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 조삼랑, 생계를 위해 딸을 팔다
그녀는 임새옥의 숙모뻘 되는 친척이었다. 말도 많고 웃음도 많고 솜씨가 좋아서 종종 성에서 자수 일을 맡곤 했다. 다들 교낭(巧娘)이라고 부르는데, 세상 돌아가는 것도 잘 알고 해서 마을에서는 꽤 존중받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나타나자 노씨는 머쓱해져서 제 다리를 껴안고 감 달라고 외치는 금단을 철썩 내리쳤다.
“만날 먹기는! 그렇게 다 먹어대다간 다 굶어 죽어!”
“사는 게 힘들어도 애한테 이러면 안 되지요.”
교낭이 빙그레 웃더니 목 놓아 우는 금단에게 다가가 번쩍 들어 올려서는 임새옥에게 안겨 주었다.
“가서 동생이랑 놀고 있으렴.”
교낭이 어떤 사람인지 임새옥도 조금은 들어 알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교낭에게 잘 보이려는 이유는 성 안에 연줄이 있어서 딸을 팔아넘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가 자신을 밖으로 내보내려고 하자 임새옥은 심장이 철렁했다.
금단을 안고 집 밖으로 나간 임새옥은 풀뿌리를 뽑아서 아이를 달랜 다음 살금살금 돌아왔다. 말소리가 잘 들리는 창문 아래 숨었더니 노씨가 훌쩍훌쩍 우는 소리가 들렸다. 속상하다고 했는지 교낭이 달래고 있었다.
“봐요, 이러고 어찌 살아. 아이들이 먹을 것도 모자라요. 난 애까지 뱄고요. 온 가족이 다 굶어 죽기 전에 목매달고 죽어 버릴까 봐요.”
평소와 달리 기운 없는 목소리로 낮게 속삭이는 노씨의 말에 임새옥은 서글퍼졌다. 노씨가 때리고 욕하긴 해도, 어느 집이나 다 그랬다. 가난한 집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매일 걱정하느라 바빠서 아이를 귀하게 기를 여력이 없다.
임새옥은 갑자기 자신이 미워졌다. 왜 여자로 태어났을까. 남자였다면 남북을 누비며 우량 종자를 찾아다닐 수 있었을 텐데. 땅이나 지키며 사람이 굶어 죽는 걸 뻔히 보고만 있지도 않을 텐데.
“이 집 큰 애가 올해 열셋이죠? 어디 보낼 곳은 있어요?”
교낭이 갑자기 하는 말에 임새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본론이다!
“그럴 돈이 어디 있어요!”
노씨가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교낭이 찾아온 이유를 눈치챈 듯 물었다.
“아이고, 그 아이를 보낼 곳이 있는 거죠? 미리 감사드려요.”
이곳에선 딸을 노비로 파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님을 임새옥도 살면서 깨달았다. 운이 좋은 여자아이는 커서 첩실이 되고 식구들도 잘살게 되는 셈이라서 여자아이들도 기꺼이 팔려 간다.
임새옥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노비로 팔려 간 여자아이는 언젠가는 주인의 침상으로 끌려가든가,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보내지거나 할 뿐 반항할 명분이나 기회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차라리 가난한 마을 사람과 혼인하거나 평생 노씨에게 맞으면 맞았지, 이 자유롭고 따듯한 땅에서 떠나 저 높은 저택 담벼락 안에 갇혀 살고 싶지 않았다.
임새옥은 더 듣지 않고 히죽히죽 웃는 금단을 안고 느릿느릿 마을 밖으로 걸어갔다. 3년 전에 처음에 여기에 왔을 때도 앞날이 두렵지 않았다. 노씨가 구박하고 일이 고됐지만 평소와 다름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하기만 했다. 그래서 고대로 천월해 온 것도 별 느낌이 없었는데……. 그런데 팔려 가면,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소화!”
넋이 나가 있던 그녀는 유소호가 고함치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유소호와 친해진 금단이 버둥거리더니 그녀의 품에서 벗어나 그쪽으로 달려갔다.
어쩌다 보니 유소호의 집 앞까지 걸어온 모양이었다. 유소호는 담 모서리에 서서 소매를 걷고 바짓단을 말아 올리고 손은 진흙 범벅이 된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 해? 돼지우리 지어?”
