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화 (19/57)

三. 진상을 숨긴 유소호, 강남으로 가다

다루 사환의 말에 임새옥은 어떻게 된 일인지 깨달았다. 

유소호 이 녀석, 아예 경성에 가지 않은 건 아냐?

놀라서 눈을 휘둥그렇게 뜬 영아의 모습에 임새옥은 노부인이 몸이 안 좋으니 알리면 안 된다고 얼른 당부했다. 나이는 같지만 집에 돈도 많고 땅도 있는데 전혀 교만하지 않은 이 부인을 매우 존경하는 영아는 당연히 말을 잘 들었다. 임새옥은 자기는 성에 물건 사러 간다고 영아에게 집으로 돌아가서 전하라고 한 후에, 소작인을 불러서 수레를 얻어타고 사환을 따라 성으로 들어갔다. 

성으로 들어간 그녀는 곧바로 남향 거리의 다루로 향했다. 그 거리에 다루가 여러 곳 있는데, 맨 안쪽에 작은 가게가 유소호가 있다는 곳이었다. 올라가기도 전에 위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었더니 유소호였다. 

“소관인께서 언제 돌아오셨습니까?”

소작인이 눈을 비비며 물었다. 임새옥은 대충 대답하고는 사환과 함께 저기 가서 차를 마시라고 보냈다. 서둘러 2층으로 올라갔더니, 유소호가 의자에 앉아 빙긋 웃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떨어진 거야, 아니면 아예 고사장에 들어가지 않은 거야?”

임새옥은 의자를 당겨 맞은 편에 앉으며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 유소호가 다시 웃었다. 

“들어갔지, 들어갔어. 떨어져서 그렇지, 들어가긴 했어.” 

임새옥이 웃으며 눈을 흘겼다. 

“거짓 서신을 보낼 정도는 머리가 돌아가는구나.” 

“솔직히 말하면 어머니께서 혼절할까 봐 그런 거지.”

유소호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차를 따라 임새옥에게 건넸다. 집안일을 묻자 임새옥은 일일이 대답해주었다. 벼가 어찌 자라는지, 채소 수확은 어찌 되어가는지 들은 유소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경성에서 돌아오는 길에도 우리 집 명성을 들었어. 우리 채소가 다른 채소와 달리 특별히 맛있다고 다들 칭찬하던걸.” 

그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임새옥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낭자, 수고했어요.” 

임새옥이 얼굴을 붉히며 웃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제 어쩔 셈이야? 설마 계속 속일 거야?” 

진작 대책을 생각해 둔 유소호가 바로 대답했다. 

“주시도 통과하지 못하고 돌아올 수는 없어서, 시간이 좀 흐르면 병이 났다고 연통을 보내려고. 그럼 네가 데리러 와줘. 어머니도 운이 안 좋아 때를 놓쳤다고 생각하겠지. 3년 후에 다시 시험 본다는 희망이라도 있으면 화병에 걸리시진 않겠지.”

임새옥은 방법을 생각할 줄은 알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웃었다. 

“그럼 계속 성에 있으려고?”

유소호는 손바닥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안 그래도 생각이 있는데, 낭자와 상의하려고.” 

임새옥은 낭자라는 말만 들으면 얼굴이 붉어져서 고개를 숙였다. 유소호의 말이 이어졌다. 

“앞으로 농사짓고 살아야 하잖아. 이 기회에 사방을 둘러볼 생각이야. 심을 만한 좋은 종자가 있는지도 보고. 낭자, 떨어져 있어도 되겠어?”

정신이 번쩍 든 임새옥은 마지막 말에 다시 얼굴이 확 빨개져서 혀를 차며 나직이 대답했다. 

“떨어져 있어도 되지, 안 될 게 뭐야!”

유소호도 빙긋 웃으면서 저도 왜 갑자기 그런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말해 놓고 보니 그 역시 부끄러웠다. 얼굴이 발그레해져서 고개를 푹 숙인 임새옥의 눈매가 웃는 듯 마는 듯 수줍어 보이자, 그만 가슴이 설레고 말았다. 임새옥과 알고 지낸 이래, 그녀가 겁날 정도로 못생기지 않은 것만 알았지, 평소에 그녀가 어떻게 꾸미고 다니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 오늘 이런 표정은 처음 보는 거라 한순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임새옥은 한동안 그가 아무런 말도 없자 의아해서 고개를 들었다가, 유소호가 넋을 잃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 당황하고 말았다. 

이번 생의 내 얼굴은 이렇게 넋을 잃고 볼 만하게 생겼나? 

임새옥은 거울을 볼 일이 손에 꼽을 정도라서 자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 생각에 얼떨떨해져서 저도 모르게 얼굴을 쓰다듬었다. 차가운 손가락에 정신을 차리고 유소호의 이마를 톡 튕기며 화제를 바꿨다. 

“안 그래도 묻고 싶은 게 있었어.”

유소호도 정신을 차리고 단정히 앉아서 경청했다. 임새옥은 이 아이가 도열병을 아는지 시험해 볼 생각으로 얼마 전에 논에 생긴 증상을 이야기했다. 유소호가 눈살을 찌푸렸다. 

