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남윤의 삶 】
한성 제일 부자, 당상관 댁의 으리으리한 대문이 활짝 열렸다.
“살펴 다녀오십시오, 도련님.”
넓게 벌어지는 대문 안에서 훤칠한 도령의 모습이 나타났다. 당상관이 보석보다 아끼는 손자, 남윤이었다.
윤은 행랑아범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인사를 받고는 안아 달라 채근하는 어린 동생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가 아이를 안은 채 반질반질 윤이 나는 두툼한 나무 문을 나선 순간, 고용살이하는 머슴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다녀오십시오, 도련님.”
“뭐야아. 오라버니만 보이고 나는 안 보여? 나한테도! 단이한테도 잘 다녀오라 해 주어!”
윤에게 안긴 자그마한 아이가 통통한 뺨을 부풀리며 투정했다. 허리 숙여 배웅하던 고용인들의 얼굴에 부드러운 웃음이 배었다.
“애기씨께서도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응응!”
단은 엎드려 절받기로 인사를 받으며 연신 방글방글 웃었다.
표정 많은 단과 달리 윤의 얼굴은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무표정하게 걸음을 옮기던 그는 갑자기 생각난 듯 발을 멈추고 고개 숙인 머슴들에게 무심히 일렀다.
“내가 돌아오기 전에 최 형이 오실 게다. 밤새 놀다 오시느라 퍽 고단하실 터. 편히 쉬시도록 사랑채 큰 방에 모셔라.”
“…….”
물을 끼얹은 듯한 정적이었다. 하인들의 못마땅해하는 기색을 기민하게 읽어 낸 윤이 몸을 틀었다.
“이렇게 많은 입 중에 대답하는 입 하나가 없나.”
“…외람되오나, 도련님, 영목 도련님을 꼭 도련님 방으로 뫼실 필요가 있습니까요?”
짙은 침묵을 깨고 떠꺼머리 머슴 하나가 입을 열었다. 다른 머슴들도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부족함 없는 그들의 도련님은 어째서인지 악명 높은 왈짜인 최영목을 ‘최 형’이라 부르며 유난히 의지했다. 영목의 아비도, 윤의 조부도 중인 역관 출신이라는 공통점은 있었다. 하나 두 집안의 형편은 하늘과 땅 차이라 해도 과하지 않았다.
영목은 기방의 추저분한 잡일을 해결해 주며 먹고사는 인간이었다. 평소보다 큰돈이나 급전이 필요할 때에는 윤에게 느물느물 들러붙어 해결하는 인간.
허리춤에 싸구려 장검을 매단 영목이 윤의 어깨에 척 하니 팔을 걸면 온 한성 사람들이 혀를 찼다. 남들이 뭐라 비난하든 눈썹 하나 꿈쩍 않고 윤에게 치대는 영목의 뻔뻔함도 그의 평판에 지대한 악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당상관 댁 머슴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 윤과 영목의 교제를 불만스러워했다. 부족함 없으신 우리 도련님이 왜 저런 인간과 붙어 다니시는지 모르겠다면서.
“도련님, 이제 도련님도 영목 도련님과는 조금 거리를 두심이 어떠신지요? 영목 도련님은 고작해야 도련님의 호위 아닙니까?”
떠꺼머리 머슴은 용기 내어 말을 꺼낸 김에 내내 가슴에 품고 있던 충언을 건넸다.
“영목 도련님이 남가와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도련님 이름을 팔고 다니는 탓에 말들이 많습니다요.”
윤은 충직한 머슴에게 대답도, 질책도 내어 주지 않았다. 서느런 눈길로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할 뿐.
한 박자 늦게 제 실수를 깨달은 머슴이 황급히 뒷걸음질로 물러나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어… 그게… 저는 그저 도련님이 염려되어서…….”
윤의 눈이 이번에는 행랑아범을 향했다. 가까스로 한숨을 삭인 행랑아범은 아주 깊이 고개를 조아리며 젊은 주인의 질책을 고스란히 받아안았다.
“영목 도련님은 제가 부족함 없이 살뜰히 모시겠습니다. 방금 큰 실례를 범한 저놈 또한 제가 책임지고 다시 가르치겠습니다. 부디 노여움 푸시고 다녀오시지요.”
