐버렸다. 어디 숨고 싶은 마음에 손가락이 치맛자락을 움켜쥐었다.

그 모습에 제이나 황비가 브리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는 브리스의 손을 꼭 잡으며 미소를 보였다.

“걱정 마세요. 에일린은 영특한 아이잖아요.”

“황비 마마…….”

“혹시 알아요? 초대장이 많이 오니까 현명하게 하나를 선택했을지 말이에요.”

“그럴까요?”

“그럼요.”

제이나 황비의 대답에 다른 부인들도 브리스를 위로해주었다.

“대공비가 되어 축하한다고 한 게 언젠데요. 결혼식 때 얼마나 예쁘던지, 거기다 야무진 성격이라고 그랬나요?”

한 부인의 호들갑스러운 말투에 브리스가 마음이 놓인 듯 맥이 탁 풀린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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