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화 (33/57)

三. 사과한다고 찾아온 소 노부인, 들러붙다

이 사람 정말, 이건 집착이라고요! 

임새옥은 한숨을 내쉬고는 몸에 손을 두어 번 닦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 황주는 벌써 사립문 앞에 서서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대낭자 집에 있는가?” 

임새옥이 미소를 쥐어짜며 대답했다. 

“황 노야, 또 어쩐 일이세요. 급하게 가시느라 두고 간 게 있으신가요?” 

그녀가 들어오라고 하지 않자 황주가 더 환하게 웃어 보였다. 이대로 사립문을 밀고 들어가 버리고 싶지만, 저 여인의 신경을 거슬러서 다 황이 될까 봐 그저 따라 웃기만 했다. 

“대낭자, 대낭자! 그때 하던 말이 안 끝났는데, 방해받았잖은가.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이야기하러 왔네.”

임새옥은 황주 뒤에 서 있는 사내 셋을 훑어보았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것으로 보아 황주가 이야기했던 세 아들 같았다. 세 사내 모두 조금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몰래 자기를 살펴보는 걸 깨닫는 순간 얼굴이 붉어졌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억지로 단체로 찾아와서 선을 보는 게 어디 있어!

임새옥이 얼굴을 굳히며 말을 꺼냈다. 

“황 노야, 지금 혼자 집에 있어서 정말로 불편합니다.” 

황주는 다급해서 땀이 삐질삐질 났고, 당황스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임새옥이 돌아서서 안으로 들어가려는 걸 보고 다급한 나머지 문을 밀려고 하자, 곁에 있던 대랑이 제 아비의 손을 눌렀다. 

“괜히 찾아와 소란을 떨었습니다, 대낭자. 우리가 큰 잘못을 하였습니다. 다만 부친께서 자식을 아끼는 마음을 생각하여 부디 너그럽게 생각해 주시지요.”

이 사내는 그래도 예의를 지킨다는 생각에 임새옥은 돌아섰다. 스물네댓쯤 되어 보이는 훤칠한 사내가 백주(白綢) 장삼을 입고 혜말을 정갈하게 신은 차림으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있었다. 임새옥은 속으로 영리한 사내라고 생각했다. 자식을 아끼는 부친을 어떻게 나무라겠나. 그래서 고개를 끄덕이는데, 그 사내가 말을 이었다.

“우리 형제가 찾아온 이유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부친이 말씀하신 연유도 있지만, 또 하나 우리도 직접 대낭자에게 감사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우리는 별다른 재주도 없고 그저 땅을 지키며 살고 있을 뿐입니다. 밭엔 보리만 심고요. 대낭자는 농사에 정통한 분이니, 땅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 겁니다. 대낭자가 제때 상기시켜주지 않았다면, 우리 집안은 지금쯤 난리가 났을 겁니다.”

그러면서 아우들을 데리고 동시에 허리를 숙였다. 임새옥은 서둘러 몇 걸음 다가가 답례하며, 받을 수 없으니 지나친 예를 거두라고 말했다.

자기 아들의 말에 임새옥의 태도가 크게 좋아진 걸 본 황주는 벌꿀을 먹은 듯이 행복해져서 임새옥과 아들을 번갈아 봤다. 

“이 아이가 큰애요. 나이가 좀 많지. 혼인도 한 적 있고. 며느리는 작년에 세상을 떠났네. 이 아이가 지금 나 대신 집안의 땅을 관리하고 있네. 글도 좀 알지만, 과거에 급제하진 못할 것이네. 나도 이 아이가 관리가 되는 건 싫고.”

그러고는 무언가 떠오른 듯이 다급히 말했다. 

“처가 세상을 떠난 다음 곁에 시중드는 몸종 하나를 두긴 했는데, 대낭자, 안심하게, 몸을 섞진 않았네.”

그 말에 임새옥뿐만 아니라 대랑을 포함한 세 아들의 얼굴까지 붉어졌다. 갈수록 말 같지 않은 소리를 들을 생각이 없어서 임새옥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돌아서서 안으로 향했다. 

