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57)

三. 새로 온 곱디고운 손님

왜 듣다 보니 갈수록 유언처럼 들리지? 

임새옥은 어안이 벙벙해져서는 허둥지둥 따라서 무릎을 꿇었다. 

“우둔한 저를 이렇게까지 높이 사주시다니요. 가당치 않습니다.”

정신을 차린 이씨는 입을 가리고 기침을 몇 번 하고는 활짝 웃어 보였다. 

“다들 일어나라. 내가 무슨 소리를 한 거지. 정신이 나갔나 보다.” 

그리고는 화제를 바꿨다. 

“곧 집에 손님이 오실 게다. 다들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이라서 성안 주루 요리사를 불렀단다. 화저아도 손님들 입맛 좀 바꿀 일상 요리를 만들어 보렴. 오늘 가서 이것저것 사 왔는데, 뭘 만들 건지 미리 생각해 두었다가 필요한 게 있으면 원가에게 말해서 사 오라고 해라.” 

임새옥이 냉큼 알겠다고 대답하는데 소금남이 들어왔다. 청아가 재빠르게 차를 받들고 다가가자, 이씨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더니 뭔가 말하려다가 이내 손을 저으며 나가 보라고 했다.

임새옥이 물러난 후에 곧 휘장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청아도 나왔다. 

“잘 되었네. 가서 보고, 재료 없는 걸로 골라서 만들어. 그럼 성내에 가서 놀 수 있겠어.” 

청아가 웃는 얼굴로 재빨리 따라오며 하는 말에 임새옥도 웃었다. 

“내가 뭘 알겠어. 본 게 많아야 좋은 게 뭔지 알지. 정말 필요한 게 있어도 성이 아니라 산으로 가야 할걸.” 

“허튼소리 그만해야겠다. 노야께 새로 산 종이 드리고 와야 해.”

청아가 입을 가리고 웃다가 그 말을 남기고 쪼르르 가버렸다. 청아는 한참 동안 모습이 보이지 않다가 저녁 먹을 때가 되어서야 부엌 입구에 나타났다.

울었는지 청아의 눈이 부은 것 같아서, 임새옥은 그녀를 잡아끌고 무슨 일인지 물었다. 손 어멈도 다가와서 어떤 녀석이 화나게 한 거냐고 때려주겠다며 연신 캐물었다. 청아가 오히려 생긋 웃으며 눈을 비볐다. 

“누가 감히 날 건드려요. 아까 성내에 갔을 때 바람을 맞아서 그런지 눈이 아프길래 잠깐 잤더니 부은 거예요.” 

임새옥이 이마를 짚어 보려고 손을 뻗자 청아가 바로 피하면서 콜록콜록 기침을 했다. 

“식사 준비해요. 다들 기다리고 계셔요.” 

일은 그렇게 마무리됐지만, 임새옥은 뭔가 찜찜했다. 청아가 예전과 다름없이 웃고 떠들었지만, 꼭 집어 말할 순 없어도 무언가 다른 느낌이었다. 

하지만 저녁 시간에 일부러 이진탕(二陳湯: 어지럽고 메스꺼울 때 먹는 탕약)을 달여줬더니 생글생글 웃으며 고맙다고 하는 모습에 자기가 괜한 생각을 했다고 여기고 곧 잊어버렸다. 아무래도 고작 열댓 살이니 집 생각이 나서 숨어서 한바탕 울었겠거니 싶었다. 

다음 날, 이씨는 그냥 한 말이 아닌지, 사온 찬거리를 확인하라고 임새옥을 보냈다. 거의 갖춰져 있긴 했지만 청아가 아이처럼 곁에서 잡아당기자 임새옥도 용기 내서 겨울이라 추우니 뼈를 사다가 탕을 우리자고 말했다. 이씨가 바로 허락하고 원가를 보내겠다고 하자 청아가 헤실헤실 웃으며 말했다. 

“화저아가 만들 줄 안다고 하니 분명 좋은 재료를 고르는 법도 알 거예요. 같이 가는 게 어떨까요? 괜히 속아서 안 좋은 걸 사 왔다가 이야(二爺)께서 입맛에 안 맞아 하시면 어떡해요.” 

“또 무슨 꿍꿍이를 부리려고? 내가 널 모를까 봐?” 

이씨가 빙그레 웃으며 눈을 흘기며 하는 말에 그녀 성격을 잘 아는 청아는 겁먹지도 않고 다가가 무릎을 꿇고 옷자락을 당겼다. 

“절 이렇게 예뻐해 주시는데 부인께 뭘 숨기겠어요.” 

이씨가 청아의 머리를 콕콕 찌르며 말했다. 

“얼른 다녀오려무나. 괜히 돌아다니다가 어디 끌려가지 말고.” 

이씨의 허락이 떨어지자 청아는 임새옥을 끌어당겨 제 옆에 앉히고는, 절대로 싸돌아다니지 않고 얼른 돌아오겠다고 감사 인사를 했다. 

다음 날, 아침 시중을 끝내고 다시 외출 허락을 받았다. 일을 마무리한 두 사람은 마차에 올랐다. 임새옥이 이곳에 온 이래 두 번째로 하는 외출이고, 마차로 움직이는 건 처음이었다. 나귀가 끄는 마차로, 실내는 장식이 거의 없고 두꺼운 깔개만 깔려 있어서 덜컹거릴 때마다 엉덩이가 아팠다. 차라리 걸어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요 며칠 날씨가 포근해서 길에 행인이 많았다. 짐을 지고, 수레를 몰고, 사람들이 끝도 없이 오가는 모습에 처음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마차 휘장을 걷고 밖을 내다보던 임새옥도 이내 질리고 말았다. 고대의 겨울 시골 풍경은 그녀가 어릴 때부터 살던 현대의 농촌과 별 차이가 없었다. 똑같은 흙길에, 똑같은 황량함이라 더 볼 것이 없었다. 

청아는 며칠 전 임새옥이 볕에 말린 해바라기 씨를 먹으며 생글생글 웃었다. 

“이게 뭐 볼 거 있다고. 보아하니 외출을 안 해 봤네.”

이야기 나누는 사이 어느새 성문으로 들어갔다. 임새옥은 일부러 밖을 살폈다. 지리적 특성을 보면 지금 자기가 있는 곳이 하북(河北)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근처 백 리에 있는 마을 이름을 아는 것만 해도 견문이 넓은 편이라, 더 물어도 알아낼 것이 없었다. 성문에는 ‘성안(成安: 하북성 남부 한단邯鄲 시의 행정 구역)’이란 큰 글자가 적혀 있었다. 

바깥이 떠들썩해지고 온갖 고함이 끊이지 않았다. 이렇게 작은 성도 이처럼 떠들썩할 줄 몰랐던 임새옥은 고개를 내밀고 밖을 구경했다. 뭘 봐도 궁금한 것투성이라 쉴 새 없이 청아에게 물어댔다. 

“곧 새해라 사람이 많을 수밖에. 게다가 요 며칠 날씨도 좋았고.”

원가가 들떠 보이는 임새옥을 돌아보며 설명해주면서 마차를 몰면서 조심스럽게 사람들 사이를 지나갔다. 

두 사람이 순전히 재미로 따라 나온 걸 아는 원가는 두말없이 곧장 장이 모여 있는 대추 거리로 향했다. 그리고는 주인이 사 오라는 것을 챙기면서 임새옥과 청아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까부터 마차 밖에 나와 앉아 있던 임새옥과 청아는 종알거리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둘 다 조심해라. 마차에서 내리지 말고.” 

원가는 이 한겨울 날씨에 바삐 움직이느라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들은 반나절 구경하고 살 것도 다 산 다음, 더는 지체하지 않고 서둘러 저택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멀리 문 앞에 사람이 잔뜩 서 있고 마차도 두 대 서 있는 게 보였다. 사람들이 바쁘게 물건을 옮기는 중이었다. 

“노느라 정신이 팔렸구나! 서둘러라, 손님이 오셨다.” 

대문 앞에 서 있던 복생의 말에 원가는 재빨리 마차를 뒷문으로 몰았다. 마차가 완전히 멈추기도 전에 청아가 폴짝 내리는 바람에 당황한 원가가 고함을 쳤고, 임새옥은 대체 어떤 귀한 분이길래 청아가 이토록 당황하는 건가 생각하며 따라 내려와 앞뜰로 향했다. 

“청아, 누가 온 거야?” 

임새옥이 그녀를 따라잡고는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저 앞에 중문이 보이자 청아가 걸음을 멈추고 깊이 숨을 고르며 머리카락을 가다듬었다. 

“아, 이야…….”

