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갑자기 찾아온 손님 2 (완결)2017.09.21.
“와...... 맛있겠다.”
유정은 배달시킨 해장국을 보고 미소했다.
덕분에 술을 안 마신 준서까지 해장국을 먹어야 했지만 유정의 속이 풀린다면 상관이 없었다.
“와, 진짜 맛있다.”
유정은 국물을 한 숟갈 뜨고는 곧 밥을 말아서 호호 불며 먹기 시작했다.
그 모양을 보던 준서도 숟가락을 움직였다.
동네에서 가장 유명한 집에서 배달을 시켜 그런지, 국물이 시원하고 맛이 있었다.
“참, 아침에 성헌이랑 좀 다투는 거 같은데. 그래도 방학인데 좀 놔두지 그래요?”
먹는데 집중하던 유정이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 새로운 화제를 꺼냈다.
“아.”
준서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 녀석 방학하고 매일 놀았어요. 담임이라 아시겠지만 성적도 떨어졌고.”
“에이, 그게 떨어진 건가요?”
“떨어진 거죠. 더 잘할 수 있는 녀석이에요. 닦달을 안하면 흐트러지는 녀석이라서. 일단 내일까지 계획서 제출하는 거 보고 더 이야기해 봐야죠.”
“이런 거 보면, 준서 씨도 딱 학부모 같아요. 그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강남 학부모 있잖아요.”
“제가요? 저는 많이 풀어주는 거죠. 이렇게 하면 안됩니다.”
“나중에 아이 생기면 엄청 공부 시킬 거 같은데요?”
유정은 웃으며 말하다가 숟가락으로 입을 막아 버렸다.
그러나 이미 입에서 나간 말이었다.
그 모양을 보던 준서는 새어나가는 웃음을 참고 일부러 눈에 힘을 주었다.
“내 생각에는 유정 씨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전 안 그래요.”
“그리고 이게 꼭 나쁜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놀고 싶은 아이 붙드는 것도 부모 역할이라고요.”
“그래도 아이 이야기부터 들어봐야죠. 그리고 아이 인생인데, 지나치게 참견하는 건 부모라도 월권 행위라고 생각하는데요?”
유정의 눈이 준서의 눈과 맞부딪혔다.
“이것 참, 처음부터 쉽지 않은데.”
준서는 고개를 저으며 몸을 뒤로 했다.
“쉽지 않은 건 또 뭐죠?”
“유정 씨랑 나랑 둘 다 교육 쪽에 있다 보니까 오히려 교육을 하는데 충돌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럴까요?”
“하지만 난 이런 게 한 편으로 재밌어요. 같이 이야기하고 만들어 나가고.”
준서의 눈이 반짝였다.
“그래서 기대가 되요, 유정 씨와 함께 할 날들이.”
그의 입가에 내내 참고 있던 미소가 떠올랐다.
유정은 그제야 준서의 의도를 눈치 채고 미간을 모았다.
“정말......”
“정말, 뭐?”
“준서 씨한테는 이길 수가 없어.”
“아니 우리가 언제 싸웠나요.”
준서가 손을 들어 유정의 머리를 가볍게 부볐다.
유정은 눈을 감고 준서의 몸에 머리를 대었다.
해장국으로 속이 풀리면서, 노곤하게 몸과 마음이 녹는 것 같았다.
“정신이 좀 들어요?”
유정은 힘없는 눈을 올려 떴다.
숙취 때문일까.
맛있게 먹은 해장국은 다 게워내 버렸다. 술을 아무리 마셔도 이런 적은 없었는데.
“이거 어떡하나. 병원 갈까? 수액 좀 맞을래요?”
유정은 고개를 저었다.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준서가 그 와중에도 귀여워 입꼬리가 올라갔다.
“손, 잡아줘요.”
유정의 손에 준서의 손이 잡혔다.
“욱......”
그러나 잠시 후, 유정은 또 뱃속의 것이 올라오는지 황급히 이불을 젖혔다.
화장실까지 준서가 부축하자, 화장실 안에 들어가서 그를 가볍게 뿌리쳤다.
“나가 있어요.”
닫은 문 사이로 또 게워내는 소리가 들렸다.
해장국이 잘못된 걸까.
그러나 막상 준서는 멀쩡하기만 했다. 만약 해장국이 잘못되었으면 준서도 살짝은 증상이 있었을 텐데.
다시 화장실 문이 열렸다. 비틀거리며 나오는 유정을 준서가 부축했다.
“안 되겠다. 병원 가봐요. 이러다가 탈진합니다.”
“괜찮아요......”
