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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나 부르실 날에-23화 (23/157)

23화

더럽게 크고 밝은 보름달 뜬 밤이 아니었다면, 새하얀 함박눈이 달빛을 훤히 반사하고 있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분명 나는 서낭나무 밑 돌무더기 따위는 그냥 지나치고 말았을 거야. “웬 기운 좋은 놈이 돌탑을 크게도 쌓았구만! 아주 거한 소원을 빌었나 봐!” 하면서 지나갔겠지.

차라리 못 보았으면 좋았을 풍경이라 나는 함박눈 쌓인 밤도, 휘영청 보름달 뜬 밤도 질색이라네.

“어쩐지. 오늘은 엄마가 유난히 곱게 차려입었다 싶더라.”

나는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현실을 멀찍이 숨어 쳐다보면서 칭얼대는 아이의 귓가에 속삭였어.

“엄마는 무복이 엄마 수의가 될 줄 알았던 모양이다. 누가 용한 무당 아니랄까 봐.”

용하기로 소문난 범골 무당은 제가 죽을 것을 알고 갓난아기만이라도 살리려고 날 찾아왔던 건가 봐. 이렇게 고약한 부모, 저렇게 화려한 수의가 세상천지에 또 있을까.

나는 차오르는 원망을 눈물로 쏟아 내면서 주변을 살폈네. 으슥한 당집 주변에는 짐승 하나 얼씬대지 않고 서낭나무에 매달린 오색천만 시끄러웠어.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뒤에도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더군. 한 발 한 발 걸어 돌무더기 앞에 서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

얼마나 느리게 걸었냐면… 걷는 동안 칭얼대던 애가 스르륵 눈을 감고 잠이 들 정도였어. 나는 쌕쌕 고른 숨을 내쉬는 작은 생명을 끌어안고 뺨을 맞대 보았네. 처음으로. 빨갛게 얼어붙은 뺨에서 따끈한 체온이 전해지니 이상하게 웃음이 나오더라고.

“우리 엄마, 진짜 못된 엄마 아니냐? 애들한테 좋은 꼴만 보여 주진 못할망정… 열다섯 살짜리 애에게 작은애 맡긴 것도 모자라 돌에 맞아 죽은 마지막까지 확인시킬 건 또 뭐야.”

우리 어머니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왜 저렇게 죽어야만 했을까. 수만 가지 ‘왜’가 새하얀 산을 검붉게 칠했어. 그리고 그 답은 핏자국 섞인 몇 개의 발자국이 이어지는 왼쪽 길에서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네.

나는 잠든 아기와 맞대고 있던 뺨을 떼고, 눈물을 닦고, 얼룩덜룩한 발자국을 따라갔어. 얼마나 걸었을까. 사내들 여럿이 모여 웅성대는 소리가 들리더라고.

“정말 이래도 괜찮을까……? 그냥 남가에서 주는 구휼미로 버틸 걸 그랬나……?”

“에라이. 아직 배가 덜 고프구만! 우리 식구만 일곱이야! 남가 앞에 줄 서서 받는 한 줌짜리 구휼미로 묽은 죽 쑤어 누구 코에 붙이냐?”

“그건 그런데… 쌀 한 섬 나눠 먹자고 최 역관 놈 살수 노릇 한 것 같아서 기분이 드럽단 말이야.”

최 역관. 최 역관이라. 내 아비의 성과 내 아비의 직업 아니던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실실 웃음이 나오기 시작했어. 내 웃음소리가 듣기 싫었던지 깊이 잠들었던 아기가 입술을 삐죽삐죽댔다네. 나는 울먹이는 아이를 어르며 등 뒤로 들쳐 업고 떠드는 장정들 틈으로 쑥 끼어들었어.

“아이고, 무슨 이야기를 그리 심각하게 하십니까?”

“누, 누, 누구냐?”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 피운 모닥불 주변에 모여 있던 장정들이 기절할 것 같은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지.

“누구긴요. 최 역관 댁에서 보내 왔지요. 쌀 한 섬으로 끝내기엔 인심이 박하니 요깃거리 챙겨 드리라 하셨습니다.”

나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천연덕스레 거짓말을 했어. 몰랐는데 나는 참 거짓말을 잘하는 재주가 있더군. 나오는 대로 뱉은 말들이 어찌나 그럴싸한지, 말하던 내가 다 놀랐다니까. 이쯤 되면 내 거짓말은 타고난 재능이라 봐야 할 것 같지 않나?

