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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청혼을 거절하지 않은건 (12)화 (12/120)

12화. 이해

에일린이 로이드의 말에 충격을 받아 들고 있던 포크를 떨궜다.

‘헤냐스의 날이라면 에단 오빠가 결혼했던 날이잖아.’

우연이지만 정말 에단 오빠를 제외한 모든 게 그때와 똑같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때의 충격이 되살아나 심장이 크게 뛰었다. 에일린이 뒤늦게 동요한 걸 숨겨보려 하지만 이미 분위기가 어색해져 버렸다.

“죄송해요. 손이 미끄러졌어요.”

상황을 수습하려고 에일린이 말을 돌렸다.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이 떨어진 포크를 줍고 싶었다. 에일린은 어떻게든 미소를 지어 보려고 하는데 입꼬리가 떨렸다.

모두가 에일린의 동요를 알아챘다. 클라우디아 백작이 일어나 에일린의 어깨를 짚었다.

“긴장했나보구나.”

“……그런가 봐요.”

에일린이 조금 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백작 부인이 그 마음을 안다는 듯 에일린의 손을 잡았다.

“나도 그랬단다. 네 아버지를 만나면서도 언젠가 결혼하겠지 했는데 날을 잡으니까 갑자기 심장이 뛰었어.”

“그래요?”

에일린이 제 어머니를 올려다보았다. 제 진심을 감추려 거짓말을 했지만 백작 부인이 건네는 손의 온기에 점점 진정되어가는 걸 느꼈다.

“이제 괜찮아졌어요.”

에일린의 말에 백작 부인이 그녀의 안색을 더 살펴본 후에야 손을 놔주었다. 에일린은 로이드에게도 미안한 듯 고개 숙여 인사했다.

“혹시 생각한 날이 있어?”

로이드의 물음에 에일린이 작게 고개 저었다. 날을 바꾼다고 제게 닥친 운명이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아는 날 있었던 일들을 예상할 수 있으니 미리 예방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오빠의 히트처럼.

로이드가 에일린의 앞으로 물잔을 내밀었다.

“마셔.”

“감사합니다.”

에일린이 물잔을 쥐며 대답하다가 슬쩍 시선을 내렸다. 미지근한 물이었다.

“따뜻한 물을 섞었어. 너무 찬물 마시는 것도 안 좋아.”

로이드가 무덤덤한 말투로 말했다. 에일린이 물잔을 쥐자마자 시선을 내린 걸 보고 무슨 생각하는지 바로 알아챈 것이다. 물잔을 들어 입에 대는 에일린은 아까와 다른 의미로 복잡한 심경이었다. 이런 배려 깊은 면을 발견할 때마다 낯설게 느껴졌다.

“그럼 헤냐스의 날에 결혼하는 건 변동 없이 진행하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로이드가 정리하자 클라우디아 백작이 긍정을 표했다.

“그리고 하나 더…….”

로이드가 식사가 끝났는지 시종에게 눈짓하며 냅킨을 내밀었다. 시종이 냅킨을 받아들고 물러나자 로이드가 백작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에일린을 여기서 지내게 했으면 합니다.”

클라우디아 백작이 살짝 당황했다가 고개를 돌려 백작 부인과 눈을 마주쳤다. 아마 에일린이 이곳에 머물고 있을 때부터 예상한 듯 둘은 침착하게 눈빛을 주고받았다.

“에일린만 괜찮다면 우린 상관없습니다.”

그 말에 로이드가 에일린에게 시선을 돌렸다. 집에 가고 싶다고 했는데 어쩌나? 당신의 부모님이 여기 있어도 된다는데?

“하지만 꼭 여기 있지 않아도 되는걸요?”

오히려 에일린이 부모님을 보며 나름 항변했다.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에둘러 표현했다.

“헤냐스의 날까지 얼마나 남았다고 뭐하러 번거롭게 오갈까. 거기다 여기서 지내려면 새로 준비해야 할 것도 많은데 사람들을 다 백작저까지 오가게 할 건 아니지?”

“그건…….”

에일린이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식사가 끝났다면 준비해둔 객실로 가죠. 따로 할 말이 있습니다.”

로이드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자 클라우디아 백작 내외도 따라 일어났다. 둘은 로이드를 따라 다이닝룸을 나가면서 에일린을 스치듯 보며 인사를 건넸다.

“에일린, 우리도 나눌 대화가 많지?”

에단의 말에 부모님이 나간 문을 바라보던 에일린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

“미리 말 못 해서 미안해.”

매도 미리 맞는다고 에일린은 에단을 제 방으로 데려오자마자 사과부터 건넸다. 에단은 에일린이 한 말을 곱씹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미안한데? 날 무작정 다락방에 올려보낸 거? 아니면 나한테 말도 없이 대공가로 가버린 거?”

“……둘 다.”

“그럼 왜 그랬는지 말해 줄래?”

에단의 친절한 말투에 에일린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공이 오고 있다는 걸 알았어. 대공은 우성 알파고 오빤 우성 오메가라서 만나지 못하게 하려고 했던 거야.”

“그건 어떻게 알았는데?”

“그…… 케이지 아저씨한테 들었어.”