그녀가 돌아서자, 황주가 또 사립문을 밀고 들어가려 하다가 아들들에게 붙잡혀서는 조바심을 내고 있는데, 뒤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뭐 하는 게요! 뭐 하는 게야! 대낮에 이게 무슨 짓이람! 사내들이 우르르 여인네 집 앞에서 옥신각신, 체통 없이 무슨 일이요!”

당황한 네 사람이 뒤돌아봤더니, 아직 어린 시녀가 화려하게 차려입은 노부인을 부축하고 곁에 서 있었다. 지팡이를 짚은 노부인이 눈을 부릅뜨고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버지, 돌아가요.”

대랑이 황주를 잡아당기며 나지막이 말했다. 제 바람을 이루지 못한 황주는 몹시 언짢았지만, 노부인의 사나운 표정, 범상치 않은 옷차림에 혹시라도 누군가의 눈 밖에 나서 집에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봐 임새옥의 마당 쪽으로 목소리 높여 소리쳤다. 

“대낭자, 소란스럽게 했네. 화내지 말게. 이 늙으니, 바로 돌아감세. 그 일은, 그 일은, 꼭 염두에 두시게. 우리는 이곳에 묵고 있으니, 할 말 있으면 사람을 보내면 되네!”

임새옥은 집 안에서 듣고도 못 들은 체했다. 멀어지는 말발굽 소리에 갔구나 하고 한시름이 놓이면서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그녀가 채 마음을 가라앉히기도 전에 밖에서 다시 “대낭자, 대낭자!” 하고 부르는 소리가 났다. 이마를 짚고 나오던 임새옥은 누군지 확인하고 얼떨떨해졌다. 

“이번 달 세는 이미 냈는데, 어쩐 일로 오셨나요. 소 노부인?”

‘방탕한 것’이라는 말을 아직 기억하는 임새옥은 기분이 좋지 않아서 문 앞에 선 채 물었다. 소 노부인이 사립문을 잡고 빙긋 웃었다. 

“대낭자, 아직 화가 났군. 다 이 늙은이가 어리석은 탓이네. 아랫것들이 이간질하려는 말만 듣고 대낭자에게 무례를 저질렀지 뭐야. 이 늙은이 이 자리에서 사과하겠네.” 

그러고는 부축도 하지 못하게 하면서 지팡이를 내려놓고 허리를 숙였다. 임새옥은 노부인이 절 세 번 하길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소인이 받을 절은 아니지만, 지금은 태후마마께서 하사한 머리 장식을 끼고 있어서 받아도 과하지 않네요.” 

“그럼, 그럼, 받아도 되지, 암.” 

소 노부인이 함박웃음 지으며 말하는데도, 영아가 맞을 뻔한 것도 떠올라서 도저히 용서되지 않았다. 

“평소에 듣기로는 소씨 가문이 부귀하고 예절 바른 집안이라던데요. 선행도 많이 베풀고요. 노부인, 아랫것들을 너무 풀어주지 말고 단속하세요. 소문이 퍼졌다간 노부인의 명성을 더럽힐 수 있지 않겠어요?” 

노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낭자의 말이 옳다고 하면서, 돌아가서 그 천것을 바로 팔아버렸다, 가풍도 제대로 정돈했다. 지금은 큰딸이 우리 집에 묵으며 단속한다, 다시는 대낭자의 명성에 누 끼칠 일은 없다, 운운해댔다. 

노부인도 성격이 화통해 보이고, 이씨도 성품이 좋았는데 예전에 어째서 집을 떠날 정도로 다투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아한 마음에 노부인을 살펴봤더니, 안색이 발그레하고 목소리가 쩌렁쩌렁한 데다, 처진 눈가에 때때로 날카로운 빛이 스치는 걸 보고 서둘러 마음을 다잡았다. 

