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 옛날 그곳에서 옛사람을 만나니 꿈을 꾸는 듯하다
소정가의 말에 임새옥은 멈칫했다. 미처 더 물을 새도 없이, 저쪽에서 물건을 넘기기 시작해서 소정가를 불러갔다.
“여남은 개 남겼는데, 그거면 될까?”
소금남이 다가오다가 수건을 두르지 않은 그녀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리는 걸 보고 쓸어 넘겨주었다. 임새옥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해요. 특별한 것도 아니라서 형님들께 드릴 만한 것도 아니에요.”
소금남은 그녀의 안색이 심상치 않은 걸 보고 무슨 일인지 물었고, 임새옥은 잠시 생각하다가 소정가가 한 말을 말하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유 노부인이 병이 난 걸까요? 영아가 언제 알았지?”
“무슨 큰일이라고. 초조해하지 말아요. 내가 바로 사람을 보내 알아볼게.”
임새옥은 바로 잊어버리고 소금남과 함께 사람들이 구경하느라 헤집어놓은 호박을 보러 갔다. 과수원에서 풀어 키우는 돼지도 슬슬 잡을 때가 되었기에 추수 감사 제사 때 나눠 주려고 사람을 시켜 한 마리 잡게 했다. 소식이 퍼지자 온 마을이 기뻐했고, 노씨는 돈 낭비하는 집안이라고 한바탕 잔소리를 해댔다.
소금남이 마구 뛰어다니는 전가아와 금단을 잡으며 말했다.
“우리가 여기에 늘 있는 게 아니잖습니까. 이 사람 아우들은 어리고 외할머님은 몸이 안 좋으신데,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옛말이 있듯이 손 필요한 일이 많을 겁니다. 채소 몇 광주리, 돼지 한 마리는 얼마 하지도 않는데 그걸로 인심을 살 수 있다면야, 대저아가 남쪽에 있어도 마음이 놓이지 않겠습니까.”
노씨가 힐끔 임새옥을 바라봤다.
“사위, 저 애가 그런 마음 씀씀이가 있는 줄 아는가!”
노씨는 말은 그렇게 해도 눈은 웃고 있었다. 그녀가 소금남의 손을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아이고, 차라리 자네가 내 친자식 같다네!”
임새옥은 말없이 웃기만 하며 해바라기 씨를 까먹었다. 조삼랑이 과수원에서 돌아오자, 노씨가 밥하러 가는 걸 보고 임새옥이 손을 저었다.
“시어머니도 집에 계세요. 밥은 돌아가서 먹을게요, 밥할 거 없어요, 어머니.”
그녀는 손을 털고 일어나 돌아가려고 전가아를 부르면서 금단에게 당부했다.
“내일 데리러 일찍 올 거야. 늦잠 자지 마. 공부하는데 늦으면 가만 안 둔다.”
지금 금단은 전보다 키가 더 컸고 여전히 건장했다. 여름에 전가아와 함께 글공부하느라 피부가 하얘지고, 노부인이 온 다음에 촌스러운 차림이 마음에 안 든다고 지어 준 월백색 옷을 지금 입고 있어서 꽤 그럴싸한 모습이었다. 다만 얼굴을 찌푸리고 수심 가득한 표정으로 노씨의 손을 붙잡고 몸을 배배 꼬고 있었다.
“어머니, 난 글공부 싫어요. 누이에게 말해서 날 좀 살려줘요. 계속 공부하다간 손이 너덜너덜해질 거예요. 아이들이 다 놀린다고요. 나중에 노야가 될 사람이라고 같이 놀지도 않아요!”
노씨가 금단의 귀를 잡아당기며 혀를 찼다.
“식견 짧은 놈이 뭘 알겠냐. 네 자형이 끌어줘서 공부시켜주는데 고마운 걸 알아야지. 나중에 과거 급제해서 네 어미 호강시켜줘야지, 평생 네 아비처럼 흙 파먹고 살래?”
금단은 끽소리도 내지 못했지만, 임새옥은 듣기 싫은 듯 입을 열었다.
“어머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흙 파먹고 사는 게 어때서요? 흙에서 좋은 게 얼마나 많이 나오는데요.”
노씨가 신발을 벗어서 던지며 고래고래 욕하자, 임새옥은 목을 움츠리고 전가아를 안고 줄행랑쳤고 소금남은 뒤에서 배를 붙잡고 웃어댔다.
눈 깜짝할 사이 중추절이 지나고 날씨가 선선해졌다. 노부인은 성에서 묘회 몇 번 참석하고 연극 몇 번 보고는 십방촌 과수원에 가서 과일 따고 돼지, 닭 먹이 주며 며칠 지냈다. 그러다가 노씨와 다투고는 돌아간다고 소란을 피웠다.
