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의 말
송나라에 대한 엇갈린 평가.
이 소설의 시대 배경인 송나라는 중국 역사상 문학이 가장 발전한 시기이자, 국방력이 가장 약한 시기로 역사상 평가가 많이 갈리는 나라입니다.
‘천하는 나누어져 오래 지나면 반드시 합쳐지고, 합쳐진 지 오래되면 반드시 나눠진다.’
-나관중 <삼국지연의>
역사 기록이 등장한 이래, 중국은 군웅할거의 시대가 긴 시간 이어지며 끝도 없는 전쟁이 이어집니다.
전설의 기록 삼황오제, 하(夏), 은(殷) 왕조를 거쳐 하늘의 아들, 천자(天子)임을 주장하는 주나라 왕조를 시작으로 이어진 춘추전국 시대를 통일하고 세운 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 ‘진’(秦) 나라가 15년 만에 멸망하고 초한 쟁패를 통해 승리를 거둔 유방 유고조가 세운 ‘한’ 나라를 지나, 위, 촉, 오, 삼국시대의 막이 오릅니다. 그 후로 위진남북조를 거쳐 수나라가 다시 한번 중국을 통일하여 나라를 세우나 이번 역시 짧은 역사로 막을 내리고 중국 역사상 가장 화려한 문명의 꽃을 피운 당나라가 시작됩니다.
달이 차면 기울고, 세상엔 영원한 강자가 없다는 말대로 당나라 역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또 한 번 혼란의 시기, 5대 10국이라는 분열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이중 5대(5代: 당나라 멸망 후 생긴 후량, 후당, 후진, 후한, 후주 등 5개 왕조)의 후주(周)의 장군이었던 태조 조광윤이 세운 나라가 바로 송나라입니다.
이러한 분할과 통일의 시대를 거치면서, 송 태조는 치국의 도를 무(武)가 아니라 (文)에 있다고 생각하여 문을 중시하기 시작합니다.
전쟁보단 대화와 타협으로, 외세의 침략엔 항전의 의지보다는 ‘돈’으로 해결하려는 태도를 보인 바람에 송나라 때는 주변 국가들과 수많은 불평등 조약을 체결했고, 이민족의 침범도 잦았습니다.
이렇게 국방력이 가장 약한 나라이긴 했으나, 인권이 보장된 왕조이자 중국의 민주주의가 꽃을 피운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송나라 황제는 강압적 통치가 아닌 자애로운 군주가 많았고, 중국 역사상 유명한 정치가 범중엄(范仲淹), 포청천으로 유명한 포증(包拯) 같은 청백리가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제압했습니다. 신하의 권력이 막강하여 붕당 정치가 성행한 시대이기도 합니다.
송나라는 수나라 때 시작하고 당나라에 자리 잡은 과거 제도를 발전시킨 시대이며, 당나라 율법을 탄탄히 하고 백성의 삶을 보장한 시대입니다.
또한 문(文)을 중시해서 제왕적 군주보다 예술가 문인의 자질을 지닌 군주가 많았고, 중국 문학이 화려하게 발전한 시기입니다.
특히 ‘인종성치’ 시대를 연 송 인종 집권 시기에 활동한 구양수, 소순, 소식(소동파), 소철, 증공, 왕안석이 훗날 당송팔대가라고 불렸던 8명의 대문인 중 6명입니다. 당나라, 송나라의 팔대 문인이라고 손꼽히는 문인 중에 6명이 송나라의 문인인 거죠.
이 소설의 주요 배경인 시대의 황제 송 신종의 할아버지이자 조 태후의 남편이 바로 송 인종입니다.
인종은 농업만 중시하고 상업은 천대하는 역대 한족 왕조와 달리 상업 발전을 꾀했습니다. 야간 통행금지를 해제하고 시장을 활성화함으로써 백성의 자유로는 상거래를 보장했고, 세계 최초의 종이돈 교자(交子)를 발행했습니다.
과학과 해상 무역 역시 매우 발전한 시기로, 송나라 역사상 가장 번영했던 때입니다. 판관 포청천으로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포증이 이 시기를 ‘하, 은, 주 이래 한나라, 당나라를 뛰어넘어 가장 번영한 시기’라고 자신했다는군요.
