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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약혼녀 구출 작전-51화 (51/102)

51. 제가 원하지 않으면 안 왔겠죠2017.07.17.

“유정 쌤, 나가자.”

교사들도 점심 식사는 학생들처럼 급식비를 내고 교사 식당에서 했으나 미리 식당에 이야기하면 그 날 점심값은 제할 수 있었다. 그렇게 가끔씩 교사들은 밖에서 식사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

수업을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고 교무실로 들어온 유정은, 수연이 하는 말에 오전에 상우와 잠깐 나눈 이야기를 떠올렸다.

“어디 아파? 다음에 나갈까?”

수연의 미간이 작게 찌뿌려졌다. 유정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나가요.”

“유정 쌤...... 아니다. 아휴, 내가 참아야지, 내가 잘못한 게 있는데.”

수연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유정의 팔짱을 꼈다.

“그런데 너무 힘들어하지 마. 학교 일도 힘든데 감정까지 그렇게 들쭉날쭉하면 감당이 안 될 걸? 나도 실은 첫 해에 지금 안 계신 선생님하고 썸을 탔었는데...... 아주 죽는 줄 알았어. 다행히 그 선생님이 학교를 옮기는 바람에. 지금은 결혼해서 잘 살더라.”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말에 유정은 얼굴을 조금 풀었다.

“다 한 때야. 되려면 되고 안 되려면 안되고. 그리고 말이지, 내가 음, 좋아는 하지만...... 가까워지면 더 까다로울 거 같아. 아니 가까워지지 말란 얘긴 아니고, 너무 속 끓이지 말라고.”

“까다로운 게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입술이 열리는데, 상우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가시죠.”

내내 이 시간을 기다렸던 듯이 아까보다는 훨씬 좋아보이는 표정이었다.

“가자, 가서 맛있는 거 먹고 스트레스 풀자!”

수연이 유정의 손을 다독이며 말하자, 유정도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 아이하고 화해는 했는데, 그 후로도 저만 보면 계속 짓궂게 굴고 장난 치고 그래요. 집안이 어려운 편이라 애 어머니는 그냥 관심 받고 싶어서 그런다는데, 저도 이제는 너무 힘들어서......”

상우는 고개를 숙였다. 처음에는 상우에게 다짜고짜 욕을 했다고 했었나. 어쩐지 남에게 말하기는 부끄러워서 따로 교무실로 불렀는데 오지도 않고 그 후부터 수업 시간만 되면 대놓고 떠들면서 상우가 말을 시키면 외면을 했었단다.

고민을 하다가 직접 집에까지 찾아가서 학생을 만났고 화해를 했는데 그럼에도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나, 걔 알아요. 작년에 나한테 몇 번 죽었었거든. 그런 애는 좀 밟아줘야 해요. 상우 쌤이 너무 착해서 만만하게 보는 거라니까요.”

수연이 말했다. 유정은 남일 같지 않아서 가만히 상우를 보고 있기만 했다.

“저도 그런 건 알겠는데 지금은 무섭게 해도 들어먹지도 않고. 그 애 때문에 반 분위기도 흐트러지고. 조용히 좀 해 달라고 몇 번이나 부탁을 했는데......”

“부탁이 아니라 혼을 내라고요. 확 잡아야 된다니까? 보니까 그 엄마도 문제네. 좀 봐달라는 거잖아요. 그럴 땐 엄마한테 딱 부러지게 말하고 나서 아예 때려요. 그런 애는 좀 맞아야 해.”

“때리진 않더라도......”

유정이 입을 열었다. 수연이 웃으며 유정을 돌아 보았다.

“유정 쌤도 그러고 보니까 비슷한 고민 하지 않았어? 거기도 민종훈인가? 걔 쫌 유명하던데.”

“마음을 잡는 스킬이 있긴 해야 하더라고요. 저도 수연 언니 말대로 비슷한 상황이었거든요. 교사가 주도권을 안 잡으면, 다른 학생들이 더 불편해하고 피해를 보니까요. 그런데 중요한 건, 윤상우 선생님 지금까지도 최선을 다해서 잘하고 있다는 거예요.”

상우의 미간이 찌뿌려졌다.

“제가 뭘요. 지금까지 계속 망하고 있는데.”