유소호 곁에 후대에 흔히 볼 수 있는 돼지우리처럼 생긴 것이 있었다. 임새옥은 어리둥절해져서 무심결에 툭 물었다. 유소호는 무슨 말인지 생각하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씨익 웃었다.
“돼지우리? 아니야. 여기가 바로 농사지을 땅이야.”
농사를 지어?
임새옥이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바라보니, 작업이 이제 막 끝난 모양이었다. 그녀는 제 키 반 정도 높이의 진흙집 모양을 보다가 놀라고 말았다. 머릿속에 스친 생각을 믿을 수가 없어서 의심스러운 듯 유소호를 바라봤다.
“이걸로 뭘 하려고?”
유소호가 빙긋 웃으며 비밀스럽게 대답했다.
“나중에 알게 될 거다.”
금단이 진흙 범벅이 된 손으로 몸을 만지려 하자 임새옥이 아이를 번쩍 들어 올려 궁둥이를 찰싹 때렸다. 하지만 금단이 진흙 놀이를 하겠다고 떼를 쓰자 호되게 몇 대 더 때리고는 달랑 안고 달려갔다.
집 앞에 도착했더니 노씨의 배웅을 받으며 나오던 교낭이 빙그레 웃으며 힐끔 보고는 돌아갔다. 노씨는 진흙투성이가 된 금단을 보고 입을 달싹일 뿐 놀랍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삼랑은 오늘도 해가 완전히 진 후에야 돌아왔다. 해가 서쪽에서 떴는지, 임새옥은 전례 없이 금단과 함께 일찍 저녁을 먹고 진작 방에 들어가 자고 있었다.
하지만 잠이 쉽게 올 리가 있나. 귀를 쫑긋 세우고 밖에서 들리는 말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노씨의 목소리는 작아서 잘 들리지 않았는데 갑자기 조삼랑이 목소리를 높였다.
“어떻게 그런 짓을! 딸을 팔 정도까진 아니지!”
임새옥은 깜짝 놀랐다. 평소에 별 감정도 없고 말도 잘 안 거는 아버지가 그녀를 파는 걸 반대할 줄은 몰랐다.
설마 세상 아버지들은 모두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투른가?
임새옥은 문득 비 오는 밤에 빗속에서 나무에 비를 가려주던 아버지의 구부정하던 모습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좋은 곳이라고 말하는 노씨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바로 옆 마을이라니, 부부가 아이 하나 데리고 사는 집이고 아이 시중들 시녀를 구하니 어쩌니 하는 소리를 들으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났더니 조삼랑이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 장작을 패고 있었다. 눈이 시뻘건 것이 제대로 못 잔 듯했다. 노씨는 금단을 안고 물을 먹이고 있었다.
임새옥은 담벼락 모퉁이에 있는 무딘 칼로 비쩍 마른 채소 한 무더기를 잘게 다져서 마당에 키우는 닭에게 던져 주었다. 그리고는 차가운 우물물에 손을 헹구고 항아리에서 보리 기울을 반 그릇 꺼내 아궁이 위의 물이 끓기를 기다렸다.
조삼랑이 감나무에 기어 올라가 마지막 남은 감 네 개를 따는 모습에 코가 찡해진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는 불을 피우면서 더는 그들을 쳐다보지 않았다.
달짝지근한 감을 눈앞에 두고 평소보다 보리 기울 떡을 반 조각 더 먹었는데 웬일로 노씨가 식충이라고 욕하지 않았다. 노씨의 고함이 없으니 다들 어색하게 밥을 먹었다. 조삼랑은 말없이 멀건 죽만 두 그릇 먹을 뿐, 감은 아까워서 한 입도 먹지 못했고 절인 채소조차 겨우 한 입 먹었다. 노씨는 조삼랑을 힐끔 보고는 감 네 개를 모두 오누이에게 두 개씩 나눠 주었다. 금단은 얼굴에 잔뜩 묻히며 두 개를 뚝딱 먹고는 임새옥 몫에 손을 뻗다가 노씨에게 한 대 얻어맞고는 우앙 울음을 터트렸다.
임새옥은 한숨을 내쉬고 이 부부를 원망할 겨를도 없이 서둘러 금단을 안고 어르며 데리고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교낭이 살랑살랑 걸어오는 게 보였다.
“화저아, 숙모랑 좋은 곳에 가지 않으련?”
