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5/57)

눈 깜짝할 사이 한 달이 흘렀다. 그러는 사이 허드렛일을 할 어멈 둘이 늘어서 두 사람은 잡일에서 벗어났고, 청아는 부인 곁에서 시중들고 임새옥은 아가를 돌보는 동시에 부엌일을 거들었다.

부인이 아들을 끔찍이 아껴서 직접 젖을 먹일 뿐만 아니라 대부분 시간을 아이와 함께 보내면서 임새옥을 제 옆에 있게 했다. 거기에 조삼랑 집에서보다 몇십 배는 잘 먹으니, 아무리 발에 땀 나게 일을 해도 임새옥의 얼굴에 슬슬 살이 붙기 시작했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자, 청아를 통해 그들이 강녕부(江寧府: 현재 남경)에서 온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 오게 된 이유는, 청아가 그저 우물쭈물하면서 장사하러 온 거라고 하길래 이리저리 에둘러가며 떠봤다. 아무래도 청아는 아직 어린애고 고향을 몹시 그리워하는지라, 여기는 사람이 적니, 놀거리가 많지 않니, 집에 있을 때는 어쩌고저쩌고하며 신이 나서 털어놓았다. 

“우리 집엔 화선(畫船: 아름답게 꾸민 놀잇배)이 한 대 있는데, 봄이 되면 부인이 우리 열몇 명을 데리고 놀러 간단다. 배 위에서 매실주도 데우고, 환아 언니가 직접 만든 첨갱(甜羹: 과일이나 열매를 넣고 전분을 풀어 걸쭉하게 만드는 단 음식)도 먹어. 뱃사공 어멈에게 노 젓는 법을 배운다고 부인이 장난하시다가 우리 모두 물에 빠질 뻔한 적도 있었다니까.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고 다들 얼마나 배를 잡고 웃었게. 

또 놀기 좋은 정원도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민둥민둥 아무것도 없는 여기랑 다르다고. 이 정원에서 놀다가 질리면 다른 정원으로 놀러 가고 그랬어.

난 호숫가에 있는 곳이 제일 좋았어. 그런데 부인께선 산에 있는 걸 좋아하시는 것 같았어. 뭐, 산도 좋았어. 낭랑묘(娘娘廟: 도교 계통의 여신을 모시는 사당. 벽하원군 외에, 자식을 점지해 주는 송자낭랑送子娘娘, 순산을 비는 최생낭랑催生娘娘 등이 있다.)가 가까웠거든. 낭랑묘의 향불이 얼마나 용한데. 거기서 빌고는 소야가 태어났잖아. 그동안 노부인이 얼마나 부인을 타박…….”

거기까지 이야기하던 청아가 화들짝 말을 멈추고 혀를 내두르고는 고개를 숙이고는 바느질에 집중하면서 빠르게 손을 놀렸다. 

임새옥은 이야기에 한창 빠져서 듣고 있었다. 전에는 공부할 수 있는 것만 해도 괜찮은 형편이라 여행을 다닌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청아의 말만으로도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현대인이 오염시킨 풍경보다 고대 강남의 절경이 얼마나 훌륭할까. 한번 다녀올 기회만 있어도 고대까지 온 보람이 있을 텐데. 

“집에 정원이 그렇게 많아? 송 대공은 평생 벼슬에 있으면서 겨우 이 집 하나 남겼다는데?”

임새옥은 손으로 청아를 톡톡 치며 나지막이 물었다. 

“관인께서 높은 관직에 있으셔?” 

그들이 산 이 저택은 마당이 두 개에 집채가 모두 열 몇 칸 있는 집이었다. 지현(知縣)을 지낸 송 대공 소유였는데, 송 대공 가세가 예전만 못해서 조상이 남긴 이 집까지 팔아 버린 것이다. 

임새옥이야 그런 걸 알 리가 없고, 전에 앞뜰에서 종복들이 한가로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서 알게 되었을 뿐이다. 종복들이 모여서 송 대공이 이 집을 얼마나 보배로 여겼는지, 팔면서 눈물을 훔치더라는 이야기를 종종 웃으며 했다.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는 청아의 눈빛에도 무시하는 기색이 엿보였다. 

