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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약혼녀 구출 작전-50화 (50/102)

50. 철저히 놀아난 느낌입니다.2017.07.16.

“뭐가 그렇게 죄송해.”

유정의 몸이 버르적거렸으나, 준서는 어느 것도 용납하지 않는 듯이 힘 있게 그녀의 몸을 끌어 안고 있었다.

“교, 교장 선생님......”

“방해된다면서. 일에 집중하고 싶다면서.”

유정은 몸에 힘을 빼 버렸다. 준서는 가슴이 젖어오는 것을 느꼈다.

“이게 일에 집중하는 거야? 내내 눈치 보고, 감정 하나도 그냥 못 넘기고, 그러면서 무슨 집중을 하겠다고 그래.”

준서는 떨리는 등을 어루만졌다.

다독이는 손길에 유정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맡겨버리고 말았다.

자기가 상처를 준 남자의 품에서, 오히려 눈물을 흘리는 것이 너무나 못난 짓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준서는 아무 말 없이 유정의 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그녀의 등을 가볍게 두들겨 주었다.

그녀가 울음을 그쳐갈 때쯤, 나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이유가 뭐죠?”

유정의 몸이 다시 경직되었다.

“또다시 아침 같은 이유를 대면, 이제는 그대로 안해줄 겁니다. 헤어지고 나서 더 집중 못하는 꼴을 봤으니까.”

“교장 선생님......”

“말해요.”

유정이 준서의 품 안에서 벗어나려고 버르적거렸으나, 준서는 팔을 풀지 않았다.

“이러고서 말해요.”

“준서 씨......”

“안 그러면 또 속을 거 같으니까.”

유정은 버르적거리던 동작을 멈추었다.

도망갈 수 없다고 생각하니 차라리 편안해졌다.

“......길어요.”

준서가 유정을 놓았다.

유정은 얼른 두 손으로 얼굴을 지웠다. 마스카라가 번진 얼굴이 얼룩덜룩할 것 같았다.

물끄러미 그런 유정을 보던 준서가, 품에서 손수건을 내밀었다.

그의 향이 배인 손수건을 유정의 손이 망설이다가 받아 들었다.

“앉읍시다.”

그가 응접실 쇼파로 먼저 걸음을 옮겼다. 유정이 그런 준서를 따라 내키지 않은 걸음을 걷듯이 머뭇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유정을 바라 보았다. 유정은 그가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에게서는 정말 도망갈 수가 없구나.

한숨을 내쉬며 눈을 아래로 깔았다. 창을 투과한 빛이 탁자 위로 번져 있었다.

“수정이 만났어요.”

“역시.”

짐작했었구나. 유정은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고 준서를 바라 보았다.

“수정이, 힘든 상황이예요. 상상하시는 것보다 더. 그래서, 준서 씨가 필요하다고 했어요. 결혼까지는 해야 한다고...... 수정이랑 준서 씨랑 결혼하고 말고까지 제가 참견할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제가...... 그 원인이 되거나 끼어드는 건 용납할 수 없었어요. 저는 수정이 친구고, 그 애의 행복을 누구보다 바라고 있으니까......”

말이 몇 번이나 멈추었다가 다시 시작되었으나 준서는 재촉하거나 끼어들지 않았다. 그 차분한 눈으로 가만히 유정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는 걸까, 의심이 들만큼 감정 없는 눈으로.

“알고...... 계셨어요?”

유정은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끝까지 말할 수 있을까 겁이 났는데, 말을 하고 나니 이제는 끝까지 말을 한 것이 실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미 던져버린 주사위였다.

“어느 정도, 짐작만 하고 있었습니다.”

준서는 평소와 같은 차갑고 단정한 태도로 그렇게 말한 후에, 시선을 내렸다.

“짐작만......”

“유정 씨가 한 이야기로 추측만. 집에서 안 좋은 상황을 겪고 있다는 것 정도만.”

“아, 네......”

준서는 그러고 나서도 묵묵했다.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죄송해요......”

유정은 결국 또 그 말을 뱉고 말았다. 준서의 시선이 다시 유정을 향했다.

“수정 씨가 헤어지라고 했습니까?”

여전히 감정이 담기지 않은 목소리였다. 유정은 그러나 그것이 감정이 담기지 않아서가 아니라, 억지로 억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결혼은 꼭 해야 한다고......”

“도피처로?”

준서의 미간이 우그러졌다.

“네, 그런 셈이긴 한데......”

“그래서, 유정 씨는 자기 좋아한다는 남자가 그저 이용당하는 걸 방관하기로 결정한 거군요, 사랑하는 친구 때문에.”

정확한 지적에 유정의 몸이 가볍게 떨렸다.

“그게 그렇게 말씀하시면 그런 거지만, 수정이 상황이 정말 안 좋아요, 그 애는, 하루 하루가 지옥이라고요. 어제 만났을 때도......”

유정은 침을 꿀꺽 삼켰다. 억울함에 말을 토하긴 했으나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할지는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준서는 끝까지 말을 듣고야 말겠다는 듯이 유정을 뚫어져라 주시하고 있었다.

“멍 들어 있었어요...... 얼굴이......”