“초기라 다행이네. 병든 모종을 뽑아낸 거, 잘한 거야. 초기에 제때 발견하면 지장 없는 병이라고 예전에 아버지가 말씀하셨었어. 제때 발견하지 못하면 걱정이지. 큰 해가 되니까.” 

임새옥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여전히 눈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긴 유소호를 보며 입을 열었다. 

“어쨌든 병든 모종을 뽑아내느라 손해는 보았어. 예방할 방법이 있을까?” 

유소호는 책을 발견한 책벌레처럼 순간 눈빛을 빛내며 방 안을 서성이며 중얼거렸다. 

“없는 건 아니지. 다만 해본 적이 없어서.”

임새옥은 예상 밖이라고 생각했다. 

논농사에 노련한 나이 든 농민도 모를 방법을 북부에서 나고 자라 밖으로 나가 본 적 없는 소년이 안다고? 

“내 생각엔 그런 증상이 또 발생할 거야. 방법을 이야기해주면 돌아가서 해볼게.”

유소호는 탁자 앞에 서서 한참 생각하다가 천천히 말을 꺼냈다. 

“일단 해보는 것도 좋지. 낭자, 돌아가서 초목회(草木灰: 풀과 나무를 태운 재)를 준비해서 유황 가루와 섞어서 벼에 뿌려 봐. 될지도 몰라.”

임새옥은 이미 기쁨을 억누르지 못해 입을 떡 벌리고 벌떡 일어나 유소호의 등을 철썩 때렸다. 

“가르칠 만한 아이구나!” 

“뭐라고?” 

유소호가 켁켁 기침하며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이자 임새옥은 머쓱해져서 얼른 얼버무렸다. 

이런저런 논의를 마친 후, 시간을 본 유소호는 유씨가 걱정한다며 그녀를 서둘러 돌려보냈다. 

“오월 지역은 바다와 가까우니 분명 신기한 작물이 있을 거야. 이번에 가면 유심히 살펴봐. 바다 너머에서 온 먹을 수 있는 물건이 있을지도 몰라.”

임새옥은 송나라 때 해운이 발달했음이 떠올랐다. 수많은 농작물이 바로 송, 원 두 시대에 해외에서 들어왔다. 더 일찍 들어왔는데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일찍 발견해서 널리 퍼트릴 수 있다면 큰 공덕을 쌓는 것이리라. 특히 배를 채울 수 있고 생산량도 많은 감자, 고구마, 옥수수 같은 농작물은 더더욱. 

그 생각에 임새옥은 온몸이 뜨거워졌다. 

유소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도 그럴 생각이었어. 바다 너머에는 우리나라와 다른 작물이 있다고 아버지도 말씀하셨어. 들여와서 널리 보급되면, 백성을 윤택하게 할 수 있어. 그때도 배 타고 바다에 나가고 싶었는데, 부모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어.”

그는 갈수록 흥미가 생겨서 당장에라도 출발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는 임새옥의 관심 어린 눈빛에 마음이 포근해져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

“낭자, 네가 어머니를 돌봐주지 않았으면 이런 기회가 오지 않았을 거야.” 

임새옥은 또다시 얼굴이 붉어졌다. 손을 빼고 싶었지만 어쩐지 아쉬웠다. 말끝마다 낭자, 하고 부르는 소리에 문득 이 사람이 자신의 남편이고, 이곳에서 평생 함께 보내야 할 사람임을 다시 한 번 깨닫고 고개를 들어 준수한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선택한 사람이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 맞지?

그녀 역시 그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이랑, 걱정하지 마. 집엔 내가 있으니까, 넌 조심하면서 서둘러 다녀와. 다만 어머니 걱정 끼치지 않으려고 괜히 밖에서 고생은 하지 마. 혹시 어머니가 알게 되면 그것도 슬퍼하실 거야.” 

유소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저하다가 그녀를 품에 안았다. 두 사람은 말없이 잠시 서로에게 기대고 있다가, 해가 서쪽으로 기울자 더 이상 머물지 못하고 임새옥을 아래층으로 배웅했다. 

“낭자, 중요한 걸 잊을 뻔했네.” 

유소호가 다시 부르자 임새옥이 돌아서서 걸음을 멈춘 채 바라봤다. 

“낭자, 돈을 좀 보내줘. 돈이 없으면 한 발짝도 못 떼잖아.” 

임새옥은 웃음을 터트리고는 고개를 끄덕여 주고 돌아섰다. 돌아가는 길에 유소호가 경성에 오래 살아야 해서 돈을 가지러 온 거라고 소작인에게 말했다. 걱정할 테니 유씨에게는 말하지 말라는 말에 소작농은 의미심장한 얼굴로 웃으며 알겠다고 했다. 그의 웃는 얼굴에 임새옥은 괜히 얼굴이 빨개졌다. 

다음 날, 다시 그 소작인에게 부탁해 유소호에게 돈을 전하고 소문내지 말아 달라고 다시 한 번 당부했다. 

유소호는 떠난 지 한 달 만에 서신을 보내왔다. 유씨에게 쓴 서신엔 평안하다는 인사뿐이고, 몰래 임새옥에게 보낸 서신엔 강남 견문이 쓰여 있었다. 유소호는 글을 잘 못 짓는데 여행 산문은 제법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임새옥은 숨어서 읽으며 몰래 웃었다. 