“자꾸 괜찮다는 말 하지 말고.”
“잠깐, 침대에 좀 누울게요.”
기운 없는 몸을 다시 침대에 누인 유정이 고개를 들고 더운 숨을 내뱉었다.
“아무래도 내가 잘못 배달을 시켰나 봅니다. 음식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잠깐만요.”
유정이 무언가 떠오른 듯이 손가락을 꼽았다.
“어머.”
“왜요?”
“어머, 내 정신 좀 봐.”
유정은 준서의 물음에는 대답도 않고 몸을 일으켰다.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잖아.”
“뭐가요?”
“준서 씨......”
유정이 미간을 모았다.
“나 왜 몰랐을까요? 왜 아무 생각이 없었지?”
“왜 그래요, 자꾸, 무슨 말이에요? 뭐가 일주일이 지나요?”
“술 마시면 안되는 건데, 나 어떡해요, 준서 씨......”
금세 얼굴이 붉어져서 어쩔 줄 몰라하는 유정을 물끄러미 보던 준서의 미간에 갑자기 주름이 졌다.
그녀가 하지 않은 말을 그도 짐작한 듯이.
“걱정하지 마요. 일단 검사부터 해 봅시다.”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잘못되면 어떻게 해......”
“일단 일어난 일만 걱정해요.”
준서는 유정을 부드럽게 달랬다.
그러나 준서가 사온 임신진단키트에는 선명한 붉은색 두 줄이 가로놓여 있었다.
유정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어머나, 어떻게 해...... 난 그것도 모르고......”
“쉿.”
준서는 신중한 눈으로 유정을 마주 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 앉아 가볍게 어깨를 감싸 안았다.
“우리 아이가 들으면 얼마나 서운해 할까. 내일 병원가서 제대로 물어보기로 하고, 오늘은 일단 기뻐합시다, 우리.”
“그렇지만......”
“괜찮을 거에요. 원래 거의 안 마시는데 어제만 좀 마신 거였잖아요.”
준서의 몸이 단단하게 유정의 몸을 조였다.
“정말 몰랐어요. 계속 조심했어야 했는데.”
“방심한 건 나도 마찬가지에요. 콘돔을 쓰니까 괜찮을 줄 알았지. 아무래도 하늘이 내려주신 아이인가 봐요. 인력으로 막지 못한 걸 보면.”
준서는 웃으며 유정의 몸을 안아 자신의 몸 위에 올렸다. 그리고 뒤에서 두 팔로 그녀를 안았다.
“나도 유정 씨도 똑같이 실수한 겁니다. 그러니까 너무 자책하지 말고, 앞으로 같이 노력해요.”
유정은 그제야 안심의 숨을 내뱉었다.
이 남자가 이렇게 든든하게 지켜준다면, 어제의 실수도 별 탈 없이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제발 그래줬으면 좋겠지만.
“그런데, 예고도 없이 생겨서 어떡하죠? 준서 씨 내년에도 바쁠 텐데.”
“휴직할까요?”
“네? 재임용 된 지 얼마나 됐다고 휴직이에요?”
“나야 늘 유정 씨가 우선이니까.”
“그러지 마요.”
“난 휴직을 해도 퇴직을 해도 괜찮아요. 지금 그보다 더한 좋은 일이 생겼으니까.”
“준서 씨......”
등 뒤에서 들리는 준서의 목소리가 젖어 있다는 것을 감지한 유정은 몸을 돌렸다.
과연, 준서의 두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왜 울어요, 또......”
“왜......”
준서의 손가락이 유정의 얼굴을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임신이나 출산은 여자 몫일까. 아이 생긴 건 기쁜데, 유정 씨 혼자 그 힘든 걸 감당해야 하는 게 속상합니다.”
“아, 난 또 뭐라고. 괜찮아요. 그렇게 만들어진 몸이잖아요.”
“남자가 훨씬 강하고 튼튼한 몸을 가졌는데, 여자가 힘든 건 다 하는 것 같아요.”
“준서 씨는 내 옆을 지켜줘요. 그리고 아이 생기고 나서 같이 키우면 되죠.”
“물론이죠. 아이만 낳고 유정 씨는 쉬어요. 나머진 내가 다 할 테니까.”
말만이라도 고마워서 유정은 웃었다. 준서의 입술이 그 웃음 위에 내려 앉았다.
*****
“교감 선생님, 뒷일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준서의 얼굴은 완전히 흙빛이 되어 있었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터져도 늘 침착한 그였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석훈은 준서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그 표정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걱정마시고 가서 일 보십시오.”
