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우리는 우리의 학생들에게 어떤 것을 줄 수 있을까요.2017.07.30.
유정의 몸을 와락 끌어안은 준서가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대었다.
“진짜 내 화장품 반은 준서 씨 입 속으로 들어갔을 거야.”
“그러게요. 앞으로는 얼굴에 꿀 바르고 와요.”
준서의 입술이 유정의 입술에 쪽 닿았다가 떨어졌다.
“어제 고생 많았고, 오늘 고친 것도 마음에 들어요. 언제 고쳤어요, 어제 시간도 없었을 텐데.”
“학교 와서 상우 쌤하고 수연 쌤하고 얘기하고 나서 좀 고친 거예요. 별로 안 고쳤어요.”
“그랬어요? 잘했어요.”
준서의 손이 어제처럼 아래로 가더니 유정의 엉덩이를 툭툭 두들겼다. 순간 짜릿하게 퍼지는 감각에 유정이 준서의 어깨를 밀었다.
“아우, 진짜 이러지 마요.”
웃으며 손을 거두는 준서를 물끄러미 보던 유정이 준서의 목에 입술을 꾹 박았다가 떼었다.
“나도 이렇게 복수할 거야.”
“허, 이거 하라는 거예요, 말라는 거예요?”
“하지 말라고 이러는 거예요.”
그럴 리가. 준서는 황당한 표정을 짓다가 유정의 이마에 다시 한 번 입술을 맞추고는 그녀를 한 번 꽈악 끌어 안았다가 놓았다.
“더 이러다간 여기서 영화 찍겠네요.”
“이미 찍은 거 같은데요.”
입술을 일부러 내밀고 뾰로통하게 말하는 유정을 한없이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던 준서가 애써 표정을 바로 했다.
“그래서, 나는 유정 씨 집에 언제 가면 되죠?”
“당장 오늘이라도 오라고 하세요.”
“오늘? 하, 오늘 갈까요?”
준서는 책상 앞으로 돌아가 스케쥴표를 뒤적였다. 별 일은 없었다.
“진짜, 오늘 시간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그럼 얼른 말씀드릴게요.”
유정이 볼을 살짝 붉혔고 그 때에 노크 소리가 울렸다.
“그럼, 가볼게요.”
유정이 꾸벅 허리를 굽히고 나서 교장실을 나갔다. 곧 교장실에 다른 교사가 들어섰고 준서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응접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준서는 자신이 중요한 것을 잊고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도대체 언제 이야기해 줄 건데?”
교장실에 다녀와서도 별 일 없이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는 유정에게 수연이 물었다.
“뭘요? 잘 됐다고 얘기 했잖아요? 교장 선생님도 통과 됐다고. 이제 교육청 통과만 기다리면 돼요.”
“그게 아니라.”
수연이 유정의 어깨를 잡아 흔들며 그녀의 귀에 자신의 입을 가져다 대었다.
“유정 쌤이랑 교장...... 선생님이랑.”
“뭐? 얘기 했잖아요? 잘 통과 됐다고.”
유정이 아무리 시치미를 떼도 수연은 눈에 어린 웃음기를 거두지 않았다.
“아직 아무 것도 한 거 없어요. 말할...... 사이도 아니고.”
유정은 결국 항복하고 그렇게만 이야기했다.
“아무 것도 한 게 없다니.”
“진짜라니까요.”
“화해는 했고?”
유정의 미간이 좁아지는 것을 본 수연의 눈이 반으로 접혔다.
“아님 다툰 적도 없었던 거야?”
“아, 진짜, 언니.”
“나한테는 얘기 해줘도 되잖아. 내가 식사 장소로 부르기까지 하고, 응?”
“화해했어요.”
유정은 결국 그렇게 말하고 가느다란 한숨을 쉬었다. 수연은 작게 손뼉을 치며 ‘대박’이라는 말만 연발했다.
“언제부터.”
“네?”
“언제부터 그런 관계고?”
“아휴, 진짜. 나중에 잘 되면 한꺼번에 말씀 드릴게요.”