청아가 막 입을 떼는데 웃음소리가 문 앞에서 들렸다. 두 사람이 돌아보니 울긋불긋 화려하게 차려입은 여인 네다섯 명이 한 젊은 사내를 에워싸고 다가왔다. 스물 남짓한 나이로 보이는 사내는 백옥같은 얼굴에 장식 술이 달린 모자를 쓰고, 귓가엔 붉은 견화(絹花: 비단으로 만든 조화造花)를 꽂은 채, 금박 주름 옷 위에 새하얀 털 두봉을 걸치고 운치 넘치는 모습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왔다. 

임새옥은 입을 떡 벌리고 바라봤다. 소설에서 여자보다 더 예쁜 남자 이야기할 때 모두 허구인 줄 알았더니 정말로 이런 사람이 있을 줄이야. 그리고 그의 곁에 스물이 안 되어 보이는, 하나같이 미모가 빼어난 여인들을 보고 속으로 몇 번이고 ‘맘마미아!’를 외쳤다. 

청아는 그들을 본 순간 서둘러 웃으며 다가가서 손을 겹치고 만복(萬福: 부녀자들의 인사 방식. 가슴 앞에서 아래위로 흔들면서 가볍게 머리를 숙이는 인사) 자세로 인사를 올렸다. 

“이야, 오셨어요.” 

청아를 본 사내가 싱긋 웃으며 걸음을 멈췄다.

“네가 함께 왔구나. 어쩐지 네 오라비가 내 앞에서 알짱거리더라니.”

“급하게 오느라 말씀 올리지 못했어요.” 

청아도 생긋 웃으며 대답하고는 재빠르게 따라가 휘장을 들어 올렸다. 사내가 하하 웃으며 청아를 힐끔 바라봤다. 

“말하는 것 좀 보게. 네가 내 사람도 아니고 내게 말해 무얼 한단 말이냐. 누이가 들으면 또 한소리 하겠다.” 

여인들도 까르르 웃었고 청아도 화난 기색 없이 웃는 것을 보니 항상 이런 식으로 장난치는 모양이었다. 이야기하는 사이 안채 앞에 당도했고, 안에서 이씨가 나무라는 소리가 살며시 들렸다. 

“또 무슨 허튼소리냐.” 

두 여인이 다가가 휘장을 걷고 일행이 모두 안으로 들어갔다. 곧이어 안에서는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임새옥은 여전히 그 자리에 굳은 채 서서는 들어가야 하는지 아니면 밖에서 기다려야 하는지 망설이고 있었다. 그때 청아가 휘장을 걷고 나오더니 손짓하며 불렀다. 

“저게 다 누구야? 그림에서 나온 사람들 같아.” 

임새옥이 곁으로 달려가 속삭이며 묻자 청아가 빙그레 웃었다. 

“부인의 친동생이셔. 우리 강녕부에서는 으뜸가는 미남이시지.” 

임새옥이 혀를 내둘렀다. 방 안에서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이, 이 아이가 모함하는 말, 믿지 말아요. 어머니가 아시면 또 호되게 혼나겠네.”

청아가 빙긋 미소 지은 채 임새옥을 잡아끌었다.

“여긴 네가 시중들 필요 없으니까 이진탕이나 달여서 가져다주면 돼.” 

들어가지 않길 간절히 바라던 임새옥은 서둘러 부엌으로 달아났다. 그런데 소금남이 거기에서 사내 셋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알고 보니 성에서 주루 요리사가 온 것이다. 손 어멈은 웅크리고 앉아 정리 중이었고, 요리사들도 부엌으로 들어가자 돌아서던 소금남이 임새옥을 발견하고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오늘 너도 요리 하나 만들려무나.” 

“제 솜씨로 어찌 내놓을 만한 요리를 만들겠어요. 노야의 체면만 깎일 거예요.” 

임새옥이 당황해서 얼른 하는 말에 소금남이 미소를 지었다. 

“괜찮다. 다 가족인데 무얼. 게다가 네 솜씨가 제법 아니냐.” 

임새옥은 사양할 수도 없고, 부엌에 일손도 부족하기에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이야는 어떤 걸 좋아하셔요?”

벌써 그녀를 지나쳐 가던 소금남이 그 말에 뒤를 돌아봤다.

“둘째? 신경 쓸 것 없다. 뭐든 잘 먹는다. 네가 만들고 싶은 것으로 만들어라.” 

소금남은 말을 마치고는 무슨 생각이 드는지 고개를 저으며 사라졌다. 

임새옥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든 다 괜찮다는 사람일수록 까다로운 법이라고 생각하며 손 어멈이 찬거리를 다듬는 걸 바라봤다. 평소에 먹는 송채, 무 외에 훈제 돼지고기와 닭, 오리, 생선, 소고기가 있었다. 구석에 아직 어지러이 놓인 깔끔하게 포장된 짐들을 사환 둘이서 치우고 있었다.

“섞이지 않게 잘해. 이건 육저아의 간식함이고, 저건 대저아의 꽃이고, 저건 오저아의 채소 씨앗이야. 아이코, 쏟았네…….”

사환이 하나둘 들어 올리다가 손에 든 것이 갈수록 많아지자 실수로 하나를 떨어뜨린 것이다. 끈이 잘린 상자 안의 물건이 온 바닥에 쏟아졌다. 한쪽에 서 있던 임새옥이 후다닥 달려가서 도와주면서 손으로 만지며 자세히 살폈더니 놀랍게도 채소 씨앗이었다. 뒤죽박죽 섞인 씨앗을 본 임새옥은 법도를 따질 겨를도 없이 손에 들고 유심히 살폈다. 역시나, 많진 않아도 시금치 씨앗이 조금 있었다. 

“함부로 만지지 마라.” 

사환 하나가 다가와서 그녀를 밀어내곤 바닥에 떨어진 씨앗을 꼼꼼히 주우며 다른 사환에게 말했다. 

“걱정할 것 없어. 날씨가 좋으니 잘 말리면 깨끗해진다. 오저아가 쓸 머릿기름 만드는 데 지장 없어.”

임새옥은 씨앗 몇 개를 몰래 손에 쥐고는 그들이 신경 쓰지 않은 틈을 타서 부엌으로 쪼르르 들어가 잘 담아두었다. 기뻐서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인제 조삼랑이 오면 유소호에게 보내면 돼! 정말로 겨울 시금치를 키울 수 있을지도 몰라! 

막 종이로 잘 접어두었을 때 손 어멈이 찬거리를 안고 들어오면서 혀를 찼다.

“이게 다 그 이야 그분이 가지고 오신 거다. 귀한 게 아주 많아. 나는 먹는 건 둘째치고 처음 보는 것도 있단다. 화저아, 이건 네가 만든 그 엄육하고 비슷하구나.”

손 어멈이 혀를 끌끌 차면서 물건을 살펴보다가 시커먼 고기를 꺼내면서 말했다. 임새옥은 받아서 냄새를 맡아보고는 신기해하며 말했다. 

“세상에, 화퇴(火腿: 돼지 다리를 절여 햇볕에 말려서 만드는 중국식 햄)네.”

그때 자루에서 뭔가 굴러 나오길래 살펴봤더니 짧은 연근이었다. 임새옥은 주워들고는 생긋 웃었다. 

“이거 좋은 거예요. 탕은 이걸로 만들어요.” 

임새옥은 요리사들이 부엌에서 마무리할 때쯤 안으로 들어가서 연근을 잘라 화퇴와 함께 탕을 끓였다. 남은 연근은 간식으로 먹을 우협(藕夾; 연근 구멍에 고기를 다져 넣어 부친 전)을 만들었다. 마침 다 구웠을 때 청아가 식사를 가져가러 왔길래 그녀와 같이 온 세 여인과 함께 음식을 날랐다. 안채로 가자 사람들이 몇 명 더 나와서 음식을 받아 갔다. 청아가 됐으니 차 내오라고 손을 휘둘러서 손 어멈과 임새옥은 문 앞까지만 갔다가 다시 부엌으로 돌아갔다. 방 안에서 떠드는 소리가 몹시나 떠들썩했다. 

막 부엌으로 돌아와 물을 올려놓고 앉아서 쉬려는데 청아와 한 여인이 들어왔다. 요리사들은 벌써 자리를 피했고, 두 사람이 서둘러 맞이했다.

늘씬한 몸매, 갸름한 얼굴, 유난히 맵시 좋은 스물서너 살쯤 된 여인이었다. 여인이 허리를 숙이고 자루를 뒤적이자 손 어멈이 미소 지으며 서둘러 다가갔다. 

“뭐가 필요하세요, 제가 꺼내드릴게요. 손 더럽히지 마세요.”

“말해도 모를 테니, 직접 하지 뭐.” 

여인은 생긋 웃어주고 계속 뒤적이다가 조바심 나는 얼굴로 물었다.

“연채(蓮菜)는? 일부러 가지고 온 건데. 관인께서 좋아하시는 건데, 어째서 없지?”

