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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약혼녀 구출 작전-100화 (완결) (100/102)

100. 우리, 같이 가요.2017.09.13.

준서는 다시 깊게 심호흡을 했다.

지원자들은 줄줄이 퇴짜를 당한 듯했다. 흙빛이 되어 들어오는 남자들을 보던 준서는 황급히 시선을 내렸다.

“아니, 무슨 학교가 회사야? 왜 이렇게 일을 많이 벌였어.”

“내 말이 그 말입니다. 도대체 그 전 교장이라는 양반이 누군지......”

준서는 아무 것도 없는 손끝을 내려다 보았다.

석훈이 요구한 마지막. 그것은 교장 채용 심사에 지원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토록 절차가 중요한 사람이면, 공정한 절차를 거치라고.

그러나 준서는 이것이 과연 공정한 절차인가 싶었다. 그래서 자신을 알아챌 수 없도록 해 달라고 부탁했다.

“교장 하기에는 지나치게 젊어 보이는데.”

누군가 준서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혹시나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마스크까지 착용한 상태로 고개만 주억거렸다.

“이 전 교장도 엄청 젊은 사람이라고 들었어요.”

방금 면접을 마치고 온 사람이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젊은 사람이 생각도 없지. 무슨 일을 그렇게 많이 벌여서. 아니 왜 교장이 안해도 되는 일을 이렇게나 많이 만든 겁니까?”

“우리 끝나면 그 교장인지 뭔지 하는 사람이나 좀 두들겨 줍시다, 이것 참 화딱지가 나서.”

곧 줄줄이 성토가 이어졌다.

그 두들겨야 할 대상인 준서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가 마지막 지원자 나오라는 안내를 받고 대기실 밖으로 나갔다.

떨리는 발로 복도를 디뎠다.

1년 동안 수차례 오갔던 복도인데, 지원자의 심경으로 걷는 것이 신기했다.

“이제 마지막 지원자입니다. 면접 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저, 마지막도 마음에 안 들면 어떻게 하는 겁니까?”

“이전 교장 선생님이 다시 오실 수도 있는 겁니까?”

석훈의 안내에 줄줄이 불만 가득한 질문이 이어졌다.

“그건, 마지막 면접을 마친 후에 다시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석훈이 말했고 그 순간 회의실에 그 마지막 지원자가 들어섰다.

곧 전보다 더 날카로운 질문 공세가 시작되었다.

“교사 동아리가 현재 학교에 21개가 있는 상황인데요, 이 중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해야 할 동아리가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질문이 떨어지자 왜 처음부터 그런 질문을 하느냐는 눈초리가 이어졌다. 어차피 기대도 안한 사람인데, 학교 사업 중의 가장 핵심 사업에 대해 질문을 한 것이었다.

잠시 저 쪽의 상대는 긴장을 하는 듯이 말이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음성 변조된 목소리가 장내를 울렸다.

“처음 시작은 ‘교사 독서 동아리’ 였습니다. 교사 업무와 연계된 동아리였기 때문에 그것을 근거로 작성한 보고서가 시교육청 표창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업무와 연계되지 않은 동아리라도 결국에는 어떤 식으로든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교사는 삶으로 가르치는 교사고, 학생들이 배우는 것도 단순한 지식이 아닌 교사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교사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런 철학을 가진 사람은 그들이 알고 있는 사람 중 한 사람 밖에 없었다.

“따라서 모든 동아리가 다 필요하지만, 모든 동아리를 다 지원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역량 있는 교사들을 세워서 그들이 동아리를 이끌어가도록 지원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 역량 있는 교사들을 따로 만나 그들로 하나의 모임을 만들어 운영해 나가려고 합니다.”

점차 심도 있는 질문들이 더해졌고, 답변은 막힘 없이 이어졌다.

교사들이 마주하는 시선에 점차 웃음이 감돌기 시작했다.

수연은 유정의 팔을 쿡 찔렀다.

“유정 쌤, 설마 몰랐다고 하지 마. 진짜 아무 말도 없었던 거 맞아?”

“저한테도 아무 말 없었다니까요. 출근 잘 하라고 하고.”

유정은 잔뜩 서운한 감정으로 커튼 뒤의 실루엣을 노려 보았다.

