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 불꽃놀이
“저게 뭐지?”
경성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대낮에 불꽃놀이를 하는 사람이 있나?”
“폭죽이 저리 높이 올라갈 수도 있네.”
경성 남쪽에 위치한 구중탑(九重塔).
반나절을 들여 경성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온 유람객들이 있었다. 높은 곳에 서서 경성을 굽어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절로 벅차올랐다. 막 붓을 들어 벽에 시문을 남기려는데 눈앞에서 새하얀 불꽃이 터지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멍해진 유람객들이 넋을 놓고 바라봤다.
“저거 폭죽인가?”
“그게 말이 되나. 정월 대보름 때 온 경성을 수놓은 불꽃도 삼층탑 높이였는데. 폭죽을 저리 높은 곳까지 쏠 수 있어?”
이와 같은 대화가 이어지는 사이에도 불꽃은 연이어 터졌다. 시문을 지으려던 유람객들의 창작열은 불꽃과 함께 터져 버리고, 폭죽이 어느 정도 높이까지 올라갈 수 있나 다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동문의 성곽 위에서 순라를 돌던 병사들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불꽃을 보고 있었다.
“대낮에도 폭죽을 쏘는 사람이 있네.”
병사들은 떠들어대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성을 돌았다. 우두머리가 걸음을 멈출 때까지.
경성 동문의 감문관이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의 표정이 점점 진지해졌다.
“다들 저것 좀 봐라…….”
감문관이 말했다.
다 봤는데?
병사들은 영문을 몰라 하며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하늘에서는 여전히 불꽃이 팡팡 터지고 있었다.
“폭죽이 저리 높이 올라갈 수 있다니.”
감문관이 경악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불꽃은 높이 올라갈수록 보는 사람을 열광시키기 마련이다. 불꽃 바로 아래에서 구경하는 이들은 그 생생함에 더욱 왁자지껄 떠들어댔다.
성 동쪽에 위치한 넓은 터에 인파가 가득 들어섰다. 저쪽 공터에서 누가 또다시 죽통을 나무 틀에 꽂고 있었다. 경험이 쌓인 구경꾼들은 손을 뻗어 귀를 막으며 불꽃을 기다렸다.
저쪽에 있던 사람들이 죽통에 불을 붙이고 재빨리 달아나는 모습이 보였다. 죽통은 쉭 소리를 내며 그대로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사람들이 폭죽을 따라 고개를 들며 시선을 옮겼다.
펑 하는 굉음과 함께 공중에서 불꽃이 터졌다. 아래에 있던 백성들은 이번에도 열광했다.
“이씨네 점포의 추성(追星: 별을 따라잡는다는 뜻)보다 더 끝내주네.”
“이씨네 점포의 추성은 허울뿐이야. 유성(流星)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려.”
“맞아. 추성이라고 하려면 저 정도는 돼야지. 얼마나 높이 나는지 좀 보라고. 밤이었으면 정말 별을 따라잡았을 거야.”
차 한 잔을 마실 정도의 시간 동안 계속된 불꽃놀이가 마침내 끝나자, 화약 냄새가 진동했다. 폭죽이 터지는 소리에 덮여 묻혔던 울음소리도 이제는 그친 후였다. 관은 땅속에 묻히고 어느새 묘비가 세워졌다.
묘비에는 아무 글자도 쓰여 있지 않았다. 소식은 구경꾼들을 중심으로 금세 퍼져 나갔다.
“세간의 평가를 기다리겠다더군.”
“하긴, 공이 있는 걸 인정도 못 받았으니 좀 억울하겠어.”
“그 사람들한테 무슨 사연이 있는 건데?”
“아니, 그것도 몰라? 이 사람 이거 여태 헛따라다녔군. 그저 술이나 얻어먹으려고 따라온 거야?”
“나야 그렇지. 거리에서는 조금밖에 안 주잖아. 저기 좀 보라고, 술이 두 무더기나 있어. 조금만 기다리면 실컷 마실 수 있을 거야.”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사이, 앞쪽에서 갑자기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동시에 무언가 육중한 물건이 깨지는 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무슨 일이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확인하려는 인파들이 몰려들면서 현장은 또다시 소란스러워졌다.
