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5화 (55/57)

5월 초하루, 잠들어 있던 임새옥은 이른 아침부터 밖에서 오가는 사람들의 기척에 잠에서 깨어났다. 눈 뜨자마자 강보에 싸인 채 곁에 있는 아이부터 바라봤다. 달을 못 채워서인지, 비쩍 말랐는데 기운은 넘쳤다. 먹고 자고, 자고 먹고, 길쭉한 것이 호두알만 한 주먹을 쥐고 고개를 기울이고 잠들어 있었다. 

임새옥이 손으로 아이의 볼을 콕콕 찔러도 아이는 꿈쩍도 하지 않고 깊이 잠들어 있었다. 살금살금 들어오던 소금남은 그녀가 깬 걸 보고 식사 준비하라고 시녀를 불렀다. 

“만월 연회를 연다고, 어머님이 당신더러 아이를 안고 나가야 한다고 해요. 날도 덥고 괜히 아이 데리고 나갔다가 바람 쐬면 안 된다고 했더니 화가 나서 말도 안 하시고.” 

소금남도 고개를 숙이고 아가를 들여다보며 웃었다. 땀띠라도 가리는 듯이 긴소매 옷, 긴 바지를 입고 머리까지 감싸고 있던 임새옥은 그가 다가오자 화들짝 뒤로 물렀다.

“나, 오늘은 좀 씻으면 안 돼요? 쉰내 난다고요!” 

소금남이 냄새를 맡아 보더니 웃으며 대답했다.

“쉰내가 아니라 젖 냄새잖아요. 아직은 씻으면 안 되니까 아이들에게 물 길어 오라고 해서 닦아 달라고 해요.” 

그리고는 밖에 누가 왔는지, 무슨 선물을 가지고 왔는지, 무얼 만들어 대접했는지 등등을 이야기했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옥매가 허둥지둥 들어왔다. 

“장 대노야가 왔는데 노부인이 문을 막고 들여보내지 않으세요. 물건도 다 밖으로 던지라 하시고요. 노야, 어서 나가 보세요.” 

장 대노야는 바로 그날 임새옥을 밀친 소작농의 주인이자 목화밭 다섯 묘의 주인이었다. 

“그분 탓도 아닌걸요. 그러지 말라고 해요. 내가 조심하지 않아서 미끄러진 거예요. 어머님이 벌써 그 집을 때려 부술 뻔했다면서요. 며칠 동안 진심을 다해서 사과하러 온 것도 번번이 거절하고. 얼른 가 봐요. 내가 잘못한 건데, 다른 집까지 놀라게 하면 안 돼요.” 

임새옥은 웃으며 말하다가, 잠에서 깬 아이가 입을 벌리고 고양이 같은 울음소리를 내자 후다닥 일어났다. 소금남은 그녀가 기저귀를 갈고, 안아 올린 다음 젖을 먹이는 걸 보고 난 다음에야 느긋하게 나가다가 무언가 떠오른 듯이 말했다. 

“어머님이 고른 유모가 오늘 왔더군. 이따 보낼 테니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골라요.” 

임새옥이 고개를 끄덕이자 소금남은 밖으로 나갔고, 아이 젖을 잠시 먹이다가 침상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시녀들이 한 상 가득 차려놓은 달걀 향탕(香湯)을 몇 입 마시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어차피 아무리 먹어도 젖도 늘지 않고, 인제 그만 먹을래. 느끼해.” 

임새옥은 젓가락을 내려놓았지만, 옥매가 허락하지 않고 달걀 향탕에 깨소금을 뿌려서 입가에 가져다주었다. 

“꼭 젖 때문에 드시는 건가요. 아이 낳으면 온몸이 텅 비는 거예요. 요즘 우리는 짧은 소매를 입고도 땀을 뻘뻘 흘리는데, 부인은 긴 팔을 입고서도 끄떡없잖아요. 몸이 그만큼 허한 거예요. 몸푼 사람은 몸조리 잘해야 해요. 화근이 남으면 평생 가도 안 낫는답니다.” 

옥매는 임새옥을 달래서 달걀 향탕 한 그릇을 비우게 하고 또 뼈탕도 먹인 후에야 잔소리를 그쳤다. 임새옥은 이런저런 일상 이야기를 물으며 노씨가 집에 도착했는지 물었다. 옥매는 고내내들이 온 것도 이야기하고, 들어온 선물 중에 아이 장난감을 꺼내다 보여주었다. 두 사람이 즐겁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밖에서 음악 소리가 은은하게 들리는 걸 보면 연회가 시작된 모양이었다.

