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화 (24/57)

희녕 9년 말, 이른 겨울 추위가 시작되었다. 10월 초에 눈비가 내리면서, 흐린 날이 이어졌다. 

이날, 유씨는 습관대로 낮잠을 잤고, 임새옥은 영아에게 유씨 곁을 지키라고 하고는 부엌으로 가서 저녁에 먹을 탕을 준비했다. 십방촌에서 수확한 것들이 제때 도착해서 드디어 소박한 식사를 하던 생활을 끝낼 수 있게 되었다. 

문지기 장사가 아침 시장에서 사 온 신선한 생선으로 담백한 어탕을 끓일 생각이었다. 재빠르게 손질하고 약한 불에 조리면서 부엌 한쪽에 앉았다. 도마 밑에 숨겨둔 필기한 것을 꺼내 부덕과 손님맞이, 배웅 예법 등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저녁이 되어 한참을 기다려도 유소호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이번 달엔 거의 매일 그랬다. 기분이 심히 좋지 않은 유씨가 얼굴을 찌푸린 채 먼저 먹으라고 하고서야 겨우 달래서 식사를 마쳤다. 

식사를 마친 다음, 세 사람은 유씨의 방에 앉아 바느질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임새옥은 언제나 그랬듯이 화제를 찾느라 예전에 유씨 일가가 어땠는지 물었다. 연회는 어떻게 열어 손님 접대를 했는지, 오가는 선물은 어떻게 준비했는지, 집안과 그 많은 노복은 어떻게 다스렸는지, 물어보는 게 많아지자 유씨도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빙그레 웃었다. 

“느릅나무 옹이 같은 우리 집 고집쟁이도 생각이 트였구나. 철이 들었어.”

“노자 가라사대, 사람에겐 사람 말을 하고, 귀신에겐 귀신 말을 해라. 어디에서 어떤 생활을 하든, 대세를 따르면 맞을 일은 없지요.”

임새옥이 방긋 웃으며 하는 말에 유씨와 영아 모두 웃었다. 

“네가 노자도 안단 말이냐?”

임새옥은 어깨를 으쓱하며 빙긋 웃었다. 

“제 아버지세요.”(노자老子에 아버지, 노부老夫 등의 의미가 있음.)

“쯧, 겨우 칭찬했더니. 바른 행동은 어디로 갔느냐.” 

유씨는 혀를 찼고, 영아는 깔깔 웃으며 말했다.

“조 어르신이 말씀을 참 잘하시네요. 저도 다 알아듣겠어요.”

바로 그때 유소호가 한기를 가득 안고 휘장을 젖히고 들어왔다. 

“무슨 이야기를 하길래 이리 즐겁습니까? 밖에서도 웃음소리가 들리던걸요.” 

유소호가 돌아온 걸 본 임새옥은 기쁜 얼굴로 일어나서 옷을 받았고, 영아는 차를 끓이러 갔다. 

“이랑, 요즘 뭐가 그리 바쁜 게냐. 날이 추워져서 농사일도 없을 텐데, 왜 매일 늦게 돌아오는 것이야. 밖에 망할 여인네를 숨겨놓은 건 아니겠지? 그건 안 된다.” 

유씨가 일거리를 내려놓고는 술을 마셨는지 봄바람이 살랑 부는 듯한 유소호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임새옥도 다가가 슬쩍 냄새를 맡았다. 옅은 술 냄새에 분 냄새도 희미하게 나자 얼굴이 바로 침울해졌다. 

“술 한 방울도 안 마시는 사람이 이렇게 냄새 풍길 정도로 마시다니.” 

“난 안 마셨어. 술자리에 있었더니 나는 거지. 낭자가 맡아 봐요.”

유소호가 입을 벌리고 후우 하고 입김을 뱉자 임새옥이 그를 툭 때렸다. 청량한 숨결에 술 냄새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아서 그제야 기분이 좋아지는데 유씨가 헛기침하며 말했다. 

“이게 무슨 꼴이냐! 관리라는 사람들이 어째 매일 모여 술을 마시는 게냐.” 

“어머니, 그런 게 아닙니다. 오늘 사마 상공이 경성에 오셨는데, 운 좋게 저도 가게 됐습니다. 다른 때는 관아에서 자료 보느라 늦은 겁니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셔서, 배움이 부족한데 어찌 태만하겠습니까.” 

유씨는 당연히 그래야지, 하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집에 있던 책이 아직 있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탄식했다. 

사마 상공이라는 말을 들은 임새옥의 귀가 쫑긋해졌다. 왕안석이 아직 퇴직하지 않았는데 사마광이 왜 벌써 왔을까. 그래서 다급히 물었더니 유소호가 표정을 가다듬고 느릿느릿 말했다. 

