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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약혼녀 구출 작전-83화 (83/102)

83. 나 오늘 집에 가기 싫어요2017.08.28.

유원은 입을 크게 벌렸다. 그것은 마주 선 준서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뵐 분은 아닌데.”

“제가 드릴 말씀인데요. 설마 약혼자라는 사람이.”

“앞으론 그렇게 안 불렀으면 좋겠어, 유원아.”

굳어버린 유원의 몸을 당긴 것은 수정이었다. 준서는 미간을 모으며 수정을 보았다.

확실히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녀에게서 풍겨나는 분위기가 전과 달라져 있었다.

“앞으론 신세질 일도 없을 거고, 신세진 것도 다 갚을 거고, 무엇보다 지금은 아무 사이도 아니니까.”

수정의 눈이 준서를 보았다. 그 투명한 시선에 준서는 자신의 짐작이 옳았다고 확신했다.

“무슨 일 있었어?”

“무슨 일이 있을 계획이예요.”

수정이 미소했다. 준서도 수정을 마주 바라보다가 조용히 미소했다. 그녀의 말없는 선택을 지지하는, 전우로서의 응원이었다.

“거기서 다 만나다니.”

준서의 차 안이었다.

준서는 느긋하게 운전석에 앉은 채 웃고 있었다.

수정은 준서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내일 본가로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그녀의 눈에 어린 생기가 유정은 낯설었다. 그러나 반가운 눈빛이었다.

- 어차피 언젠가 처리해야 할 일이라면 빨리 부딪히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기다리면 더 두려워지기나 하고.

일단 결정한 일에 수정은 더 이상 망설이거나 주저하는 기색이 없었다.

성헌은 바로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갔다.

알고 보니 준서를 부른 사람은 성헌이었다. 모든 상황을 알게 된 후에 준서에게 사과와 더불어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린 것이었다.

성헌을 집까지 바래다 준 후, 준서는 같이 내리려는 유정을 말리고 차를 돌렸다.

이미 자신의 행동으로 준우의 화는 풀렸을 거고, 성헌도 그래서 별 일 없을 거라는 것이 준서의 설명이었다.

- 그리고 가출 자체는 서유정 선생님이 관여한 것이 아니잖아요. 이럴 때는 스스로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단순히 유정을 보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교육적으로 더 맞는 일을 제시하는 것에 유정은 더 고집을 부리지 못했다.

차를 돌려 유정과 준서의 집이 있는 쪽으로 가는 길에 잠시 차를 세웠다.

준서도 유정도 감정적인 혼란이 짙었다. 도로를 훑는 차를 보는 준서의 눈은 피곤한 듯 몽롱했다.

유정은 오늘 하루 참 많은 일이 있었다고 생각하며 준서를 돌아 보았다. 그의 얼굴에 담긴 푸근한 미소가 잔잔하게 유정의 마음에도 닿는 듯했다.

“나도, 성헌이가 거기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그러게 말입니다.”

“다행이죠. 수정이가 마음을 잘 먹어 주어서. 계속 기다렸잖아요. 베트남까지 보내려고 했었고.”

준서는 옅은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젖혔다.

“저도, 어떻게 해야할 줄 몰랐어요. 제가 직접 해결할 수 있는 거였다면 진작에 나섰을 텐데 그런 것도 아니고.”

“준서 씨가 할 건 없었죠. 그냥 각자 좋은 길을 택하면 되는 거였어요. 책임은 결국 각자가 지는 거니까......”

“그런데, 왜 갑자기 여긴 찾아온 겁니까?”

나에게 말도 없이, 라는 말은 삼키고 준서는 유정을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유정은 그제야 이 모든 사건의 원인이 되었던 조금 전의 일을 떠올렸다.

“교장에게 감히 조퇴를 통보하고 말이죠.”

“죄송합니다, 그건......”

“무슨 소식이라도 들었어요?”

다 알고 있는 눈을 마주한 유정은, 더 이상 숨길 이유를 찾지 못했다.

“성헌 아버지가 협박했다고......”

“그거랑 수정 씨가 무슨 상관이 있다고.”

“준서 씨가 그렇게까지 하는데,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요. 나도 내가 해야 할 것을 해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뭘 그렇게까지 했다고.”

“나 때문에...... 그러신 거잖아요.”

유정이 입을 다물고 준서를 노려 보았다.

“처음부터 다 들었습니까?”

“제가 들은 건 아니고 이수연 선생님이요.”

“어디까지 들은 겁니까?”

유정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불퉁한 유정을 바라보는 준서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어려 있었다.

