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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약혼녀 구출 작전-30화 (30/102)

30. 제가 좋아합니다.2017.06.24.

유정은 집 밖에 서 있었다. 초조함 때문에 자꾸만 발이 동동 움직였다.

집 안에서는 난리가 났다. 친구 아들 결혼식에 갔던 유정의 아버지 진구는 거기에서 유원의 친구를 보았다. 알고 보니 그 친구 아들이 유원의 친구와도 아는 사이였던 것이다. 몇 번 집에 놀러왔던 적도 있어서 인사를 나누다가, 진구는 이런 말을 듣고 말았다.

“그런데 유원이는 언제 학교 나와요? 군대 갔다왔다는 말만 듣고 계속 못봐서요. 어디 외국 나간 거예요?”

진구는 그럴 리가 없다고 말하며 좀 더 자세한 사정을 물었다. 그러자 유원의 친구는 당황해하면서 군대 간 이후 학교에서 본 적이 없다고 솔직히 대답했다.

집에 돌아온 진구는 유원이 어디 갔냐고 노발대발했다. 평소에는 다정하고 살가웠으나 한 번 화가 나면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사람이 진구였다. 특히 유원은 아들이라고 더 엄하게 대해서, 유정이 몇 번이나 그러지 말라고 말하곤 했었다.

전화 통화도 되지 않아, 유정은 유원을 기다리느라고 밖에 나가 서 있는 중이었다.

유정 어머니 혜신은 진구를 달래는 중이였고, 유정은 아픈 다리를 굽혔다 펴면서 간절하게 유원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니까, 내가 진작 말을 하라고 했지, 아휴, 내가 그 자식 때문에...... 전화는 왜 안 받아!”

벌써 밤 10시가 넘어가는데 이 녀석은 왜 오지를 않을까. 유정은 머리를 거칠게 넘겼다. 아마 공연을 하고 뒤풀이 중일 것이다. 이런 날은 밤 12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오곤 하는데. 보통은 가볍게 혼나고 말았을 테지만 오늘은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아휴, 진짜 이 새끼!”

답답한 마음에 옆에 있던 돌멩이를 걷어 찼다. 돌멩이가 그녀의 발을 맞고 툭 튀어서 어디론가 날아갔다. 내가 그렇게 힘을 줬었나. 무심결에 돌멩이의 동선을 좇던 유정이, 놀라 고개를 돌렸다.

하필이면, 웬 남자 가랑이 사이로 날아간 까닭이었다.

“뭐하시는 겁니까?”

익숙한 말소리에 고개를 든 유정은 비명을 지르며 물러섰다.

“뭐, 뭐야, 왜, 왜 여기 서 있어요, 왜!”

“알고서 찬 거 아니었어요?”

준서는 피식 웃으며 유정에게 다가섰다. 유정은 눈썹을 찡긋했다. 평소의 단정한 행동이 아니었다.

“아, 알고서 차다니, 가요, 왜 자꾸 와요!”

“아, 제가.”

준서가 걸음을 멈췄다.

“놀라서요.”

“네?”

“다짜고짜 거기를 돌로 가격하니까.”

“아니 내 쪽으로 교장 선생님이 오신 거죠. 그리고 여긴 우리집인데 왜 왔어요? 안 그래도 심란한데!”

“안아줄 땐 언제고......”

준서가 투덜거리며 물러섰다. 평소와 너무도 다른 태도에 유정은 입을 딱 벌렸다. 이 남자, 진짜로 취했구나.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람. 유정은 팔짱을 끼며 준서를 노려보다가, 지금 상황에 빠져서 깜박 잊어버린 어제의 실수를 떠올렸다.

“아, 아니, 혹시, 그것 때문에 왔어요?”

“뭐 때문에요?”

준서의 눈이 싱글거렸다. 위험해. 유정은 뒤로 물러섰다.

“아, 아니, 내가 막 반말해서, 그것 때문에......”

“저도 반말했잖아요?”

“아, 그렇죠, 그런데 왜 왔어요!”

준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에서 웃음기도 지우고, 묵묵히 유정을 보고 있었다. 유정의 미간이 모아졌다.

“왜 그래요?”

“어젠 되게 자신감이 있었는데.”

“네?”

“그런데 다 알고 나니까 힘이 빠지네요.”

아무도 모를 소리를 하고는 준서는 피식 웃었다. 무슨 일이 있구나. 유정은 가만히 준서를 살폈다.

“무슨 일이에요?”

