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8화 (38/57)

二. 입추를 맞은 성안현, 조 대저를 기쁘게 맞이하다

성안현 관아는 벌써 여러 해 새로 손질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원래 주문청의 계획대로라면 전보서가 내려오면 떠나기 전에 은자를 일부 들여 정비하려고 했다. 후임자 체면을 크게 세워줄 수 있을 터이니 말이다. 하지만 성안현에 농 재해가 닥쳐서 그 돈은 입에 풀칠도 하지 못하는 백성을 구제하는 데 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전임도 흐지부지되어서 지금 성안현 관아는 여전히 낡고 우중충한 모습이었다. 관아 입구엔 커다란 가래나무 네 그루가 있었는데, 입추가 가까워진 시기가 되니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기어 올라가 잎을 따며 놀고 있었다. 

“떽!” 

성안현 주부 왕 대인이 새로 산 오동 분재를 들고 문 앞에 다가와서는 발길질하며 크게 고함을 쳤다. 나무에 올라가 있던 아이들은 놀라서 달아났고, 관아 아역들이 소리를 듣고 나와서 오동 화분을 관아 안으로 들고 들어갔다. 

“대인은? 성밖에 가셨나?” 

주부가 옷을 툭툭 털고 모자를 바로 하며 묻자, 아역 하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낭자가 입추 전에 돌아왔으니, 우리 성안현은 내년에 분명 풍년일 겝니다.” 

주부도 미소를 지으며 오동잎이 떨어지니까 흔들지 말라고 당부하고는 서둘러 관아에서 나갔다. 문밖으로 나가기 무섭게 흰 무명 장삼을 입은 사내가 머리를 수건으로 감싼 여인을 부축하고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십방촌 조대산의 처와 사위라는 걸 알아보고는 서둘러 다가갔다. 

“외종숙!” 

여인은 그를 보고는 말은 하지 않고 엉엉 울면서 거친 손으로 다리를 내리쳤다. 주부는 한숨을 내쉬었다. 주변을 둘러본 그는 아이들이 간간이 뛰어다니는 걸 보고 두 사람을 구석으로 끌고 갔다. 

“매일 여기 와서 울어봤자 대인의 비위를 더 거스를 뿐이에요.” 

조대산 처는 입을 가리고 목소리를 죽였다. 

“아무리 쓸모없는 사내라도 우리 일가는 다 그 사람을 보고 살잖아요. 계속 갇혀있으면 우린 못 살아요.” 

여인이 담장에 기댄 채 주저앉자 사위가 서둘러 부축하며 말했다. 

“외종숙, 잘못도 인정했고 벌금도 냈는데, 아버님은 어째서 아직 풀려나지 않으십니까.” 

주부는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여인이 우는 게 성가신 듯 재빨리 당겨 일으키면서 나지막이 대답했다. 

“내 말 들어요. 방울을 풀려면 방울을 풀 사람이 필요해요. 여기서 이러지 말고 돌아가요. 가서, 대낭자 집에 찾아가서 울어요.”

그 말에 조대산의 처는 더 심하게 울면서 눈물, 콧물을 닦았다. 

“갔지요. 얼마나 창피를 당했는데. 외종숙이…….”

“하이고, 내 말 들어요. 오늘 다시 가요. 가서 대낭자를 붙잡고 울어요. 대낭자는 딱히 원망하지 않을 테니, 말 한마디면 해결될 일이에요. 매일 여기에 오는 것보다 나아요.” 

그 말에 조대산의 처가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 

“뭐요? 대저아가 돌아온단 말이에요? 아, 어쩐지, 조삼랑 집에 사람이 그렇게 많더라니.” 

여인은 알겠다는 듯 중얼거리고는 쓴웃음 지었다. 

“그 대저아도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잖아요!” 

성문으로 가야 해서 마음이 다급한 주부는 여인이 들러붙자 성가셔져서 손을 휘저으며 자신의 말대로 하라는 말만 남기고 허둥지둥 사라졌다. 조대산의 처는 그제야 눈물을 닦으며 사위의 부축을 받은 채 걱정 반 기쁨 반을 품고 돌아갔다. 

이때 임새옥은 머리를 수건으로 두르고 여행길에 지친 모습으로 작은 나귀차에 타고 울퉁불퉁한 길을 가고 있었다. 중천에 걸린 정오의 뙤약볕에 길 양옆의 풀잎도 몸을 말고 있었다. 