임새옥은 멈칫했다가 서둘러 대답했다. 

“연근 찾으세요? 벌써 만들어서 보냈어요.”

그 말에 여인은 곧장 몸을 세우더니 임새옥을 살피고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보내? 못 봤는데? 이야가 간절하게 기다리시는데?” 

청아가 안색이 변해서 임새옥에게로 다가왔다. 

“화아, 연근으로 뭘 한 거야? 네가 과편(果片: 과즙에 녹말이나 꿀을 넣고 졸여서 굳힌 음식)을 만들 줄 알아?”

“과편? 아니, 과편이 아니라 탕을 만들었어. 나머지는 우협을…….”

고개를 저으며 하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성큼 다가온 여인이 뺨을 내리쳤다. 임새옥은 순간 별이 번쩍이고 어지러워서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이 나이 되도록 남에게 맞은 건 처음이라 무의식적으로 벌떡 일어서며 소리를 치고는, 손가락을 쫙 벌려 똑같이 여인의 얼굴을 내리쳤다. 공들여 치장한 여인의 얼굴에 곧바로 금세 핏자국이 생겼다. 

“감히 날 때려?”

여인은 순간 얼어붙었다가 화끈거리는 통증에 그제야 비명을 질렀다. 청아와 손 어멈 모두 넋이 나가서 곁에 서 있다가, 비명을 듣고서야 곧바로 달려가 임새옥을 눌러 앉혔다. 

임새옥의 머릿속에서 쾅, 소리가 울렸다.

큰일 났다. 내가, 사고 쳤구나! 

제가 노비인 걸 잊었다. 게다가 고대의 가노라는 것을. 가노의 첫 번째 업무 수칙이 맞아도 되돌려주지 않고 욕먹어도 말대꾸하지 않는 것인데.

“미쳤어? 어떻게 감히 연저아를 때려?”

힘껏 임새옥을 억누르고 있던 청아는 그녀의 머리를 눌러 땅에 박으면서 그 여인을 바라봤다. 

“연저아, 얘는 새로 온 무식한 애라 아무것도 몰라요. 머리가 이상한 애예요. 어서 몇 대 때리고 화 푸세요.” 

연저아라고 불린 여인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는 다친 얼굴을 감싸쥐고 이글거리는 두 눈으로 당장에라도 눈앞의 여자애를 찢어 죽일 듯이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무런 말도 없이 획 돌아서더니 울며 달려갔다. 

“이걸 어쩌니!”

손 어멈은 바닥에 주저앉아 울부짖었고, 청아는 임새옥의 머리를 몇 대 힘껏 쥐어박고는 화난 얼굴로 고함쳤다. 

“죽고 싶어? 네가 어떻게 감히 사람을 때려! 넌 이제 죽었어!”

“저쪽이 먼저 때렸어.” 

청아가 누르는 대로 바닥에 머리를 몇 번 박던 임새옥은 흙 묻은 얼굴로 고집스럽게 대답했다. 하지만 기죽은 목소리였다. 청아는 초조해서 발을 굴렀다. 

“세상에, 얘야. 너 저 여인이 누군지 아니? 이야의 희첩(姬妾)이야! 널 때리는 게 대수겠니? 어서 가, 어서! 부인께 가서 무릎 꿇고 빌어! 그래야 조금이라도 덜 맞지!” 

청아가 임새옥을 끌고 밖으로 나가는데 걸음을 떼기 무섭게 여인 넷이 마주 오는 게 보였다. 청아가 놀라서 멈칫하고는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누구지? 누가 연저아를 때렸어?” 

자그마하고 몸매가 날렵한 여인이 웃으며 물었다. 이미 무릎을 꿇고 있던 청아는 임새옥이 아직 멍하니 서 있는 걸 보고는 후다닥 잡아당기며 고개를 조아렸다. 

“대저아, 대저아, 한 번만 봐주세요.”

임새옥은 자기를 빤히 보는 그 여인이 웃고 있어도 미소가 싸늘한 걸 보고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됐어. 맞아도 싼 짓을 했지. 살아남으면 오늘 일을 기억하면 되고, 혹시 이대로 죽으면……. 그것도 나쁘지 않지. 

그런 생각이 들자, 더는 머리를 조아리지 않고 입을 다문 채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어린애였네. 연저아가 어쩌다 저런 애한테 당했지?” 

우르르 몰려온 다른 여인들이 둘러서서 잇달아 웃음을 터트렸다. 

“예, 예. 아직 어린애예요. 시골애라서 아무것도 모르고요. 바로 데려가 사죄드릴게요.” 

청아가 일어서서 눈치를 보며 따라 웃었다. 대저아라고 불린 여인이 손을 휘휘 저었다. 

“청아 너도 서두르지 마라. 네 말은 나도 알아들었다. 다만, 연저아는 우리 이야가 아끼는 아이다. 어떻게 될지는…… 이 애 운에 달렸겠구나.”

그러고는 모두를 향해 손짓했다. 

“가자. 뭘 넋을 놓고 있어. 연저아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면 우리도 면이 안 서지.” 

그 말에 앞으로 나선 두 여인이 양쪽에서 임새옥의 팔을 잡고 내원으로 향했다. 청아는 발을 동동 구르며 한숨을 내쉬고는 할 수 없이 따라갔다. 그렇게 다 함께 내원에 도착하자, 대저아는 다들 기다리라고 하고 혼자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서 훌쩍이는 여인의 목소리, 그리고 부드럽게 위로하는 사내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데리고 왔습니다. 고내내(姑奶奶: 혼인한 여인을 친정 쪽 사람이 부르는 말), 분부해주세요.”

대저아의 목소리가 안에서 들렸다. 

“이야, 제 얼굴 좀 보세요. 흉이 남을 거예요” 

그 여인의 울음소리가 더 커지더니 뒤이어 웃으며 위로하는 사내 목소리가 들렸다.

“울지 마라. 그럴 리가 있느냐. 돌아가면 내가 좋은 약을 얻어주마. 분명 괜찮을 거다.” 

임새옥은 자기를 누르고 있는 두 여인 모두의 손에 힘이 들어가더니 약속이나 한 듯이 콧방귀를 뀌는 게 느껴졌다. 뒤이어 이씨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긴 사람이 없으니 용가아, 네 사람을 써야겠다. 월낭(月娘), 네가 우리 집안 규칙대로 수고하거라. 일단 장 오십 대를 친 다음에 끌고 와 연저아에게 사과하게 해.” 

오십 대라니. 

임새옥은 몸이 저절로 부르르 떨렸다.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아서 이를 악물었다. 

원망할 게 뭐가 있나. 원망하려면 자신을 원망해야지. 저 연저아라는 사람한테 두어대 맞는 게 뭐 대수라고 그런 짓을 했을까. 

“혜낭.” 

불현듯 소금남의 목소리가 나직이 들렸다. 하지만 이씨가 곧바로 말을 자르고는 나긋나긋 말했다. 

“관인, 어서 드세요. 탕 식어요.” 

방 안은 더 조용해져서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곧 월낭이라는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수고라니요, 가당치 않습니다. 그럼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휘장이 걷히자 임새옥이 무심결에 고개를 들었다. 느긋하게 걸어 나오는 월낭의 얼굴엔 여전히 미소가 걸려 있었다. 

“다들 들었지? 몽둥이를 가지고 와라. 연저아가 기다리니 서둘러라.”

월낭이 회랑에 서서 하는 말에 청아는 울음을 참으려 입을 가리고 뒤로 천천히 물러났다. 두 사람이 임새옥을 눌러 등자에 앉히고 겉옷을 벗겼다. 뒷문 쪽에서 어멈 둘이 몽둥이를 들고 왔다. 어멈은 우선 안에 있는 주인들을 향해 예를 갖추고는 하나, 둘, 숫자를 세면서 때리기 시작했다. 

이를 악물고 참던 임새옥은 처음 겪는 통증에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대체 무슨 업을 지어서 이런 고통을 겪는 걸까. 집을 떠나 이곳으로 와서 노비가 되었는데, 맞고 욕먹은 다음엔 고맙다고 예를 올려야 하다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았다. 눈을 다시 떴을 땐 꿈에서 깨어나 변함없이 제 과수원에 서서 탐스럽게 익은 열매를 보고 있을지도 모르지 않나. 

“아, 이만 되었다. 그만 때려라. 저런 어린애가 오십 대를 어찌 견디겠느냐.” 

스물을 세었을 때, 임새옥은 이미 의식이 흐려져서는 더는 억누르지 못하고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때 누군가가 뭐라고 하는 것 같더니 동시에 매도 그쳤다. 

“어서 이야께 감사드려.”