“내 술!”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러댔다.
“범석두, 실컷 마셔라!”
범강림이 술 두 동이를 들어 묘비 앞에 던지며 외쳤다.
“서무수, 실컷 마셔라!”
와장창 소리와 함께 술 두 동이가 또 깨졌다.
“서납월…….”
“범삼축…….”
“서봉추…….”
범강림이 무덤 앞에 서서 고개를 들며 갈라진 목소리로 필생의 힘을 다 짜내기라도 하려는 듯 목청을 높였다.
한 번, 또 한 번. 한 번, 또 한 번.
아무리 목놓아 불러도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아마도 영원히 없으리라.
앞으로는 목놓아 불러 볼 기회조차 없겠지. 없을 것이다.
“……만인의 마음 하나 되니…… 하나의 원수는 모두의 적이 되리…….”
“……충성과 의리는…… 무소의 뿔처럼 하늘을 찌르니…….”
“……일당천으로…… 필사의 각오로 적군에 맞서리라…….”
“…… 나라를 위하여 백성을 위하여 이 노래를 부를지니…… 적을 죽이고 봉작을 받으리…….”
갈라지고 거슬리는 목소리로 곡조도 맞추지 않고 토해 내는 노래였다. 동시에 술동이가 수없이 깨지고, 술이 무덤 앞을 적시며 흘렀다. 술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또다시 전율했다. 술을 위해 온 사람들도, 불꽃놀이를 보러 온 사람들도, 그냥 여럿이 한곳에 모인 걸 보고 구경 온 사람들도 모두 조용해졌다.
“…… 나라의 명을 받아 계문으로 달려오니…… 군사로 동원되어 머무를 수 없구나…….”
“…… 천금으로 말 채찍을 꾸미고…… 백금으로 칼자루를 장식하네…….”
멀지 않은 곳의 산비탈. 진십삼이 느릿느릿 노래를 흥얼거리며 고개를 돌려 주육낭을 바라봤다.
“내 노래 어때?”
주육낭은 술그릇을 손에 들고 무표정한 얼굴로 저쪽의 인파를 보고 있었다. 진십삼의 목소리가 범강림의 노래를 마음속으로 따라 부르던 주육낭의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주육낭은 콧방귀를 뀌며 대꾸하지 않고 술을 마시려 했다.
“잠깐, 그거 엄청 독한 술이야. 조금만 마셔.”
진십삼이 말했다.
“마셔 봤어?”
주육낭이 진십삼을 보며 묻자, 진십삼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자네 누이는 원칙을 중시하잖아. 오라버니들을 추모하기 위해 빚은 거라며 딱 오늘만 마실 수 있다더니, 딱 오늘만 마시게 하지 뭔가. 오늘이 오기 전까진, 자네가 사람을 시켜 한 사발 받아오기 전까진, 냄새도 못 맡아 봤다고.”
주육낭이 피식 웃었다.
“그래야지.”
주육낭이 술그릇을 들어 단숨에 비웠다. 역시 독한 술인지라 사레가 들려 기침이 절로 나오며 얼굴도 벌겋게 달아올랐다. 진십삼이 웃음을 터트렸다.
“자네도 참. 저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술 먹고 어떻게 됐는지 못 봤어? 취해 쓰러진 사람이 몇인지도 몰라. 그런데도 내 말을 안 믿나?”
“그게 뭐? 그게 무슨 소용인데!”
주육낭이 기침을 하며 손으로 아래쪽을 가리켰다.
“저 사람들, 어차피 그 일엔 관심도 없어. 순전히 구경하러 온 거지. 서무수 형제의 이름조차 기억 못 할 텐데, 저 사람들이 억울함을 풀어 줄 것 같아? 저 사람들의 입으로 서무수 형제의 공과 억울함을 알리겠다? 그 형제들에 관해선 사흘도 못 가 잊어버릴걸? 아니지, 사흘이 뭐야, 내일이면 잊을 거다.”
