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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나 부르실 날에-48화 (48/157)

48화

“시신은 수습했습니까?”

윤이 묻자 옆집 사내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너무 크게 상하여서 염습할 것도 없이 그대로 입관해 두었는데…….”

영목은 가까스로 헛웃음을 참았다.

‘썩 친하지도 않았던 인간이 왜 눈치를 보며 주절거리나 했더니만… 관값을 치러 달라는 소리를 하려고 얼쩡거리는 거였군.’

하긴. 최 역관은 구두쇠에 성격 괴팍하고 인심 야박한 인간이었다. 그런 인간의 소사체를 선의로 수습해 줄 인정 따위, 있을 리 없었다.

영목은 허리에 달고 있던 돈주머니를 그대로 끌러 옆집 사내의 손에 얹어 주었다.

“제가 경황이 없어 사례가 늦었습니다.”

“어? 이렇게 많이 주면 내가 너무 미안한데…….”

사내의 눈이 볼품없이 판자를 두드려 만든 관을 향했다. 제가 생각해도 민망하기는 한지 사내가 몇 번이나 사양하는데도 영목은 꿋꿋하게 주머니를 그의 품에 밀어 넣었다.

“사양 마시고 넣어 두세요. 아저씨께서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은 무슨.”

옆집 사내는 헤벌쭉 웃으면서 빠른 걸음으로 멀어졌다. 영목은 무심히 그를 눈으로 좇았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늘어선 고만고만한 집들의 대문에는 조잡하게 그린 해태 그림이 붙어 있었다. 화기(火氣)를 막아 준다는 해태의 그림으로 도배되다시피 한 대문들과 숯만 남은 영목의 집을 번갈아 보며 윤이 눈살을 찌푸렸다.

“시신을 수습했다기보다는 불난 김에 도적질까지 해 간 것 같습니다만.”

영목도 모르지 않았다. 곳간과 창고는 앙상하게 탄 건물의 뼈대만 있을 뿐, 물건이 탄 흔적이 없었다. 옆집 사내의 짓인지 온 동네 사람들이 합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본채가 다 탄 김에 빼돌릴 재물은 모두 빼돌리고 텅 빈 곳간과 창고에 다시 불을 지른 게 분명했다.

윤은 금방이라도 달려가 옆집 사내의 멱살을 틀어쥘 것처럼 움켜쥔 주먹에 핏대를 세웠다.

“어찌 사람들이 이렇게 염치가 없답니까!”

당사자인 영목이 오히려 꽉 말아 쥔 윤의 주먹을 두드려 달랬다.

“화내지 말게. 이웃들이 불에 탄 것 좀 훔쳐 갔다 해서 내가 입에 풀칠 못 할 형편도 아니잖아.”

평온하게 대꾸한 영목이 마당 한가운데 놓인 싸구려 관의 뚜껑을 열었다.

“묫자리 다지는 데에만 석 달인데. 숯이 되셨으니 썩어 냄새날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군.”

“…제가 가서 더 좋은 관을 준비해 오겠습니다. 잠시만 계세요.”

“에이, 하지 말게. 어차피 땅에 묻으면 다 똑같이 흙으로 썩어 갈 거, 그딴 데 쓸 헛돈 있거든 지금 나한테 버려.”

가만히 관 뚜껑을 닫고 돌아서는 윤을 영목이 단단히 붙잡아 세웠다. 헛돈 쓸 바에야 제게 달라며 영목이 빈손을 흔들어 대자 윤이 눈을 꾹 감고 미간을 문질렀다.

“…선산에 터를 잡아야지요? 인부를 보내겠습니다.”

“없네, 선산.”

“없다고요?”

눈가를 문지르는 손가락 사이로 가을의 색을 닮은 윤의 눈이 영목을 향했다. 영목은 실없이 웃으면서 발끝으로 관을 툭, 건드렸다.

“내 어머니는 범산 돌무더기 아래 깔려 계시잖나. 아버지도 공평히 모시려고 선산은 애저녁에 팔아먹었어.”

“…….”

“아마 조문하러 올 사람도 없을 걸세. 사람이 좀 야비하고 좀 야박하게 살았어야지.”

영목의 말 그대로였다. 화마가 옮을까 겁난다는 핑계를 대며 누구 하나 향을 올리러 오지 않았다. 윤이 준비한 상복으로 갈아입은 영목은 상심한 기색도 없이 범산으로 향했다. 상주가 자리를 비운다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근처에 얼쩡거리는 이가 없으니 손가락질하며 타박할 사람도 없었다.