“이게 무슨 정원이야. 우리 집 이낭들이 묵는 곁채하고도 비교가 안 되는데. 부인께서 여행길에 지쳐서 그렇지, 아니었으면 여기 머물지도 않았어.” 

그 바람에 더 궁금해진 임새옥은 청아의 손을 흔들며 물었다.

대체 무얼 하는 집안이신데? 높은 관직에 계셔?

청아는 말을 너무 많이 했다고 생각하면서도 임새옥의 선망의 눈빛에 못 이겨 나지막하게 말했다. 

“남쪽에 갈 일 있으면 아무에게나 물어봐. 우리 소씨 가문을 모르는 사람이 없어. 황제하고도 장사하는 집안이야.” 

그것까지 이야기해놓고 아니다 싶었는지 목소리가 갈수록 작아졌다. 청아는 임새옥의 놀란 모습을 보고 목을 가다듬고 당부했다. 

“앞으로는 이런 거 묻지 마. 부인께서 들으면 상심하셔. 운이 좋으면 나중에 우리랑 같이 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런 날이 오면 너도 알게 될 거야.” 

부인이 왜 상심하냐고 묻고 싶었지만, 청아가 대답하지 않을 테니 물어도 소용없을 것 같았다. 

하루하루 추워지는 날씨지만 오후의 햇살이 따사롭게 비치는 날이었다. 두 사람은 회랑 아래 계단에 앉아 속닥속닥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식솔은 위아래로 다 해야 고작 여남은 명이고, 부인과 노야 모두 좋은 사람이었다. 상상하지 못했던 평안한 나날에 조마조마 불안하던 마음도 갈수록 가라앉았고 조심스러움도 줄어들었다. 

두 사람은 청아가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화제를 피해서, 뭘 먹을까 상의하기 시작했다. 임새옥은 부엌어멈이 하는 밥이 매우 만족스러웠는데, 청아는 항상 불만인지 집에서는 뭘 먹고 뭘 먹고 하며 쉴 새 없이 투덜거렸다. 임새옥으로서는 이름만 들어도 침이 나오는 음식이었다. 드라마 홍루몽에서 봤던 성대한 연회 음식이 눈앞에 가득 아른거렸다. 

“매일 기름진 고기 조림이나 해대고. 보기만 해도 입맛이 떨어져. 부인 성품이 좋으셔서 말을 하지 않아서 다행인 줄 알아야지.” 

청아가 계속 구시렁거렸다. 

“오늘은 제대로 한마디 해야겠어. 오이를 잘라다 볶아도 그것보다 낫겠네.” 

이야기를 나누는데, 중문 앞에 사환이 머리를 내밀고는 두 사람을 보고 손짓했다.

“청저아!” 

임새옥도 종복들의 얼굴을 이제 다 익힌 상태였다. 노야 곁에서 시중드는 원가라는 아이로 올해 열여섯이고 손발이 길쭉길쭉했다. 

“왜? 노야께서 돌아오셨어?”

“밖에 어멈이 왔는데, 옷 만드는 사람이래. 물어보고 오래서.”

원가가 헤헤 웃으며 하는 말에 청아가 임새옥을 돌아보며 생긋 웃었다. 어서 모시고 오라고 했더니 퉁퉁한 여인이 살랑살랑 들어왔다. 부인이 옷 만들라고 불러온 사람이란 걸 임새옥도 알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추워지는데 겨울옷을 가지고 오지 않았으니 사람을 불러 새 옷을 지으라고 진작 지시했었다. 청아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3년 동안 새 옷을 입어보지 못한 임새옥은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여인과 함께 방으로 들어가니 부인은 평상복 차림에 탁자에 기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전가아가 곁에서 마구 기어 다니고 있길래 임새옥이 다가가 안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물을 좀 먹이렴. 열이 좀 오른 것 같구나.” 

부인이 당부하자 임새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이 더울 정도로 따듯한데 열이 안 오르면 이상하지. 

임새옥은 너무 뜨겁게 불을 지피지 말라고 이야기할까 몇 번이나 생각했지만, 자주 기침하고 추위를 못 견디는 부인의 모습에 차마 그러지 못했다. 

