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기실 실패만 보았지요. 도운 보람도 없이.”
“…….”
“그대의 모친은 그렇게 짓밟히고도 최 역관 놈의 심장에 칼을 박아 넣지 못했고, 남가의 여식은 버림받고도 마음을 끊어 내지 못해 화를 자처 중이고.”
“남가……?”
“그런 데가 있어요. 물건 보는 눈은 조선 팔도 최고면서 사람 보는 눈은 없는 집안.”
진한 조소와 경멸 뒤엔 안타까움이 비쳤어.
나는 오늘 비로소 스승님이 왜 그리 분노하였는지, 그러면서도 왜 또 돕기를 반복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네. 이제야, 자네를 마음에 담고서야 알았어. 조금만 더 하면 다음에는… 하는 희망을 품게 하더구만. 그 망할 놈의 연정이란 게.
이렇게 내가 자네를 마음에 담았듯 스승님은 힘없는 이들을 품으신 거였어. 생명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니까. 스승님은 그 흙을 다스리는 신이니까. 도저히 품지 않을 수가 없으셨던 게지. 신의 선의는 인간이 생각하고 기대하는 것과 매우 다르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스승님의 분노와 미련은 흙에서 태어난 것들에 대한 애정에서 기인했네.
참으로 어려운 얘기야. 늦은 소나기가 내리던 날의 어린 최영목으로서는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을 정도로 어려운 신의 뜻이었지. 자네를 은애(隱愛)하지 않았다면 나는 스승님의 기분을 영영 깨닫지 못했을지도 몰라.
슬프지 않은가? 이해에 시간 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말이야.
“여인으로, 태어난 그대로 살기 참으로 힘든 세상입니다. 내가 용이 되고 셀 수 없는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
“그래서 그대는 방법을 달리 도와 보려 해요.”
대들보를 바라보던 스승님의 시선이 비를 맞고 선 노란 꽃을 거쳐 내게로 돌아왔네.
“어때요. 정말로 대들보를 한번 부숴 보렵니까?”
자네라면 어떠하였을 것 같나? 지체 없이 고개를 끄덕였을까?
나는 쉬이 대답하지 못하였어. 마당을 팰 듯 두드려 대던 빗방울이 두툼한 빗줄기가 되고, 웅덩이를 만들어 작은 강처럼 흐르다가, 비가 멎고 노을이 질 때까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 이렇게 물었다네.
“스승님, 서릿재 어르신은 도깨비지요?”
“그래요.”
“도깨비가 만든 대들보를 제가 부술 수 있을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아, 이 험한 세상에서 잘 버티려면 남 등쳐 먹고 살아야 한다고, 그러려면 너무 솔직하면 아니 된다고 그렇게 가르쳤건만.”
스승님은 아까보다 더 맑게 웃으셨다네. 한참이나 웃으시더니 타이르듯이 말씀하셨어.
“영목, 내가 말하는 대들보는 저딴 게 아니에요. 도깨비가 만든 대들보보다 더 부수기 힘든 걸 말하는 거예요.”
“…저한텐 솔직하면 아니 된다 하셨잖아요.”
“나는 거짓을 말할 수 없는 용이고. 그대는 인간인걸.”
나는 입을 삐죽 내밀며 고개를 끄덕였네. 난 인간이니 앞으로는 너무 솔직하지 아니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들보 한번 부수어 보겠다. 모든 의미를 담은 끄덕임이었지. 설마 이리 빨리 결정할지 몰랐다는 듯이 스승님이 거듭 물으시더군.
“코피 나는 정도로는 끝나지 아니할 텐데? 나보다 더 모나고 나보다 더 외롭게 살아야 할 수도 있는데?”
“그래도요.”
그분의 눈이 비단 손수건으로 틀어 막힌 내 코끝에 박힌 듯 머물렀네.
“…내가 지금 요만한 아해에게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건지.”
스승님의 손이 어깨 위에 내려앉았어. 톡톡. 응원 같기도, 위로 같기도 한 두드림이 좋아 빙그레 웃자 스승님은 조금 무겁게 마주 웃으셨지.
“더 많이 먹고 더 큰 뒤에. 그때 다시 물을 터이니 오늘 영목의 대답은 없던 걸로 해요.”
순간 나는 좀 서운했던 것 같아. 왜 그랬을까.