여기 와서 지내는 동안, 마을 사람들이 소 노부인이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걸 가끔 들었었다. 노부인 집안도 대대로 상인 가문이었고, 혼인한 지 5년 만에 해외 상선이 침몰하는 바람에 절반의 재산을 잃은 일로 소 노태야가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의지할 데 없는 과부가 된 그녀가 소가의 가업을 짊어졌고, 아들을 도와 소가의 장사를 더 크게 일궜다고 한다. 노부인이 소가를 위해서 친정 재산 절반을 가져온 바람에 지금까지 친정 쪽 사람들과는 원수처럼 산다고도 하고.

이런 사람이 단순히 말 몇 마디만 듣고 생각이 바뀌었을 리가 없다. 

임새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마 태후가 상을 내린 걸 보고 마음이 변한 것이리라 싶었다. 하지만 원한은 풀고 맺지 말라는 말이 있으니까, 어찌 됐든 고개 숙여 잘못을 인정하는 걸 봐서 그냥 넘어가자 생각했다. 

“시간이 늦어서 들어오시라고도 못 하겠네요. 직접 와주셔서 감사해요, 노부인.”

임새옥이 가까이 다가가 간단하게 예를 갖췄다. 소부인이 빙긋 웃으며 사립문을 툭툭 쳤다. 

“아직 일러, 이르네. 괜찮아. 대낭자, 아직도 이 늙은이가 미워서 들어오란 소리도 하지 않은 건 아니겠지?”

요즘 사람들 다 이렇게 뻔뻔한 건가? 

임새옥은 할 말이 없어져서 할 수 없이 문을 열어주었다. 소 노부인은 시녀의 부축도 받지 않고 들어와서는 사양하지도 않고 주변을 마구 둘러보았다. 

“그날 보니 대낭자 집에 팔걸이가 둥근 편안한 의자가 있던데, 이 늙은이 좀 앉았다 가세.” 

이렇게 스스럼없는 노인네는 정말 또 처음이었다. 

임새옥이 미소를 쥐어짜 보이고는 의자를 들고나오려고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시녀가 벌써 쪼르르 달려왔다. 

“부인, 쉬고 계셔요. 제가 옮겨 올게요.” 

임새옥도 말리지 않고 내버려 뒀다. 소 노부인은 마당에서 기다리다가 조롱박 덩굴 아래 의자를 내려놓으라고 하고는 앉아서 흡족한 듯 몸을 흔들었다. 그러다가 커다랗게 핀 하얀 꽃을 올려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조롱박이 다 자라면 바가지 만들게 두어 개 보내 주게, 대낭자.” 

한쪽에서 그 말을 들은 임새옥은 이 노부인이 입고 매단 것들이 모두 훔쳐 온 게 아닐까 지극히 의심스러워졌다. 

이게 어딜 봐서 귀한 댁 노부인인가! 만약 그런 게 아니라면 타고난 상인 기질 때문에 좋은 것만 보면 무조건 가지고 싶은 것이거나!

“노부인도 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노부인 댁 조롱박이니 당연히 마음대로 하셔야죠.” 

그러고는 더는 상대하지 않고 돌아섰다. 하늘을 보니 슬슬 영아가 돌아올 시간이라서 소매를 걷어붙이고 부엌으로 가는데 노부인이 마당에서 어쩌고저쩌고하는 소리가 들렸다. 

“닭이 참 토실토실하군. 엽아, 가서 달걀 꺼내와 보거라. 아이고, 우리 집 달걀보다 훨씬 실한걸. 맛도 참 좋겠다. 대낭자, 맛 좀 보게 몇 개 가지고 가게 해주게.” 

불을 피우느라 후후 불던 임새옥은 이내 콜록거렸다. 

이건 정말…… 메뚜기떼 습격이나 다름없잖아! 

임새옥은 기도 막히고 우습기도 해서, 부채질하며 대답했다. 

“그건 안 돼요. 매일 알을 두 개밖에 안 낳는걸요. 저희에게 딱 맞아요. 노부인, 다른 집에 가서 알아보세요.” 

노부인이 웃으며 시녀에게 달걀을 다시 가져다 놓으라고 했다. 그러고는 임새옥이 부엌칼을 들고 채소 써는 걸 보고는 또 궁금해하며 물었다. 

