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지금 이 방법은 아닙니다.2017.07.04.
교실 분위기는 생각보다 냉랭하지 않았다. 오히려 교무실보다 더 온화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유정은 마른 침을 삼키고 교실 안을 둘러 보았다. 다행히 성헌은 늦지 않게 나왔다. 종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유정은 픽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색한 시선들이 교차했다.
“주말은 잘들 보냈나?”
유정은 그렇게 물으며 교탁 앞으로 걸어 나왔다.
자신이 할 일은, 이 곳에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무실은 없어도 되지만 교실은 없으면 안된다. 학교의 주인은 그들이니까.
그러니 나는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면 된다. 교무실에서 어떤 취급을 당하든, 너희들만 있다면 난 괜찮아.
“선생님은요?”
누군가 말했고 유정은 다시 미소했다.
“나는 잘 보냈어.”
“남자 친구랑요?”
누군가 또 물었다. 유정의 입가에 미소가 진해졌다.
“응.”
“와아! 남자 친구 있었어요?”
“누구에요, 누구?”
학생들은 점차 시끄러워졌다. 유정은 웃음을 감추고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그걸 내가 왜 말하냐?”
“뭐야, 말해주세요!”
“누구예요? 사진 보여주세요, 사진!”
학생들의 아우성을 묵묵히 보고 있던 유정은 표정을 굳혔다.
“지난 주에, 우리 다들 힘들었죠?”
학생들이 입을 다물었다. 다시 처음처럼 어색한 공기가 감돌았다.
“내가 착각을 했어. 첫 담임이라서. 마음은 그게 아니었는데, 하다 보니 실수가 있었던 것 같아요.”
유정은 솔직히 인정했다. 학생들의 서로 시선을 교차했다. 이 선생님은 좀 다르다, 이제까지 그들이 만나온 선생님들은 잘못해도 대개 그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학생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윽박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유정은 그러지 않았다. 첫 만남 때부터, 그녀는 진심을 보여 주었다.
비록 학생을 대하는 것은 좀 서투르지만, 그래도 아주 못 믿을 사람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난 좌절하지 않아요. 여러분들을 믿고, 또 날 믿으니까. 잘해낼 수 있을 거예요, 우리는.”
유정의 눈이 반짝였다. 그러자 학생들의 눈도 덩달아 반짝거렸다.
포기하지 않는 그녀의 의지가, 학생들의 마음에도 울림을 주고 있었다.
“오늘 수업 시간에는, 수업을 하지 않고 여러분들이 나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 그리고 내가 여러분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 같이 나눌 거예요. 하지만 다 나눌 시간은 부족하니까 수업 시간 전까지 나눠준 종이에 하고 싶은 말을 적어서 수업 시간에 제출하세요.”
“하고 싶은 얘기요?”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우리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말인가.
“어떤 이야기도 상관 없어요. 대신에 존중의 마음을 담아서. 욕이나 이런 거 쓰지 말고.”
유정의 말에 학생들이 와하하 웃었다.
유정도 덩달아 웃는데, 갑자기 교실 앞문에 노크 소리가 울렸다.
꽤 거센 소리라 웃음 소리는 뚝 그쳤다.
“누구시죠?”
유정은 불안감을 느끼며 앞문으로 걸어갔다.
문이 열렸다.
문 저 쪽에는, 민종훈과 그의 아버지가 잔뜩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그건 수락할 수 없습니다.”
준서는 미간을 좁혔다. 윤호는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준서를 보고 있었다.
준서가 알기에, 윤호야말로 정인기와 상극이었다. 그런데 인기의 자리를 내준다는 데도 윤호는 그것이 싫다고 하고 있었다.
“학기 중 인사 이동이라서 꺼리시는 겁니까? 하지만 정인기 선생님은 분명 부정을 했습니다. 그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고요.”
“교장 선생님께서, 지금 상황을 잘 모르시는가 봅니다.”
윤호는 옅은 한숨을 내쉰 후, 시선을 허공에 던졌다.
“그저 다 바꾸고 고치면 개혁이라고 생각하시는 거겠죠. 그런데 지금 교무실에서는 교장 선생님에 대한 불만이 매우 높습니다. 오히려 이번 사태를 두고 정인기 선생님의 편을 드는 교사들이 대부분인 형편입니다.”
준서는 말없이 윤호를 바라 보았다. 그것이야말로 작년까지 윤호가 당했던 일이었다. 그는 교무실 내의 왕따였고, 아무도 그와 식사를 하거나 말을 하지 않았었다.
“저는 인기나 얻으려고 여기에 온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소통은 하셨어야죠.”