차를 가져가려다가, 운전에 집중할 수 없을 것 같아 준서는 택시를 탔다. 초조함에 몇 번이고 엉덩이를 들썩였다.
입원실로 뛰는 발소리가 요란했다. 문 앞에 서 있던 혜신은 반가운 얼굴을 보고 손을 들어 보였다.
“하 서방.”
“아, 어머님.”
준서가 발을 멈췄다.
“소식 듣고 바로 나온 거야? 학교 일도 바쁠 텐데. 민아는 괜찮아. 뭐 아이가 한 두 번 장염도 앓고 하는 거지.”
“민아 엄마는 요?”
“민아 옆에 있어.”
혜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인사를 하고 준서가 입원실로 들어섰다.
유정은 작은 침대에 누운 아이를 물끄러미 내려다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어, 왔네. 학교 일은 어쩌구요?”
“학교 일이 중요해? 민아는 좀 어때?”
“열은 떨어졌어요. 수액 맞고 있는데...... 하...... 이 작은 몸에......”
민아는 혼곤히 잠들어 있었다.
어제부터 감기 기운이 있던 민아였다. 오늘 아침을 먹자 마자 토하고 쓰러지는 바람에 급하게 나온 것이었다.
“고생했어.”
준서가 유정의 손을 꽉 쥐었다가 놓았다.
아이 때문에 정신이 없을 텐데 그 와중에 자신을 챙겨주는 것이 고마워 유정의 입꼬리도 살짝 올라갔다.
“다시 돌아가 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민아는 괜찮을 거에요.”
“아니. 급한 일은 없어. 무슨 일 있으면 전화 올 거고.”
준서는 여전히 바빴지만, 우선 순위는 가정에 있었다. 가정에서 누가 아프다거나 일이 있으면 만사 제쳐놓고 집으로 가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별 말이 없는 것은, 그의 평소의 일처리가 워낙 깔끔하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내 욕 할 거야. 멀쩡하게 일 잘하는 사람 망쳐놨다고.”
민아의 이불을 정리하며 유정이 말했다. 유정은 육아 휴직 중이었다. 준서가 하겠다고 하는 것을 억지로 말리고 한 선택이었다.
“그런 말 하지 마. 내가 누구를 위해서 일하는데.”
“민아 아빠도 그러지 마요.”
달려오느라 축축해진 준서의 이마를 매만지며 유정은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입구에서 발걸음 소리가 났다. 자리에서 일어선 준서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아니, 자네 일 안하고 여기 있으면 어떡하나.”
우려 섞인 눈으로 다가오는 이는 진구였다.
“괜찮습니다.”
“괜찮기는. 얼른 가서 일 보게. 남자가 이런 데 드나드는 거 아니야.”
“아버님, 그런 말씀은 좀 서운합니다. 저도 민아 아빠입니다.”
“그래도 자네가 가서 일을 해야 유정이도 안심하고 아이를 더 잘 돌볼 것 아닌가.”
“그런 구분을 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육아를 엄마만 했을 때와 엄마 아빠 동시에 했을 때, 아이의 정서나 인지 발달 속도가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아휴, 또 시작이야. 아빠 그만 좀 해요. 민아 아빠도.”
듣다 못한 유정이 나섰다.
아무래도 구식의 사고를 가지고 있는 진구는 여러가지 면에서 준서와 부딪히는 부분이 많았다.
준서는 다른 면에서는 공손하게 진구의 뜻을 받아들였으나 육아나 가정에 대한 부분만큼은 양보가 없었다.
“나가죠? 늘 사위한테 지면서 이런 상황에서까지 싸워요?”
혜신까지 나서서 진구의 옆구리를 찌르자 진구가 큼큼 헛기침을 하면서 몸을 돌렸다.
“아니, 나는, 남자가, 여기까지 와서 이러는 게, 행여 학교 일에 방해될까봐 그런 건데......”
어물 어물 흐리는 진심을 들은 준서의 얼굴이 흐려졌다.
진구에게 다가간 준서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버님. 지금 심기가 좀 날카로워 실언을 한 것 같습니다.”
“아니야. 민아 아빠는 자네인데 참견한 내가 잘못이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서운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진구를 묵묵히 보던 준서가 한 걸음 더 다가서더니 그대로 진구를 끌어 안았다.
혜신과 유정의 뜨악한 눈빛이 그들을 향해 있다가 얼른 거두어졌다.
“보는 사람 많은데 그만 하게.”
아까보다는 한결 풀린 목소리로 진구가 말하자 준서는 팔을 풀고 조금 웃어 보였다.