서신을 읽은 유씨는 임새옥을 불러 아들에게 돈을 보낼 것을 상의했다. 장부를 가지고 와서 들여다본 두 사람은 넋이 나갔다. 유씨가 장부 관리를 하긴 해도, 임새옥이 밭에 쓸 씨앗을 빈번히 사들여서 세세히 관리하지는 않았다. 임새옥은 쓸 것만 있으면 되어서, 돈이 얼마나 남았는지 전혀 따지지 않았다. 유소호가 강남에 갈 때 은자 몇십 냥을 주었고, 나머지는 모두 새집에 들였다. 침소 세 채에 들어간 침상 세 개만 해도 스물 몇 냥이 들었다. 

지금 고부 두 사람 앞에 텅텅 빈 곳간이 드러났다. 

“어머님, 배추랑 무, 한 번 더 팔 것 있어요.”

임새옥이 억지로 웃어 보였다. 

유씨도 부끄러워졌다. 반평생 부잣집에서 살림을 했는데 이렇게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걸 몰랐을 줄이야. 

“내 탓이다. 식구가 고작 셋이라 신경 쓰지 않았다. 앞으로 신경 써서 보살펴야겠다. 앞으로 네가 써야 할 돈이 문제구나.” 

임새옥은 헤헤 웃으며 어머니가 알아서 하시라고 말하고는 평소에 다른 사람들 먹는 만큼 먹고 옷도 마을 사람처럼 입었으며, 집 짓느라 형편이 쪼들리는 것일 뿐이지 집만 다 지으면 큰 지출은 없다고 유씨를 위로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한 달이 흐르고 날씨가 서늘해졌다. 유씨는 영아와 함께 밤낮없이 겹옷을 만들었다. 새집도 다 지어져서 유씨 고부는 음양력을 보고 길일을 택해 대들보를 올렸다. 소작농들도 모두 축하한다고 달려와 도와주었다. 

현성에서는 취풍루를 필두로 많은 주루에서 붉은 천을 걸고 축하해주고 선물을 보냈다. 현령까지 사람을 보내 과일을 보냈다. 유씨는 기쁜 나머지 눈물을 흘리며 임새옥의 손을 잡으며 모두 아들이 거인이 된 덕분이라고 말했다. 다들 채소를 노리고 온 것을 잘 아는 임새옥은 고개를 돌리고 슬쩍 웃었다. 현령도 자신이 벼 생산량을 늘리겠다고 약속한 일을 기억하기 때문일 테고.

형편이 넉넉하지 않지만, 유씨는 장인들에게 상금을 주고 새집 대청에서 연회를 열어 사람들을 대접했다. 사람들은 오후가 되어서야 돌아갔다. 

종일 애를 쓴 유씨는 버티지 못하고 날이 저물기 전에 자러 갔다. 임새옥은 영아, 그리고 소작인의 아내와 함께 구석구석 쓸고 닦느라 해가 완전히 저문 후에야 제 처소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방 세 칸을 튼 큰 방이었다. 유씨의 말에 따르면, 유소호가 높은 벼슬에 올라서 돌아오면 그들 부부가 쓸 곳이라고 했다. 

임새옥은 방 안에 들어가 문을 닫고 폴짝 뛰었다. 전생과 현세를 다 합쳐서 몇십 년 만에 드디어 그럴싸한 제 방을 갖게 되었다!

꽤 큰 소청(小廳)에는 화려한 의자와 탁자가 수는 많지 않지만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벽에는 산수화가 걸려 있고, 탁자엔 큰 향로가 놓여 있었다. 임새옥이 혀를 내두르며 둘러보니, 왼쪽 서재엔 서가 하나와 서안 하나가 있고, 바닥엔 커다란 꽃병이 두 개 놓여 있었다.

오른쪽엔 내실인데, 유씨가 은자 열 냥을 주고 사온 금박 무늬가 있는 침상이 가장 먼저 보였다. 그런데 돈을 다 써서 이불과 요는 쓰던 것이었다. 

하지만 임새옥은 충분했다. 기뻐서 미칠 것 같았다. 그녀는 단숨에 폴짝 침상 위로 올라가 마구 뒹굴었다. 

이게 몇 년 만인가. 

드디어 내가 직접 장만한 새집에서 살게 되었구나! 

낮고 음침한 흙집에 더는 살지 않아도 되는구나! 

노아촌 소가에서 노비 생활할 때 부인인 이씨의 내실만큼 정교하고 아름답지 않아도 임새옥에겐 충분했다. 

오늘 막 말린 포근한 이불을 끌어안고 저도 모르게 훌쩍훌쩍 울었다. 제대로 울지도 않았는데 영아가 문밖에서 다급하게 문을 두드렸다. 

“부인, 부인, 큰일 났어요. 큰일 났어요. 어서 일어나세요.” 

임새옥은 얼굴을 닦을 겨를도 없이 성큼성큼 다가가 문을 열었다. 영아도 머리가 헝클어진 걸 보니 자다가 일어난 모양이었다. 

