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9/57)

四. 첩이 되길 거부하다

화항에 앉은 이씨는 얼굴을 안으로 돌린 채 품에 전가아를 안고 툭툭 두드리고 있었다. 이용은 곁에 가까이 앉아 웃고 있었다. 소금남은 막 돌아왔는지 장포를 걸친 채 눈살을 찌푸리고 이용의 말을 듣다가 임새옥이 들어가는 걸 보고 안색이 차가워졌다. 

“내 하나 물으마. 원래는 물을 것도 없다만, 처음에 네 아비와 한 약속이 있어서.”

소금남은 탁자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느릿느릿 말했다. 이씨를 힐끔 봤는데 이씨는 여전히 얼굴을 안으로 향한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용이 빙글빙글 웃으며 고개를 돌리고 그녀를 바라봤다. 

“용가아가 널 달라더구나. 너도 원하느냐?”

임새옥은 들어가서 무릎을 꿇지도 않고 그대로 목을 빳빳하게 세운 채 이용을 힐끔 봤다. 이용은 그녀의 시선에 이유도 없이 가슴이 철렁해서 저도 모르게 미소를 거뒀다. 

“소인, 싫습니다.” 

이용이 어허, 하고 빙긋이 웃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내가 네게 어울리지 않는단 말이냐?”

그때 이씨도 고개를 돌렸다. 울었는지 눈시울이 붉고 부어 있었다. 임새옥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이 조금은 냉담했다.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소인 감당 못 합니다.” 

임새옥은 이용을 향해 손을 겹치고 허리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소인은 장녀입니다. 동생은 어리고 부모는 몸이 약해서 제가 집을 돌봐야 합니다. 이야와 함께 갈 수 없어요.” 

“아, 그거? 네 식구 몇 거두지 못할 처지도 아니고, 다 함께 가자꾸나.” 

이용이 자세를 가다듬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임새옥이 다시 허리를 숙였다. 

“이야, 그렇게까지 봐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다만 소인은 첩이 될 생각이 없습니다.” 

그 말이 나오자마자 방 안에 있는 세 사람 모두 그녀를 바라봤다. 임새옥은 어차피 이곳에 더 머물 생각이 없는지라 허리를 곧게 폈다. 말할 때도 감히 고개를 빳빳이 들었고, 말투에는 더욱 자신감이 넘쳤다. 이씨조차 얼떨떨해졌다. 지금 눈앞의 화아는 제가 아는 화아가 아닌 것만 같았다. 

이용이 소금남을 흘깃 보고는 턱을 쓰다듬었다. 

“겁먹을 것 없다. 첩이 된다고 해도 네가 서러울 일은 없어.” 

그러면서 이씨를 슬쩍 밀면서 웃으며 말을 이었다. 

“먹고 입고 쓰는 것 모두, 너희 부인처럼 좋은 것으로 해주마.” 

이씨가 이용을 노려보며 나지막이 호통쳤다. 

“또 허튼소리! 네 처가 아무리 사람이 좋아도 아랫것들을 풀어줘선 안 되지. 그래서야 존비 구별이 있겠어?”

그러고는 임새옥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말은 이렇게 했지만, 네가 지킬 것만 지키면 거기 가서 잘 살 수 있을 거다.”

임새옥이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 

“소인은 어릴 때부터 가난에 익숙합니다.” 

그러고는 냉담한 얼굴로 세 사람을 바라봤다. 

“저는 배운 것도 많지 않고, 그저 앞으로 제 어미, 아비처럼 평생 한 사람만 바라보며 농사짓고 살고 싶습니다. 좋은 날 같은 건, 소인에게 그런 복이 없습니다. 요 며칠만 해도 부인께 얼마나 큰 폐를 끼쳤나요. 그런데 어찌 감히 다른 생각을 하겠어요.” 

열몇 살짜리 아이가 할 만한 속 깊지 못한 말은 맞는데, 이상하게 듣자 하니 어린애가 하는 말이 아니고 다른 뜻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세 사람 모두 한순간 눈을 크게 뜨고 임새옥을 바라봤다. 이용은 어쩐지 이 아이의 말에 뼈가 있다고 생각했다. 소금남과 이씨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평생 한 사람을 바라본다.’는 말을 곱씹었다. 분명 투박한 말인데 어째서 그렇게 기분 좋게 와닿을까. 

이용은 임새옥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에 가려진 얼굴을 바라보며 슬쩍 미소 짓다가 저도 모르게 툭 내뱉었다. 

“그건 안 되지. 네가 내 연근을 버리지 않았느냐. 갚지 못하면 네가 갚아야지.” 

이씨와 소금남이 동시에 이용을 노려봤다. 이씨가 뭐라고 하려는데 임새옥이 두 손을 마주 잡고 깍듯하게 이용을 향해 웃어 보였다. 

“이야, 소인 기억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곳은 궁핍하고 외진 곳이라, 연뿌리를 사고 싶어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야께서 소인께 연뿌리를 주신다면 내년 5월까지 두 배로 돌려드린다고 약속드립니다.”

이씨는 이 아이가 너무 맞아서 어떻게 된 게 아닌가 의심할 정도였다. 그녀가 급하게 호통쳤다. 

“알지도 못하면서 허튼소리 하지 말아라. 연근을 키울 연못이 있다고 해도 8월, 9월에나 익을 텐데, 5월에 수확하는 연근이 어디 있단 말이냐.” 

“부인, 걱정하지 마세요. 소인 다른 재주는 없어도 농사짓는 재주는 있습니다. 다만 연근은 너무 진귀한 것이라, 제가 망칠까 이야께서 걱정하실까 그게 문제입니다.” 

이용은 그녀의 살짝 치켜뜬 눈, 붉게 부은 얼굴에 돌연 희한한 광채가 도는 걸 보고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화항에서 내려왔다. 

“좋다. 연뿌리 아니냐. 돌아가면 보내주마. 혹시 성공하지 못하면…….”

그는 말을 멈추고 임새옥 곁으로 다가가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리며 바라보다가 싱긋 웃었다. 

“널 잘 꾸며서 노비로 팔아도 손해는 안 볼 것이다.” 

이씨는 이제 화를 낼 기운도 없었다. 

어째서 이야기 내용이 처음에 그녀가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르게 흘러가는 걸까.

“흠, 둘 다 허튼소리 그만해라. 이 일은 여기까지 하고 끝내자. 앞으로 다신 입에 올리지 마라. 용가아, 너는 자형과 함께 옆방으로 가서 식사해라. 이 난리에 골이 다 지끈거린다. 당신도 나가세요, 전 화아와 할 이야기가 있어요.” 

이용은 곧바로 빙글빙글 웃으며 나갔고, 소금남은 주저하며 뭐라고 말하려다가 이용에게 끌려나갔다. 곧이어 옆방이 떠들썩해지더니 말소리는 들리지 않고 잔과 접시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이씨는 깊게 잠든 전가아를 화항에 내려놓고 한참 넋을 놓고 있었다. 임새옥은 흔들리는 등불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 만에 이씨가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 내가 잘못 알고 너를 탓하였구나. 아팠지?”

이씨는 임새옥을 잡아당겨 등불 아래서 유심히 살폈다. 뺨 양쪽이 다 붓고, 긁힌 흔적까지 있는 걸 보고 더 후회스러운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내가 이렇게 심하게 때렸구나. 아직 어린데, 얼굴을 망치면 어쩌지?”

임새옥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농사꾼은 그런 거 안 따져요. 얼굴로 먹고사는 것도 아니고, 문제는 힘이에요.”

임새옥이 가볍게 웃으며 말하자, 이씨가 다시 한숨을 내쉬며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봤다. 

“줄곧 묻고 싶은 게 있었다. 우리 집 관인 곁에 있지 않으련? 네가 철든 아이라는 걸 오늘 깨달았다. 앞으로는 절대로 널 서럽게 하지 않으마. 넌 사 온 아이니까 양녀로 삼았다가 통방이 되면 어떻겠니? 양인(良人) 출신이니, 몇 년 있다가 아이를 낳으면 이낭으로 올려주마. 그러면 체면도 서고, 어떠하냐?” 