청아가 달려와서는 정신을 차리라고 임새옥의 얼굴을 두드려주며 말했다. 임새옥이 고통을 참으며 얼굴을 돌리니, 휘장 뒤로 금포만 아른아른 보였다. 뒤이어 두 사람이 그녀를 일으키자 청아가 얼른 겉옷을 걸쳐주고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방 안 분위기는 별천지였다. 향긋한 술 냄새와 음식 냄새가 섞인 따듯한 기운이 불어오자 온몸을 떨던 임새옥은 질식할 것만 같았다. 두 여인이 손에 힘을 풀자 그대로 바닥에 꼬꾸라졌다. 

“어서 연저아에게 사과해.” 

청아가 귓가에서 초조하게 속삭였다. 

“제가 잘못해서 놀라게 했어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임새옥이 파르르 떨면서 더듬더듬 말했다. 매도 맞았고 잘못도 인정했으니, 어서 이 악몽 같은 일이 끝나기만을 바랐다.

“저야 괜찮지만 이런 애가 고내내 곁에서 시중든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픕니다.” 

연저아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내며 부드럽게 말했다. 그 말에 이씨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런 건 네가 걱정할 것 없다. 월낭, 수고스럽지만 어멈을 불러 데리고 나가거라.” 

월낭이 두 어멈에게 지시하는데 연저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절 때린 건 넘어간다지만, 이야의 연근을 망친 건 어째요. 이야는 겨울에 그것만 드시는데. 제 잘못이네요. 곁에 지니고 있어야 했는데.”

연저아가 다시 훌쩍이며 하는 말에 이씨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하냐. 화아 잘못이 한둘이 아니니 더 때려라.” 

임새옥은 경악한 얼굴로 이씨를 바라봤다. 환청을 들은 느낌이었다. 

더 때리라고? 그냥 머리 박고 죽는 게 낫지! 

소금남이 술잔을 내려놓고 목을 가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그건 내 탓이다. 내가 음식을 만들라고 했다. 저 아이가 뭘 알겠니. 음식들이 다 섞여 있으니 아무거나 썼겠지. 어린애라 더 때리면 안 된다.” 

고개를 숙인 임새옥은 바닥에 뚝뚝 떨어진 제 눈물만 바라보았다. 

어째서? 그게 무슨 큰일이라고. 고작 연근이잖아. 내가 목숨이라도 해쳤어?

잠시 조용하던 방 안에 나긋나긋한 연저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내내, 역시 제가 함부로 둔 탓이네요. 이야가 그렇게 좋아하는 걸 제가 챙기지 못했어요. 이야, 절 때리고 화 푸세요.” 

임새옥은 더는 참지 못하고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화려하게 차려입고 둘러앉은 사람들, 열기로 후끈거리는 실내. 눈물이 다시 고여서 한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청아가 허둥지둥 그녀를 잡아당겼다. 

“뭐 하는 거야. 이 꼴로…….”

꼴이 형편없겠지. 거울을 비춰볼 필요도 없지. 

임새옥이 버둥거리며 일어나자 방 안이 조용해졌다. 

“제가 어찌 책임을 주인께 돌리겠습니까. 연저아 탓은 더더욱 아닙니다. 연근 과편을 만들 줄 모르는 게 아니에요. 날이 추운 데다가 귀한 분들께서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으니 허한이 드셨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연근을 화퇴와 함께 끓인 거예요. 드시기에 담백하고 한기도 가시리라 생각했어요. 소인이 시골 사람이라 법도를 몰라 경솔하게 굴어 귀한 분들 심기를 언짢게 했습니다. 어리고 생각 없어서 그런다 생각하시고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소인이 겉보기엔 튼실해 보여도 실은 허약합니다. 맞는 게 두려운 게 아니라, 혹시 무슨 일이 생겨 심기를 더 언짢게 할 일이 생길까 두렵습니다.” 

임새옥은 이를 악물고 덜덜거리면서 긴말을 내뱉고는 기운이 다 빠져서 맥없이 주저앉았다. 그녀가 이런 말을 하리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는지, 한순간 모두 얼이 빠졌다. 별안간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가장 안쪽에 앉아 있던 그 이야라는 사내가 수저를 들고는 탁자 가장자리에 있는 그릇의 탕을 한 숟가락 떠서 후루룩 마셨다. 

“정말로 내가 잘못했구나.”

그는 탕을 한 입 맛보고는 입맛을 다시며 도화안을 가늘게 뜨고는 말을 이었다. 

“내가 참으로 어리석었어. 연근을 과편으로만 먹었다니. 연근을 낭비했는걸.”

그러더니 손을 뻗어 탕 그릇을 자기 앞으로 당기면서 모두를 향해 싱긋 웃었다. 

“맛있군요. 그러니 이건 나 혼자 먹으렵니다.”

방 안에 있는 모두가 한숨을 돌리며 미소를 지었다. 연저아를 제외하고. 그녀의 얼굴엔 아직 눈물이 달려 있었다.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괜히 이 아이를 억울하게 했군. 누이, 아무래도 내가 사과해야겠어.” 

“당연히 그래야지.” 

이용이 정색하고 하는 말에 이씨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엄숙했던 표정을 지우고 급히 임새옥 곁으로 다가왔다. 이용이 첫마디를 했을 때, 월낭은 일찌감치 사람을 시켜 임새옥을 의자에 부축해 앉혔다.

“화아, 용가아가 미안하다는구나. 그러니…….”

임새옥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주던 이씨는 얼굴이 납빛이 되어 두 눈을 꼭 감고 정신을 못 차리는 임새옥의 모습에 목소리를 높였다. 

“여봐라! 의원을 모셔와라!” 

다음 날 오후가 되어서야 깨어난 임새옥은 눈을 뜨자마자 주위가 온통 따듯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닥엔 두툼한 요가 깔려 있으며, 제 몸 위에도 볕에 잘 말린 냄새가 좋은 새 이불이 덮여 있었다. 제일 중요한 건, 몸이 은근히 쑤시긴 해도 차라리 죽길 바랄 정도로 아프진 않았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사정을 봐줘서 살살 때린 모양이었다. 그렇대도 임새옥은 이를 악물고 하늘에 계신 여러분들의 안부를 물었다.

휘장이 젖히길래 바라봤더니 이씨가 청아를 데리고 들어왔다. 임새옥은 그럼 더 때려라, 하던 말이 귓가에 울려서 일부러 눈을 감고 자는 척했다.

“아직 못 깬 것이냐?” 

이씨가 침상 앞 둥근 의자에 앉으면서 속삭였다. 청아는 고개를 숙이고 끄덕이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부인, 이 아이, 보기엔 튼튼한데, 정말로 잘못된 건 아니겠지요?”

이씨가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가난한 집 아이지만 제 부모의 보물이다. 살면서 이렇게 맞아 본 적이 없겠지.” 

방 안이 조용해졌다. 이씨가 제 이마를 살며시 쓰다듬는 느낌이 들었다. 

“안채로 가봐라. 관인더러 술 많이 드시지 말라 해라. 용가아만큼 드시지 못하니까.”

청아가 재빠르게 나가자 이씨는 잠시 가만히 있다가 말을 이었다. 

“날 원망하니?”

임새옥은 제가 자는 척하는 걸 이씨가 눈치챈 걸 깨닫고 멈칫했다. 하지만 자는 척한 김에 끝까지 하기로 하고 눈을 감은 채 대답하지 않았다. 이씨의 손이 살며시 이마의 머리를 쓸어넘기는 느낌이었다.

“너는 괜찮은 아이다. 하지만 이런 성격으로는 소가에서 버티지 못해. 이러니 내가 마음이 놓이겠니. 오늘 맞은 걸 평생 기억해야 한다. 미움도 기쁨도 다 속에 감추고, 전부 드러내서는 안 된다.”

이게 무슨 말이지? 

임새옥은 이씨가 천천히 하는 말에 혼란스러워졌다. 다음 말을 기다리는데, 문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놀랍게도 소금남인 모양이었다. 임새옥의 서늘해졌던 마음이 조금은 따스해졌다. 주인 두 사람이 진심으로 자기를 걱정하는 듯했다. 

“용가아도 많이 마시지 않았지요? 관인도 참, 이 추운 날 모자도 쓰지 않고요.”

“어찌, 아직 깨지 않았소? 의원은 뭐라고 하고? 근골은 괜찮고?” 

소금남이 물었다. 

임새옥은 자는 척하는 게 어색했지만 그나마 얼굴을 안쪽으로 두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이 그녀를 배신했으리라. 

그러고 있는데 이씨 목소리가 들렸다. 

“월낭은 영리한 사람이에요. 우리 집 아이를 모질게 때리진 않았을 거예요. 겉만 상했을 거예요.”

“그럼 됐군. 대체 이게 무슨 난리인지. 용가아는 어찌 그런 아이가 난리 부리는 걸 가만두는 건지.” 