송나라 전성기를 이룩한 인종은 두 명의 황후가 있었으나, 아쉽게도(?) 두 번 모두 본인이 원하는 황후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송 인종은 외모를 중시했는지 배필 중에 용모가 뛰어나고 마음씨가 고운 여인이 황후가 되길 은근히 기대했는데 그때 수렴청정 중인 유 태후가 본인에게 알랑거리는 곽씨를 황후로 책봉했습니다. 곽씨는 유 태후를 등에 업고 다른 비빈들은 접촉하지 못하게 하는 등 인종의 분노를 사게 되어 부부 사이가 멀어집니다.
후에 유 태후가 세상을 떠난 후, 곽씨는 끈 떨어진 연이 되어 인종이 노골적으로 멀리했고, 비빈을 총애했습니다. 곽씨는 두 비빈을 몹시 미워했고, 하루는 황제 앞에서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우는 황당한 일이 벌어집니다. 곽씨는 흥분한 나머지 황제의 목에 손자국이 날 정도로 목을 때리고 맙니다.
황제의 옥체에 자국을 내다니, 당연히 폐위할 만한 일이었겠네요. 그러나 그 당시 우사간이었던 범중엄이 반대하고 나서는 바람에 폐위 사건을 둘러싼 당파싸움으로 변질됩니다.
결국 인종이 마지막 결정을 내려 폐위 조서를 내렸고, 또 한 번 간관들이 부당함을 주장하자 진노한 인종이 그때 관련된 비빈까지 모두 궁에서 쫓아냅니다.
그렇게 조정엔 새 황후가 필요해졌고, 이번엔 인종의 양어머니 장혜양 태후가 황후를 고르게 됩니다. 태사 조기의 딸 조씨가 심성이 곱고 부덕이 있으며 경사에도 정통한 국모 자리에 손색없는 규수라 하여 새 황후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희행 작가의 말대로, 후에 ‘조 태후’로 역사에 조금 이름을 날리는 인물이죠. 조 태후 역시 용모가 그다지 뛰어나지 않아서, 인종의 사랑을 받진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인종은 자식 복이 지극히 없는 군주였습니다. 새로운 황후에게도 자녀가 없었고, 조정 대신들의 건의를 수용하여 송 태종의 증증손자 조종실을 양자로 받아들인 후 세 아들이 태어났는데 모두 요절합니다.
아들을 연달아 잃은 인종은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갈수록 쇠약해졌고, 대신들은 나라의 안위를 위해 황태자를 세우라고 간언합니다. 황자가 된 조종실은 서라는 이름을 하사받고, 5대 황제 송 영종이 됩니다.
송 인종의 붕어 소식에 요나라 황제 야율홍기도 침통해하며 의관총(衣冠塚)을 지어 추모했다고 합니다.
송 영종 즉위 후, 황태후가 된 조 태후가 두 번째로 송나라에서 수렴청정한 태후가 됩니다. 송 영종은 이 어머니와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고, 오히려 영종의 아들 송 신종 조욱이 친할머니가 아닌 조 태후를 지극한 효심으로 모셨다고 합니다.
송나라 개국 대신인 노국공 조빈의 손녀, 태사 조기의 딸인 조 태후는 출신도 훌륭하고 농사일에도 조예가 깊어 백성들의 경애를 받은 일대 현후(賢后)라고 칭송받습니다.
영종의 뒤를 이어 즉위한 신종은 어린 시절부터 용모가 뛰어나고 학구열이 대단했다고 합니다. 배우는 걸 좋아하는 신종은 침식을 잊고 밤늦게까지 공부에 전념하는 개혁 의지가 강했습니다.
특히 오랑캐라고 무시한 요나라와 서하에 능욕당한 굴욕적인 역사에 분개했고, 특히 송 인종 시절에 서하에게 대패한 것에 치욕을 느껴서 집권 시에 서하 정복을 꿈꾸게 된 단초가 됩니다.