임새옥은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녀는 머리를 긁적이며 의아한 척하면서 이씨를 바라봤다. 

“부인, 부인처럼 귀하신 분은 정말 저희랑 다르네요. 집에 있을 때, 제 어미는 아비가 다른 여인만 힐끔 바라봐도 욕을 해댔는걸요.” 

그리고는 어수룩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세상 여인은 다 그런 줄 알았어요. 자기 사내가 다른 여인을 품는 걸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틀렸나요?” 

이씨는 멈칫하고는 이내 실소를 흘렸다. 그리고 얼굴을 흐리며 임새옥을 바라봤다. 열몇 살짜리 어수룩한 아이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어서 얼떨떨하게 한참 얼굴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니, 틀리지 않았다. 내가 틀렸구나.” 

이씨가 임새옥의 손을 토닥이며 한참 더 그녀를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알았다. 넌 정말 나와 조금 닮았구나. 안타깝게도 나는 부귀한 집에 태어나서…….”

거기까지 말하고는 말을 멈추고 임새옥의 손을 놓아주었다. 

“나중에 네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면 꼭 희주(喜酒: 혼례 때 마시는 술)를 대접하는 것 잊지 말아다오.”

임새옥은 이제 확실히 이야기를 끝냈음을 알고는 헤헤 웃었다. 

“그건 제 영광이죠!” 

그렇게 웃다가 상처가 벌어져서 쓰읍, 소리를 내자 이씨가 마음이 아파서 한숨을 쉬었다. 

“며칠이나 되었다고, 다 낫기도 전에 새 상처가 생겼구나.” 

그녀가 또 멍하니 임새옥을 바라봤다. 

“너도 참. 생각이 없다고 하기엔 말하는 걸 보면 그것도 아니고. 일이 생기면 어째서 머리를 좀 쓰지 않는 게냐. 왜 자꾸 트집을 잡혀. 우리 집에 들어오지 않아서 다행이지, 혹시 들어왔다가는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말씀드렸잖아요. 소인은 그런 좋은 날을 보낼 팔자가 아니라고요.” 

임새옥이 대충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하는 말에 이씨는 웃기만 하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밖에서 청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부인, 노야께서 따뜻한 탕을 드리라고 하셔서 왔어요.”

이씨는 자세를 바로 하고 손에 힘을 주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들어오라고 말했다. 

청아가 탁반을 받쳐 들고 고개를 숙인 채 들어왔다. 작은 어깨가 달달 떨리고 있었다. 

“청아.” 

이씨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자마자, 청아가 탁반을 내려놓고 털썩 무릎을 꿇고 울며 고개를 조아렸다. 

“부인, 벌을 내려 주세요. 다 저 때문에 화아가 이런 일을 겪었습니다.”

이씨가 미소를 드러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왜 네 탓이니. 얼른 일어나렴. 용가아가 내 방에서 쉬고 있었는데, 내가 중간에 사람을 시켜 그리로 보내는 바람에 공교롭게 일어난 일이다.” 

청아가 몇 번이나 더 고개를 조아리다가 울며 일어났다.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인. 아니었으면 죽음으로 갚아야 했을 거예요.” 

이씨는 아무런 말 없이 청아가 건넨 탕을 천천히 마셨다. 임새옥은 물러가겠다고 인사하고 나왔다. 따듯한 방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밖으로 나와 찬 바람을 맞자마자 온몸 구석구석이 쑤셨다. 특히 얼굴은 칼에 베인 듯이 아파서 눈물이 저절로 흘렀다. 몇 걸음 떼는데 뒤에서 후다닥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청아가 뒤쫓아 왔다. 

“화아!” 

임새옥을 따라잡은 청아는 입을 열자마자 임새옥의 손을 붙잡고 그저 울기만 했다. 힘껏 뿌리쳐도 뿌리쳐지지 않자, 임새옥은 어쩔 수 없이 붙잡힌 채 싸늘하게 말했다. 

“언니, 좀 진정해. 방에 가서 계속 울어. 얼굴 아파 죽겠으니까.” 

청아는 그제야 허둥지둥 그녀를 부축하고 거처로 돌아갔다. 임새옥은 뿌리치려고 해도 뿌리칠 수가 없는 데다가 몸이 아파서 그냥 부축받으며 돌아갔다. 

청아는 거처에 돌아오자마자 급하게 약을 꺼내서 그녀에게 발라주었다. 임새옥이 냉랭한 얼굴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멎었던 눈물을 또다시 흘리기 시작했다. 

“나 안 믿는 거 알아. 하지만 이야가 거기로 가신지 정말로 몰랐어! 아무리 해명해도 해명할 수 없네.” 

임새옥도 마음이 흔들렸다. 정말로 공교롭게 일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청아가 무슨 엄두로 그런 거짓말을 했을까. 자신이 청아가 시켜서 간 것이라고 이야기하면 어떻게 해명하려고. 사람을 해치려 해도 이렇게 허술하게 하진 않겠지. 

“정말로 몰랐어?” 

임새옥이 조금 누그러진 얼굴로 천천히 묻자, 청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닦았다. 

“내가 나왔을 때만 해도 이야는 부인 거처에서 말씀 나누는 중이었어. 목마르다고, 식사 전에 탕을 드시고 싶댔어. 부엌에 명을 전하라고, 부인께서 날 보내셨는데 연저아가 쫓아 나왔어. 다 만들면 곁방에 가져다 두라고, 자기가 직접 가지러 간다고 했어. 이야가 거기에서 주무시는 걸 알았다면 죽어도 널 안 보냈지.”

임새옥이 콧방귀 뀌며 되물었다. 

“안 보내기는. 부인이 날 미워하게 하기 딱 좋잖아?”

청아가 코를 훌쩍이고는 또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내가 미쳤어? 바로 확인하면 내가 보낸 거라고 나올 텐데. 그렇게 되면 내게 좋을 건 뭐라고?”

그건 그래. 

임새옥이 속으로 생각했다. 남을 해치려고 자기에게도 해될 일을 할 이유는 없었다. 청아가 하얗게 질려서는 우는 걸 보고는 그녀의 손을 토닥이며 위로했다. 청아는 다시 임새옥의 상처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렇게 심하게 때렸다고 부인을 원망하지는 마. 부인도 한이 맺혀서 그래. 그날 양 이낭이 바로 그런 식으로 노야 앞에 나타나서…….”

그러다가 다급하게 입을 다무느라 혀를 깨물 뻔했다. 임새옥이 입술을 실룩이는데 청아의 말이 이어졌다. 

“널 좋게 봐서 더 심하게 때리신 거야. 널 좋아하시니까 그렇게 화가 나신 거고. 널 통방으로 거두라고 노야께 말씀드렸는데, 하필 이야가 오신 거래. 게다가 이야가 너를 특별히 주시하셨잖아. 그래서 마음이 급해지신 거지. 네가 다른 사람처럼 식견 없이 굴까 봐. 그런데 하필 그런 공교로운 일이…….” 

청아는 임새옥의 머리를 빗겨 주며 이야기하다가 머리카락이 몇 움큼씩 뽑힌 걸 보고는 혀를 찼다.

“연저아, 이렇게 심하게 하다니. 그러니까 이야 사람들이 다 싫어하지. 정말 속 시커먼 여인네야!” 

임새옥이 마음이 철렁해서 물었다. 

“부인이 언제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노야에게 날 거두라고 말씀드렸다고?”

그리고는 청아를 향해 눈을 부릅떴다. 

“이렇게 큰일을 감추고 말 안 했어?” 

청아가 어설프게 고개를 돌렸다. 

“며칠 전 일이야. 나도 우연히 들었고. 확실한지 아닌지 나도 모르겠는데 어떻게 너한테 말하니?” 

