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세경 마님이 던진 미끼를 거절하기엔 내 욕심이 너무 크네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그럼 내가 잠시 자리를 피해 드리는 게 낫겠지요? 피를 빠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고 싶진 않을 터이니.”
“아니오. 여기서 똑똑히 지켜봐 주세요.”
세경이 더없이 고요한 눈길로 신부를 응시했다. 태양처럼 불타는 금색 눈이 세경의 시선을 받았다.
“세경 마님과 내 욕심이 이 도령을 어떻게 망치는지 똑똑히 보십시오.”
“듣고 보니 그대의 말이 맞네요. 공동의 죄업이니 함께 시작을 지켜보아야 마땅하겠지.”
그녀가 덤덤히 고개를 끄덕인 순간 불란서 의사 선생이 윤의 목덜미를 물었다. 그새 천장까지 잠식한 신부의 그림자가 검은 비처럼 일제히 쏟아져 윤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세상에.”
세경이 작은 감탄사를 터뜨렸다. 감탄과 함께 뽀얀 입김도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윤의 상처를 덮고 있던 으깨진 꽃잎들이 급격히 낮아진 기온에 일제히 얼어붙었다가 팡 소리를 내며 터지듯 바스러졌다.
가루가 된 꽃잎들 밑으로 드러난 윤의 피부는 흠결 하나 없이 매끈하게 되돌아와 있었다. 죄다 짓물러 뭉개졌던 윤의 손끝에 반들거리는 손톱이 빠르게 자라났다. 꽃잎으로도 미처 지워지지 못한 손등의 붉은 생채기들도 흰 흉터만을 남긴 채 순식간에 아물었다.
“큭……. 으윽……!”
시체와 다를 바 없이 늘어져 있던 윤이 억눌린 신음을 흘리며 눈을 부릅떴다. 초점 없는 윤의 눈동자가 탁한 갈색에서 새빨간 피색으로 변했다.
방 안이 더욱더 어두워지자 눈의 색도 바뀌었다. 엷은 갈색이던 윤의 눈동자가 선명한 핏빛에서 형형한 노란색이 된 순간, 고통인지 희열인지 모를 것이 그의 몸속을 채우다 못해 방 안 가득 흘러넘쳤다. 신부의 그림자와 윤의 그림자가 가시넝쿨처럼 뒤엉켜 새카만 불꽃의 형태로 방 안 가득 너울댔다.
세경은 소름이 이는 팔을 쓰다듬으며 방 안에 일렁이는 그림자의 군무를 감상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어둠이 새로운 일족을 만들어 내는 순간, 이승과 저승의 틈새에 머무는 존재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헉!”
윤이 숨을 헐떡이며 튕기듯 일어났다. 도저히 사람이라 볼 수 없는 움직임으로 펄쩍 뛰어오른 그는 어두운 방구석에 등을 붙이고 서서 눈을 부릅떴다. 유난히 창백한 피부에 입술만 선명히 붉었다.
“이제 정신이 드나요?”
세경의 목소리를 따라 잠시 그녀에게 닿았던 윤의 눈길이 이내 그림자가 출렁이는 천장으로 움직였다. 크게 흔들리는 동공이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윤은 경악 어린 눈동자로 온갖 곳을 쳐다보면서 자신의 팔다리를 더듬었다. 기다란 손가락이 곧게 뻗은 그의 목에 닿았다. 윤의 손은 금세 목덜미에서 흘러내린 피로 질척해졌다.
“들리지 않던 것이 들리고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일 게야. 혼란스럽겠지.”
차분한 걸음으로 윤에게 다가선 불란서 의사 선생이 윤의 손목을 쥐며 말했다. 미친 것처럼 사방을 둘러보던 윤의 눈이 그의 손아귀에 단단히 틀어 잡힌 제 손목을 거쳐 불란서 의사 선생에게서 멎었다. 온전히 윤의 시선을 독차지한 불란서 의사 선생이 빈손으로 윤의 뺨을 감싸 제게로 고정하고 그와 이마를 맞댔다.
“첫 번째 밤으로부터 피를 물려받은 어둠의 일족이 새 아들에게 인사를 청하노니. 들으라, 내 아들아.”