“설마, 우리 그 때 칵테일 먹으러 갔을 때부터......”
유정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건 한참 전의 이야기인데, 대체 언제적 이야기를.
“아니거든요. 그 땐 전혀.”
“그 때도 난 눈치 좀 있었는데.”
“수연 쌤이...... 관심 있었잖아요.”
“관심 있으니까 보이는 거지. 유정 쌤한테 관심 있는 거. 원래 둔해? 정말 모르더라.”
수연이 픽 웃고는 고개를 절레 절레 저었다.
유정은 새삼 그랬나 싶어 그 날을 되짚어 보았다. 처음 준서가 약혼녀 이야기를 꺼내던 날이었다. 그래서 애써 생겼던 관심을 지웠었는데, 그 때부터 관심이 있었나.
유정이 가만히 생각에 빠져 있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수연이 자조하며 말을 이었다.
“나야 뭐, 늘 낙동강 오리알 신세지. 생일에도 맨날 가족들하고만 만나고.”
“아, 참. 내일이 생일이죠?”
“응. 그래서 오늘 가족 모임 있어. 불쌍한 노처녀 위로 모임이지. 호텔 뷔페 먹으러 간다.”
“우와!”
이번에는 유정이 손뼉을 쳤다. 수연은 고개를 저었다.
“뭐가 좋아. 그런 데는 남친이랑 가야 하는 건데.”
“누구랑 가든 얼마나 좋아요. 맛있는 거 많이 드시고 오세요.”
그러고보니 한 번 간다고 하고 이런 저런 일에 밀려 유정도 가족들에게 식사 대접 한 번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정 쌤.”
갑자기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유정은 머리칼이 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말투, 목소리, 태도, 어느 면으로 보나 늘 그녀를 놀라게 하는 그녀의 반 학생이었다.
“어, 응.”
돌아본 곳에 성헌이 그녀가 숙제로 내준 ‘자서전’을 들고 서 있었다. 종훈과 성헌은 사이좋게 자서전을 쓰기로 하고 화해도 한 상태였다.
“벌써 썼어?”
“네.”
성헌이 내민 종이는 꽤 두툼했다.
“엄청 많이 썼네. 내준 것보다 더 썼나봐.”
“쓰다 보니까 분량이 늘어서요.”
성헌은 솜털이 보송 보송 난 잘생긴 얼굴을 살짝 기울이며 웃었다. 유정은 마주 웃다가, 성헌의 미소가 어쩐지 쓸쓸한 빛을 담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작년에 무슨 일을 겪었다고 했었지, 준서와 한 집에 살았다고 했었나.
우연히 알게 된 그의 별로 유쾌하지 않은 과거가, 그를 볼 때마다 유정의 마음을 흔들었다.
“저, 쌤.”
성헌은 무언가 망설이는 듯이 입술을 씰룩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응, 왜, 할 말 있어?”
“그게 아니고요.”
그의 좁아진 미간을 보고, 유정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상담실에 갈까?”
곧 쉬는 시간이 끝나지만, 담임 상담이라고 하면 수업 시간을 조금 넘겨도 상관 없긴 했다. 유정은 불안함을 감추며 앞장서서 교무실을 걸어 나갔다.
“무슨 일 있어?”
편히 앉으라고 한 후, 유정은 종훈과 상담을 할 때처럼 음료수까지 쥐어 주었다. 그래도 성헌은 별 말이 없었다.
평소의 그와 같지 않은 태도에, 유정의 안에 있는 불안감도 점점 커져 갔다.
마침내 작심한 듯이 성헌이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저, 실은, 삼촌, 그러니까 교장 선생님이요......”
성헌 본인의 이야기를 할 줄 알았던 유정은 성헌이 이야기하는 뜻밖의 주제에 얼굴을 확 굳히고 말았다.
설마 들킨 걸까.
“으, 으응? 삼촌이 뭐?”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유정이 묻자, 성헌은 유정을 똑바로 바라본 채 입을 열었다.
“저희 아빠랑 어제 크게 다투셨거든요.”