소금남의 말에 언짢은 기색이 느껴졌다. 이씨가 빙그레 웃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아이의 여인들이…… 따지고 보면 화아 탓이에요.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좀 참다가 울면서 날 찾아올 것이지. 때려 버렸으니 이유가 있었대도 어쩔 도리가 없지 않아요.”

“시골 아이가 어디 그런 속셈이 있겠소. 다 용가아 탓이지. 여인들을 그리 많이 들이니 없는 문제도 생기는 거요.” 

소금남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임새옥도 그제야 제 잘못이 무엇인지 깨닫고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조금 남아 있던 이씨를 향한 원망도 사라져서는, 이제 자는 척 그만하고 일어나야 하나 망설이는데 이씨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우리 같은 집안에서 사내 곁에 사람이 없는 게 이상하죠. 저 아이들이 아무리 난리를 부려도 용가아의 처 앞에서는 고분고분해요. 그것만 해도 괜찮은 거겠죠. 나도 이제는 알겠어요.”

“혜낭, 당신…….”

소금남이 곧바로 긴장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는데 이씨가 말을 잘랐다. 

“화아가 시골아이긴 해도 보기 드문 좋은 아이예요. 내가 비록 몸이 좋지 않아도, 몇 년은 가르칠 수 있어요. 앞으로 당신 곁에서 분명 잘할 거예요. 다만 성격이 고집스러우니, 혹시라도 남의 함정에 빠지면 관인이 잘 감싸 주세요…….”

“당신 그게 무슨 소리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금남이 큰소리로 말을 끊었고, 이씨는 입을 다물었다. 방이 조용해지고 임새옥의 조금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 

“다시는 그런 소리 마시오. 나도 내려놓았는데 당신은 왜 내려놓지 못하고 이러는 것이오.” 

소금남은 이씨의 손을 잡고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전가아가 곧 깨겠소. 이만 갑시다.” 

임새옥은 부부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진 다음에야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마에 땀이 줄줄 흘렀다. 

다행이다 다행. 저 남자가 그런 일에 관심이 없어서. 

한숨을 내쉰 임새옥은 더는 자는 척하지 못하고 몸에 힘을 주며 일어나 보려고 했다. 그러나 하반신이 화끈화끈 아파서 아이고 하고 외치며 다시 쓰러졌다. 마침 그때 들어온 청아가 약그릇을 내려놓고 재빨리 달려와 그녀를 부축했다. 

“움직이지 마. 상처 터질라.” 

임새옥은 아파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언니, 하고 부르고는 말을 잇지 못하자, 청아가 웃음을 터트렸다. 

“약 바르고 며칠 지나면 나을 건데, 울 것까지 있어? 이런 애가 무슨 용기로 이야한테 그런 식으로 말했대? 어느 시녀가 잘못을 그렇게 비니?”

청아는 그녀의 이마를 콕콕 찌르며 말하다가 또 피식 웃고는 말을 이었다. 

“그건 비는 게 아니라, 좋은 사람을 억울하게 때린 거라고 이야를 비난한 거라고. 알겠니?”

임새옥은 콧방귀를 뀌고는 마음속 가득한 억울함을 감추려고도 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고작 연근이잖아.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사람을 이렇게 때려? 그 여인이 날 때리지 않았으면 내가 그랬겠어? 게다가 내가 자기 종도 아닌데, 왜 맞아야 해?”

청아는 또 한 번 피식 웃고는 약그릇을 들고 와 한입씩 약을 먹였다. 

“대단한 게 아니야? 연근은 남쪽에서도 몇 군데만 나는 채소야. 아주 적은 양만 나온다고. 경성에 계신 황제도 해마다 몇 광주리 드실 뿐이야. 우리 집이랑 이야 댁에는 해마다 여남은 개 돌아오는 게 다야. 이 나이 되도록 난 딱 한 조각 먹어봤다. 그것도 부인 덕분에. 그런데 넌 뭐?”

청아는 나머지 말은 하지 않고 의미심장한 눈으로 임새옥을 힐끔 보고 약그릇을 내려놓았다. 

“생각났다. 너 어떻게 그렇게 술술 그 요리를 만든 거니? 자주 쓴 것 같던데? 설마 네 집에서 이걸 자주 먹었니?”

임새옥은 심장이 쿵쿵 뛰어서 이어지는 말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연근이 그렇게 귀하다는 말에 작은 벌레가 몸 안을 마구 헤집는 느낌이었다. 얼마나 헤집는지, 벌떡 일어나 앉을 정도였다. 

연근이 이곳에선 그렇게나 귀하다고? 설마 지금껏 연못에서만 재배하는 건가? 그래서 재배량이 제한되고? 십방촌에 땅은 얼마 없지만, 습지는 많아! 연뿌리 하나만 있으면 연근 밭으로 만들 수 있어. 그건 연근이 아니라 돈이야! 많은 돈! 그럼 내가 몸 팔아서 노비가 될 까닭이 있어? 지주라면 모를까! 그래, 이게 내 미래야! 

임새옥은 온몸이 뜨거워져서 청아의 손을 덥석 잡았다. 

“언니야, 연뿌리 하나만 구해줘.” 

청아는 하마터면 약을 쏟을 뻔해서, 팔뚝이 아플 정도로 잡힌 손을 다급하게 떼어냈다. 

“내가 그걸 어디서 구해? 날 팔아도 연근 하나 못 구해! 그걸로 뭐 하려고? 너, 연저아에게 연근도 빚졌거든? 뭐로 갚을지 고민이나 해.” 

“그게 뭐 대수라고! 고작 연근 아니야? 내가 한 개 썼으니까, 내년엔 연근을 한 묘 돌려주지 뭐!”

임새옥이 헤헤 웃으며 하는 말에 청아는 입을 비죽였다. 너무 맞아서 정신이 어떻게 됐구나, 하며 코웃음 치려는데 밖에서 손뼉 치는 소리가 들렸다. 

“좋다. 이건 네가 한 말이다. 나중에 연근 한 묘, 꼭 돌려줘야 한다.” 

임새옥과 청아의 안색이 동시에 변했다. 백옥 미인 같은 이용이 휘장을 걷고 안으로 들어왔다. 

임새옥은 청아의 놀라고도 부러운 눈빛, 그리고 이야에게 문안 올리라고 자꾸 재촉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무리 봐도 ‘너 매 맞은 보람 있다!’ 하는 것 같아서 쓴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그래, 현실이 그랬다. 이런 신분 여인들의 희비는 모두 주인 나리들에 달렸으니 말이다. 그녀는 어서 이 노비 신세에서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나 지어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이용이 앉으려고 하자, 청아가 후다닥 달려가 손수건으로 자리를 닦으며 웃음 지었다. 

“이야, 술 드시자마자 나오시다니요. 바람 쐬면 머리 아프니까 조심하세요.”

이용은 자리에 앉아 빙그레 웃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청아, 어른이 다 되었구나. 갈수록 세심해지는걸. 누이에게 말할 테니 나와 함께 우리 집으로 가자꾸나. 어떠냐?”

청아는 금세 얼굴이 확 붉어져서 몸을 배배 꼬았다. 

“매일 놀리시고! 이야 곁에 있는 분들이 다 어떤 분인데요. 저는 언니들 신발 들어줄 자격도 없는걸요.” 

“됐다. 누이가 널 얼마나 아끼는데 내게 주겠느냐? 내가 듣기로는…….”

이용은 싱긋 웃으며 말하다가 말꼬리를 흐리며 청아가 건네는 뜨거운 차를 천천히 마셨다.

“뭐라고 하셨어요?”

청아는 얼굴이 굳어서 다급하게 묻고는 제 행동이 너무 당돌했다는 걸 깨달았다. 이용이 힐끔 보며 웃자 발을 동동 구르다가 부인에게 간다고 돌아서서 나가버렸다. 

임새옥은 그제야 이용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어쩐지 조금 긴장됐다. 야살스럽고 곱상하게 생긴 이 남자는 행실도 그러했다. 딱 봐도 집에서 오냐오냐 자란 금수저 중에도 금수저였다.

이런 사람들은 보통 변덕이 죽 끓듯 하니, 부디 아까 했던 말이 성질을 거스르지 않았길 바랄 뿐이었다.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그가 이마를 짚으며 몸을 앞으로 숙였다. 술 냄새가 훅 올라와서 바라봤더니 눈이 몽롱하고 얼굴이 발그레한 것이 술을 많이 마신 듯했다. 임새옥은 더 긴장돼서 더듬더듬 대답했다. 

“화입니다. 조화.” 

이용이 피식 웃더니 이름을 읊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이름이구나.”

그리고는 차를 또 한 모금 홀짝이더니 살짝 넋이 나간 듯이 중얼거렸다. 

“아차, 내가 여기엔 왜 왔더라.” 

임새옥은 웃음이 날 것 같았다. 

정말로 취했네. 

