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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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목이 강자영과 거래 아닌 거래를 하고 있을 때― 김욱진은 썩는 냄새와 쇠 비린내가 가득한 옥사로 들어서는 중이었다. 형틀에 묶여 늘어져 있던 윤이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윤의 앞까지 다가간 사내가 염려스러워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얘야. 괜찮으냐.”
“저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어머니가 위독하세요. 어머니를 구해 주십시오.”
윤은 안도보다 불안이 더 큰 마음으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목을 쥐어짜 그에게 애원했다. 김욱진이 “응, 응.” 맞장구를 치며 윤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섰다.
“그래. 최영목에게서 충분히 이야기를 들었을 줄 안다. 네 자백서로 인혜도, 너도 꺼내 주는 계획 말이다.”
김욱진이 윤의 손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덧붙였다.
“모진 고초로 네 손이 완전히 망가졌다고, 도저히 자백서를 쓸 수 없는 상태였다고, 그렇게 의원의 소견서를 받아 두었다.”
윤이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수천 번, 수만 번씩 진짜였을까 거짓이었을까 생각했던 영목의 약속. 그 약속이 김욱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김욱진은 대답을 바라는 윤의 간절한 눈빛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뒤에 서 있는 사내에게 눈짓했다.
“못 믿을까 싶어 너와 친하다는 그 의원을 예까지 데려왔지.”
김욱진이 눈짓하자 그의 뒤를 지키고 있던 사내가 윤의 앞으로 다가왔다. 사내는 등 뒤로 돌리고 있던 팔을 뻗어 손에 쥔 것을 윤의 눈앞에 내밀었다.
고통스럽게 벌어진 입, 주름진 얼굴. 돈의문 근처에서 작고 낡은 약방을 하던 의원 영감의 머리였다. 윤이 눈을 질끈 감자 김욱진은 더없이 기분 좋게 웃었다.
“치워라. 윤이 이 아이도 이제 알아들었겠지.”
김욱진이 손짓하자 의원 영감의 목을 들고 있던 사내가 공손히 허리를 숙이고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김욱진은 뒤돌아 가는 사내의 허리춤을 가리켰다.
“얘야. 저걸 보렴.”
사내의 허리에는 보잘것없는 호패가 달려 있었다. 김욱진은 그 허름한 호패 아래에 대롱대롱 매달린 작은 목패를 가리켰다. 위아래가 거꾸로 새겨진 남(南) 자의 한가운데에 새하얀 진주가 박힌 조악한 목패였다. 윤이 눈살을 찌푸렸다.
“교월루에 걸린 진주 주렴을 뜯어 내 집에서 빌어먹는 천것들의 호패 장식으로 만들어 주었지. 오가는 길에 그 주렴을 볼 때마다 어찌나 속이 뒤집히던지.”
음성은 다정스러우나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은 아비의 말에 아들도 비슷한 투로 대꾸했다.
“저런. 화풀이는 하고 싶은데 차마 산호와 청옥 주렴을 뜯기는 아까우셨던 모양입니다.”
“…….”
“아, 창고 문을 열 줄 모르시니 산호 주렴도, 청옥 주렴도 못 찾으셨겠군요?”
“최영목이 곧 내게 창고 여는 법을 알려 줄 거야. 그럼 진주든 청옥이든 곧 내 손에 들어올 거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고개를 젓는 윤을 보며 김욱진이 싱긋 웃었다.
“꽤나 확신하는 모양이다만… 최영목은 너와 그 업둥이의 비루한 목숨을 건지겠다고 우리가 시키는 일이라면 뭐든 하는 중이거든. 그 독한 앵속을 덩어리째 씹어 먹으며 제 속을 다 헐고 있는 놈이 그깟 창고 문을 안 열어 줄까.”
윤의 목울대가 크게 울컥였다. 앵속 냄새가 지독하다며 영목을 비난했던 제 목소리가 칼날처럼 되돌아와 윤을 찔렀다.
“보던 중 최고로 마음에 드는 표정이구나.”
“…….”
“내 머지않은 언젠가 서소문 앞에 널어 둔 네 시체 위로 그 빌어먹을 주렴들을 다 흩뿌릴 것이다. 최영목에게 직접 하라고 시켜야지.”
윤은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눈을 돌렸다. 윤의 눈은 더 이상 비명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남인혜의 옥사 쪽을 향해 있었다. 윤이 바라보는 곳을 함께 쳐다보던 김욱진이 싱긋 웃었다.
“어미가 걱정되느냐.”