유정은 결국 나머지 말을 뱉어내고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가족이, 그런 겁니까?”

그녀의 앞에서는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가 울렸다.

“어머니, 그러니까 그 애 새어머니가요......”

한숨을 쉬는 소리가 났다. 유정은 얼굴이 손바닥 속으로 들어가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묵묵히 앉아 있었다.

“결혼을 하면, 그런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그가 그녀의 동요를 깨우듯이, 여전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좀 낫지 않겠어요?”

“그거야 안해봤으니 하는 말이죠. 그렇게...... 다 큰 딸의 얼굴에 시퍼렇게 멍이 들 정도로 폭력을 행사하는 어머니라면, 결혼을 했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데요.”

유정은 손바닥을 얼굴에서 떼어냈다. 준서는 가만히 유정을 보고 있었다. 아까와는 달리 눈빛에 안타까움과 원망이 서려 있는 것 같았다.

“전에 유정 씨가 그러지 않았습니까. 아이는 부모의 탓을 자신의 탓으로 돌린다고. 평범한 집안의 아이도 그런데...... 가정 폭력이 있는 곳에서 자란 아이는 어떻겠습니까. 그들은 잔뜩 위축되어 있고 또 생각 자체도 왜곡되어 있어요. 그저 감정을 받아주는 것 정도는 몰라도 그들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받아줄 필요는 없다는 이야깁니다. 오히려 그것이 방해가 될 수도 있고......”

냉정한 판단이었다. 유정도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수정과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가까웠던 것이 문제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유정은 수정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에 이미 너무나 많이 공감하고 있었다.

“결혼을 하건 말건, 결단은 수정 씨가 내려야 하는 겁니다. 물론 저와 결혼한다면 제가 수정 씨를 함부로 대하는 것을 방관하지는 않겠죠. 그렇다고 해도 이미 수정 씨가 그들에게 감정적으로 종속되어 있다면 제가 하는 건 한계가 있어요. 근본적인 해결도 안 되고요. 무엇보다, 그러면 저는 뭡니까, 저도 제 인생이 있는데 저를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를 위해서 일생을 보내야 하는 겁니까?”

“수정이가 준서 씨를 좋아할 수도, 있잖아요?”

유정은 너무나 엉뚱한 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조심스럽게 반박해 보았다. 준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수정 씨가 저를 진짜 좋아했다면, 오히려 저를 밀어냈겠죠. 자기로 인해 피해보기를 원치 않을 테니까요. 저를 끌고 들어가 이용하려는 생각은 안했을 겁니다. 그 깔끔한 사람이.”

유정은 도로 입을 다물었다.

그제서야 자기가 한 일이 보였다.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를, 그리고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를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와 맺어줘서 그녀에게 이용당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저 홀로 깨끗해지고 싶었던 마음이 오히려 더 최악의 결과를 낳을 뻔했다.

“솔직히 말씀드려도 됩니까?”

준서는 허리를 꼿꼿하게 세웠다. 그제서야 유정은 그가 내내 숨기고 있었던 감정의 정체를 알았다. 그것은 불쾌함이었다.

“제가 제 의사는 무시당하고 두 사람 사이에서 철저하게 놀아난 느낌입니다.”

유정은 머리를 한 대 세게 얻어 맞은 것 같았다.

몸이 빳빳하게 굳었고 머릿 속은 비어 버렸다.

“아니, 그러니까, 저는, 그런 게 아니었어요, 생각 못했어요, 그렇게 이용 당하는 거라고는...... 그냥 수정이 상황이 너무 딱해서......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서 저는......”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두서 없이 말을 뱉는데, 준서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죄송하지만 제가 지금 부장 회의가 있어서요.”

유정이 고개를 들었다.

“선생님도 수업 가셔야죠. 할 말은 서로 다 한 것 같으니, 서로 감정 정리하는 건 각자의 몫으로 남겨둬야 할 것 같습니다.”

유정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죄송합니다, 이 말도 듣기 싫으실 테지만.”

“네, 별로 듣고 싶지 않네요. 안녕히 가세요.”

준서는 책상 앞으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보며 입술을 깨문 유정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문 앞에 서자 조금 전의 상황이 떠올랐다. 문고리를 쥔 손에 힘을 주지 못하고 결국 돌아섰을 때.

그 때 그냥 나갔어야 했다. 그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줄 알았다면.

아니, 그 전에, 아무 것도 했으면 안되었다. 그와 아무 시작도 하지 말고 엮이지도 말았어야 했다.

차가운 감촉에 손에 느껴졌다. 유정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손에 힘을 주었다. 문이 열렸고 틈새로 다른 공기가 느껴졌다.

입술을 꽉 깨물고 틈새로 몸을 밀어 넣었다. 머리가 어질했고 눈 앞이 캄캄했다.

준서는 책상 앞에 앉은 채로 미동도 없이 있다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자마자 눈을 들었다. 그의 시야로 그녀의 스커트가 짧게 스쳤고 곧 문이 닫혔다.

준서는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너그러운 마음 따위 없었다. 모든 것을 받아주고 이해해주는 사랑 따위도 없었다.

그저 이기적이고 상처 투성이인 나만이 있을 뿐이다. 이런 날 봐달라고 사정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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