“이제 면접은 끝났습니다. 투표로 결정해 주시면 됩니다.”

석훈이 말을 마치자마자 교사들은 서로 목소리를 높였다.

“저, 누군지 다 아는데 이제 커튼 좀 걷으면 안될까요?”

“지원자 얼굴 좀 보고 싶습니다.”

“복면 가수왕도 아니면서...... 임용 기념으로 노래 한 번 시킵시다.”

회의실은 금세 난리가 났다. 석훈도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유정은 홀로 뾰로통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는 듯이 평온했던 어제의 목소리가 다시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았다.

“진짜, 너무해!”

준서가 차에 타자마자 유정은 그의 가슴을 떠밀었다.

“허, 무슨 선택을 해도 지지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미리 말은 해줄 수 있었잖아요.”

“그건 공정한 것이 아니죠.”

“공정은 무슨. 첫 답변부터 저는 누군지 알았거든요. 누구 고집 때문에 우리 다 이게 무슨 고생인지 몰라요.”

입을 비죽 내미는 유정을 보고 준서는 그 입술에 자신의 입을 맞췄다.

“그러게요. 저도 좀 후회했습니다. 같이 지원하신 분들이 계속 제 욕을 하셔서.”

“준서 씨 욕이요?”

“왜 학교 운영을 이렇게 하냐, 왜 이렇게 일을 많이 만드냐, 적당히 좀 하지 너무한 거 아니냐, 이래놓고 왜 그만 두고 나가냐...... 평생 들을 욕을 다 들은 것 같아요.”

유정은 얼굴이 빨개지도록 웃었다.

원치 않게 지원자 대기실에서 준서가 말도 못하고 겪었을 수모를 생각하니 안쓰러운 한 편 고소하기도 한 것이었다.

“그래도 싸요. 우리 다 마음 고생하게 만들고, 방학에도 출근하게 만들고!”

“그래서 벌 받았나 봅니다. 다행히 오래는 살겠네요.”

투표 결과 압도적인 득표로 준서가 다시 교장으로 임용되었다.

그가 그토록 원하던 ‘공정한 절차’를 거친 터라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게 생겼다.

“덕분에 우리 여행도 늦어졌잖아요.”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그들은 1박 2일 여행을 가기로 했었다.

교장 임용만 아니면 아침에 벌써 떠났을 텐데.

“지금이라도 가면 좋죠. 그런데 운전 괜찮겠어요? 서로 바꿔가며 합시다.”

“아뇨. 요즘 한창 재미 들려서요. 준서 씨는 편히 쉬기나 하세요. 오늘 많이 긴장했을 텐데.”

유정이 미소했다.

도착한 펜션은 겨울 바다가 보이는 독채 펜션이었다.

오후에 출발해서 도착하니 벌써 밤이라, 도중에 준비한 바비큐 재료로 고기를 구워먹고 나서 바다가 바라보이는 펜션 앞 그네에 나란히 앉았다.

“춥지 않아?”

준서가 팔을 벌려 유정의 어깨를 안으며 속삭였다.

“조금.”

“이리 좀 더 와.”

무릎 담요를 덮어준 준서가 유정의 어깨를 안은 팔에 힘을 더했다.

“평화롭네요.”

밖이라 조금 쌀쌀하긴 했으나, 준서가 곁에서 안아주니 마음은 풍요로웠다.

“그러게. 참, 오랜 만의, 평화네.”

준서는 띄엄 띄엄 말하며 눈 앞을 보았다.

숨가쁘게 살아왔던 지난 날이었다. 죄책감으로, 혹은 열정으로 불태웠던 날들이 파도 속에서 다 부스러져 먼지 조각이 되어 버리는 듯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도 삶이니까. 현재의 나에게 어떤 것이라도 남겼겠지.

그래서 하나도 버릴 수 없다. 상처든, 좋은 기억이든.

모두 내가 품어 안아야 할 삶이니까.

“무슨 생각 해요?”

유정이 준서의 품에 머리를 대었다.

“당신은 나 만나서, 행복해?”

준서의 호칭이 변한 것을 유정은 눈치 채지 못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당신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이미 충분히 그래요.”