“어미 걱정 않는 자식도 있답니까?”
“흠. 그렇게 어미 걱정을 하였다면 애초에 태어나질 말았어야지.”
김욱진은 옥사에 흩날리는 먼지를 손부채질로 털어 내며 오래전의 이야기를 꺼냈다.
“강자영을 안사람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을 때, 인혜는 내게 울며 매달렸었다. 아이를 품고 있는 내자를 어찌 내치려 하느냐면서.”
“듣고 싶지 아니합니다.”
“우는 모습이 참으로 어여쁘기에 첩으로 귀애해 주겠다 약조까지 해 주었건만. 감히 화를 내며 돌아서지 뭐냐? 서자는 과거도 볼 수 없다며. 죽으면 죽었지, 제 귀한 아이를 그리 만들지 않겠다며.”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너 때문에 내게 매달려 울고 애원하던 내 여인은 간데없이 핏덩이의 어미만 남았는데! 네가 알아야지!”
줄곧 평온하던 김욱진이 버럭 언성을 높였다.
“네가… 너 따위가 내 여인을 빼앗아 간 거야! 아이만 배면 인혜는 내 곁을 떠나지 못하리라 생각했는데! 효용 가치라고는 인혜의 족쇄가 전부였던 놈이 내 여인을 제 어미로 만들었다고!”
윤이 조금의 관심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젓는데도 김욱진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알겠느냐? 너는 태생이 죄인이다. 내 원수야.”
괘씸하다 혀를 끌끌댄 김욱진이 묶여 있는 윤의 정강이를 툭 걷어찼다. 으스러질 대로 으스러진 다리뼈가 움푹 들어가자 그는 재미있다는 듯이 연거푸 발길질을 했다.
“인혜가 남가의 담장 안으로 도망친 그날부터 오늘만을 기다렸다.”
“…….”
“감히 나를 등져 가면서까지 새끼 따위를 챙기는 게 어찌나 괘씸하던지. 네놈을 첩의 소생만도 못한 꼴로 만들어 주겠다 벼르고 또 별렀어.”
아주 작은 반응조차 주지 않으려던 윤이 왈칵 인상을 구겼다.
“…설마, 내 호패를 불허하도록 만든 게…….”
김욱진이 시원스레 고개를 주억였다.
“어디 네 호패뿐이겠느냐? 애초에 내가 중인 가문의 여식 따위와 혼례를 치렀다고 조부님께 연통을 넣은 것도, 조부님께 영의정 가문과의 복중 혼약을 일깨운 것도 나인걸.”
“대체 왜! 왜 그런 짓을 하셨습니까!”
“인혜를 너무 사랑하였으니까.”
“그게 무슨…….”
“너무 사랑하였으나, 남가는 고작 중인 집안이잖니.”
윤은 어금니를 꽉 물었다. 일단 혼례라는 허울로 남인혜를 제집에 들어앉히는 것, 그 뒤에 조부를 들쑤셔 반가의 규수를 다시 처로 들이는 것. 그 모든 것이 김욱진의 계획이었다. 이 모든 비극이 오로지 김욱진의 비뚤어진 욕심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어머니를 첩으로 두려다 계획이 틀어지자 자존심이 상해서, 고작 그걸로 20년이 넘게 함정을 파신 겝니까? 하. 참으로 좁고 얕으십니다.”
“좁고 얕은 내 수에 무너진 네 집안을 봐라. 중인 집안 따위에는 좁고 얕은 수가 정답 아니냐.”
윤이 허탈하게 웃었다.
“하찮은 가문 따위가, 네가… 내 인혜를 빼앗아 간 죄는 결코 가볍지 않다. 내 것을 빼앗아 간 놈에겐 제대로 잃어 보게 해 줘야 마땅하지.”
저를 쏙 빼닮은 입매로 쓰게 웃는 아들을 내려다보며 김욱진이 선량한 눈매에 광기를 담았다.
“윤아. 나는 절망하는 네 얼굴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네가 가장 많은 것을 가질 때까지 기다렸어. 화목한 가족, 믿음직스러운 친구, 너를 신뢰하는 사람들, 풍족한 재산, 건강한 몸, 아름다운 얼굴.”
“참 번거로운 짓을 하셨습니다.”
“번거로운 짓에도 나름 보람이 있더구나.”
그는 성한 곳 하나 없는 윤의 몰골을 내려다보며 기분 좋게 빙긋 웃었다.