교낭이 그녀 앞에 서서 빙그레 웃으며 묻는 말에 임새옥은 힐끔 보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기척을 듣고 나온 노씨가 교낭을 안으로 들였다. 그리고 임새옥을 불러 솥에서 끓는 물 한 바가지 퍼서 대충 얼굴을 씻긴 다음 깨끗한 옷을 꺼내 왔다. 임새옥이 준비를 마치고 나오자, 조삼랑도 멀끔한 옷으로 갈아입고 마당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화저아, 아버지랑 어디 좀 다녀오려무나.”
노씨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누이가 나오는 걸 본 금단이 신이 나서 달려들어서는 새 잡고 놀자고 떼쓰려는데, 노씨가 확 끌어당기자 금단이 성을 내며 임새옥의 옷을 잡고 늘어졌다. 가지 말라고 외치는 금단의 목소리에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하던 사람들은 모두 당황했다. 노씨는 금단을 잡아끌어 몇 대 때리고는 이를 악물고 돌아서 안으로 들어갔다.
“가자.”
이런 일을 수없이 봐 온 교낭은 고개를 저으며 앞장서서 마을 밖으로 가는 길로 향했다.
마을 어귀에 도착했더니 유소호가 자기 집 마당에서 장작을 패고 있다가 그녀를 발견하고는 신이 나서 이름을 불러대는데, 이런저런 생각으로 답답하던 임새옥은 상대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교낭이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해 주다가 마침 유 대낭이 밖으로 나오자 목소리를 높였다.
“대낭! 지난번 자수 일감, 내가 벌써 팔았어요. 돈은 나중에 가져다줄게요. 다들 좋아하더라고. 다음엔 신발 만들 걸 부탁해달라고 하던데요.”
유 대낭은 웃으며 고맙다고 인사했다. 세 사람을 보고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아무런 말 없이 그저 어쩐지 서글픈 얼굴로 임새옥을 바라봤다.
유소호가 웃으며 밖으로 달려 나왔다. 임새옥이 이렇게 멀끔하게 차려입은 건 또 처음이었다.
“소화, 어딜 가는 거냐? 친척 집에?”
임새옥이 슬쩍 그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소호가 신이 나서 제집 마당 구석을 가리키는데, 진흙집이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빨리 돌아와라. 좋은 거 보여줄게.”
할 말이 남았는데 유 대낭이 유소호를 잡아끌었다. 유소호는 임새옥이 돌아보지도 않고 가버리는 걸 멍하니 바라봤다.
조삼랑은 교낭 뒤를 따라 천천히 걸었고, 임새옥은 줄곧 아무런 말 없이 고개를 숙인 채 따라갔다. 집 마당에서 닭 우는 소리, 그리고 금단의 앳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눈물을 글썽이며 걸음을 서둘렀다. 마을을 벗어나 비탈언덕에 이르렀을 때 못 참고 뒤를 돌아봤더니, 노씨가 마을 어귀 큰 나무 아래에서 목을 빼고 바라보는 게 어렴풋이 보였다.
대추나무였다. 이곳에 온 3년 동안, 해마다 열매가 영글 땐 마을 아이들과 전쟁을 치러야 했는데, 임새옥이 번번이 승리해서 열매 절반을 든든히 확보했었다. 그 바람에 마을 사람들이 손가락질했고, 조삼랑 집까지 찾아와 난리를 부리는 사람도 있었다. 식탐이 심하고 포악하다나 뭐라나. 마을에 있는 나무를 어째서 네가 독점하냐고 하면서.
노씨는 평소에 그녀에게 사납게 굴어도 내 새끼는 무섭게 챙기는 사람이라 항상 한바탕 싸움이 났었다.
지금은 늦가을이라 나무엔 열매 하나 없이 썰렁했고, 앙상한 나뭇가지가 길게 뻗어 흉악해 보였다. 임새옥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떠나면 이번 생엔 다시 돌아오지 못하겠지.
“화저아, 가자. 앞으로 좋은 나날이 기다린단다.”
교낭이 돌아보더니 샐샐 웃으며 그렇게 말하고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아무래도 나이가 어려서 임새옥의 걸음이 느려지자, 조삼랑이 업히라고 허리를 구부렸다. 이 장사를 오래 해서 조삼랑의 마음을 잘 아는 교낭이 웃으며 말했다.