“다 알면서 물으니까 얄미워요?”

“대강 들었어요. 제 아버지를 위협했다고...... 그래서 무릎까지......”

“그런데 왜 엉뚱하게 여긴 오고.”

“안아줄 수도 없잖아요.”

불퉁한 얼굴 그대로 유정이 내쏘듯이 말했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저를 위해서 그렇게 몸을 던지는데, 저는 달래줄 수도 안아줄 수도 없고. 괜히 튕겼다가 마음 고생만 하고.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어요. 밀어낸 나를 원망하지도 않고 한결같이 그런 태도만 보이는 거, 그래요, 얄미워요, 진짜.”

“그래서, 수정 씨한테 허락 맡으러 간 거예요?”

“허락이 아니라 통보였어요. 어차피 수정이도 유원이랑 사귀잖아요. 각자 좋아하는 사람 만나 잘 지내자고요.”

“저는 수정 씨가 유정 씨 동생이랑 사귀는 줄은 몰랐네요. 알았으면 내가 먼저 말했겠죠. 그만하고 만나자고. 나도 더 이상은 못 참겠다고요.”

“그런데 수정이가 베트남 간다고 했다면서요. 그래서 유원이랑 진지하게 만나는 지도 알 수 없고. 힘들어하는 그 애를 다그칠 수도 없었어요. 그런데 더 이상 기다리는 게 능사는 아닌 것 같......”

열심히 말하는 중에 유정의 몸이 당겨졌다. 말을 하느라 약간 벌어진 입으로 부드럽고 따스한 것이 침투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유정은 말을 잇지 못하고 준서가 하는 대로 몸을 맡겼다. 정말로 오래 참았던 듯이 깊이 빠는 입질이 유정의 내장까지 다 빼갈 듯이 거칠고도 강했다.

이대로는 숨마저 꼴깍 넘어갈 것 같아서 유정은 겨우 준서를 밀쳐냈다. 강하게 유정의 입술을 탐하던 준서는 유정이 미는 그대로 입을 떼고 말없이 유정을 마주했다.

“아파요.”

유정이 눈을 내리깐 채 말했다.

“미안합니다. 아까 말했듯이 너무 오래 참아서.”

준서의 손이 유정의 얼굴에 닿았다. 조심스럽게 쓰다듬는 손길에 유정의 눈이 자연스럽게 들렸다.

“아프지 않게 할게요.”

“또 하려고요. 누가 보면 어쩌려고요.”

“그럼, 집으로 갈까요?”

은근히 묻는 목소리가 달콤했다. 유정은 몸을 움츠렸다.

“지, 집으로 가다니, 이 남자, 뭘 하려고......”

“안아주고 싶었다면서요. 안아달라고요, 마음 편하게.”

“설마 이런 거 노린 거예요?”

“노린 건 아니지만 결과는 좋군요.”

준서는 다시 얼굴을 가까이 했다. 긴장하면서도 유정은 입술을 뾰족하게 내밀었다. 그러나 준서는 기대와는 다르게 유정의 입술을 살짝 물었다 놓고는 운전대를 잡았다.

“미혜 씨 퇴근하라고 해야 겠네요. 파스타 좋아해요?”

“아니 자꾸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안아주고 싶다고 한 건 유정 씨였어요. 지난 번에도 얼마나 참은 줄 알아요?”

차가 부드럽게 도로 쪽으로 향했다. 말릴 수 없겠구나.

아니, 말릴 필요가 없겠구나.

유정은 입술을 깨문 채로 미소를 담은 얼굴로 준서를 노려 보았다.

오늘은 누가 뭐래도 상관 없었다. 어차피 내일도 주말인데.

“농담입니다. 집에 바래다 줄게요.”

그러나 유정이 마음을 먹은 직후, 준서는 오히려 그렇게 말하며 미소를 지웠다.

당황한 유정이 미간을 모으고 준서를 바라보았으나, 준서는 유정의 마음 따위 짐작조차 못하는 듯 굳은 표정으로 앞만 보고 있었다.

“유정 씨 아버님이 저 아직도 별로 안 좋아하시죠?”

잔뜩 심기가 꼬여버린 채로 볼을 부풀린 채 앉아 있는데 준서가 또 의외의 말을 꺼냈다.

“네?”

“그 날 그렇게 이상한 모습 보여드린 후로 인사도 못 가고.”

“아니에요. 너무 걱정하지 마요.”

지금 왜 내가 아닌 내 가족 걱정부터 하는 거야.

유정은 자꾸만 심기가 더 불편해지는 것을 애써 참았다.