“7월 추수는 갖가지 다 거둬들이고, 6월 추수는 갖가지 다 버린다는 말이 있잖아요. 내년은 풍년일 거예요.” 

임새옥이 부들부채를 들고 깔깔 웃으며 하는 말에 나귀를 모는 노인이 웃으며 돌아봤다. 이 노인은 내황현 현령이 새로 고용해준 마부였다.

“대낭자가 그리 말하니, 이 노인네, 마음이 놓이네요.” 

“그런데 또 몰라요. 가을에 벼락이 치면 겨울에 수확이 없다고…….”

“어이구, 대낭자, 그렇게 되면 우리 활로가 끊기지. 올해 보리 수확이 반밖에 안 되어서 벼와 콩만 기다리는데.” 

노인이 침을 연신 뱉으며 수심에 찬 얼굴로 하는 말에 임새옥은 웃음을 거두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글이글한 햇빛을 보니 한숨이 나왔다.

“농사일이 어려운 이유가 다 날씨 때문이죠.”

“올해 여름에 비가 너무나 적게 내려서…….”

노인이 하는 말에 임새옥은 쓴웃음을 지었다. 

“서주엔 곳곳이 물난리였는데…….”

임새옥은 개봉부에서 떠난 이래 많은 현성을 거쳐서 돌아왔다. 과수원을 지을 생각에 이 시대엔 어떤 묘목이 있는지 살피고 싶었다. 이 시대에도 꽤 큰 범위로 과수 재배를 한다는 게 매우 뜻밖이었다. 오는 동안 내황현에서 대추나무 50그루, 임장현에서 왕밤나무 40그루를 정했다. 성안현 근처의 어느 과수원에서는 호두나무를 비롯한 묘목을 점찍어 두었다. 그렇게 오느라 사흘이면 올 거리를 족히 열흘이 걸리고서야 먼지 낀 성안현 성벽이 보이는 곳까지 오게 되었다. 

“대낭자, 여기도 마중 나온 사람이 있군요.” 

노인이 하는 말에, 어떻게 과수원을 안배할지 생각하던 임새옥도 앞을 쳐다봤다. 그리고 관포를 입은 주문청을 보고 못 말린다는 듯 웃었다. 

따지고 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개봉부에서 나온 이래 어디를 가든 현지 관리와 향신이 마중을 나왔다. 정한 곳도 없이 발길 닿는 대로 움직이는데도, 미래를 점치기라도 하는 듯이 가는 곳마다 사람이 나와 있었다. 그러니 부끄러워서 그 어디에서도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쫓겨나듯이 서둘러 떠났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나귀차를 본 사람들이 매무새를 가다듬더니 주문청에게 이끌려 내려와 그녀를 맞이했다. 

“또 어디 다른 곳에서 대낭자를 빼앗아 갔나 했소이다. 이번에도 안 오면 현마다 찾아갈 뻔했지.” 

주문청이 웃으며 여인을 살폈다. 이 여인은 떠날 때보다 더 소박한 차림이었다. 전에는 비녀라도 꽂더니 지금은 아예 천으로 머리를 두르고 있고. 이러니 현승들이 그녀를 쉽게 알아볼 수밖에. 

임새옥은 황급히 모두를 향해 예를 갖췄다. 

“이리 폐를 끼치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대낭자, 드디어 오셨구려.”

“대낭자, 다시는 떠나지 마시게.”

향신들이 서러운 얼굴로 몰려들었다. 개중엔 우는 사람까지 있어서 임새옥은 어쩔 줄을 몰랐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올해 보리농사를 가장 심하게 망쳐서 거의 한 톨도 건지지 못한 사람이었다. 순간 자기가 남의 땅을 망치기라도 한 듯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 여인의 그런 성격을 잘 아는 주문청이 그 사람을 향해 눈을 부릅떴다. 

“인제 와서 울긴 뭘 우는가! 대낭자를 잘 모시라고 그렇게 이야기했거늘! 핍박받고 고향을 떠나지 않았어! 누구 탓인데! 흥 깨지 말고 물러가게!”