방을 둘러본 그녀는 자기가 부인 내실의 곁방에서 잠들었던 걸 떠올렸다. 이 사내는 객방에서 부인을 만나러 가려다가 잘못 들어온 듯했다.

“이야, 부인께 가시려는 거죠? 아까 여기서 나가셨으니 아마 침소에 드셨을 거예요. 옆방으로 가보세요.”

“아.” 

이용은 일어나서 비틀비틀 입구까지 갔다가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이 돌아서서 임새옥을 빤히 바라봤다. 

“아니지. 아까 누군가 연근 한 묘를 돌려준다고 했던 것 같은데. 네가 그런 것이냐?” 

“아닙니다, 아니에요. 제가 어찌 감히 그런 말씀을 드리겠어요.”

임새옥이 다급하게 손을 내젓자 이용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가 휘장을 걷고 나갔다. 임새옥은 안도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늘이 점점 어두워질 때쯤 그녀가 깼다는 소식을 청아에게 들은 이씨가 다시 그녀를 보러 왔다. 이씨가 위로하는 말을 건네자, 임새옥이 잘못했다고 하며 감사 인사를 했고, 이씨는 바로 돌아갔다. 첩으로 들이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저녁엔 손 어멈이 죽을 들고 와서 몇 마디 나누고 돌아갔다. 

아무래도 다친 몸이라 임새옥은 금세 또다시 가물가물 잠들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나고, 침상에서 내려가 조금씩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청아는 발에 땀이 날 정도로 바빠서 그녀를 보러 오지 못했다. 임새옥은 이용 곁에 있는 귀한 언니들과 또 부닥칠까 봐 그냥 방에서 나가지 않고 틀어박혀 있었다.

이씨의 내실과 가까운 곳이라, 이용과 그의 애첩들이 웃는 소리가 수시로 들렸다. 게다가 곁방을 잘 꾸며 놓은 것으로 보아 이씨가 자주 쓰는 듯해서, 몸이 나은 후에는 계속 있기가 거북했다. 손 어멈이 밥을 가지고 왔을 때 거처로 돌아가겠다고 이씨에게 전해달라고 했는데, 그냥 여기서 몸조리 잘하라는 대답을 들고 돌아왔다. 손 어멈이 머뭇대다가 덧붙였다. 

“아까 대문 쪽에서 얼핏 네 아비를 본 것 같다.”

임새옥은 그 말을 듣자마자 허둥지둥 옷을 입고 머리를 빗었다. 그러게, 벌써 중순이라 조삼랑이 돈을 받아 가는 날이 지났다. 

“똑똑히 보진 못했어. 몸이 막 나았는데, 진정해라. 나가서 바람 쐬지 말고, 내가 가서 물어보고 오마.” 

손 어멈이 매무새를 고쳐주며 하는 말에 임새옥은 괜찮다고 하고 방에서 나갔다. 우선 거처에 들러 돈을 챙긴 다음, 잠시 생각하다가 숨겨놨던 씨앗을 들고 다급하게 대문으로 향했다. 

“화저아, 천천히 가야지! 상처 벌어진다!” 

손 어멈은 마음도 아프고 조급해져서 연신 당부했다. 임새옥은 몇 걸음 못 가서 다리가 지근지근 쑤셨다. 대문까지 갔을 땐 이마에 식은땀이 스며 나왔다. 얼핏 보니 역시나 조삼랑이 대문 앞에 쪼그리고 있었다. 그녀는 서둘러 숨을 고르고 걸음도 아무렇지 않은 척 다잡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버지, 방금 왔어요?” 

조삼랑이 얼굴을 흐린 채 일어섰다. 

“반나절이나 기다렸다. 며칠 전엔 얼굴도 못 봤고.” 

그녀는 새빨갛게 언 조삼랑의 얼굴을 보고 미안해서 얼른 문간방을 가리켰다. 조삼랑이 손을 내저었다. 

“너무 오래 나와 있었다. 집에 사람이 없어서 어서 돌아가야 한다.”

바로 돌아갈 생각이라는 걸 알아챈 임새옥은 재빨리 돈을 건네고 유소호에게 전해달라고 종이봉투도 주었다. 조삼랑은 의아한 듯 종이를 내려다봤다. 

“무엇이냐? 집안 형편도 좋지 않은데 남에게 돈 쓰지 말아라.” 

“산 거 아니에요. 그냥 전해주시면 돼요. 씨앗이에요.” 

임새옥이 웃으며 하는 말에 조삼랑은 그 자리에서 봉투를 열어 보았다. 기름으로 짜도 많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얼마 안 되는 씨앗임을 확인하고는 그러려니 했다.

“참, 지난달은 돈이 적던데, 어째서냐.” 

문득 떠오르는 듯이 묻는 말에 임새옥이 멋쩍은 듯 웃어 보였다. 

“오라버니들이 성에 갈 때마다 먹을 걸 가져다줘서요. 매일 얻어먹을 수가 없어서 돈을 좀 줬어요.”

“음. 쓸데없이 그런 돈 쓰지 말아라. 여기서 공짜로 먹고 지내는데도 부족하냐. 네 아비, 어미, 아우 먹을 것도 챙겨야지.” 

임새옥이 앞으로 안 그러겠다고 약속하자 조삼랑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돌아갔다. 임새옥은 잠시 서 있느라 등이 다 축축해졌다. 그녀는 조삼랑이 멀리 간 후에야 한숨을 돌리며 벽에 몸을 기댔다. 두 다리가 덜덜 떨렸다. 근골은 다치지 않은 모양이지만, 그래도 심하게 아팠다.

서서히 돌아서는데 다급한 말발굽 소리가 들리더니 검은 장포를 입은 사람이 말을 타고 쏜살같이 달려와 문 앞에 멈춰 섰다. 이용이었다. 벌써 나와 있던 복생이 말고삐를 잡으며 인사했다. 

“이야, 오셨습니까.” 

말에서 내린 이용은 여긴 너무 춥다고 툭 내뱉고는 대문 안으로 걸음을 서둘렀다. 임새옥은 허둥지둥 문에 기댄 채 자세를 바로 하고는 고개를 숙이며 그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응? 너, 그 아이 아니냐.”

이용은 스쳐 지나다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며 물었다. 

“이제 다 나았지? 걸을 수 있으니 되었다.” 

“마음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야.”

“뭘 그런 말을. 내가 마음 쓰는 건 연근 한 묘다. 화아, 잊지 마라.”

임새옥은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들고 웃음을 쥐어짰다. 

“이야, 무슨 그런 말씀을요. 소인이 어디서 그리 귀한 것을 구하겠어요.” 

고개를 들고 봤더니, 이용은 오늘도 귓가에 꽃을 꽂고 있는데 처음 본 날처럼 뽀얗고 보드라워 보이지 않았다. 막 바람을 맞으며 말을 타서인지, 냉기가 느껴지는 얼굴이 다른 날처럼 유약해 보이지는 않았다. 

이용 역시 지금에야 임새옥의 얼굴을 제대로 보고는 눈을 가늘게 뜨며 그녀의 볼을 톡 쳤다. 

“음. 오늘 제대로 보니 꽤 예쁘장하구나. 연근을 못 갚으면 너로 갚아라.”

갑작스러운 희롱에 깜짝 놀란 임새옥은 화들짝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다리가 아프니 중심을 잃고 그대로 섬돌 아래로 미끄러졌다. 땅바닥에 코를 박을 것 같은 순간, 이용의 손에 잡혀 그대로 그의 품에 안겼다. 키가 딱 이용의 가슴 높이라, 그대로 그의 가슴에 코를 박았다.

“그리 기쁘냐? 가자, 바로 나와 누이께 가자꾸나.” 

이용이 큭큭 웃었다. 그때 이용의 희첩들이 내원에서 달려 나오다가 마침 그 장면을 보고 하나같이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마침 잘 왔다. 오늘부터 자매 한 사람 더 늘었단다. 더 떠들썩해지겠구나.” 

이용이 하하 웃으며 임새옥의 손을 잡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임새옥은 다급해져서 땀을 삐질 흘렀다. 손을 빼내려고 버둥거려 봐도 사내의 힘을 이길 수가 없었다. 

“이야, 이야! 안 됩니다! 안 돼요. 소인, 가당치 않습니다.” 

이용이 밖에서 누군가를 데리고 온 줄 알았던 여인들은 그제야 임새옥이라는 걸 알아봤다. 특히 연저아의 얼굴이 곧바로 창백해지고 눈물이 고이더니 손수건이 꽈리 모양이 될 정도로 힘껏 비틀었다. 

역시나 월낭이 먼저 나서며 허리를 숙이고 맞이했다. 

“어쩐지 오늘 아침에 까치가 울더라고요. 무슨 일인가 했더니, 이런 경사가 생겼네요. 정말 축하드립니다. 고내내께서 기다리고 계셔요. 어서 가서 말씀드리셔요.” 