이 작품에서도 말하듯이, ‘강국부민’, 강한 나라 부유한 백성을 강력하게 꿈꾼 개혁 군주이죠. 그는 왕안석이 올린 1만 여 자에 달하는 ‘만언서(萬言書)’에 지극히 감명받아 그와 함께 법과 제도를 고치고 새로운 인재를 양성하여 나라를 발전시키길 갈망합니다.
후에 등극하여 왕안석의 개혁 의지가 반영된 변법을 채용하여 일대 혁신을 이루겠다는 포부를 펼치게 된 바탕이 됩니다.
소동파가 황주에서 관직 생활을 할 때, 과거 시험을 준비 중이던 수재 황복의 집에서 전나무를 보고 늠름한 기품에 반하여 쓴 시 중 ‘뿌리는 땅속 깊은 곳까지 뻗어있네. 세상에 숨어 있는 잠룡만이 그 뜻을 알겠지.’라는 대목에 반역의 의미가 있다고 왕규, 심괄 등이 주장한 일이 있는데, 신종은 전나무를 보고 쓴 시와 짐을 연결 짓지 말라며 그들을 반박했습니다.
그 후에 소동파는 결국 이정이 오대시안(烏臺詩案)이라는 문자옥으로 좌천되어 조정을 떠나지만, 신종이 각박한 군주였다면 그 전에 목이 베어 역사에서 이름이 사라졌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열아홉에 황제가 된 신종은 강녕지부 자리에 있던 왕안석을 궁으로 불러들여 정식으로 개혁을 시작합니다. 왕안석은 정치, 경제, 군사 등 여러 방면에서 적폐를 청산하고 혁신을 이루는 방법을 제안합니다. 이에 감명받은 신종은 의기투합하여 개혁을 단행합니다.
고위층의 세금을 걷어 백성들을 안락한 삶을 보장하며 국가의 재원을 늘려 군대를 키워야 한다는 방법 중심으로 변법을 시행합니다.
그러나 기득권인 수구세력의 반발이 거세게 발동합니다. 신종은 법가 사상에 심취한 군주였고, 유가 사상이 뿌리 깊이 박힌 대신들 사이에 의견 충돌이 일어납니다.
왕안석이 주장한 일련의 신법 중 농전수리법은 수리시설을 확충하고 토지를 개간하는 법률이고, 농업 생산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청묘법은 춘궁기에 농민들에게 낮은 이자로 곡식을 빌려주고 수확 철에 되받는 방법이었죠. 모역법은 농단이 돈을 내면 노역을 면제해주며 정부에서 실업자를 고용하는 방법입니다.
이러한 신법은 기본적으로 서민을 위한 정책이었고, 기득권의 이득과 상충합니다. 그렇게 수구파와 개혁파의 충돌이 거세게 일어난 와중에 희녕 6년, 전국에 큰 가뭄이 들어 백성이 굶어 죽고 유랑하는 사태가 속출하는 이른바 ‘천변’(天變)이 터집니다.
이에 시인 정협은 유리걸식하는 비참한 백성들의 모습을 그린 ‘유민도(流民圖)’를 조정에 바치기 이릅니다. 왕안석을 파직하고 벌하면 하늘에서 비를 내릴 것이라고 말이죠.
이들은 조 태후, 고 태후에게 변법의 폐해를 부풀려 일러바치고, 두 태후는 눈물을 흘리며 변법을 중단할 것을 요청합니다. 소철, 사마광 같은 양심적인 대신들도 왕안석을 비난하고 나서자, 송 신종도 초심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기득권 세력과 황실의 이익을 보호하지 않으면 통치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고 생각한 신종은 차츰 왕안석과 거리를 두고, 왕안석은 그런 신종에게 실망합니다.
신종은 희녕 7년 왕안석을 파면하지만, 신임을 완전히 거두진 않습니다. 그리고 개혁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1년 후 다시 재상으로 불러들였으나, 실권은 주지 않고 눈치만 봅니다.
개혁을 강력히 주장했던 초기와 달리 이리저리 눈치만 보는 신종에게 실망한 왕안석은 병을 핑계로 여러 차례 사직을 청하다가, 장남 왕방이 요절하자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고 강녕부로 돌아가 은거합니다.