“오늘 조회에서 왕안석이 사직했어.” 

그 말에 방 안이 고요해지는 걸 느꼈다. 유씨가 비처럼 눈물을 흘리더니 일어서서 위패 앞으로 다가갔다. 유소호도 물론 따라갔고, 임새옥 혼자 멍하니 서 있다가 한참 후에야 들어갔다. 

부부는 유씨가 잠드는 걸 보고 천천히 거처로 돌아갔다. 임새옥은 아직도 조금 얼떨떨했다. 긴장해서 가슴이 쿵쿵 뛰고 머릿속에 한 가지 물음이 계속 맴돌았다. 신법을 반박하는 상주서를 올리지 말라고, 심괄 대인에게 넌지시 말해 보라고 이랑에게 말할까. 하북에 가면 황제에게 찍히게 될 신법을 손상하는 일을 하지 말라고. 

어쩌지? 어쩌지? 

말이 입가에 맴도는데 결국 하지 못했다. 

“낭자, 왜 그래?” 

임새옥이 안절부절못해하자 유소호가 그녀의 이마를 짚으며 불렀다. 식구들의 생활을 챙기느라 애쓰는데 책까지 끌어안고 몰래 공부하다가 지친 것이겠거니 싶었다. 

“시녀 몇 명 더 들입시다.” 

그 말에 정신을 차린 임새옥이 눈을 똑바로 떴다.

“당신, 뭐 하려고요?” 

“내가 뭘 하기는. 당신 좀 편하라고 그러는 것이지. 이봐요 낭자, 또 무슨 생각을 하는 건데?”

“아.”

임새옥은 위협적인 눈빛으로 한 번 바라보고는 이불을 깔며 꿍얼거렸다.

“쓸데없는 사람 필요 없어요. 사람 많아서 한가해지면 괜히 문제만 생기지. 우리 식구 셋이 좋잖아요. 영아와 장사도 있으니 충분해요.” 

유소호는 웃으며 옷을 갈아입다가 뭔가 떠올리고는 성큼성큼 다가가 임새옥을 잡고 말했다. 

“낭자, 내게 생각이 있어. 그동안 많이 답답했을 테니, 내일 나와 함께 어디 좀 갑시다. 분명 좋아할 테니.” 

무슨 일이냐고 아무리 물어도 유소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유씨에게 말하고는 영아도 데리고 가지 않고 부부 두 사람이 마차를 불러 성 밖으로 향했다. 

희녕 9년 10월, 황제는 조회에서 경동 및 각지에서 어전(淤田: 호수 등에 흙을 덮어 농토로 만든 진흙밭)을 도입한 소식을 들었다. 경동 어전 관할 이효관이 어전 만 묘를 도입하고, 심주(深州) 정안(靜安)은 임적(林迪)에게 명령하여 남북안 밭 2만 7천여 묘에 진흙물을 댔다는 보고였다. 또 권판도수감(權判都水監) 정사맹(程師孟), 감승(監丞) 경완(耿琬)이 올린 상주서에 따르면 땅값 2, 3천 냥, 수확량 대여섯 말이던 동촌(董村)에서 어전을 도입한 후 가격이 세 배, 수확량이 두어 석으로 올랐다고 들었다는 말에 황제는 순간 기뻐하며 어전법을 보급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몸소 경성 밖에 있는 80여 어전을 시찰 갔다. 유소호도 수행했고, 기분이 좋아진 황제는 유가의 벼와 천막 채소도 그곳에 심을 수 있는지 물었다. 유소호가 잠시 생각하다가 시도해보겠다고 대답하자 황제가 몹시 기뻐하며 유소호를 어전사(淤田司) 총괄로 전임한다고 성지를 내렸다.

소식이 퍼지자 온 경성이 소란스러워졌다. 성안현 천막 채소를 모르는 사람이 없는지라, 한순간 관리, 백성 할 것 없이 앞다퉈 어전을 만들고 유 소상공의 지도하에 큰 부자가 되길 기대했다. 그 바람에 어사는 이해(利害) 관계를 진술하여 유소호를 질책하는 상주서를 올렸다. 

사실 따지고 보면 어전은 왕안석의 농전수리법(農田水利法)과 밀접하게 관계있는 결과물이었다. 그 법은 처음에 추진되었을 때부터 질타를 받았으니, 이런 조정 여론은 단순히 유소호를 겨냥한 것만은 아니었다. 

