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온 몸에 해주고 싶은데2017.07.07.
“아니, 그걸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되죠. 작년에 성헌이도 만만치 않았어요. 그 무단 결석 기록하고 폭력 기록 제가 직접 없앴단 말입니다. 성헌이 아버지가 전화 하셔서요.”
유정은 처음 듣는 소리에 미간을 모았다. 그러나 준서는 표정 변화 없이 남우를 주시하고 있었다.
“교장 선생님 가족이시니까...... 제가 차마 말씀 드리는 게 좀 그렇긴 한데......”
“알고 있습니다.”
“아신다고요?”
“하지만 올해는 제가 교장인 이상 그렇게 넘어가진 않을 겁니다.”
회의실은 조용해졌다.
“복잡한 일이었네요, 이게......”
남우와 용순이 나가고 난 회의실, 유정은 그렇게 말하고 조각처럼 굳어있는 준서의 옆얼굴을 보았다.
“뭐가 말입니까?”
준서는 정말로 아무 것도 모르는 듯이 투명한 시선을 유정에게 던졌다.
“교장 선생님 말씀도 이해는 가지만, 저는 학생 부장님과 학년 부장님 말씀도 틀리지 않다고 생각해요. 교육 주체에도 교사, 학생, 학부모가 다 포함되어야 한다고 배웠고......”
“그 말도 맞습니다만, 문제는 학생이 빠진 자리에 학부모가 자리하는 거죠. 이제까지 그래왔었고요.”
준서는 뻑뻑한 눈을 내리 감았다가 떴다. 계속된 두통은 이미 익숙해졌는데 이제는 눈 앞이 계속 흐려져 왔다.
“그래도, 현실도 따져 봐야죠. 종훈이 아버지도, 그리고 성헌이...... 아버지도. 문제가 커지면 안되는 거였는데.”
“성헌이 아버지는 뭐가 걱정이예요? 작년에 성헌이 그 모양으로 굴 때 부모 중 누구도 감당을 못해서 제가 저희 집에 데리고 살았었어요. 그래서 겨우 마음 잡은 녀석입니다. 그러니 서유정 선생님은 일단 말씀하신대로 선생님이 옳다고 하는 걸 하세요. 나머진 제가 책임질 테니까.”
유정은 자신의 앞에서 싱긋 웃는 준서를 보고 마주 웃고 말았다.
“제 역할이 그런 역할입니다. 학교 외적인 세력에서 학교를 보호하고, 선생님들이 마음껏 자기 이상을 펼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이미 충분히 잘하고 계세요.”
“잘하긴, 김윤호 선생님이......”
말하려는 준서의 입술을 유정의 입술이 막았다. 놀라서 입술을 오무리는 준서의 입술을 가볍게 입술로 누르고 떼려는데, 유정의 뒷목을 준서의 손이 잡았다.
그대로 유정의 입 안에 혀를 밀어 넣어 그녀의 숨까지 모조리 삼켜버리려는 듯이 격정적으로 움직였다. 가슴을 떼미는 힘에 가까스로 유정을 놓아주고는 준서는 원망의 시선을 그녀에게 주었다.
“먼저 시작해 놓고.”
“그거 아니라니까 자꾸 말해서 입을 막아버린 거예요.”
“그럼 계속 말해야 겠네. 김윤호 선생님이.”
유정은 준서를 노려보며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준서는 크게 웃고는 손을 뻗어 그녀의 볼을 쓰다듬었다.
“그게, 그렇게 듣기 싫었어요?”
“잘하고 있다고요. 제 말 믿어주면 안돼요?”
“그렇지만 이런 자리 있으면 원래 못한 것만 보여요. 부족한 것만 보이고. 그리고 나도 알아요, 충분히 대화하지 못했고, 내 뜻대로만 끌어가려고 했던 거.”
“좋은 뜻이고 옳은 뜻이라면 결국은 따라줄 거예요.”
유정은 단단하게 말했고 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도 맞습니다. 하지만 앞으론 조금 천천히 가려고요. 주위도 돌아보면서. 그런 의미에서...... 한 가지 물을 것이 있는데요.”
준서는 그 새 말라버린 입술을 혀로 축였다. 유정은 무슨 말인가 하고 가만히 준서의 얼굴을 집중했다.
“실은 민종훈이 아버지께 연락이 왔습니다. 변호사가 구해질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는데 그래도 당사자 이야기를 들어야 할 것 같아 전화를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서유정 선생님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하길래 저희도 먼저 모욕적인 말을 꺼낸 것과 폭행에 대해서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라고 경고했습니다.”
준서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아랫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별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구나. 유정은 생각하면서 조용히 그가 말을 다시 꺼낼 때까지 기다렸다.
“그랬더니 어차피 서로 맞고 때린 것은 동일하니, 조용히 넘어갔으면 한다고 태도를 바꾸더군요.”
유정은 그제서야 준서가 왜 그토록 망설였는지 깨달았다. 그는 절대로 그냥 넘어가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저는 물론 반대했고, 이런 명백한 폭행을 그냥 넘어가는 선례를 남기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하지만 당사자인 서유정 선생님을 배제하고 제가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과연 옳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준서는 유정이 할 말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말을 하는 것이 미치도록 싫었다.
“옳지 않죠, 당연히.”
그리고 유정은 막 말을 꺼내려고 하고 있었다.
“잠깐.”
준서는 유정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유정이 고개를 흔들어 손을 떼어내며 미간을 모았다.
“무슨 짓이예요, 당사자 배제하지 않겠다면서.”
