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최 역관이 와들와들 떠는 제 아내를 죽일 듯 흘겼어.
“천민 계집 하나 잡아 죽이는 데 쌀을 한 섬이나 써? 이 여편네가 미쳤나?”
노기 탱천한 비난을 들은 순간 몸에서 힘이 풀려 낫을 놓칠 뻔하였어. 최 역관은 내 어머니의 죽음이 아니라 쌀 한 섬이 아까워서 역정을 내더군.
산군께서는 산골 사는 촌것들이 오랜 가뭄에 미쳐 내 어머니를 죽였다고 분노하셨네만, 실은 이런 이야기라네. 더 구질구질하고 추접한 이야기.
“더 말할 것도 없네. 다들 관아로 갑시다.”
“무어?”
여자는 파랗게 질리고 최 역관은 짜증을 냈어.
“가서 뭐라 할 건데? 내 내자가 사주했다는 증거라도 있나? 어?”
증거가 있을 리 없다 믿어 의심치 않는 그는 퍽이나 당당한 자태였지. 하기야, 글을 쓸 줄 아는 여인이 몇이나 있다고 증거를 남기겠어. 아니 그런가?
최 역관이 간과한 것은 내가 스승님께 실용적인 것들을 꽤 많이 배웠다는 부분이었네. 남의 흠 잡기, 협박하기, 뒤집어씌우기 같은 것들 말이야. 나는 스승님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낫 끝으로 광 안의 것들을 느릿하게 가리켰네.
“무당 하나 죽은 걸로 관아가 움직이겠습니까? 하나 이 광 안에 있는 쌀가마니들의 출처를 따지면 이야기가 아주 다르겠지요.”
“…그, 그건…….”
몇 년이나 이어진 가뭄이었지. 어지간히 구린 짓 하지 않고서야 말단 역관이 그 많은 곡식들을 쟁일 수 있을 리가.
“…뭘 원하냐.”
내 협박이 제대로 먹혔는지 최 역관은 태세를 바꾸어 나를 회유하기 시작했어.
“좋은 말로 할 때 자식으로 받아 주시오. 아비 없는 자식으로 숨어 살기도 지긋지긋하네.”
“세상천지에 제 애비 목에 쇠붙이 들이밀고 협박하는 자식새끼도 있다더냐?”
“여깄네.”
“…….”
“흔치 않은 자식새끼를 두어 퍽이나 자랑스러우시겠소.”
지금의 나라면 절대 이렇게 쳐들어가지 않았을 테지만 그때의 나는… 어미 잃고 동생 버린 죄인인 나는 꽤나 앞뒤 없이 절박하였네.
근본 없는 협박에 놀랐는지 최 역관이 듬성듬성 난 눈썹을 확 구겼어.
“진심이냐?”
“이 한겨울에, 이 새벽에, 늙은 아재와 농담이나 하려고 담 넘어올 이유가 없지.”
우스울 정도로 거친 제안이었어. 내가 말하면서도 이게 먹힐까 싶었으니까. 해 보고 안 되면 관아에 고변하거나 낫을 휘두르자 마음먹으면서 턱을 치켜들었네.
더 웃긴 건 뭔지 아나? 이렇게 비장하게 마음먹은 보람도 없이 최 역관이 나를 쌍수 들어 반겼다는 거야.
“딸밖에 없어 걱정이 크던 차에 잘되었다. 하늘이 도우셨구나!”
“뭐… 뭐라고? 당신 미쳤소?”
“에잉. 아들도 못 낳은 여편네가 뭔 낯으로 끼어들어!”
그는 정색하며 따져 묻는 여인을 밀치고 내게로 다가왔어.
“딱 너처럼 담대하고 뚝심 있는 아들 하나 점지해 달라 낮밤 없이 빌었다. 천지신명이 내 기도를 드디어 들어주시는구나!”
“…….”
최 역관은 내 팔을 주무르고 어깨를 두드리며 껄껄 웃었어.
“좋아, 좋아! 낯짝이 제 어미 꼭 빼닮아 사내답지 않게 곱상하길래 염려하였는데 만져 보니 몸이 꽤나 단단하구나. 한 사람 몫 톡톡히 하겠어!”
그때 알았네. 왜 스승님이 내게 더 많이 커야 한다, 더 단단해져야겠다, 채근하며 먹이고 단련시키셨는지. 왜 나는 치마저고리가 아니라 바지저고리가 자연스럽게 살아왔는지. 나를 무과 급제 시켜 나라 엎어 버리려 했다던 스승님의 포부가 정말 무엇을 의미했는지.