왕안석이 이미 물러났지만 황제는 여전히 신법을 고집했고, 왕안석의 당파 사람을 승상으로 발탁하기까지 했다. 그러니 ‘새 시대’가 오길 기다리던 사람들이 화가 날 수밖에. 그래서 추밀원에서는 어전은 효과가 미미해서 농사를 지어도 무익하며 국력과 재산을 낭비하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경성에 논벼를 심고 하북 일대까지 추진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관리들도 왁자지껄 손가락질하고 비웃었다. 그중엔 대학자 소식(蘇軾: 소동파)도 있었다. 그는 ‘변수(汴水)는 외줄기라 사람이 태어난 이래 벼농사에 적합하지 않다.’고 단언했다. 

(※소식蘇軾: 소동파. 송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정치가. 당송 8 대가 중 한 사람. 왕안석의 신법을 반대하여 좌천되었다.)

지금 임새옥과 유소호가 간 곳이 바로 개봉부 경계에 있는 어전이었다. 임새옥은 변하 강변을 걸으며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봤다. 어전에 얽힌 쟁론은 전혀 모르고 나왔다가, 유소호가 간단히 설명해주는 걸 듣고서 마음이 아프고 시렸다. 

이 사람은, 얼마나 큰 압박을 견디고 있는 걸까.

“이랑, 십방촌은 강을 끼고 있으니 마을 사람들이 종종 강물을 끌어다 어전을 만들었잖아요. 수확이 분명 크게 늘 거예요. 나도 따라 해본 적 있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이 일은 이득은 많고 해될 건 하나도 없어요. 나라를 부자로 만들고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는 길이예요. 바로 시작해요. 비웃으려고 벼르는 사람 코를 납작하게 해주어요.” 

임새옥은 머리에 쓴 멱리를 바짝 조였다. 

‘그 잘난 소 대재인(大才人), 벼를 북부에도 심을 수 있는 걸 모르다니. 가장 좋은 벼 출하지가 바로 가장 북쪽인 동북지구인 것도 모르고.’ 

하지만 이 말은 지금 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곳은 지금 대송의 영토가 아니니까. 어사가 귀를 세우고 이를 갈고 있는데, 그런 말을 들었다간 무슨 죄를 씌울지 모를 일이었다. 자신들을 아예 광동으로 보내버릴지도 모르고.

유소호는 잠시 침묵하며 드넓은 어전을 훑어보다가 입을 열었다. 

“신법은 대부분 역행하는 거지만, 농전수리법은 그래도 국가에 도움 되는 일이지.” 

임새옥도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이랑은 역시 현명한 아이라고 감탄했다. 다른 당파를 무조건 반대하는 사람과 달리, 이랑은 이익과 폐단을 정확히 판단했다. 자고로 수리 농사 이야기가 나오면 누구나 이빙(李氷)의 공적을 치하하지, 왕안석을 거론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빙: 전국시대 진秦나라 사람. 정치가이자 수리 전문가.)

아마도 왕안석의 신법이 총체적으로 실패해서 그런 것이리라. 그러나 사실상, 말단 경험이 풍부한 왕안석이 추진했던 농전수리법이 있었기에 중국 농업 기술이 송나라 때부터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것이다. 

“어전법은 돈이 많이 들어서 논쟁이 많은 거지. 이번에 성공하면 그야말로 조정의 복이자 폐하의 기쁨이 되겠지.” 

유소호는 잔뜩 들뜬 눈빛으로 주먹을 힘껏 쥐었다. 

“따지고 보면 나는 탁상공론이 많고, 농사일은 낭자만큼 경험이 풍부하지 않아. 수고스럽지만 낭자가 날 도와주어야겠어.”

유소호가 살며시 임새옥의 손을 잡았다. 그게 최선이었다. 주변에 수시로 사람이 지나다니는데 더 친밀한 행동을 하면 풍기 문란이라고 손가락질당할 것이다. 

임새옥이 얼굴을 붉혔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내가 뭘 안다고, 다 당신한테 배운 거지.” 

그녀는 이제 자기의 재능이 평범한 농부와 비교해 너무 지나친 건 아닐까 걱정하지 않았다. 경성에 들어온 이래, 유소호를 통해 수많은 기인과 희한한 일 이야기를 들었다. 그중에 여인도 적잖게 있었다. 

예를 들면 작년에 조야를 뒤흔들었던 목란피(木蘭陂: 중국에 현존하는 고대 관개공사 중의 하나)는 맨 처음에 치평(治平) 연간에 장락(長樂)의 여인 전사낭(錢四娘)이 공사를 일으킨 것이었다.

(※전사낭: 치평 원년, 열여섯 살에 가산을 들여 방죽을 건설했다. 그 공으로 ‘부인’으로 봉하여 전 부인으로 불렸고, 후에 ‘비’로 봉했다.)

설사 너무 두드러져서 도저히 얼버무리지 못할 때는 저도 모르게 신령이 몸에 붙어 신령이 도움을 줬다고 하면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농사는 임새옥의 다짐이고, 지금 그녀는 한가해서 몸에 곰팡이가 필 정도였다. 조정을 위해 심는 것이든, 자신을 위해 심는 것이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만 해도 경사였다. 