눈치 빠른 사람이 나와서 그 사람을 끌고 갔다. 임새옥이 떠난 이래, 향신들은 자주 현령 대인의 질타를 받았다. 현령 대인이 조대산을 가둔 뒤엔 남은 화를 죄다 그들에게 풀면서 볼 때마다 타박했다. 그들이 대낭자를 홀대했기 때문이라고 얼마나 타박하는지. 다들 죽은 듯이 집에 숨어지내다가 집안의 곡식을 내놓은 후에야 조금 나아졌다. 

임새옥을 에워싸고 성 안으로 들어갔더니 많은 이가 그들을 주시했다. 농신 낭자가 자기 고장 출신이라는 건 거의 모두가 알고 있지만, 직접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지금 입에서 입으로 소식이 퍼지고, 안 그래도 좁은 거리가 물 샐 틈 없이 비좁아졌다. 임새옥은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사람들이 내년엔 뭘 심으면 좋은지, 내일 비가 올 건지, 이런 질문을 해대니 더 난처해져서 돌아가야겠다고 주문청에게 인사했다. 주문청이 뭐라고 하기 전에 향신들이 환영회를 준비했다고 먼저 나섰다. 

“대낭자도 힘들 테니 환영회는 나중에 해도 되네.” 

여인이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자, 주문청이 나서서 난처함을 풀어주었다. 그러고는 그녀가 십방촌으로 돌아갈 수 있게 아역을 불러 길을 열었다. 

임새옥은 사람들에게서 벗어난 후에야 안도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도 고생이네, 고생이야.” 

“대낭자, 태후마마도 만난 분이 저런 사람들이 겁납니까?”

임새옥이 축축해진 옷을 쓰다듬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노인이 웃으며 물었다. 임새옥이 손수건으로 땀을 닦고 부채를 흔들며 대답했다. 

“전 밭에서 먹고 사는 시골 사람일 뿐이잖아요. 사람들 앞에 어떻게 나서겠어요. 이런 고생도 싫어요.” 

나귀차는 흔들흔들, 제대로 된 길이 없는 산길을 따라 서서히 움직였다. 언덕을 몇 번 넘은 뒤에야 평평한 구릉 쪽에 있는 십방촌이 나타났다. 

“대저아 돌아왔다!” 

마을 입구에 도착하기도 전에 아이 하나가 쩌렁쩌렁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내밀었더니, 마을 어귀 큰 나무에서 누군가 쪼르륵 내려오는 동시에 나무 아래 있던 아이들이 우르르 흩어지더니 “금단 누이가 돌아왔다!” 하고 외치며 마을 안으로 달려 들어가는 게 보였다.

금단이 큰 나뭇가지를 흔들며 달려오자, 임새옥은 나귀차에서 뛰어내려 달려가서 금단을 덥석 안아 올렸다.

“아이고, 살이 더 쪘네. 이제 못 안아 올리겠다!” 

웅크리고 앉아 유심히 살폈더니, 여섯 살이 된 금단은 벌써 임새옥의 허리까지 왔다. 매일 밭에서 뛰어다녀서 온몸이 까무잡잡했다. 아이가 새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씨익 웃는데, 얼굴과는 몹시 안 어울리는 꽃무늬 금빛 장포를 입고 있었다. 옷자락 한쪽은 내놓고, 한쪽은 허리에 꽂아 두었는데 진흙이 묻어 있고 실밥이 삐죽삐죽 나와 있었다. 목엔 금목걸이 두 개를 걸고, 머리엔 죽도 밥도 아닌 금관을 쓰고 있는 걸 보고 웃음이 터졌다. 

“대체 이게 무슨 꼴이니?” 

임새옥이 손가락질하며 묻자 금단이 구멍 난 소맷자락으로 코를 닦으며 대답했다. 

“어머니가 만든 거야. 소야들은 다 이렇게 입는대.” 

임새옥이 배를 잡고 웃자, 금단도 창피해졌는지 맛있는 거 내놓으라고 잡아당겼다. 그렇게 옥신각신하는데 온 마을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 나왔다. 퉁퉁한 몸매에 시뻘건 대금 상의, 비취색 비단 치마를 입고 머리에 금비녀, 은비녀를 잔뜩 꽂고 맨 앞에서 달려오는 여인을 보니 눈앞이 어질어질했다. 임새옥은 애써 웃음을 참으며 바라봤다. 가까이에서 보니, 얼굴에 분을 두껍게 바르고 광대까지 붉게 칠한 걸 보고는 더는 참지 못하고 배를 잡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이고, 어머니. 대체 꼴이 이게 뭐예요.” 