천한 무당의 딸이 사내인 척 무과에 급제해 이놈저놈 썰고 다녔다는 게 밝혀지면 나라가 발칵 뒤집히지 않았겠나? 천것이 관직에 나아갈 수 있는가. 그에 앞서 계집의 무위가 사내들보다 뛰어날 수 있는가. 스승님은 나 하나를 내세워 이런 논쟁들로 불씨를 틔우길 바라셨던 거야.
-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것조차 쉽지 않은 우리.
자네 어머니의 목소리가 먼동 터 오는 하늘에 아스라이 번졌어. 나는 평생을 있는 그대로, 태어난 그대로 살지 못하겠구나. 그리 생각하니 실없이 웃음이 새더군.
“하하…….”
늦어도 너무 늦어 얄팍한 핑계처럼 들리는 고백일 걸 알지만 자네에게만은 꼭 털어놓고 싶네. 처음의 나는 일부러 사내의 행색으로 다닌 게 아니었다네. 정말이야. 맹세코 절대 내가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고. 머리카락을 곱게 땋고 빗는 법을 가르쳐 주는 이가 없어 질끈 묶었고, 입으라 준 옷이 바지저고리라 그걸 걸치며 살았을 뿐. 사내니 여인이니 의식할 틈도 없이 그냥 다들 대충 사는 거라 생각했을 뿐이야.
“반갑다, 내 아들아! 여기서 이러지 말고 어서 안으로 들어가자. 응?”
이날, 아비라는 인간이 함박웃음을 지었던 날, 이 순간부터 세상을 속이기로 작정했지.
대들보는 대청마루 천장에 있는 물건 아닌가. 그러니 대들보를 깨부수려면 집 안으로 들어서야 하는 거였어. 자네 어머니가 나에게 ‘네 집’을 찾으라 등 떠민 이유가 바로 이거였더군. 평생 무엇을 숨기고 살아야 하는지 내게 확실히 자각시키기 위함이었어.
최 역관에게 이끌려 집 안으로 들어서며 나는 뒤를 돌아보았네. 쌀 한 섬으로 내 어머니의 죽음을 샀던 여자가 눈 쌓이는 마당에 홀로 남아 있더군. 그 여자는 나를 이끌고 들어가는 최 역관을 쳐다보고 있었네. 나와, 어머니와, 스승님과, 자네 어머니의 눈에서 읽었던 서러움과 억울함을 그 여자의 눈에서도 보았어.
‘잘하면 대들보를 쑥 파고드는 날 선 명검까지는 못 되더라도 안에서 좀먹는 개미 노릇 정도는 할 수 있겠다.’
그리 생각하며 최 역관의 집으로 들어갔지. 이날부터 나는 최영목이 되었네.
* * *
자네와 만난 것은 내가 최영목이 된 뒤로 며칠 지나지 않은 날이었어. 그래. 그 말라붙은 우물가 얘기야.
“당상 역관 남가네 담장 안에는 소박맞아 돌아온 아씨 하나, 아씨 혼자 낳은 도령 하나.”
앙상한 나무를 타고 올라 꼭대기 근처의 나뭇가지에 길게 드러누워 있는데 그런 노랫소리가 들리지 뭔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새끼들이 되먹지 못한 소리를 신나게 흥얼대길래 엉덩이를 걷어차 줄까 하며 쳐다보다가… 자네를 보았지. 얼마나 똑 닮았는지 한눈에 대방 마님의 아들이구나, 하고 알아보았어.
그리고 나도 모르게 자네와 나를 비교할 수밖에 없더군. 비단옷을 걸친 깨끗하고 고요한 사내아이. 대장간에서 대충 산 검을 덜렁대는 추레하고 번잡한 나.
참담하였네. 자네의 잘못은 조금도 없으나 원망스럽기까지 했어. 그래서 처음에는 모른 척 구경만 하려 했지.
“야, 이제 그 집에 또 하나 이상한 게 생겼잖아. 그것도 넣어 불러야지!”
“아, 그러네? 아비 없는 자식이 업둥이 주워 왔다지?”
“당상 역관 남가네 담장 안에는 소박맞아 돌아온 큰아씨 하나, 아씨 혼자 낳은 도령 하나, 도령이 주워 온 업둥이 하나.”
업둥이. 그 한마디가 나를 움직였네.