윤호는 질책이 섞인 목소리를 뱉었다. 준서는 입을 다물었다.
“교장 선생님께서는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리셨어요. 교사들, 수업에서는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분들입니다. 실제로 수업을 잘하건 못하건 간에 말이죠. 그건 선생님들의 자존심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교장 선생님께선 그 자존심을 건드리셨어요. 수업 계획서를 내라고 공개적으로 말씀하시고 실력을 보이라고 호통까지 치셨습니다. 그 의도는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만...... 그 일로 교사들의 마음을 얻는 데 교장 선생님은 이미 실패하신 겁니다.”
준서는 자기도 모르게 시선을 내리 깔았다. 윤호의 말이 회초리처럼 그를 내리치고 있었다.
“맞습니다, 우리 학교 수업 엉망이죠. 이 동네에는 소문이 다 났더군요. 그래서 왜 그러셨는지 알고...... 또 교장 선생님께서 그렇게 하신 후에 수업의 질이나 평판이 좋아진 것도 사실이지만...... 부작용이 너무 커요. 지금 교무실에서 교장 선생님 편은 아무도 없습니다.”
“제 편을 만들고자 한 일은 아니었습니다만......”
준서는 말을 하면서도 제대로 끝맺음을 할 수 없었다. 온 몸이 화끈거렸다.
“압니다. 저도 작년까지 경험해 봐서 아는데요...... 한 교사가 정의를 말할 때와 교장이 그럴 때는 완전히 달라요. 교장은 그 직책만으로도 권위를 가지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이 자신을 함부로 휘두른다고 생각할 때에 당연히 반발심이 커지죠. 거기에다가 기존의 세력이 그대로 남아 있을 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면, 그 기존의 세력은 어떻게 뿌리 뽑을 수 있겠습니까? 계속 학교를 좀먹고 있지 않아요?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간단 말입니다.”
준서는 간절한 눈으로 윤호를 보았다. 윤호는 묵묵히 준서의 시선을 받아내다가 침울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이 방법은 아닙니다.”
준서는 손을 이마로 가져갔다. 입술은 계속 마르고, 누가 머리를 망치로 치는 것처럼 통증은 심해졌다. 그러나 그 고통보다 더 심한 것은 마음의 고통이었다.
나는 대체 지금까지 뭘 한 건가.
왜 내 마음은 알아주지 않나.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 것은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같이 마음을 모아 학교를 위해 일해주어야 하지 않나.
“사람의 생리가 그렇습니다. 옳은 것이 아니라 편한 것을 구하기 마련이고, 옳고 그름을 말하는 사람보다 자기 말을 들어주는 사람을 더 따르게 마련이죠. 지난 교장 선생님은 그다지 하는 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교사들을 건드리지도 않았어요. 조용히 자기 챙길 것만 챙기신 분이죠. 그러니 교사들도 크게 마음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분 때문에 학교는 엉망이 됐습니다.”
“아주 엉망은 아니었습니다. 교사들 중에는 알아서 잘하는 분들도 계시니까요. 저 또한, 한 번도 수업 준비 허투루 한 적 없습니다.”
윤호의 수업과 업무 처리는 정평이 나 있었다. 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윤호 선생님의 경우는 그렇겠지만...... 그래도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선생님들을 그럼 그냥 두고 봐야 한다는 겁니까? 그건 제 직무 유기 같아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윤호는 잠자코, 준서의 타고 있는 눈을 보았다. 자신의 젊은 시절을 닮은 눈이었다. 그래서 더 지켜 주고 싶었다.
지금 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윤호는 불편하기 그지 없었지만 준서가 조금이라도 알아 듣기를 바라서였다. 듣기 좋은 이야기만 하는 것이 그로서도 편했다. 이제는 그만 불편한 이야기는 안하고 싶기도 했다.
그래도 이대로 둘 수는 없었다. 그것이야말로 윤호 스스로의 직무 유기였다.
“그냥 두고 보라는 말이 아니라, 방법을 달리 하셨으면 하는 말입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을 때는 상관이 없겠지만, 일단 개혁이라는 칼을 꺼내셨으면 소통도 함께 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혼자 앞장 서 가다가 결국은 아무도 따라오지 않는 것을 보게 되실 겁니다. 힘으로 누르려고 하지 말고, 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으십시오.”
준서는 미간을 모은 채로 탁자의 어느 구석을 보고 있었다.
“교장 선생님께서도 제가 지금 드리는 말씀, 별로 좋게 들리지 않으시겠죠. 그런데 지금 교사들은 교장 선생님 오시고 나서 내내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분들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어차피 함께 가야 하는 사람들 아닙니까.”
