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유정 씨 더 보고 싶어서 그래요.2017.07.26.
준서는 힘 있게 유정의 혀를 빨면서 자신의 혀를 그녀의 동굴 같은 공간에 밀어 넣었다.
부벼지는 더운 살이 마음을 닮은 듯이 따스했다. 유정의 뒷머리를 어루만지던 준서의 손이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목 언저리에서 천천히 아래로 내려간 준서의 손이 유정의 가슴을 가볍게 쥐었다가 놓았다.
가만히 입술을 뗀 준서가 유정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더 나가면 오늘 집에 못 보냅니다.”
유정은 붉어진 준서의 얼굴을 보며 잠시 말을 잊었다.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더운 살을 맞대고 그에게 안기고 싶었다.
“집에 가기 싫다는 표정이군요.”
유정은 픽 웃으며 준서의 가슴에 머리를 묻었다.
준서는 웃으며 유정의 머리를 감싸 안고 정수리에 입술을 묻었다.
“오늘 안 가면 제가 유정 씨 아버님께 더 밉보이지 않겠습니까?”
유정의 입에서 옅은 한숨이 새어 나갔다.
“그렇겠네요.”
“저도 아직 약혼 이야기가 다 마무리된 게 아니니.”
머리를 다시 놓아준 후 준서는 손을 내려 유정의 손에 깍지를 끼었다.
“오늘은 유정 씨가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는 걸로 만족하기로 하죠.”
마주한 눈에 미소가 피어오르고, 깍지를 낀 손은 단단히 아물렸다.
남자에게서 나는 더운 체취에 자꾸만 혼미해지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유정은 부러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난 그런 말 한 적 없는데요?”
“난 들었는데요?”
유정의 말투를 준서가 따라하자, 유정이 하하 웃고는 이마를 그의 쇄골에 비볐다.
“얄미워.”
“얄밉다면서 뭐하는 거죠? 진짜 집에 안 보내는 수가 있어요.”
고개를 든 유정의 이마에 쪽 소리가 나게 입술을 대었다가 땐 준서가 양 손으로 유정의 뺨을 문질렀다.
붉어진 뺨이 더 붉게 달아 올랐다.
“데려다 줄게요.”
“괜찮아요, 밤도 늦었는데 쉬세요.”
“유정 씨 더 보고 싶어서 그래요.”
준서가 한 손으로 유정의 머리를 가볍게 문지르고는 물러났다. 그 눈에 언뜻 복잡한 생각이 스친 것 같았으나 유정은 주의 깊게 보지 않았다.
“잘 가요.”
유정의 집 앞에 차가 멈췄다. 벨트를 풀고 유정을 한 번 깊이 끌어안은 준서는, 친구에게 하듯이 손을 흔들었다. 차에서 내린 유정도 마주 손을 흔들었다.
유정이 들어가는 것을 본 준서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민 의원은 건드린 일은 작은 일일 수가 없었다. 복잡한 마음에 유정의 얼굴만 보고 가려던 것이, 일이 커져서 계획서 작성까지 돕고 보니 시간이 꽤 흐르고 말았다.
준서는 꺼 놓았던 휴대 전화를 켰다. 예상대로 윤택에게서 몇 통의 전화가 와 있었고, 형인 준우에게서도 몇 통의 전화가 와 있었다.
급한대로 윤택에게 전화를 했다.
“어디냐, 너.”
“집 근처입니다.”
“준우 와 있다.”
준서는 차창 너머로 눈을 돌렸다. 잘 들어갔을까.
“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했잖아. 왜 나서서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어.”
파혼을 하겠다고 한 것도 모자라, 오히려 나서는 바람에 집안 전체를 욕 먹게 만들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준우하고는 내가 이야기를 해 볼 테니까, 너는 일단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올해 초선 의원인 하준우는 4선 의원인 민 의원과 같은 당이었다. 윤택이 그 집안과 사돈을 맺으려는 것은 준우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목적도 있었기 때문에, 준서가 민 의원을 도발한 것은 준우에게도 당연히 영향을 끼쳤다.