그 때 민아가 신음 소리를 내며 몸을 뒤척였다.
“민아야.”
준서가 빠르게 몸을 돌려 침대로 다가왔다. 눈을 가늘게 뜬 민아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아빠.”
“응, 아빠 왔어.”
링거를 연결하지 않은 팔 쪽으로 손을 내밀자, 민아의 작은 손이 준서의 손가락을 쥐었다.
“아빠는 민아 아플 때만 와.”
“미안. 아빠가 많이 바쁘지?”
“아빠랑 놀고 싶어.”
“나으면 아빠랑 놀러 가자. 어디 놀러 갈까?”
“쮸쮸 동물원!”
“그래 쮸쮸 동물원도 가고 민아 좋아하는 솜사탕도 먹자.”
“우와아아아.”
환하게 웃는 민아를 보는 준서의 눈도 반으로 접혔다.
“민아야, 엄마는 같이 안가?”
옆에 다가선 유정이 질투 어린 목소리로 묻자 민아는 눈을 크게 떴다.
“엄마도 같이 가.”
“방금 엄마 얘긴 안했잖아.”
“아니야, 엄마도 같이 가아.”
달래듯이 길게 끄는 목소리에 유정의 입술 끝이 늘어졌다.
“그래, 같이 가자.”
마주하는 눈에 행복이 고였다.
준서는 민아에게 뻗지 않은 다른 한 손으로 유정의 손을 쥐었다.
그 모양을 보던 혜신이 미소했다.
“저것 봐요, 가만히 둬도 얼마나 잘 살아.”
“그런가, 내가 너무 참견하나.”
“우린 그만 집에 가요. 준서도 왔는데. 집에 수정이 와 있대요.”
“수정이?”
“유원이가 데리고 왔겠지. 집밥 먹고 싶다고 그랬다고. 임신했다고 아주 애지중지야.”
진구는 또 한 명의 생명을 생각하고 피식 웃었다.
유원은 밴드가 공중파 방송에 출연한 후로 꽤 잘 나가고 있었다. 실력파 밴드로 알려지면서 팬층도 생기고 공연 수익도 많아졌다.
복학 문제로 진구와 꽤 신경전을 벌였으나 결국은 제 길 찾아서 성공한 그를 진구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진구와 혜신이 병원 정문으로 나가는데 훤칠한 남학생이 막 병원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를 먼저 알아본 것은 혜신이었다.
“아, 사돈 총각?”
“아, 안녕하세요!”
성헌은 꾸벅 고개를 숙였다.
한국대 2학년 재학 중인 그는 교내 밴드 리더로 활동하고 있었다.
“아, 민아 보러 왔나 보구나. 지금 깨어났을 텐데.”
“네, 그럼 또 뵙겠습니다.”
다시 꾸벅 고개를 숙인 성헌이 급히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민아가 태어났을 때부터 동생이 태어났다며 부모 못지 않게 좋아했던 그였다.
“사돈 총각도 준서랑 비슷해요. 훤칠하고 잘생기고.”
“에휴, 그런데 부모가 그렇게 되어서......”
결국 성헌의 부모는 이혼을 했다. 준우는 미국으로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었고 성헌의 엄마는 시골에 내려가 동생과 살았다.
성헌은 고등학교 때까지는 준서와 살다가, 대학을 가고 나서부터는 자취를 했다. 유정과 준서는 계속 같이 지내자고 했으나 민아도 있는 상황에서 성헌은 자신이 계속 방해가 되는 것이 부담이었다.
“준서도 있고, 유정이도 담임이었다고 잘 챙겨주잖아요. 그래서 성헌이도 민아를 저렇게 끔찍하게 생각하는 거고. 그러면 됐죠.”
진구는 대답 없이 성헌이 들어간 곳을 보다가 몸을 돌렸다.
문득 아기인 유정을 집으로 데려왔을 때가 생각났다.
계속 임신이 되지 않아 기관을 찾았고, 거기에서 유정을 처음 만났다. 꼬물 꼬물 움직이는 생명을 보는 순간, 진구의 가슴이 젖어 들어갔었다.
네가 우리 딸이구나.
이후로 한 번도 남의 딸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그녀는 그의 귀한 보물이었다.
“그러게, 친부모가 아니면 어때. 서로 마음 통하는 게 가족이지, 아닌가.”
“당신하고 준서처럼요?”
툭하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끌어안는 통에 곁에 있던 혜신이 민망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진구는 대답 없이 웃었다.
진구는 따뜻하고 단단한 손으로 혜신의 손을 잡았다.
함께 걷는 그들의 발밑에 햇살이 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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