임새옥이 유심히 그녀를 바라봤다. 

이제야 알겠네. 내가 정말로 열몇 살짜리 아이도 아니고. 음모, 모해, 암투가 넘치는 소설과 드라마에 물들며 자란 사람이라고. 그런 방법을 쓸 줄은 몰라도 분별은 할 줄 알아. 학교에서만 20여 년 보냈으니 세상 물정 모를 거라 생각하면 안 되지. 학교도 그다지 평화로운 환경은 아니니까.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있는 곳은 시시비비가 있는 법이잖아. 

“언니가 나한테 말했으면 부인께 가서 거절하고 끝날 일이야. 언니가 걱정할 게 뭐가 있어?”

임새옥이 느릿느릿 말했다. 

청아는 임새옥이 한참 동안 아무런 말 없이 웃는 듯 마는 듯 자기를 바라보는 걸 보고 순간 불안했다. 아무리 봐도 평소처럼 어리숙한 모습이 아니라서 어쩐지 가슴이 쿵쿵 뛰는데, 임새옥이 그렇게 물으니 당장 얼굴을 흐리며 욱한 것처럼 소리쳤다. 

“부인께서 내게 일부러 하신 말씀도 아니고, 부인 마음은 원래 왔다 갔다 한단 말이야. 그런 일이 없는데, 내가 너한테 말하면 뭐가 돼?” 

임새옥은 더 물어도 답을 얻지 못한다는 걸 알기에 시선을 돌리고 천천히 머리를 빗었다. 

“장자(莊子)2)가 양나라에 가다가 듣고 놀란 일에 관한 이야기가 있어. 좋은 이야기니까, 언니, 한가할 때 그 이야기 한 번 읽어 봐.” 

청아는 휙 돌아서서 상대하지 않고 잠자코 말했다. 

“글도 모르는데 무슨 이야기를 읽어! 난 일하러 갈 거야. 저녁은 내가 가져다줄게. 다쳤으니까 움직이지 마.” 

그리고는 벌떡 일어서서 문을 쾅 닫고 가버렸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임새옥은 느린 걸음으로 부엌으로 향했다. 손 어멈이 허둥지둥 그녀를 앉히고 상처를 살펴보면서 나직이 염불을 외웠다. 

“부인께서 때린 게 아니에요. 그 연저아가 때린 거예요.”

임새옥은 이 여인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이씨의 모습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이씨가 대단히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악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서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내가 크게 손해 본 것도 없어요. 그 여인도 며칠 동안 방에서 나오지도 못할 거예요.” 

손 어멈이 하이고, 하면서 마당 안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이제 곧 떠난다던데. 부인 일가도 새해 전에 돌아간대.” 

그러면서 임새옥을 보며 주저주저 물었다. 

“화저아, 큰 경사가 있다며? 가족한텐 이야기했니?” 

임새옥은 속으로 어제 일이 다 퍼졌나보다 하면서 일부러 모르는 척하고 물었다. 

“아주머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렇게 다쳤는데, 경사라니요?” 

그녀는 손 어멈이 뭐라고 할 새를 주지 않고 이마를 툭툭 치며 말했다. 

“부인도 정말로 가신대요? 그럼 데리러 오라고 어서 아버지에게 알려야겠어요.”

그러자 손 어멈이 웃으며 말했다. 

“청아한테 들으니 이번 달엔 월전을 더 준다더구나. 부인이 정말 마음씨가 고와. 우리도 새해를 잘 보내라고 그러시는 거 아니겠니.” 

이야기 나누다가 밥때가 되어 두 사람은 대화를 멈추고 서둘러 일어났다. 사람들이 정말로 돌아간다는 소식이 오후에 전해졌다. 이용의 희첩들은 하인 여남은 명과 함께 먼저 떠났다. 이씨는 몸이 안 좋아서 소금남이 의원을 불러 약을 지었다. 이용도 누이가 걱정이라 남아서 그들과 함께 가기로 했다. 

그 일이 일어난 후로 청아와 임새옥은 별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는데, 며칠 후엔 떠난다는 생각에 청아가 다시 웃는 얼굴로 말을 걸었다. 아무래도 몇 달 동안 함께 먹고 자고 보낸 정이 있으니 말이다. 

임새옥도 그런 청아를 보며, 평생 다시 보지 못할 건데 서로 딴 생각 가지고 빙빙 돌 것 없다 싶었다. 그렇게 사는 건 너무 피곤했다. 그래서 그 일을 잊어버리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이씨가 점심을 먹고 전가아를 달래서 재운 후 임새옥을 불러서 장신구 함을 열어 보였다. 

“뭐가 좋은지 보고 두 가지 고르렴. 네 혼수 챙겨주는 셈 치자.” 

임새옥이 얼굴을 붉히며 가당치 않다고 손을 내저었지만, 청아가 곁에서 그녀를 살짝 밀었다. 

“주신다니 어서 받아. 이거 가지고 가면 시가에서도 잘해줄 거야.” 

임새옥은 온몸의 상처를 떠올리고는 보상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더는 사양하지 않고 다가가 슬쩍 봤더니 진주에 비취에 눈이 부실 정도였다. 

“다 예뻐요.” 

임새옥이 헤헤 웃으며 하는 말에 청아가 소리 내어 웃었다. 

“이 바보. 다 달라는 말이니?” 

임새옥이 다시 살펴보고는 그중에 하나를 가리키며 이걸로 하겠다고 했다. 이씨가 그녀가 가리키는 걸 바라보니, 모양이 단순한 낡은 꽃무늬 은팔찌여서 순간 저도 모르게 어리둥절해졌다.

“이걸 고른 거니?” 

임새옥은 후다닥 손을 거뒀다. 그중에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걸 고른 건데, 혹시 이씨가 가장 좋아하는 것일까? 

이씨가 싱긋 웃으며 팔찌를 그녀에게 끼워주었다. 

“굳이 돈 안 되는 걸 골라서 그러지. 그래도 예쁘긴 하니 그냥 재미로 끼렴.” 

그러고는 잠시 멈췄다가 나긋나긋 덧붙였다. 

“팔지는 말고. 돈 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잠시 주인과 종으로 지냈던 시간을 기억하고 가지고 있으렴.” 

임새옥이 겸연쩍게 웃었다. 속셈을 바로 간파하다니, 역시 영리한 여인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숙여 손목에 찬 은팔찌를 내려다보았다. 꽃무늬가 낡았지만, 그래도 예뻤다. 

그렇게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이씨가 조금 지친 기색이자 청아가 냉큼 상자를 가지고 와서 환약을 꺼냈다. 

“부인, 약 드실 시간이에요.” 

이씨가 눈살을 찌푸리고 환약을 집으며 중얼거렸다. 

“이 환약으로 정말로 병을 고칠 수 있을까.” 

날이 추워질수록 이씨의 안색도 나빠졌다. 그녀가 매일 환약 아니면 탕약을 마시는 걸 본 임새옥은 대체 무슨 병이냐고 청아에게 살짝 물었었다. 청아가 말할까 말까 하다가 머뭇거리며 그저 기혈이 부족하다고 대답한 후로 임새옥도 더 묻지 않았다. 

이씨의 말에 청아는 금세 눈시울을 붉히며 반쯤 무릎을 꿇으며 다가갔다.

“부인, 이야가 가지고 온 처방으로 만든 거예요.” 

전가아가 까르르 웃는 소리가 밖에서 들렸다. 이용이 전가아를 안고 들어오자 이씨는 표정을 거뒀다. 이씨는 약을 먹고 전가아를 안아왔고, 이용은 화항에 앉아서 싱긋 웃으며 임새옥을 힐끔 바라봤다. 임새옥은 이용의 시선에 놀라서 허둥지둥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밖으로 나가서 몇 발짝 떼지 않았는데 이용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못 들은 척하고 가버리고 싶었지만, 결국 그럴 용기가 없어서 눈을 질끈 감고 멈춰 섰다. 