준우는 준서와는 달리 출세욕과 명예욕이 심했다. 윤택이 준우를 따로 챙겨주지 않은 것은 없었지만, 그는 자신이 준서에 비해 할아버지에게 받는 애정이 덜했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민 의원 쪽에서 파혼 이야기가 들리는 데다 앞으로 그 집안은 상종을 안할 것이라는 통보까지 오자 준우는 당장에 준서를 찢어 죽이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다. 준서에게 통화 시도를 했으나 전화를 받지 않자 윤택에게 달려와 사정을 설명하고 도와달라 청한 것이었다.
준우는 당연히 준서가 민 의원에게 용서를 빌고 나서 다시 결혼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준서의 행복 따위는 당연히 중요한 것이 아니었고, 그에게는 다 잡은 줄 알았던 출세줄이 더 중요했다.
준서는 준우가 윤택에게 한 말이 뭔지 듣지 않아도 다 알 것 같았다.
“제가 그리로 가겠습니다.”
“오긴 뭘 와. 준우가 널 살려둘 것 같으냐?”
“죽든 살든 부딪혀 봐야죠. 제 스타일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 니 마음대로 하거라. 내가 너 때문에 내 명에 못 산다.”
전화를 끊고 나서, 준서는 입술을 씹으며 차를 몰았다.
민 의원을 건드렸을 때, 어떤 상황이 벌어지게 될지는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수정의 아버지이기를 포기한 민 의원을 보았을 때 준서는 참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것은, 이제와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만, 준서 자신의 아버지가 떠올라서일지도 몰랐다.
그저 남에게만 잘 보이기를 바랐던 그의 아버지. 가족은 뒷전이고 남에게 어떻게 보이게 될까에만 신경을 썼던 사람. 그리고 그를 그대로 닮은 준우.
받아들이고 참고 견디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차라리 부딪혀 깨지더라도 터뜨리자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것이 수정의 문제를 해결하는 시작이 될지도 몰랐다.
“준서가 온다고요?”
준우의 입술이 비틀어졌다. 그의 주먹이 부들 부들 떨었다.
“전화기도 꺼놓고 꽁무니 뺀 줄 알았더니.”
“말 함부로 하지 마라, 그래도 동생인데......”
“동생이요. 하, 또 싸고 도시네요. 그 녀석 때문에 내가 당한 게 얼만데......”
윤택은 무언가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준우가 준서 때문에 당한 것이라야 이번 파혼 건이 거의 전부고, 그 외의 것은 오히려 준서가 준우를 위해 양보한 것이 많았다.
그러나 이미 자격지심이 가득한 준우에게 그런 것이 들어올 리가 없었다. 게다가 이번 일의 타격 때문에 아무 것도 생각이 안 나는 상태이기도 했다.
“일단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파혼은 내가 먼저 하려고 한 거다.”
“아니 왜요? 그것도 3년 있다가 왜 결혼 앞두고 파혼입니까? 준서가 사고친 거잖아요. 그리고 자기 잘못 생각 안하고 민 의원님 만나서 오히려 덮어 씌우고.”
“함부로 넘겨 짚지 마. 친딸이 아닌 걸 알았는데, 그러면 그걸 그냥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넘어가?”
윤택도 수정이 민 의원의 혼외 자식이라는 것은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민 의원은 당연히 윤택도 아는 줄 알고, 파혼을 통보하면서 더불어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윤택은 준우에게는 이번에 알았다는 것을 숨기고, 그 사실을 알아서 자신이 먼저 파혼을 하려고 했는데 준서가 나서서 이야기를 하다가 일이 이렇게 되었다고 둘러대는 중이었다.
“친딸이건 아니건 뭐가 중요합니까? 사람이 좋으면 되는 거고, 지난 3년 간 아무 일 없었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다 나를 물 먹이려고 저지른 거예요. 약혼만 안했어도 내가 민 의원님께 예비 사돈 소리 들어가면서 친해질 까닭도 없었을 테고, 이렇게 내처질 이유도 없었을 테니까요.”
