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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약혼녀 구출 작전-97화 (97/102)

97. 이건 당신이 지나치게 사랑스러운 탓이야2017.09.10.

“대체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일어선 사람은 뜻밖에 정인기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정인기가 이럴 줄은 몰랐기 때문에 다시 놀란 목소리들이 삼켜졌다.

“이렇게 무책임하게 구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무책임하다뇨?”

“그럼 이게 정상이라는 말입니까? 선생님도 1년 하고 그만 두지 않아요. 그런데 교장 선생님이, 정년 퇴임 앞둔 것도 아니면서 무슨 일을 이 따위로 하십니까.”

준서는 멍한 기분으로 정인기를 마주 보았다.

반발이 심할 거라고 생각은 했으나 그 대상이 정인기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 행동의 이유는 충분히 설명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애써 감정을 수습하고 준서는 그렇게 답했다.

“그리고 제가 떠나야......”

제가 떠나야 선생님이 좀 더 편하게 계실 수 있을 거라고, 그 말은 삼켜 버렸다.

정인기는 화를 잠재우지 못하고 그냥 회의실을 나가 버렸다.

모두의 시선이 따라오는 것을 느꼈으나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얄미운 놈이었다. 처음부터 그랬다.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을 거절하고 처음부터 차갑게 굴었다. 그가 하는 모든 행동들에 트집을 잡고 곧 쫓아낼 것처럼 으르렁 거렸다.

아마 1학기를 마치고 나가겠다고 했으면 인기는 쌍수를 들고 환영했을 것이다.

그러나 2학기가 되면서,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고 학교는 인근 학교에도 명성을 드러내면서 점점 좋은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인기의 평판도 덩달아 올라갔다. 그 학교 교사라는 것만으로도 주변에서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인기의 이웃에 사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중학교에 다니는 자녀가 그 학교에 입학할 수 있냐고 끈질기게 묻기도 했다.

그것은 결코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아니, 오히려 목에 힘주고 다녀도 좋을 만큼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비록 인기가 그것에 전혀 공헌한 바가 없어도.

그런데 멋대로 떠난다니. 그러면 학교 평판은 도로 엉망이 될 것이다.

인기는 망설이다가 휴대폰을 들었다. 한 번 크게 혼이 난 후로는 연락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에게 연락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나한테 상의 한 마디도 없이!”

윤택은 오랜만에 진노했다.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준서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반쯤 숙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네 마음대로 하는 거 다 참아주고 기다렸지 않으냐. 대체 뭐가 부족해서!”

준서가 고개를 들었다.

역시 믿었던 이를 실망시키는 것은 아팠다.

“할아버지께서 화가 나시는 것 이해합니다. 꾸중하시면 듣고 회초리를 들면 맞겠습니다. 하지만 제 뜻을 굽힐 수는 없습니다.”

“너는, 정말......”

윤택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돌덩이처럼 단단한 의지였다. 그리고 윤택이 준서를 사랑하는 면이기도 했다.

“그래, 너는 네 양심 지키자고 그렇게 행동했는데. 학교는 그럼 어쩌자는 거냐? 응? 겨우 일 년이야. 일 년 근무하자고 내가 그런 몹쓸 반대를 다 무릅쓰고 널 거기 보냈는 줄 알아? 그런데 일 년 하고 나오면 나는 뭐가 되며, 또 학교는 뭐가 되겠느냐.”

준서는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있었으나, 윤택은 자신이 아무리 이렇게 말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를 정말 크게 키워주고 싶었는데.

“그래서, 거길 나와서 이제 뭘 하겠다는 거냐.”

윤택은 반쯤 포기한 상태로 쓸쓸하게 물었다.

“아직 확실하게 정해진 건 없습니다.”

“확실하게 정하지도 않고 학교부터 그만 두겠다는 거야?”

“쉬고 싶습니다. 이제까지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습니다. 생각도 정리하고, 앞날도 정리하고 싶습니다.”