“소화, 내 물을 것이 하나 있다.” 

이용이 가까이 오라고 손짓하자 임새옥은 몹시 내키지 않아 하며 머뭇머뭇 돌아봤다. 이용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네가 말한 썩은 쥐라는 게 나냐, 아니면 내 자형이냐?” 

임새옥은 하마터면 펄쩍 뛸 뻔했다. 

이 녀석, 그날 청아와 나눈 이야기를 들은 거야? 한순간 입이 벌어지고 말문이 막히고 귀가 새빨개져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다행히 이씨가 안에서 이용을 불러 곤경에서 벗어났다. 그녀는 더는 있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내달려 중문 밖으로 나온 후에야 멈춰서 숨을 골랐다. 갑자기 대문 쪽이 소란스러워져서 목을 빼고 내다봤더니, 노씨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조삼랑과 들어왔다. 

몸이 이미 무거워진 노씨는 친척 집에 인사하러 갈 때나 입는 깔끔한 배자를 입고 얼굴 가득 미소를 지은 채 들어왔다. 임새옥은 노씨도 저렇게 웃을 줄 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다. 처음엔 사람을 잘못 본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들어가면 안 된다고 막아서던 복생이 임새옥이 고개를 내미는 걸 보고 급하게 그녀를 불렀다.

“아버지, 어머니, 어쩐 일로 온 거예요.”

임새옥이 허둥지둥 달려가 우선 노씨부터 부축했다. 발그레하니 안색이 좋고 얼굴에 살도 제법 붙은 걸 보고 살짝 마음이 놓였다. 

“그렇게 큰일을 집에 알리지도 않는구나!” 

노씨가 눈을 부릅뜨자, 임새옥은 맞을까 봐 무심결에 목을 움츠렸다. 설마 그동안 저지른 일을 다 들은 건가 싶었다. 하지만 노씨는 여전히 싱글벙글하더니 그녀의 옷을 잡아당겨 보고는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옷감이 괜찮구나.”

임새옥이 그들을 문간방으로 들여보내는 사이, 복생이 문 앞에 서서 싸늘한 눈으로 그들을 살폈다. 그 눈길에 노씨가 바로 눈을 흘겼다. 

“이 집 하인은 정말 법도를 모르는구나. 널 만나러 온 거라고 이야기했는데도 저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임새옥은 땀이 삐질 흘렀다. 곧바로 복생을 향해 미안하다는 듯 웃어 보이자 복생이 얼굴을 돌리고 나갔다. 

“어머니! 대체 무슨 말이에요!” 

노씨가 눈이 사라질 정도로 웃더니 허리를 문지르며 대답했다. 

“다 들었다. 해가 가기 전에 이낭이 된다며? 우리 걱정은 말고, 가라. 난 몸 풀고 난 다음에 바로 찾아가마.”

“집에 일이 얼마나 많은데 어찌 따라간다고.”

조삼랑이 쭈그리고 앉아 웅얼거리자, 노씨의 얼굴이 바로 흐려졌다. 

“일은 무슨 일이요? 화아를 따라가면 그 대단한 고야(姑爺: 처가에서 사위를 부르는 말) 댁에 당신이 할 일 하나 없을까 봐요?”

그제야 무슨 말인지 이해한 임새옥은 눈을 동그렇게 뜨고 밖을 살폈다. 복생이 사환 몇 명과 대문 앞에서 이야기 나누느라 이쪽 이야기는 듣지 못한 걸 보고 안도하며 돌아섰다.

“어머니, 그게 무슨 헛소리예요. 내가 누구랑 간단 말이에요! 고야가 어디 있어요! 안 그래도 대관인 일가가 돌아가야 하니 데리러 오라고 사람을 보내려던 참인데!” 

노씨가 그 말에 벌떡 일어서자 깜짝 놀란 임새옥이 후다닥 일어나 부축했다. 

“돌아가? 넌 종신 노비로 팔린 건데, 어디로 돌아가?”

노씨가 임새옥의 머리를 쿡쿡 찌르며 눈을 부릅떴다. 

“항상 이렇게 변변찮게 굴지. 교낭에게 이미 다 들었다. 이 댁 대관인, 소관인 모두 널 첩으로 들이려고 한다며? 솔직히 말하마. 이 어미가 오늘 너 대신 결정지으러 왔다. 왜 어미에게 숨기는 거냐? 동아줄 잡았다고 혼자 날아오를 생각이라면, 미리 말해두는데 그 생각 딱 접어라.” 

노씨가 고래고래 외치는 소리에 임새옥은 식겁해서 습관적으로 뒷걸음질쳤다. 그렇게 뒷걸음치다가 입구까지 가보니, 웃으며 이야기 나누던 복생 일행이 모두 조용해졌음을 깨달았다. 노씨가 하는 말을 다 들은 듯했다. 그녀는 맞는 것을 두려워할 겨를도 없이 달려가 노씨의 입을 막고는 발을 동동 굴렀다. 

“아이고, 어머니, 대체 그게 무슨 꿈 같은 소리예요. 그런 일이 있겠어요?” 

노씨는 임새옥이 감히 말을 자르자 더 화가 나서 그대로 등을 내리쳤다. 

“너랑 할 얘기가 아니다! 이 댁 대관인하고 바로 이야기하마!”

노씨는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이미 한 대 맞은 임새옥은 말리지도 못하고 발을 구르며 조삼랑을 불렀다. 하지만 어디 조삼랑이 언제 노씨의 손가락 하나 건드려 봤어야 말이지. 저쪽으로 걸어가는 노씨의 모습에 오히려 부랴부랴 다가가 그녀를 부축했다. 

밖에 있던 사환들은 노씨가 노발대발하며 걸어 나오자 우르르 흩어졌고 복생이 후다닥 가서 앞을 막았다. 대관인을 만나려고 해도 미리 아뢰어야 한다고 하자 노씨가 눈을 부릅뜨며 팔짱을 꼈다. 

“내가 시골 사람이라고 무시하지 말아요. 이런 대갓집 법도 정도는 나도 압니다. 여기서 기다릴 테니 어서 통보하고 와요.” 

다급해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임새옥은 용기를 내서 다가가 노씨의 옷을 잡아당겼다. 

“정말 그런 거 아니에요. 어수룩하고 아둔해서 항상 노야와 부인에게 골치만 안겨드렸다고요. 며칠 전엔 매도 맞았어요. 무슨 통방이에요.” 

노씨는 그제야 고개를 돌리고 딸아이를 자세히 살폈다. 얼굴이 아직 벌겋게 부은 걸 보면 속이는 건 아니지 싶었다. 노씨는 곧바로 눈을 치켜뜨며 임새옥의 머리통을 힘껏 쥐어박으며 이를 갈았다. 

“내가 모를 줄 알아? 정말이지 쓸모없는 것. 집에서 싸움하던 그 기세는 다 어쩌고?”

임새옥이 얼떨떨해져서 물었다. 

“뭘 안다는 거예요?” 

“흥, 관인께서 널 첩으로 들인다니까 여인들이 질투해서 널 때린 것 아니냐. 같은 이낭인데 뭐가 무서워서 그래?” 

임새옥은 식은땀이 주룩 흘렀다. 대체 이게 무슨 헛소리야! 노씨와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임새옥은 도와달라는 듯 복생을 바라봤다. 진작 사환을 안으로 보낸 복생은 무표정한 얼굴로 직접 문을 막고 있다가 임새옥의 시선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정말로 아뢰러 사환을 보낸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임새옥은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 그렇게 한숨을 내쉬자마자 중문에 인영이 아른거리더니 이용이 녹색 비단옷 차림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왔다. 임새옥은 얼굴이 순간 창백해졌다. 숨도 돌리기 전에 푸른색 직철(直綴: 소매가 넓고 허리에는 충분한 여분을 두고 큼직하게 주름을 잡은 옷)을 입은 소금남이 뒤따라 나왔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며 때마침 공교롭게 문을 지나 나왔다.