유정의 이마가 바닷 바람에 쓸렸다.

그 이마 위로 준서는 뜨거운 입술을 내렸다.

그네가 옅게 흔들리는 위로 파도 소리가 자박 자박 쌓였다.

그들의 고인 시간도 따스하게 흘렀다.

“뭐죠?”

어둠이 내려앉은 바다 저 편으로 짙은 라이트 불빛이 보였다.

다가오는 것은 분명 자동차였다.

펜션은 여기에 하나 뿐이었고, 독채 펜션이라 다른 차가 이 곳에 올 이유는 없었다.

“누구야.”

준서가 일어서는 순간, 멈춰선 차에서 누군가가 내렸다.

“삼촌!”

“네가 여기는 어떻게 왔어?”

준서와 비등한 키로 달려와 훅 안겨 버리자, 어지간한 준서도 비틀거렸다.

유정은 뒤이어 내리는 무리에게로 눈을 돌렸다.

“유정아.”

부드럽게 웃고 있는 이는 분명 수정이었다. 집과의 인연을 끊은 후, 지금은 받은 돈으로 따로 나와 살면서 영어 학원 강사를 하고 있었다.

그 옆에서 수정의 손을 잡고 걷고 있는 사람은......

“야! 서유원!”

유정은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 당장 니킥을 날리려다 수정 때문에 부들 부들 떨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왜?”

“너, 너 진짜...... 복학 신청 안했다면서?”

“어? 어떻게 알았지?”

“야! 너 그렇게 아빠랑 약속해 놓고!”

결국 니킥을 시전하고 말았다. 유원은 괴성을 지르며 수정의 뒤에 숨었다.

“아, 진짜, 괴물!”

“너 또 사고 치려고!”

“그게 아니라, 내년 초에 롹 페스티발 있단 말이야. 그거 참가 해야 해서 복학을 할 수가 없어. 아버지한테도 다 말씀 드릴 거야.”

“그래, 유정아. 유원이 정말 열심히 하고 있어. 믿어줘.”

이번에는 수정이 부드럽게 유정을 달랬다.

수정까지 나서자 유정도 더 이상 뭐라고 하지 못하고 유원을 노려보기만 했다.

“아, 준서 형님도 속상하게 해서 아버지랑 싸웠다면서.”

“그 속상한 거 오늘 해결 됐거든.”

“그럼 더 잘됐네. 형님! 저 왔습니다!”

유원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준서는 싱긋 웃었다.

유정은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준서를 돌아 보았다.

“설마, 준서 씨가 부른 거예요?”

“그럼, 이 바쁘신 몸이 이 곳까지 그냥 행차하진 않지. 허헛.”

“차는 또 뭐고?”

“아, 저거? 수정 씨 차야.”

“아이구, 이 기생충아! 차도 기생해 매번 데이트 비용도 기생해...... 내가 미안해서 수정이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다!”

다시 다리를 드는 것을 수정이 가까스로 막았다.

“그러지 마. 유원이 충분히, 나에게 좋은 사람이야.”

“그래. 그렇다잖아.”

유원이 양 손을 위로 펼치며 말했다. 유정은 더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혀만 끌끌 찼다.

“참, 우리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준비하자.”

유원이 성헌에게 무언가를 말하자, 성헌은 네, 하고 대답하고 유원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곧 그들의 손에서 보면대와 기타, 앰프 등등이 들려져 나왔다.

“뭐야?”

“뭐긴 뭐야. 특별 공연이지. 다시 말하지만 나 비싼 몸이거든. 함부로 이런 거 해주지 않아.”

유원은 그렇게 말하고 펜션 옆에 있던 플라스틱 의자를 가져다가 세팅을 했다.

곧 소규모 공연장이 꾸며졌다.

반주는 기타 하나 뿐이었지만 파도 소리와 더불어 운치 있는 공연장이었다.

“그럼, 첫 곡은 가볍게 시작해 볼까?”

유정과 준서는 원래대로 그네 위에 앉고, 수정은 성헌과 나란히 그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유원은 말할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조용한 곡을 불렀다.

그의 기타 소리가 파도 소리에 젖어 들어갔다.

“아, 좋다.”