아무렇게나 막 둘러댄 말인데도 놈들은 마음을 푹 놓고 가슴을 쓸어내렸어.

“어유. 놀랐잖은가. 그 애는 또 뭔가?”

가뭄에 얼마나 굶주렸던지, 내가 손목에 걸고 있던 음식 보따리를 내밀었더니 경계하던 얼굴들이 대번에 풀어지더군. 어머니 드리려고 바리바리 챙겼던 음식이 어머니 죽인 놈들 입으로 들어간다 생각하니 속이 뒤집힐 것 같았다네.

내 속은 어찌 되었건 이미 시작한 거짓말은 완벽하게 마무리 짓고 싶었어. 그래서 멍청이같이 웃는 낯으로 헤실대며 놈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지.

“이 꼬맹이는 저희 집 막둥이입니다. 주인댁 군식구로 붙어사는 신세에 갓난쟁이 봐야 한다고 심부름 아니 할 수도 없잖아요.”

“아이구. 입에 풀칠은 하는 집이나, 목구멍에 거미줄 친 집이나… 다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건 매한가지구먼.”

“먹고살려면 별수 있나요. 웃전이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죠.”

누렇게 떠서 말라비틀어진 얼굴들과 시답잖은 소리를 하면서 머릿수를 헤아렸던 기억이 나. 사내들은 여덟이었어. 여덟.

머리통 여덟 개 떨구는 것쯤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네. 마음이야 저놈들을 당장 씹어 죽여도 마땅찮은 정도였지. 하지만 죽일 땐 죽이더라도 대체 어머니가 왜 돌무더기 아래에서 붉은 강이 되어야만 했는지 꼭 알아야겠다 싶어서 계속 말을 걸었어.

“아니, 근데 형님들, 아무리 그래도 뒤처리를 저리하시면 어쩝니까? 후딱 치워 버리고 쌀밥 드실 생각으로 마음이 급한 건 이해합니다만… 저렇게 보란 듯이 길가에다가 돌로 막……. 으으.”

내가 과장스럽게 진저리를 치자 장정들이 턱을 치켜들며 우쭐거리더군.

“어린놈이라 뭘 모르는구만. 야, 저렇게 보란 듯이 놔둬야 뒤탈이 안 생기는 거야.”

“그럼그럼!”

“아, 그래요? 제가 뭘 몰라서……. 형님들은 이런 일 자주 해 보셨나 봐요.”

“자주는 아니고. 아주 안 해 본 것도 아니고.”

육포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기분이 한껏 좋아진 놈들은 물으면 묻는 대로 술술 털어놓기 시작했어. 무용담이라도 말하는 것처럼.

“입에 풀칠하려면 궂은일, 더러운 일 가릴 수 있나.”

“그렇지. 우리는 그나마 젊고 힘이 있으니 찜찜하고 험한 짓이라도 하면서 굶어 죽지는 않는 거지.”

“저기 남가 윤이 도령처럼 고운 팔자 타고난 놈들이야 찬밥, 더운밥 가려 먹겠지만.”

자네는 아마 자네 이름이 이런 곳에서 들릴 줄 몰랐겠지. 자네가 상상도 하지 못할 온갖 곳들에서 자네의 이름을 들먹이고 있었다네.

내가 변함없이 윤이 도령이라 부를 때마다 자네는 질색하지마는… 내게 자네는 일면식조차 없을 때부터 남가의 윤이 도령이었어. 나는 남윤이란 두 글자보다 남가의 윤이 도령이라는 이름이 좋네. 좋다 하는 것이 맞을까, 뼈에 사무쳐 있다 해야 하나. 이 또한 잘 모르겠지마는. 여하튼 그러하다네.

“남가 윤이 도령이요……?”

지금이야 사무치는 이름이나, 열다섯 최영목에게 윤이 도령은 금시초문이었어. 내가 어리둥절해하며 묻자 장정이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쿡 찌르더군.

“에잉. 왜 모르는 것처럼 굴어? 자네 주인댁, 최 역관의 최종 목표 아니던가. 역관으로 야무지게 벌어 당상관 남양일처럼 되는 것.”

“아아. 실은 제가 한양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요.”

“으이구, 어쩐지. 최 역관네 더부살이하는 종놈인데 얼굴이 낯설다 했어.”

“내 말이. 이 가뭄에 이렇게 혈색 좋고 훤칠하게 생긴 애가 흔할 리 없는데.”