후세엔 왕안석의 변법 실패를 변법 자체의 부작용, 보수파의 집단 반발, 신종의 우유부단으로 꼽습니다.
서민들을 위한 정책이 막상 시행되자 부작용이 속출한 거죠. 낮은 이자로 곡식을 빌려준 청묘법의 경우, 탐관오리의 개입으로 오히려 더 많은 이자를 갚아야 하는 등 폐단이 발생했고, 오히려 백성들은 가난해지고 국고만 불어나는 기현상이 생기고 맙니다.
그리고 너무나 혁신적인 개혁은 어느 시대나 반발을 일으키기 마련이라, 처음엔 왕안석을 지지했던 구양수, 사마광 같은 사람도 신랄하게 비난하기에 이릅니다.
현재까지도 왕안석의 변법은 공과 과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 사안입니다.
이 소설은 바로 이 시절을 배경으로 픽션과 논픽션이 참으로 탄탄하게 펼쳐진 이야기라서 참으로 흥미로웠습니다.
소설에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지만, 이름을 넣어 만든 돼지고기 요리 동파육(東坡肉)으로 유명한 소동파, 소식의 이야기도 적절히 등장하여 재미를 더해줍니다. 당나라, 송나라에 유난히 멸시받던 돼지고기를 사랑했던 유명한 시인으로 유명한 인물이죠.
살짝 역사를 뒤틀어 재미를 선사하는 희행 작가 특유의 재치도 빛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실제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허구 인물들과 얽혀서 자아내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독자 여러분도 푹 빠질 수 있길 바랍니다.
우리의 주인공 임새옥의 등장으로 한때를 풍미한 대시인 육유가 탄식을 내뱉게 되는 장면에서는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릴 수 있으리라 예상해 봅니다.
참고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음식, 복장, 명칭, 호칭 등은 최대한 원문을 사용하였습니다. 인용된 시 구절은 가능한 원문 표식과 번역을 함께 달아 두었으며, 고사성어, 유래 등도 최대한 주석을 달았습니다.
중국은 특히 본인, 타인을 칭하는 호칭이 다양한데, 처음 것만 원문을 사용하고 주석을 단 후엔 가독성을 위해 생략했음을 미리 알립니다.
하인들이 자신을 칭하는 노비(奴婢), 비자(婢子), 신하를 자칭하는 하관(下官) 등이 그러합니다.
또한, 마님에 해당하는 부인(夫人), 아씨에 해당하는 고내내(姑奶奶) 등 명칭도 원문을 따랐습니다. 결혼한 여인을 표시하는 부인(婦人)은 특별히 결혼한 여인임을 강조해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부인(夫人)과 혼동할 수 있어 여인으로 번역했습니다. 통상적으로 부인은 일정 관직에 있는 관리의 아내, 태태(太太)는 결혼한 여인을 높여 부르는 말이나, 이 소설에 사용된 호칭은 원문을 따랐습니다.
송나라 시대에 황제를 칭하는 관가(官家)라는 호칭, 결혼한 여인을 칭하는 대낭자(大娘子), 낭자(娘子) 역시 그렇습니다. 이 소설에 낭자는 아가씨를 칭하는 고낭(姑娘), 소저(小姐)와 달리 사용됩니다.
음식 역시 수제비 같은 음식도 우리나라와 만드는 방법이 다르기에 혼동을 피하려 면편탕(面片湯)처럼 원문을 사용했으며, ‘쫑즈’, ‘빙즈’처럼 발음으로 우리나라에도 어느 정도 알려진 음식도 통일성을 위해 한자 독음 ‘종자’, ‘병자’로 표기하고 주석을 달았습니다.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베이징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실력으로 1지망을 잘못 쓴 바람에 농과대학에 들어간 지지리도 운 없는 우리의 주인공 임새옥이 농업 인재로 성장한 현대에서 재수 없게 송나라로 천월하여 겪는 이야기 속으로 흠뻑 빠져드시길 바랍니다.
옮긴이 드림
고대 지주 7권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