복생 역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인지, 임새옥을 향해 동정의 눈빛을 보내고는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 소리를 들은 노씨는 두 사람을 보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후다닥 달려가 손을 겹치고 허리를 숙였다. 

“대관인, 안녕하세요.” 

소금남과 이용은 그제야 그쪽을 바라봤다. 이용은 조화의 아비, 어미를 몰랐고, 소금남도 얼굴을 본 적이 없으니 배가 불룩 나온 여인을 둘 다 얼떨떨한 얼굴로 바라볼 뿐이었다. 

복생이 급하게 다가가 나지막이 화저아의 어미라고 말하자 소금남이 고개를 끄덕였다. 딸을 보러 온 것이구나, 하고 더는 상대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으나 노씨가 쉽게 보낼 리가 있나. 노씨가 후다닥 다가가 길을 막았다. 딸을 첩으로 들이려는 게 누구인지 알 수 없으니 눈을 크게 뜨고 소금남과 이용을 번갈아 살폈다. 처음으로 여인의 그런 눈길을 받은 소금남은 얼굴이 안 좋아졌고, 이용은 빙긋 웃다가 저쪽에서 다급해서 목까지 시뻘게진 임새옥을 보고는 무슨 일인지 알아차리고는 그저 웃기만 했다.

복생은 저 부인이 너무 법도를 모르고 버릇이 없어 서둘러 다가가 노씨를 막아섰다. 노씨도 그대로 당할 리 없어서, 흘깃 노려보고는 소금남과 이용 모두를 향해 되는 대로 예를 갖췄다. 

“대관인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딸아이의 운이 트였나 봅니다. 우린 시골 사람들이라 관인이 비웃으셔도 할 수 없지요. 종신 노비로 팔았으니, 이제 우리와 상관없는 일입니다만, 가난한 집에 동생이 있지 뭡니까. 올해 겨우 세 살인데, 혈연관계를 끊기 쉽지 않습니다. 딸아이가 이렇게 멀리멀리 가버리면 보고 싶어도 못 보겠지요. 염치없지만, 관인께서 우리 같은 가난한 친척을 인정해주십사 왔습니다. 많은 걸 바라지도 않습니다. 나중에 늙어서 하늘로 가는 날 관 하나 마련해주시고, 딸아이 동생을 발탁해 주시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노씨가 입을 떼자마자 식은땀을 흘리던 임새옥이 그만하라고 허둥지둥 노씨의 손을 잡아당겼다. 하지만 노씨는 대번 그녀를 뿌리치고는 말이 잘릴세라 빠르게 할 말을 마쳤다.

임새옥은 속으로 앓는 소리를 내며 사람들을 살폈다. 소금남의 안색은 이미 굳었고, 복생은 입을 떡 벌리고 있으며, 오로지 이용만 실실 웃고 있었다. 임새옥이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대관인, 노여워하지 마세요. 대체 제 어미가 어디서 무슨 말을 듣고 이러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곧바로 데리고 가서 제대로 이야기할게요.” 

노씨는 딸아이의 모습에 화가 치밀었지만, 주인 앞에서 때릴 수는 없어서 휙 돌아서서 조삼랑을 걷어차며 낮게 고함쳤다. 

“왜 한마디도 안 하고 쭈그리고 있어요? 콱 그냥!” 

조삼랑은 소금남과 이용의 차림새만 보고도 고개도 못 들고 있는데 한마디 할 용기가 어디 있을까. 아내에게 걷어차인 조삼랑은 놀라서 뒤로 피했다. 노씨는 더는 상대하지 않고 분위기를 살폈다. 소금남의 안색이 좋지 않고 말도 하지 않는 걸 보고 속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이번엔 이용을 바라봤다. 빙그레 웃음 짓는 눈빛, 온화한 표정에 노씨도 미소 지으며 말했다. 

“소문이 벌써 다 퍼진걸요. 대관인, 우리 시골 사람을 가지고 논 건 아니시겠지요?” 

이용이 빙긋이 웃으며 손을 저었다. 

“아니네, 아니야. 그럴 리가. 화저아가 돈 주고 사 온 시녀라고 해도 가지고 놀면 안 되지. 그런 법도는 없네.”

노씨가 기뻐하며 다시 뚫어져라 두 사람을 살폈다. 

“소관인께서 참으로 잘생기셨네요. 우리 딸아이가 관인을 따를 수 있다면 그야말로 큰 복이겠습니다.” 

임새옥이 바닥에서 펄쩍 튀어 올라 노씨를 붙잡고 어머니, 하고 소리치자, 이용이 껄껄 웃었다. 

“저아는 내 집에 사람이 많아 괜한 화를 살까 두렵다고 함께 가기 싫다던데?” 

노씨는 이자가 바로 교낭이 말한 소관인이라는 걸 짐작하고 기뻐하며 대답했다. 

“소관인, 그 말씀은 틀렸습니다. 배가 많아도 가는 데 지장 없다고 하지 않습니다. 각자 제 갈 길 가면 되지요. 이런 부귀한 댁에 첩 네다섯 없는 집도 있습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화아가 어수룩하긴 해도 수작을 부리는 성품은 아닙니다. 관인께 첩이 많아도 부인이 다 알아서 살필 테니 분명 아무 일 없을 겁니다.”

그러고는 잠시 주저하다가 다시 덧붙였다. 

“먼저 괴롭히지 않는 한 절대로 남을 괴롭힐 아이가 아닙니다.” 

그 말에 이용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고, 임새옥은 더는 들을 수가 없어서 소금남과 이용 앞인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노씨를 끌어당겼다.

“아니라니까요, 좀 들어요, 어머니. 대관인과 부인 모두 저를 돌려보내려고 하셔요. 짐도 다 싸놨어요. 그런데 와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서 웃음거리가 되고 그래요.” 

노씨는 임새옥이 또 그런 말을 하자 의문스러운 듯 그녀를 바라봤다. 

“정말로 첩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고?”

노씨는 딸을 팔고 나서 형편이 곧바로 좋아졌다. 친정에 보태긴 했어도 수중에 돈이 좀 모였는데, 금단이 병이 나고 그녀도 넘어지는 바람에 하마터면 아이를 잃을 뻔해서 이래저래 돈을 다 써 버렸다. 

마음이 몹시 불편하던 차에, 딸을 너무 싸게 팔았다고 했던 교낭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조삼랑과 몇 번 말다툼한 끝에 소가에 가서 돈을 얻어오라고 억지로 그를 보냈다. 그런데 웬걸, 조삼랑이 돌아와서 딸이 월전을 받는다고 하는 게 아닌가. 그 후로 집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다달이 돈이 들어와서 참으로 편안한 나날을 보냈더랬다. 

그런데 어느 날 교낭이 방실방실 웃으며 그녀 집 앞을 지나다가 축하한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노씨는 평소에 교낭의 품행이 눈에 거슬렸지만, 교낭 덕에 형편이 풀린 것도 있고 해서 겉으로는 웃으면서 대했다. 입으로는 ‘딸을 팔 형편까지 이르렀는데 축하받을 일이 뭐가 있냐.’며, 겸손하게 말하기도 했다. 

교낭이 허벅지를 내리치며 다가오더니, 큰 경사인데 모르냐고. 대관인, 소관인 모두 화저아를 첩으로 들이려고 다투다가 싸움까지 일어났다고 하자, 노씨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딸이 어떤 아이인지 잘 아는 노씨는 속이는 거 아니냐고 물었고 교낭이 하늘을 가리키며 맹세했다. 

‘올케, 얼른 가보는 게 좋겠어요. 그래야 화저아도 용기가 생기지요. 소관인의 여인들이 시샘하느라 저아를 때리기까지 했다니까요? 저아가 아직 어리잖아요. 이렇게 좋은 혼사가 잘못되면 안 되지 않겠어요?’ 

노씨는 그제야 믿으면서 어째야 좋을지 몰라 허둥대다가 그 무거운 몸을 끌고 조삼랑을 시켜 빌린 수레를 타고 달려온 것이다. 