냉기 가득한 윤의 시선이 무언의 경고를 던졌다. 고개를 조아린 고용인들을 찬바람 도는 시선으로 한참이나 내려다보던 그가 겨우 천천히 몸을 돌렸다. 오랜만의 마실이 시작부터 영 불쾌한 탓에 윤의 표정은 평소보다도 더 차가웠다.
슬며시 오라버니의 얼굴을 살핀 단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오라버니, 기분 푸시어요.”
“이런……. 내가 사람됨이 부족하여 단아 너까지 염려하게 만들었구나.”
윤이 한숨 섞인 음성으로 동생을 안심시켰다. 그는 어린 동생을 꼬박꼬박 단아라고 불렀다. 단 또한 그에게 단아라 불리는 것을 세상 무엇보다 기꺼이 여겼다.
“에이. 그런 말씀 마시고요.”
귀엽게 배싯 웃은 단은 커다란 눈을 한 바퀴 도로록 굴리며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오늘 영목 오라버니는 왜 오시는 거예요? 이번에도 두 분이 함께 연수산 가세요?”
단은 오라버니의 악우(悪友)를 유난히 좋아했다. 영목을 만날 생각에 단의 뺨에 꽃물이 들었다. 벌써부터 들썩이는 누이동생의 등을 토닥여 진정시키면서 윤은 얼음장 같던 표정을 완전히 누그러뜨렸다.
“우리 단아는 최 형의 어디가 그리 좋을까.”
“네? 어, 저는, 그냥, 음…….”
“아하. 그냥 막 다 좋은 거구나.”
“오, 오라버니 친우시니 좋은 게지요!”
그는 터질 듯 달아오른 동생의 뺨을 검지로 쿡 찍었다. 그리고 그 손가락을 들어 저 앞의 북적이는 거리를 가리켰다.
“보이지? 이제 곧 운종가란다. 걸음을 서두를 터이니 꽉 잡거라.”
“네에에.”
“빨리 다녀와야 우리 단아가 그냥 막 좋아하는 최 형을 조금이라도 빨리 만나겠지.”
“아으, 오라버니! 진짜!”
놀리는 말에 단이 발칵 언성을 높였다.
사람이 구름 떼처럼 몰려 있다 하여 운종가(雲從街)라 부르는 거리. 그 복작이는 거리의 온 시선이 일순 한곳으로 모였다. 윤은 온갖 눈길들을 무시하려 애쓰면서 어린 동생을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그의 긴장이 전해지자 단이 어깨를 움츠렸다.
“죄송해요. 제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아니야. 단아 네가 미안해할 일이 아니다.”
윤은 고개를 떨구는 동생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이면서 보폭을 넓혔다.
그가 걸음을 옮기자 구름 떼 같은 이들로 북적이는 운종가에 길이 생겼다. 티끌 하나 없는 옥색 도포가 날리는 곳만 다른 세상인 양 한산해졌다.
저도 모르게 길을 비켜 준 이들이 새삼스러워하는 눈으로 윤을 돌아보았다.
“윤이 도령…이지?”
“지난 달포 사이 한 뼘이나 훌쩍 자라느라 앓아누우셨다더니. 몰라보겠네.”
문턱이 닳도록 당상관 댁을 드나드는 과객들의 입방정은 헛소문이 아니었다. 마냥 곱기만 하던 도령은 정말로 제법 사내다운 모습이 되어 있었다.
운종가 초입에 쪼그려 앉은 상인들이 감탄 반, 수군거림 반으로 웅성이는 사이, 젠체하는 양반 사내들이 짐짓 안타깝다는 듯이 혀를 차며 말을 보탰다.
“저 도령이 남윤인가? 허허. 실로 애잔하다.”
“다른 배에서 태어났다면 남윤이야말로 주상께서 귀애하실 재목이었을 터인데……. 안타깝기 그지없소.”
나이 지긋한 양반 둘이 주거니 받거니 물꼬를 텄다. 그러자 윤의 걸음을 눈으로 좇던 다른 사대부들도 앞다투어 남윤의 삶을 안타까워하기 시작했다.
“저 난초 같은 인재를 하필 한겨울 얼음물에 뿌리내리게 하셨으니. 하늘도 야속하시지.”
“그러게나 말입니다. 쯔쯔, 가여워라.”