“왜 그래, 노부인이…….”

영아는 재빨리 고개를 저으며 숨을 고르고 말했다. 

“사람들이 찾아왔는데, 노부인껜 알리지 못했어요. 우리, 우리 집 천막이…… 무너졌대요.”

해가 완전히 저문 때여서, 등불을 든 영아는 얼굴이 더 창백해 보였다. 이곳에 온 이래 고부 두 사람이 아끼고 살면서 신기한 농사법으로 농사지어 먹고 사는 걸 봐온 영아는 사람들이 당황하며 들고 온 소식에 같이 당황했다. 큰 천막을 지은 재료는 외상으로 사 온 것이고, 채소를 심어 판 다음에 갚아야 하는데 농사를 짓지 못하면 땅을 팔아 갚을 수밖에 없었다. 

“무너진 곳이 몇 군데라던?” 

임새옥은 서둘러 옷을 입고 허둥지둥 영아를 따라 나갔다. 머리를 빗을 틈도 없어서 걸어가며 대충 머리를 말아 올렸다. 

“저도 몰라요. 아저씨들이 밖에서 기다려요. 노부인을 깨울까 봐 안에 들이지 못했어요.” 

영아도 서둘러 걸음을 옮기며 등불을 들고 길을 밝혀주었다. 임새옥이 너무 빨리 걸어서 영아는 종종걸음으로 뛰어야 따라잡을 수 있었다. 심하게 흔들리는 등불에, 새로 지은 마당에 진 그림자도 허둥거렸다.

문을 열고 나갔더니, 함께 모여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농부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몇 군데예요? 심해요? 어서 가 봐요.” 

임새옥은 자세히 들을 겨를도 없이 바로 걸음을 뗐고, 영아가 그녀를 붙잡았다. 

“부인, 밤이라 바람 불어요. 옷 가지고 올게요.”

“가지 마. 노부인 깨실라. 문 잘 닫고.” 

임새옥은 그녀를 말리고 농부들을 뒤따라갔다. 

가을밤 싸늘한 바람 아래, 사람들은 임새옥이 길을 잘 볼 수 있게 풍등을 높이 들었다. 줄지어 세운 다섯 천막 모두 피해를 봤고, 가장 심한 천막은 반쪽이 다 무너져 긴 진흙 벽만 남았다. 

임새옥은 늦은 밤에 부는 바람처럼 마음이 서늘해졌다. 한겨울도 아니고, 바람과 폭설에 무너진 게 아니라 누가 봐도 사람이 한 짓이었다. 

“제대로 지켜야 한다고 했잖아요.”

임새옥은 화를 참지 못하고 돌아서서 물었다. 

“오늘은 누가 볼 차례였죠?”

십방촌의 명성이 높아진 후로 온갖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늘었다. 임새옥이 안정된 수익을 위해 이 기술을 널리 보급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농사라는 게 간단하고 기술이 필요 없는 일 같아도, 유소호가 말한 것처럼 제대로 농사짓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임새옥의 가르침 없이 흉내만 내서 채소를 심고 천막을 지었던 이웃 마을 사람들은 모두 실패했다. 이곳과 가까운 조 지보가 심은 채소들도 시들시들 엉망이었다. 

이 세상 사람들은 태생적으로 성품이 악랄한 건지, 내가 안 되면 다른 사람도 잘되는 꼴을 못 보는 게 인간이었다. 모종이 엉망이 된 일이 빈번해진 후로, 임새옥은 경각심이 생겨 농작물을 대규모로 도둑맞고 망가지는 일을 방지하려고 번갈아 가며 지키도록 당직을 세웠다. 그런데도 결국 막지 못한 것이다.

조홍이라는 농부가 덜덜 떨며 앞으로 나오더니, 임새옥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털썩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조아렸다. 

“소인을 죽여 주십쇼. 소인이 술이 고파서 너무 많이 마시고 잠들었습니다. 소인을 죽여 주십쇼.”

임새옥이 욕을 할 필요도 없이, 조홍 본인이 죽을 듯이 후회했다. 한 번 소홀한 결과, 지주인 유가에 손실을 입혔을 뿐만 아니라 채소 농사를 짓는 다른 농부들의 활로까지 끊어 놓았음을 알고 있었다. 유가에서 벌하지 않아도 다른 마을 사람들이 죽어라 욕할 것이다. 

조홍은 바닥에 쿵쿵 머리를 찧으며 죽는 게 낫다고 고통스러워하며 울었다. 말리는 사람 하나 없고 다들 눈이 벌게져서 노려보기만 했다. 

좋은 나날이 펼쳐지려나 했는데, 다 망쳤구나! 

장정들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훔쳤다. 

임새옥은 숨이 턱 막혀서 욕도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숨을 후우 내뱉고는 자세히 보려고 풍등을 지나쳐 밭으로 다가갔다. 혹시나 난리 통에 넘어져서 다칠까 장정 몇이 서둘러 뒤를 바짝 쫓았다. 

한 바퀴 둘러본 임새옥은 마음이 서늘해졌다. 한 사람 짓이 아니었다. 아마도 장정 네댓이 구역을 나눠 함께 일을 꾸민 것이리라.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부귀를 탐한 탓에 이런 재난을 겪는 걸까? 아무런 욕심 없이 기술을 평등하게 다른 사람들과 나눠야 했을까? 