“산군 어르신, 영목입니다! 허락을 구할 일이 있어 왔습니다!”

목청 좋은 영목의 음성이 범산 구석구석으로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으응? 산 내려가자마자 다시 와서 무슨 부탁?”

“어머니를 제대로 묻어 드릴 때가 된 것 같아서요.”

산군이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영목은 자신이 걸친 상복을 가리켰다.

“최 역관이 드디어 죽었거든요.”

“…그놈을 내 산에 묻겠다고?”

영목은 대답하지 않았다. 해맑게 씨익 웃으며 칼집으로 호식총을 툭 건드린 게 전부였다. 윤은 영목이 말한 ‘공평히’가 무엇을 뜻하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산군도 영목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눈치채고 손바닥으로 얼굴을 거칠게 문질렀다.

“내 산에 몹쓸 짓 하겠다는 놈, 엉덩이를 걷어차 줘야 하는데… 네 한이 네 업을 이기는구나.”

그녀는 어디 마음대로 해 보라는 듯 휘휘 손을 내저었다.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영목은 높이 쌓인 호식총을 맨손으로 다 끌어 내렸다. 낡고 흙먼지 쌓인 떡시루들이 사라지자 허리까지 쌓인 돌무더기가 드러났다.

가만히 영목의 곁에 서 있던 윤이 소매를 걷고 찬찬히 돌무더기를 치워 내기 시작했다.

“에그. 자네 뭐 하나?”

“돌 치우잖습니까.”

“비켜. 그 고운 손에 생채기라도 생기면 죄책감에 잠도 못 잘 것 같으니 내려놓으라고.”

“싫습니다.”

“에이, 진짜!”

칼집째 검을 휘둘러 거칠게 떡시루를 밀어 대던 영목이 허리에 손을 얹고 윤을 쳐다보았다.

“내가 생각해도 천벌받을 소리라 작게 말할 거니까 잘 듣게.”

“예.”

“나는 이 돌 더미 밑에 깔려 있는 우리 어머니를 꺼내서 범산에서 제일 좋은 자리에 묻어 드릴 거야. 그리고 이 빌어 처먹을 호식총 밑으로 구덩이를 팔 걸세.”

“…구덩이요?”

영목은 검집으로 애꿎은 떡시루를 가루가 되도록 퍽퍽 내리찍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 구덩이가 최 역관 묫자리일세. 거지 같은 관짝에 들어 있는 숯 덩어리를 모조리 털어 넣고 가시덩굴 두른 몽둥이로 내려찍어 숯가루를 만들어 버릴 거라고.”

“…….”

“이날만을 기다렸어. 내가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자네는 상상도 못 할걸.”

영목의 눈에 순수한 희열이 반짝였다.

“나는 최 역관이 배설하듯 만든 자식이거든. 그런 자식 손에 개똥보다 못한 꼴로 바스라지면 최 역관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벌써부터 기대돼서 몸이 떨려. 오싹오싹해.”

“그럼 더더욱 같이 해야겠습니다. 최 형이 고대하던 순간에 제가 빠지고 싶진 않네요.”

질색하고 인상을 찌푸리리라 생각했건만. 윤은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고 영목이 바스러뜨린 호식총을 뒤꿈치로 짓이기며 영목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늘은 이만 내려가시지요. 염습할 명주는 저희 상단에서 다루는 것 중에서 제일 좋은 것으로, 관은 팔도를 뒤져 제일 좋은 나무로 만들겠습니다.”

“…내 말을 어디로 들었어? 좋은 장례 따위는 필요 없다지 않아!”

“왜 필요가 없습니까. 어머님께 쓰셔야지요. 제일 좋은 자리, 제일 좋은 것들로 감싸 모셔야지요.”

순간 영목은 목이 메어 좋다 싫다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윤은 다 안다는 듯이 영목의 설움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가 그와 함께 산을 내려왔다.

‘내 집에 불을 질러 경고한 걸 보면 남가는 아직 멀쩡할 것 같긴 한데…….’

영목은 부친의 죽음보다 남가의 안위에 더 가슴 졸이며 성문을 지나쳤다. 다행스럽게도 한양은, 남가는 무탈히 평화로웠다. 영목이 바라던 대로.

