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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청혼을 거절하지 않은건 (5)화 (5/120)

5화. 쉽지 않은

로이드는 가신 회의에 참석한 원로들을 돌아봤다. 출전하기 전, 후계에 대한 우려를 가장한 결혼을 하라는 강요가 있었다. 로이드는 순순히 따르는 듯하다가 교묘하게 그들의 뒤통수를 쳤다. 그들도 이런 반전은 생각 못 했을 것이다.

우성 오메가를 데려올 줄 알았는데 이렇게 엉켜버렸으니 과연 어떻게 나올까?

로이드가 흥미로운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우성 오메가라…… 그럼 약혼이라도 시키지 그랬습니까.”

어릴 때 약혼이라도 했으면 그 상대를 데려왔을 거라고 대답하는 로이드의 목소리가 얄미울 정도로 태연했다.

칼릭스가 할 말을 잊은 채 입술만 달싹였다. 클라우디아가에서 에단이 우성 오메가로 발현했을 때 오늘처럼 가신 회의가 열렸다. 나이도 맞고 우성 오메가라 딱 둘이 맺어지기 좋았다. 그래서 약혼까지 언급되었을 때 선대 대공은 굳이 그럴 필요가 있냐고 했었다.

어차피 은연중에 가문 간의 약속을 잊지 않고 있으니 생략해도 된다고 했는데 그걸 로이드가 이용할 줄 몰랐다.

이렇게 뒤통수를 치겠다?

칼릭스가 일단 로이드에게 기본 중의 기본적인 상식을 들먹였다.

“우성 알파의 상대로 우성 오메가가 가장 잘 어울립니다.”

하지만 로이드가 만만치 않게 받아쳤다.

“칼릭스 원로는 아까부터 우성 오메가라고만 하는군요. 이름은 압니까?”

“당연히 알고 있지요. 에단 클라우디아. 그 이름을 모르는 이가 있습니까?”

“하도 오메가라고 해서 모르는 줄 알았습니다.”

로이드의 뻔뻔한 대답에 칼릭스는 눈을 가늘게 뜨며 되물었다.

“그럼 대공 전하께선 데려온 아가씨의 이름을 알고 있습니까?”

칼릭스는 정말로 궁금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에단 클라우디아는 대공가에 몸을 담고 있다면 누구나 아는 이름이었다. 자신들이 모시게 될 사람, 대공의 후계자를 낳아줄 사람, 대공가의 안주인 등등의 이유로 에단 클라우디아를 입에 담았다.

대공도 그걸 잘 알 것이다. 인이 박일 정도일 텐데 정작 다른 사람을 데려오면서 과연 이 무심한 남자가 상대의 이름을 알까 싶었다.

칼릭스의 질문에 사람들이 손뼉을 마주치고 싶은 걸 참느라 몸이 꿈틀거렸다.

그렇지. 제대로 된 질문이었다. 가신의 이름도 다 알지 못하는 대공이 과연 한 다리 건너에 있는 사람의 이름을 알 수 있을 리가. 그리고 그들은 대공이 주춤할 때 밀어붙일 생각으로 흥미진진하게 관전했다.

이번에 제대로 꼬리를 잡았으니 이대로 밀어붙여서…….

“에일린 클라우디아.”

로이드의 입가에 자신만만한 미소가 걸렸다. 그거 하나 모르겠냐는 듯 얄미운 표정에 칼릭스가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걸 겨우 억눌렀다.

“어떻게…….”

“곧 결혼해야 하는데 이름 정도는 당연히 알아야죠. 그래도 신중히 골라온 상대인데 말이죠.”

오메가 오빠가 없다는 대답에 그럼 너라도 잡아먹어야겠다는 식으로 데려온 로이드의 얼굴에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그리고 그런 사정을 모르는 다른 이들은 허를 찔린 듯 굴었다.

칼릭스는 침음을 삼켰다. 그가 대표 원로인 알란을 한 번 돌아보았다. 주름에 늘어진 눈살 아래로 보이는 눈빛이 어떻게든 이 상황을 뒤집고 싶어 하는 것으로 보였다.