임새옥 밭에 목화도 여물었지만 잘 자라진 않았다. 거칠거칠하고 양도 적었지만, 당장 쓸 생각은 아니라서 대부분 밭에 남겨두고 종자로 쓸 것을 골랐다. 또 과수원 관리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가을, 겨울 과일나무 관리법을 가르치는 등 발에 땀 나게 돌아다니느라 강녕으로 돌아갈 날이 자꾸 미뤄졌다. 그러다 소 노부인이 욕을 해대는 통에 집에 있을 수가 없어서 아예 핑계를 대고 과수원으로 옮겨갔다.
오전 내내 물을 주고 돌아갔더니, 집 정리하던 오씨가 보고는 재빨리 차를 끓였다. 오씨 시어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나와서 임새옥과 이야기를 나눴다.
“솜씨가 좋지 않지만, 마다하지 말고 소관인에게 입혀요.”
오씨가 앵무새빛 녹색 비단으로 지은 겉옷을 들고 안에서 나오자 임새옥이 후다닥 일어나서 받았다.
“세상에, 뭐 하러 이런 걸! 옷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임새옥이 고마워하며 받자, 오씨는 왜 아직 소식이 없느냐고 물었다.
“사람을 불러서 한 번 보이지 그래요.”
그러면서 근처 마을에 어멈 하나가 약을 잘 짓는다고 말했다. 임새옥은 호의라는 걸 알지만 조금은 짜증이 났다.
돌아갈 때쯤 되자 전가아가 금단을 끌고 달려왔다. 뒤엔 나뭇가지를 든 아이들도 우르르 달려왔다.
“마침 잘 왔다.”
임새옥은 일어서서 양손으로 한 명씩 잡아당겼다.
“심심하다고 말썽만 부리지 말고, 과수원에 있는 풀이나 베.”
금단이 손을 들고 물었다.
“그럼 내일 글공부하러 가지 않아도 돼?”
임새옥이 고개를 끄덕이자 두 아이는 새해라도 된 듯이 기뻐했다.
“그럼 난 손후자(孫猴子: 손오공) 이야기 들을래!”
손을 잡아당기던 전가아는 임새옥이 또 고개를 끄덕이자 폴짝폴짝 아이들을 몰고 달려갔다.
이때 십방촌 어귀에 말 한 마리, 나귀 한 마리가 나타났다. 다그닥거리는 소리에 토지신 사당 앞에서 향을 피우던 촌부들이 뒤를 돌아봤다. 나귀를 탄 아이는 열 몇 살 정도로 되어 보이는데, 청수한 용모에 수수한 옷과 작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뒤에 말을 탄 사내는 자색 비단옷에 금 허리띠를 차고 백옥 고리를 건 옷차림이 범상치 않아 보였다. 사내의 얼굴을 바라본 여인들이 모두 살짝 넋을 잃고 있는데, 용모가 준수하고 풍채가 비범한 공자가 시선을 느끼고 싱긋 웃어 보였다.
“대낭들, 복을 빌고 계십니까? 올해 수확이 좋았습니까?”
사내는 그렇게 말하고는 지나갔지만, 남은 여인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봤다. 어쩐지 낯익은데 누군지 떠오르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는 사이, 두 사내는 어느새 사라졌다.
중추절이 지난 시기라, 온 천지에 가을의 숙연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십방촌 밭 대부분엔 벼를 심었고 이미 영글어서 추수하는 중이었다. 중간중간 자란 수수, 좁쌀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역시 풍년이로군.”
유소호가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예전이랑 똑같네요. 별로 변한 게 없어요.”
방가가 들떠서는 말하고는 조심스럽게 유소호의 안색을 살폈다. 유소호가 그저 싱긋 웃고 있자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희녕 9년 이후에 처음 돌아오는 것이군.”
유소호가 나지막이 말하면서 얼마 전에 갈아 놓은 땅을 가리켰다.
“그땐, 온 천지가 황무지였는데 지금은 좋은 밭이 되었어.”
그러면서 저 멀리 내다보다가 가까이 보이는 마을에 푸른 나무가 우거진 걸 보고 무심결에 말고삐를 쥐었다.
“노야?”
앞서가던 방가가 의아한 듯 뒤를 돌아보며 유소호를 불렀다.
“마을엔 들어가지 말고 길을 따라 밭을 둘러보자.”
유소호는 천천히 말하고는 말을 재촉해 방가를 지나쳤다. 마을 어귀에 큰 대추나무 앞에 잠시 우뚝 서 있다가 노련하게 왼쪽으로 돌았다.
“채소 농사는 이제 짓지 않는 건가, 어째서…….”
밭머리에 선 유소호는 한순간 넋을 잃었다. 천막이 있던 자리를 평평하게 민 밭에서 소작인들이 파종하고 있었다. 시선을 느낀 누군가가 바라보자, 한 농부가 따라서 고개를 들었다.