“삼촌이 애를 참 예뻐하네. 화저아가 나중에 잘 되면 분명 다 기억할 거예요.”
교낭은 임새옥이 아무런 말도 없이 그냥 따라오기만 해도 개의치 않았다. 원래 시골 아이는 다 이렇게 어리숙하니까. 그녀는 가면서 조삼랑에게 다시 한번 상대의 상황을 세세히 설명했다.
“남쪽에서 온 분들인데, 노아촌에 있는 송 대공 가문의 집을 샀어요. 부인 한 사람만 데리고 왔고, 아이는 이제 갓 한 살. 집에서 데리고 온 시녀 하나로 부족하대요. 이 정도면 좋은 주인이죠. 성격도 아주 좋고요. 복 받은 거예요.”
그러면서 임새옥에게 말 잘 듣고, 일 잘하고, 울면 안 된다고 몇 번이고 당부했다. 이야기하는 사이 노아촌에 당도했다. 임새옥이 사는 마을보다 훨씬 큰 마을이고 현성(縣城)도 가까웠다. 다들 작게 장사도 하는 마을이라 형편이 꽤 좋아 보였다.
마을로 들어가자마자 집 하나가 보였다. 검게 칠한 대문이었고, 대문 앞은 막 쓸었는지 깨끗했다. 교낭은 걸음을 멈추고 조삼랑에게 몇 마디 당부한 다음에 임새옥에게 어떻게 말하면 되는지 가르쳤다. 울면 안 된다고 다시 당부하고서야 매무새를 가다듬고 다가가 사람을 불렀다.
문이 열리고 서른 남짓한 종복이 나왔는데, 옷차림이 소박하지만 매우 깔끔했다. 사근사근한 걸 보니 교낭을 아는 게 분명했다.
“왔군요. 부인께서 한참 동안 기다리셨습니다.”
교낭은 가볍게 대꾸하고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돌아보니 조삼랑이 제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자 급히 그를 불렀다. 임새옥은 조금 긴장했지만, 운명을 바꿀 힘이 없으니 조삼랑을 따라 말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영벽(影壁)을 지나니 매우 큰 뜨락이 보였다.
바닥에는 청석판이 깔려 있고, 다섯 칸짜리 대청 앞에 노복 하나가 쓱쓱 바닥을 쓸고 있었다. 그 옆에 어린 종복이 화분을 놓고 있었다. 화분엔 국화가 커다랗게 활짝 피었다.
중문을 지나 내원(内院)에 도착했더니 시녀 하나가 흙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한창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청저아, 또 꾀부리지!”
교낭 일행을 데리고 온 종복이 목소리를 높이자 시녀가 일어서 샐샐 웃으며 이쪽을 바라봤다. 시녀의 모습을 제대로 본 임새옥은 저도 모르게 “응?” 하고 소리를 냈다. 그날 길에서 만났던 시녀 아이였다. 그 아이도 임새옥을 보고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더니 입을 가렸다. 안에서 누군가 청아, 하고 부르자 서둘러 대답하고 콩콩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조삼랑은 이런 대갓집에 처음 오는 것도 아닌데 긴장해서는 소심하게 한쪽에 서 있었다. 교낭이 머리카락을 가다듬는 사이, 종복이 붉은 휘장 너머에 서서 아뢰었다.
“부인, 십방촌 교낭이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방 안에서 들어오라는 나긋나긋한 대답이 들리자, 종복이 휘장을 걷었고 교낭은 서둘러 임새옥을 잡아끌며 안으로 들어갔다. 실내는 포근하건만 임새옥은 저도 모르게 덜덜 떨면서 고개를 숙이고는 발치의 깔끔한 바닥만 쳐다보았다. 교낭이 앞으로 나서며 인사 여쭙는 소리가 들렸다.
교낭이 인사부터 하고 본론에 들어갔다.
“여기 데리고 왔습니다. 마음에 드시는지 한번 보세요, 부인.”
임새옥은 시선이 느껴지자 저도 모르게 더 깊이 고개를 숙였다. 찻잔 뚜껑 소리가 살며시 울리더니 옷자락이 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몇 살이니?”
교낭이 냉큼 대답했다.
“섣달생이니, 아직 열셋이 안 되었습니다.”