“뭐?”
대체 언제 그랬단 말인가. 어젯밤에는 내내 그녀와 함께 있었는데.
“할아버지 댁에서 그랬대요. 그게, 그러니까 뭐 말하자면 삼촌 약혼녀 때문에 일어난 일인데......”
“뭐?”
유정은 자신의 목소리가 너무 컸다고 생각하고 입을 막았다.
“아, 아뇨, 아세요, 혹시 이 일?”
성헌이 무언가 눈치를 챈 듯이 말했다. 유정이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 모, 모르지, 난......”
“그러니까 그 약혼녀라는 분 아버지가 우리 아빠와 같은 국회의원이고, 우리 아빠를 끌어주는 위치라던가...... 당대표도 하셨고 지지율도 꽤 되니까요. 그런데 삼촌이 그 분을 만나서 무슨 소리를 했는지 느닷없이 파혼 통보가 왔대요.”
거기까지는 유정도 아는 이야기라 숨을 죽인 채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데 아빠 입장에서는 파혼이 되어서는 절대 안되는 거거든요. 거기가 사돈이 되어야 또 계속 아빠를 끌어줄 수 있는 거니까요. 그래서 삼촌이랑 한 판 붙었나 봐요.”
“그, 그래서, 어제, 그랬다고?”
그러면 유정과 헤어지고 나서 준서는 그 밤에 또 거길 갔었던 걸까. 유정은 오늘 보았던 준서의 얼굴이 조금 피곤해 보였던 것을 떠올렸다.
“네. 어제요. 그런데 저는 솔직히요.”
성헌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새 성헌의 눈에는 눈물까지 고여 있었다.
유정은 애써 감정은 넣어둔 채 미간을 모았다. 지금은 자신의 반 학생에게 집중해야 할 때였다.
“저는 아빠가 싫어요. 저는...... 삼촌이 더 좋아요. 작년에 삼촌이랑 같이 살았었거든요. 제가 너무 말 안 듣고 막나가니까 삼촌이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데리고 있었는데...... 그 때가 너무 그리워요.”
성헌이 두 손으로 얼굴을 싸쥐었다. 유정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빠가 삼촌 손찌검까지 했나봐요...... 그 얘기 들으니까 제가 너무 화가 나서 아빠한테 따지다가 저까지 얻어 맞았어요. 그러니까 더 집 나오고 싶고......”
“뭐, 손찌검을 했다고?”
유정은 놀라 비명을 지르듯이 소리치고는 입을 막았다. 성헌이 얼굴에서 손을 떼고 유정을 물끄러미 보았다.
“네.”
“아, 그, 그렇구나, 그래서, 많이 아파?”
“아픈 것보다 기분이 나쁘죠. 제가 애도 아니고. 아니 애도 그렇게 때리면 안되는 건데. 저는 삼촌이 괜히 그랬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빠 말이 다 믿기지도 않고.”
유정은 준서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손찌검을 했다고, 얼굴에서 별 티가 나진 않았는데. 왜 맨날 얻어 맞고 다녀, 속상하게.
“저 어떡하죠, 그냥 집 나올까요? 지금 같아서는 가출해서 아무도 모르는 데로 도망가고 싶어요.”
유정은 성헌의 간절한 얼굴을 보고 애써 정신을 차렸다.
“왜, 삼촌 때문에?”
“아빠는 원래 싫었어요. 아빠는 집에서랑 밖에서랑 행동하는 게 달라요. 밖에서는 세상에 다시 없을 좋은 사람인데...... 저하고 엄마하고는 안 그렇게 대해요. 엄마는 아빠가 잘 안해주니까 저한테만 기대를 하고...... 나는 무슨 성적 낳아주는 씨암탉이에요.”
성헌의 이야기를 들으며, 유정은 자연스럽게 준서를 떠올렸다. 그가 어느 날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들었던 이야기와 성헌의 이야기가 묘하게 중첩되었다.