에일린이 순간 말문이 막혔다가 황급히 핑계를 떠올렸다. 그날 늦잠을 자버렸는데 다짜고짜 대공이 오는 걸 알았다 말하는 것으로 에단을 이해시킬 수 없었다.

“그리고?”

“오빠가 오메가로 발현했으니까 당연히 대공과 혼인할 수 있다는 거 아는데, 어쩌다 보니 내가 청혼을 받았어.”

실은 이렇게 딱 떨어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잘 맞아떨어졌다. 가문 간에 태중 혼약이 되어있었고 우성 알파에 걸맞은 우성 오메가가 태어났다. 우성 오메가의 수가 희귀하다는 걸 생각하면 로이드의 상대는 에단이 되는 게 너무나도 당연했다. 그 사이로 에일린이 끼어들었던 거다.

에일린은 오빠가 자신을 탓하지 않았지만, 한편으론 아쉬워할 거로 생각했다. 착한 오빠니까 말 못 했지만 그래도 실망했을 것 같아 미안해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에일린.”

에단이 에일린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아까와 같이 에일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개 들어볼래?”

에일린이 고개를 들었지만, 시선은 여전히 아래를 향하고 있으니 에단이 제 상체를 숙여 눈을 맞췄다.

“만약 네가 오메가로 발현하고 내가 베타였다면 나도 그랬을 거 같아.”

“정말?”

에일린이 놀라서 물었다. 자신이야 에단 오빠가 죽을 걸 알기에 막았지만, 오빠도 그럴 거라고?

“너랑 똑같아. 페로몬에 홀랑 넘어가 버릴까 봐 그렇지.”

“어?”

“페로몬이라는 게 고약하잖아. 그 사람이 어떤지 모르는데, 페로몬이 좋다고 넘어가 버리면 이다음에 어떻게 될지 누가 알아. 나중에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실망해도 이미 끝나버린걸. 그런데 베타라면 대공이 페로몬을 풀어도 못 느낄 테니까 충분히 이성을 유지할 수 있지.”

에일린이 저도 모르게 가슴을 쳤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거라고. 그걸 대놓고 말하지 못해서 빙빙 돌리고 있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특히나 대공은 우성 알파니 페로몬이 얼마나 좋겠어. 홀랑 넘어가겠지. 그런데 그 사람 성격 유명하잖아.”

에단이 어깨를 으쓱이며 장난스럽게 목소리를 낮췄다.

“고약하고 심술궂다고.”

“아…….”

그런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거기다 그를 직접 만나보니 금방 이해되었다.

“그 사람 제멋대로 굴지 않아?”

“조금 그렇긴 해.”

“하긴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겸손이란 걸 얼마나 알겠어.”

“맞아.”

에단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대공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데 괜찮겠어?”

그 모든 이야기는 결국 에일린을 향한 걱정으로 끝났다. 에일린은 평소와 다름없는 대화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건 괜찮아.”

일 년만 결혼을 유지하기로 했거든. 나 베타라서 페로몬에 넘어가지도 않을 거고. 그리고 어차피 그 사람 전쟁터로 떠나서 못 만나. 이유는 말하지 못하지만, 표정으로라도 에단을 안심시키려 에일린이 더욱 미소를 짙게 만들었다.

오해가 풀렸다고 생각하니 에일린이 슬쩍 에단의 눈치를 보았다. 아까 헤냐스의 날에 결혼한다고 했을 때 바로 에단의 히트가 떠올랐다. 에일린은 그날 제 결혼보다 에단에게 벌어질 불행을 막고 싶었다.

에일린이 오빠를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빠 혹시 헤냐스의 날에 약속 없어?”

“그날? 그날은 네 결혼식밖에 없는데?”

“그렇지. 내 결혼식…… 그런데 말이야. 꼭 내 결혼식 봐야 하지?”

속마음을 감추려고 최대한 돌려서 표현했다. 결혼식 때 에단 오빠를 향해 쏠릴 시선들을 생각하면 벌써 걱정이 앞섰다. 이제 자신이 대공과 결혼하니 에단은 상대가 없는 상태로 공식적인 자리에 나오게 될 텐데 그게 참 불안했다. 그날 오빠를 지켜 주기엔 에일린도 결혼한다고 정신이 없을 것이다. 그럴 거라면 차라리 참석하지 않는 게 제일 좋았다.

‘히트가 온다면 더 위험하잖아.’

이래저래 에단이 오지 않아야 할 이유만 늘어났다. 하나뿐인 동생의 결혼식인데 이런 말을 해야 하는 게 쉽진 않았다.

“괜찮다면 그날 안 오면 안 돼?”

반쯤은 거의 내지르다시피 건넨 말이었다.

에일린이 치마 사이로 감춘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막상 에단에게 오지 말라고 했는데 그날 히트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건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지 헷갈렸다.

‘아니야. 아무 일 없는 게 제일 좋지.’

에단은 에일린의 표정을 보고 그녀의 손가락을 통해 난감해하는 분위기를 읽었다.

에단이 말했다.

“내가 창피하니?”

에일린이 황당해서 말문이 막힌 그때였다.

“큭.”

어디서 웃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에일린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성큼성큼 걸어가 벌컥 문을 열자 또 하나의 문이 있는 기분이었다. 에일린이 고개를 들자 로이드가 입을 가린 채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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