점잖은 낯짝으로 목소리 깔고 수염 쓰다듬으며 한다는 짓이 고작 열여덟 살 먹은 도령 얕잡기라니. 이러니 반상의 도리는 개도 안 물어 가는 세상이 된 게지. 좌판 앞에 앉은 아낙들은 조용히 눈빛만 교환하며 헛웃음을 치고 있었다.
“쯔쯔. 가진 재주가 안타까울 따름이로다.”
“외양이 곱상하여 그런가… 데릴사위로 들이려는 댁들이 숱하다고는 하더이다.”
“어이쿠, 저런. 그… 다행이라 해야 하나.”
알 만한 사내들이 멋 부린 목소리로 수염을 쓰다듬으며 나눈다는 말이 이 지경이었다.
“누가 압니까? 어느 사대부 댁 별당 후원에 고이 옮겨 심어지면 물속 난초에도 꽃이 필는지?”
“허허. 아무리 그래도… 남윤은 아비 없이 태어나고 호패조차 받지 못한 이가 아닌가. 그런 이를 꽃피워 줄 수 있을 만한 사대부 가문에서 정작 그를 데려가려 하겠소?”
동정으로 가장한 조롱이 점점 더 심해지자 참다못한 아낙 하나가 양반들이 모여 있는 우물가를 향해 크게 콧방귀를 뀌었다.
“하! 우스워서 이 이상 못 들어 주겄네. 저들이 뭐나 된다고 윤이 도령을 두고 입방아질이람!”
“누가 아니라니. 용궁 같은 집에서 사는 도련님을 두고 얼음물 속 난초가 웬 말이야?”
면전에 던지는 핀잔이 퍽이나 무안하여 사내들은 삿되이 떠들던 입을 다물었다. 번다한 저잣거리 한중간에서 헛기침 소리만 어흠, 어흠 터져 나왔다.
저를 두고 싸움이라도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가 되는 바람에 윤은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못 들은 척 빠르게 지나치려던 그는 괜스레 단의 등만 토닥이면서 한숨을 삭였다.
“하! 부럽다는 말을 저리 이상하게 하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일세.”
처음 목청을 높인 여인이 다시 크게 콧방귀를 뀌었다.
“평생을 통틀어 윤이 도령보다 더 가진 거라고는 제 알량한 호패 하나뿐이라 저 지랄들이지.”
기세등등 혀를 차던 사내들마저 당황하여 찬물 맞은 개처럼 완전히 입을 다물었다. 어색한 적막 위로 아낙들의 뾰족한 음성이 기세를 키웠다.
“아니, 생각할수록 우습네. 윤이 도령이 아무리 물에 잠긴 인재라 한들, 냇가 맹물과 용궁 바닷물이 어찌 같은 물이야?”
“뭐 눈엔 뭐만 보인다잖니. 동태 같은 눈깔에는 용궁 같은 당상관 댁이, 으리으리한 남가 상단이 고작 한겨울 물가로 보이나 보지.”
비아냥거림이 거세지자 양반 사내들은 부채를 펄럭 펼쳐 들고 달아오르는 열을 식혔다. 그러고는 아낙들이 모인 곳을 향해 짐짓 엄하게 꾸짖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쯧. 알량한 잡동사니나 파는 것들이 무얼 안다고 웃전 말씀에 입을 대나!”
“반상의 도리도 모르는 천것들이 밖에 기어 나와선…….”
“에이. 자네들이 참아. 저게 다 배움이 없어 하는 말이니 괘념치 말게나.”
바로 그때였다. 돌아가는 판을 못마땅하게 지켜보던 여인 하나가 우물가의 사내들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사뿐사뿐 걷는 걸음마다 여인이 던지는 조소가 선명히 찍혔다.
“귀하들은 도통 부끄러움을 모르는구려. 꼴에 사내랍시고, 양반이랍시고 입만 살아서는.”
“뭐라? 어디서 굴러먹던 계집인데 감히!”
다급히 달려온 몸종 아이가 “아씨이.” 하며 말리는데도 그녀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기어코 우물가에 다다른 여인은 경멸 가득한 눈으로 사내들을 주욱 훑으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어디서 굴러먹었느냐……. 좋은 질문이오.”
여인은 뒤집어쓰고 있던 장옷을 스윽 벗어 내려 몸종 아이에게 건넸다. 그리고 눈을 부라리는 양반 사내들을 똑바로 쳐다보며 또박또박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