‘학생들의 삶의 가치를 성적으로 판단하고, 등수를 매기며 그들의 모든 것을 한 뼘짜리 성적표 안에 채워 넣는 어른들의 이기심과 무관심이, 그런 학생들의 아픔을 만들고 방관한 것입니다.’
유정은 마음 한 구석이 저릿해지는 것을 느끼며 성헌을 주시했다.
“그런데 제가 좋아하는 삼촌 욕을 하는 걸 보니까 저도 더 못 참겠는 거예요. 오늘 삼촌한테 가서 도로 나와서 삼촌이랑 살면 안되냐고 했다가 오히려 혼나기만 했는데...... 그래도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
유정은 차마 그에게 ‘그래도 집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는 꼭 고등학교 때의 준서를 보는 것 같았다. 흔들리고 상처 받고 무너지는.
“마음 둘 데를 찾는 건 어때?”
유정은 고민하다가 조금은 엉뚱하게 들리는 이야기를 꺼냈다. 성헌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마음 둘 데라뇨?”
“부모님을 바꿀 수는 없잖아. 지금 독립할 시기도 아니고. 그냥 좋아하는 거 찾아서 거기에 미쳐봐. 공부에 너무 방해되지만 않게.”
“작년까지 밴드 활동을 하긴 했는데......”
“밴드?”
유정의 머릿 속이 반짝였다.
“밴드를 했다고?”
“네. 학교 애들하고 같이 했었는데, 그거 하면서 담배도 피고, 음...... 좀 안 좋은 애들도 많이 만났거든요. 그래서 삼촌이 못하게 했어요.”
“그럼 음악에 흥미가 있는 거야?”
내내 굳어 있었던 성헌의 얼굴이 펴지면서 미소가 어렸다.
“그럼요. 작년에 저희 밴드가 스쿨 밴드 페스티벌에서 은상 탔어요.”
“그래?”
“제가 만든 곡으로요. 그런 거 생기부에는 전혀 안 올라가지만...... 집에 트로피도 있어요.”
성헌의 얼굴은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르게 환한 빛까지 났다.
“그럼 음악에 관심을 쏟아봐. 밴드 활동을 당장 하진 않더라도 가사를 쓴다든가 작곡을 한다든가, 할 수 있는 건 다양하게 있잖아.”
“와, 유정 쌤 진짜 제 스타일이예요. 작년엔 제가 쌤들한테 이런 거 얘기도 안했지만, 얘기해도 엄마 아빠 말씀 잘 들어야 한다고 훈계만 잔뜩 들었는데. 역시 쌤.”
싱글 싱글 웃는 얼굴에 유정은 순간 위기감을 느끼고 표정을 굳혔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아. 해결해 주는 것도 없고.”
“다르죠. 이렇게 얘기 들어주는 게 분명히 다른데요. 처음에 종훈이한테 잘해줄 때는 답답하기도 했는데 이젠 그러지도 않으시잖아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벌써 수업 시간이 한참 지나고 말았다. 유정은 놀라서 성헌을 달래어 얼른 교실로 돌려 보냈다.
준서가 형에게 손찌검을 당했다니, 그것도 수정과의 일로 나서다가 그렇게 되었다니, 유정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준서가 가족 안에서 그런 일까지 당하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교무실로 돌아와서 유정은 성헌이 두고 간 자서전을 읽기 시작했다. 성헌도 나이에 비해 매우 조숙하고 세련된 문장을 구사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은 것 같았다. 하긴 교육 하나는 잘 시켰을 테니까. 유정은 생각하며 성헌이 적어내려간 문장 하나 하나를 마음에 담았다.
예상대로, 그의 삶은 준서의 삶과 매우 닮아 있었다. 그러니 그의 삶을 통해 준서의 삶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가정에는 관심 없는 아버지, 그리고 그 보상을 아들에게서만 찾았던 어머니, 그 어머니를 위해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었던 아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마음 속의 무언가가 폭발해 버려서 긴 방황을 시작했던, 그의 소년 시절.
나와 당신은 성헌에게, 그리고 당신과 닮은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학생들에게 어떤 것을 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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