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4화 (54/57)

五. 위급함을 아는 조 대저의 말에 틈이 벌어지다

며칠만 더 지나면 곧 입하가 되지만, 사실 전국에 진정으로 여름이 찾아온 곳은 복주부터 영남 일대 남쪽뿐이고, 동북과 서북 지역은 이제 막 봄에 접어든 시기였다. 그야말로 ‘백방의 꽃이 만개하여 아름다움을 겨루는’ 늦은 봄 음력 2월이었다. 

이때, 강녕 논, 밭머리에 흩어져 있는 홰나무에 꽃이 활짝 피었고, 여름 농작물도 성장 후반기에 접어들었다. 가을보리는 이제 막 꽃이 피려 했고, 유채는 무르익어갔다. 논벼도 슬슬 심을 시기였다. 예전이라면 성을 나가자마자 보이는 수십 묘 논에 모내기하느라 한창 바쁠 때인데 지금 임새옥 눈앞엔 비쩍 마른 헐벗은 땅에 깊은 골만 줄줄이 보였다. 

“어르신들!” 

임새옥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그녀는 나무 아래 쭈그리고 앉아 잡담을 나누는 농부들을 향해 옥매를 붙잡고 천천히 걸어갔다. 열몇 묘 땅은 전체 강녕으로서는 확실히 많지 않았다. 그러나 백여 명의 먹고사는 일이 걸린 일이었다. 지금 눈앞의 상황만 봐도, 임새옥은 더 많은 목화를 심은 북쪽 상황은 어떨지 상상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8개월 된 임새옥의 몸은 살이 많이 붙진 않았지만, 누가 봐도 만삭이 가까운 여인의 몸이었다. 물론 여인이 밭에서 아이를 낳는 건 이 농부들에게 큰일은 아니지만, 이 임산부는 절대로 그들이 밭에서 흔히 보는 촌부가 아니었다. 농부들은 두 사람이 길을 물으러 온 줄 알고 모두 일어섰다. 

“땅을 못 쓰게 된 건가요?” 

사람들은 역시나 곱게 자란 귀부인이다 싶어서 웃음을 터트렸다. 

“대낭자, 모르겠지만 못 쓰게 된 것이 아니라 황금, 백은을 심은 거랍니다. 한 달만 지나면 싹이 자랍니다.” 

“그렇지요. 노야들이 말씀하시길, 논벼 농사 3년 짓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하셨습니다.”

“한 계절만 심으면 집을 새로 지을 수도 있어요!” 

사람들은 껄껄 웃으며 오곡을 분간 못 하고 사지를 잘 놀리지 못하는 이 귀부인에게 자신들의 노동이 가지고 올 부귀를 아낌없이 자랑하느라 왁자지껄했다. 

임새옥은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기분으로 밭으로 다가갔다. 논을 개량했기에 점성이 강하고 통기성이 떨어지는 밭을 바라보다가 흐린 하늘을 올려다봤다. 벌써 며칠째 비가 오는 흐린 날이었다.

“논을 고른 밭은 토양 질도 떨어지고 흙덩이도 큰 데다가 벼 뿌리 같은 잡질도 섞여 있어. 온도가 낮고 축축해서 씨앗이 쉽게 썩을 텐데……. 절반이라도 싹이 자라기만 해도 하늘이 보우하신 것일 테고.” 

임새옥은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씨앗을 파서 가지고 오라고 옥매에게 지시했다. 옥매는 주저했지만, 곧 노련하게 허리를 숙이고 흙을 팠다. 저쪽에서 웃고 떠들던 사람들이 금세 발견하고는 우르르 몰려왔다. 

“대낭자! 이건 놀잇거리가 아니오!”

임새옥은 아랑곳하지 않고 옥매의 손을 붙잡고 씨앗을 살피며 중얼거렸다. 

“깊이 파종했고 이쪽은 온도가 높은 셈이라 다행이야. 요 며칠 땅을 갈아서 곡식을 심어도 되겠어. 하지만 북부는 이곳보다 더 빨랐을 테고, 개량하지 않은 원시 씨앗이었으니…….”

여인이 잔뜩 찌푸린 얼굴로 중얼거리자, 사람들은 이 여인이 머리가 어떻게 된 건 아닌가 생각하며 저마다 얼굴을 마주 봤다.