“옥매, 네가 아이를 안고 나가서 노부인께 보여드리고 오렴.” 

임새옥은 날렵하게 아이를 붉은 비단 이불에 돌돌 말면서 말했다. 

“얼굴을 덮으면 여름에도 괜찮아. 한 달 된 아이도 나가도 돼.” 

옥매는 바로 아이를 데리고 나갔고, 임새옥은 문 앞에 서서 바라보며 손발을 움직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아이를 안고 돌아온 옥매 뒤에 어멈과 시녀들이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뒤따라왔다. 

옥매가 아이를 임새옥에게 안겨주며 말했다.

“노부인께서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몰라요. 전 부인 덕분에 비단 한 필을 얻었네요.”

뒤를 따르던 시녀와 어멈들도 깔깔 웃으며 노부인에게 받은 걸 자랑했다. 

“어머님은 돈이 많으니 좋은 사람 되기도 쉽네.” 

임새옥도 따라 웃으며 맨 뒤에 서 있는 낯선 여인을 바라봤다. 여인은 순종적인 모습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오가 낭자예요. 올해 스물셋인데 얼마 전에 아이를 잃었어요. 사내는 배 타고 나갔다가 죽었고요. 노부인이 부인 유모 삼으려고 은자 두 냥에 사 오셨어요.”

옥매가 나지막이 말하며 오 낭자를 잡아끌었다. 오 낭자는 쭈뼛쭈뼛하며 고개를 숙인 채 인사했다. 임새옥은 잠시 살펴보고는 깔끔한 여인의 모습에 곧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님이 당연히 잘 고르셨겠지.” 

그러면서 품에 안은 아이를 그녀에게 안겨주었다. 

“부인께 감사 인사해야지.”

안주인이 이렇게 순순히 승낙할 줄 몰랐던 오 낭자가 잠시 얼떨떨해 있자 뒤에 있던 어멈이 급히 귀띔했다. 오 낭자는 서둘러 아이를 안고서 옷깃을 풀어 젖을 먹였다. 아이가 낯을 가리지 않자 임새옥은 안도하다가 또 조금 낙담해서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젖 주는 사람이 어미구나.” 

노부인을 모시는 어멈 하나가 웃으며 말했다.

“부인, 노부인께서 옥황묘 사부께 대저아의 아명을 받아오셨어요. 향(香)저아랍니다.” 

임새옥이 빙긋 웃었다. 

“어머님도 참 이상하시지. 남들은 잘 자라라고 구린 이름을 짓는데, 어머님은 ‘향’자를 고르셨네.” 

고부가 돌려 말하는 법이 없는 걸 잘 아는 시녀와 어멈들도 따라 웃는데, 그중 하나가 말했다. 

“부인도 참. 아까 연회에서 여러 노야들께서 우리 대저아가 어여쁜 것이 딱 봐도 영리할 거라고 하시던걸요.”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지만, 그 뒤에 소 노부인이 “어미보다 나으면 됐다.”라고 한 건 아무도 전하지 않았다. 임새옥은 하하 웃으며 배불리 먹고 유모 품에 안긴 아이를 바라봤다. 

“똑똑하면 똑똑해서 좋고, 어리석어도 어리석은 대로 복이 있는 거지. 무럭무럭 잘 자라기만 하면 돼.”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임새옥이 힘들까 봐 다들 물러갔고, 옥매는 유모가 쓸 거처를 치워두라고 시녀들에게 지시하고 유모를 데리고 나갔다. 임새옥은 아이를 데리고 침상에 누워서 잠든 아이를 바라보다가 자기도 한숨 자려고 눈을 감았다. 막 눈을 감는데 밖에서 어멈이 말리는 소리와 함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전가아, 천천히 가세요. 동생 깹니다.” 

말이 끝나기 전에 전가아가 벌써 휘장을 젖히고 쭈뼛쭈뼛 들어왔다. 아이는 임새옥이 침상에 누워 웃으며 바라보는 걸 보고 겸연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어머니, 동생 주려고 장난감 사 왔어요.” 

전가아가 조심스럽게 침상 곁으로 다가오자, 임새옥이 안아 올렸다. 전가아는 장난감을 흔들며 잠든 아이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다가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 

“어머니, 동생은 왜 잠만 자요? 올 때마다 자고 있네요.” 

“잘 자야 키가 크거든.” 

임새옥이 하하 웃으며 하는 말에 전가아가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아까 밖에서 들었는데 고모들이 동생이 키가 크다고 했더니, 할머니가 어미를 닮아 미련퉁이처럼 키만 껑충하지 않으면 된다고 하셨어요.” 