“그 무엇도 못 가진 인간보다 풍족히 가지고 있던 걸 빼앗긴 인간의 기분이 더 비참한 법이거든. 내가 인혜를 빼앗겨 보았기에 잘 알지.”
김욱진이 손짓했다. 약방 영감의 머리를 들고 있던 놈이 축 늘어진 사람 하나를 안고 왔다. 김욱진은 냉큼 팔을 뻗어 그가 안고 있는 사람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자랑하듯 윤을 향해 돌아섰다.
“자아. 잘 보아라. 너 때문에 죽은 네 어미다.”
윤은 울컥 솟는 눈물을 가까스로 참고 고개를 저었다.
“틀렸습니다.”
“무엇이? 네 어미가 너 때문에 죽었단 말이?”
“아뇨. 안고 계신 그분은 제 어머니이기 이전에 남가 상단의 대방 마님이십니다. 남가 상단 대방 남인혜로 살다 가신 분입니다.”
“그래. 그게 같잖고 우습단 거란다. 중인 가문이, 계집이, 호패도 없는 놈이 뭐라도 되는 듯이 구는 게.”
김욱진은 자못 인자한 음성으로 윤의 귓가에 속삭였다.
“오면서 보니 너희 상단의 금패는 이제 옥졸들의 전리품 비슷한 취급을 받고 있지 뭐니.”
김욱진이 품에서 동그란 패 하나를 꺼내 들고 빙긋 미소지었다. 윤이 추포되며 빼앗겼던 남가상단 도방의 패였다.
“천한 옥졸 놈들의 손을 타게 하면 되겠느냐? 인혜는 네게 이따위 것 하나 달아주고자 목숨을 걸었거늘.”
혀를 끌끌댄 김욱진은 다정한 손길로 윤의 허리끈에 단단히 패를 달아주었다.
“이 패가 바로 너의 죄패(罪牌)란다. 내 친히 수고하여 찾아왔으니 앞으로는 잃어버리지 말려므나.”
“…….”
“그 패를 달고 천천히 고통스럽게 짓이겨지면서 내가, 드디어 되찾은 내 여인을 데리고 무얼 할까 상상해 보렴.”
윤은 아무 표정도 대꾸도 없이 숨을 거둔 어머니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파리한 얼굴 위로 교월루에 꼿꼿하게 앉아 있던 생전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윤은 숨결을 가다듬었다.
‘고함치지도, 울먹이지도 않을 것이다.’
어금니를 앙다물고 죽은 어머니를 눈에 새기며 윤은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가 비통하게 몸부림치기를 기대했던 김욱진이 실망 가득한 낯으로 입꼬리를 끌어 내렸다.
“윤이 너는 끝까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 없구나.”
혀를 끌끌댄 김욱진은 싸늘히 돌아서며 저만치서 손을 모으고 공손히 서 있는 사내를 불렀다.
“썰고 자르든 비역을 하든… 실컷 가지고 놀다가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저 건방진 눈알을 뽑아라. 그리고 산 채로 태워 서소문 밖에 버러지같이 내걸어.”
“예.”
“나는 내 정인을 데리고 곧장 평양으로 가겠다. 너는 오늘 일이 최영목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잘 조율해라. 아무리 앵속으로 절여 놨다 한들 그놈이 알아채고 난리를 치면 집을 지키는 검귀들만으로는 조금 벅찰지도 몰라.”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김욱진이 옥사 밖으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깊이 허리를 숙이고 있던 사내가 천천히 허리를 폈다.
“내가 남가 상단으로 청나라 황제가 마신다던 차를 구하러 갔던 날… 네가 거기에 불을 질렀지?”
윤이 가는눈으로 그의 낯을 살폈다. 누군가 했더니 왜 제게는 차를 팔지 않느냐며 행패를 부렸던 김가의 겸인이었다.
“귀한 상품에 벌레가 끼기에 조금 이른 쥐불놀이를 하였던 그날 말씀이십니까?”
윤이 코웃음 치며 입술을 비틀었다. 발끈한 사내가 화로 위에 얹혀 있던 인두를 집어 들고 윤의 뺨을 내리쳤다.
“건방진 새끼!”
“…….”
“애원해 봐라. 죄송했다 빌고 곱게 죽여 달라 부탁하면 그리해 줄게. 응?”
불에 달궈진 쇳덩이가 윤의 뺨을 찍어 눌렀다. 윤은 살이 타고 녹아내리는 고통 속에서도 절대 입을 떼지 않았다. 기대했던 비명도, 신음도 없자 악에 받친 사내가 윤의 반대쪽 뺨에 인두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