당장 대공은 데려온 베타 여성과 결혼할 생각이고 가신 회의에 참석한 자들은 우성 오메가를 데려왔으면 한다. 아무래도 가신 회의가 길어질 것만 같았다.

“그간 대공에게 형질에 대한 대화를 많이 나누지 못한 기분이 듭니다.”

“그렇습니까?”

칼릭스는 어떻게든 우성 오메가를 들여야 한다고 설득을 할 생각이었다. 칼릭스 역시 알파였으므로 형질에 대한 주제를 입에 담을 자격이 있었다. 그걸 받아들이는 로이드의 태도가 성의 없어서 문제지.

“이 기회에 대공의 형질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게 좋겠습니다.”

“그러죠.”

“그걸 제대로 이해할 때까지 심도 있는 대화를 해 볼까요?”

칼릭스는 로이드의 의지를 꺾을 때까지 절대 일어나지 않겠다는 듯 비장하게 말했다.

“마음대로 하세요.”

그걸 받아들이는 로이드의 입가에 미소가 스쳤다.

***

방에서 서성이는 에일린은 끝나지 않는 회의에 조바심을 느꼈다. 대공의 제안과 달리 잠 따위 오지 않았다.

“원래 에단 오빠가 왔다면 이런 회의를 열지 않았을 텐데.”

자신이 와서 그런 게 틀림없었다. 에일린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제자리에서 빙빙 돌았다.

“아무리 대공이래도 여기저기서 안 된다고 몰아붙이면 어쩌지 못할 텐데.”

모두가 입을 모아 자신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하면 대공이 밀릴 게 분명했다. 그게 못내 걱정되어 에일린은 안정을 찾기 힘들었다.

정작 대공을 설득시키려 모두가 쩔쩔매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에일린이 무심코 몸을 돌렸을 때 맞닥뜨린 거울 속 자신과 눈이 마주쳤다. 평범한 갈색의 머리카락에 마찬가지로 특색 없는 갈색의 눈동자였다. 아침에 거울을 봤을 때 자신의 시간이 돌아왔다는 걸 알아차린 것도 이 색깔 때문이었다.

나중에 오메가로 발현이 되면 갈색 위로 금빛이 감돌게 되지만 지금은 그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색에 지나지 않았다. 남장이라도 해서 속여야 하나 싶지만 이런 색으로는 금발에 푸른 눈동자를 지닌 에단 오빠라고 속일 수도 없었다.

“애초 생긴 것도 다르잖아.”

에일린이 자조적인 혼잣말을 내뱉었다. 높게 솟은 에단의 코와 다르게 에일린의 코는 유한 곡선을 그렸고 에단의 시원하게 벌어지는 입술과 다르게 에일린의 입술은 오밀조밀하고 도톰한 축에 속했다.

에단과 닮은 부분이라고 해봐야 다이아몬드형 눈매나 흰 피부 정도일 것이다.

“도로 오빠 데리러 가면 어떡하지?”

그럼 에단 오빠를 숨긴 보람도 없이 원래의 흐름대로 이어질까 에일린의 고민이 깊어졌다.

에일린이 초조함에 방문을 돌아봤다가 창밖을 보았다. 어느새 하늘이 붉게 물들었음에도 문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못 기다리겠어.”

에일린이 방문을 향해 다가갔다. 가만히 기다리기엔 초조함이 심장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어떻게 되고 있는지 조금이라도 알아야 해.”

그간 에일린의 방으로는 집사가 필요한 게 없냐고 두어 번 들른 게 고작이었다. 대공과 만나야겠다는 말에도 회의 중이라는 대답 말고 무엇도 말해 주지 않아 더 답답한 참이었다.

‘잠깐만 알아보고 바로 돌아오자.’

