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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약혼녀 구출 작전-90화 (90/102)

90. 다섯 번 안에 맞추면 상 줄게요2017.09.03.

“꺄악!”

“왜 그러세요?”

유정은 놀라서 얼른 컴퓨터를 껐다. 그러나 전송은 되었을 것이었다.

부들 부들 떠는 등 뒤로 누군가 그녀를 흔드는 기척이 느껴졌다.

“선생님.”

누구야, 대체. 왜 하필 지금 나타나서.

몸을 홱 돌린 곳에, 성헌이 벙벙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괜찮으세요?”

“아, 어, 어...... 왜?”

“저, 인사 드리러 왔어요. 집에 잘 들어갔다고 말씀 드리려고요......”

“아, 그랬어?”

유정은 애써 호흡을 가다듬으며 정신을 차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 고생했어. 많이 혼나진 않았어?”

“안 혼난 건 아닌데...... 예상보다는 훨씬 적게 혼났어요. 삼촌이 저 대신 혼났다고...... 제가 진짜 몸둘 바를 모르겠어요.”

성헌이 괴로운 듯 이맛살을 찌푸리며 뒷머리를 긁었다.

“다신 그러지 마. 함부로 집 나오지도 말고.”

“네, 그래야죠. 앞으로는 공부도 열심히 하기로 했어요.”

성헌은 싱긋 웃었다. 몇 마디 이야기를 더 주고 받고는, 유정은 성헌을 돌려 보냈다.

수연이 기다렸다가 고개를 삐죽 내밀며 물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컴퓨터 고장났어?”

“아, 아뇨.”

차라리 컴퓨터 고장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냥 고장이라고 하고 컴퓨터 켜지 말까.

심란한 기분으로 앉아 있는데, 연구부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렸다. 전화를 받아든 인기가 불편함이 가득 묻은 얼굴로 유정을 노려 보았다.

“가봐, 찾네.”

“네? 누가요?”

“누구긴 누구야. 유정 쌤 물고 빠는 놈이지.”

전화기를 던지듯이 놓고 인기는 담배를 가지고 나가 버렸다.

그 뒷모습을 보다가 유정은 한숨을 쉬며 몸을 일으켰다.

“왜, 왜? 뭐 잘못한 거 있어?”

그제야 수연도 심각함을 눈치챈 듯이 고개를 쳐들며 물었다. 유정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잘못은 아닌데. 아아, 진짜......”

교장실로 가는 동안 무슨 일이라도 생겼으면 좋겠다. 그녀의 발걸음을 막을 만한 엄청난 일이.

그러나 이런 일에는 늘 그렇듯 최대한 느리게 걸었음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노크를 하자 평소와 같은 음성으로 ‘들어오세요’ 하는 목소리가 났다.

문을 열고 유정은 고개를 푹 숙였다. 얼른 문을 닫고 나서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준서에게 다가왔다.

“왜 그래요, 뭐 잘못한 거 있어요?”

준서의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울려났다.

“네, 제가 실수를 해서......”

“실수요? 뭘 실수한 거죠? 이름을 틀렸나? 아닌데.”

“교장 선생님.”

유정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 앞에는 예상대로 곧 터질 듯이 얼굴이 붉어진 준서가 앉아 있었다.

“놀리는 건 1절만 하세요. 나도 부끄러워 죽고 싶으니까.”

“놀리는 거 전혀 아닙니다. 그냥 나도 묻고 싶은 게 있어서요.”

“뭘요?”

삐쭉 튀어나오는 목소리를 듣고도 준서는 참을 수 없는 듯이 낮게 웃었다.

“유효한 건가요?”

“뭐가요?”

“그 이야기 하고 나서 바로 헤어지게 되어서 난 그 약속이 유효한 줄 몰랐지. 그런데 오늘 메신저 보니까 유효한 거 같은데요.”

“자꾸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결혼요.”

준서가 일어서서 성큼 유정에게 다가왔다. 유정은 파르르 몸을 떨며 물러났다.

“내가 먼저 하자고 하지 않았어요? 나는 똑똑히 기억하는데.”

그랬다. 언젠가 준서가 말했었다. 유정도 거절하지 않았었고. 헤어지기 이전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 그랬던 거 같네요.”