“어떻게든 최선을 다한 건 남는 것 같아요. 저도 계속 헤맸었는데, 그게 지금은 조금씩 양분이 되고 있어요. 고민하고 제 생각을 만들어가는 양분이요. 어차피 계속 교사 할 거 잖아요. 그러면 그런 양분들이 선생님을 좋은 교사로 만들어 갈 거예요. 이미 좋은 선생님이시고요.”

“와......”

수연이 유정을 물끄러미 보다가 눈웃음을 지었다.

“내가 이런 말 해도 되나 싶은데.”

어쩐지 무슨 말일 것을 알 것 같아서 유정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이면 안하는 게 좋을......”

“유정 쌤에게서 교장 선생님의 향기가 나.”

유정은 입술을 꾹 물었다. 상우의 눈이 반짝였다.

“맞아요, 저도 그런 생각 했는데.”

“쓸데없는 생각인 거 같아요. 제가 뭐가요?”

발끈한 유정을 보고 수연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만큼 성숙해 보인다는 거야. 여하간 상우 쌤, 힘내요. 우린 상우 쌤 편이니까. 그리고 유정 쌤 말대로 상우 쌤 좋은 선생님이니까...... 괜히 위축되지 말고요. 누구나 처음은 있는 거잖아요.”

“고맙습니다.”

상우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이런 얘기 남들 앞에서 하는 것도, 제가 능력 없는 사람인 거 같아서 괜히 부끄럽고 그랬어요. 두 분은 어쩐지 잘 들어주실 거 같아서.”

“언제든지 해요. 뭐 큰 도움은 못 되어도, 들어줄 귀는 있으니까.”

수연이 푸근하게 웃었다.

유정은 잠시 고민하다가, 준서가 내준 공문을 그들 앞에 펼쳐 보였다. 아까 손으로 구기는 바람에 구김이 좀 가긴 했으나 읽는 데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 공문이었다.

“이게 뭐예요?”

상우가 공문을 들여다 보았다.

“저, 교사 동아리 지원서예요. 서울시에서 100개 교사 동아리를 지원한대요. 계획서만 통과하면 한 학기에 200만원이 지원되고요.”

“아, 진짜? 아무 동아리나 다 되는 거야?”

“아무래도 교육 활동에 도움이 되는 동아리가 우선 선발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제가 생각한게 있는데요......”

유정은 천천히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대학에서 배웠던 거랑 다르게, 학교에서 매해 학생들 받으면서 제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요. 학생을 대하는 철학이라든가 그런 거, 아니면 교육 심리 같은 것들 대학에서 다 배운 건데 다시 공부하고 싶고, 학생들에게 적용시키고 싶기도 하고. 그것도 아니면 오늘처럼 그냥 고민 이야기하는 것도 좋고요.”

“전 진짜 이런 모임이 필요한 거 같아요.”

상우도 진지한 얼굴로 동의했다. 수연은 두 사람을 보다가 피식 웃었다.

“나도, 학교 경험만 좀 있지 공부를 다시 할 생각은 못했어. 재밌을 거 같네. 그러면 우리 셋이 하는 거야?”

“네, 일단은요.”

“혹시......”

수연이 유정을 보았다. 유정은 아무 말도 듣지 않았으면서 고개부터 저었다.

“우리 셋이에요. 아니면 마음껏 얘기하기도 힘들 것 같......”

“저도 끼워달라고 했었는데.”

난데없는 목소리에 유정의 몸이 굳었다.

“미안합니다. 일 때문에 조금 늦었군요. 식사는 됐고, 이야기나 들을까 했었는데.”

유정은 옆에 서 있는 준서를 차마 바라볼 수가 없었다.

“내가 시간 되면 같이 식사하자고 했었거든. 유정 쌤한테는 미리 얘기 안해서 미안.”

수연이 싱긋 웃었다. 유정은 간만에 먹은 파스타가 다 얹히는 기분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화장실 좀.”

급하게 걸어나가는 유정의 뒷모습을 준서의 눈이 좇았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상우는 아까 했던 말을 준서 앞에서 반복했다. 준서는 깊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요즘 표정이 계속 안 좋아 보여서, 걱정을 했었습니다. 전에 되게 힘들다고 잠깐 이야기하기도 했었고.”