“솔직해야 합니다. 학교 상황이나 저는 생각하지 마시고요. 종훈이 사정도 생각하지 마시고, 서유정 선생님이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건 이미 했어요. 같이 때렸잖아요. 전 그걸로 됐어요.”
준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예상했던 대답이었지만 직접 들으니 김이 빠졌다.
“그거야 그렇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그리고 눈에는 눈이고 이에는 이죠. 고소해봤자 벌금 얼마 나오고 말 거잖아요? 그런 거 하나도 안 시원해요. 맞았으면 때려줘야죠.”
“그럼 제가 가서 좀 때려줄까요?”
준서의 눈에서 진심을 읽은 유정은 더 참지 못하고 웃었다.
“이미 때렸으니까 괜찮아요.”
“제가 안 괜찮은데요.”
“그리고, 저희 쪽에서 고소하면 그 쪽도 제가 폭행한 거 고소할 거 아니예요? 그러면 저도 귀찮아진다고요.”
유정의 정확한 지적에 준서의 입이 다물렸다. 그 말도 사실이었다.
“그래도, 그냥 넘어갈 순 없습니다. 고소는 당사자가 원하지 않으니 할 수 없더라도, 학교 차원에서 경고 조치는 있을 겁니다.”
이번에는 유정이 말릴 수가 없었다. 그것마저 하지 말라고 하면 준서는 그야말로 폭발해 버릴 것 같았다.
“알았어요. 대신에 너무 심하게 하지 마세요.”
“많이 참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언제 심하게 하는 거 봤습니까?”
유정은 대답 없이 준서를 보았다. 설마 모르고서 하는 말인가. 준서는 그 시선만으로도 움찔해서 알아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부드럽게 경고하죠.”
“부탁이예요.”
“아마 이후로 학부모 때문에 골치 아플 일은 없을 겁니다.”
준서를 물끄러미 보던 유정이 손을 뻗었다. 준서의 뺨을 가볍게 어루만지며 유정은 옅은 한숨을 쉬었다.
“학부모 때문에 골치 아프지 않아요. 교장 선생님 때문에 골치 아프지.”
“제가요? 왜요? 키스하고 싶어서?”
준서의 눈이 장난스럽게 웃었고 유정은 그대로 준서의 얼굴을 밀어 버렸다.
“몸 좀 챙겨요. 약은 먹었어요?”
“아까 보건실에서 챙겨 먹었습니다.”
“약만 먹으면 뭘해. 좀 쉬어요. 교사 휴게실에 누워 있어요.”
“시키는 대로 할 테니까.”
준서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유정은 말없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남자를 뚱한 표정으로 보았다.
“한 번만 안읍시다.”
“뭐야, 또.”
“저한테는 약보다 이게 더 잘 듣는다구요.”
“못살아, 진짜.”
못 이기는 척 유정이 일어서자 준서가 그녀에게 다가서서 그녀의 몸을 당겨 안았다.
“학교에서는 좀 주의해야 하지 않겠어요?”
준서의 품에 감싸인 채 유정이 속삭였다.
“많이 주의하고 있어요.”
“이게?”
“그럼요. 하고 싶은 것의 반의 반도 못하고 있는데.”
유정의 이마에 입술을 대었다가 떼고, 준서는 포옹을 풀었다.
“오후 수업 있어요?”
“오늘 반 학생들하고 이야기하기로 했어요. 성헌이랑 종훈이 문제도 같이 이야기할 거고요.”
“저도 같이 들어가고 싶네요.”
“참아주세요. 대신에 끝나면 이야기 해줄게요.”
“꼭.”
준서가 새끼 손가락을 내밀었다. 유정이 손가락과 준서를 번갈아 보았다.
“약속하자고요.”
“이러지 않아도 지킬 거예요.”
“그래도.”
유정이 마지 못해 손가락을 걸자, 준서가 엄지 손가락을 내밀었다.
“도장.”
“하, 진짜. 장난치는 거죠?”
“싸인.”
어릴 적에나 하는 손장난을 하는 준서의 볼이 씰룩거렸다. 새끼 손가락을 걸고, 엄지 손가락을 마주 대고, 서로의 손바닥에 싸인하듯 검지 손가락으로 이름을 적어 넣고, 마지막으로 서로의 손바닥을 마주 스친다.
“복사.”
“그럼 됐죠?”
“아직.”
준서가 고개를 숙여 유정의 볼에 입을 맞췄다.
“이게 진짜 도장.”
“아휴, 이제 그만.”
“알겠습니다.”
준서가 장난스레 대답하며 손바닥으로 유정의 머리를 부볐다. 유정이 손을 치우자, 그 손을 당겨 자신의 품에 유정을 안고 정수리에 입술을 박았다.
“이것도 도장.”
“그만 해요.”
“온 몸에 해주고 싶은데.”
유정이 준서를 밀쳤다. 준서는 큰 소리로 웃으며 유정을 놓아 주었다.
“교장 선생님도 약속 지켜요. 교사 휴게실에서 한 시간 이상 누워있기.”
“알겠습니다.”
준서가 예의 바르게 답했다.
회의실 창으로 빛이 비추어 들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빛에 얽혀 들었다.
유정이 샐쭉 웃고는 몸을 돌렸다. 슬리퍼를 신은 발이 바닥을 스치는 소리에 이어 문이 열렸다.
준서는 묵묵히 서서 문이 닫히는 모양까지 보고 있었다.
갑자기 현기증이 났다. 한 손으로 이마를 짚은 준서는 입가에 그려진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로 유정이 나간 문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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