윤의 입술이 달싹였다. 그러나 인간의 말을 잊기라도 한 것처럼 언어의 조각은 단 한 마디도 소리가 되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불란서 의사 선생은 그런 윤의 혼란이 생생히 들리기라도 하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그의 뺨을 토닥였다.
“사랑하는 아들아. 빛이 더 이상 너를 해하지 못할 때까지 너는 온전히 어둠이어야 할지니.”
불란서 의사 선생이 금색 눈을 번뜩이자 그의 몸에서 시커먼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형태 없이 해일처럼 요동치던 안개가 모조리 윤에게로 빨려 들어갔다.
“불안해 말라. 나는 어둠 중 가장 깊은 어둠이요, 너를 가르칠 스승이요, 너의 길을 예비하고 너를 이끌 선지자로다. 내 아들아, 너는 그저 온전히 믿고 의지하고 따르라.”
검은 안개로 방을 가득 메운 그는 윤에게 끝없이 속삭였다. 마치 사랑하는 아들을 위한 기도문을 읊는 듯, 성스러운 후계자에게 언약서를 읽어 주듯 따뜻하고 다정한 음성이었다.
멍하니 눈물만 흘리던 윤의 눈이 한참 만에 초점을 되찾았다. 그는 저와 이마를 맞댄 불란서 의사 선생과 흥미로워하는 얼굴로 팔짱을 끼고 구경 중인 세경과 방 안 가득 넘실대는 그림자를 쳐다보았다. 혼란뿐이던 윤의 눈동자에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절망이 가득 찼다.
“아……!”
윤은 더 이상 흘릴 눈물이 없어 붉은 피눈물이 흐를 때까지 울고 또 울다가 의식을 놓았다.
【 재회 】
영목이 남가 상단의 창고에서 나와 우의정의 집으로 돌아온 바로 다음 날.
“아, 맞아. 영목아, 오늘 남윤을 보러 갈 때엔 나와 함께 가자꾸나.”
강자영이 영목에게 달갑지 않은 동행을 청했다. 싫다고 하면 곧장 윤이나 단의 목숨으로 협박질을 할 게 뻔했기에 영목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강자영은 제일 먼저 서소문으로 가야 한다며 영목의 소맷자락을 끌었다.
“대체 여기에 무슨 볼일이 있어 이리 채근이십니까?”
“보면 알아. 저기 보렴.”
별생각 없이 강자영과 나란히 걷던 영목은 그녀가 가리킨 곳으로 눈을 돌렸다. 그가 숨을 멈췄다.
강자영이 가리킨 곳에는 새카맣게 그을린 시체 하나가 내걸려 있었다. 영목은 숯 같은 시체의 입에 물려 있는 금색 신분 패를 대번에 알아보았다. 남가 상단 도방의 신분 패였다. 화려했던 금빛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시커먼 나뭇조각이었으나 영목의 눈에는 타다 만 자리에 남은 ‘도방’ 두 글자가 세상 그 무엇보다 선명하게 보였다.
손등으로 입을 가리고 잘게 쿡쿡대는 강자영의 웃음소리가 영목의 귓가에 천둥처럼 울렸다. 허름하고 어수선한 서소문 네거리 한복판, 장대에 매달려 볼품없이 흔들리는 숯덩이에서 영목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저게 정말 윤이 도령이라고요?”
“응. 서방님이 평양으로 떠나시며 특별히 분부하셨대.”
“하.”
영목이 짧고 날카롭게 웃었다. 윤의 목숨과 단의 안위에 목줄 잡혀 납작 엎드려 살던 지난날이 이렇게 허무할 수 없었다.
“괜찮으니?”
“괜찮지 않길 바라시며 데려오신 것 아닙니까?”
“그랬는데 생각보다 너무 무덤덤해 보여서.”
영목은 대답하지 않고 숯덩이에 물려진 도방의 증명 패만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도대체 생각을 읽어 낼 수 없는 영목의 표정에 시큰둥해진 강자영은 그의 팔을 끌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부터 한성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영의정의 가문, 강씨 집안의 방계부터 차례차례.
“영목이 자네, 들었는가? 강씨 가문이 남가를 건드려 동티가 났다며?”
“저처럼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은 양자가 듣긴 뭘 듣고 알긴 뭘 알겠습니까. 패나 돌려요.”