그녀는 일개 나약한 여인이고, 그저 잘 살고 싶었을 뿐이다. 남의 것을 훔치지도, 빼앗지도 않았다. 그저 하늘의 은혜를 먼저 알고 그걸 기회 삼아 적은 돈을 버는 것도 안 된단 말인가. 

“가세요, 가서 모든 소작농을 조사하세요. 이 세상에 벌어진 모든 일은 반드시 단서를 남기는 법이에요.”

임새옥은 눈물을 닦고 돌아서서 조홍을 가리켰다. 

“천막은 내가 다시 세울게요. 하지만 이번 손실은 당신이 책임을 다하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니, 올해 모든 수익을 내놓아야 해요. 형편이 안 좋은 건 알지만, 우리 모두가 당신 한 사람 때문에 수입이 반으로 줄게 됐어요. 못하겠다면 내 땅을 돌려받아야겠어요.” 

조홍은 곧바로 머리를 조아리며 감당할 수 있다고, 감당할 수 있다고 거듭 외치며 땅을 회수하지 말라고 했다. 

임새옥은 일어나라고 하고는 집으로 돌아가지도 않고 천막 곁 작은 움집에 앉아서 모든 소작농을 깨워 밤새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일을 저지른 사람을 못 찾으면 모두 소작료를 올리겠다는 말에 십방촌에 순식간에 징, 북소리가 울리고, 닭과 개가 어지럽게 울고 짖으면서, 횃불이 반쪽 하늘을 밝혔다. 

임새옥은 움집에 앉아 있었다. 

근처 마을에 어떤 사람이 살고, 누구와 갈등이 있는지 등은 마을에서 비밀도 아니었다. 하지만 스스로 삶을 지키는 마을 사람들은 사람 눈 밖에 날 일을 나서서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자신의 이익을 위협하는 일이 생기면, 오래 가지 않아 사실이 밝혀진다. 

역시나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서, 농부들이 사내 몇 명을 끌고 들어왔다. 

“이자들입니다. 다 장촌(張村) 놈들입니다. 며칠 전부터 어슬렁거리길래 내쫓았지요. 욕을 퍼붓고 가더라니까요.” 

조사정이 큰 소리로 고함치자 조홍과 노씨가 달려들어 때리고 걷어찼다. 

“악랄한 소리로 모함하지 마! 무슨 증거가 있어서 우리를 모함하는 거냐? 그냥 보기만 했다고, 그게 죄야? 죄냐고? 야밤에 남의 집에 쳐들어와서 끌고 오다니, 이런 법이 있나?” 

바닥에 무릎을 꿇린 사내도 지지 않고 일제히 일어나서 사람들을 밀치며 고함쳤다. 

마침 소식을 듣고 달려온 조 지보를 본 사내가 분노하며 외쳤다. 

“조 대야, 이 마을 사람들이 조 대야를 믿고 이러는 거 아닙니까! 관아에 고발하겠습니다.”

조 지보는 얼굴을 흐리며 속으로 못난 놈이라고 욕했다. 이 정도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이렇게 빨리 잡히다니.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임새옥을 바라봤다. 

“유가 대낭자, 이 야밤에 무슨 일이냐. 함부로 사람을 잡아 오면 어째.” 

줄곧 싸늘한 얼굴로 아무런 말을 하지 않던 임새옥이 차갑게 웃었다. 

“아는 사람도 아니고 원한도 없는데, 내가 왜 모함하겠어요. 우리 농부의 채소 천막이 무너졌어요. 온 마을 사람들이 가서 알아보고 잡아 온 건데요. 저 혼자 눈이 멀었다면 모를까, 온 마을 사람들 눈이 다 멀었을까요?” 

조 지보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대답했다. 

“네 집의 소작농이니 네 말을 들을 수밖에…….”

임새옥은 벌떡 일어서서 조 지보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핏대를 세웠다.

“때려요!”

그 말에 조 지보는 화들짝 놀라서 무심결에 머리를 감쌌다. 주변 이웃들도 넋이 나가서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임새옥을 바라봤다. 

“조씨!” 

조 지보는 아무도 움직이지 않자 겁을 먹었던 자기 모습이 부끄러워져서 허리를 세우고 임새옥을 노려봤다. 그런데 임새옥은 싱긋 웃으며 손을 털고 자리에 앉았다. 

“보셨죠? 제 말을 듣는 사람이 있나요?” 

사람들은 그제야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우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조 지보가 화가 나서 발을 구르며 떨리는 손으로 손가락질했지만, 임새옥은 상대도 하지 않고 굳은 얼굴로 바닥에 무릎 꿇린 사내들을 바라봤다. 

“여기가 우리 유가 땅이지만, 농작물은 유가가 돈 벌려고 심은 게 아니에요. 다들 모르겠지만, 현령 대인이 원래 이곳에 연근을 심어 우리 성안현의 명성을 얻자고 하셨어요. 