“그래서 이런 이야기 하는가 하고.”

그게 아니라 제 실수에요. 발표라고 하니까 결혼 발표라는 말이 생각나서 괜히 쳐본 말이라고요.

유정은 내뱉으려던 말을 입 속에 삼켰다.

준서의 눈이 눈 앞에 반짝였다. 유정의 얼굴을 양쪽 눈에 담고 해맑게 웃는 얼굴에 햇살이 닿아 있었다.

“네.”

유정은 그렇게 말하고 눈을 내려 버렸다.

“아, 그렇다고 발표를 하라는 말은 아니고요.”

다시 눈을 든 유정이 양손을 내저었다. 그 모양을 물끄러미 보던 준서가 쿡 웃더니 유정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이마에 스치듯이 준서의 입술이 닿았다.

학교에서는 너무 오랜만이라 그럴까, 심장에 폭격이라도 맞은 듯이 온 몸이 쿵쾅거렸다.

“나도 실은 실수한 거 알고 부른 건데.”

준서가 약간 멋쩍은 얼굴로 나직하게 말했다.

“네?”

“그런데 이렇게 아니라고 할 줄 몰라서 저도 당황했습니다.”

뭐야, 알고도 장난 친 거야.

유정이 입을 헤 벌리자 준서가 손을 들어 유정의 입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건드리고는 그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술을 비볐다.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냐고 유정이 차마 말이 나오지 않는 입은 다문 채 눈으로 묻자, 준서는 대답을 하는 대신 싱긋 웃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학교에서는 조심해야 해서 말이죠. 나야 상관 없지만 유정 씨가 뒷소문 무성한 거 나는 싫거든.”

“지, 지금 놀자고 저 부르신 거예요?”

“아뇨. 회의 주제 궁금해 하길래. 궁금한 거 아니었어요?”

준서가 정색하고 묻자 유정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준서에게 다가갔다.

“네, 네! 뭐예요, 오늘 갑자기 왜 회의를 하는 거예요?”

“메시지에 답을 하자면, 유정 씨와 관련된 일입니다.”

“네에?”

설마, 진짜 결혼 발표란 말인가. 그런데 아직 부모님 허락도 없었는데 어떤 준비도 없이 그렇게 막무가내로 발표해도 될까.

“그런데 결혼 발표는 아니에요, 아쉽지만.”

준서가 가볍게 입맛을 다셨다.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유정은 놀란 가슴을 쓰다듬으며 그의 말에 동조했다.

“그쵸, 그건 너무 이르잖아요. 아무 준비도 안하고.”

“그리고 저는 일단 유정 씨 마음 확인한 걸로 만족하기 때문에.”

준서가 양 손을 깍지를 낀 채 그 위에 턱을 얹었다. 유정은 당했다고 생각하며 몸을 뒤로 물렀다. 은근슬쩍 마음을 다 이야기하고 말았다. 억울함에 우물 우물 입술을 씹는데 준서가 웃음기가 머문 입술을 다시 벌렸다.

“급할 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잖아요. 지금 제 마음은 이미 신혼여행지에 있습니다만.”

“준서 씨.”

“하지만 차근 차근, 순서 대로 다 할 겁니다. 프러포즈도 제대로 할 거고.”

유정의 입술이 다물렸다. 프러포즈 필요 없다고 말하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불필요한 것은 낭비하지 않았으면 하는 한 편, 또 받을 수 있는 것은 받고 싶은 마음이 공존했다.

“내 아내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 주고 싶거든요.”

“하......”

유정은 잠시 고민하던 것을 내려놓고 마주 웃고 말았다.

“그러니 아직 아니에요.”

“아, 네. 그럼......”

“맞춰보세요.”

준서는 태연하게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때 노크 소리가 울렸다.

“저, 지금 부장 회의 가야 하거든요.”

“네?”

“다섯 번 기회 드릴게요. 메신저로 연락해요. 다섯 번 안에 맞추면 상 줄게요.”

뭐라는 거야, 이 남자가.

경악한 유정에게 눈웃음을 짓고 준서가 성큼 성큼 문으로 가며 곧 나간다는 말을 전했다.