준서는 공손하나 분명한 의지가 깃든 어투로 말했다. 그리고 잠시 생각을 다지듯이 아래를 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를 닮고 싶었습니다. 저희 집에 오셨을 때, 그 힘으로 어머니를 지켜 주시는 것이 좋았고 저도 자라면 그런 정의로운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뜻을 따르며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러면 제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될 줄 알았습니다.”

고개를 든 준서의 눈이 물기가 어린 듯이 반짝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제 힘과 의지로 세상을 바꾸는 것이 다른 누구에게는 화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강력하게 남을 지배하는 것보다, 세상에는 서로의 뜻을 평등하게 나눌 수 있는 소통의 힘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도 새로 깨달았습니다. 그 소통을 통해 바른 생각이 힘을 얻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역할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윤택은 입을 다물었다.

준서의 생각을 절대적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준서가 살았던 세상 속에서는 적어도 준서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윤택과 준서의 세상은 달랐다. 준서가 살아가는 세상은 좀 더 평등하고 민주적인 가치가 빛을 내는 세상이었다.

“그럼 그런 곳을 네가 만들면 되지 않아. 왜 하고 싶은 대로 다 해줬는데 간다는 거야.”

“첫단추부터 잘못 되었으니까요. 제가 임용된 것부터가...... 할아버지의 힘이었지 않습니까.”

민주적인 소통을 위해서는, 임용 절차부터가 민주적이어야 했다. 그러나 준서는 그렇게 시작하지 않았다.

그가 무슨 일을 하든, 스스로가 그것이 걸림돌이 될 것이었다.

“얄미운 녀석.”

윤택은 그렇게 말하고는 곰방대를 꺼내 준서의 머리를 가볍게 내리쳤다.

준서는 아, 소리를 내며 머리를 숙였다.

“응? 아무리 그래도 내 이름에 먹칠을 하고 학교를 그 지경을 만들어? 지금 나한테 하루에 걸려온 전화가 몇 통인 줄 알아? 널 어떻게든 설득시켜 달라고 하는데 뭐 말을 들어 먹어야 말이지. 심지어는 정인기까지 매일 전화를 한다고.”

“네?”

준서가 고개를 들었다. 회의실에서도 그의 말과 행동은 믿을 수 없는 것이었는데, 전화까지 했다니 더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그 분은 제가 가면 가장 좋아하실 분인데......”

“제일 먼저 전화했어. 그리고 끈질기게 나한테 매달리는 중이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도대체 뭐가 아쉬워서.”

“내가 그러면 거짓말을 하겠어? 너 때문에 노년에 이게 무슨 고생이냐. 애를 써서 키워놨더니만 은혜를 원수로 갚아?”

원망스러움을 담아 곰방대를 몇 차례 더 내리쳤다.

준서는 팔과 등에 닿는 매를 묵묵히 맞았다. 그냥 넘어갈 것이라고는 어차피 생각하지 않았었다. 자신이 윤택에게 한 잘못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가볍게 넘어가는 것이 오히려 그의 입장에서는 죄스럽기도 했다.

“다 끝났어요?”

준서가 집에 들어오자, 유정이 앞치마를 한 채 현관으로 뛰어 나왔다.

“집에, 있었어요?”

서로 자주 드나드는 사이라 준서의 집에 들어오기 위한 지문 입력을 유정도 한 상태이긴 했으나 이렇게 말도 없이 있었던 적은 처음이었다.

“걱정되어서. 할아버지 뵈러 갔었다면서요. 또 어디 맞고 오지나 않았는지 싶어서.”

준서는 손을 들어 유정의 머리를 부드럽게 매만지다가 팔을 벌려 끌어 안았다.

숨이 막힌 유정이 흑 소리를 내도록 강하게.

“걱정했었구나.”

“그럼 걱정하죠. 그 날도...... 진짜 내가 그 날 너무 놀라서.”

“나도 놀랐어요. 그 때 내 옷 벗기고 멋대로 고등학교 때 체육복을 입혀 놨었잖아.”