진십삼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래쪽의 인파를 쳐다봤다.
“단지 구경만 했다면 금방 잊겠지. 하지만 이젠, 그냥 구경만 한 게 아니잖아. 경성 사람들 모두가 궁금해하던 태평거와 신선거, 이춘당의 진짜 주인이 누군지 밝혀졌어. 대낮에 화려한 불꽃놀이도 봤지. 물론 그 두 가지가 전부였다면 기껏해야 보름쯤 떠들고 말 거야. 길어 봤자 한두 달쯤 가려나. 하지만 오늘 구경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술?”
주육낭이 손에 들고 있는 술그릇을 보며 물었다. 그러고는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술그릇을 떨어뜨리더니, 자신도 그대로 푹 고꾸라졌다. 진십삼이 재빨리 끌어안지 않았다면, 주육낭은 그대로 굴러떨어졌을 것이다.
진십삼이 주육낭을 한쪽 옆에 눕히고 팔을 주무르며 중얼거렸다.
“이 녀석, 두 해 못 본 사이에 살이 많이 붙었네. 무거워 죽겠어.”
진십삼은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드르렁드르렁 코를 고는 것도 모자라 수시로 쩝쩝 입맛을 다시며 자는 주육낭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웃었다.
코 고는 소리와 함께 진십삼의 시선은 다시 산비탈 아래로 향했다. 장례를 마친 행렬은 어느새 자리를 뜬 후였지만, 구경하던 이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술이지. 그리 좋은 술을, 세상에 둘도 없는 독한 술을, 딱 한 번 맛봤어. 세상에서 다시 보기 힘든 술이지. 맛본 사람은 잊을 수 없을 거야. 그냥 못 잊는 게 아니라, 그 맛이 점점 그리워지겠지. 맛보지 못한 사람도 잊을 수 없을 테고. 그때 먹어 보지 못한 게 후회스러워서, 잊을 수 없을 거야.”
“얻을 수 없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잊기 힘들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잊혀지지 않을 거야.”
“오늘의 술맛을 떠올리면 오늘 일도 동시에 떠오르겠지. 그럼 무원산의 다섯 형제 일도 떠오를 테고.”
“이 술은, 내 추측이 맞는다면, 오늘부로 무원산이라 불리게 될 걸세.”
진십삼은 산비탈 아래를 내려다보며 몸을 일으켰다. 7월 말의 뜨거운 열기에 그의 옷자락이 휘날렸다.
정말 그 여인은 아무것도 안 했다. 누굴 찾아가지도 않고, 누구에게 부탁하지도 않았다. 울며 하소연하지도 않고, 위에 고하지도 않았다.
그 여인 말대로, 그저 오라버니들을 안장했을 뿐.
하나 이 정도로 떠들썩하게 안장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들어 봐! 잘 들어 보라고! 잘 들으란 말이다! 온 경성 사람들이 무원산을 이야기하고 있어!”
진십삼이 고개를 들고 웃었다. 그의 시선이 성문 안으로 향했다.
황실 사람들도, 조정 대신들도, 관료들도.
모두 들으란 말이다! 들으라고! 온 경성이 무원산을 떠들어대고 있으니!
“지금껏 뒤에 숨어 있던 그 여인이, 단번에 경성 사람들 앞으로 나왔어.”
진십삼이 손을 내밀며 말을 이었다.
“태평 두부, 과로신선, 신의 낭자, 탈영병들의 누이. 아니지, 이 신분이 공개되는 순간 더 많은 일이 절로 떠오를 거야. 똑똑한 사람들은 금세 연관을 짓겠지. 유 교리라든가, 탈영병 사건 같은 일을…….”
거기까지 말한 진십삼은 한숨을 내쉬며 산비탈 아래를 쳐다보았다.
“단번에 그 많은 재주를 공개하다니, 분노가 대단한가 보네.”
진십삼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두부도 만들고, 미식에 일가견이 있으며, 병도 치료할 줄 안다. 천문과 역법을 알고, 이번엔 술까지 빚었지.”
그는 말을 하며 손가락을 하나씩 꼽아 보았다.