유정은 질린 얼굴로 그런 준서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뭐야, 많이 혼났어?”

질린 얼굴로 들어선 유정에게 수연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이걸 혼났다고 해야 하나. 차라리 혼나는 것이 나을까.

“언니, 언니는 교장 선생님이 왜 회의를 소집했다고 생각해요?”

유정은 일단 당면한 과제를 해결해 보기로 했다. 다섯 번이라, 상을 받고 싶기보다는 뭔가 이기고 싶은 생각이 더 강했다.

“응? 나야 모르지. 유정 쌤이랑 관계 있는 거 아니고?”

“관계 있는 건 맞다는데......”

“정말? 그러면 공개 연애 하겠다는 거 아니야?”

수연은 잔뜩 속삭이듯이 말했으나 유정은 제풀에 놀라 수연의 등을 가볍게 때렸다.

“아, 언니, 누가 들어요.”

“누가 듣는다고 그래. 그것 밖에 없는데. 유정 쌤하고 관련된 게 어디 있어.”

유정은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아니었다. 준서가 유정과 합의하지도 않고 그런 것을 함부로 공개할 리가 없다.

그러면 대체 뭐란 말인가.

“뭐, 시험 문제 출제하느라 수고했다고 뭐라도 주시려나.”

유정이 연구부고 고사 담당이라서 그런 걸까.

“뭘? 그건 더 아닌 것 같은데. 주실 거 있으면 굳이 회의실로 왜 불러? 교무실로 배달 시키면 되지.”

그건 수연의 말이 맞았다.

“그럼 대체 뭐냐고.”

유정은 머리를 긁었다. 아무리 긁어도 머릿 속에서는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다.

준서는 입술을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애써 삼켰다.

아직도 갑작스런 메시지를 받았을 때의 그 기분을 잊을 수 없었다.

오늘 해결해야 할 일, 그리고 조금 후 회의에서 있을 중대 발표 때문에 아침부터 두통이 있었다. 두통약 두 알을 먹었지만 조금도 듣지 않아서 괴로웠는데.

그녀의 메시지를 본 순간 웃음이 나며 두통도 씻은 듯이 사라졌다.

결혼 발표라니.

진짜 미친척하고 해버릴까. 준서는 혼자 웃다가 고개를 저었다.

다시 메신저를 켜 보았다. 부장 회의에 다녀오는 사이 무슨 생각이라도 했을까.

맞추면 상을 준다는 이야기는, 오늘 하루 종일 유정이 자기 생각을 했으면 해서 한 말이었다. 반은 장난이기도 했는데 그녀 성격에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 같기도 했다.

과연 메시지가 한 통 더 와 있었다.

‘결혼 발표가 아니면, 교제 발표인가요?’

준서는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로 웃으며 엎드려 버렸다.

이럴 줄 알았어, 이 순진한 여자야.

준서는 손을 컴퓨터 위에 올렸다. 손 끝에 닿는 감촉이 좋았다.

‘결혼 발표도 교제 발표도 아닙니다. 이제 4개 남았네요.’

서류를 꺼내 들었다. 집중하는 종종 그의 눈은 메신저를 살폈다. 수업에 갔나, 얼른 답이 오지 않았다.

‘그럼 대체 왜 저랑 관련된 건가요? 결혼 발표도 교제 발표도 아니면 저랑 관련된 건 없어 보이는데요.’

한참 후에야 불퉁한 목소리로 말하는 듯한 답이 돌아왔다. 준서는 보던 서류를 놓고 빠르게 손가락을 놀렸다.

‘그럴까요? 다양하게 생각해 보세요. 우리 관계만 생각하지 말고.’

‘우리 관계만 생각하지 말고요? 그럼 우리 관계랑은 관련 없는 걸까요?’

‘지난 주에 있었던 일을 생각해 보세요.’

아 너무 힌트를 많이 주었나.

준서는 메신저를 꺼 버리고 일에 집중했다. 계속 대답해 주다가는 준서 자신의 입으로 정답을 말할 것 같았다.

상을 준다고 했으나 쉽게 주고 싶지는 않았다. 어렵게 고민을 해야 상을 받아도 좋을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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