다만 이곳 성안현은 연근 심기에 적당한 곳이 아니에요. 이 천막은 우리 관인이 조상의 경험을 토대로, 그리고 서책에서 얻은 지식으로 상상해 낸 것이어서 성공 여부는 아직 몰라요. 

그래서 우리 땅에 먼저 심어 보고, 성공하면 내년에 현령께서 각 마을에 널리 퍼트려 성안현을 이롭게 하려 하신 거죠. 

그런데 우리 집 천막을 부수려는 사람이 나타나서 백성을 사랑하는 현령 대인의 마음을 망가트렸네요. 

이제 우리 유가가 현령께 반드시 대답을 드려야 하니, 온 마을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도록 반드시 진짜 흉수를 잡아야만 해요. 모함인지 아닌지는 내일 현 관아에 가서 보면 알겠죠. 

혹시 억울하게 누명을 씌운 거라면, 당신들도 현령께 충심을 다한 거라고 생각하시고, 혹시 누명이 아니라면…….”

거기까지 이야기하고 모두를 훑어봤더니, 사내들은 놀라서 안색이 변했고, 그중 둘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조 지보도 두려움에 안색이 서서히 하얗게 질렸다. 

정말로 현령 나리가 유가에 지시한 일이라고? 그래서 아무런 관계도 없고 권세도 없는 유가를 이토록 끼고 돈 건가?

어쩐지, 나한테만 매일 호통치시더라니! 

조 지보는 그런 생각에 저도 모르게 땀을 훔쳤다. 

이자들을 시킬 때 직접 나서지 않아서 다행이구나. 나중에 뒷배가 누군지 불어도 나까지 오진 않겠지. 

그렇긴 해도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그랬구먼. 그럼 반드시 진범을 잡아야지.” 

그러고는 사람들을 향해 호통쳤다. 

“한 짓이 맞으면 어서 인정들 하게! 마을 이웃 사람이니 체면은 세워주겠네.” 

조 지보의 말이 없어도 인정했을 사내들은 허둥지둥 고개를 조아렸다. 따지고 보면 그들도 가난한 농민이고, 같은 농민을 괴롭힐 수는 있어도 관아와 얽히는 건 절대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순간 눈물을 흘리며 울고 부는 소리가 커졌다. 

유가의 채소밭이 부러웠니, 불만이 쌓여 이런 어리석은 일을 벌였니, 하는 말에 몰려 있던 마을 사람들이 욕을 퍼부어댔다. 

임새옥은 한숨을 내쉬었다. 배후의 사람을 알아낼 수 없음을 알지만, 수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앞으로 당분간은 조용해질 것이다. 현령 대인의 기세를 업고 호가호위하고, 관아의 명성으로 자신의 권익을 지켜야 할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 

임새옥은 가서 보상할 돈을 가져오라고 손을 휘저었다. 마을 사람인 걸 보아 관아에 고발하지 않겠다는 말에 사내들은 천만번 감사해했지만, 속으로는 재수 옴 붙었다고 생각했다. 받은 돈을 탈탈 털어야 할 뿐만 아니라 모자라는 건 자기네 돈으로 채워야 하니, 이번 거래는 손해였다. 

조 지보는 임새옥이 체면을 세워준 것에 감사하며 짐짓 마음 쓰는 척 천막의 손실에 관해 물었다. 

물론 임새옥은 이 사건이 분명 조 지보와 관련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다만 교활한 노인네가 일 처리가 깔끔해서 흔적을 남기지 않았을 뿐.

임새옥은 상대할 기분이 아니라서 뜨뜻미지근하게 대답하고는 돌려보냈다. 

이번 일로 유가의 천막을 철저히 없앨 목적이었던 조 지보의 바람은 이루지 못했지만, 유가의 손실도 컸다. 조 지보는 제법 흡족해서 껄껄 웃으며 돌아갔고, 임새옥은 화가 나서 이를 악물었다. 달려가 깨물어 버리고 싶었다. 

농부들이 장촌 나쁜 놈들 집에서 돌아왔을 땐 하늘이 서서히 밝아 왔다. 임새옥은 거둬 온 돈을 세며 한숨을 내쉬었다. 천막을 고치기엔 크게 모자란 돈이었다. 그녀는 마찬가지로 걱정 가득한 촌부들을 위로할 기분이 아니라서 돈을 들고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벌써 대문 앞에서 한참을 기다리던 영아는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밤을 꼬박 새우고 바람도 맞은 임새옥은 머리가 너무 아팠다. 밤에 기척을 듣고 깬 유씨도 영아를 불러다 자초지종을 듣고는 밤새 잠을 못 이루다가, 임새옥이 초췌한 행색으로 돌아온 걸 보고 마음 아파했다.

“얘야, 이제 농사는 짓지 말자꾸나. 소작농에게 내어주고, 소작료로 먹고살면 되지. 이랑이 곧 벼슬에 오를 텐데 뭐 하러 땅에 기대느냐.” 

임새옥이 한숨을 내쉬며 겨우 웃어 보였다. 

“큰일 아니니 걱정하지 마세요. 도둑들이 채소를 훔치면서 천막 좀 부순 것뿐이에요.” 

유씨는 그제야 안심하고 뜨거운 탕을 준비하라고 영아에게 분부했다.

