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아이입니다, 유정 씨 앞에선.2017.08.10.
“저, 나, 안하면 안될까?”
미간에 모인 불편한 심기를, 유정도 정확히 읽어내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수연이 빠져 버리면 인원수도 그렇지만 유정 혼자서 상우와 준서와 모임을 하는 것도 불편할 거였다.
“불편한 거 있어요?”
“아무래도...... 교장 선생님이랑 하니까. 아니, 교장 선생님이 막 싫은 건 아닌데. 알잖아. 직장 상사랑 하는 게...... 막상 해보니 그러네. 미안해.”
수연이 어색하게 웃었다. 유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기왕에 하기로 한 거니까...... 조금만 참아보면 어때요? 혹시 아까 교장 선생님이 한 말 때문에 그래요?”
“아냐, 그건 절대 아니고. 뭐, 내가 실수한 건 맞지.”
수연은 두 손을 내저었으나, 유정은 그 이유 말고는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것이라고 말하기 민망하니까 그냥 피하고 싶은 거라고.
“실수는요. 그냥 교장 선생님 편든 건데 교장 선생님이 훈장질 한 거죠. 그런데 악의가 있는 분은 아니에요.”
“아니라니까. 나도 교장 선생님 좋은 사람인 거 알아. 그것 때문 아니야, 정말로.”
“그래도 불편한 건 사실이잖아요.”
수연은 아무 대답도 없이 발끝만 내려다 보았다.
“유정 쌤은......”
고개를 든 수연이 염려 섞인 눈빛으로 유정의 얼굴을 살폈다.
“잘 사귀는 거야?”
“네?”
“교장 선생님하고......”
“아니에요. 헤어진 지가 언젠데.”
손을 내젓는 모양을 보는 수연의 미간이 좁아졌다.
“헤어졌다고?”
“네. 좀 됐어요.”
“왜? 유정 쌤도...... 좀 불편해서?”
유정은 부드럽게 웃었다.
“그냥, 좀 사정이 있어서요. 그런데 교장 선생님한테 원망이나 그런 건 없어요. 그리고 알면 알수록 좋은 사람이고.”
“그렇구나.”
“정 불편하면 어쩔 수 없죠. 근데 누구를 또 영입해야 하나. 누가 이런 모임을 한다고 하겠어요? 수업 계획서 하나 작성하라고 해도 난리가 나는 판에.”
“김윤호 선생님.”
수연이 유정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유정은 눈을 깜박거렸다. 김윤호라면, 준서에게 직언을 했다던 사람인데.
강직하고 할 일 잘하는 사람이긴 했으나, 어쩐지 가까워지기는 좀 어려웠다.
“하실 것 같지 않아?”
“더 불편할 것 같지 않아요?”
유정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으르렁 거리는 것처럼. 수연은 상우와 준서, 그리고 윤호에게 둘러싸여 있을 유정을 생각하고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네. 분위기는 참 좋겠다.”
“지금 나가면서 그게 할 말이에요?”
“미안. 근데 시간 꽤 지나지 않았어? 오늘 마무리는 해야지. 들어가자.”
다시 회의실로 들어오니 준서와 상우는 그 사이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분위기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오늘은 책 소개 마치고 각자 이야기 하려고 했었는데, 벌써 하고 있었던 거예요?”
유정이 들어서면서 말하자, 상우가 붉은 눈을 들어 유정을 보고는 얼른 눈을 내리 깔았다.
“상우 쌤, 괜찮아요?”
유정이 놀라 상우를 바라보자, 그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서서 실례한다는 말을 남기고 회의실을 나갔다.
이제 두 사람의 시선은 남은 준서를 향했다.
“제가 울린 거 아닙니다. 이야기는 다 마치셨어요?”
준서가 유정과 수연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아, 저.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말씀드릴게요. 저 오늘로 모임을 못할 것 같아요. 시간도 그렇고. 유정 쌤한테는 조금 전에 이야기 했는데요.”
수연이 일어선 채로 어색하게 말했다. 준서는 아무 말 없이 그런 수연을 바라 보았다.
“죄송해요. 한다고 해놓고 이렇게 빠져서요.”