안아주고 싶은 것은 위로의 표현이었지 다른 표현이 아니었다.

그런데 준서가 일부러 그 마음을 왜곡하는 듯한 말을 한 후로, 유정은 자신이 정말 왜곡된 마음에서 준서를 안아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로 준서와 다른 의미에서의 포옹을 하고 싶었다. 아니 포옹 그 이상의 것을, 모두 하고 싶었다.

그런데 준서는 농담이었다고 퉁쳐 버리고는 아예 유정의 마음은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안 그래도 엄마가 준서 씨 보고 싶다고 전부터 계속 말씀하셨는데, 언제 날 잡아요.”

“그래요. 그 날도 약속만 하고 못 갔었잖아요.”

준서는 계속 유정의 가족 이야기만 하다가 결국 유정의 집 앞까지 오고 말았다.

아쉬운 마음으로 유정은 차에서 내렸다.

인사를 하고 가려는데 준서가 뒤이어 내렸다. 유정은 다시금 솟아나는 기대감을 어금니로 지그시 눌렀다.

아닐 거야, 저러다가 이상한 말 하고 다시 갈 거라고.

“벌써 인사 오시게요?”

유정은 부러 웃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고 준서가 마주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안될 것도 없지 않습니까.”

“진심이세요?”

“아뇨. 나중에 정식으로 찾아 뵈어야죠. 오늘은 그냥 배웅하려고.....”

“왜 자꾸 농담을 하세요?”

유정이 눈을 크게 뜨고 준서를 노려 보았다. 달라진 태도에 준서의 몸이 움찔했다.

“네?”

“아까부터요. 하지 않을 거면 그냥 말도 하지 마세요.”

자꾸 사람 기대하게 만들지 말고.

하지 않은 뒷말을 삼키고 유정은 일부러 발소리를 크게 냈다.

“화 났습니까?”

준서가 급히 유정을 쫓으며 물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요.”

화 났냐고 하니 그렇다고 하기는 부끄러웠다. 결국 자신의 마음을 들켜 버린 것 같아서. 유정은 아파트 앞에서 돌아섰다.

“뭐 여러 가지로 피곤해서요. 말이 좀 거칠게 나갔네요.”

“기분이 좋아서.”

준서가 다가섰다. 손을 들어 유정의 머리를 넘겨주는 손길이 부드러웠다.

“자꾸 장난을 치게 되네요, 나도 모르게.”

준서의 눈이 반으로 접혔다. 정말 기분이 좋은가. 유정의 손이 슬그머니 자신의 머리를 매만지는 준서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 좋아요?”

“그럼요.”

“그러면,”

유정이 준서의 손을 잡은 손을 가만히 내린 채 힘을 주었다. 다가서니 탄탄한 가슴이 앞이었다.

“불러주세요.”

“네?”

“유정아, 하고.”

가만히 그 가슴에 이마를 대어 본다. 거칠어지는 호흡 소리가 누구의 코와 입을 거친 소리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준서는 붙들린 한 손은 내린 채 다른 한 손으로 유정의 등을 감싸 안았다.

“유정아.”

그의 몸이 북처럼 소리를 둥둥 울려 냈다. 유정은 큭큭 웃으며 가볍게 이마를 그의 가슴에 비볐다.

“한 번 더요.”

“유정아.”

준서가 유정의 손을 놓고 부드럽게 머리를 감싸 자신에게로 들게 했다. 마주치는 까만 눈동자가 반짝였다.

“이 말이 그렇게 듣고 싶었어?”

유정은 대답 없이 입술을 내밀었고, 그 입술에 준서의 입술이 가볍게 부딪혔다.

준서의 손이 유정의 머리를 살살 어루만졌다.

“나 걱정해줘서 고맙고.”

“그게 뭐 고마울 거리나 되나요.”

“염려시켜서 미안해.”

“미안할 거리도 안 되는데.”

“그럼 그냥 좋아할 거리는 되나?”

유정은 눈을 크게 뜬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픽 웃은 준서가 그녀의 코에 입을 맞췄다.

“그럼 다시 말할게. 나 걱정해 줘서, 또 염려해 줘서,”

순간 가슴이 답답해졌다. 준서의 품에 그대로 안겨 버린 것이었다.

“사랑해.”

다시금 그의 몸이 둥둥 울렸다. 유정은 그가 온 몸으로 말하는 언어를 온 몸으로 들었다.

두 팔로 넓은 등을 끌어 안으니 심장이 그대로 폭발할 것 같았다.

“나, 오늘 집에 가기 싫어요.”

이제 부끄러울 것도 없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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