“어르신들, 땅을 비워놓기 아까우니까, 빨리 자라면서 뿌리가 짧은 농작물을 골라 심는 게 좋아요. 예를 들면 주변에 수수를 뿌리고, 중간엔 대두, 녹두를 심고…….”

임새옥이 그중에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어느 비쩍 마른 농부를 향해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오! 그런 허튼짓 하는 거 아니오!” 

누군가 질겁하며 손사래를 쳤다. 댁의 낭자가 미친 거 아니냐고, 어떻게 이런 헛소리를 하냐고 옥매에게 묻는 사람도 있었다. 옥매는 언짢아져서 얼굴을 구기며 대답했다. 

“우리 부인은 조씨세요. 관리 나리들도 다들 조 대낭자라고 부르는 분인데, 어디서 감히 입방아를 찧어요!” 

그 말에 사람들은 몹시 놀라서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가 놀라서는 임새옥을 다시 살폈다. 소문 자자한 농신 낭자가 자기네 고향에 있는 건 알지만,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이제 이 여인이 오곡을 분간 못 하고 사지를 안 쓰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고, 서둘러 잘못했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대낭자, 목화를 심으면 안 되는 겁니까?”

한 노인이 정신을 차리고 긴장해서 묻자, 사람들이 모두 신경이 바짝 곤두서서 일제히 임새옥을 바라봤다. 그 시선에 임새옥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녀는 입을 뻐끔거리며 힘겹게 대답했다. 

“심으면 안 되는 건 아닌데, 지금 상황으로는 그래요…….”

평온한 호수에 돌멩이를 던진 것처럼, 그 말에 사람들이 금세 발칵 뒤집혔다.

“대낭자, 심으면 어떻게 됩니까?” 

“수확이 없어요.” 

누군가 다급해져서 묻자 임새옥이 눈물을 머금고 대답했다. 사람들은 순간 앓는 소리를 냈고, 지금 모내기해도 늦지 않으니 어서 주인에게 말해야 한다는 사람, 의심스러운 듯이 임새옥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이건 조정에서 심으라고 한 것인데, 설마 조정에서 우리를 속였다는 겁니까? 게다가, 대노야가 이 씨앗을 사느라고 얼마나 큰 돈을 들였는데요. 바보도 아니고, 자기 돈을 버릴 리가 있습니까?” 

한바탕 소란 후, 누군가 냉정해져서 하는 분석에 다들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농신 낭자의 전설은 들었지만, 조정과 비교하면 농신 낭자의 명성은 확실히 별것 아니긴 했다. 

“속인 게 아니에요. 다만 조정에서도, 조정에서도 틀릴 수 있으니까…….”

임새옥이 말을 마치기 전에 옥매가 힘껏 소매를 당겼다. 그제야 자기가 무슨 말을 한 건지 깨달은 임새옥은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치며 입을 닫았다. 양측이 잠시 마주 보다가, 한 노인이 순박하게 웃으며 말했다. 

“대낭자, 우리는 잘 알지도 못하고 결정도 못합니다. 차라리 주인께 말씀하시지요. 게다가 관리 나리도 동의하셨다던 걸요. 우리가 대낭자를 못 믿는 게 아니랍니다.”

사람들은 푸른 나뭇가지 위에서 지저귀는 작은 새를 남겨두고 서서히 흩어졌다. 때때로 행인이 나타나 저쪽 밭머리 큰 나무 아래 멍하니 서 있는 임새옥, 옥매 두 사람을 힐끔거리며 총총 사라졌다. 

“부인, 대상공께 이미 말씀드렸잖아요. 백성을 자식처럼 여기시는 분이니까, 분명 조정에 말씀하셨을 거예요. 진정하세요, 부인.” 

옥매가 임새옥을 위로하며 마차까지 부축했다. 임새옥은 전혀 진정되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옥매, 늦었어. 때는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아. 한층, 한층 위로 올라가는 동안, 다 늦어.” 

왠지 눈물이 뚝뚝 흘렀다. 재난이 닥칠 것을 뻔히 아는데도, 갑자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여전히 환하게 웃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말도 못 해주는 기분이었다. 

“부인, 설령 그렇다고 해도 다 자업자득이죠, 우리랑 상관없는 일이잖아요. 이렇게 감정 기복이 심하면 안 돼요. 이러다가 태기를 건드린다고요.” 