“배상은 받았지? 내 말 대로 해라. 천막 수리할 것 없다. 이랑이 돈 쓸 곳이 많을 테니, 남겼다 그 애나 주어라.” 

탕을 마시던 임새옥은 그 말에 탕이 목에 걸려 콜록콜록 기침해댔다. 

돈을 남겨두라는 유씨의 말에 임새옥은 눈살을 찌푸렸다. 머리가 더 심하게 아파 왔다. 

“어머니, 지금 집에 돈이 없어요.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잖아요. 며칠 내에 천막을 반드시 고쳐야 해요. 아니면 땅을 팔아서 빚을 갚아야 해요.” 

아들에게 줄 돈을 남길 생각이 없는 듯한 며느리의 말에 유씨의 안색이 안 좋아졌다. 

“땅이 얼마나 된다고. 팔아도 된다. 이랑이 급제해서 관직에 오르면 우리도 따라 부임해야 할 것이야. 땅을 남겨둬서 무얼 해.” 

임새옥은 한숨이 나왔다. 그녀는 이랑이 시험에 떨어졌다는 말을 꾹 눌러 삼키고는 웃는 얼굴을 보였다. 

“관직에 오른다고 해도 얼마 안 되는 봉록으로 어찌 살겠어요. 땅을 남겨두면 아무래도 넉넉하죠. 어머니, 조정의 대상공 중에 땅 몇십 묘 없는 사람도 있나요.” 

유씨는 언짢아도 임새옥의 말이 현실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한참을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네가 번 돈이니 네가 쓰고 싶은 대로 쓰려무나.”

유씨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가버리는 걸 보면 화가 난 듯했다. 임새옥도 얼떨떨해졌지만 기운이 없어서 쫓아가 설명할 생각도 없었다. 돌아가서 쉬려고 몸을 일으키는데, 일어서자마자 탁자 앞으로 꼬꾸라졌다. 영아가 고함치는 소리에 뒤를 돌아본 유씨도 안색이 변했다. 

영아와 함께 그녀를 침상에 부축하고 어서 의원을 부르라고 고함치는데 임 새옥이 눈을 떴다. 의원이란 말에 물처럼 흘러나가는 돈을 떠올린 임새옥은 죽어도 가지 못하게 했다. 바람을 맞은 것일 뿐이라, 뜨거운 탕만 마시면 된다는 그녀의 말이 돈 걱정 때문임을 유씨와 영아가 왜 모를까. 두 사람은 엉엉 울기 시작했다. 

정신력이 강해서인지, 이틀 누워있던 임새옥은 생강탕을 한 솥 들이키고는 정말로 바로 나았다. 그녀는 그날 바로 침상에서 내려와 소작농을 불렀다.

어린 나이에 미간을 찌푸리고 애쓰는 모습에 영아는 마음이 아팠다. 며칠 동안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천막을 수리하는 데 모자란 은자 열몇 냥을 고민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부인, 부인 모친이 얼마 전에 채소를 팔았잖아요. 소작료도 안 받으셨는데, 조금 빌리는 게 어때요.”

거울을 보며 머리를 빗던 임새옥이 쓴웃음을 지었다. 

“내 어머니를 내가 모르겠니. 어머니에게 돈을 얻는 건 하늘에 오르기보다 어려워.” 

영아가 입술을 툭 내밀었다. 

“노 대낭도 참 쩨쩨하세요.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모르는 척 어제는 돈 달라고 찾아왔잖아요. 집 지을 때 돌봐준 수고비 달라고 말이에요.” 

“또 오셨어?” 

임새옥이 누워있는 동안, 유씨는 그녀가 신경 쓸까 봐 외출도 못 하게 하고 소작농도 못 만나게 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영아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검은색 겉옷을 걸쳐 주었다. 

“노부인은 그냥 듣기만 하고 아무런 말도 안 하셨어요. 차만 내어주시고는 눈을 감고 불경만 외우셨죠. 결국 제가 설득해서 보냈어요. 부인이 아픈 걸 알면서도 들여다보지도 않고 돈 얘기만 하시더라고요.” 

임새옥이 한숨을 내쉬며 웃어 보였다. 

“날 만나러 오면 내가 돈을 빌릴까 봐 무서워서 그러시는 거야.” 

그녀는 말없이 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속으로 유소호 생각을 했다. 혼자 있으니 아무래도 힘들었다. 영아와 함께 후원에서 나온 그녀는 그길로 전청으로 향했다. 

유씨가 신발 천을 만들 시간이었다. 임새옥은 탕 한 그릇을 먹고 유씨 시중 잘 들라고 영아에게 당부하고는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때 소작농 하나가 그녀를 찾아왔다. 성안현의 소가 점포에서 관사가 왔다는 말에 임새옥은 서둘러 그를 맞이했다. 

관사는 성안현 사람으로 성은 교(喬)씨에 이름은 흥아, 올해 서른다섯이었다. 원래 장방(賬房: 장부를 관리하는 곳, 장부 관리인)이었는데 우직하고 성실한 데다가 셈을 잘하는 것을 보고 이 관사가 장궤로 모셨다. 임새옥하고는 채소 몇 번 거래한 적이 있었다. 