“관인! 이제 이곳에서는 채소를 재배하지 않습니다. 채소가 필요하면 성남 곽가장으로 가십시오. 닭, 오리, 돼지나 풀이 필요한 거면 저 앞으로 가세요. 언덕이 있습니다.”
농부가 손으로 가리키자, 유소호는 멈칫하다가 고맙다고 했다. 농부는 손을 휘휘 젓고는 고개 숙여 일하기 시작했다. 유소호는 어쩐지 마음이 허전해져서 중얼거렸다.
“이제 다들 나를 몰라보는군.”
고개를 숙이다가 땅에 떨어진 하얗고 보송보송한 목화를 보고 어리둥절해졌다.
“이건…….”
괭이를 짊어지고 지나가던 농부가 듣고는 대답했다.
“대낭자가 심은 목화입니다. 이건 팔려고 내놓은 게 아니에요. 대낭자가 팔 생각 없답니다. 나중에 우리더러 심으라고 하시더라고요.”
유소호가 그 농부를 빤히 바라봤지만, 농부는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그대로 가버렸다.
유소호가 쓴웃음을 지었다.
“조육아도 날 몰라보는군.”
사실 마을 사람들 탓은 아니었다. 유소호는 그때에도 마을 사람들과 별로 왕래를 하지 않았고, 이름이 나자마자 바로 경성으로 올라갔다. 게다가 지금 차림새를 보고 누가 예전에 그 군색하던 소년을 떠올릴까.
“노야? 거기에 가보실 겁니까?”
방가가 나직이 하는 말에 정신을 차린 유소호는 저쪽 언덕을 바라봤다. 원래 황무지였던 구릉이 지금은 푸르렀다. 층층 계단으로 깎인 언덕이 가지런히 정돈된 걸 보고 저도 모르게 말을 몰고 다가갔다.
“잘 꾸며놓았어. 이게 그녀가 말하던 과수원이라는 건가.”
방가는 말없이 주인의 뒤를 따라갔다. 하지만 몇 걸음 가지 않아서 유소호가 갑자기 고삐를 쥐고 멈추는 바람에 방가는 제 주인과 부딪칠 뻔했다. 뭐라고 묻기도 전에 노랫소리가 들려서 목을 빼고 바라봤다. 아이들이 등에 짚을 지고 우르르 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가까워지니 아이들이 노래하는 내용이 들렸다.
당 삼장(三藏)을 태우고 서쪽으로 내려가는 백룡마 뒤에 삼장의 세 제자가 따르네, 요괴, 마귀 어쩌고, 미녀, 화피 어쩌고, 칼산, 불바다 어쩌고, 함정, 계략 어쩌고저쩌고, 서역으로 가서 경서를 가지고 오는 게 쉽지 않네, 대업적을 세우기 쉽지 않네, 하는 내용이었다.
방가는 멈칫하다가 금세 성내 한 다루에서 들은 무슨 손후자가 경서를 가지러 가고 어쩌고 하는 이야기임을 깨달았다. 다들 얼마나 빠져서 듣던지, 십방촌 조 대낭자가 한 이야기라고 하길래 믿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노래 부르는 걸 들으니 이젠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방가는 지금 열 몇 살밖에 안 된 아이라 다루에서 잠깐 들었을 때도 정신없이 빠져들어서 자리를 떠나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지금은 법도도 잊고 빠져들어서 정신을 놓고 가다가 하마터면 다시 유소호와 부딪칠 뻔했다.
아이들 뒤엔 한 여인이 있었다. 우사 웃옷에 취능(翠綾) 치마를 입고 원보빈을 틀어 올린 여인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동그란 얼굴, 미소를 머금은 눈빛, 여인도 아이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누이, 누이, 그 손후자, 홍해아 손에 불타 죽었어?”
맨 뒤에서 가던 전가아가 임새옥의 옷을 당기며 쉴 새 없이 물었다.
“뭐라는 거야!”
임새옥이 손등을 치자, 앞에서 가던 금단이 돌아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전가아는 순간 얼굴을 붉히며 손을 뿌리치고 달아났다. 금단이 웃으며 뒤에서 소리쳤다.
“걱정하지 마라. 손후자는 72단 변화하니까, 분명 살아남을 거다……. 그리고, 너, 나한텐 외삼촌이라고 불러야지, 한 번만 더 이름 부르면 맞는다!”
웃음을 터트리던 임새옥은 입가의 미소가 가시기도 전에 별안간 멈춰 섰다. 그녀는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바라보며 무심결에 눈을 비볐다.
눈앞의 그 사람은 눈에 익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예전처럼 팔짱을 끼고 가지런한 치아를 드러내고서.
“화아, 여기가 당신이 말하던 그 과수원인가?”