옥매가 눈살을 찌푸리다가 손수건을 건넸다. 우리랑 상관없는 일이라고? 임새옥은 속이 더 답답해져서 눈물이 그렁그렁 앞을 가렸다. 마차에 올라탄 그녀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래, 너희와 상관없는 일이지. 하지만 나랑은 상관있다고.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유소호를 알게 되지 않았다면, 위험을 벗어나려고 유소호를 찾지 않았다면, 이 모든 일이 일어났겠어? 역사의 흐름이 이렇게 바뀌었겠냐고! 

작디작은 강녕부 땅 몇 묘 훼손된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북쪽엔 드넓은 땅이 곧 황폐할 것이다. 직접 본 건 아니지만, 소금남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추수 때면, 아니, 추수까지 기다릴 것도 없이 두어 달이면 바로 결과가 나올 것이다. 나라는 백성이 근본이며, 백성이 먹고사는 건 하늘 같은 일이다. 백성의 그 하늘을 망쳐 놓았으니, 조정에서 얼마나 분노할까. 그리고 그 분노는 분명 한 사람에게 떨어질 것이다. 

“그 사람 잘못이 아니에요, 내 잘못이에요!” 

임새옥이 악몽에서 깨어났다. 몸도 무거운 데다가, 날이 나날이 더워져서 온몸이 축축했다. 

“화아.” 

소금남이 수건으로 이마를 닦아주고 침상에서 내려가 촛불을 켰다. 따듯한 물을 받은 임새옥은 꿀꺽꿀꺽 반을 비우고서야, 걱정 가득한 얼굴로 자기를 바라보는 소금남을 마주 보고 애써 웃어 보였다. 

“또 나 때문에 깼죠.” 

소금남은 살며시 웃으며 그녀를 눕힌 다음에 곁에 앉아서 팅팅 부은 그녀의 다리를 주물렀다. 

“화아, 대상공께서 경성으로 가셨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어떻게 안심해요. 입하 전에 모종을 많이 심어야 나중에 풍성하게 수확하는데, 이미 늦었어요. 보리까지 뽑았고, 벼를 심지도 않고. 조정 사람들, 어쩌면 그렇게 충동적이에요? 실험도 거치지 않은 농작물을 어쩌면 온 천지에 심을 수 있어요?” 

임새옥이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하는 말에 소금남은 살며시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대상공 말씀을 들어보면, 조정의 뜻은 아니라더군. 다들 스스로 혹해서 한 일이고 입에서 입으로 전하며 소문이 퍼진 것이라, 아마 조정에서도 모르고 있을 테고. 크흠, 그 사람 뜻이 아니니 그 사람을 탓할 수 없을 테고, 그러니 안심해요.”

임새옥은 더 화가 나서 제 다리를 휙 걷어오며 초조하게 말했다. 

“이렇게 큰일이 생겼으니 분명 죄를 덮어쓸 사람을 찾을 거예요. 안 그래도 바탕이 깊지 않은 데다가, 성격이 고집스러워요. 일찌감치 어사대에 찍힌 건 둘째치고, 관리 중에 다른 사람 짓밟고 올라가지 않는 사람이 있나요? 그런데 대체 무슨 미친 생각으로 목화 심자는 이야기를 한 건지. 제일 먼저 이야기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아니면 누구한테 죄를 묻겠어요? 이번 일은 흉년에 버금가는 재난이에요. 목을 벤다고 해도 폐하의 분이 풀리지 않을 거예요. 안심하라고요? 내가 어떻게 안심해요?” 

그녀의 긴말이 끝난 후, 방 안이 조용해지고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만 남았다. 잠시 그녀를 바라보던 소금남이 별안간 벌떡 일어서더니 밖으로 나갔다. 주렴이 타다닥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밤에 들으니 유난히 귀에 거슬렸다. 

다음 날, 옥매는 이른 아침부터 분위기가 이상한 걸 알아차렸다. 경대 앞에 앉은 임새옥의 머리를 빗겨주면서 무심결에 주변을 둘러보다가 비녀를 잘못 꽂자, 임새옥이 헛기침하고서 제가 다시 꽂고는 일어서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 곧 상자 하나를 가지고 나와 뚜껑을 여는데, 상자 안에 교자(交子: 중국 최초의 지폐 이름)가 가득 들어 있었다. 