평소에 전가아를 돌보면서 신경 써서 열 내리는 음식을 먹였는데 하룻밤 자고 나서도 열증이 계속됐다.

청아가 방에 남아 시중을 드는 사이, 임새옥은 부엌어멈에게 배를 달여 달래서는 전가아를 안고 정원 나무 밑에서 아가를 달래며 한 수저씩 먹였다. 다 먹어 갈 때쯤 흰 교령(交領: 옷의 앞섶이 좌우로 겹침) 장포에 담황색 허리띠를 두른 소 관인이 성큼성큼 들어오자 허둥지둥 전가아를 안고 일어섰다. 

청아를 통해 이 관인의 이름이 금남(錦南)이고 이제 겨우 스물둘인 걸 알게 되었다. 소 관인은 평소에 집에 잘 없고 저녁 식사 때나 얼굴을 보이곤 했고, 말수가 적고 무표정해서 부인 이씨를 대할 때나 가끔 살며시 웃곤 했다. 

아버지가 온 걸 본 전가아가 옹알거리며 방실방실 다가가자, 소금남이 아이를 안아올렸다. 차분하던 눈빛에 미소를 드러내며 전가아를 흔들며 말을 걸다가 곁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임새옥을 보고는 물었다. 

“그날 네가 말한 방도가 대체 무엇이냐?”

여기에 온 이래 소금남이 먼저 말을 건 것도 처음이었다. 임새옥은 얼떨떨한 채 고개를 들 뿐, 잠시 바로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정말로 침은 아닐 테지?” 

소금남의 얇은 입술이 살며시 올라갔다. 

임새옥의 지금 몸은 이미 열세 살인데 키는 같은 나이의 아이보다 훨씬 작아서 소금남의 허리쯤 겨우 오는 정도였다. 고개를 들고 올려다보기에 조금 불편한데 갑자기 그렇게 물으니 더 거북해졌다. 그녀는 얼굴이 저절로 붉어져서 고개를 숙이고 웅얼웅얼 대답했다. 

“치, 침이 맞습니다.” 

당신 아내에게 바른 게 시녀의 오줌이라고는 죽어도 말 못 해요! 

소금남은 더는 묻지 않고 전가아를 안고 내원으로 향했다. 임새옥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부인 거처에 도착하니 옷 짓는 어멈이 마침 감사 인사를 끝내고 청아가 들어 올린 휘장을 통해 활짝 웃으며 밖으로 나오는 중이었다. 소금남을 보고 넋을 잃고 힐끔힐끔 바라보는데 소금남은 아랑곳하지 않고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어멈이 염불을 외며 청아에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너희 관인과 부인은 정말 신선 같은 분이시구나!” 

“오늘은 일찍 돌아오셨네요.”

소금남이 안으로 들어가자 이씨가 웃으며 일어나 아이를 받았고, 임새옥은 청아가 했던 것처럼 놋대야를 바쳤다. 이 부부가 곁에서 시중드는 걸 좋아하지 않는 걸 아는 임새옥은 소금남이 손을 다 씻은 다음엔 바로 나가려고 했다. 

“화아, 이번 달 네 월전(月錢)이다.”

이씨가 그녀를 부르더니 탁자에서 동전 꾸러미를 건넸다. 임새옥은 ‘월전’이 진짜로 존재한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이곳에 온 지 3년 동안 동전이라고는 구경도 못 한 그녀는 한순간 믿을 수 없어서 넋이 나갔다. 

이씨가 살며시 웃으며 돈을 그녀 손에 쥐여주었다. 

“바보 같기는. 5백 전이다. 남겨 두었다가 군것질거리 사 먹으렴.”

정신을 차린 임새옥은 고개를 숙이고 고분고분 말했다. 

“제가 뭘 한 것도 없는데요. 먹기는 또 얼마나 많이 먹나요. 그런데 돈까지 주시다니요.” 

이씨는 웃음을 터트리며 역시 가난한 집 아이는 성실하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쓰다듬어 주었다. 곁에 있던 소금남이 성가신 듯이 물러가라고 하자, 임새옥은 그제야 고개를 숙인 채 물러나서 그 길로 부엌으로 달려갔다. 역시나 청아가 그곳에 있었다. 