준서는 대답 없이 멍한 눈으로 허공을 보았다.

“뭐야, 물어보니까 폼이나 잡고. 말을 해요, 그래야 마음이라도 편하지.”

유정이 다가와 준서의 팔을 잡았다. 유정이 흔드는대로 가만히 있던 준서가, 갑자기 그녀의 다른 한 팔을 잡고 자신의 몸으로 끌어 당겼다.

순식간에 준서의 품에 안긴 유정은 얼떨떨한 기분으로 가만히 있었다. 뿌리쳐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뭐, 뭐하는......”

“이러려고 왔어요.”

준서가 나직한 소리로 속삭였다.

“그냥 이렇게 좀 안기고 싶어서.”

어쩐지 외로워 보이는 목소리였다. 유정은 망설이다가 준서를 마주 안아 주었다.

“내가 뭐 프리 허그하는 사람도 아니고. 어제 한 번 그랬다고 이제 심심하면 이럴 건가봐요.”

“심심해서 그런 건 아닌데. 지금 하나도 안 심심해요. 머릿 속이 오히려 터질 거 같으니까.”

준서는 그렇게 말하고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마치 그녀의 향기를 취하듯이.

유정은 술냄새와 그에게서 늘 나는 페라리 향수가 섞인 묘한 향기를 맡으며 그녀야말로 취하는 기분을 느꼈다.

“뭐 때문에 그러는지는 말 안할 거고요?”

준서는 포옹을 느슨하게 하고 묵묵히 유정을 보고 있기만 했다.

“말을 해요, 해야 속이 편하다니까요?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유정이 투정 부리듯이 말하는 것을 보던 준서가 눈꼬리를 가느다랗게 휘며 웃었다. 가까이서 보는 그는 더욱 매력적이었다. 유정은 취한 그에게서 느껴지는 섹시함과 농도 짙은 숨소리가 그녀를 더 달아오르게 하고 있음을 느꼈다.

“다람쥐.”

그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

“네?”

유정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순간, 준서의 입술이 유정의 입술을 덮었다.

유정은 잠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지금 이것이 무슨 상황인지 해석할 수도 없었거니와, 해석하기도 전에 입술에 닿은 촉촉한 것이 그녀의 혼을 빼놓기 시작한 것이었다.

입술이 뜨겁다고 생각한 동시에 열린 입술 사이로 들어온 말캉한 살덩이가 그녀의 안을 헤집고 내장까지 집어 삼킬 듯이 현란하게 움직였다. 한동안 숨조차 쉴 수 없어서 그녀는 준서의 팔만 꽉 붙들고 파들 파들 떨고 있었다.

그의 손이 그녀의 뒷목을 잡았다. 놀란 그녀를 달래듯이, 부드럽게 그녀를 받친 상태로 준서는 그녀 안의 호흡을 모조리 빨아들일 것처럼 깊은 격정을 토했다.

“누......나?”

난데없이 들리는 목소리에 유정은 준서를 밀쳤다. 준서 스스로도 조금 전의 행동에 놀란 듯 무력하게 유정의 손에 밀쳐졌다. 유원은 유정의 태도와 준서의 당황한 모습에서 대략의 상황을 짐작한 듯이 성큼 성큼 걸어 왔다.

“뭐하는 거야, 누나, 이 새끼랑 무슨 관계야?”

“미안합니다.”

준서는 고개를 반쯤 숙이며 말했고 그 순간 유원이 부르쥔 주먹을 그대로 준서의 뺨을 향해 날렸다.

“유원아!”

유정이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그녀는 이미 준서가 인기를 방어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빠른 동작으로 그는 인기를 제압하고 오히려 역공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무력하게 뺨을 얻어 맞고는 뒤로 물러나 묵묵히 서 있을 뿐이었다.

“무슨 짓이야, 왜 사람을 때려?”

“그런 누나는, 괜찮아? 이 새끼 누구야?”

유원이 유정의 양 어깨를 붙들고는 그녀를 살폈다. 유정의 입술이 부르터 있었다.

“뭐, 뭐야, 누나 입술이...... 이 미친 새끼!”

유원이 다시 주먹을 쥐는 것을 유정이 그의 팔을 잡으며 말렸다.

“그러지 마!”

“신고하자.”

“아니야, 너는 신경쓰지 말고 가!”

“하, 잠깐, 너, 너 교장 아니야?”

유원이 준서의 얼굴을 살피고는 눈을 크게 떴다. 그의 머릿 속에 유정이 마음에 둔 상대가 교장이라고 고백했던 것이 떠올라 왔다.