그런데 딸의 꼴을 보니 정말로 그런 일은 없는 듯한데?

이미 질려버린 소금남은 헛기침하고 걸음을 뗐고, 히죽히죽 웃던 이용 역시 아무런 말 없이 그 뒤를 따라가자, 노씨 부부는 얼떨떨해하며 제자리에 서 있었다. 임새옥은 서둘러 일어나서 조금 쉬다 가라고 두 사람을 제 거처로 안내했다. 그렇게 걸어가다가 투덜대며 조삼랑을 바라봤다. 

“아버지, 어머니 말만 들으면 어째요. 눈 오는 이런 추운 날에 나왔다가 넘어지면 어쩌려고요.” 

“내가 말릴 수 있어야지.” 

조삼랑은 그렇게 웅얼거렸고, 노씨는 혀를 차며 임새옥의 등을 그대로 내리쳤다. 

“저주를 해라!” 

오늘 일을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당황스러웠고, 이제 딸이 집으로 돌아온다는 생각에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랐다. 그녀는 다시 임새옥의 등을 때리며 욕을 했다.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도 없이! 주인한테 쫓겨나서 가족들 살길을 끊어놔?” 

임새옥은 때리는 대로 몇 대 맞다가 부엌 뒤쪽 작은 마당으로 쪼르르 달려갔는데, 그만 손 어멈과 부딪히고 말았다. 임새옥이 웃으며 미안하다고 했지만, 마침 노씨가 하는 말을 이미 들은 손 어멈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이의 머리카락이 흐트러진 걸 보니 얻어맞은 듯해서 더 마음이 언짢아졌다.

“네 어미라는 사람은 착한 아이를 애꿎게 탓하다니 너무 하는 거 아니냐! 가족 걱정을 하는 게 아니라면 네가 진작에 노야의 첩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이리 사람을 때리면 쓰나!”

손 어멈이 갑자기 이런 말을 할 줄 몰랐던 임새옥은 두피가 저릿해져서 허둥지둥 다가가 손 어멈의 입을 막았다. 하지만 늦었다. 멀쩡히 잘 서 있던 노씨는 그 말을 듣고 비틀거리며 조삼랑의 몸에 기댄 채 눈을 까뒤집고 기절했다.

별안간 노씨의 육중한 몸에 눌린 조삼랑은 당황해서 소리를 질렀다. 임새옥은 어느새 달려가 노씨의 인중을 힘껏 눌렀다. 손 어멈도 당황해하며 두 사람과 힘을 모아 노씨를 부축해서 앉히자, 노씨가 숨을 내쉬면서 깨어났다. 

“어머니! 깜짝 놀랐잖아요!” 

임새옥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지만, 노씨는 그녀를 보자 마자 손 어멈의 말이 떠올라서 소리 지르며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망할 것, 죽일 것, 재수 없는 것, 언젠간 내가 속 터져 죽어야 기뻐할 년!’ 하고 외치면서. 

안 그래도 다쳤는데 노씨가 모질게 때리자 임새옥은 못 견디고 힘껏 버둥대다가 머리카락이 한 움큼 뽑히기까지 했다. 자기 말에 노씨가 이렇게까지 크게 화를 낼 줄 몰랐던 손 어멈은 화도 나고 당황해서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며 연신 외쳐댔다. 

임새옥은 눈물을 참으며 몸을 피했다. 노씨가 조삼랑을 붙들고 일어나서 욕을 하며 뒤쫓아와 더 때리려고 하다가, 순간 기우뚱하더니 배를 움켜쥐고서는 안색이 변해서는 돼지 멱 따듯이 울부짖었다. 임새옥이 황급하게 달려와 무슨 일이냐고 묻는데 손 어멈이 꽥 고함쳤다. 

“큰일 났다! 피! 피!” 

조삼랑은 이내 넋이 나갔다. 노씨가 배를 움켜쥐고 바닥으로 주저앉자, 손 어멈이 필사적으로 붙들고 발을 굴렀다. 

“어서 나가요! 여기서 낳으면 안 돼!”

놀란 임새옥은 정신을 차리고 옷을 벗어 노씨의 하반신을 감싸고 핏자국을 가렸다. 그리고 수레를 끌고 오라고 조삼랑을 재촉했다. 다른 이가 알게 될까 봐 두려운데, 다행히 소금남과 이용이 나가면서 사람들을 거의 데리고 가서 문간에는 복생 혼자 있었다. 임새옥은 노씨가 고래고래 고함치는 걸 들으며 손 어멈과 함께 그녀를 수레에 태웠다. 

현대든 고대든, 아이를 낳는 건 금기가 많은 일이었다. 차라리 밭 같은 곳에서 낳으면 낳았지, 남의 집에서 아이를 낳을 수는 없었다. 임새옥은 이씨에게 알릴 겨를도 없이 손 어멈에게 말해달라고 부탁하고는 허둥지둥 조삼랑을 따라 성으로 향했다. 

그리 멀리 가지 않았을 때, 복생이 말을 타고 쫓아와서 전대를 건넸다. 

“화저아, 부인께서 주시는 거다. 부인의 병을 고치러 왔던 그 의원의 처가 산파란다. 날 따라와라.” 

임새옥이 감격해서 고맙다고 하는 걸 본 노씨는 더욱더 세게 그녀를 꼬집으며 ‘천한 것이라 팔자도 천하다.’며 헐떡대며 욕했다. 

“어머니, 괜찮아요?” 

임새옥은 이를 악물며 몸을 피하고는 노씨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봤다. 이 추운 날에 땀을 뻘뻘 흘리며 하반신에선 피를 계속 흘리는 모습에 걱정이 되어 어쩔 줄 몰랐다. 

“아직 안 죽으니 좋아하지 마라!” 

노씨가 헐떡이며 다시 욕설을 퍼부었다.

어느새 복생을 따라 성문을 돌아 의관 앞에 당도했다. 

“왕 의원!” 

복생이 큰 소리로 부르자 쉰쯤 된 노인장이 급하게 달려 나왔다. 복생은 안부를 물을 겨를도 없이 어서 아내를 불러오라고 외쳤다. 그제야 복생을 따라온 세 사람을 본 왕 의원은 금세 무슨 일인지 알아차렸다. 그는 서둘러 사람들을 내당으로 안내하면서 아내를 불렀다. 

소리를 듣고 나온 산파가 노씨의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라 고함쳤다. 

“어느 댁 사람인데요? 산달이 다 되었는데 왜 집에 있지 않고 나온 거예요. 여기엔 무슨 일로 온 거랍니까?”

왕 의원이 제 아내를 잡아당기며 복생을 가리켰다. 

“노아촌 그 대관인의…….”

산파가 곧바로 웃으면서 방 하나를 치우라고 하고는 다가와서 노씨의 몸을 만져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때가 되었네.” 

노씨가 안으로 실려 가자 임새옥도 당연히 따라 들어가려 했다. 산파가 웃으며 그녀를 막았다.

“혼인하지 않은 저아는 들어가면 안 돼.” 

임새옥이 어디 그 말을 들을까. 마음이 놓이지 않아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하는데 노씨가 듣고는 또 한바탕 욕을 해댔다. 그래서 결국 문밖에서 기다리는데, 어멈 하나가 짚, 끈, 작은 이불을 들고 달려 들어갔다. 어찌 됐든 노씨는 아이 둘을 낳아 본 사람이라서, 머지않아 안에서 아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안에서 웃으며 축하한다고 하는 산파의 목소리가 들렸다.

“축하해요. 예쁜 딸이네.” 

“어머니는 괜찮아요?” 

임새옥이 창문 너머로 물었다. 

“모녀 모두 건강하단다!” 

산파의 말에 조삼랑은 그제야 안도하며 털썩 주저앉았다. 