“이유가 있습니까?”
“저, 계속 모임 참석하는 것도 어려울 것 같고 제가 이번 학기에 맡은 것도 많아서요. 정말 죄송합니다.”
“혹시, 제가 불편해서 그러십니까?”
준서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유정은 준서와 수연을 번갈아 보며 한숨을 깨물었다. 눈치 빠른 준서가 수연의 사정을 모를 리가 없었다.
“아, 아니에요.”
“불편하면 제가 나가겠습니다. 저도 많이 바쁘기도 하고요. 교사 한 두 명 정도 더 충원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 겁니다.”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라.”
“자꾸 아니라고만 하지 말고 원하는 걸 말씀하세요. 이수연 선생님 원하시는 대로 해 드리겠다는 겁니다. 왜 하려던 걸 포기하려고 하세요? 저는 선생님들이 만족하며 일하기를 바랍니다. 하고 싶은 활동을 하기를 바라고요. 그러니까 이수연 선생님이 여기 계세요.”
단호한 준서의 말에 수연은 붉어진 얼굴을 숙였다. 천성적으로 남에게 모진 말을 못하고 살아왔다. 참하고 부드러운 성격으로 시키는 대로 불평 없이 살아온 탓에 준서와 같은 성격은 버거웠다.
“아뇨, 제가 나갈게요. 죄송합니다.”
수연은 깊이 고개를 숙였다가 들고는 그대로 회의실을 나가버렸다.
준서는 깊은 숨을 내쉬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내가, 뭘 잘못한 겁니까?”
가만히 서서 준서를 관찰하고 있는 유정에게 준서가 물었다.
“잘못했다기보다는......”
“실수한 게 있긴 있는 거죠?”
“아까 수연 쌤한테 말씀하실 때......”
회의실 문이 열렸다. 수연이 다시 돌아오나 싶어서 바라본 곳에는 상우가 들어서고 있었다. 세수를 했는지 앞머리가 젖어 있었다.
“죄송합니다. 아까는 제가 좀 흥분을 해서요.”
“아, 네.”
“그런데 이수연 선생님은......”
상우는 준서와 유정이 어색하게 서 있는 모양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생긴 것을 눈치 챈 까닭이었다.
“첫 모임이니까, 이 정도로 마무리할까요? 어차피 그냥 나머지 시간은 이야기 하려고 했던 거라서.”
유정이 애써 표정을 펴고 말하자, 상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다음주에 모이는 거죠?”
날짜와 시간을 확인하고 나서 상우는 회의실을 나갔다. 유정은 배웅하듯이 상우를 따라 걸어가다가, 문이 닫히자 준서 쪽으로 몸을 돌렸다.
“엄마야!”
유정은 준서가 자신의 바로 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놀라서 비틀거렸다. 손을 뻗어 유정의 팔을 잡아준 준서는 그녀가 중심을 잡자 바로 손을 뗐다.
“뭘 그렇게 놀라요?”
“아니, 소리 좀 내고 오시든가요.”
“비명이라도 질러야 합니까?”
유정인 토라진 듯이 준서에게 눈을 흘기고 천천히 회의실 의자를 끌어 앉았다.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아휴.”
팔꿈치로 팔을 받친 채 두 손 안에 머리를 싸쥔 유정에게 준서가 천천히 다가와 앉았다.
“미안합니다.”
유정의 옆자리에 의자를 끌어 앉은 준서는, 그렇게 말하고 묵묵히 유정을 보고 있었다.
“준서 씨가, 아니 교장 선생님이 미안할 건 없죠. 상황이 이렇게 된 걸요.”
“상황이 그러니까 어떻게 된 겁니까?”
천천히 머리를 든 유정이 준서를 바라 보았다. 준서의 두 눈이 피가 맺힌 듯이 붉었다.
안 그래도 피곤할 텐데. 그냥 모른척할까 고민하던 유정은 그래도 알려야 겠다 싶어 작심을 하고 입을 열었다.
“제 추측이지만 아까 교장 선생님이 한 이야기에 수연 선생님이 좀 상처 받은 것 같아요. 수연 선생님이 학부모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한 건 교장 선생님이 힘들어 보여서 응원해 준 거였는데...... 거기에 훈계를 들으니 마음이 좀 덜 좋았겠죠.”