“그 여인의 재주에 한 번 놀랄 때마다, 그 여인은 곧 더 놀라운 일을 보여 줬어. 진짜 모르겠네. 이번엔 또 얼마나 신기한 일들이 숨겨져 있을지. 눈이 어질어질할 정도로 정신없고, 봐도 모르겠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벌어질지.”
만취한 채 곤히 잠들어 있는 주육낭을 진십삼이 발로 찼다.
“그걸 어떻게 안 보고 어떻게 외면해? 아쉬워서 떠날 수가 없잖아. 대답해 봐, 안 그래?”
곤드레만드레 취한 주육낭은 진십삼의 발길질에 영문도 모르는 채 어어, 하고 대답했다.
하늘은 다시 고요를 되찾은 지 오래였고, 성문을 지키는 병사들은 벌써 성곽을 두 번이나 더 돌았다. 하지만 동문의 감문관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멍하니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었다.
“폭죽이 어떻게 그렇게 높이 올라가지?”
그가 중얼거렸다. 옆을 지나가던 병사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대낮에 팡팡 터지던 불꽃놀이를 본 후부터 감문관은 쭉 그 상태였다. 사색에 잠긴 것 같기도 하고, 멍하니 있는 것 같기도 한 채로 서서 이따금 같은 말만 되뇌었다.
대인께서 갑자기 여인이 되셨나? 여인처럼 감상에 푹 빠져 계신 것 같잖아?
“그게 왜요?”
보다 못한 누군가가 옆에서 물었다.
“난 그렇게 높은 곳에서 터지는 불꽃을 본 적이 없네. 화약이 그렇게까지 못 올라가거든.”
감문관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병사들끼리 조소가 담긴 눈길을 주고받았다.
“이 대인은 역시 전문가라 원리가 궁금하시군요.”
누군가가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말에 검문관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인상을 쓰며 그 병사를 노려봤다.
검문관도 관리라지만, 경성은 벼슬아치가 길가의 개처럼 널리고 널린 곳이다. 나 같은 최말단의 무관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지.
이 병졸만 해도 그래. 이 녀석은 병졸이고 난 관리면 뭐하나. 이 녀석의 친척 중엔 나보다 높은 관리가 있는걸.
감문관은 잠자코 시선을 거두었다.
“뭣들 하는가?”
멀리서 걸어오던 무리가 물었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상관은 위엄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감문관이 얼른 다가가 영접했다.
“이 대인께서 불꽃놀이를 보고 계셔서요.”
누군가가 웃으며 대답하자, 모두가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이무, 돈을 써서 관직을 샀으면서, 맨날 가업 생각만 하면 쓰나.”
상관이 미간을 찌푸리며 못마땅한 투로 말하자, 감문관은 무안해하며 고개를 숙였다.
“네, 대인. 그런 거 아닙니다.”
“아니면 다행이고. 열심히 해야 장차 다른 직책도 맡지. 그래야 다들 이씨 가문엔 대장부도 있다고 하지 않겠나. 이씨 가문이라고 하면 다들 폭죽조사(爆竹祖師)만 떠올리지 않고 말일세.”
얼핏 격려처럼 들리지만, 옆에서 웃음을 꾹 참거나 대놓고 웃음을 터트리는 이들의 모습으로 봤을 때 역시나 굴욕적인 말이었다.
감문관 이무(李茂)는 경성에서 제일 유명한 폭죽 점포를 하는 이씨 가문 대방의 셋째 아들이었다. 이씨 가문에서 진상한 폭죽을 황제가 흡족히 여긴 덕에 무관 관직을 얻은 터였다. 그는 주먹을 꽉 쥐고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상관이 무리를 이끌고 자리를 뜬 후에야 천천히 허리를 편 이무는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다들 생각은 해 봤을까. 하늘로 쏜 폭죽이 저리 높이 올라갈 정도인데, 그걸 직사로 쏜다면?”
이무가 천천히 중얼거리며 눈빛을 반짝였다.
“대체 어떻게 했길래, 화약이 저렇게 높이 날아간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