“대낭자, 뭘 만드나? 좋아 보이는데? 냄새 좋군. 무슨 탕인가?” 

임새옥은 화를 꾹꾹 참으며 그래도 노인이니 일일이 대답해 주면서 탕을 담고 병자를 굽는데, 노부인이 어느새 부엌 안까지 들어와서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시녀를 지휘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향긋해라. 엽아, 맛 좀 보게 그릇 찾아오너라.”

임새옥은 이제 화도 나지 않아서 상대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병자를 세 개 굽고 보니, 노부인은 부뚜막에 앉아서 탕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병자를 향해 손을 뻗다가 임새옥이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자 씨익 웃기만 했다.

“대낭자, 솜씨가 참 좋으이.”

영아가 성에서 돌아왔을 때, 하늘은 이미 어둑어둑해진 뒤였다. 마당에 들어온 영아는 배불리 먹고 트림하며 나가는 노부인과 마주쳤다. 뒤를 따르는 시녀 아이는 병자 냄새가 폴폴 나는 보따리를 들고 나갔고, 영아 자신에게 남은 건 탕 한 그릇과 병자 하나뿐이었다.

“아냐, 돈 받았어, 돈 받았어!”

영아의 뽀로통한 얼굴을 본 임새옥이 황급히 말하고는 어이없고 웃긴 듯이 은자 두 냥을 보여주었다. 

“성에 들어가서 한 끼 제대로 먹을 만큼은 돼.” 

영아가 밥을 우걱우걱 먹으며 웅얼웅얼 물었다.

“그 요괴 할멈이 왜 온 거래요? 성에서 대관인을 만나서 모두 이야기했어요. 내일 직접 와서 사과하신대요.” 

임새옥은 한쪽에서 계속 빨래를 하면서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정말 좀 이상한 노인이긴 해. 오늘은 무례하진 않았어. 단지 시끄럽게 굴어서 성가셨지.” 

영아가 병자를 꿀꺽 삼키고는 목소리를 높였다. 

“아! 맞다! 대저아! 대저아가 지금 성 안에서 아주 유명해요.” 

알고 보니 거리에 나간 영아가 가는 곳마다 성지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었다. 조 대저가 누군지 몰랐던 강녕성 백성들이 일제히 수소문하고 있더라고. 누가 고대에는 정보가 뒤떨어진다고 했나. 지금 온 강녕부에서 농신 낭자의 화신인 조 대저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만백성이 유리걸식할 뻔한 보리 재해를 초반에 싹 없앤 것도 그녀고, 겨울에도 먹을 수 있는 신선한 채소 역시 그녀 손에서 나왔다는 소문이 싹 퍼졌다. 게다가 강녕부의 명성을 크게 떨친 연근도 알고 보니 조 대저의 은혜였다는 것도 알려졌다. 

“대저아, 그거 아세요? 우릴 무시하던 점포 점원들도 오늘 얼마나 친절하게 굴던지요. 대저아를 모실 순 없으니, 저도 농사지을 줄 아는 줄 알고 저더러 밭에 가서 봐달라고 하더라고요.” 

영아는 젓가락을 든 채 히죽히죽 웃었다. 

“그리고 또, 태후마마께서 친히 대저아 혼처를 찾아주신다고 하셨다는데, 그게 진짜예요? 사람들이 다 현 관아로 몰려가더라고요. 소정가가 그러는데, 현령 대인이 대저아 배필 찾는 방을 붙였대요. 대저아, 이래도 여기에서 살 수 있겠어요?”

그 말에 임새옥은 대야에 코를 박을 뻔했다. 방을 붙여?!

“설마, 그 노인네, 날 찾아와서 고개를 숙인 것도…….”

임새옥은 젖은 손으로 이마를 탁탁 쳤다. 얼굴이 화끈거려서 손까지 뜨끈해지는 느낌이었다. 

세상에, 나, 임새옥, 완전 유명해졌구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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