“옥매, 수고스럽지만 가서 수수와 콩으로 전부 바꿔 와. 목화밭에 보내고, 농기구를 가지고 올 사람들도 고용해주고. 나는 일단 대상공 댁에 갔다가 밭으로 갈게.” 

임새옥은 상자를 밀어주고는 탁자에서 종이 더미를 집어 올려 건네주었다. 옥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봤더니 위에 글자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부인, 뭐 하시려고요? 이 많은 돈을 왜 그런 일에 써요? 대관인은 아세요?” 

옥매가 의아한 듯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임새옥이 외출할 거니까 마차를 준비하라고 시녀 아이를 부르더니, 옥매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모은 돈이야! 내가 알아서 쓸 거야!” 

아무래도 그녀가 심상치 않고, 아침부터 분위기도 이상해서, 옥매는 입을 다물고 시녀 몇 명과 산파 하나를 불러서 다 같이 성으로 향했다. 

아침부터 날이 흐리더니, 머지않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소가 저택 시녀들은 싱글벙글 처마 밑에 서서 빗물에 흔들리는 정원의 미인초를 구경하다가 소금남이 들어오자 서둘러 우산을 들고 마중했다. 

전가아가 제일 먼저 달려들어서는 소금남을 흔들며 뒤쪽을 보다가 아무도 없는 걸 보고 실망한 표정이었다. 

“아버지, 왜 혼자 와요? 어머니는요? 금단은 왔어요?” 

“어째서 글공부하러 가지 않고?”

소금남이 가라앉은 얼굴로 묻자, 전가아는 뜨끔해서 목을 움츠리더니 소 노부인 곁으로 돌아갔다.

“비가 오지 않으냐. 매일 글공부, 글공부, 하루 쉬면 어때서.” 

소 노부인이 눈을 흘기더니 전가아가 겁먹은 걸 알고 시녀들을 불렀다. 

“방에 데려다주어라. 혼자 공부하면 될 것을.” 

“이렇게 오냐오냐하는데 뭘 제대로 배우겠습니까!” 

소금남이 눈을 부릅뜨며 호통치자, 전가아가 겁에 질려 쪼르르 달아났다. 소 노부인은 콧방귀를 뀌고는 앉으란 말도 없이 차를 받아서 홀짝이고는 아들을 힐끔 쳐다봤다. 

“뭘 제대로 배우냐고? 그런 너는 뭘 배웠기에, 아내에게 난 화를 아이에게 푸는 것이냐?” 

소금남은 안색이 더 안 좋아져서 돌아섰고, 노부인이 뒤에서 불러세웠다. 

“한마디 했다고 돌아서기는! 멈춰라!” 

소금남은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긴 했지만, 앉지도 돌아서지도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홑몸이 아닌 사람은 원래 성격이 이상해진다. 이런 때에 다투긴 왜 다투는 것이냐? 말다툼 안 하는 부부도 있다더냐? 예전에 네 아버지와 나는 싸우다가 때리기도 했다. 싸워도 좋고, 때려도 좋다만, 아무 말도 안 하고 담아두는 건 절대로 안 된다. 시녀들이 그러는데, 며칠 동안 집에 들어가지도 않았다며?”

노부인이 찻잔 뚜껑을 살며시 닫는 소리가 났다. 

“어떤 것이 함부로 입을 놀립니까?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니요!” 

소금남이 싸늘한 눈으로 소 노부인 뒤에 서 있는 시녀들을 훑어보았다. 시녀들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오히려 웃기만 했다.

“노부인, 잘못 아셨어요. 집에 들어가지 않은 게 아니라, 거처에 돌아가지 않으셨어요.”

“아, 그러냐. 근데, 그게 무슨 차이가 있느냐. 부부가 같은 방에 있지 않으면 집에 돌아오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지.” 

시녀들이 모두 웃는데 노부인의 말이 이어졌다. 

“인제 와서 농사짓는 데 몰두한다고 타박하는 거냐? 전엔 무얼 하고 있다가?” 

소금남은 속이 답답해졌다.

“농사짓는 게 싫은 게 아닙니다. 그 사람도 조심하고 있고요. 요즘은 그저 밭머리에 서서 지켜보기만 합니다. 전 다만, 다만…….”

노부인이 눈살을 찌푸린 채 그를 힐끔 봤다. 