“아니, 인마, 너 진짜 소문 못 들었냐? 남가는 사실 불 뿜는 이무기인 꽝철이가 보살피던 가문이었다잖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어서 남가 재산 긁어 갔던 강씨 집안사람들이 그래서 죄다 화마를 입는 거래. 너도 조심해, 인마.”
“하……. 이 형님 진짜. 꽝철이는 뭔 얼어 죽을 꽝철이야.”
영목은 하품을 하면서 투전판 구석에 길게 드러누웠다. 온 한성이 어수선하더니 이제는 노름하러 모인 놈들마저 동티니 꽝철이니 하는 소문으로 난리였다.
사실 불을 지르고 다니는 것도, 소문을 퍼뜨리는 것도 모두 영목이었다. 강자영이 그간 앵속을 얼마나 독하게 먹였는지 배 속이 온통 너덜너덜했지만 영목은 코와 입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남몰래 담을 넘어 강씨 집안에 불을 지르러 다녔다.
‘영의정이나 우의정이 윤과 단을 해칠까 싶어 병든 개처럼 굴었던 건데. 윤이 도령이 저렇게 된 이상 내가 참을 이유가 없지.’
강씨 집안의 멀고 먼 친척들부터 집어삼키며 몸집을 불린 화마는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강자영의 사촌까지 활활 태웠다. 저 아래 남촌에서 시작해 내로라하는 사대부가 모인 북촌까지 불길이 번지자 온 한성이 술렁였다.
영목은 북촌 어귀에 있는 그럴싸한 기와집이 잿더미가 되어 폭삭 내려앉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책을 거듭했다.
‘내가 등신같이 김욱진 같은 놈의 말에 속아서, 내가 강자영을 얕본 탓에, 윤이 도령이 죽었다. 내가 죽인 거다.’
매일 밤 새빨갛게 타오르는 불길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싸구려 관에 들어 있던 최 역관과 서소문 네거리에 내걸린 윤의 모습이 엉망으로 뒤엉켰다.
‘내가 물레방앗간에서 단이를 포기하고 칼부림을 벌였다면… 그랬다면 일이 이렇게까지 잘못되지는 않았을지도.’
단을 포기했다면 더 큰 화를 막을 수 있었을 텐데, 하며 후회하다가 부질없이 단의 목숨과 윤의 목숨을 저울질하는 제 구차함이 역겨워 영목은 토악질을 했다. 몸을 망가뜨리는 앵속보다 마음을 부식시키는 죄책감이 훨씬 지독했다. 최영목의 형상만 남은 껍데기 속에는 단과 윤과 자백서만 가득 찼다.
‘강씨건 김씨건… 이 망할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잘근잘근 다 씹어 먹고 가겠네. 나 또한 버러지같이 죽어 사죄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게.’
영목은 매일 그렇게 각오에 각오를 다지면서 강자영이 주는 앵속을 꼬박꼬박 잘도 집어삼켰다. 되돌릴 수 없다는 절망감과 스스로에 대한 분노가 역한 앵속을 달콤하게 반겼다. 독한 약재가 스며들어 내장이 헐어 내리는 고통과 무력감이 몰려오면 영목은 윤을 그리며 텅 빈 눈으로 희미하게 웃었다.
‘자네가 당한 고통을 나눌 수 없으니 이렇게라도 아파야겠어.’
낮에는 앵속에 발목 잡혀 있는 영목이었으나, 밤이 찾아오면 텅 빈 속을 가득 채운 죄악감이 그를 움직였다. 앵속에 취해 늘어진 낮 동안엔 저 홀로 살아 있다는 사실을 끔찍하게도 역겨워하다가 밤이 깊으면 강씨 가문 사람을 죽이러 다니는 것이 영목의 일과가 되었다.
‘한심하구만.’
영목은 매일 밤 지붕 위든 나무 위든 높은 곳에 올라 윤의 나라도, 영목의 나라도 아닌 곳이 불안하게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보고 또 봐도 답은 하나였다.
‘하나같이 부질없는 것들.’
윤이 도령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은 참으로 쓸모없다 생각하며 훌쩍 뛰어내려 불을 질렀다.
“영목이 너, 네가 하는 짓이지!”
그가 불을 지르고 다닌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강자영이 씨근덕대며 영목의 방으로 달려들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