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좋은 선생님이 될 겁니다2017.06.02.
준서가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말은, 실상 그가 교사들을 알게 모르게 다 보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니, CCTV를 설치했나, 그걸 어떻게......”
“설치 안해도 너무 잘 알겠던데요. 식사 시간은 한 시간인데 두 시간 나가서 드시고. 일은 부원들에게 다 맡기고.”
주위가 싸해졌다. 인기는 불룩불룩한 얼굴을 쳐들고 준서를 노려보았으나, 그 입은 꾹 다물려 버린 채였다.
“무언가 주장을 하려면 주장을 하는 본인이 모범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해야 할 것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자기 주장만 강한 학생의 말은 교사도 들어주지 않죠. 정인기 선생님도 그런 학생에게는 따끔한 선생님일 텐데요.”
“하......”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에 적용을 시켜 버리니 인기는 더 할 말이 없었다. 자기 할 것은 하지 않으면서 말만 많은 학생을 좋아하는 교사는 없었다. 인기도 그런 학생들은 더 혹독하게 다루곤 했었다.
“내, 내가 학생이라는 겁니까, 지금......”
“학생은 가르칠 여지라도 있으니 낫다고 해야 할까요. 다 배운 어른이 그렇게 행동하면 어쩌라는 건지......”
조금도 상대의 감정에 동요하지 않은 채 자근 자근 상대를 밟고 난 준서는 눈을 돌려 다른 교사들을 바라 보았다.
준서는 침묵하는 그들의 대부분이 자신에게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방금 눈 앞에서 깨지는 인기를 보아서 그런지 섯부르게 나서는 이는 없었다.
“저는 선생님들이 전문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아무나에게 전문가라는 말을 붙여주지 않습니다. 제 요구가 부당하다고 느끼신다면, 겨우 이런 걸로 학교를 휘두르는 것이 아니꼬우면 그런 것에 대응할만한 실력을 갖추시면 됩니다. 그러면 저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겁니다.”
준서는 침착하게 말을 마치고 단상을 내려왔다. 그가 회의실을 나갈 때까지,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메신저로, 교장이 새로 보낸 수업계획서 양식이 도착해 있었다.
“하, 이걸 다 작성하라고? 꼼꼼하기도 하네.”
일반적인 양식이 아니었다. 계획서와 의도까지 꼼꼼하게 작성하도록 만들어진 양식이었다.
“근데 대단하다. 예시 봤어?”
수연은 회의 끝나고 내내 말이 없는 유정을 곁눈질로 살피며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거, 교장 선생님이 직접 작성하신 건가봐. 그런데 내용도 참신하고...... 와, 진짜 수업 이렇게 하면 내가 지금 들어도 재밌을 거 같은데?”
첨부 파일에는 예시 파일도 포함이었다. 유정은 묵묵히 그 예시 파일까지 읽어 보았다.
문득 준서의 인사기록부에 있었던, ‘수업 실기 대회 대상’이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나 이런 말 하면 여기서 쫓겨나겠지만 말이야...... 우리 교장 선생님, 좀 대단하긴 한 거 같애.”
수연이 슬쩍 눈치를 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유정의 미간이 좁아졌다.
“유정쌤은? 아, 하긴 아까 불려가서 혼나고 왔지. 미안.”
“혼난 거 아니에요.”
유정의 목소리에는 울컥한 감정이 배어 있었다. 수연은 그제서야 유정의 얼굴을 살폈다. 보아하니 눈에 눈물까지 맺혀 있는 것 같다.
“이해해 달라고 했어요.”
“뭐?”
수연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 말이야말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누구 이해 구하는 사람 같지는 않았는데, 왜 따로 불러 이해해 달라는 말까지 했는지, 그 대상도 왜 아무 힘이 없는 유정인지.
“모르겠어요. 잠깐, 나갔다 올게요. 혹시 누가 찾으면 연락 주세요.”
답답한 마음에 유정은 휴대폰을 든 채 교무실을 나갔다. 수연은 멍한 얼굴로 그런 유정의 뒷모습을 좇았다.
햇볕이 따사롭게 운동장을 비추고 있었다. 잔디 구장과 그 주변에 둘러진 트랙, 축구 골대와 그 옆의 농구장을 묵묵히 보던 유정은 천천히 구령대 계단으로 내려갔다.
마음이 왜 이렇게 복잡한지 알 수 없었다.
교무실은 교장 욕으로 시끌시끌했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이 정당한 것이든 아니든, 안 그래도 바쁜데 일이 늘어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니다.