그녀가 웃음을 터트리자, 참고 있던 마을 사람들도 곧바로 웃음을 터트려서 온 마을에 웃음소리가 진동했다. 나무 위에 있던 까치, 까마귀가 푸드덕 날아갔다. 

“아무리 그래도 며칠은 관리 부인으로 산 사람이, 식견 없는 마을 사람처럼 웃긴 뭘 웃어!”

떠들썩한 연회를 마치고 친지들에게 감사 인사하고 배웅한 다음, 한때는 유가네 작은 저택이었다가, 현재는 조가네 큰 저택이 된 마당 안에 사등을 높이 걸었다. 나방이 수도 없이 몰려들었다. 노씨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임새옥과 우물 앞에 쭈그리고 앉아 그릇을 씻으며 타박했다. 

“이건 현 주부 부인이 직접 골라준 옷감이고, 경성에서 새로 유행하는 모양으로 만든 거란 말이다.” 

그러면서 축축한 소매를 들어 얼룩덜룩 번진 얼굴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이것도 돈 하나 안 썼어. 주부 부인에게 받은 거다. 친정 아우가 남쪽에서 보낸 거랬다.” 

임새옥은 웃음을 참으며 그릇을 바구니에 넣었다. 

“어머니, 요즘엔 성에 사는 부인들과 왕래해요?”

그렇게 묻고는 노씨가 팔뚝까지 접은 소맷자락을 가리켰다. 

“일할 때 입을 옷이 아니에요. 주름지고 얼룩지면 잘 지워지지도 않는다고요.” 

노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릇을 들고 부엌으로 향했다. 

“내가 옷을 입지, 옷이 나를 입니?” 

임새옥은 웃기만 하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앞뜰에서 쓱쓱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조삼랑이 청소하는 것 같아서 한쪽에 있는 빗자루를 들고 다가가자, 노씨가 부엌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넌 신경 쓰지 말고 어서 가서 쉬어라.” 

“내일 일찍 일어날 필요도 없는데 뭐 하러 일찍 자요.” 

“얼굴 꼬락서니 좀 봐라. 일찍 자야 얼굴이 좋아지지!” 

임새옥이 앞뜰로 걸어가자, 노씨가 달려와 끌어당기며 한소리 하고는 그녀의 옷을 살피며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이럴 줄 알고 미리 새 옷을 지어놔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내일 사람들 만날 때 얼마나 창피하겠니!”

“누굴 만나길래 휘황찬란하게 입어야 해요? 어머니, 정말로 지주 부인이 다 됐네요.” 

임새옥이 입을 가리고 웃자, 노씨가 그녀의 머리를 콩 때렸다. 

“돌아왔으니 됐다. 안 그래도 이야기하려던 참인데, 다시는 먼 곳으로 시집가지 말아라. 서러운 일이 생겨도 친정이 곁에 없잖니. 이제 온 성 사람을 우리 마음대로 고르면 되니까, 내가 좋은 집을 골라 놓았다. 멀지도 않아. 성 동쪽 큰 부자, 주씨네다. 외동아들인데 올해 겨우 열일곱이야. 벌써 다 이야기 끝냈고, 내일 얼굴 보러 올 게다. 연말에 친지 방문하고 겹치기 전에 혼례를 올려야지.” 

“어머니, 내 혼사에 참견할 생각하지 말아요.” 

임새옥이 얼굴을 굳히며 눈살을 찌푸리자, 노씨가 눈을 동그랗게 부릅뜨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게 무슨 말이냐! 왜? 내가 안 끼어들면? 네가 고르려고? 네가 어떤 사람을 골랐는지 생각해 봐라. 눈이 멀어서 그런 망할 놈을 골라놓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벼락이 내리치자 모녀 두 사람 모두 화들짝 놀랐다. 

“이제 입추인데 벼락이 왜 떨어지고 지랄이야!”

노씨가 꿍얼거리고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먹구름이 잔뜩 몰려오는 게 보이자 입씨름을 멈추고 조삼랑과 함께 온 마당에 가득한 탁자와 의자를 치웠다. 

“속담일 뿐이니까 정말로 그런 건 아니겠…….”

임새옥은 갑자기 떨어진 천둥소리에 귀가 다 먹먹해져서 중얼거렸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광풍이 불어와서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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