고민이 길지 않았던 에일린이 곧바로 문을 열었다. 조용한 복도를 한 번 돌아본 에일린이 곧바로 한 장신구가 있는 쪽으로 몸을 기댔다. 그리고 어디로 가야 회의에서 나오는 말을 조금이라도 들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이내 방향을 정했다.

***

“그러니까 다시 한번 생각을 해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칼릭스가 관자놀이에 흐르는 땀을 소매로 대충 훔쳤다.

제 조카에게 알파부터 오메가, 베타까지 형질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은 시간이 제법 길었다. 어느새 붉은 노을빛이 로이드의 얼굴 옆면을 물들이고 있었다.

그동안 의자 팔걸이를 가만히 손가락으로 두드리던 로이드가 천천히 운을 띄웠다.

“아주 오랜만에 들어보는 수업이었네요. 인간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제1의 성별을 가지고 태어나 2차 성징 때 제2의 성이 결정된다. 형질이라고도 부르는 제2의 성은 개인 간의 차이가 있으나 보통 16, 17세에 발현한다. 그때 알파와 오메가로 발현되지 않은 모든 이를 베타로 명명한다.”

로이드의 차분한 목소리에 가신 회의에 참석한 자들이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확실히 어떤 말이든 그가 하면 더 와닿았다. 아마 그 이유는 로이드의 낮게 울리는 목소리 때문일 것이다.

“알파의 경우 오메가와 이어지고 베타 남성의 경우 베타 여성과 만나는 게 일반적이다. 그들 사이를 가르는 가장 큰 이유는 페로몬이다. 알파와 오메가만이 가지고 있는 페로몬은 베타는 전혀 느낄 수 없다. 더불어 형질인 사이에 이뤄지는 페로몬 교감은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어주며 동시에 후계의 형질에 영향을 미친다.”

로이드가 칼릭스의 이야기를 사정없이 가지치기한 결과 제법 깔끔한 정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베타 남성과 알파는 상대를 임신시킬 수 있다. 마찬가지로 베타 여성은 아이를 낳을 수 있는데 남성이라도 제2의 성이 오메가라면 임신이 가능하다. 베타의 경우 상대가 베타라면 베타의 아이를 낳는 것이 대부분이며 알파의 아이를 가질 땐…….”

로이드의 말이 잠시 멈춘 사이 몇몇이 숨을 들이켰다. 은연중 그의 말에 집중하고 있단 뜻이었다.

“형질을 띠는 아이를 낳을 가능성이 작다.”

“바로 그겁니다.”

칼릭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크게 박수를 첬다. 마치 훌륭한 학생을 둔 선생님의 마음인 듯 그는 로이드가 제 말을 다 알아들었다는 것에 감동까지 받은 듯 굴었다.

“대공께선 그냥 알파가 아니라 우성 알파입니다. 그러니 더욱 우성 오메가를 만나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다음 후계자가 우성을 띠는…….”

“칼릭스 원로.”

로이드가 손을 들어 그의 말을 잘랐다.

“베타 여성은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만?”

“……대공, 지금까지 제가 한 말을 그렇게 잘 정리해 주시고선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더욱이 형질을 띠는 아이를 낳을 수도 있네요.”

“가능성이 작다고 했습니다만?”

“없진 않지요.”

칼릭스가 황망한 눈으로 로이드를 보았다. 그렇게 가능성이 작다고 했는데 불가가 아닌 이상 로이드를 설득하긴 틀린 모양이었다.

처음의 대화로 돌아왔다.

칼릭스가 답답한 마음에 제 가슴에 손을 올리는 동안 로이드가 여유롭게 주변을 훑었다. 이제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서 보고 있으니 알란이 나섰다.

모든 걸 지켜봤기에 더는 형질을 언급하는 건 의미 없다는 걸 깨닫고 그가 질문의 방향을 바꿨다.

“그 베타 여성도 다 알고 따라온 겁니까?”

대공이 직접 갔다고 하지만 마른하늘에 날벼락과 같은 일일 텐데 순순히 따라왔을까?

알란의 의심에 로이드가 고른 치아가 드러나도록 환하게 웃었다.

“당연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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