잠시 후에야 부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좀 말랐구나.”
“시골 아이들은 다 이렇습니다. 배를 곯아서 그래요. 부인께서 끼니를 챙겨주시면 곧 튼실해질 겁니다.”
교낭이 웃으며 하는 말에 부인도 웃었다.
“착하지. 무서워할 것 없다. 이름이 무엇이니?”
임새옥에게 묻는 것이 분명한 말에 교낭도 눈치 빠르게 대답하지 않았다. 임새옥은 제 신세가 처량해서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는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말씀 올립니다, 부인. 화입니다. 조화.”
이렇게 예의 바르게 대답할 줄 몰랐는지, 방 안에 있는 모두가 멈칫했다. 임새옥은 다시 고개를 들고 그제야 부인을 제대로 쳐다보았다. 스물 남짓한 여인은 가냘픈 몸에 고운 붉은빛 좁은 소매 단의(短衣)를 입었다. 금박무늬의 대섶 배자를 걸쳤고, 담황색 유군(褶裙: 긴 치마) 밑으로 끝이 뾰족한 붉은 수혜(綉鞋: 수를 놓은 비단 신)가 보였다. 가늘고 긴 손을 무릎에 가지런히 올린 모습, 달처럼 하얀 얼굴에 살구눈, 봄처럼 온화한 용모의 정말 친근해 보이는 미인이었다.
넋을 잃고 바라보던 임새옥은 누군가 웃는 소리에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부인께서 정말 미인이시라 이 아이가 넋이 나갔나 봐요.”
청아라고 불린 아까 그 시녀의 목소리임을 알아들은 임새옥은 민망해하며 그녀를 힐끔 바라봤다.
“놀라겠다. 그러지 말아라.”
부인이 나긋나긋 말을 이었다.
“얘야, 앞으로 여기 남아 청아를 도와 일하며 공자를 돌보면 어떻겠니?”
교낭의 시선을 느낀 임새옥이 고분고분 대답했다.
“자비를 베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인.”
그 말에 부인은 빙긋 웃었고 교낭도 내심 혀를 내둘렀다. 조삼랑은 속을 알 수 없는 답답한 사람이고 노씨는 우둔한 사람인데 어떻게 이리 말주변 좋은 딸을 길러냈을까 싶었다. 이들을 낮잡아 보고 은자를 덜 받은 걸 내심 후회했다.
부인이 더 이상 다른 말을 하지 않았지만, 부인의 의중을 눈치챈 청아가 그녀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서 있느라 다리가 다 뻣뻣해진 조삼랑은 임새옥이 나오자 긴장해서 물었다.
“어떻게 됐냐. 마음에 들어하시더냐?”
임새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시커먼 그의 얼굴에 코가 시큰해졌다.
“닭들이 매일 집 뒤에 가서 알을 낳아요. 잊지 말고 주우라고 어머니에게 말해주세요. 금단은 참새를 좋아하니 광주리로 잡아서 주면 돼요. 물은 꼭 끓여서 먹어야 하고, 어머니는 손을 자주 햇볕에 쬐어 주어야 해요. 그래야 덜 아파요.”
조삼랑은 눈시울이 붉어져서 허둥지둥 시선을 피했다.
“형편이 좋아지면 바로 데리러 오마. 그러니 원망하지 말아라.”
한참 만에 하는 말에 임새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망 안 해요.”
더 이야기하려는데 휘장 흔들리는 소리가 나더니, 교낭이 희희낙락 축하한다고 말하고는 두 사람의 표정을 보더니 빙그레 웃었다.
“좋은 일이란다. 앞으로 못 만나는 것도 아닌데, 얼른 그런 표정 거두렴.”
그러고는 더는 지체하지 않고 조삼랑을 데리고 아까 그 종복을 따라가기 바빴다. 조삼랑이 세 걸음마다 한 번씩 돌아보자 임새옥은 눈물을 참다가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돌아섰다. 한참 동안 그러고 있는데 안에서 부인 목소리가 들렸다.
“청아, 네 옷 하나 골라서 화아에게 갈아입히고 다시 데리고 오렴.”
처마 밑에 서 있던 청아가 낭랑하게 대답하고는 임새옥을 불러 쪽문으로 향했다.
“내가 너보다 한 살 많으니까 앞으로 언니라고 불러.”