“우리가 너 힘들게 하려고 그런 게 아니지 않으냐. 좋게 하려다가 어떻게 그렇게 된 건데, 네가 그래도 형인데 잘 봐주면서......”
윤택이 조근 조근 말을 하는 중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말릴 사이도 없이 준우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준서는 막 집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인사를 하는 아주머니에게 공손하게 마주 고개를 숙이는 준서에게 준우가 저벅 저벅 걸어 왔다.
윤택이 말릴 사이도 없이, 준서가 고개를 드는 순간 준우의 손바닥이 날았다.
준서의 고개가 꺾였다.
“하준우!”
윤택이 서둘러 걸음을 옮겼고, 고개를 바로 한 준서는 괜찮다는 듯이 윤택을 보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더 치시겠습니까.”
준서가 준우를 보고 표정 없는 얼굴로 물었다. 꽤 아팠을 텐데도, 붉게 부어오르는 뺨을 손을 들어 매만지지도 않았다.
“너, 이 새끼......”
팔을 쳐드는 것을 윤택이 막았다.
“그만 해라. 내 집에서 이게 뭐하는 짓이야!”
준우가 입술을 씹으며 팔을 내렸다.
그제서야 준서는 얼얼한 뺨을 문질렀다.
“연락 못 받아서 죄송합니다. 그게 이렇게 맞을 정도로 잘못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준서의 말에 준우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뭐야?”
“그러면, 뭐 때문에 그렇게 화가 나셨습니까?”
꼬박 꼬박 존칭을 하기는 했으나 준서의 말에는 누가 들어도 확연히 알 것처럼 가시가 박혀 있었다.
“몰라서 물어? 니가 무슨 짓을 한 건지......”
“파혼 때문이라면, 들으셨을 텐데요. 혼외 자식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저는 약혼녀의 입장에서 말을 한 것 뿐이고 파혼 통보를 한 건 그 쪽이었습니다.”
“뭐야, 니가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고......”
“정신을 못 차린 건 그 쪽이죠. 혼외 자식 취급에 가장 상처 받은 건 수정 씨라고 말한 게 약혼자로서 뭘 잘못한 겁니까?”
“니가 한 약혼이 그냥 범인들이 하는 그런 약혼인 줄 알아? 엄연히 집안과 집안끼리의 약속이다. 그리고 그쪽 집안은 당장 내후년에 대선 치러지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집안이야. 그런데 거기에 니가, 니 따위가, 나를 물 먹이고 우리 집안을 물 먹여? 니가 뭔데, 이 새끼가......”
준우가 준서의 멱살을 잡는 것을 윤택이 말렸고, 곧 일하는 아주머니와 상주하는 운전기사까지 나서서 말리고 나서야 준우는 준서에게서 떨어졌다.
준서는 목이 조금 졸려서 얼굴이 붉어지긴 했으나 눈빛은 여전히 형형했고, 조금도 겁 먹은 빛은 없었다.
오히려 윤택이 그런 준서와 준우를 아슬아슬한 눈으로 보고 있다가 그들 사이에 끼어 들었다.
“길게 말할 것 없어. 준우 너는 그만 돌아가라. 준서랑 이야기를 나눠볼 테니......”
“이야기를 나눠서요. 또 오냐 오냐 하고 마실 거잖아요. 작은 아버지 얘기 들어서 압니다. 지금 학교 엉망 만들고 있는데도 그냥 다 오냐 오냐 봐주고 계시다면서요. 저야 뭐, 상관할 일 아니니 가만있었습니다만...... 이 새끼 이러다 또 그 고등학교 때처럼 미친놈 되면요?”
“걱정하지 말아라. 그런 거 아니다.”
“그런 거 아니긴요. 자기 수틀리면 물불 안 가리는 놈이예요. 그 민 의원 앞에 무릎 꿇리고 다시 결혼 허락 받아내야 합니다. 안 그러고는 지금 방법이 없어요.”
묵묵히 남의 일인 듯이 지켜보기만 하던 준서가 입을 열었다.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는 건 형 생각이겠죠.”
“뭐?”
준우의 눈이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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