“어유. 제가 종놈 같지 않게 귀티 난다는 말은 곧잘 듣습니다.”

나는 바보처럼 헤헤 웃고 아무 말이나 주워섬기면서 허리춤에 여분 삼아 대충 묶고 있던 끈을 풀었네. 그 끈으로 업고 있던 아기를 내 몸에 더 단단히 묶었어. 입도 손도 쉬지 않고 움직이면서 머릿속으로 ‘남가 윤이 도령’이라는 이름만 가득 되뇌었지.

“그러니까 한양 최고 부잣집이 윤이 도령네 집이란 말씀이시죠?”

“인심도 성품도 좋은 댁이지. 이 심한 가뭄인데도 과객을 내치지 않는 집이야.”

“그래요? 지천에 굶어 죽은 사람들인데 과객을 거둬 줘요?”

“조선 팔도 그만한 부자가 없을 정도라니 말 다 했지, 뭐. 다음부터는 최 역관 심부름 오가는 길에 꼭 들러서 뭐라도 얻어먹고 다녀.”

“와, 아깝다, 아까워! 형님들과 진작 알았으면! 진작 이 이야기를 들었으면! 남가에서 몇 끼는 공으로 얻어먹었을걸!”

맞장구를 치며 너스레를 떨자 장정들은 뭐가 웃긴지 낄낄 웃음을 터뜨렸어. 나는 그들을 따라 목청 높여 웃으면서 단단하고 긴 나뭇가지를 하나 주워 들고 잔가지를 다듬었어. 휘두르기 편하도록.

“에휴. 저는 이제 슬슬 일어나 봐야 할 것 같습니다요. 최 역관 어르신께 무당 처리는 어떻게 되었다 전해 드리면 되겠습니까?”

“어떻게 되긴 뭐가 어떻게 돼. 돌 맞아 뒈진 거지.”

“범골 당골네가 하룻밤 새에 없어진 걸 사람들이 이상히 여기면 관아에 이야기가 들어가거나 할 수도 있잖아요.”

“하!”

장정들이 일제히 코웃음을 쳤네.

“야! 이 환란에 무당 하나 죽어 없어진 게 뭐 대수라고. 누가 신경이나 쓰겠어?”

잔가지를 다듬던 손이 우뚝 멎었네.

“늬 주인댁 가서 쓸데없는 걱정 말라고 전해. 이 가뭄은 다 무당 신기가 떨어진 탓이다, 신기 잃은 무당이 하늘을 노하게 했다, 그래서 서낭나무 밑 돌탑에 깔려 죽었다― 이렇게 소문낼 거니까.”

싱글대는 얼굴을 향해 마주 웃었던 것까지 똑똑히 기억해. 그리고 머리보다 손이 먼저 움직였지. 어머니가 왜 죽어야 했는지, 어머니의 죽음이 어떻게 묻힐 것인지 알게 되었으니 더 이상 살려 둘 필요가 없잖아.

“으윽!!”

장정들은 제대로 된 신음 한번 뱉지 못하고 어머니의 뒤를 따라갔네. 덕분에 이날 나는 내 재능을 여럿 알게 되었지. 나는 비형랑이 만든 나무 기둥을 뚫을 수는 없지만 사람은 뚫을 수 있는 사람이더라고. 나뭇가지 하나로. 게다가 장정 모가지 여덟 개 꺾는 것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닌 장사더구만, 내가.

나는 죽은 놈들을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던져 버리고 머리카락이며 몸에 함박눈을 문질러서 핏물을 닦아 냈어. 그리고 미친놈처럼 산길을 달렸네.

그렇게 먹지도 자지도 않고 하루를 꼬박 달려 한양에, 자네 집 앞에 도착했어. 해 떠 있는 동안 쉼 없이 걸으면 닷새가 걸릴 길, 밤낮없이 걸어도 사흘이 꼬박 걸릴 길을 말이야. 지금 다시 하라면 때려죽여도 못 할 것 같아.

아무튼 그렇게 죽을 것처럼 달리는데도 아기는 쿨쿨 잘도 자더구만. 지금 생각해 보면 쿨쿨 잔 것이 아니라 배고파 기절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렇게 실성한 것처럼 달리고 달려서 자네 집 대문 앞에 도착했던 그날 밤엔 지긋지긋한 눈이 내리고 있었어. 더럽고 추잡하고 흉측한 것들이 흰 눈으로 덮여 온통 무결해 보였지. 눈물 나도록 아름다운 풍경이라 문득 참 서글퍼졌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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