청아가 그녀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너일 줄은 정말 몰랐다, 얘. 네 덕분에 부인께서 성까지 무사히 온 거라고 이따 말씀드릴게.”
그러더니 얼굴을 붉히고는 풉 하고 웃었다.
“그나저나, 그 방도는 정말이지…….”
청아의 말에 임새옥은 슬픔을 감추고 기운 내면서 물었다.
“언니, 다른 사람에게 말했어?”
청아가 입을 가리고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걸 어떻게 이야기하니. 부인께서 알면 날 때려죽이고 싶으실걸! 노야가 몇 번이고 캐물으셨는데 말하지 못했어. 그냥 침이라고 했지, 그, 그 더러운 거라고 어떻게 말하니!”
까르르 웃으며 얼굴을 붉히는 청아의 귀여운 모습에 임새옥도 그 일을 떠올리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말벌에 쏘였을 때 가장 좋은 치료 방법이 암모니아를 바르는 것이다. 하지만 평소에 그런 걸 준비해 둘 리가 없으니 오줌이 가장 좋은 약이었다. 부인의 몸에 자기 오줌을 발랐다고는 죽어도 말 못 하는 이 어린 소녀의 마음을 이해했다. 거기까지 생각하고는 조금 짓궂은 마음이 들어서 나지막이 물었다.
“부인께서 어디를 쏘인 건데?”
청아가 멈칫해서는 얼굴이 붉어졌다가 하얘졌다가 하더니, 임새옥의 머리통을 톡 쳤다.
“다신 묻지 마! 앞으론 꺼내지도 말고!”
그래놓고 더는 못 참고 웃음을 터트렸다.
후원으로 갔더니 욕통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솥 안에 뜨거운 물이 펄펄 끓는 걸 보니, 마음이 다 간질간질했다.
3년이다, 3년! 목욕을 못 한 지 3년이야!
청아는 물을 준비해주고 문을 닫고 나가서 밖에서 기다렸다. 임새옥은 시원하게 목욕을 마친 후 청아가 보낸 입던 의복으로 갈아입었다. 머리의 물기를 닦고 오후의 햇살 아래 서서 말렸다. 청아가 재빠르게 머리카락을 양 갈래로 쪽지어 말아 올린 다음 붉은 끈을 묶어 주었다.
“언니, 솜씨가 참 좋네.”
임새옥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농사일이라면 이 어린 소녀보다 훨씬 잘하리라 장담하지만, 옷차림이나 치장은 이 어린 소녀와 비교하면 자신은 세 살짜리 어린애 같았다. 천월한 지 3년, 노씨는 그녀를 돌보지 않았고 매일 스스로 머리카락을 빗어야 했다. 이렇게 긴 머리카락을 잘 정리할 수 있을 리 없으니 매일 대충 묶고 다녔었다.
“됐다!”
청아가 그녀를 살며시 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을 가늘게 뜨고 살펴보더니 불현듯 생긋 웃었다.
“꽤 예쁘장하네.”
임새옥은 얼떨떨해졌다. 예쁘장하다는 말을 들은 적도 생각한 적도 없어서, 청아가 어려도 듣기 좋은 소리는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저 입에 발린 소리로 여기고 헤헤 웃을 뿐 달리 상대하지 않고는 고개를 숙여 제 옷만 바라봤다.
웃옷은 꽃무늬 무명천 단삼이고 아랫도리는 옥양목 치마로, 모두 색이 조금은 바래 있었다. 임새옥이 조금 더 키가 커서 옷이 조금 짧긴 했지만, 그녀에게는 충분히 고급인 옷이었다. 모든 여자아이의 본성이 어디 갈까. 임새옥도 좋아서 저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청아는 신던 신발을 꺼내 그녀에게 신겨 주고 앞쪽이 훤히 드러난 이혜(泥鞋: 생가죽을 기름에 절여서 만든 진 땅에서 신는 신)는 내다 버렸다.
청아는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임새옥을 데리고 부엌으로 향했다. 정리하고 있던 두 어멈이 청아가 들어오는 걸 보더니 바로 말했다.
“식사는 벌써 보냈다. 부인 말씀이 너희들도 밥 먹고 오면 된다고 하시더구나.”