내가 버린 아기가 으리으리한 대문 안으로 무사히 들어갔구나. 저 도령이 아기를 살려 주었구나. 그럼 도와야겠구나. 생각과 동시에 몸이 움직였어.
내가 자네의 앞을 막아선 순간, 자네가 나를 쳐다보던 그 순간을 기억하네. 잘 빚은 도자기처럼 말간 도령이 나를 하늘에서 내려온 황금 동아줄 보듯 우러러보더구만.
나는 죄업으로 태어나 이상한 산골짝에 버려진 오물이라네. 내버리지 못해 주워 기르는 주인의 도구이지.
내가 생각하는 나는 고작해야 그런 정도였는데… 그런데 자네의 눈을 마주하자 내가 조금은 가치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어. 돌멩이처럼 생긴 꼬맹이들을 휘휘 쫓아낼 때마다 등 뒤에서 자네가 뱉는 작은 감탄이 들렸네. 그 진심 어린 탄성에 어깨가 우쭐해지더군. 내가 퍽 대단한 인간인 것 같았지.
자네에겐 미안하지만 그 이후의 일은 정말로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네. 머릿속에 온통 아기에 대한 안도만 가득했단 말이야.
못된 노래를 부르던 꼬맹이들을 혼쭐내 주고 등 뒤의 자네에게 고개를 까닥였던 것은 기억나. 집 앞까지 데려다주마, 하는 몸짓이었는데 자네는 아주 용케도 한 번에 알아듣고 나를 따라왔지.
“귀인께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어디 사는 누구십니까?”
“윤이 도령이 내깟 게 뭔지 알아 무얼 하게?”
놀림 가득한 되물음이었지만 자네는 발끈하는 기색조차 없이 정중히 대답했었지.
“사죄와 감사는 그에 합당한 재물로 표하라 배웠습니다.”
“에잉, 쯔쯔. 대방 마님이 애를 애어른으로 키우시는구만.”
애답지 않은 반응에 나는 조금은 싱겁고, 조금은 안타까운 기분으로 앞장서서 걸었어. 등 뒤에서 자네가 머뭇거리는 기색이 느껴져 얼른 따라오라고 턱짓했던 기억이 나.
“내가 단단히 혼쭐을 내 주었으니 한동안은 도령에게 허튼짓 못 할 테지만… 혹시 몰라 집 앞까지 데려다주려는 거니 바짝 붙어 따라와.”
잠시 더 머뭇대던 자네는 멀찍이 떨어져서 걸어오기 시작했어.
“내 꼴이 이러니 함께 걷기 부끄러운 도령 기분은 알겠는데… 그래도 잠깐만 꾹 참고 내 가까이로 와.”
“귀인이 부끄럽거나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아니긴. 이리 오기나 해.”
손을 흔들어도 자네는 곤란해하는 눈으로 날 쳐다보기만 할 뿐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지. 나는 구질구질한 내 옷차림을 조금 부끄러워하면서 다시 자네를 설득했네.
“도령, 내가 한양 바닥 설치고 다닌 지 며칠 만에 이 근방에서 힘깨나 쓴다는 놈들을 다 때려눕혔거든?”
“…….”
“저런 조무래기들이 귀찮게 굴지 않게 하려면 나 같은 놈을 전시할 필요가 있어. 내가 윤이 도령에게 붙었다는 소문이 나면 아무도 도령에게 시비 털지 않을 거라고.”
나는 재차 손을 뻗어 재촉했어. 빨리 오라는 손짓이었는데 자네는 그걸 붙잡으라는 소리인 줄 알았던지 내 손을 꼭 잡더구만. 갑작스러운 온기에 놀라 멈칫하자 자네는 나를 올려다보며 이렇게 물었지.
“왜 도와주십니까?”
자네의 물음을 듣자마자 웃음이 나왔네. 자네 어머니가, 내가 품었던 것과 똑같은 의문이 자네 입에서도 나올 줄이야. 나는 외롭고 의심 많은 사람들은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사는가 보다, 하며 내가 들은 답을 그대로 읊어 주었어.
“내 스승님 말씀으론, 우리는 원래 그렇대.”
“예?”
“그냥… 사는 게 쉽지 않은 이들은 서로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나 봐. 습관인지, 본능인지.”
눈꺼풀을 깜빡, 깜빡 하며 내 말을 곱씹던 자네는 이내 고개를 주억였어. 그리고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네. 사각사각 밟히는 함박눈 소리에 귀 기울이고, 서로 마주 잡은 손끝의 온기에 알 수 없는 위안을 느끼면서 그저 걸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