“목화를 심자고 조정에 제안한 것이 설마 그 아이의 예전 지아비냐?” 

소금남은 목에 무언가 걸린 듯이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둘 중에 누가 더 대단한 거냐? 우리 며느리도 전에 그 목화라는 걸 심지 않았더냐? 그런데 어쩌다가 심으면 안 된다고 이 난리가 난 것이야? 대상공이 경성에 달려갔다면서? 대체 심어도 되는 것이냐, 안 되는 것이냐? 그 아이는 심어도 되고, 다른 사람이 심는 건 안 된다는 건 아니겠지? 그 사내, 지기 싫어서 그런 것 아니냐? 나라도 승복하지 않을 일 아니냐!” 

소금남의 얼굴이 더 굳었다. 

어머니, 화제가 벗어났습니다!

“노부인, 노야, 성안 사돈댁에서 오셨습니다.”

모자를 들고 달려 들어온 관사의 말에 대화가 끊기자, 노부인는 지팡이를 짚으며 일어섰다.

“흥, 마침 잘 왔구나, 어떻게 딸을 길렀길래 팔이 밖으로 굽는지 물어봐야겠다.” 

정신을 차린 소금남이 잡으려고 하는데, 노부인이 어느새 성큼성큼 그를 지나쳐 회랑을 지나 전원으로 향했다. 소금남이 뒤에서 부르며 허둥지둥 쫓아갔다. 

“어머님, 이상한 이야기하지 마세요!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은 그저 정신이 없어서…….”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노부인이 혀를 찼다. 

“잘 아는 사람이 내 앞에서 얼굴을 구기고 있었냐? 허구한 날 그 죽은 귀신한테 향이나 올리고, 나도 가서 부숴버리고 싶은데, 네 처가 뭐라고 하는 걸 한 번도 못 봤다! 둘이 무슨 짓을 하든 내 앞에서 와서 소란 떨고 티 내지 말아라!” 

소금남이 멈칫한 사이, 노부인은 어느새 전청으로 들어갔다. 안에서 전가아와 금단이 조잘조잘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소금남도 재빨리 따라 들어가서 대홍색 긴 소매 장삼을 입은 노씨에게 절하며 어머님, 하고 불렀다. 더 건장해진 노씨는 싱글벙글 웃으며 그를 살피고 몇 마디 주고받다가 임새옥을 만나야겠다고 말했다. 소 노부인이 곁에서 코웃음 치며 묘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안사돈의 그 잘난 딸, 전에 사내를 잊지 못해서 대신 백성을 구하러 갔소이다. 우리가 붙잡을 수 있어야지요!” 

노씨는 순간 얼굴이 변해서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고함쳤다. 

“이 노인네가, 돈 몇 푼 있다고 우리 딸아이를 함부로 말해도 되는 줄 아시나.”

소금남은 노부인을 노려보고는 서둘러 노씨를 잡아 앉혔다. 

“어머님, 진정하세요. 그 사람은 시골 가택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거기를 좋아해서요. 곧 이쪽으로 옮기려고 했는데, 지금 바로 사람을 보내 데리고 오겠습니다.” 

그러면서 며칠 먼 길 오느라 수고했으니 어서 가서 쉬라고 했다. 모자의 얼굴이 이상한 걸 단번에 알아본 노씨는 전혀 믿지 않았다. 그녀는 비녀가 떨어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발을 구르며 소리쳤다.

“자네도 아내가 죽은 다음에 신이 나서 새 장가 든 것이 아니고, 우리 딸아이도 휴처되고 좋아서 재가한 게 아니지 않은가! 둘 다 첫 혼인도 아닌데, 인제 와서 그걸 타박해? 

내 앞에서 착한 척하지 말게! 그 불쌍한 것을 그런 곳으로 쫓아 내놓고 지금 내 앞에서 입바른 소리 하는 겐가? 됐네. 돌아오길 기다릴 것 없으니, 이 자리에서 휴서를 써주게. 나도 여기 묵을 것 없이 바로 그 아이를 데리고 돌아가겠네. 그래야 이 집에서도 예전 사내 어쩌고 하는 말을 평생 할 일이 없고 좋지! 우린 아무리 가난해도 이렇게 억울하게 사는 것보다 낫네!”

노씨는 털썩 바닥에 주저앉아 다리를 내리치며 울기 시작했다. 