* * *
밥 잘 먹고 속을 다 게워 낼 때까지 검을 휘두르다 날이 저물면 또 밥을 먹고 기절하듯 잠들길 몇 년. 군관 같은 매일을 반복하면서 열다섯 살쯤 되니 내가 봐도 내 몰골이 제법 훤칠해지더군.
그러던 어느 날이었네.
“영목아, 잠깐 나와 봐.”
연수산 입구에서 옹기 굽는 일을 하는 아낙이 스승님 댁 대문 앞에서 손을 흔들어 조용히 나를 불렀어.
“왜 그러세요?”
“네 엄마가 산 경계에서 기다려. 범산과 연수산이 만나는 데에서.”
어머니가 마을 아낙을 통해 몰래 기별을 보냈던 거였지. 언제나 그랬듯 스승님 모르게 조용히 나오라는 당부도 더해졌네.
나는 곧장 묵직한 음식 보따리를 꾸렸어. 자네도 알다시피 8년 전… 그해는 가뭄과 흉년이 너무했잖나. 시절이 워낙 유난스럽다 보니 어머니가 줄곧 염려스러웠거든.
나는 스승님이 나 먹으라고 주었던 육포며 동네 아낙들이 챙겨 준 말린 나물 따위를 바리바리 싸 들고 단걸음에 달려 나갔다네. 어머니는 밭도 땅도 없이 험한 범산에 홀로 사는 당골이니 그동안 얼마나 배곯고 지내셨을까. 그런 생각에 정말로 날듯이 눈밭을 헤치고 달렸어.
“영목아.”
겨울. 유난히 춥고 배고픈 겨울. 그 혹독한 순백의 설산에 갓난아기를 안은 어머니가 서 있었어.
“…어머니.”
한동안은 어머니나 나나 서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 마주 보고 서 있는데도 우리는 서로 어찌 그리 외롭기만 하던지. 내 손목에 걸려 주책없이 덜렁대던 보따리만 홀로 소란하였던 기억이 나.
“영목아, 이 아이 좀 맡아 주렴.”
“…….”
또, 그 몸으로 또, 이 한겨울에 또, 혼자 어디서 아이를 낳은 모양이었어.
묻고 싶은 말, 퍼붓고 싶은 말이 목에서 턱턱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더군. 대체 어디서 몸을 풀었나. 얼굴에는 왜 가시지 않은 멍이 남아 있나. 이 꼴로 나를 찾을 정도로 무엇이 그리 급하였나. 말이 되지 못한 물음에 나는 입만 벙긋댔다네.
어머니는 그런 내게 강보에 둘둘 말아 싼 아이를 넘기고는 휘적휘적 사라졌네. 어머니, 불러 보려 했지만 목이 메어 그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어.
한 팔에 달랑 안기는 작은 아이가 괜시리 무겁고 또 무거웠어. 놓아 버리고 싶었네. 우리 위로 쌓이는 눈마저 못 견디게 무거웠으니까.
차라리 나오지 말걸. 뒤늦은 후회만 솟더군. 어머니를 보러 오지 아니하였다면 이 무게도, 온기도, 울화도 모르고 살았을 터인데. 어차피 일 년에 한 번 올까 하던 어머니이니 올해는 아니 온 셈 치자고 살았을 터인데.
“저 미련한 것! 미련해 빠져서 제 새끼들에게 못 할 짓이나 하는 불쌍한 것!”
등 뒤에서 스승님의 차가운 목소리가 날아들었네. 누가 심장에 얼음을 꽂아 문지르는 것 같더군.
“영목! 그 핏덩이, 내 집엔 못 들입니다! 내다 버리든가 같이 나가세요!”
처마 끝에 매달린 고드름을 떼어 찔러도 스승님의 음성만큼 시리진 않았을 것 같았어. 획 돌아 저벅저벅 사라지는 스승님의 발걸음이 참으로 야속하였네. 평소에도 따스한 분은 아니었네마는, 그날은 유난히 더 시리게 구셨지.
매서운 비난에 얼어 있던 나는 곧 정신을 차리고 스승님의 뒤를 따라 달려가 매달렸어.
“스승님, 제발 도와주세요! 이 겨울에 아기 홀로 두면 죽습니다!”
“그게 뭐? 내가 범산 무당집 애를 몇이나 대신 키워 줘야 하지? 죽을 아이 이만큼 키워 줬더니 또 핏덩이를 두고 가는 인간이 뭐가 예뻐서?”
“…….”