준서는 입술을 깨물었다.
누구보다 고집이 강한 윤호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모르지 않았다. 모든 일에 박수를 받을 필요는 없지만, 함께 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도 리더의 할 일이었다.
따지고 보면, 그 역시 할아버지와 다를 것이 없었다. 힘으로 누르려고 하고, 자신의 말을 듣기를 바랐다.
할아버지 앞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서겠노라 다짐했던 내가, 교사들의 힘은 인정하지 않았었구나. 그들도 스스로 서고 싶었을 텐데. 내가 일으켜주려고만 했었다.
“그래서, 김윤호 선생님께서는 부장 자리는 거절하시는 겁니까?”
준서는 복잡한 머리를 한 손으로 누르며, 화제를 다시 원래대로 돌렸다. 일단 확실히 할 것은 하고 다음을 생각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럴 수밖에요. 제가 지금 그 자리로 가면 저는 둘째 치고 교장 선생님에게서 교사들의 마음이 완전히 돌아서게 될 테니까요. 학기 중의 인사 이동도 말이 많은데 이런 상황이라면 더 심하겠죠. 지금 서유정 선생님도...... 곤란한 상황에 있습니다.”
“서유정 선생님이요?”
준서는 퍼뜩 놀라며 윤호를 정면으로 보았다.
“정인기 선생님이 대놓고 무시를 하라고 하는 바람에...... 지금 그 분과 말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아니, 어떻게......”
“정인기 선생님이 교장 선생님께 쌓인 것을 서유정 선생님께 푸는 거겠죠.”
준서는 가슴 속에 울컥이는 울분을 애써 참아냈다. 지금 감정을 보이면 윤호에게 오히려 이상하게 여겨질 것 같았다.
윤택이 준서에게 정인기를 조심하라고 했던 이유가 그제서야 보였다. 그는 이미 교무실에서 자기 세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준서는 그런 인기를 견제할 만한 힘이 없었다. 윤호의 말대로, 그는 이미 교사들을 모조리 적으로 만든 것이었다.
깊은 후회가 가슴을 쳤다.
“자책하실 일은 아닙니다. 원래 그래왔던 사람이고요. 워낙 신입 괴롭히는 걸로 유명하기도 했습니다. 이 일이 아니었어도 언젠가는 그랬을 겁니다.”
윤호가 달래는 듯이 말했으나 준서에게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준서는 눈 앞이 아득해지는 것을 애써 참아내며, 부르쥔 주먹을 떨고 있었다.
가장 원망스러운 것은 나다.
그저 명령 하나로 쉽게 되리라고 믿었던 순진함이 모든 일을 그르쳐 버린 거다. 결국 아무 죄 없는 그녀가 모든 잘못을 뒤집어쓰게 만들었으니까.
“힘을 내십시오. 그래도 전 교장 선생님 편이니까요.”
다시 고개를 앞으로 하니 윤호는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준서는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어려운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교장 선생님이 훌륭하신 분인 것도 믿고, 학교를 결국 바꾸실 분이라는 것도 믿습니다.”
다시 고개를 든 곳에 윤호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갑자기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서 준서는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이 사람은, 열악한 상황에서도 홀로 버텨 온 대나무 같은 사람이구나. 어떤 보상도 없이 그저 학교와 학생만 바라고 달려온 사람이구나.
“앞으로 언제든지 하실 말씀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준서의 말에 윤호가 그러겠다고 말하려고 고개를 막 끄덕였을 때였다. 누군가 강하게 교장실 문을 두들겼다.
“교장 선생님!”
다급한 목소리에 준서의 몸이 벌떡 일으켜졌다.
“무슨 일입니까?”
벌컥 문이 열리고 들어선 사람은 학생 부장 교사였다. 사색이 된 얼굴이 파리해져 있었다.
“저, 그게......”
“왜요?”
준서는 심상치 않은 일이 터졌음을 직감하고 학생 부장에게 다가갔다.
“저, 그게, 학부모가 찾아왔는데......”
“그래서요.”
“학부모가 교사를 폭행해서......”
“네?”
준서가 눈을 크게 떴다.
“누가요? 누구 부모님이 찾아왔고 누가 폭행을 당한 겁니까?”
“저, 민종훈 아버지가 찾아오셔서...... 서유정 선생님이 지금......”
“어디 있습니까?”
준서는 이를 악물고 감정을 다스렸다. 찾아올 줄은 알았으나 그런 사태까지 갈 줄은 몰랐었다. 조금 더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지금은 일단 보건실에서 쉬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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