“원보(元寶: 황금이나 은으로 만든 묵직한 덩어리)라도 주웠어? 왜 그렇게 입이 찢어졌어!”

찬거리를 지켜보던 청아가 힐끔 바라보고는 놀리며 물었다. 

“화저아는 매일 저렇게 웃더라고.”

성이 손(孫)씨인 부엌 어멈이 생선 비늘을 벗기면서 말했다. 발치에 놓인 커다란 나무 대야엔 물고기 두 마리가 펄떡이고 있었다. 

임새옥이 헤헤 웃으며 손에 든 돈을 흔들어 보였다.

“부인께서 월전을 주셨어. 다들 받았어요?”

“난 또 뭐라고. 그 일로 그렇게 좋아하는 거야?” 

청아는 눈을 흘기며 말했고, 손 어멈은 실실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받았지. 화저아랑 같단다. 오랫동안 허드렛일을 했는데 이렇게 좋은 주인은 처음이야. 부인은 보살이 환생하신 거 아닐까? 어쩜 저리 생김새도 고우시고 마음도 고우실까.”

청아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항상 그러세요. 집에 있을 때랑 달라서 5백 전뿐이지만, 타박하지 말아요.” 

임새옥이 혀를 차며 대답했다. 

“5백 전이 적다고 타박해? 그럼 벼락 맞아 죽지!”

아무래도 나이가 많아서 아는 것이 많은 손 어멈이 물었다. 

“부귀한 댁의 시녀는 시골 지주보다 돈이 더 많다던데, 정말이냐?” 

청아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 

“다른 집은 모르겠고, 우리 같은 작은 집안은 일등 시녀 언니들 월전이 은자 두 냥이에요.” 

손 어멈이 놀라 혀를 내둘렀다. 

“은자 두 냥? 아이고야, 그러니 시골 지주보다 돈이 더 많을 수밖에. 잘 먹고 잘 입고, 은자까지 받다니!”

“그게 뭐 대수라고요. 노부인을 모시는 큰언니들은 따로 받는 것도 많은걸요.” 

청아가 부러운 듯 말했다. 

솥에 지글지글 기름 끓는 소리에 세 사람의 이야기가 끊겼다. 청아가 썰어 놓은 파를 안에 던지자 파 향이 사방으로 퍼졌다. 손 어멈도 다듬어 놓은 생선을 재빨리 들고 청아를 밀어내며 말했다. 

“여자애가 이런 냄새 배면 안 된다. 내가 하마.” 

그 말에 청아는 물러나서는 저쪽 아궁이에서 쑤고 있는 하얀 죽을 바라봤다. 부글부글 끓은 죽 안에서 가끔 하얀 조각이 떠오르는 걸 보고 의아해하며 물었다. 

“이게 뭐예요?”

“화저아가 넣으라던데. 무슨 꽃이라지?”

손 어멈이 힐끔 바라보고 하는 말에 임새옥이 후다닥 돈을 챙겨 넣고는 다가갔다. 

“백합이야. 요 며칠 날씨가 건조해서 손 아주머니에게 조금 구해 달라고 부탁했어.” 

“그런 걸 어떻게 알아?” 

청아가 위아래로 훑어보며 묻는 말에 임새옥이 멋쩍은 듯 웃었다. 

“나도 들은 거지. 전가아가 요즘 내내 열이 오르잖아. 부인 젖을 먹으니까, 부인도 분명 열이 있을 것 같아서. 우리 어머니랑 동생도 그랬는데 누가 이런 방도를 알려주더라고.” 

“넌 참 해괴한 방도도 많이 안다.” 

청아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벌에 쏘인 일을 떠올리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저녁은 간단하게 만들었다. 청아는 곁들이 요리도 몇 가지 지시한 후 아무리 해도 부엌 냄새가 익숙해지지 않아서 임새옥과 함께 나갔다. 둘이 정원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임새옥은 5백 전을 어디에 쓸지 고민했다. 매달 주는 거냐고 묻고는 1년이면 얼마냐고 손가락을 꼽는 모습에 청아는 웃어대다가 불현듯 그녀의 귓불을 만졌다. 