조금 전의 상황이 유원이 생각하던 그것이 아니었던 걸까. 유원이 유정을 불렀을 때, 상대를 밀친 그녀는 몹시도 당황한 표정으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단순히 행위가 유원에게 들켜서는 아닌 것 같았다. 만약에 그랬다면 유정은 유원에게 뭘 보냐고 화부터 냈을 테니까.

그러나 유정은 입술을 파르르 떨면서 방금 전의 행위에 대해서 잔뜩 겁을 먹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늘 당당하고 멋진 누나가, 남자 앞에서 무력해진 모습에 순간적으로 화가 났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유정이 좋아하던 사람이었다고.

“서유원이 이 자식, 안 들어와!”

혼란에 잠겨 있던 유원은, 곁에서 나는 목소리에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다.

“서유원 너 이럴 때가 아냐, 아빠한테 들켰어!”

유정도 퍼뜩 정신이 들어 유원의 등을 가볍게 쳤다. 그러나 이미 진구는 지척에 다가와 있었다. 밖이 소란해서 내다보다가 유원이 왔다는 것을 알아버린 것이었다.

“너 이 자식! 당장 안 들어와!”

“아, 아버지, 제가 실은 과제 때문에 늦게......”

“과제? 이 자식아, 나가지도 않는 학교에 무슨 과제야! 다리몽둥이 부러지기 전에 당장 들어와!”

진구는 유원의 뒷덜미를 잡고 집 쪽으로 끌었다.

“반성하고 있어!”

유원과 함께 집으로 들어갈 줄 알았던 진구가 아파트 입구에서 유원의 뒷덜미를 놓고 가볍게 집 쪽으로 밀었다. 그리고 다시 유정과 준서 쪽으로 걸어왔다.

그 때까지 유원이 어떻게 될까 걱정이 되어 보고 있던 유정은, 뜻밖에 진구가 자신 쪽으로 걸어오자 긴장하며 준서를 힐긋거렸다. 준서도 아직 발걸음을 돌리지 않은 채 그대로 서 있었다.

진구는 유원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특공대 출신의 그는 집안에서는 누구보다도 자상한 아버지였으나 누가 식구들을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용서하지 않았다.

“자네는......”

진구의 시선이 준서를 향했다. 준서는 꾸벅 고개를 숙여 보였다.

“누구지? 우리 유정이하고는 무슨 관계고.”

“저, 아빠, 그러니까 내가 설명......”

유정의 말을 끊고 준서가 짧게 대답했다.

“교장입니다.”

진구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교장? 나이가?”

“서른 둘입니다.”

“서른 둘에 교장?”

“할아버지 빽으로 들어와서요.”

공손했으나 잘보이려는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이는 대답이었다. 유정은 가느다란 한숨을 쉬었다. 오늘 관을 하나 짜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두 개 짜야 할 것 같았다.

“할아버지, 빽이라고?”

“네, 할아버지께서 신영 재단 이사장님이십니다.”

“허허, 그걸 지금 자랑이라고......”

진구의 눈에 경멸의 빛이 어렸다. 자수성가한 진구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가 금수저였다. 노력 없이 자리 차지한 놈들은 다 엉덩이를 차서 내보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래서, 지금 유정이랑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건가?”

“아빠, 그만해요. 그냥 학교 일 때문에 잠깐 이야기할 게 있어서......”

“학교 일 때문에 토요일 밤에 술 마시고 갑자기 찾아온다고?”

지척이라 술냄새가 진구에게까지 이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유정은 입술을 잘근 씹었다.

“그 학교는 그런 학교인가 보지? 교장 자리를 능력도 없는 젊은 놈한테 던져 주고, 그 놈은 교사들한테 찝쩍거리기나 하고.”

진구의 냉랭한 눈빛을 받은 준서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아빠, 지금 보신 것만 가지고 그러지 마요. 교장 선생님 지금 일 되게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리고 오늘 일은 나한테 좀 맡겨요. 무슨 일 있어서 이런 거니까.”

유정이 진구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그러나 평소 같으면 못 이기는 척 알겠다고 할 진구가 오늘은 단단히 화가 난 듯이 준서를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우리 딸하고는 무슨 관계야?”

“아빠, 내가 얘기한다고요.”

유정은 진구의 팔에 팔짱을 끼며 그의 몸을 돌리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그의 몸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애가 달았을 때였다.

“제가 좋아합니다.”

유정의 시선이 준서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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