준서가 웃으며 포옹을 풀고 식당으로 걸어갔다.

식당에는 벌써 푸짐한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몸이 그 지경이 되어서 옷도 안 벗고 땀 흘리면서 자고 있는데 그러면 나더러 어떡하라고요? 최대한 몸 안 보려고 노력하면서 한 거예요.”

“보긴 봤을 거면서.”

유정이 준서를 노려보다가 가볍게 손을 들어 그의 등을 내리쳤다.

그런데 준서가 강도에 비해 지나치게 아픈 모양으로 몸을 숙였다.

“왜 이래요, 내가 너무 아프게 때렸나?”

“아, 아냐.”

숨기려는 모양을 보고 유정은 대번에 눈치를 채고 말았다.

“이리 와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또 혼나고 왔죠?”

침대로 끌리듯이 들어간 준서는 유정의 기세에 꼼짝 없이 침대에 엎드려 등을 보이고 말았다.

유정은 손으로 입을 막았다.

윤택이 화가 난 상태에서 내리친 거라 준서의 팔과 등에는 시뻘건 자국이 나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또 맞은 거예요? 다른 데는 어때요?”

“다른 데는 안 맞았어요. 이것도 그냥 가볍게 맞은 거야. 생각보다 많이 혼나지도 않았고.”

“거짓말.”

그러나 유정은 말을 들으려는 생각이 없이 그대로 준서의 바지를 벗겼다.

“뭐하는 거야!”

준서가 놀라 얼른 바지를 끌어 올렸다.

“진짜 아니에요. 하, 진짜 유정 씨, 행동력이 너무 좋아.”

“정말이에요?”

“그럼 내가 왜 거짓말을 합니까.”

“알았어요. 그러면 등이나 좀 봐요. 혹시 약 상자 같은 건 없어요?”

약 상자를 가져온 유정이 준서의 벗은 등 위에 조심 조심 약을 발랐다.

등 위에 꼬물거리는 움직임에 준서의 몸도 덩달아 움찔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준서는 슬쩍 유정의 눈치를 보다가 입꼬리를 올렸다.

“다른 데도 때려달라고 할 걸 그랬나......”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유정은 준서의 상처를 보는 것만으로도 속상한데, 그는 오히려 기분이 좋아서 있는 꼴이 서운했다.

“그만 좀 해요. 왜 이렇게 맞고 나니고 상처 내고 다녀요? 앞으로는 내 허락 맡고 다쳐요.”

준서는 고개를 숙이고 웃다가 약을 바르고 있는 손을 끌어당겨 유정을 침대 옆에 뉘었다.

“알겠습니다. 앞으로 내 몸은 당신의 것, 모든 걸 당신 허락 하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런다고 안 봐줘요.”

“생각해 보니까, 내가 다른 데도 좀 맞은 거 같은데.”

준서는 여전히 장난스러운 얼굴이었으나 유정의 눈은 크게 뜨였다.

“네? 다른 데도 맞았다구요? 어딜요?”

“글세, 그건 유정 씨가 찾아봐요.”

“뭐야, 아깐 아니라고 해놓고. 벗어 봐요.”

“대신에.”

그녀의 이마에 쪽 입을 맞춘 준서가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유정 씨도 같이 벗읍시다.”

“네에?”

“아, 진짜 못 참겠네. 이건 당신이 지나치게 사랑스러운 탓이야.”

준서의 손이 순식간에 유정의 겉옷을 벗겼다. 처음에는 당황해하던 그녀는 점차 얼굴에 진한 미소를 담으며 상대를 마주했다.

“밥은, 안 먹어요?”

“밥보다 당신이 더 고픈데.”

“실은, 나도.”

준서의 고개가 내려가 유정의 입술을 거칠게 탐했다.

그의 손이 유정의 브래지어 호크에 닿았다. 툭 풀어지는 감각에 유정의 몸이 움찔했다.

브래지어 속에 숨은 가슴으로 준서의 손이 들어갔다. 매만지는 손길에 신음 소리가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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