뒤이어 산파가 아이를 옷으로 감싸고는 조삼랑에게 건넸다. 조삼랑은 향을 피우고 조상께 고하려고 즉시 집으로 돌아갔다. 산파가 나와서 사람을 시켜서 정심탕을 달이라고 말하는 걸 본 임새옥은 수고롭게 했다며 인사하고는 돈을 쥐여주었다. 산파는 생글생글 웃으며 돈을 챙기고는 괜찮다고 하고는, 노씨가 정심탕을 마시고 잠이 든 걸 직접 보고서야 밖으로 나갔다. 

임새옥은 그제야 한시름 놓으면서 제가 입고 있는 옷이 흠뻑 젖었음을 깨달았다. 복생도 그때까지 기다리다가 돌아간다고 인사하자, 임새옥은 문 앞까지 배웅하면서 이씨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조아렸다. 

이번에는 아무런 불평 없이 성심성의껏 무릎을 꿇었다. 임신한 노씨가 집에 들어간 걸 나무라지 않은 것에 감사했고, 은자를 보내준 것에 감사했으며, 적절히 고려하여 의관으로 보내준 것에 감사했다. 

“화저아, 걱정하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시더라. 네 옷가지는 부인께서 사람을 보내실 거다.” 

복생은 말을 타고 돌아갔고, 임새옥은 문 앞에서 그 모습이 멀어지는 걸 지켜보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사흘이 지나고, 임새옥은 조삼랑에게 돈을 주어 마차를 빌려 노씨를 데리고 마을로 돌아갔다. 노씨는 임새옥만 보면 화를 냈고, 임새옥은 눈치 빠르게 어린 여동생을 안고 구석으로 가서 앉았다. 품에 안은 아가는 달을 채우지 못하고 나왔지만, 많이 작진 않았다. 뽀얀 것이 예뻐서 보들보들한 작은 손을 계속 만지작거렸다. 

집에 도착했더니 문엔 벌써 빨간 줄이 걸려 있었다. 소식을 들은 조 노파, 그러니까 조삼랑의 모친이 금단을 데리고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화항이 뜨끈뜨끈하게 지펴진 걸 보고 노씨는 곧바로 얼굴을 흐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목숨줄을 다 태우려고요!” 

조 노파는 바로 금단을 내려놓고 돌아서서 가버렸다. 임새옥은 당황해서 할머니를 부르며 쫓아갔다. 줄곧 삼촌네와 사는 이 할머니는 노씨와 노씨 친정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그래서 임새옥도 그다지 만날 일이 없었다. 올해 예순 남짓한 조 노파는 꼬장꼬장한 성격처럼 몸도 정정했다. 

“할머니, 저 들으라고 한 말이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임새옥이 조 노파를 따라잡고서 돈을 쥐여주며 낮게 속삭였다. 조 노파는 임새옥이 찔러준 돈에 깜짝 놀라서 데인 듯이 다시 밀어냈다. 임새옥은 어머니가 드리는 거라며, 어린 여동생이 겨울을 날 옷을 할머니가 수고해 줘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조 노파는 쭈글쭈글한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내 손녀인걸! 돈은 뭐 하러 주냐.”

그리고는 돈을 챙겨서 웃으며 돌아갔다. 임새옥이 돌아섰더니, 유소호가 빨아서 색이 바랜 푸른빛 직철을 입고 말끔한 혜말(鞋襪: 신과 버선)을 신고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임새옥은 깜짝 놀라서 가슴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소화, 씨앗 고맙다. 보여줄 게 있어, 어서 가자. 분명 처음 보는 걸걸?”

유소호는 욕을 먹고도 화내지 않고 빙긋 웃으며 그녀를 잡아당겼다. 임새옥도 마음이 혹하긴 했다. 유소호가 정말로 온실 재배를 해낸 걸까? 직업병에 마음이 간질간질해져서 유소호를 따라가려는데 마당에 서 있던 조삼랑이 보고는 다급히 그녀를 불렀다. 

“네 어미를 곁에서 돌볼 사람이 있어야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돌아다니지 말고!” 

노씨가 자기 때문에 화가 나서 조산한 일로 안 그래도 미안하던 임새옥은 유소호를 뒤로하고 돌아갔다. 

“나중에 보러 갈게.” 

동동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는데 뒤에서 유소호가 다급하게 물었다.

“소화야, 이제 다시 안 가는 거지?”

임새옥이 뒤를 돌아보고 그렇다고 대답해 주자 유소호가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럼 됐다.” 

이레쯤 지나고 나서야 노씨는 혼자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어찌 됐든 몸이 상해서 방에서 나가지는 못하니 마음은 더 불편했고, 매일 임새옥과 조삼랑이 바닥에 발을 붙일 틈도 없이 욕을 해댔다. 임새옥도 따지지 않고 그저 고개를 숙인 채 금단을 끼고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밥을 지었다. 

이날 밥을 들고 들어갔더니 노씨가 두건을 두르고 침상에 앉아서는, 조 노파가 보낸 아이 옷을 보고 있었다.

노씨가 눈살을 찌푸리며 조삼랑을 바라봤다. 

“당신 어머니 어디 아프대요? 웬일로 아이 옷을 지어 보냈대.” 

조삼랑은 노씨가 어머니 이야기만 꺼내면 그게 좋은 말이든 안 좋은 말이든 끽소리하지 않았다. 임새옥은 자기가 조 노파에게 돈을 준 것은 때려죽인대도 노씨가 알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목을 움츠렸다. 

화항 곁으로 다가가 잠든 조삼저(三姐)를 바라보았다. 요 며칠간 아이가 꽤 커서 생김새를 알아볼 수 있는데, 희한하게 조삼랑을 쏙 빼닮았다. 저도 모르게 여동생의 외모를 걱정하며 조삼랑을 바라보자, 노씨가 또 그걸 보고는 베개를 던지며 욕설을 퍼부었다. 

“뭘 자꾸 곁눈질하고 그래! 매일 집에서 공밥이나 먹고! 이제 곧 새해인데 얼른 가서 신이나 짓지 않고 뭐 하니! 주인이 될 팔자를 내다 버리고, 온 가족 발목 잡아 굶어 죽게 한 주제에!” 

임새옥은 목을 움츠리고 밖으로 나가 마당에 서서 지어놓은 신들을 바라보며 울상을 지었다.

그때 불현듯 사환 하나가 대문에서 고개를 내밀길래 봤더니 소가에서 온 사람이었다.

임새옥이 그제서야 소가 사람들이 오늘 모두 떠난다는 걸 떠올리며 다가갔더니, 사환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집을 찾았네. 이번에도 못 찾으면 이제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임새옥은 사환을 안으로 불러들이면서 조삼랑을 불렀다. 사환은 그럴 것 없다고 손을 저으며 말에서 보따리 두 개를 내려 마당 안의 돌판 위에 내려놓았다. 허둥지둥 나온 조삼랑은 뭘 해야 좋을지 몰라서 몸을 사리고 곁에서 보기만 했다. 

“이건 네가 평소에 쓰던 것들인데, 청저아가 대신 챙겨주었다. 이건 부인께서 내린 옷가지들이고. 이건 이야께서 네게 주는 돈이다.” 

사환은 일일이 가리키며 알려주고는 곧바로 돌아섰다. 

“부인께서 기회가 생기면 소식을 전하겠다고 하셨다. 부인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고 하시더라.” 

임새옥은 부인께 감사드린다는 말을 하려고 그를 붙잡았지만, 사환은 얼른 가려고만 했다. 

“더 이상 있지 못해. 어서 가야 해. 노야께서 벌써 사흘 전에 떠나셔서 더 늦으면 따라잡지 못해.”

“그렇게 급히 떠나셨어요? 오늘 떠나는 거 아니었어요?” 

임새옥이 의아한 듯 물었다. 사환은 근심스러운 얼굴로 말에 올라타며 한숨을 내쉬었다. 

“부인 몸이 좋지 않아서 서둘러 돌아가셨다.” 