임새옥은 손이 잡힌 채 빠른 속도로 끌려가느라 다리가 찢어질 듯이 아팠다. 마음도 급하고 몸도 아픈데 월낭의 말에 저도 모르게 정말로 눈물이 흘렀다. 이용의 손이라도 깨물어 버리고 싶지만, 이번엔 자기가 노비라는 사실을 단단히 기억하고 있었다. 주인을 다치게 하는 일은 절대로 다시 할 수 없었다. 

임새옥이 눈물을 흘리는 걸 본 이용이 아이고, 하면서 손을 놓았다. 

“농 한 번 한 것인데 울긴 왜 우는 것이냐! 재미없게!” 

이용이 혼자 휘적휘적 가버리자, 월낭 일행은 대체 무슨 일인지 몰라 하며 서로 얼굴을 바라봤다. 임새옥이 손을 감싸쥐고 엉엉 울며 가버리자 연저아가 그제야 키득 웃었다.

“우리 이야는 꼭 저러신다니까. 농을 참 잘하셔. 언니, 그 까치는 쓸데없이 울었네요.” 

연저아의 말에 다들 아무런 말 없이 빙긋 웃었다. 월낭도 그녀를 힐끔 볼 뿐 아무 소리 하지 않고 허둥지둥 이용의 뒤를 쫓아갔다. 

울면서 거처로 돌아온 임새옥은 분통이 터졌다. 현대였다면 자기가 분명 따귀를 때렸지, 이런 별꼴을 당했을까. 하지만 빌어먹을 고대 사회에 와 있으니 신분에 깔려 죽을 것 같았다. 

침상에 엎드려서 엉엉 우는데 청아가 문을 열고 들어오다가 어리둥절해져서 무슨 일인지 물었다. 임새옥이 훌쩍이며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자, 청아가 깔깔 웃었다. 

“좋은 일인데 왜 울어?”

임새옥이 코웃음 치며 눈물을 훔쳤다. 

“난 절대로 첩은 안 될 거야!” 

청아가 잠시 잠자코 있다가 말을 꺼냈다. 

“사실 이야에게 갈 수 있으면 좋지. 이야가 얼마나 잘해주시는데. 곁에 사람이 많긴 해도, 다 법도가 있어. 이부인도 현명한 분이고. 우리 노야 곁에 아무도 없지만, 솔직히 이야께 가는 게 나아…….”

임새옥은 갈수록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우리 노야’라는 말에 이씨가 그날 방에서 했던 말이 곧바로 떠올랐다. 그녀는 마음이 다시 조마조마해져서 서둘러 청아의 말을 자르고 물었다. 

“청아 언니, 어째 좀 이상하게 들리는데?” 

청아의 얼굴이 잠시 멍해지더니, 이내 웃었다.

“이상하긴 뭐가? 싫으면 됐어. 이야는 원래 농을 잘하셔. 마음에 담아둘 것 없어.”

임새옥은 의심스러운 듯 그녀를 힐끔 바라봤다. 청아의 눈빛이 조금 빛나는 것 같은데 대체 뭘 숨기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왜 다들 남의 첩이 되는 게 굉장한 복인 것처럼 여기는지 모르겠다고 구시렁거리고는 그냥 잊어버렸다. 

몸이 다 나은 임새옥은 누가 뭐래도 곁방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으려고 했다. 이씨도 강요하진 않았다. 오히려 곁에 있던 연저아가 해바라기 씨를 깨물며 분수를 알긴 하네, 라며 웃기만 했다.

막 점심 식사를 마치고 방 안에 모여 있던 사람들도 모두 돌아간 때라 방 안엔 이씨, 이용, 그리고 연저아만 남아 시중들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 이씨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울었는지 눈가도 살짝 달아올랐고.

이용은 줄곧 화항에 비스듬히 기댄 채 가물가물 졸다가 연저아의 말에 눈을 떴다. 

임새옥은 이용이 여기에 있는 줄 알았다면 절대로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이 다 돌아갔다고 청아가 그랬는데, 보물단지 동생이 아직 있을 줄 어찌 알았으랴. 임새옥은 이용의 나른한 눈빛과 마주치자 저도 모르게 솜털이 다 곤두섰다.

힐끔 임새옥을 보던 이용의 시선이 연저아를 향했다. 

“연아, 창상약 아직 남았지? 화저아에게 좀 주어라. 여자애가 흉이 남으면 안 되지.” 

이용은 나른하게 그렇게 말하고는 금세 다시 눈을 감았다. 연저아가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했다. 

“이야도 참. 남의 집 여자애 달래서 뭐 하시려고요? 어디 남았을까요. 제 얼굴의 상처도 아직 다 낫지 않은걸요.” 

임새옥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지만, 이씨의 의문스러운 시선이 자신을 향했다가 한참 만에 시선을 돌리는 게 느껴졌다.

이용이 몸을 돌리면서 말했다. 

“없으면 됐다. 걷는 게 불편해 보이길래 물어본 것뿐이다.” 

그러고는 눈을 뜨고 임새옥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어차피 며칠 뒤면 돌아가는걸. 화저아, 나와 함께 돌아갈래? 약을 주마.” 

임새옥은 식겁해서 하마터면 튀어 오를 뻔했다. 

“감사합니다, 이야. 소인, 이미 좋아졌습니다. 괜찮습니다.” 

임새옥이 허둥지둥 손을 저으며 하는 말에 이용이 쳇, 하고는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자 이씨가 입을 열었다. 

“여기 온 지도 한참 되었잖니. 쓸데없이 돌아다니지 말고 얼른 돌아가라.”

화제가 바뀌는 걸 본 임새옥이 물러가겠다고 말하려는데, 이용이 어느새 몸을 일으켜 앉은 다음 목소리를 높였다. 

“누이, 내가 괜히 하는 말이 아니라, 누이 생각이 너무 많아요. 그게 무슨 큰일이라고, 자형이 누이를 데리고 집 나올 정도로 난리를 부려요. 노부인이 소식이 새지 못하게 막아서 그렇지, 이 소문이 퍼지면 어찌 얼굴을 들고 살려고요. 며칠 동안 내 얼마나 누이를 설득했소? 설마 새해도 밖에서 맞이하려고요?” 

임새옥은 심장이 떨릴 정도로 놀라서 아무런 말도 없이 그대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이씨의 나직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무슨 큰일이냐고? 사내들이 어찌 여인네의 마음을 알겠니.” 

“다른 건 몰라도 때린 건 누이 잘못이죠. 그건 노부인의 얼굴을 때린 거나 마찬가지지. 자형이 누이를 애지중지해서 다행이지. 어찌 감히 이렇게 집을 나올 생각을…….”

임새옥은 재빨리 걸음을 서둘렀다. 뒤에서 들리는 이용의 말도 차츰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 후원에 서서 기둥을 붙잡고 숨을 골랐다. 급하게 걷느라 다리가 심하게 아팠다.

소씨 부부가 홧김에 집을 나와 이곳에 온 것이구나! 어쩐지 물어도 청아가 대답하지 않더라니. 장사는 무슨. 이 촌구석에 장삿거리가 뭐가 있다고!

그나저나, 무슨 일로 집을 나올 정도로 난리가 난 걸까. 듣자 하니 소금남이 장남이라던데, 이런 불효를 저지른다고? 

임새옥은 내심 호기심이 생겼지만, 이내 곧바로 억눌렀다. 

나랑 무슨 상관이라고. 그러고 보면 이용은 돌아가자고 설득하러 온 모양이네? 어쩌면 새해가 되면 집에 갈 수 있을지 몰라! 

그 생각에 임새옥은 기뻐서 폴짝폴짝 뛰었다. 부디 이씨가 집으로 보내준다는 약속을 지키길 바랐다.

임새옥은 밤이 될 때까지 내원 가까이 가지 않고 부엌에 숨어 돕기만 했다. 연근 사건이 있고 난 뒤로 그녀는 혹시라도 저분들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다시는 요리를 하지 않았다. 손 어멈하고 떠들고 있는데 청아가 생글생글 웃으며 왔다. 

“화아, 네가 수고 좀 해야겠다. 이야께서 널 꼭 집어서 식사 전에 드실 간단한 걸 만들라 하시더라.” 

“아니, 난 못해. 게다가 상처도 아직 다 낫지 않았어.” 

임새옥이 손을 저으며 하는 말에 청아가 머리를 콕콕 찔렀다. 

“이야라니까! 이야가 언제 여인네랑 얼굴 붉힌 적 있니? 뭐가 무서워서? 어서 가서 만들어. 담백한 걸로 해.” 

임새옥은 그제야 심드렁하게 일어났다. 부엌을 둘러보고 잘라놓은 무 몇 조각과 완자를 골라서 완자탕을 만들어 아궁이 위에 탁 올려놓았다. 