임새옥은 말문이 막혀서 헛기침하며 화제를 돌리고 뭘 먹었는지, 요즘 뭘 배우는지, 말썽은 부리지 않았는지 물었다. 전가아는 일일이 대답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금단이 며칠 더 있다가 가면 좋았을 텐데. 재미있는 걸 다 못 보여줬어요. 어머니, 금단네에 언제 가요?” 

임새옥이 손가락을 꼽아보고 대답했다. 

“아이가 아직 어려서 할머님이 절대로 안 내보내실 거야. 대여섯 달은 되어야 하는데, 그땐 또 새해니까 내년 봄이나 되어야 갈 수 있겠네.” 

이야기하다가 졸음이 밀려오자, 전가아는 아이 옆에 누워서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며 임새옥의 이야기를 듣다가 그대로 눈을 감고 잠들었다. 

밖에 있던 어멈이 안이 조용해지자 들어왔다.

“대저아를 깨우면 안 되니까, 전가아는 제가 데리고 갈게요.” 

어멈이 나직이 말하면서 전가아를 안으려고 하자 임새옥이 말렸다. 

“침상이 커서 괜찮아. 내가 볼 테니, 자넨 나가서 바람 좀 쐬어.” 

임새옥이 웃으며 말하고는 뒤에 있는 상자에서 돈을 꺼내서 건넸다. 

“어린애가 생겨서 나는 아무래도 신경 못 쓸 때가 있겠지. 대낭, 전가아를 잘 돌봐 주게.”

“아이고, 송구스럽습니다. 전 그저 부인을 조금 돕는 것뿐인걸요.” 

어멈은 한 번 사양하고는 싱글벙글 웃으며 돈을 받고 물러갔다. 

소금남이 살짝 취해 방으로 들어왔을 때, 창문을 통해 석양이 들이치고 있었다. 붉은 휘장이 걸린 침상에 아들, 딸이 함께 잠들어 있었다. 전가아가 몸을 뒤척이다가 아가를 건드리지 않게 중간에 베개가 놓여 있었고, 임새옥은 서안 앞에 앉아 붓을 들고 정신없이 뭔가를 쓰고 있어서 소금남이 들어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몸조리할 땐 글씨 쓰면 안 돼. 눈 나빠져.”

소금남이 어깨를 감싸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임새옥은 술 냄새를 맡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억지로 마신 거죠? 옥매에게 차 끓여 오라고 할게요.” 

소금남은 일어나지 말라고 그녀를 잡고는 많이 마시지 않아서 괜찮다고 말하며 무얼 쓰는지 들여다봤다. ‘파종할 땐 반드시 한 번은 건조하게 세 번은 촉촉하게, 씨는 말리고 깔개는 적시고, 젖은 흙을 덮고…….’ 하고 삐뚤빼뚤, 크기가 다르게 적힌 글씨를 보고 빙그레 웃었다. 

“전가아는 한 달 내게 글을 배우고 제법 잘 쓰는데, 이 제자는 어째서 그렇게 못 할까?” 

“흥!” 

임새옥은 놀리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종이를 가지고 와서 탈탈 털고 잘 펼쳐 놓았다. 소금남이 바라보니, 문진 아래 벌써 종이가 잔뜩 쌓여 있었다. 

“언젠간 쓰일 거예요…….”

임새옥은 한숨을 쉬며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소금남은 그런 그녀를 품에 안고서 천천히 말했다. 

“대상공이 돌아오셨어요. 아까 연회에서 매우 화를 내셨지. 술도 많이 드셨더군. 북쪽에서는 목화를 많이 심느라고 곧 거둘 보리를 절반 넘게 훼손했다는군. 싹이 자란 목화가 절반이 되지 않았다고 하고. 당신의 그 방도도 이미 위로 올렸고, 대부분 그 방법대로 씨를 뿌렸다는군. 낭자, 조정에서 조사를 시작해서…… 아무래도 그 사람이 이번 책임을 면하지 못할 것 같아.”

임새옥은 한숨을 내쉬며, 제 허리를 쓰다듬고 있는 소금남의 손을 잡았다. 

“처음부터 책임을 면하긴 어려웠어요. 농사일하는 사람은 원래 무책임하게 말하면 안 돼요. 아무리 좋은 씨앗이 있어도 밭에서 3, 4년 심어 본 다음에 추진해야지, 이렇게 추진하면 안 돼요. 곡식 농사는 양심으로 하는 거예요. 안타깝지만 이제 부랴부랴 심어도 그동안 망친 곡식을 되돌릴 순 없어요. 이번 가을엔 괴로운 사람이 얼마나 많아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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