상을 당한 날로부터 꼬박 세 달 동안 윤은 영목과 함께 산책하듯 범산을 올랐다. 멀찍이 서서 혀를 끌끌 차던 산군은 하루, 이틀 지나갈수록 슬금슬금 가까이 다가오더니 열흘쯤 지난 뒤에는 자신이 앞장서 범산에서 제일 좋은 터로 앞장섰다.

기껏해야 산군과 윤, 영목 셋이서 조촐하게 치르게 될 줄 알았던 장례는 영목의 예상을 크게 벗어났다.

“영목 도련님, 제가 가장 앞에 서서 이끌 터이니 염려 놓으세요.”

본 적 없이 화려한 꽃상여 앞에서 남가의 청지기인 권가가 두 손을 가만히 모으고 씩 웃었다. 그 상여에는 윤이 자그마치 여덟 번이나 퇴짜를 놓으면서 고르고 고른 관이 실려 있었다. 관 안에는 새하얀 명주로 염한 백골이 들어 있었고. 백골의 주인은 당연히 영목의 모친이었다. 윤은 남가 상단의 온 창고를 다 뒤져 제일 좋은 명주를 골라내더니 호식총 밑의 돌 더미를 치워 내고 유골을 수습해 그 명주에 고이 감쌌다.

산군이 마련해 준 명당에, 윤과 영목이 함께 다진 묫자리에, 맞춘 듯이 관이 내려앉았다. 관 위로 한 삽 한 삽 흙이 떨어져 내렸다.

봉긋하게 봉분이 솟고 곡하던 사람들이 모두 산 아래로 내려간 뒤. 노을 지는 범산 한복판에는 오직 영목과 윤의 그림자만 길게 늘어져 있었다.

“피곤하시지요?”

“내가 피곤할 게 무어 있나. 자네랑 권가 아저씨가 다 하신걸.”

영목은 정신없이 지나간 지난 세 달을 되짚다가 어이가 없어 실소했다.

“정인에게 비녀 사 주고 노리개 선물하는 한량들 이야기는 익히 들어 봤어도… 이렇게 호사스러운 장례 선물하는 도령은 조선 역사를 통틀어 남가의 윤이 도령이 처음일 걸세.”

“최 형께서 어디 보통 정인이어야 말이지요.”

“예끼! 누가 들으면 어쩌려구!”

놀리는 말에 여상한 긍정이 돌아오자 먼저 말을 꺼낸 영목이 더 펄쩍 뛰었다. 윤은 함박눈이 퍼부을 것 같은 하늘을 쳐다보다가 영목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제 소원 들어주시기로 하셨던 것, 기억하십니까?”

“뭔……. 내 어머니 장례 치러 주는 게 자네 소원이라고?”

윤이 가만히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영목의 뺨 가까이로 얼굴을 숙였다. 추운 날씨에 삼베옷을 걸쳐 발갛게 얼어붙은 영목의 귓가에 윤의 입김이 스쳤다.

“둘이 있을 때만이라도 서로를 정인이라 부르는 것.”

“…….”

“소원, 들어주시는 겁니다.”

몇 달 새에 확연히 낮아진 사내의 음성이 영목의 귓가에서 목덜미로,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영목이 그런 소원은 못 들은 셈 치겠다고 고개를 저으려던 찰나, 윤이 만개한 꽃처럼 웃어 보였다. 환하게 웃는 윤은 처음이라는 핑계로, 왼쪽 입가에 쏙 들어가는 볼우물에 홀렸다는 핑계로 영목은 윤의 소원을 끝내 거절하지 못했다. 윤의 왼쪽 뺨에 옴폭 들어간 보조개가 조금 더 깊어졌다.

* * *

벼르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거창하고 화려한 장례를 치른 뒤로 열 달이 지났다. 최 역관이 죽은 지 1년 하고도 한 달이 되던 날에 영목은 인사를 하기 위해 윤의 집을 찾았다.

“아이고, 영목 도련님.”

청지기인 권가가 달려와서 영목의 손을 꼭 붙들었다.

“오늘이 최 역관 어르신 뫼신 지 열석 달째 날이지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에이, 고생이라니. 농담으로라도 그런 소리 말게. 한성 사람들이 내 욕 하는 것 못 들었나?”

권가가 멋쩍게 웃었다.

윤은 영목의 집이 모두 불탔다는 이유로 자신의 사랑채에 영목을 머물게 했다. 평소에 영목을 못마땅해하던 하인들도 하나둘 차근차근 교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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