“영목이 생각해도 염치없죠? 인간들은 양심 없는 부탁을 참 아무렇지도 않게 하더라.”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네. 내가 스승님이라도 화가 나긴 했을 것 같아. 앞가림 못 하겠다며 두고 떠난 아이를 열다섯 살 되도록 길러 줬더니 은혜도 모르고 갓 낳은 둘째 애를 또 두고 도망간 것 아닌가. 스승님 입장에선 백번 화내고도 남을 일이지.
내가 아이만 꽉 끌어안고 고개를 숙이자 스승님은 혀를 차셨어.
“입 다무는 걸 보면 어미보단 자식이 그나마 조금 더 양심 있는 축이네요.”
“스승님…….”
“듣기 싫으니 나 부르지 말고 알아서 해요. 제 배 아파서 낳은 아이 또 버리고 간 어미 따라가서 돌려주든가, 그대가 어떻게든 키우든가.”
매정한 선언을 마치자마자 스승님의 모습이 사라졌어. 나는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아기를 안고 고개만 떨구고 있었지.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어머니가 신당을 차린 범산. 오른쪽 길로 가면 스승님의 집. 익숙히 다니던 길인데도 눈이 쌓이니 그 어디에도 우리가 갈 곳이 없는 것 같았어. 해 저무는 산이 달빛을 받아 흰빛으로 덮이도록 시간을 하염없이 흘려보냈지. 동상이라도 걸린 겐지 뺨이 유난히 붉은 아이를 안고 날이 지도록 서 있었네.
“으이이잉…….”
아이가 칭얼대기 시작할 때에서야 정신이 들었어.
지금의 나는 이 아이를 책임질 수 없다. 어머니의 선택까지 내가 짊어질 수는 없다.
이기적이라 욕해도 할 수 없네. 남의 집 군식구로 사는 열다섯 살짜리에게 갓난쟁이 뒤치다꺼리는 불가능한 일 아닌가?
여즉까지 수천, 수만 번도 넘게 이날의 결정을 곱씹고 있어. 하지만… 모르겠네. 답을 내리지 못했어. 이날을 습관처럼 되새기고 또 되새기는데도 나는 왜 그랬을까, 용서받을 수나 있는 핑계였을까, 아직도 확신할 수가 없다네. 그냥 내가 열다섯 살짜리였기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이날 이때까지 버티는 게 최선이었지. 그러니 자네도 더 묻지 말고 슬쩍 넘어가 주게.
“흐아…….”
내가 저를 버리기로 작정한 것을 눈치채기라도 한 건지, 아이의 칭얼대는 소리가 귓전을 때려 가까스로 마음을 다잡았네. 젖을 달라 하는가, 기저귀를 갈아 달라는가. 하여튼 아기는 금방이라도 빼액 목청을 높일 기세로 입술을 삐죽댔어.
“쉬이. 쉬. 나는 너 줄 젖도 없고 기저귀 가는 법도 모른다. 조용히 해.”
나는 입술을 삐죽대는 아기를 어르며 왼쪽 길을 따라 범산을 향해 걸었네. 걸었다기보다는 내달렸다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아. 품 안의 아기가 울먹이던 것도 멈추고 놀라 질려 가고 있었거든.
“야, 너무 그렇게 숨넘어갈 것 같은 얼굴 하지 마라. 응? 얼른 엄마한테 데려다주려고 빨리 가는 거잖아.”
창백하게 질려 가던 아기는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새빨간 입술만 삐죽삐죽댔어. 갓 태어나 쪼글쪼글한 게 쓰잘데없이 귀여워 갖고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급히 끌어 내리며 걸음을 옮기는데… 저만치 멀리에서 불어닥치는 겨울바람에 고약한 쇠 냄새가 묻어오더구만.
우뚝 걸음을 멈춘 순간 나도 모르게 눈에서 주르륵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네. 그 쇠 냄새가 어머니의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으니까. 아직 근처에도 못 갔는데 새하얀 눈을 녹이는 새빨간 선혈이 보이는 것 같더라고.
엄마. 엄마.
나는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입만 벙긋대며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향해 달려갔어.
목에서 쌕쌕거리는 마른 숨소리가 나기 시작할 때쯤, 서낭나무가 보이기 시작했네. 나뭇가지에 묶인 오색천이 파라라락 소리를 내며 거칠게 흔들리고 있었지. 그리고 서낭나무 옆에 앉은키만큼 쌓인 돌무더기가 눈에 들어왔어. 돌무더기 아래로 붉고 노랗고 파란 무복 자락이 빼꼼 비어져 나와 있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