소년이 그녀 뒤쪽을 가리켰다. 임새옥은 꿈을 꾸는 것처럼 뒤를 돌아봤다. 소년이 느릿느릿 묻는 소리와 함께, 그 옛날 이곳에 처음 도착해서 이 세계가 두려웠던 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나중에 돈이 생기면, 저 땅을 사서 과일나무를 심을 거야. 큰 대추나무도 심고, 거기에 큰 집도 지을 거야. 앞뜰엔 닭을 기르고 뒤뜰엔 돼지를 기르고. 동쪽 언덕엔 양을 방목하고, 서쪽 언덕엔 소를 방목하고…….’
그녀는 눈이 시큰해지고 가슴이 답답해져서 저도 모르게 손을 움켜쥐었다.
“정말 축하해. 소원을 이뤘군.”
유소호는 여인이 아직 꿈에서 깨어나지 않은 것처럼 넋이 나간 얼굴로 돌아보자 다시 빙긋 웃었다.
“저기, 여긴 어떻게 왔어?”
임새옥이 얼떨떨하게 물었다.
“아, 공무로 지나가다가 잠깐 들러서.”
유소호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두 사람은 그렇게 거리를 두고 마주 보며 누구도 한 걸음을 다가가지 못했다.
임새옥은 다시 넋이 나갔다가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어색하게 제 손을 움켜쥐었다.
“그럼, 집에 잠깐 들렀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오후엔 경성으로 돌아가야 해.”
임새옥은 그래, 하고 대답하다가 무언가 떠오른 듯 급하게 물었다.
“어머니…… 아니, 그…… 노부인, 혹시 몸이 안 좋아?”
돌아서던 소년이 걸음을 멈추고는 고맙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괜찮아. 지금은 좋아지셨어. 마음 써줘서 고마워.”
임새옥은 이 모든 게 꿈처럼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멍하니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넋을 놓고 소년을 바라봤다. 소년은 돌아서서 말에 올라탔다. 가려줄 것이 전혀 없어서, 정오의 햇살이 그에게 곧바로 내리비쳤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떴다.
“성에서 저 이야기를 들었어. 참 재미있던데. 돌아가서 어머니에게 이야기해 드리려고. 좋아하실 테니까.”
소년은 웃으며 그렇게 말하고는 여인이 눈을 가늘게 뜨고 있는 걸 잠시 내려다봤다. 말에 탄 채 그 자리에서 빙빙 맴돌다가, 결국 아무런 말 없이 말머리를 돌려 길을 재촉했다. 방가도 바짝 뒤따라갔고, 두 사람의 모습은 금세 마을 어귀에서 사라졌다.
“누이, 누이. 자형이 누이 데리러 왔어!”
금단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임새옥은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커다란 몸이 눈 부신 햇살을 가려주었다.
“어째서 햇볕 아래 서 있어요? 어지러워?”
소금남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임새옥은 그렁그렁한 눈을 비비고 다시 눈을 떴다. 눈앞이 온통 흐릿했다. 그녀는 다급하게 소금남의 손을 잡았다.
“금가, 금가. 어서 좀 봐봐요. 조금 전에 지나간 사람, 유소호, 유소호 맞아요?”
소금남은 다소 의아한 듯이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봤다. 아까 다가올 때 봤던 두 사람이 떠올랐다. 과수원에 찾아온 상인인 줄 알았더니, 그였나?
고개를 들고 바라보는데, 길 끝에 보이는 작은 두 점이 금세 사라졌다.
“당신도 몰라보는데, 내가 어찌 알아.”
소금남이 천천히 대답했다.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은근히 질투가 느껴지는 말투였다. 흐릿하던 눈앞이 이제야 정상으로 돌아온 임새옥은 고개를 들고 소금남을 빤히 쳐다봤다. 슬쩍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굳어 있는 그의 뺨을 꼬집었다.
“아, 금가, 질투해요?”
소금남이 콧방귀를 뀌며 돌아서서 모른 척하자 임새옥은 그의 곁을 빙글빙글 맴돌면서 손을 흔들어댔다.
“보자, 보자. 금가도 이렇게 삐질 때가 있구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금남이 그녀를 와락 품으로 끌어당겼다. 탄탄한 그의 가슴에 부딪힌 코가 아팠다.
“아이들이 봐요!”
임새옥이 품에 안긴 채 웃고는 그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소금남이 그녀의 목덜미에 머리를 묻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녀석과 가버릴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아.”
임새옥이 웃고는 옷 위로 그의 가슴을 깨물면서 소금남이 급하게 숨을 들이마시는 걸 만족스럽게 바라봤다.
“바보! 날 쫓아낼 생각은 평생 하지도 말아요.”
임새옥이 다시 가슴에 기댄 채 웃으면서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아이들이 얼레리꼴레리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