아이고, 내 불쌍한 것, 부귀한 집에서 복을 누리고 사는 줄 알았더니, 이런 구박을 받고 살았네! 우리 팔자 사나운 것, 죽기 살기로 이 먼 곳에 시집와서 친정과 멀어지더니 이렇게 구박받고 살았네! 하는 말에 소 노부인은 기가 차서 기절할 뻔했다. 

“딱 한마디 했는데, 홍수가 난 것처럼 말을 쏟아놓기는! 잘못은 그 집 아이가 했지! 누가 와도 그 사실은 안 변하네. 이렇게 끼고 도는 법이 어디에 있어! 예전 사내가 시작해서 온 천하가 덩달아 목화를 심은 것이니, 복이든 화든 제가 알아서 할 일이거늘. 매일 집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울상을 짓고 있는 것이, 그 사내를 생각해서 그런 것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이요! 멀쩡한 지아비와 시어미가 그런 말도 못 할까!” 

그 말에 노씨가 벌떡 일어나며 혀를 찼다. 소금남이 손을 잡으려고 하자 그쪽으로도 혀를 차며 욕했다. 

“내가 있는 그대로 말해주지. 우리 아이는 태생이 마음이 약한 아일세. 그런데 하필 농사일을 또 좋아하지 않아! 조정에서도 그 아이가 하늘에서 내려온 별이라고 하는데, 그 아이가 심으면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지, 누가 심으라고 했는지가 무슨 상관인가! 이 집이야 화려하게 차려입고 창고 가득 곡식을 쌓아 놓고 사니까, 10년 기근이 닥친들 한 끼라도 굶을까. 농 재해가 닥친 고통을 알까 말이야! 우리 마을에만 해도 아직도 굶어 죽는 사람이 있네. 저 앞이 저승문이라는 뻔히 알면서도 모른 척할 사람이 있겠나? 다들 눈만 빤히 뜨고 지켜볼 뿐, 도움 하나 안 되는 사람들이, 그 아이에게 구정물을 튀기고 그 아이 마음에 칼을 꽂아? 그냥 공교롭게도 하필 그 오입진 놈이 시작한 일일 뿐인데, 이런 식으로 입방아를 찧어대? 설령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우리 아이는 똑같이 했을 걸세. 그랬대도 그 사람과 뭐가 있다고 그 아이를 능멸하려 했나?” 

노씨는 그렇게 말하고는 휴서를 내놓으라고 소금남을 들볶고 노부인과 너 한마디, 나 한마디 하며 싸우기 시작했다. 곧 머리채를 붙잡을 것처럼 난리가 났는데, 바깥이 소란스러워지더니 옷이 흠뻑 젖고 진흙이 잔뜩 묻은 시녀들이 뛰어 들어와 달달 떨며 고함쳤다. 

“큰일 났어요, 부인이 아이를 낳으려 해요.”

난리가 났던 사람들은 순간 조용해지고, 소 노부인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때가 안 됐는데, 아이를 낳다니?” 

노씨는 대번 다가가 시녀를 붙들고 고함쳤다. 

“대단하구나. 죽이려 손을 썼어! 죽여야 마음이 놓이는 게지!” 

그러고는 또 소 노부인을 손가락질하며 외쳤다. 

“관아에 가자, 관아에 가서 이야기해!” 

고함치고 보니 소금남은 어느새 뛰쳐나가고 없었다. 

“부인이 밭에 수수를 심으라고 하니, 안 된다고 하는데도 부인이 고집을 피우다가 난리가 났어요. 그러다가 부인이 밀쳐져서…….”

시녀는 얼굴에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를 물을 뚝뚝 흘리며 하얗게 질려서 덜덜 떨며 말했다. 

“천벌 받을 것들! 가서 때려죽여라!” 

소 노부인은 지팡이를 짚고 고함치며 시녀를 붙들고 밖으로 달렸고, 노씨도 난리를 부릴 겨를 없이 따라서 뛰쳐나갔다. 그 사이 임새옥은 벌써 마차에서 내려서 들것에 실려 왔고, 소금남이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시녀와 산파가 그 뒤를 허둥대며 쫓아왔다. 

“내 말 잘 들어요. 농사짓는 방법, 다 써놨어요. 하나는 대상공에게 전했고, 하나는 남겨 뒀어요. 수고스럽겠지만, 당신이 정주 주 대인에게 전해 줘요. 조금이라도 곡식을 심어야 아무것도 수확 못 하는 일은 면할 수 있어요…….”