청아는 고생하셨다고 말하고는 임새옥을 끌고 구석에 가서 앉았다. 어멈이 먹을 걸 담아 주길래 들여다봤더니 놀랍게도 면편탕(面片湯: 수제비)인데, 위엔 잘게 썬 푸릇푸릇한 파까지 얹어져 있었다. 임새옥이 좋아서 얼른 받아 곧바로 국물을 마시다가, 입이 데어 쓰읍 소리를 냈더니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서둘러 밥을 먹은 다음, 부인 거처에서도 식사가 끝났을 시간을 어림잡은 청아가 다급하게 그녀를 데리고 전원으로 향했다.
“대관인(大官人: 사회적 지위가 높은 남자나 부잣집 공자에 대한 존칭)은 소(蘇)씨고, 부인은 이(李)씨셔. 하인은 나를 포함해서 모두 다섯 명 데리고 오셨고.”
가면서 이곳의 상황을 설명하던 청아는 말을 멈추고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원래 다른 아이도 같이 오려고 했는데 급하게 오느라 데리고 오지 못했어.”
남쪽에서 온 거로구나.
임새옥은 내심 생각했다. 부인도 그렇고, 청아도 그렇고 말씨가 나긋나긋한 것이 분명 남쪽의 부귀한 집안 출신 같았다. 어쩌다가 이리 외진 시골까지 왔을까.
이야기하는 사이 어느새 부인의 거처에 도착했다. 날이 어두워져서 벌써 불을 켠 세 칸이 이어진 안채에서 불그스레한 빛이 새어 나왔다. 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사내아이가 깔깔 웃는 소리가 들렸다.
“작은 공자셔.”
청아는 문밖에서 걸음을 멈추고 목소리를 낮춰 임새옥에게 한마디 하고는 손을 털고 얌전히 섰다.
“부인!”
“그래, 어서 들어와서 노야에게 얼굴 보여주렴.”
방 안에서 웃는 목소리가 들렸다. 청아가 다급히 휘장을 들어 올리고 두 사람이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날씨가 추운 편이 아닌데 방 안은 이미 화항(火炕)을 데워둔 모양이었다. 따뜻한 바람이 훅 불어와 재채기를 할 뻔한 임새옥은 이러다가 조만간 열증이 걸릴 거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대관인을 뵙습니다.”
청아가 인사하고는 따라 하라는 듯 살며시 임새옥을 잡아당겼다. 진짜 어린애도 아니고 예절을 모를까마는, 임새옥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곳에서 생활한 지 벌써 3년이 흘렀지만, 조삼랑 부부는 아이를 양 기르듯 방목해서 기르고 예절 같은 건 몰랐다. 이곳이 존비가 분명한 고대라는 걸 다 잊을 지경이었는데 갑자기 노비로 팔린 것이다. 이제 툭하면 무릎을 숙이고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고 생각하면 속이 쓰렸다. 이젠 벼락에 맞을까 걱정도 되지 않아서 다시 한번 독하게 하늘의 안부를 물었다.
“됐다.”
이를 질끈 악물고 무릎을 꿇으려 하는데 청량한 사내 목소리가 울렸다. 임새옥은 안도하며 정말로 가만히 있었다. 방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그녀가 시골 사람이라 겁먹어서 그러는 것으로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어리구나.”
말을 이으며 자신을 훑어보는 사내의 시선에서 못마땅함이 느껴졌다. 임새옥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고 그 사람을 바라봤다. 역시나 예상한 대로 그날 만났던 젊은 남자였다.
“그러게 어멈을 사자니까. 그래야 당신에게 도움이 되지요. 이렇게 어려서야…….”
그는 살며시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고개를 돌려 임새옥을 바라봤다. 씻고 치장한 임새옥은 들판에서 본 그 모습이 아니라서 알아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부인은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부인의 품에 안긴 하얗고 보들보들 옥 조각 같은 아기가 낮은 탁자 위에 놓인 접시로 작은 손을 뻗었다. 청아는 자기네 노야의 못마땅해하는 모습에 서둘러 웃으며 입을 열었다.
“노야, 이 아이 몰라보시겠어요? 마침 부인께 말씀드리려던 참인데, 정말로 공교로운 일이지 뭐예요.”
그 말에 두 사람이 모두 바라보자, 임새옥은 순간 어색해져서 고개를 숙이려다가 아기가 붉은 대추를 집어 입에 넣으려고 하는 걸 보았다.