유씨는 내켜 하지 않았다. 시골도 아닌데 부녀자가 어떻게 얼굴을 내밀고 다닐 수 있냐고 하다가 황제가 바라는 일이라고 하자 바로 입을 다물었다. 이랑이 하는 말을 꼼꼼히 듣고는 마음 써야 한다고 신신당부까지 했다. 자기 집 농사짓는 것이 아니라서 잘못하면 목이 떨어진다고 하는 말에 임새옥과 유소호 모두 웃고는, 황제는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 않고, 시도해보는 것이라 실패해도 아무렇지 않다고 말했다. 임새옥은 신이 나서 관직을 잃으면 집에 가면 그만이라고 이야기하려다가 유씨가 그런 자극을 견디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입을 꼭 다물었다. 

우선 임새옥은 십방촌에 사람을 보내 창고에 있는 볍씨를 가지고 오게 했다. 그리고 시장을 느긋하게 돌면서 갖가지 채소를 사들였다. 유소호도 사방을 돌아다니며 신선한 채소 종자를 찾았다. 소금남조차 소식을 듣고, 골라 쓰라면서 여러 가지 농작물 씨앗을 남쪽에서 보내 주었다. 그러나 살펴봤더니 거의 내년 봄에 따듯해진 후에야 심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벼와 천막 채소 외엔 심을 것이 없는 임새옥은 아쉽고 내키지 않아 하면서 한동안 가만히 앉아 있어야 했다.

10월 중순엔 변하 강가에 서 있으면 중심을 잡을 수 없이 비틀거릴 정도로 큰바람이 불었다. 뒤이어 보슬비도 부슬부슬 내렸다. 가을비와 서늘한 바람에, 겹옷으로 갈아입었는데도 밭에 서 있으니 으슬으슬 추웠다. 그러나 관아에서 시행하는 어전에 고용되길 기다리며 줄 선 사람들은 줄어들지 않았다. 

급히 달려온 유소호 뒤에 병졸 하나가 우산을 들고 잰걸음으로 뒤따랐다. 유소호가 우산으로 다 가리진 못해 관복이 축축하게 젖은 채 바람에 심하게 흔들리는 천막 안으로 들어서자 관리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유소호는 붓을 놓고 일어나려는 서리를 말리면서 이름과 논밭의 묘 수가 적힌 종이 여남은 장을 바라봤다. 

“얼마나 남았는가?” 

“아뢰옵니다, 대인, 세 묘 남았습니다.” 

서리는 그래도 일어서서 공손하게 대답했다. 

세 묘? 이틀이면 싹 나가겠군. 

어사와 수많은 이가 비아냥거리는 바람에 경성의 사대부들은 하나같이 어전 구매를 거절했다. 황제는 전혀 걱정하지 않고 코웃음 치며 관부에서 사람을 고용해 농사지으라고 했다. 농민에게 직접 전매해도 되고 올해는 세금을 받지 않겠다고 약조하자, 한순간 경성 백성들이 앞다퉈 나서서는, 땅을 사려고 밤새 줄을 서는 사람도 있었다. 

밖에 아직도 길게 줄을 서고 기다리는 걸 본 유소호는 관리들과 상의해서 사람들을 돌려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소식을 전하자, 탄식하는 소리가 들리고 난동을 부리는 사람도 있어서 한순간 혼란스러워졌다. 

유소호는 백성들을 위로하려고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 관병들이 사람들과 밀치락거리면서 몇몇 사람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울리자 유소호는 고개를 저었다. 발치의 진흙밭에 여인 하나가 넘어져 있길래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어 일으켰다. 비쩍 마른 여인은 안 그래도 낡은 옷에 진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비에 옷과 머리카락이 젖은 것이 여간 낭패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 

“대인, 대인, 제발요. 땅을 조금만 주세요. 조금이라도 좋아요.”

여인은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눈앞의 사내가 관복을 입은 걸 보고 지푸라기 잡듯이 관복을 덥석 잡고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애원했다. 

유소호는 차마 그대로 볼 수가 없어 여인을 억지로 일으켰다. 

“대낭자, 본관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여인이 당황한 듯 고개를 들었다. 비에 젖은 얼굴을 문지르니 추워서 하얗게 질린 얼굴이 드러났다. 두 사람이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두 사람 모두 멈칫했다. 유소호는 눈을 힘껏 깜빡이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오, 옥루 누이?” 

여인은 놀라다가 기쁜 표정을 짓더니 금세 얼굴이 창백해져서는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는 돌아서서 미친 듯이 뛰어갔다. 

<고대 지주> 4권에 계속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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