빗물과 땀이 쉴 새 없이 임새옥의 얼굴에서 흘러내렸다. 그녀의 얼굴은 이렇게 창백한 적이 없을 정도로 새하얗게 질려 있었고, 소금남의 손을 잡은 손도 쉴 새 없이 떨렸다. 

“혹시 위험해지면, 내가 아니라 아이를 지켜줘요. 이렇게 큰 잘못을 했으니…… 난 이곳을 떠나야 해요…….”

“허튼소리는!” 

소금남은 코가 시큰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무 일 없어요. 분명 아무 일 없어. 설사 아이가 잘 못 되어도 다시 가지면 돼.” 

노씨가 소금남을 휙 밀치고 울며 고함쳤다. 

“이것아, 괜찮으냐? 조금만 힘내거라. 아이를 낳으면 이 어미가 널 데리고 돌아가마. 먹고사는 게 걱정도 아닌데 이 구박 견딜 것 없다!” 

소 노부인은 그런 노씨와 옥신각신할 겨를도 없이 시녀들을 재촉해서 출산 준비를 했다. 천, 초지 같은 건 평소에 다 준비해 두어서 금세 가지고 왔고, 임새옥을 방 안으로 옮기고 소금남을 내쫓으려 했다. 하지만 소금남이 임새옥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나가서 기다려요. 내가 한 말 잊지 말고.” 

임새옥이 힘껏 손을 뺐다. 콧날이 시큰해졌다. 아까 넘어졌을 때도 울지 않았는데, 지금은 눈물이 참을 수 없이 뚝뚝 흘렀다. 

“화내지 말아요. 그 사람 때문이 아니에요. 나 때문이에요. 내가 한 일이라서, 내가 알아서 그래요. 억울하게 다른 사람이 다치면, 내 마음이 안 편해서…….”

노씨와 소 노부인의 등쌀에 여기 있어 봐야 어지럽히기만 하는 걸 알고 어쩔 수 없이 밖으로 향하던 소금남은 그 말에 다시 돌아서서 다가왔다. 땀으로 범벅된 그녀의 이마에 살며시 입을 맞추며 부드럽게 말했다. 

“알고 있어요. 안심해요. 당신이 써둔 것, 진작에 정주로 보냈어요. 당신이 항상 이야기했잖아요, 농사일이란 진인사대천명이라고. 화아, 힘내야 해요. 나는 당신과 아이 모두 평안하길 기다릴게요.” 

“할 말이 천만 마디라도 나중에 해라!” 

소 노부인은 그를 떠밀어 내보내고는 노씨가 아직 방 안에 있는 걸 보고 얼굴을 구기며 불러냈다. 하지만 노씨가 또 욕을 하자 홧김에 문을 닫고 나가 버렸다. 소금남은 방에서 나간 뒤 어디에도 가지 않았고, 노부인은 의자을 옮겨 오라고 해서 혼자 앉았다. 안에서 임새옥이 끙끙 앓는 소리가 들렸다.

“흥, 고집은 있구나. 그 귀신처럼 죽네 사네, 고함치진 않잖냐.” 

“어머님, 말씀 좀 가려 하십시오.” 

소 노부인의 말에 소금남이 발을 굴렀다. 

“쳇. 내가 여기 있는데, 어느 귀신이 감히 내 손자를 해치려 해!”

소 노부인은 시큰둥해 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안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산파가 “됐다, 낳았다!”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자 벌떡 일어섰다. 

“아이고, 꾀죄죄한 여자아이다!” 

노씨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렸다. 소금남은 그런 건 아랑곳하지도 않고 낭자는 어떠냐고 물으며 문을 두드려댔다. 산파가 아이를 닦이고 문을 열고서 안신탕을 가져오라고 시녀에게 고함친 다음 웃으며 대답했다. 

“대관인, 안심하세요. 부인이 참으로 튼튼하십니다. 다만 힘을 많이 써서 정신을 잃으셨어요.” 

소금남은 그제야 한시름 놓았고, 소 노부인은 어느새 쌩하니 달려가고 없었다. 천지와 조상님께 향을 피우러 간 것이었다. 때는 원풍 2년, 4월 초하루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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