유정은 자기도 모르게 박수를 했다. 동생의 공연을 제대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건 맛보기였고. 성헌아, 너도 나와서 한 곡 해.”

“제가요?”

물으면서도 성헌은 비틀 비틀 무대로 나갔다.

유원은 수정의 옆에 앉아서 다정하게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성헌의 무대는 아까보다는 꽤 신이 나는 무대였다. 곧 박수 호응이 이어졌다.

성헌이 노래를 마치자 유원이 다시 나갔다. 두 사람이 함께 부르는 노래는 묘하게 섹시했다.

“뭐야, 저거...... 이상해, 두 사람 분위기!”

유정이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키며 말했고 수정은 얼굴이 빨개진 채로 웃고만 있었다.

무대가 끝나자 잠시 적막이 흘렀다.

“재밌다! 진짜 여기서 우리끼리 이렇게 들으니까 너무 재밌어요. 그쵸, 준서 씨!”

유정이 준서의 팔을 건드리며 말했으나 준서는 입을 꾹 다문 채 말이 없었다.

“왜요, 어디 아파요?”

“아니.”

준서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마지막 무대입니다. 실은 이 무대의 하이라이트죠.”

유원은 마이크에 대고 그렇게 말한 후 준서를 바라 보았다.

“나오시죠, 형님.”

“어, 준서 씨도 공연해요?”

“하, 노래는 별로 소질 없는데. 귀엽게 봐줘요.”

준서가 유정의 볼에 살짝 입을 맞추고 걸어나갔다.

오전에 공개 면접을 볼 때보다 더 떨렸다.

천천히 무대 의자에 앉은 그는, 유원이 연주하는 기타 반주에 맞추어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대를 처음 본 날 할 말은 생각이 나지 않고

집에 돌아와 그냥 그대가 다시 보고 싶었죠

그대가 웃었던 것과 손을 내밀던 것

놀라던 것과 친근하게 말하던 것이 생각 나서

자꾸만 피식 피식 웃음이 났어요.

캄캄하던 삶이 그대의 빛으로 물들고

외로웠던 손에 그대의 손이 겹쳐지고

함께 가는 삶이 기대로 충만해지고

그렇게 나는 당신을 사랑하게 됐어요

내 존재의 이유

바로 사랑하는 당신

이제는 오래도록 함께 하기를.

그대와 나에게 약속해요.

준서의 눈에 물기가 반짝였다.

유정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기타를 놓은 유원이 박수했다.

“뭐하세요, 형님!”

유원이 재촉하자 준서가 어색한 얼굴로 일어섰다.

천천히 유정에게 다가선 그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오늘, 대답해 준다고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품에 넣은 준서의 손에서 작은 보석함이 딸려 나왔다.

“정말, 내가 못 살아!”

유정이 웃음을 터뜨렸다. 준서가 보석함을 열었다.

그 순간, 달빛을 모조리 흡수한듯이 찬란한 보석이 빛을 발했다.

준서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유정의 약지에 끼웠다.

“약속해 줄 수 있어?”

유정은 반짝이는 다이아를 바라 보다가 미간을 살짝 모았다.

“너무 크잖아요. 이렇게 비싼 건 필요 없는데......”

“아무리 반짝여도,”

준서의 손이 다이아를 낀 유정의 흰 손을 어루만졌다.

“내 마음에 당신만큼 반짝이는 건 없어.”

“정말!”

유정이 웃으며 고개를 내렸다.

준서의 이마에 뜨겁게 닿는 촉감에 그의 눈이 살짝 감겼다 뜨여졌다.

“나도.”

유정이 환하게 미소했다.

“나도 사랑해요, 준서 씨. 우리, 같이 가요.”

준서는 천천히 일어섰다.

벌써 무대는 치워지고 있었다. 유원은 성헌을 펜션 안으로 억지로 떼밀었다.

“이럴 땐 눈치가 있어야 하는 거야.”

“아, 조용히 하면 되잖아요.”

“조용히 해도 안돼. 아까 못 봤어, 니킥? 내가 죽는다고.”

수정은 옆에서 웃으며 유원을 따랐다.

남겨진 커플은 달빛 아래서 하나가 되었다.

고요한, 그리고 달콤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본편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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