수업 계획서를 쓰지 않았다고 수업 준비를 안하는 것도 아닌데, 그런 틀에 가두는 것 자체가 답답하다고 토로하는 교사들도 있었다. 그들의 말 또한 옳다.
하지만 유정은 그들의 말에 동조할 수가 없었다. 아니, 준서가 요구한 것이 그들의 마음에 맞지 않더라도, 적어도 그 마음만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당신들을 해치기 위해서, 괜히 엿 먹이려고 그러는 것이 아님을.
스스로는 피말리는 긴장을 견디며 버거운 싸움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실실 웃으며 ‘무서워 죽겠어요’라고 말하던 것이 마음 속에 떠오르면서 유정은 더 복잡해지기만 했다.
아니 왜 나한테만 그런 모습을 보여서, 나만 복잡하게 만든 거야. 안 그랬으면 나도 다른 선생님들처럼 욕하고 말 것 아니야.
“근무 안하고 뭐하시는 겁니까?”
“엄마야!”
구령대 계단에 서있던 유정은 깜짝 놀라 발을 헛디뎠고, 막 밑으로 떨어지려는 것을 준서가 잡아당기면서 유정의 몸이 준서 쪽으로 기울었다.
코가 단단하고 따스한 것에 눌려, 놀라서 정신을 차려 보니 와이셔츠에 가려진 탄탄한 가슴이 눈 앞에 있었다.
“뭐, 뭐에요, 놔요!”
유정은 팔을 뿌리치고는 당황해서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다.
“아니 넘어지는 거 잡아줬더니.”
“누, 누가 잡아달래요?”
“그럼 도로 밀까요?”
얄미워서 고개를 드니 준서는 싱글 웃고 있다. 뭘 잘했다고 웃어. 이제까지 한 마음 고생이 생각나 유정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고는 미간을 좁혔다.
“아니 지금 웃음이 나요? 농담할 정신은 있어요? 교무실 초토화 만들어 놓고.”
“다행입니다. 오래 살고 싶었는데.”
“아주 원없이 오래 살겠네요. 이천살은 살겠어요.”
준서의 낮은 웃음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유정은 그런 준서를 가만히 노려 보았다.
그래 나 혼자 괜히 마음 졸인 거야. 이 사람은 지금 아무렇지도 않아. 어쩌면 그냥 사람들 고통 당하는 걸 즐기는 새디스트인지도 몰라.
“샌드위치는 마음에 드셨어요?”
준서의 것을 사기 위해, 유정은 일부러 샌드위치 가게에서 점심을 먹었다. 수연까지 덩달아 샌드위치를 먹여서 별로 마음이 좋지 않았으나, 이번에는 제대로 사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
“네, 방금 전에 먹었는데 맛이 좋던데요. 저는 그냥 편의점 샌드위치도 괜찮은데.”
“제 돈으로 산 거에요.”
“네? 왜요?”
준서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냥요. 그냥, 동기 사랑의 정신으로.”
그냥 그러고 싶었다고 하면 이상할 것 같았지만, 진심은 그냥 그러고 싶어서였다. 굳이 말하자면 응원 같은 것이었다. 곧 전교사 상대로 전쟁을 치러야 할 용사에게 보내는 응원. 그리고 내가 살지 못하는 삶을 용기 있게 살아내는 자를 향한 응원.
그러나 그렇게 말하기는 쑥스러웠다.
“그러지 마십시오.”
준서는 정색하고 유정을 마주 보았다.
“뭘 그러지 마요? 어제 교장 선생님도 저녁 사셨잖아요? 어차피 쌤쌤이에요.”
유정은 일부러 아무렇지도 않은 음성으로 그렇게 말하고는 피식 웃어 보였다.
“다음에는 제 점심까지 교장 선생님 카드로 살 거에요.”
“그러세요.”
준서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묵묵히 유정을 보았다.
말은 저렇게 해도 내내 걱정스러운 눈빛이었다. 아까 교직원 회의 때에도 냉랭한 사람들 속에서 홀로 안쓰러운 눈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그런 눈빛에 기대고 싶었을까.
무심코 바라본 창 밖의 풍경에서 그녀가 눈에 띄었다. 힘없이 걷는 것이 신경이 쓰였다.
점심 먹을 시간도 없는데, 그녀를 보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참, 수업 계획서 잘 쓰셨던데요. 이제까지 그런 계획서는 처음이었어요. 양식도 그렇고.”