“대낭자, 몸은 좋아졌습니까?” 

교흥아가 들어오자마자 물었다. 천막이 망가진 일로 유가 낭자가 화가 나서 쓰러진 일이 온 현성에 파다했다. 현령이 사람을 불러 조 지보에게 호통까지 치면서, 임새옥이 그날 한 말이 검증되었다. 임새옥은 매우 감동했지만, 주 대인이 그들 같은 평범한 백성도 따스하게 보살피는 것은 유가와 이해관계가 있어서가 아니라, 지혜를 잘 이용해서 좋은 생활을 추구하는 백성의 적극적인 태도를 칭찬해주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마음 써줘서 고맙습니다. 좋아졌어요.”

임새옥이 예를 갖춘 후 그를 안으로 모셨다. 영아는 차를 올린 후 물러갔다. 

“천막을 고치는 데 쓰십시오.”

교흥아도 긴말 없이 바로 웃는 얼굴로 은자를 꺼냈다. 당황한 임새옥이 벌떡 일어나 손을 내저었다. 

“어찌 그래요. 어떻게 이 돈을 받겠어요.”

교흥아는 하하 웃으며 서신을 꺼내서 건넸다. 

“제 돈이 아닙니다. 유 소관인이 번 겁니다. 오늘 막 당도했어요. 돈이 급하다는 걸 알기에 얼른 가지고 왔습니다.” 

유소호가 번 거라고? 

임새옥은 의문이 가득해졌다. 유소호는 강소성에 도착한 후에 서신을 보냈는데, 도열병에 관해 묻는 내용이 있었다. 이쪽 논에 도열병이 생긴 이상 그쪽 지방에도 생겼구나 싶어서, 네가 말한 대로 했더니 도열병이 다 나았다고 쓰고, 생각을 좀 하다가, 연구를 해봤는데 석회 가루를 넣으면 효과가 더 좋더라 등등 구체적인 방법도 적고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써서 서신을 보냈다. 그 뒤로는 다시 연락이 없었다. 

안 그래도 은자를 거의 다 써갈 텐데 소식이 없길래 어떻게 생활하는지 걱정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집에 돈을 보내다니. 일이라도 한 것인가? 할 만한 일이 뭐가 있어서? 

“남쪽에서 온 사람들이 하는 말이, 유 소관인이 오월 지역의 살아 있는 보살이 되었답니다.” 

교흥아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임새옥은 다른 사람이 자리에 있는 걸 신경 쓰지 않고 서신을 뜯어서 읽었다. 보자마자 기쁨이 몰려왔다.

유소호가 복건성에 들어가자마자 대규모 도열병을 만난 모양이었다. 우선 병든 모종부터 뽑아냈는데 농민들이 눈물 콧물 흘리며 괴로워하는 모습에 화근을 뿌리 뽑아야겠다는 생각에 농약을 제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효과가 어떤지 모르는 상태에서 임새옥에게 서신을 썼고, 자기가 쓴 방법을 검증했다는 임새옥의 답장에 자신감이 생겨 약을 썼단다. 뜻밖에도 성과가 현저했고, 소식이 퍼지자 복건, 절강 등지의 사람들도 일제히 몰려와 그를 모셔갔다나.

오월 지역은 올해 봄여름 가뭄에 안 그래도 생산량이 줄었는데, 도열병까지 생겨서 내년의 기근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역사에 기록된 북송 오월 기근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런데 유소호의 출현, 임새옥의 출현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이 변화로 인한 기근의 위해가 큰 폭으로 줄어든 것이다. 유소호의 놀라운 기술에 농민들은 그를 신처럼 떠받들었고, 일제히 그를 자기네 지역으로 와달라고 요청했다. 유소호는 각지 벼농사에 닥친 재난을 해결하느라 서신을 보내지 못한 것이었다. 

“도열병을 고쳐주고 돈을 번다고요?” 

임새옥은 눈앞에 몇십 냥 은자를 바라보며 멍하니 물었다. 교흥아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유 소관인은 전혀 돈을 받지 않았어요. 그냥 밥이나 달라고 했답니다. 정말 보살 마음 아닙니까. 이 돈은 우리 소가에서 드리는 겁니다. 유 소관인이 우리 위기를 없애주셨으니, 우리도 대낭자의 급한 불을 꺼드려야 한다고, 소 관인이 말씀하셨습니다. 고작 은자로 성의를 표시할 순 없지만, 소 관인께서 장사로 바쁘셔서 직접 오지 못하시니 특별히 저를 보내 감사 인사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교흥아가 일어서서 예를 갖추자 임새옥도 서둘러 가당치 않다고 답례했다. 소 관인의 도움은 이미 많이 받았고, 구제 방법만 안다면 누구나 수수방관하지 않을 일이었다고 말했다. 식량에 관한 일은 다른 일과 다르지 않은가. 천만 백성의 생사, 생존이 달린 일 아닌가. 

교흥아를 배웅한 임새옥은 기쁜 마음을 달랠 틈도 없이 돈을 들고 소작농을 찾아갔다. 재료를 다시 사 오라고 시키고 돈을 더 주고 천막 수리를 시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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