“제가 너무 무능한 선생님인 거 같고, 다른 학생들이 저 때문에 피해 보는 것 같고 그래요. 솔직히, 이번 학기 끝나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고 싶기도 합니다.”

상우는 무거운 말을 토해내고는 묵묵히 앉아 있었다.

“그러면 안되죠.”

단호한 말에 상우의 미간이 모아졌다.

“그렇죠, 너무 무책임한 말......”

“이거 최소 인원이 네 명이란 말입니다. 그러면 다음 학기는 200만원 못 받아요.”

준서가 공문을 들추며 말했고, 수연이 입꼬리를 올리며 준서를 바라 보았다.

“교장 선생님이 농담도 하시네요.”

“농담이 아니라 진지하게 하는 말입니다. 서유정 선생님도 공문을 꼼꼼하게 안 보셨어요. 세 명이면 최소 인원이 안 되어서 돈이 안 나오는데.”

“그럼 저는 동아리 때문에 학교에 남아 있어야 하는......”

“당연하죠. 중요합니다. 200만원 누가 거저 주나요? 줄 때 잘 받아야 하는 겁니다, 이런 건요.”

수연이 푸흣 웃었고 상우의 얼굴도 부드럽게 풀렸다.

그러자 준서의 얼굴도 온화한 빛을 띠었다.

“솔직히 저도 다 경험했던 거라, 뭐라 드릴 말씀은 없네요. 그런데 너무 모든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는 하지 마세요. 중요한 건 선생님이예요. 선생님이 즐겁고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한 겁니다. 정말 선생님을 힘들게 하는 학생이 있다면 과감하게 쳐내는 것도 필요합니다. 학생을 버리라는 게 아니라, 밀당을 하라는 얘깁니다. 너무 당기기만 하면 사람이 지쳐요. 밀어내야 다가오는 게 사람입니다.”

이야기를 하는 도중, 준서는 그러면 자신이 지금 하는 짓이 밀당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공연히 마음이 좋지 않았다.

“밀당, 이요?”

상우의 고개가 들렸다. 수연이 준서의 말을 이었다.

“맞아요, 학생한테 계속 잘해주면 나중에 욕만 먹는다니까요? 기대 심리가 생겨서.”

“교사와 학생도 관계를 맺는 거니까요. 어떤 스킬이라기보다는, 선생님도 사람이라는 걸 보이는 거죠. 힘들고, 상처 받고, 넘어지기도 하는. 너무 완벽해지려고 하지 마세요. 지금만으로도 선생님은 최선을 다하고 있고 그건 우리가 다 알고 있습니다.”

준서의 눈빛이 진지하게 반짝였다. 상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전 다음 수업 바로 있어서 들어가봐야 할 것 같아요. 윤상우 선생님도 들어가요.”

갑자기 수연이 급히 일어섰다. 준서가 같이 일어서자, 수연은 빙긋 웃으며 화장실 쪽을 눈으로 가리켰다.

“유정 쌤 나오시면 아무도 없어서 놀랄 걸요. 교장 선생님은 계세요.”

“저도 일 있습니다.”

“교사 돌보는 게 교장 선생님 일이시잖아요. 윤상우 선생님, 가요.”

상우는 수연이 시키는 대로 일어서서 준서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걸어갔다. 준서는 미간을 모으며 얼결에 인사를 받았다.

시키는 대로 도로 자리에 앉긴 했으나 마음이 썩 시원하지는 않았다.

“어머.”

유정이 걸어나오다가 우뚝 멈추어 섰다.

“수업이 있으셔서 가셨습니다.”

“죄송해요. 제가 너무 오래 있었죠.”

유정은 황급히 가방을 집어 들었다. 준서는 그런 모양을 묵묵히 보고 있었다.

“수업 있어요?”

유정이 눈을 들어 준서를 보았다.

“지금은 없는데......”

“그럼 좀 앉아요. 천천히 갑시다.”

준서는 유정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유정은 불편한 상태로 준서의 맞은편에 앉았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저, 수연 언니가, 아니 이수연 선생님이 부르신 거예요?”

유정은 답답함을 참을 수 없는 듯이 일부러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물었고, 준서는 얼른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유정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아직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공문을 집어들며 나직하게 읖조렸다.

“불렀어도, 제가 원하지 않으면 안 왔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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