“제가 만든 겁니다.”
준서의 대답에 유정은 놀라지도 않은 채 그 말을 받았다.
“그럴 줄 알았어요. 수업 실기 대회에서도 계속 수상하시고.”
“그거 되게 힘들게 만든 건데.”
준서는 입을 삐죽 내밀며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공짜로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요.”
“하, 그러면 어디 팔기라도 했어요?”
“팔아도 되죠.”
웃지도 않고 하는 말에 유정의 얼굴이 우그러졌다.
“수업 계획서를 누가 사요.”
“누가 사긴, 그거 보고 연구해야 할 교사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네요.”
“알겠습니다, 교장 선생님, 잘 알겠다고요.”
귀찮은 듯 하는 말에 준서의 눈이 다시 미소를 띠었다.
“너무 복잡해하지 마십시오. 정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시고요. 과목은 달라도 제가 아는 힘껏 도와드리겠습니다.”
“아니, 제가 계획서 때문에 이런 줄 알아요? 계획서는 이미 다 써놨어요. 양식에 맞춰 정리만 하면 돼요.”
유정은 자신의 마음은 전혀 모르고 있을 준서를 향해 입을 삐죽이며 말을 내뱉고는 구령대를 벗어나 학교 건물 쪽으로 걸었다.
“그럼 뭐 때문에 근무 시간에 땡땡이질입니까?”
준서는 그런 유정을 따라 걸었다.
“땡땡이질이라니...... 그런 교장 선생님도 땡땡이 중 아닌가요?”
“그런 셈이긴 합니다.”
“그러면서 뭐. 그냥 안에 있기 답답해서 나왔어요. 누구 욕하는 거 싫은데 계속 욕만 들으니까 머리 아프기도 하고.”
“저 때문이군요.”
“아휴, 내가 진짜, 어쩌다 이렇게 사이에 껴 가지고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유정은 말을 내뱉고 입을 가렸다. 준서의 눈썹이 까딱 움직였다.
“사이에 끼다뇨? 그럼 서유정 선생님은 욕하는 선생님들 편은 아니란 뜻입니까?”
“아니, 그렇다기 보다는. 그냥 동기 사랑의 정신이 있으니까 같이 욕은 안하고 있는 정도죠.”
준서는 잠시 묵묵하게 유정을 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어느새 간지럽게 느껴져 유정은 고개를 돌렸다.
“전 이만 들어가야 되겠어요. 정부장이 또 일 시키...... 그러니까 여하간 저도 할 일 많다고요. 애들한테 전화도 해야 하는데!”
“전화요?”
“반 학생들한테 연락해 보려고요. 개학날에 만나서 바로 시작인데, 그 전에 친분이라도 쌓아야죠.”
“열심이군요.”
“왜요? 이런 거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
의외로 굳은 표정에 유정이 농담조로 말했다. 그 말에 준서의 입꼬리가 올라갔으나, 눈은 여전히 그녀를 뚫어지게 보고 있는 채였다.
상대의 영혼까지 파 먹을 것 같은 깊은 눈빛. 유정의 가슴이 묘하게 고동쳤다.
“첫 담임입니까?”
“네.”
“다른 학교에서도 담임은 안했었어요?”
“네. 그래서 좀 떨려요.”
준서는 말없이 유정의 볼에 어리는 홍조를 보다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좋은 선생님이 될 겁니다.”
“아니, 뭐 그런 당연한......”
그 순간, 봄바람이 불면서 준서와 유정 사이에 무언가가 휙 지나갔다. 그것이 꽃잎인지 나뭇잎인지 알 수 없는 어떤 것이.
유정은 그것이 그녀의 마음에 어떤 작용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갑자기 이렇게 미친 듯이 심장이 뛰지는 않을 테니까.
좋은 선생님이 될 거라는 그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심장에 부딪힌 듯이 되살아오지도 않았을 테고.
“가, 갈게요, 저는......”
옭죄어 오는 긴장을 깨고, 유정은 급히 몸을 돌렸다.
“살펴 가십시오.”
준서도 몸을 돌렸다. 교무실과 교장실은 건물의 양쪽 끝에 위치해 있었다. 유정은 급한 걸음으로 어둑한 건물 안에 들어섰다.
슬쩍 살펴보니 준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미쳤나봐.’
유정은 가슴을 누르며 다시 숨을 삼켰다. 설마. 이건, 이건 말도 안된다.
‘좋은 선생님이 될 겁니다.’
아직도 그의 목소리가 심장에 박혀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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