“아......”
준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내렸다.
“제가 미안할 건 없다더니, 제가 미안한 상황이 맞네요.”
“저는 양쪽 다 이해하니까요. 수연 선생님이 착하기도 하지만 상처도 잘 받는 성격이라서요. 근데 겉으로는 아니라고 하니 섯불리 교장 선생님이 사과를 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냥 좀 기다려 주면 될 거예요.”
그렇게 말을 하는 유정도 머리가 어지러웠다. 기다려 주면 된다고 했지만 어쩌면 영영 이 모임에는 오지 않을 지도 몰랐다. 그러면 김윤호 선생님이라도 모시고 와야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니 그 때에는 유정이 이 모임에 남고 싶지가 않았다.
“그냥 기다리라고요. 참...... 어렵네요. 손 놓고 기다리는 게.”
준서는 수연의 일만으로 해석하기는 어려운 묘한 말을 꺼내고는 유정을 가만히 바라 보았다.
“차라리 업무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해치울 텐데, 사람 마음에 관한 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이렇게 기다리는 게 맞는 건지. 제 성격 같아서는 붙들고 무슨 말이라도 하라고 하고 싶지만......”
유정도 그가 수연의 이야기만 하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수정은 여전히 호텔에서 지내고 있었고, 유원은 집에는 이야기하지 않은 채 몰래 몰래 그 곳에 드나드는 듯했다.
“같이 갈까요?”
어차피 다리가 나으면 가려고 했었던 참이었다. 연구부가 하는 일에 시험에 관한 업무도 포함이어서, 유정은 다친 다리로 야근까지 하면서 지내느라 수정에 대해서는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네?”
“수정이 만나러요. 같이 만나서 이야기를 하면 뭐라도 답이 나오겠죠.”
“제가, 좀 모자라죠?”
준서는 그렇게 말하고 웃었다. 공허하게. 유정은 그 흔들리는 눈에 어린 짙은 고독을 보았다.
숨는 것은 쉽다. 마음을 알아달라고 하는 것도 쉽다. 어려운 건 그들을 찾아내야 하는 이들이다. 상처를 준 사람도 상처를 받는다. 그 받은 상처를 꺼내지도 못하고 꾹꾹 담아둔다.
“준서 씨.”
유정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준서는 웃음을 그치고 유정을 올려다 보았다.
“준서 씨가 사람 잘못 본 거 같아요.”
“네?”
“내가, 모자란 남자 좋아하는 그런 여자는 아니거든요.”
유정은 준서의 어깨를 가볍게 짚었다. 슈트의 매끈한 촉감이 손바닥에 달라붙은 듯이 부드럽게 만져졌다.
“준서 씨 잘못한 거 없어요. 상황이 그렇게 된 거고요.”
준서는 어깨에 얹어진 유정의 손을 가볍게 쥐었다. 손 안에서 뛰는 맥박이 심장처럼 쿵쿵 울렸다.
“같이 잘 해나갈 거잖아요. 그러기로 했고. 기운 내요.”
준서가 잡은 제 손에 힘을 주며 유정이 말했다. 준서의 눈이 부드럽게 웃었다.
“저 잘 하면.”
훅, 한 번 숨을 들이마신 준서가 잡은 유정의 손을 뚫어지게 보다가 말을 이었다.
“상 주실 겁니까?”
“상요?”
“이렇게.”
준서가 유정의 손을 자신의 머리에 올렸다.
“잘했다고 쓰다듬어 주세요.”
“아이 같네요.”
“아이입니다, 유정 씨 앞에선.”
유정은 마주 웃으며 몇 번 준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손을 다시 머리에서 내려서 한 번 꽉 쥐어준 후에 준서는 손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수정 씨 만나러 가죠.”
“종종 만나러 가시나요?”
“아뇨. 처음 한 번 빼고는 가끔 전화통화만 합니다. 유정 씨랑 가는 게 두 번째에요.”
준서는 결백을 증명하듯이 곧은 시선으로 유정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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