“다됐어. 가지고 가.” 

손 어멈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청아는 이렇게 빨리 될 줄 몰랐던 터라 뒤를 돌아봤다. 두 사람 모두 궁금한 듯 보다가 특이한 것 없는 평범한 탕을 보고는 의아한 듯 이게 다 된 거냐고 물었다. 임새옥이 그렇다고 대답하고는 앉아서 채소를 골랐다.

요리사가 저쪽에서 식사가 다 됐다고 소리치자, 청아는 할 수 없이 서둘러 돌아서서 사람을 불러 식사를 가져가게 했다. 그리고 임새옥에게 말했다.

“수고스럽겠지만 이건 네가 대신 옮겨줘. 부인 곁방에 두면 돼. 이따 알아서 가져갈 거야.” 

“그냥 언니가 가져다주면 되지, 굳이 다친 내가 가야 해?” 

임새옥이 입술을 비죽이며 하는 말에 청아가 풋, 웃고는 되돌아와 그녀의 이마에 꿀밤을 먹였다. 

“갈수록 꾀병이 느네. 솔직히 말해줄게. 이 탕은 내가 가지고 갈 게 아니라 알아서 가지고 갈 사람이 있어. 넌 그냥 거기에 두기만 하면 돼.” 

청아는 그 말만 남기고 서둘러 달려나갔고, 임새옥도 그제야 구시렁거리면서 일어나 탕을 들고 내원으로 향했다. 저 멀리 청아가 이용의 어멈 몇 명을 데리고 후원에서 부엌으로 달려가는 게 보였다. 

이씨의 거처엔 불이 환하게 켜있고 웃음소리가 수시로 흘러나오는데 곁방은 캄캄했다. 임새옥은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 방에 며칠 지냈더니 컴컴해도 익숙해서 금세 탁자 앞으로 가서 탕 그릇을 내려놓았다. 쑤시는 팔뚝을 돌리는데 갑자기 누구냐고 묻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 물음에 임새옥은 혼비백산해서 그대로 돌아서서 입구로 달려갔다. 당황한 데다 다리도 민첩하게 움직이지 못해서 탁자 곁에 있는 둥근 의자에 부딪히고 말았다. 게다가 곁에 있던 화분도 건드리는 바람에 방 안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곳저곳에 부딪히면서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불이 켜지는 소리가 나더니 눈앞이 환해졌다. 이용이 머리를 풀어 내리고 내의만 입은 채 침상 가에 앉아서 등불을 들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낭패스러운 모습에 소리 내어 웃고는 일어서서 그녀를 부축하러 다가왔다. 

“내가 그리도 무서우냐? 이렇게까지 놀랄 정도로?” 

임새옥은 그가 저를 잡기 전에 서둘러 손을 내저으며 겁먹은 얼굴로 기어 일어나려 했다. 문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이씨가 등불을 들고 맨 앞에서 들어왔다. 

“왜 그러니? 뭘 넘어뜨린…….”

방 안에 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 이씨의 말이 뚝 끊기고 얼굴도 굳었다. 연저아 일행도 어느새 몰려오더니, 무슨 일인가 놀라고 당황해서 표정이 다 굳었다. 사람들은 옷이 흐트러진 이용, 여전히 바닥에 반쯤 엎드린 임새옥을 얼떨떨하게 바라봤다. 

“어머, 이건 또 뭐래요? 이야, 조심 좀 하시지. 한기 들면 어쩌시려고.”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연저아가 손수건을 흔들며 깔깔 웃고는 성큼성큼 다가가 이용에게 장포를 걸쳐주었다. 

임새옥은 겨우 일어서서 고개를 들고 이씨를 바라봤다. 새파랗게 질린 그녀의 얼굴에 깜짝 놀라 속으로 큰일 났다고 외쳤다. 눈앞에 매가 떨어지는 것 같아서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다시 무릎을 꿇었다. 

“소인, 탕을 가지고 왔다가 멍청하게 넘어져서 이야를 놀라게 했습니다. 부인, 소인이 잘못했어요.” 

이용이 피식 웃고는 이마를 문지르며 입을 열었다. 

“괜찮다, 괜찮아. 내가 불 켜는 걸 잊었다. 어서 일어나라. 상처 도질라.” 

탁자 위에 놓인 탕 그릇을 본 연저아가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러게, 왜 탕이 안 오나 싶어서 직접 부엌에 가볼 생각이었는데. 네가 직접 가지고 왔구나? 잘했다. 내가 직접 가지 않아도 되잖니. 고맙다, 얘.”

임새옥은 얼떨떨해졌다. 이마에서 땀이 또르르 떨어졌다. 

일이 잘못됐어! 

허둥지둥 고개를 들어 이씨를 바라보는데, 미처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이씨가 손을 치켜들더니 찰싹하고 뺨을 내리쳤다.

“이런 천박한 것! 이야가 있는 방에 어딜 함부로 들어오느냐?”

이씨가 다시 임새옥의 뺨을 내리쳤다. 

임새옥은 입 안에 피 냄새가 나고 귀만 윙윙 울릴 뿐, 이씨의 말은 한순간도 들리지 않고 원망 가득한 얼굴만 보였다. 

월낭이 이미 다른 여인들과 함께 이씨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고내내, 고내내, 손 다치십니다.” 

이용은 이씨의 분노한 모습에 경악해서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누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탕 가지고 온 것뿐인데, 무슨 생각을 하는 겁니까?”

“탕? 음식?” 

이씨가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문기둥을 짚고 서서 눈물을 글썽이며 모질게 말했다. 

“이런 일이 처음인가?” 

그러고는 방 안에 있는 여인들을 바라보며 싸늘하게 웃었다. 

“너희들도 흔히 보는 일이겠지? 몇몇은 흔히 하는 일일 테고?” 

그녀의 말에 월낭 일행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이용은 웃음을 터트렸고, 임새옥은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더 맞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씨 발치로 기어갔다. 

“부인, 아니에요. 전 이야가 여기 계신 줄 몰랐어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씨가 손을 치켜들더니 다시 뺨을 때렸다. 임새옥은 더는 참지 못하고 엉엉 울었다. 이씨가 손을 부들부들 떨며 손가락질을 하더니 한참 동안 이를 악물고 있다가 별안간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널 잘못 봤구나. 너, 너…….”

이씨가 휙 돌아서서 가버리자 이용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무슨 일이냐!” 

이용이 발을 구르며 이씨를 따라 나가자마자 연저아가 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대로 임새옥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다리를 들어 임새옥의 가슴을 두어 번 걷어차며 모질게 외쳤다. 

“주제도 모르는 년! 오줌 싸고 얼굴이나 비춰 볼 것이지. 이야께서 조금만 잘해줬다고 사내를 탐해? 감히 네 주제에?” 

다른 사람들은 말리지도 않고 그저 보기만 했다. 임새옥은 뜬금없이 생긴 이런 일에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는데 연저아에게 얻어맞자 자신도 모르게 눈에 불을 켜고 고함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연저아와 한데 엉겨 붙어서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연저아가 언제 이런 싸움을 해봤을까. 임새옥보다 일고여덟 살은 더 많지만,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머리카락은 산발이 되고 얼굴도 두들겨 맞았다. 아무리 해도 임새옥을 떼어놓지 못하니 화도 나고 무섭기도 해서 울며불며 난리가 났다. 

월낭 일행은 웃으며 지켜보다가, 연저아가 당할 만큼 당한 걸 보고서야 다가가 두 사람을 떨어뜨렸다. 임새옥은 마당으로 끌려가 무릎을 꿇은 채 이씨의 처분을 기다렸다. 

마당엔 벌써 사람들이 여럿 서 있었다. 식사를 들고 온 어멈들은 막 음식을 들고 왔다가 이런 일이 생겨 버려서 들어가지도 못하고 물러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씨가 아무런 지시도 하지 않으니 마냥 마당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청아가 안채의 휘장을 들어 올리고 나왔다. 불빛 아래 조금 붉어진 눈시울이 보였다. 

“부인께서 들어 오라셔.” 

청아가 임새옥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그녀는 근심 가득한 얼굴로 임새옥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주었다. 임새옥은 힐끔 그녀를 보고는 입가의 핏자국을 닦으며 싸늘하게 말했다. 

“청아 언니, 말 다 맞추고 왔어? 잘 생각해 봐. 혹시 빼먹은 거 있으면 얼른 가서 덧붙이고 와. 나중에 말이 안 맞으면 어쩌려고.” 

청아가 멈칫하다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내 잘못이야. 널 시키는 게 아니었는데. 네가 벌 받게 되면 내가 받을게.” 

“흥. 내가 바보인 줄 알아?” 

임새옥은 그녀를 밀어내고 혼자 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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