어찌 됐든 집안일이니 외부인에게 말할 것 없다고 생각한 사환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는 임새옥이 더 물어도 대답하지 않고 인사하고 돌아갔다. 

임새옥은 먼지를 일으키며 사라지는 모습을 문 앞에 서서 바라보다가 문득 서글퍼졌다. 서글프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참 드문 일이긴 했다. 그동안 일을 돌이켜 보면 이씨의 눈가에는 항상 우울한 기운이 서려 있곤 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름을 이새옥이라고 지었어야죠!”

하지만 그런 부귀한 집에 태어나 호의호식해도 마음고생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슨 생각 하는데?” 

유소호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리자 임새옥이 화들짝 놀랬다.

“이제 한가하지? 좋은 거 보여줄게.” 

임새옥은 웃음 가득한 그의 얼굴에 잠시 눈살을 찌푸리다가 파릇파릇한 잎사귀를 흔드는 모습에 놀라서 입을 벌리고 말았다. 

정말로 온실 재배를 한 거야?

“처음 보지? 이건 능파채다. 풀죽에 넣고 탕을 끓이면 아주 맛있어.” 

유소호는 임새옥의 놀란 모습에 흡족해하며 웃었다. 

시골 사람들은 이런 채소를 잘 못 보겠지? 게다가 지금은 풀 하나 자라지 않는 겨울이잖아. 

언제나 싱글벙글하던 유소호의 얼굴에 잠시 침울한 기색이 스치더니 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전엔 자주 그렇게 먹었는데.” 

“또 뭐가 자랐는데?”

임새옥은 감격한 표정으로 그 푸릇푸릇한 채소잎을 받아들며 물었다. 유소호는 그녀가 그런 걸 물을지 몰랐는지 잠시 멈칫했다. 그가 대답하기도 전에 임새옥이 유소호를 끌고 그의 집 쪽으로 향했다. 

“내가 직접 가서 볼게. 나도 그 씨앗들이 뭔지 다는 몰랐어. 아마 유채(油菜: 청경채)도 있을 거야.” 

임새옥은 혼잣말하면서 금세 집 앞에 도착했다. 이미 완성된 천막 위에는 건초가 두툼하게 덮여 있었다. 

“다 죽은 씨앗이더라고. 능파채만 싹이 자랐어. 그리고 무도…….”

유소호는 임새옥이 부딪쳐 망가뜨리기 전에, 문을 가린 나무판자를 후다닥 치웠다. 하지만 항상 괄괄하고 거칠던 여자애는 갑자기 사람이 변한 것처럼 침착한 표정으로 날렵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그녀가 천천히 웅크리고 앉아서 자기가 들쭉날쭉 심어 놓은 살짝 누레진 능파채와 이제 막 싹이 난 무를 살펴보는 걸 바라봤다. 

“음, 습도가 부족해.” 

임새옥은 뿌리 하나를 집어들고 냄새를 맡으며 말했다. 잠시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던 유소호는 한순간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임새옥은 완전히 자기 세계에 심취해서 여린 채소잎을 만지작거리면서, 처음으로 제 미래에 대해 뚜렷한 계획을 세웠다. 현대에서는 고등 교육을 받았지만, 시골을 떠나 도시인이 되길 바랐던 아버지의 바람을 이뤄드리지 못했다. 지금은 천월해서 다시 태어났는데도 여전히 운명을 바꾸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그냥 평생 즐거운 농부로 살자. 가장 먼저 할 일은, 조삼랑 집의 열악한 땅을 일구는 것. 채소를 심고 연근을 심어서 그걸로 더 많은 자금을 모으자. 그래서 더 많은 땅을 사들이고, 나중엔 과수원을 개발하고 가축을 기르는 거야…….

유소호는 평안하고 고요해 보이는 조화가 서서히 괴이한 표정을 드러내는 걸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녀의 입가에 정체불명의 액체가 떨어지는 걸 보고는 더는 견디지 못하고 다가가 어깨를 두드렸다. 

“소화, 너 괜찮지? 이건 생으로 먹는 게 아냐.” 

임새옥은 흠칫 정신을 차리고는 부랴부랴 소매로 입가를 닦았다. 허름한 천막, 그리고 더 자랄 힘이 없어 보이는 채소 모종을 바라보며 현실을 정확히 인식했다. 지금과 같은 환경과 기술로는 채소들이 절대 오래 살 수 없다는 것을!

“이 천막이, 온실…… 이걸로는 안 돼. 온도, 습도, 빛, 다 부족해. 다시 지어야 해.” 

임새옥은 웅크리고 앉은 채 지적하기 시작했다. 

“이것 봐. 하나같이 영양 부족이잖아. 이러다가 눈이 오면 다 꼴까닥 한다고.”

유소호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임새옥의 말이 이상하게 들리긴 했지만 금방 알아듣고는 놀라워했다.

“소화, 너도 채소 심는 법을 알 줄은 몰랐다…….”

두 사람은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낮은 천막에서 나왔다. 유소호는 평소처럼 팔짱을 낀 나른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와서 제가 만든 ‘걸작’을 바라보며 조금 허탈한 듯 웃었다. 

“그야 나도 알지. 하지만 돈이 없어.” 

임새옥의 넘치던 열정도 이쯤 해서 식어 버렸다. 

맞아. 돈이 큰 문제지. 다른 건 다 생각했는데, 자금 문제를 잊었네. 농사는 간단하지만, 제대로 농사지으려면 돈이 있어야 해. 씨앗도 그렇고, 천막을 고칠 기초 재료도 그렇고, 천막을 항온으로 유지하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고. 

“나부터 따듯하게 보낼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판에…….”

임새옥이 앓는 소리를 냈다. 그녀가 돌아서서 집으로 향하자, 유소호가 다시 그녀를 불러서 시금치를 건넸다. 

“가지고 가서 먹어. 며칠 지나면 먹을 수 없어. 봄이 되면 다시 심을 거야.” 

임새옥은 사양하지 않고 받았다. 유소호의 깔끔하고 고운 손을 보자 그의 집에서 심심찮게 들리곤 하던 책 읽는 소리가 떠올랐다. 

“글공부하는 사람이 어떻게 이런 걸 다 알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묻자, 유소호가 가지런한 치아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식탐이 많거든. 먹고 싶어서 심었다. 만물을 피우는 땅이잖냐. 어려운 것도 아니고.” 

임새옥은 힐끔 그를 바라보면서 유소호가 귀한 집안 출신이라는 걸 다시 한번 확신했다. 일반 백성은 아무리 식탐이 많아도 한겨울에 시금치 먹을 생각을 하지 않으니까! 

그 생각에 다시 그를 살폈다. 훤칠한 키에 낡았지만 정갈한 장삼이 잘 어울렸다. 옷에 흙이 묻었지만, 오히려 초라한 기운 하나 없이 더 기운 차 보였다. 

이 아이, 배포가 꽤 커. 임새옥이 중얼거렸다. 

그때 유 대낭이 밖으로 나오더니 임새옥을 향해 온화하게 웃어주었다. 

“화저아, 돌아왔구나. 달걀 몇 개 가지고 가렴.”

임새옥은 바로 사양했지만, 유 대낭이 끈질기게 권하자 마지못해 받았다. 가난해도 마음만은 가난하지 않다는 게 이런 것이리라. 유 대낭이 유소호를 데리고 이 마을로 도망해 왔을 때, 노씨가 가장 먼저 두 사람에게 뜨거운 탕을 건넸었다. 유 대낭이 대놓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그 고마움을 기억하고 있고 갚으려 했다. 

유소호를 바라본 유 대낭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이랑(二郞), 오늘 읽은 책, 이해했니?”

유소호는 헤헤 웃으며 후다닥 안으로 들어갔다. 

임새옥이 열 걸음쯤 갔을 때 글 읽는 소리가 낭랑하게 들려왔다. 보아하니 유소호는 과거를 준비하는 듯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평생 초라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없다. 특히 한때 부귀했던 사람들은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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