“어째 귀도 안 뚫었어? 이렇게 예쁜 귓불이 아깝게! 돈 모으면 성 내에 가서 예쁜 귀걸이 사자. 너도 이제 어린애가 아니니까 슬슬 치장도 하고 그래야지.” 

임새옥은 얼굴이 붉어져서 이제 막 여인처럼 몸이 부드러워지기 시작한 청아의 몸을 바라봤다. 

“또 놀린다. 내가 언니랑 같아? 비교가 안 되지.”

청아는 임새옥의 발그레한 얼굴에 시골 여자애들이 부끄럼을 잘 탄다는 걸 떠올리며 빙긋 웃더니, 이내 뭐가 생각났는지 한숨을 쉬었다. 

“미인이라면, 누가 우리 부인과 비교할 수 있을까. 부인이 계신데 누가 노야 눈에 누가 들어오겠어…….”

임새옥은 고민 가득한 것 같은 청아의 얼굴에 무슨 일이냐고 물으려다가 손 어멈이 밥 준비되었다고 부르자 정리하러 서둘러 움직였다. 

세 사람이 식사를 부인 거처에 가지고 가서, 청아는 남아서 상을 차리고 임새옥은 전가아를 데리고 나와 옆방으로 가서 놀았다. 저쪽 방에서는 가끔 수저 소리가 가볍게 들릴 뿐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청아가 정리하라고 손 어멈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길래 전가아를 데리고 들어갔다. 

등불 아래 서서 입 헹굴 차를 소금남에게 건네던 이씨는 그녀가 들어가자 웃으며 물었다. 

“백합죽, 네가 만든 거니? 열기 내려 준다고?” 

“예.” 

이씨는 한쪽에서 손을 닦고 전가아를 받아안은 다음 웃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맛있더구나. 오후엔 전가아에게도 이걸 먹이렴.”

이씨는 임새옥이 대답하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웃으며 물었다.

“또 뭘 알고 있니? 다 알려주렴.” 

임새옥은 대담하게 이씨를 바라봤다. 두 뺨이 발그레하고 봄기운이 가득한 부드러운 눈, 누구라도 마음이 흔들릴 얼굴에는 평온한 미소가 걸려 있었고 누군가를 무시하는 기색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요즘은 날씨가 아직 그리 추울 때가 아니고 햇볕도 좋으니 화항을 너무 지피지 마세요. 주무시기 전엔 방 안에 물 한 대야 가져다 두시고, 달인 배 물을 매일 한 번 드세요. 부인께서 좋아지면 전가아도 열증이 진정될 거예요.” 

그녀가 천천히 하는 말에 한쪽에서 서책을 넘기던 소금남도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봤다. 이씨는 이야기를 다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나이 든 종복들을 데리고 오지 않아서 모르는 게 많단다. 네가 알려줄 줄은 몰랐구나.”

“가당치 않습니다. 다 시골 사람들 사이에 전해지는 고상하지 못한 방도인걸요. 부인의 귀한 몸이 상하면 안 되죠.”

이씨는 웃기만 하고 말없이 유심히 그녀를 살폈다. 그때 청아가 들어가자 더 말하지 않고 물러가라고 했다. 

방에서 나온 다음 이씨가 안에서 하는 말이 나직이 들렸다. 

“마음에 쏙 드는 아이를 사다니, 이번엔 운이 좋았네요.”

임새옥은 내심 고개를 저었다. 대단한 일도 아니었다. 시중받는 것에 익숙한 두 귀인이 그런 것들을 신경 쓰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청아가 조금 언짢은 듯 고개를 갸우뚱하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참으로 재간이 많다니까.”

청아는 금세 웃는 얼굴로 돌아와서 그녀의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이제 잘 되었다. 돌아갈 때 부인께서 분명 너도 데려가실 거야. 그럼 부인 곁에 남아서 이등 시녀가 될 수 있어. 월전도 은자 한 냥이야. 언니가 미리 알려주는 거니까, 나중에 너무 좋아 죽지 마.”

임새옥이 깔깔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배 불리 먹을 수 있기만 해도 좋은걸. 그런 것까지 생각 안 해.”

청아는 웃기만 할 뿐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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